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0월 2024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곽재구 - 사평역에서
2016년 05월 01일 18시 48분  조회:4330  추천:0  작성자: 죽림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1981년>
 

▲ 일러스트=권신아
조그만 간이역에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푹푹 내려 쌓이는 눈 때문에 막차는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합실에서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부려둔 보따리나 꾸러미에 기대 누군가는 졸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웅크린 채 쿨럭이기도 한다. 털모자에 잠바를 입은 사내는 간간이 난로에 톱밥을 던져 넣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난로 위 주전자는 그렁그렁 끓는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고,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시대적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되는 곽재구 시인의 데뷔작 '사평역에서'(1981)를 읽을 때마다 나는 울컥한다. 아름다우면서 서럽고, 힘들지만 따뜻했던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을 소중한 흑백사진처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지난 시절의 희망과 절망이 눈보라로 흩날리고 있다, 모래처럼 톱밥처럼. 그 울컥함이 소설(임철우 '사평역에서'), 드라마(TV문학관 '사평역', '길 위의 날들'), 노래(김현성 '사평역에서')로 장르를 달리하며 독자들의 공감을 얻게 했으리라.

이십대에 쓴 시답게 감각과 묘사가 풋풋하다. 깜깜한 유리창에 쌓였다 녹는 눈송이들은 흰 보라 수수꽃(라일락꽃)빛이다. 사람들이 그믐처럼 졸고 있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확 타올랐다 사그라지는 난로 속 불빛은 톱밥을 던져 넣는 청색의 손바닥과 대조를 이룬다. 간헐적으로 내뱉는 기침 소리는 '눈꽃의 화음'을 강조하고, 뿌옇게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담배 연기는 회억(回憶)처럼 떠올랐다 가라앉곤 한다. 

한줌의 톱밥을 던지는 '나'는 무슨 사연을 간직한 걸까? 기다리는 막차는 올까? 모든 역들은 어디론가 흘러가기 위한 지나감이고 경계이다. 하여 모든 역들이 고향을 꿈꾸는 것이리라. 사평은 나주 근처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그 사평에 사평역이 없다니, 그토록 울컥하게 했던 사평역이 어디에도 없다니, 그래서 더욱 우리를 울컥하게 하는 것이겠지만.[정끝별 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003 강릉출생 민족시인 심연수 육필원고 고향에서 품다... 2017-01-27 0 3235
2002 [자료] - 윤동주 유고시집 보존했던 정병욱 가옥(4) 2017-01-25 0 3864
2001 [자료] - 윤동주 유고시집 보존했던 정병욱 가옥(3) 2017-01-25 0 4619
2000 [자료] - 윤동주 유고시집 보존했던 정병욱 가옥(2) 2017-01-25 0 3892
1999 저항시인, 아동문학가 윤동주 재조명되다... 2017-01-25 0 3578
1998 [자료] - 윤동주 유고시집 보존했던 정병욱 가옥 2017-01-25 0 4468
1997 [자료] - 윤동주 하숙집 옛터 2017-01-24 0 3319
1996 [쟁명] - 윤동주 리해조명돕기 2017-01-24 0 5449
1995 [쟁명] - 서로서로 교류의 장을 열자(2)... 2017-01-24 0 4358
1994 [쟁명] - 서로서로 교류의 장을 열자... 2017-01-24 0 5142
1993 [쟁명] - 불멸의 영원 - "윤동주 현상"... 2017-01-24 0 3399
1992 [쟁명] - 윤동주 한민족 시인... 2017-01-24 0 3681
1991 [쟁명] - 윤동주 조선족 是是非非... 2017-01-24 0 3244
1990 [쟁명] - 윤동주의 조선족 시인설... 2017-01-24 0 3388
1989 정지용과 윤동주 2017-01-22 0 3712
1988 윤동주 탄생 100주년 계기로 "동주"를 재다시 바로알기 2017-01-22 0 3520
1987 현대시의 아버지, 민족과 우리 말 수호자 - 정지용시인 2017-01-22 0 4622
1986 "윤동주 연구가" ㅡ 오무라 마스오 日本人 학자 2017-01-22 0 3511
1985 윤동주 탄생 100주년에 붙여... 2017-01-22 0 4040
1984 암울한 시대에 묵묵히 위대한 문학을 이루어낸 시인 윤동주 2017-01-22 0 4005
1983 그 언제나 늙지 않는 그 이름 "동주" 2017-01-22 0 3464
1982 "윤동주시인은 결코 죽지 않았다..." 2017-01-22 0 3805
1981 영원한 청년 - 윤동주시인 2017-01-21 0 3489
1980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 2017-01-09 0 3701
1979 불러도 대답없을, 헛되나마 다시 부르고싶은 동주! 몽규!... 2017-01-09 0 4386
1978 윤동주 시집 제목을 워낙 "병원"이라 붙일가 했단다... 2017-01-09 0 5791
1977 "서정시 동서고금 속마음 모두 하나" 2017-01-08 0 3845
1976 시인은 시대와 력사의 고통을 노래해야... 2017-01-06 0 3712
1975 대가, 천재, 명인, 그리고 病이 명작 만들다... 2017-01-06 0 3920
1974 리투아니아 음유시인 - 마이로니스 2017-01-02 0 3865
1973 칠레 시인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2017-01-02 0 4043
1972 이탈리아 시인 - 단눈치오 2017-01-02 0 6083
1971 영국 시인 - 에디스 싯웰, o. 싯웰, s. 싯웰 2017-01-01 0 5007
1970 "반디불" 저자 조룡남 원로시인 "반디불나라"로 가다... 2016-12-27 0 3742
1969 독일 시인 - 베르톨트 브레히트 2016-12-27 0 5367
1968 몽골 시인 - 째.바트바타르 2016-12-26 0 3857
1967 대통령, 총통, 그리고 시인 2016-12-26 0 4399
1966 뿌리는 중국, 줄기는 대만, 가지와 잎은 미국 2016-12-25 1 4987
1965 "중국의 솔제니친" - 北島 시인 2016-12-25 0 3837
1964 중국 가장 전위적인 예술가 - 최건(음유시인) 2016-12-25 0 4419
‹처음  이전 3 4 5 6 7 8 9 10 11 12 1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