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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강] 비유의 종류.2
강사/김영천
3)치환은유와 병치은유
미리 말씀 드리는대요. 치환은유와 병치은유까진 깊이
알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교재로 보고 있는 책에
나와 있어서 아주 간단한 소개로 끝낼까 합니다.
치환은유는 우리가 어제 배운 은유를 말합니다. 즉
A는 B이다 하는 일종의 서술형식을 가졌지요. 아리스토
텔레스가 내린 정의처럼 한 사물에다 다른 사물의 이름을
전이하여 만드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은유가 바로 치환
은유입니다.
황지우님의 <거대한 거울>을 한번 읽어보지요.
한 점
죄(罪) 없는
가을 하늘을 보노라면
거대한 거울,
이다;
이번 생의 온갖 비밀을 빼돌려
내가 귀순(歸順)하고 싶은 나라;
그렇지만 그 나라는
모든 것을 되돌릴 뿐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
대낮에 별자리가 돌고 있는
현기증나는 거울
이 시에선 원관념은 '가을 하늘'이고 보조관념은 '거대한
거울'입니다. 결합 방식도 'A는 B다'라는 전통적인 서술형
식이며 두 대상은 서로 유사성이 있습니다.
거울과 가을 하늘과의 유사성은 무엇이 있을까요?
맑고 투명함이 우선 유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울이 우리의 겉모습을 비추어준다면, 가을하늘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양심을 비추어줄 것입니다.
이 시처럼 치환은유는 두 대상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원관
념이 보조관념으로 전이하여 시적 의미를 확대시키고 의미
의 변용을 만들어내는 은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치은유는 무엇일까요?
병치은유에서는 치환은유에서 보여준 유사성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로 이질 적인 대상들이 병렬과 종합의
형태를 통하여 새로운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김춘수님의 시 <나의 하나님>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純潔(순결)이다.
三月에
젊은 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이 시에선 원관념이 하나님이고 이 원관념을 비유하고 있
는 다른 대상들은 자연스러운 결합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처럼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보조관념들끼리도 전혀 아무
런 유사성이나 모방적 요소 없이 각기 독립적으로 늘어서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병치은유는 전혀 다른 대상들, 현실 속에선 결코
아무런 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것들이 창조적인 시적 공간
에서 서로 만나고 관계를 맺어서 새로운 의미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를 쓰는 사람들은 남다를 상
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강의 초미에 말씀드린 바대로 그냥 은유만
알아두시고 치환은유나 병치은유는 그런 구분이 있다더라
는 정도만 알아두십시오.
4)환유와 제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환유는 종과 속의 대치 이론에서
종에 적합한 것을 속으로 사용할 때 환유에 해당된다고 했
습니다. 또 환유는 오히려 은유와 대립되는 은유의 형식이
라고 야콥슨은 말하기도 했지요. 너무 어려운 설명이라 저
도 좀 당황스러웁네요. 쉽게 풀어보지요.
이는 대상의 일종으로 어떤 사물을 나타낼 때 그 것과 관
계가 깊고 가까운 낱말을 빌려 표현하는 비유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에 금뱃지가 왔어" 라 하면 국회의원이
왔다는 이야기로 모두에게 통합니다. 여기서 금뱃지는 국회
의원을 대신 말하고 있는 환유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표현하는
것도 환유입니다. "별"이 장군을 의미한다던지, "사각모"가
대학생을 의미한다던지, "상아탑"이 대학을, "백의의 천사"가
간호사를 의미하는 것이 환유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윤동주님의 <슬픈 족속>을 읽어보지요.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이 시를 보면 우린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도 여기에서
쓰인, '흰 수건', '흰 고무신', '흰 저고리 치마', '흰 띠'
가 백의민족인 우리 민족을 의미하는 것을 금방 알아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백의가 우리 민족을 대신해서 말하고
있는 환유입니다. 이제 환유에 대해선 이해가 되셨으리라
믿고 제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유는 은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한 부분(보조관념)이 안으로 숨어 있는
전체(원관념)를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드러나 있지 않은 전체를 그 사물의 일부분으로서
대신 표현하는 방법인 이 제유는 은유의 일종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표현에서 "빵"은 다만 빵집
의 빵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 먹을 것 전체를
대신 가리키는 제유인 것입니다.
"푸른 눈"이 서양인을 가리키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호승님의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을 읽어보실까요.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
우리들 서울의 전쟁과 평화
인간을 위하여
인간의 꿈조차 지우는 밤이 와서
우리들 함께 자는 여관잠이
밤비에 젖고
찬비 오는 여관잠의 창문 밖으로
또 다시 세월이 지나가도
사랑에는 사랑꽃
이별에는 이별꽃을 피우며
노래하리라 비오는 밤마다
목마를 때 언제나 소금을 주고
배부를 때 언제나 빵을 주는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
우리들 서울의 꿈과 눈물
여기에서 등장하는 '빵'은 아까도 말 했지만 먹을 것, 음식
의 전체를 대신 표현하는 제유입니다.
오늘 강의한 제유나 환유가 시에서 그렇게 많이 쓰이는 것
들이 아니므로 이 것 역시 치환은유나 병치은유처럼 있다는
정도만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이 아니라도, 여러분은 이미 시 창작에 대해
전문적인 강의를 받고 계심으로 비유의 종류로서 그 내용 정
도는 가볍게라도 알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아서 강의합니다.
좋은 시 몇 편 읽어보기로 하지요
공혜경님의 시 <한세상을>을 읽겠습니다.
깻단을턴다떨어지는깨알깨알로흩어져서
깨알로박혀서깨알의소리를여물지않은선소리까지
멍석에털어놓는다깍지를벗어나앞다투며등떠밀리며
세상수면위로떠올라서죽정이는죽정이대로알갱이는
알갱이대로뿌리를뿌리내릴터를찾아찾다가노르끼한
태깔로반짝이는씨눈을뜨고서깨알같은세상살이구구한
세상에고소하게고소하며볶아치며애태우며
진까지빼내어반들반들기름두르듯그렇게자르르르
한세상을
정호승님의 <슬픔이 기쁨에게>를 읽어보기로 하지요.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 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다음은 홍윤숙님의 <사람 찾기>입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나이는 스무 살
키는 중키
아직 태어난 그대로의
분홍빛 무릎과 사슴의 눈
둥근 가슴 한 아름 진달래빛 사랑
해 한 소쿠리 머리에 이고
어느날 말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삼십 년 안개 속에 묘연
누구 보신 적 없습니까
이런 철부지
어쩌면 지금쯤 빈 소쿠리에
백발과 회한 이고
낯설은 거리 어스름 장터께를
헤메다 지쳐 잠들었을지도
연락바랍니다 다음 주소로
사서함 추억국 미아보호소
현상금은
남은 생에 전부를 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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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방만큼은 아니겠지만 대개 날림으로 지어진 옥탑방도 폭우의 습격에 취약하다. 짧은 처마 밑에서 벽은 직격으로 퍼붓는 비를 흠뻑 머금어 벽지가 축축이 젖어 있다. 방 한가운데 누워 천장의, 질금질금 영역을 넓히는 한 뼘 얼룩을 바라본다. 모래로 지은 듯한 옥탑방에서 폭우 소리를 듣는다.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고 사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는 홍수 뒤 물 구경을 갔었지. 한남대교 난간에서 고개를 내밀고, 싯누런 강물이 포효하며 맹렬한 속도로 끝없이 지나가는 광경을 봤지. 상류에서부터 휩쓸려온 온갖 것이 어디로 떠내려가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지.
바다는 모든 것 받아줘서 ‘바다(받아)’일까? 아니다. 바다는 받아주는 척할 뿐 받아주지 않는다. 해변에는 스티로폼 박스나 페트병이나 망가진 그물, 소주병, 동물의 사체 같은 것이 널브러져 있다. 바다가 밀어낸 그것들은 원래 바다의 것이 아니다. 인간 욕망의 잔해다. 우리는 욕망하고 그 잔해, 내면의 더러움을 비롯해서, 모든 더러운 찌꺼기를 바깥으로 치워버린다. 바다로 떠내려 보낸다. 그리고 깨끗해진 줄 알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 더러움이 사라진 게 아니다. 바다는 우리가 쏟아버린 더러운 것들을 저도 싫다고 제 바깥, 우리에게 끝없이 되밀어낸다. ‘인간이 맹렬히 제 발밑만 생각하고 살아서 세상이 맹렬히 더러워진다’고 시인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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