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최승호 - 대설주의보
2016년 05월 01일 18시 52분  조회:4412  추천:0  작성자: 죽림

대설주의보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1983년>

 

  

 

▲ 일러스트 / 권신아


눈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이 있는가 하면, 쌀랑쌀랑 푹푹 날리는 백석의 눈이 있다. 기침을 하자며 촉구하는 김수영의 살아있는 눈도 있고, 희다고만 할 수 없는 김춘수의 검은 눈도 있다. 괜, 찮, 타, 괜, 찮, 타, 내리는 서정주의 눈도 있고, 갑작스런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도 있다.

그리고 여기 '백색계엄령'처럼 내리는 최승호(54) 시인의 눈이 있다. 1980년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념의 시대였고 폭압의 시대였다. 그는 '상황 판단'이라는 시에서 '굵직한/ 의무의/ 간섭의/ 통제의/ 밧줄에 끌려다니는 무거운 발걸음./ 기차가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터널 속처럼 불안한 시대'라고 일컬었다. 그의 시는 선명하고 섬뜩하게 '그려진다'. '관(觀)'과 '찰(察)'을 시 정신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현실을 '보면서 드러내고', 자본주의와 도시문명을 '살피면서 사유한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골짜기에 눈은, 굵게 힘차게 그치지 않을 듯 다투어 몰려온다. 눈보라의 군단이다. 도시와 거리에는 투석이 날리고 총성이 울렸으리라. 눈은 비명과 함성을 빨아들이고 침묵을 선포했으리라. 백색의 계엄령이다. 쉴 새 없이 내림으로써 은폐하는 백색의 폭력, 어떠한 색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공포! 그 '백색의 감옥'에는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꺼칠한 굴뚝새'가 있고, 굴뚝새를 덮쳐버릴 듯 '눈보라 군단'이 몰려오고, 그 군단 뒤로는 '부리부리한 솔개'가 도사리고 있다. 분쟁과 투쟁, 공권력 투입, 계엄령으로 점철됐던 시대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골짜기에 굵은 눈발이 휘몰아칠 때 그 눈발을 향해 날아가는 굴뚝새가 있었던가. 덤벼드는 눈발에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췄던가. 꺼칠한 굴뚝새의 영혼아, 살아있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네 노랫소리를 들려다오! 다시 날 수 있다면 짧지만 따뜻한 네 날개를 펼쳐 보여다오! [정끝별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63 민족과 현대시 2015-06-12 0 3799
562 시적 자기 희생 2015-06-12 0 4102
561 시의 정신 2015-06-12 0 3872
560 자유시의 정착 2015-06-12 0 4099
559 전통시가 형식의 붕괴 2015-06-12 0 4650
558 한국의 현대시 2015-06-12 0 4048
557 천재 시인 - 李箱 김해경 2015-06-08 0 4321
556 <시장> 시모음 2015-06-08 0 4191
555 <6월> 시모음 2015-06-08 0 4695
554 담배는 웬 담배ㅠ? 2015-06-05 0 4234
553 詩 - 칼 . 맑스 = 칼 . 마르크스 = 칼 . ' 막 '쓰 2015-06-04 0 5326
552 <서울> 시모음 2015-06-04 0 4736
551 한설 시넋두리 2015-06-02 0 4100
550 <<막걸리 시>> 노벨문학상 ???... 2015-06-02 0 4745
549 연변 동시 한바구니 2015-06-02 0 4496
548 동시와 한석윤 2015-06-02 0 3867
547 동시인 한석윤 시비 2015-06-02 0 5662
546 김광섭 시인을 아시나ㅠ? 2015-06-01 0 4526
545 성북동 비둘기 2015-06-01 0 5084
544 상상력과 詩 2015-05-31 0 4496
543 시인 -리호원 2015-05-31 0 4273
542 석화 / 시창작 강의록 2015-05-21 0 6536
541 최룡관 동시론 4 2015-05-20 0 4725
540 최룡관 동시론 3 2015-05-20 0 4422
539 최룡관 동시론 2 2015-05-20 1 4826
538 최룡관 동시론 1 2015-05-20 0 4795
537 이승훈 시론 5 2015-05-20 0 4115
536 이승훈 시론 4 2015-05-20 0 4450
535 이승훈 시론 3 2015-05-20 0 4563
534 이승훈 시론 2 2015-05-20 0 4473
533 이승훈 시론 1 2015-05-20 0 4546
532 시쓰기에서 의성어, 의태어 활용법 2015-05-20 0 5311
531 시쓰기에서 이미지에 대하여 2015-05-20 0 5702
530 여러 빛깔의 동시 알아보기 2015-05-20 0 5187
529 윤삼현 시창작론 2015-05-20 0 5444
528 문삼석 동시론 2015-05-20 0 4592
527 우리 민족의 정형시 - 시조 쓰는 방법 2015-05-20 0 5376
526 유명한 동시 모음 (클릭해 보세ㅛ@@) 2015-05-20 0 8785
525 동시 작법 모음(클릭해 보기) 2015-05-20 1 5271
524 영상시 모음 2015-05-20 0 5731
‹처음  이전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