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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광고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다...
2016년 06월 23일 20시 57분  조회:3924  추천:0  작성자: 죽림

[11강] 삶의 체험으로부터 길어올린 미학 


강사/나 호열 

도종환의 시세계 

봄이 오는 듯 싶더니, 아카시아 하얀 꽃들이 여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온다'고 읊었던 어느 시인의 목소리가 그리웠던 지난 겨울과 봄은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간을 시를 읽으며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씀드리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읽은 시집은 도종환 시인의 『부드러운 직선』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직선』은 1998년 7월에 창작과 비평사 창비시선 177로 발간된 도종환 시인의 시집입니다. 

1954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북대 국어교육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4년에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85년에 시집『고두미 마을에서』를 발간하였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었고, 1986년에 시집『접시꽃 당신』을 펴내면서 세인들에게 도종환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 『지금 비록 너의 곁을 떠나지만』(1989),『당신은 누구십니까』(1993)등의 시집을 발간하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전개해온 바 있습니다. 

도종환 시인은 전교조 활동으로 말미암아 오랜 기간을 교단을 떠나야 했고, 제가 알기로는 지금은 다시 교사로 복직되어 충북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찍이 도종환 시인은 우리나라의 분단현실을 직시하고, 그 아픔이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껴안고 뒹굴어야할 것임을 시를 통해서 알리고자 노력한 시인이었습니다. 앞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도종환이라는 이름은 『접시꽃 당신』을 통해서였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이별,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처절한 극복과정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도 시인의 시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누구나 한 번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생노병사, 희노애락의 분기점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시의 대중화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여집니다. 

이른바 <운동시>, 또는 <참여시>라 불리는 현실 모순에 대한 비판과 지사적 토로에 있어서 도 시인이 거두어들인 성과가 얼마만큼인가는 조금 더 시간이 경과해야 할 것 입니다만, 도 시인에게 우리가 배워야할 점은 자신이 처한 현실과 자신의 인생관 내지 철학에서 비롯되는 삶과 자신과의 힘겨루기에서 한걸음도 비켜서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인식 범위내에 포착된 현실 상황을 시로서 직정적으로 그려내려 하였다는 점이 시인으로서 도종환의 미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자신이 쓴 글을 통해서 위로와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돌보는 자위행위일 것입니다. 이 강좌를 보고 계신 여러분이나 저나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삶의 고단함, 외로움, 불행함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어하고, 위로의 따듯한 손길을 기다리는 것은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시를 쓰는 마음은 이렇게 자신이 자신을 돌보는 행위, 자신을 스스로 따뜻하게 하려는 몸짓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의 원천은 삶의 체험입니다. 삶의 체험은 시인에게 반성과 비판 그리고 각성을 요구합니다. 체험으로부터 빚어지는 것은 비단 비판과 각성 뿐만은 아닙니다. 그러한 비판과 각성을 넘어서서 있는 그 무엇,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그 세계를 기웃거리는 경지가 바로 훌륭한 시와 그렇지 못한 시의 경계선입니다. 시가 아니더라도 삶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일러주는 동서고금의 경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고전이나 수상록들이 아닌 시를 쓰고 읽는 이유는 작품을 통해서 미(학)적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학)이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잠깐 美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합시다 
미학 Aesthetics는 18세기 중엽 서구의 라이프니쯔-볼프 Leibniz-Wolff 학파의 알렉산더 고토리프 바움가르텐 Alexander Gottolieb Baumgarten(1714- 1762)의 『Aesthetica』에 그 근원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그리스어로 감각을 의미하는 '아이스테에시스'란 말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Logica가 고급인식능력에 의해 파악되는 노에티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임에 반해서 Aesthetica는 저급 인식능력에 의하여 파악되는 '아이스테타'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감성적인 인식의 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미학을 독자적인 학문으로 성격을 부여한 사람은 관념철학을 집대성한 칸트Kant입니다 

동양에서는 1867년 일본의 계몽주의자 西周 - 이 사람은 phiosophy를 哲學이라는 용어로 사용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가 '善美學'으로 번역 소개 하였으며 이는 孔子가 말한 盡善盡美를 염두에 두고 명명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대 미학의 대상영역은 예술 및 자연의 미적 현상을 포괄하며, 이에 관한 직접적인 관찰과 다양한 성찰, 쉽게 말하여 미적인 것 일반에 관한 학문, 예술과 자연에서의 미적 현상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미적 체험, 미적 대상, 미적 범주, 미적 가치, 예술체계, 예술기능, 예술사, 예술비평 등에 관한 제반 문제를 논구하는 가운데 미적 혹은 예술적 현상의 원리를 정립하고 그 본질을 추구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미학을 언급하는 이유는 모든 예술작품에는 반드시 미(학)적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그 미적 요소는 창작자의 인격의 완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뜻에서 입니다. 
今道友信 
미는 인간의 감각기능에 의한 감성적 인식의 상관자임과 동시에 초감각적이기도 한 것, 즉 가시적, 가청적인 것으로서의 미 뿐만 아니라 비가시적, 비가청적인 미 - 단순한 감각적인 미를 초월한 인간의 행위나 정신상태, 덕의 미 등과 같은 인격적, 정신적 미 등의 현상도 존재하므로 미의 문제를 단순히 감정적인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에 미를 존재라고 볼 때, 미에 관한 학으로서의 미학은 존재로서의 존재 해명을 위한 존재론적 미학이 되고, 미를 존재의 현상으로 볼 때의 미학은 현상적 존재로서의 미의 현상을 해명하기 위한 현상 존재론적인 미학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 繪事後素(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만든 뒤에 한다)의 정신 
회사후소는 공자가 그의 제자 子夏의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 내용입니다. 질문은 이러합니다.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이쁘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의 선명함이여,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 는 것은 무슨 뜻 입니까?" 
회사후소는, 즉 아름다운 자질을 갖춘 후에 문식(치장)을 더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고, 외면적 미적 형식은 내면적 수양을 거친후에야 가능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 充實之謂美(충실함을 일러 미라고 한다) 
孟子는 본성의 욕구대로 하는 것을 착하다 하고, 생득적 착한 것을 몸에 지니는 것을 신실하다 하고, 몸에 지닌 것을 충실케하는 것을 아름답다하고, 충실케하여 광휘가 있는 것을 위대하다 하고 위대하여 남을 감화시키는 것을 성스럽다하고 성스러워 남이 알 수 없는 것을 신령스럽다고 하였습니다. 

* 詩를 통하여 순수한 감정을 일으키고, 禮로서 자신의 주체를 확립하고, 樂을 통하여 자신의인격을 완성한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시는 감흥을 일으킬 수 있고, 상고하여 볼 수 있게 한다. 사람과 사람을 어울릴 수 있게 하며, 은근하게 탓할 수 있게 한다.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나아가서는 군주를 섬기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위에서 간략히 말씀드린 바는 창작자의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미야말로 참된 미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창작자의 인격완성이 어떻게 작품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요? 

* 得手應心(손에 익숙하여 마음에 응하는 것)의 세계 
다음 글은 郭熙라는 사람이 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붓을 놀려 쉽게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만 아는데, 사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쉽지않다는 사실을 모른다. 장자는 "화가가 옷을 벗고 다리를 쭉 뻗고 편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경지야말로 진실로 화가의 법을 터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마음 속을 너그럽고 유쾌하게 하고 뜻이 사리에 맞도록 수양해야 한다. 그러면 이른바 평이하고 바르고 사랑스럽고 신실한 마음이 생긴다, 

이같이 여유있고 침착한 마음이 생기면 곧 사람의 웃고 우는 온갖 모습과 사물의 뾰족함, 기울어짐, 옆으로 누움의 갖가지 모양이 자연히 마음 속에 터득되어서 저절로 표상이 떠올라 화필로 나타난다........ 그렇지 못하면 뜻과 생각이 억압되고 침체되어 한쪽으로만 치우쳐 버리고 말 것이니, 어찌 사물의 실정을 그릴 수 있으며 사람의 생각을 펼칠 수 있겠는가?..... 경계에 이미 익숙해지고 마음과 손이 서로 잘 어우러져야 비로소 자유자재로 법도에 맞고 전후좌우가 근원에 맞게 제대로 그려지게 된다. 

* 大巧若拙(큰 기교는 졸렬한 것과 같다)의 정신 
노자도덕경 45장에 나오는 윗 글은 인위적인 기교와 의식을 떨쳐버리고 재물이나 명예등의 外物에 전혀 지배를 받지 않는 최고의 경지인 무의식 상태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완벽한 기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莊子는 정신수양의 방편으로서 技 숙련의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인위적인 것을 가미하면서도 사물의 본성에 적합한, 사물의 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기교의 운용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 莊子 : 養生主 : 抱丁 포정이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짓누르고 무릎을 구부리는 동작에 따라 칼을 놀림에 소의 뼈와 살이 갈라지면서 내는 소리가 모두 음율에 맞고, 은나라 탕왕 때의 명곡인 상림(桑林)의 무악과 조화되며, 요임금 대의 명곡인 경수(經首)의 음절에도 맞는다. 
문혜군은 감탄하면서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하면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포정은 칼을 내려놓으며 말하였다."이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신은 기술을 넘어서 도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신이 처음으로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여 어디에 어떻게 칼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겨우 소가 하나의 작은 덩어리로 손에 잡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소가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각과 지각이 멈추어진 채 정신이 행하고자 하는 대로 따를 따름입니다. 천리를 좇아 소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의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래서 아직 한 번도 칼놀림의 잘못으로 티끌만큼도 살이나 뼈를 다친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저의 칼은 십 구 년이나 되었고 수 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이 움직이는데도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근육과 뼈가 엉킨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그 일의 어려움을 알고 충분히 경계하여 눈길을 거기에 모으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 살이 뼈에서 털썩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으면, 칼을 든 채 일어서서 둘레를 살펴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득의만면한 채 한없는 즐거움을 맛보면서 칼을 씻어 챙겨 넣습니다. 

위의 글들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창작자의 인격의 완성이 미의식의 근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위적이고, 감각적인 작품들이 유용성이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모든 작품은 그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반응을 요구하며, 그 반응은 각양각색일 수 밖에 없으며 그 반응은 반성 또는 각성, 비판적 사색으로 전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 강좌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또는 좋은 시는 어떤 것일까? 하는 점에 주목하고 계십니다. 
강좌의 첫 머리에 저는 도종환의 시를 통해서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시인이 체험한 세계 
2.시인의 체험으로부터 빚어진 사색의 결과에 대한 정서적 공감 
3.정서로부터 빚어지는 미의식의 발로 
이 세 가지가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합니다. 이 세가지의 통로는 시인과 작품 그리고 독자를 하나로 묶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소설은 사건을 통해서,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저자의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전달합니다. 그런데 한 편의 시를 읽을 때 시를 만들어가는 話者는 시인 자신일수도, 가공의 인물일수도 있을 것이며 시에 나타나는 정경도 가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인이나 독자는 시에 나타난 화자나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제, 『부드러운 직선』의 시들을 분석해 보기로 합시다. 

(1) 화자가 "나"로 드러난 경우 

봄 

아무도 들꽃이 겨우내 비겁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도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나 같은 사람도 앞장서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를 살았다 우리들은 
힘은 없지만 비겁하지 않으려 했다 
아직도 크게 달라질 것 없어 
마음 허전하기 이를 데 없지만 

나 같이 허약한 사람도 쫓기며 끌려가며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위해 싸웠다고 
그 생각을 하며 이 저녁 자신을 위로한다 
꽃샘바람에도 순이 터 올라오는 나뭇가지가 보인다 
산천에 봄소식이 오고 강물이 풀려도 
내가 아직 불법이란 딱지에 묶여 있는 게 가슴 아프다 
젊은 날을 다 바쳐 싸우고 돌아보는 이 저녁에 

이 시의 모티브는 이른 봄, 아무 것도 다시 돋아오를 것 같지 않고 죽어서 더 이상 잎을 낼 것 같지 않던 나무에 푸르름이 솟는 광경을 통해서 드러나는 심상입니다. 

내가 아직 불법이란 딱지에 묶여있는 게 가슴 아프다 

평범한 시인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시대는 과거 속에 존재하며 그 투쟁은 인간으로서 비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화자는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복권되지 않은 상태를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 시는 어떤 상태를 드러내고 화자의 심정을 드러내지만 더 이상의 이미지의 발산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시의 후반부에서 이른 봄의 소재성이 부각되고 있기는 하지만 4행의 시대, 나같은, 희망, 젊은 날을 다 바쳐 싸우고 
등등의 어휘로부터 독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는 듯 싶습니다. 

『부드러운 직선』의 첫 번 째 시 「길」도 위와 같은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화자의 체험은 이 시대를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 지에 대한 진지성과 투쟁성을 지니고 있지만 화자의 의도가 너무 확연히 드러나면 날수록 오히려 독자들은 그 의도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시 읽기는 發憤이 아니라 정서의 기묘한 가라앉음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를 쓸 때 1)주제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그 주제에 알맞는 소재를 찾아서 창작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2)어떤 아름다운 풍경이나 感想에서 야기되는 시 쓰기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한 편의 시에서 주제와 소재를 명확하게 판명해 내기란 그렇게 쉬운 작업이 아니고 굳이 그런 식으로 시를 짓거나 읽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만, 시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인은 분명 일반인보다 다양하고 특이한 체험을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고, 일반인들보다 깊은 통찰의 눈으로 사물과 사건을 해석하는 감각과 예지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해 본다면 시인의 세계와 인간, 자연에 대한 인식과 주관적인 태도가 시의 소재를 다양하게 다룰 수 있는 기법을 생성시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습작을 하는 분들의 어려움은 소재로부터 감흥을 이끌어내고 그 감흥을 시로 옮기려 하는 수동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꽃이 핀다. 비가 온다. 안개가 끼었다. 바람이 분다. 등등의 자연적, 외적인 조건이 나에게 다가올 때 시적 반응을 하거나 사랑을 하거나 이별을 하거나 등등의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사건이 자극적으로 반사될 때 시작에의 욕구를 느낀다는 점입니다. 

대상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으면 시작에의 욕구는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시인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주관적이면서도 독자에게 교훈이 될 수 있는 인생관과 철학이 확립되어 있어 소재를 자유자재로 취사선택할 수 있고 시에 녹여낼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소재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꽃' 자체에 대하여 시를 쓰려고 하면 할수록 '꽃'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제한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전개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소재는 연극에서의 무대장치와 같은 것입니다. 

몇몇의 시인- 도종환 시인도 포함되지만-을 제외하고는 극적인 삶의 체험을 가진 시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發話者로서의 시인은 작품에 나타난 세계에 대해서 일정부분 책임을 가져야할 뿐 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반영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부분이 다른 예술 장르와 변별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운동의 추억 

추억으로 운동을 이야기하는 사람 많다 
운동한 기간보다 
운동을 이야기하는 기간이 더 긴 사람이 있다 
몸으로 부닥친 시간보다 
말로 풀어놓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운동 
현재가 없는 운동을 현재로 끌어오는 
그들의 공허함 

위의 시는 한 시대가 끝난 후 태평성대(?)에 와서 투사연하는 위선에 가득찬 사람들을 쓸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슬픔이 배어 있습니다. 옆으로 비껴가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전방에서 총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구국과 민족을 이야기하는 현실을 짚어내는데 이 시 또한 너무도 충실하게 사실을 사실답게 표현하므로서 독자로 하여금 시적 감흥을 제한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기억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의 체험, 사실의 전달에 주안점을 둘 때 시의 완성도를 현저하게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2) 사실적 체험에서 사색의 경지로 나아감 

지난 사월은 잔인하였습니다. 나라의 곳곳에서 산불이 일어나서 아까운 삼림이 폐허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실로 엄청난 국력의 손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강원도 고성지역은 계속해서 산불의 피해를 입어 다른 지역보다 더 큰 피해가 있었다고 합니다. 소방장비를 완비해야 한다!. 산불예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들끓었었습니다. 산불이 나서는 안됩니다. 아까운 인명과 삼림이 파괴되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미국이나 호주 같은 큰 나라에서도 산불이 자주 일어난다고 들었습니다. 삼림의 면적이 넓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국에서는 자연발생적이고 인적인 피해를 주지 않으면 산불을 그대로 방치(?)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에 대한 찬반 양론이 비등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200년에 한 번 꼴로 산불이 일어나서 생태계를 새롭게 구성한다는 학설이 설득력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00년에 한 번 큰 불이 난다는 사실은 우리의 감각적 체험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중국대륙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온갖 오염물질을 옮기기도 하지만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 또한 그렇지요. 

폐허 이후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며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한 편의 시를 짓는데 있어서 사실적 표현(체험)은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모든 시구가 시적 표현(비유)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실적 진술이 시적 진술보다 훨씬 많습니다. 위의 시는 자연의 재생성을 사실적으로 진술합니다. 그런데 중간 부분의 3행은 사실적 진술이 아니라 체험을 넘어서서, 체험을 꿰뚫은 진실입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언명은 나에게 주어진 자연적 현상을 투시해서 얻어낸 결과입니다. 

(3) 의인법을 활용하라 

시인들이 소재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모든 대상,-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사건이든간에 -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나와 동일한 인격으로 구름과 달, 별과 바람을 대한다는 것이고 그것들이 전해주는 말들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직선』의 시편 중에서 뛰어난 작품들은 주로 2 부, 3부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그 부분들은 나무와 꽃들을 의인화하여 삶의 체험과 등치시킨데 있습니다. 
「복숭아 나무」,「가죽나무」, 「숲」,「겨울나무」등의 시편은 소재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매우 섬세하게 관찰하고 의인화해서 이루어낸 삶의 진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죽나무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히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짝을 
잘라 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기 때문이다 

가죽나무는 장자에도 나오는, 쓸모없어 베일 염려 없이 오래 사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그런 가죽나무를 화자 자신으로 삼고 가죽나무가 말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아주 작지만 소중하고, 힘 없지만 더 힘 없는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민중들의 삶을 의인화하므로서 앞의 시들에서 보이는 지사적 토로보다 더 강력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들은 소재에 대한 면밀한 관찰 없이는 지어낼 수 없습니다. 의인법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관찰의 극대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물의 관찰만으로 이루어진 시를 하나 읽어 볼까요 


잎차례 

하늬바람에 모과나무잎이 올라오는 걸 보니 
이파리 하나 내는 데도 순서가 있다 
해 뜨는 쪽으로 하나 내보내면 
해 지는 쪽으로도 하나를 내고 
그 사이에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잎 하나를 꽃 세워둔다 
좌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꼭 그렇게 잎을 낸다 

밤나무나 동백나무도 오른쪽에서 잎이 나면 
다음에는 왼쪽에서 잎이 돋는다 
마주나는 건 마주나고 돌려나는 건 꼭 돌려난다 
하찮은 들풀이나 산기슭 작은 꽃들도 
꽃잎이 다섯 개인 건 꼭 다섯 개만 내고 
여덟 개인건 여덟 개만 낸다 
냉이나 민들레나 우리가 보기엔 그저 
이무렇게나 피어있는 들꽃도 
저희끼린 다 정교한 질서를 따르고 
생명의 사소한 일 하나를 끌어가는 데도 
반드시 지킬 줄 아는 차례가 있다 
이파리 하나에도 

이 시에서 시인의 주관적인 주장은 마지막 3행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습니다. 사실적 관찰만으로도 얼마나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어렵거나 장식적인 어휘 또한 눈에 띠지 않습니다. 매우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진술을 통해서 자연의 보이지 않는, 하잘 것 없는 것들의 질서지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우리 주위를 잘 살펴보면 시로서 형상화할 수 있는 진실과 생명현상이 곳곳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시적 감수성이라고 하는 것은 세밀한 관찰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감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4) 훌륭한 시는 체험 자체가 특수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체험 속에서 특수성을 찾는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분명히 보통 사람들이 겪을 수 없었던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체험들이 도 시인을 시인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시가 신념을 강화하고 실천력을 드높이는 역할을 했다는데 주목을 해야 합니다. 繪事後素의 정신은 시인 자신의 인격수양과 행동양식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인은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詩作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을 벼려내고 자신의 시작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시세계(현실세계)에 동화될 것을 권유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美的 세계에 인도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시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언어는 물감이나 음률과는 또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상 이야기하는 의미의 애매성을 보다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의미를 드러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의미를 감추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소재가 가지고 있는 의미망이 작고 단순할수록 詩作은 쉽게 진행됩니다. 그런데 길, 희망, 운동과 같이 의미망이 넓은 언어를 소재로 다루게 될 때에는 그 소재를 형상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길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의미로부터 시인은 몇 개 또는 단 하나의 의미를 선택하지 않을 수 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난점을 갖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한 편의 시를 통해서 독자들은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를 찾아내고자 하면서도 자신만의 영역으로 그 의미를 끌고 들어가서 자신만의 세계로 구축하고자하는 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시에 있어서 의미의 드러남과 감춤의 경계 설정은 매우 어렵다고 보여 집니다. 드러남과 감춤은 의도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기지고 있는 타성,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다른 단어와 충돌할 때 빚어지는 또 다른 이미지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적 대상에 대한 관찰은 시를 쓰는데 필수불가결한 첫 번 째 관문입니다. 

(5) 연상(聯想)의 사용을 생활화하라 

이미 지난 번 강의에서 연상의 법칙이 우리의 사유를 성립케 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관찰의 방법으로서 연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화사하게 꽃이 피어 있고, 무엇인가 그 꽃으로부터 빚어지는 감정의 움직임이 있다면 꽃으로부터 파생되는 이미지들을 낱말잇기식으로 전개시켜 봅니다. 꽃 - 푸름 - 하늘 - 편지 ....... 이와 같은 식으로 연결되어지는 이미지들을 정리해 보면 내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느낌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옴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등잔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으름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하랴 
욕심으로 타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 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요즈음은 전기 공급이 잘 되어서 두메산골에도 형광등 불빛이 환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등잔불은 우리의 밤을 지키는 소중한 존재였지요. 등잔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갑자기 불이 나갈 때, 제사때 쓰는 촛불을 생각해도 되겠지요 
위의 시는 등잔을 소재로 화자의 생각을 펼쳐 나갑니다 
1연은 등잔의 심지를 내리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입니다. 심지가 많이 올라와 있으면 그으름이 생기고 연기 때문에 눈이 따갑지요 
2연은 등잔의 속성에 대한 관찰입니다 
3연은 그 등잔이 나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는 상징적 존재로 그려집니다. 

등잔의 심지를 내리는 행위 - 등잔의 속성 - 내 마음 속의 등잔 - 따뜻한 마음의 빛 

우연히 시인은 등잔불을 바라봅니다. 심지가 많이 올려진 탓에 그으름이 생깁니다. 그래서 심지를 내립니다. 등잔을 가만히 보니 등잔 기름을 담는 종지가 작습니다. 방안 하나를 비추는 등잔 하나가 밤을 지탱할 때까지의 용량. 그런 등잔이 내 마음 속에 존재 합니다. 은은한 빛으로 법구경 한권 읽을만큼의 마음의 빛을 냅니다. 
이 시는 욕망의 덧없음을 눈 제대로 뜰 수 없음, 심지만 못 쓰게 됨, 소나무 등잔대를 쓰러뜨림, 창호지와 문설주를 태움과도 같은 사실로 빗대면서 節欲의 상태를 감동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시는 등잔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우리네 인생사와 대입시켜 나가면서 평화로운 상태의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심지를 조금 내리는 사태에 대한 시인의 해석, 등잔불이 밝혀주고 있는 공간의 좁음에 대한 인식, 좁은 내 마음에 존재하는 등불에 대한 느낌들을 배열하므로서 등잔이 주는 여성적이고 수동적인 상징들을 평화로움으로 바꾸는 신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시에 드러나는 바와 같이 특수한 경험은 일상사에서 내버려지는 수많은 사태에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는 관찰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한 편의 시를 더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산맥과 파도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답다 
능선에 눈발 뿌려 얼어붙을수록 
산은 더욱 꼿꼿하게 아름답다 
눈보라 치는 날들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놓은 
외설악의 전 산맥 보이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그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놓았는가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세찬 바람 등 몰아칠수록 
파도는 더욱 힘차게 소멸한다 
보이는가 파도치는 날들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바꾸어놓은 겨울 동해바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 놓았는가 

2 연 對句 형식으로 구성된 위의 시는 잘 짜여진 구도 때문에 시적인 감동이 감소되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습작을 하는 분들께는 시작법의 전형을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시인은 겨울여행을 떠납니다. 인제를 거쳐 한계령을 넘으며 설악 준봉을 보고 동해 바다로 갑니다. 눈이 덮힌 산은 웅장함, 비장함, 올곧음, 부동성을 상징하고, 파도는 역동성, 깨어짐,도전, 허망함을 상징합니다. 산은 정(靜)의 상징이고 파도는 동(動)의 상징입니다. 겨울은 또 무엇입니까? 모든 사물이 생명력을 버린 허망한 시간이면서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절망이면서 희망인 겨울, 그래서 예로부터 동지가 지나면 봄의 기운이 일어나는 것으로 선인들은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요. 

1 연에서는 눈 덮힌 설악산을 한 장의 사진으로 고정시켜 놓고 멀리서 바라보며 느끼는 비장한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2 연에서는 허망하게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의 모습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묘사하므로서 시의 활력을 더해 줍니다. 이 시가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시를 읽는 재미는 반감되어 질 것입니다. 이 시는 화자가 독자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대상에게 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구비치는 산맥과 끊임없이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는 험난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자신이며 바로 당신입니다. 그대(들이)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단어는 화자와 독자와의 간격을 좁히고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장치입니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자신을 정화하고 부단한 각성을 스스로에게 요구합니다. 독자는 시를 통하여 시와 더불어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창조적 인간은 주어진 세계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져 있는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바꾸려는 꿈과 희망을 가진 존재입니다. 세계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실을 드러내고, 공유하는 일과 함께 아름다움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이제 이번 강의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부드러운 직선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 
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몇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 
나는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휘어지지 않은 정신들이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잡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것을 본다 
사철 푸른 홍송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 
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 
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이 시도 시인이 어는 절집 처마를 보며 허공을 부드럽게 감싸안은 모습을 보면서 모나지 않게 사는 것이 정도라는 것을 깨우칩니다. 그러나 이 시의 미덕은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곡선을 이루고 있는 지붕 밑에 올곧은 기둥들을 상기해 내는데 있습니다. 外柔內剛의 정신은 안으로는 자신을 준엄하게 다듬고 밖으로는 약자를 포용하고 어루만질 줄 아는 삶의 예지를 표현하는데에서 이 시의 참맛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반성적 사색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형식미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 강의 모두에 盡善盡美의 정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에 절실한 것 그러면서도 독자들에게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체험을 통하고 난 후에야 시에서 갖추어야할 형식 (비유)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 정리 * 

1. 시는 정보의 전달 수단이 아니다. (정서의 전이) 
2. 자신의 느낌과 이야기할 내용을 정리한다. 
3. 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소재를 발굴한다. 
4. 시의 얼개를 구상한다. 
5. 적절한 비유를 통하여 자신의 전달 내용을 이미지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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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 부손 이후의(1718~1829) 시인들 / 시인 최윤희 

 

 

 

 

오시마 료타  大島蓼太  (1718~1787)

 

쫒겨 다니다 달 속에 숨어 버린 반딧불이
저 뻐꾸기 올여름 한 곡조만 부르기로 결심했구나
아주 말 없이 손님과 집주인과 하얀 국화와
외로워라 병든 아이들 위한 반딧불이 통
내 그림자 벽에 스미는 밤 귀뚜라미 소리
깊어 가는 밤 숯을 가지고 숯을 부수는 소리
등불을 보면 바람이 분다 눈 내리는 밤
나비여 걸식하는 꿈 아름다워라

 

 

가와카미 후하쿠 川上不白  (1719~1807)

 

고요함 속 꽃도 건드리지 않는 종소리

 

 

오토모노 오에마루  大伴大江丸  (1722~1805)

 

못자리에 작은 뱀 건너가는 저녁 햇빛
잡으러 오는 이에게 불빛을 비춰 주는 반딧불이

 

 

구로야나기 쇼하  黒柳召波  (1727~1771)

 

살아서 세상에 잠을 깨니 기뻐라 늦가을 찬비
괴로운 일을 해파리에게 이야기하는 해삼
초겨을 하늘에 불려 가는 거미줄
꽃 묵직하게 싸리나무에 물 흐르는 들판 끝
수레 소리에 잠 깨어 떠나가는 풀잎의 나비

 

 

요시와케 다이로 吉分大魯  (?~1778)

 

여름풀이여 꽃을 피운 것들의 애틋함이여
모란꽃 꺾어 아버지 화내신 일 그리워라
등잔불에 언 붓을 태운다
내가 짊어진 죄는 아내와 자식을 모기가 물어뜯는 것

 

 

미우라 조라  三浦樗良 (1729~1780)

 

나팔꽃 이슬도 엎지르지 않고 나란히 피었네
나팔꽃에부터 불기 시작하는 가을바람
휘파람새 운다 어제 이맘때 바로 그 시간
밤은 기쁘고 낮은 고요하여라 봄비 내리고

 

 

가토 교타이  加藤曉台  (1732~1792)

 

마음만큼 움직이는 것 없는 저무는 봄
나를 위해 불 늦게 켜 주시게 저무는 봄날
바람 묵직하고 사람 달콤해지는 봄날은 가네
아지랑이 속 모든 것들 바람의 빛
불을 밝히면 매화 꽃잎 뒷면이 비쳐 보여라

 

 

에노모토 세이후 榎本星布  (1732~1815)

 

가는 봄이여 쑥 속에 누워 있는 사람의 해골
흩어지는 꽃 아래 아름다운 해골

 

 

우에다 아키나리  上田秋成  (1734~1809)

 

산 씻는 비 그러나 색깔 없는 가을의 물
벚꽃잎들 떨어져 미인의 꿈속에 든다

 

 

다카이 기토  高井几董  (1741~1789)

 

뒤쪽으로 잔물고기 흘러가는 맑은 물이여
다 보여 준 봄의 모퉁이에서 늦게 핀 벚꽃
인쇄물 위에 문진 눌러놓은 가게 봄바람 불고
등 켜지지 않고 봄을 아쉬워하네
호수의 물 기울여 얻은 쓰는 모내기
아름다워라 보이는 것마다에 봄은 지나고
짧은 밤 게의 껍질에 부는 아침 바람
초겨울 찬 바람과 겨루는 듯 들리는 종소리여라

 

 

나쓰메 세이비 夏目成美  (1749~1817)

 

다리 벌리고 힘껏 잡아당겼는데 뿌리 작은 무
패랭이꽃 마디마디 비치는 저녁 햇살
비가 내리면 사람을 곧잘 닮은 허수아비여

 

 

엔도 아쓰진  遠藤日人  (1757~1836)

 

세상을 나무 아래 둔 벚꽃이어라

 

 

후지모리 소바쿠  藤森素檗  (1758~1821)

 

내리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의 눈의 고요함
해마다 벚꽃 적게 피는 고향이어라
문 열고 찻잎 버리려 가는데 눈보라
저 달에 배우는 달구경이어라
바라본 만큼 꽃들이 짐이 되는 날들이어라

 

 

료칸  良寬  (1758~1831)

 

숨 막히는 초록 속 목련꽃 활짝 피었네
탁발 그릇에 내일 먹을 쌀 있다 저녁 바람 시원하고
제비붓꽃 내 오두막 옆에서 나를 취하게 해
불 피울 만큼은 바람이 낙엽을 가져다주네
쓰러지면 쓰러지는 대로 마당의 풀
아이들 떠들어 잡을 수 없는 첫 반딧불이
오늘 오지 않으면 내일은 져 버렸겠지 매화꽃
도둑이 남겨 두고 갔구나 창에 걸린 달
지는 벚꽃 남은 벚꽃도 지는 벚꽃
뒤를 보여 주고 앞을 보여 주며 떨어지는 잎
기왕이면 꽃 아래서 하룻밤 잠들어라

 

 

사카이 호이쓰  酒井抱一  (1761~1829 )

 

꽃잎들이 산을 움직이는 벚꽃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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