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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의 운률미/최균선//방순애시집평론/허인//김금용...
2016년 07월 15일 22시 50분  조회:3980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어의 운률미
 
                                                   최 균 선
 
    시ㅡ 시적대화의 특질을 다음같은 다섯가지로 개괄하고있다.
    첫째, 느낌을 론리적언어로 설명할수 없기에 시에서 비유적어법으로 표술하거나 동화(同化) 또는 투사(投射)적인 어법을 택하는것이다. 둘째로, 이런 어법때문에 사물과 언어의 관계는 외연적이라기보다 내포적으로 쓰이는게 특질이다. 셋째로, 유기적이고 구조적이고 함축적이라는것이다. 넷째로, 간결한 양식을 취한다. 왜냐하면 시란 순간적정서의 발로라는데서 규정되기때문이다. 마지막 특질이지만 시가 시로서의 매력을 가지게 하는 음악성이다. 춤추는 글인 시의 음악성이 시의 매력이다.
    서정시에 해당하는 리릭(Lyric) 이란 용어는 원래 리레(Lyre)라는 악기에서 온것으로서 노래로 불려지기 위한 쟝르임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 특성이 유전되여 산문화된 현대시도 음악적인 성격을 띠도록 류의하게 된것이다. 아래에 박목월의 시 “산도화”에서 우리 말 시의 음악성ㅡ운률미를 흔상해보자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라빛 석산(石山)
 
                           산도화(山桃花)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玉)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이 시는 전통적인 수법으로 기승전결의 형식에 맞추어 2행씩 4련으로 구성하였는데 각 련을 3보격으로 짜놓았을뿐만아니라 각 련마다 음악적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알심들여 특수한 음운들을 선택하고 있음이 감미롭게 느껴진다.
    첫련의 경우, “산은/구강산//보라빛/석산” 인 각 음보의 의미상 초점은 “산(A)-산 (A)-빛갈(B)-산(A) ”이며 이들의 종성은 진동성이 큰 유성자음과 진동이 일어나지 않는 무성자음을 교차적으로 조직하여 유성(A) -(A)-무성(B) –유성(A)식으로 배렬하여 운률미를 고도로 살리고있다. 뿐만아니라 전개에 해당하는 셋째련을 제외하고는 밝고 작은 양성모음을 택하여 나무잎이나 풀잎들이 가볍게 소근대는듯한 인상을 주면서 산, 구강산, 석산, 산도화, 송이, 사슴,씻는다 등 단어들을 간헐적으로 제시하여 봄날의 산속풍경같은 뉴앙스를 형성하도록 유도하고 있어서 더없이 감칠맛을 돋군다.
    줄글에서 이와같이 단락이나 문장의 길이를 비슷하게 나누는 관례는 드물다. 그리고 시에서라도 이처럼 음운을 고려하여 조직하는 례는 김소월, 박목월, 한용운 등 지난세기 우리 민족의 훌륭한 시인들의 붓끝에서만 찾아볼수 있다. 이는 독자들의 읽기, 시간을 고려하고 정서적색채를 한껏 느끼도록 하기 위한 창조적작업이였다.
    하지만 현대시로 접어들면서 이런 리듬적속성은 점점 배제되여 산문화적쩨마와 문체가 류행되고있다. 이와같은 형식미의 변화는 과연 현대독자들의 감각이 리듬이 지니고있는 주술적, 자동적속성을 은연중 거부하고있기때문인가? 현대독자들이 시인이 제시하는대로 시형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각성의 상태에서 자기 나름대로 시를 자률적으로 수용하여 재조합하려는 경향때문인가? 그래서인지 현대파시는 쩨마만 서정적이면 형식이나 기법에서는 산문과 다를배 없는것을 흔히 볼수 있다.
    쉘리의 주장처럼 시인은 비록 비리성적인 상상력에 의지한다고 해도 그 상상력을 통하여 일상세계의 뒤면에 숨어있는 절대관념의 세계와 직접 접촉할수 있다는 가능성과 사색과정을 제공하여야 바람직하다. 쉘리는 시란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이미지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플라톤이 중시했던 리얼리트를 의미하였다.
    한편 쉬끌로브스끼, 야꼽슨 등 형식주의자들도 시적언어란 일상어에“조직적폭력”을 가한 특수한 언어라고 주장하면서도 소리의 층차, 모음조화, 자음다발(多发), 압운, 운률, 률격 등을 외면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류의할 필요가 있다. 시에서 매력적인 시적기능은 파생적언어조합이다. 그만큼 서정적자아의 개방이라해도 지시적이고 설명적인 언어는 독자에게 미감을 주지 못한다고 단언해도 어페가 없을것이다.
    언어는 의미와 음성을 자의적으로 결합시킨 기호이다. 사물의 구체적모습과 의미를 제거해버리고 추상화하여 음성기호로 바꾼게 주지시의 언어이다. 음운의 의미나 사물의 모습을 환원시킴에서 음운과 의미의 관계는 반드시 일치한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상관관계가 있다. 여기서 시의 운률미의 존재리유가 서는것이다. 양성모음은 밝고 명랑하고 깜찍한 느낌을 주며 음성모음은 어둡고 거칠며 큰 느낌을 준다는 우리 말의 특성을 무시하는것은 모든 시의 특성상에서 불가하다는 설명이 된다.
    주정시이든 주지시이든간에 시작품은 “음소→음절→단어→문장→단락”의 층차로 짜여진 의미와 감각적구조물이라 말하고있다. 하여 시에서 내포적어법은 주체와 객체가 상호침투하면서 문맥적의미가 형성되도록 표현해야 한다. 현대파관점에서는 결국 “친숙함”과 “낯설음”의 대비와 차이에서 내포성이 증가된다고 여긴다. 즉 사물성을 상실한 현대언어를 가지고 시인들이 지향하는 새로운 경지에 이르려고 낱말들의 질감과 배경을 왕창 비틀고 감추면서 이미지를 낯설게 하려고 애쓴다.
    례컨대 “길”을 “도로”라고 하면 낯선것은 아니지만 조금 달라보일수 있다. 길이란 아득한 옛날에 만들어진 자연적개념이고 “도로-고속도로” 와같이 현대적개념이기에 인공적이라는 현대문명의 냄새를 풍기는 경우와 같다. 이처럼 현대시에서 창조된 이미지는 구체적사물에서 얻어지는 직접적인 표상이 아니라 언어라는 간접적자극을 통하여 얻어지는 감각현상이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현되고 일정한 지향성을 표백하면서 단순한 감각차원에 머무는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물과 감각을 창조하려는데 몰입하고있다. 이점에서 현대시의 장점이 긍정적이 된다.
    하지만 독자의 시각에서는 사정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언어적인 표상에 대한 리해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독자는 시인이 제시한 언어(시)를 통해 사물의 모습을 떠올리고 인생의 또 다른 정경을 흔상하면서 시인이 의도화하는 관념이나 정서에 도달해야 하는데 시인이 사용한 언어의 의미가 독자리해와 융화되지 못하고 그저 추상적인 언어의 퇴적으로 된다면 그 시는 원초적으로 가치성을 상실하게 된다.
    언어와 시인의 심상, 또는 사물간의 단절이나 불균형문제는 랑만주의 시에서는 문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시를 선호하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의 보편성도 부정하고 특정한 순간의 특정한 모습에 안주하게 되였다. 될수록이면 생경한것을 추구하다보니 자신에게조차 낯선것들을 설명적인 방법으로 전달할 의무는 아예 버린것이다. 환언한다면 시인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제시하는 의미를 깨득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제시적인 언어를 포기하고 언어로 모호한 그림을 그리려 한다.
    옛날 랑만주의시인들은 시예술이란 이미지를 창조하여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양식이며 추상적이거나 초월적인것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기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과학자가 발견한 낯선세계를 누구나 다 알수 있는 세계로 바꾼게 시라는 워즈워즈의 주장이나 “이미지가 없이는 예술은 없다”고 이미지절대론을 주장한 로씨야의 뽀떼브나 이미지는 아무리 알기 힘든 대상도 순간적으로 선명하게 파악할수 있도록 두뇌작용을 절약하게 만든다는 스펜서의 견해들은 아주 교훈적이다.
    시란 정서 또는 정서작용을 통하여 떠오른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런데 상상력은 주관적이고 가변적이고 심리적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바르게 전달하려면 가시성을 완전해 배제할수 없다. 아래의 시를 음미해보자.
          할일도 없이 물끄러미 앉아서
          읽다버린 노자(老子)를 다시 읽는다.
          연(정-필자)직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挺直以为器,当其无,有器之用)
          흙을 이겨 항아리를 만들지만
          항아리의 쓰임새는 텅 빈 곳에 있다
 
          텅 빈 곳에 있다
          빈 곳에 있다
          곳에 있다
          에 있다
          있다
          다 (중략)
 
          앙금같이 갈앉은 토요일 창밖엔 무거운 먹구름이 차일을 치고
          한 라유체와 백 두철쭉이 혼례를 치루는 강의실 벽을 향해
          철벽을 향해
          페경기의 노자(老子)가 물끄러미 앉아 있다
 
          다
          있다
          아 있다
          앉아 있다
          미 앉아 있다
          러미 앉아 있다
          끄러미 앉아 있다
          물끄러미 앉아 있다.
    여기서 시인이 이야기 하려는것은 단지 대학가의 상황만이 아니다. 흙을 이겨 항아리를 만들지만 그 쓰임새는 오히려 텅 빈곳에 있다는 존재론적역설 역시 화자가 이야기하려는 화제가운데 하나일뿐이다. 그리고 이와같이 모호한 충동을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려 한다. 여기서 이미지가 시인의 정서를 육화하는 기능을 지녔다고 볼수 있다. 그러면서 은유를 비롯하여 음절수를 줄이거나 증가하여 삼각형으로 배치한것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모두 무의미함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위한것이다.
    이처럼 시를 감상함에서 독자가 자률적으로 해석권을 확대시키는 기능을 현대시에 담으려하지만 자칫 이미지를 등한시하는 관념시처럼 리해불능의 벽에 부딪혀 전전긍하게 할수 있다. 모더니즘은 언필칭 전통에 대한 반역, 파괴성인데 읊어서 정서가 출렁거리게 하는 시를 쓰려면 시적운률미를 등진 언어유희로는 실현불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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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련금술의 화려한 탈변 그리고 무아의 기저에서 펼치는 환상의 랩들
          
           방순애 첫하이퍼시집<<시간은 원이 되여>>에 부치는 편지
 
                           평론 허인
 
        이모저모 살펴보면서ㅡ
 
   십여년을 문학과는 쭈욱 담을 쌓고 지내오다가 요즘들어 조심스레 살펴본 조선족시단은 말그대로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아직 생소하고 낯선 얼굴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특히 중견시인으로 어엿이 자리매김을 하고서 맹활약중인 김승종 ,김영건 ,조광명 , 한영남 등 시인의 변화는 가히 눈이 부실 지경이며 또한 놀라움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시란 구경 무엇인가 ? 이 세상 그 누구도 가볍게 단 한마디로 정의(定义)를 내릴수 없는 이 간거한 작업을 그들은 나름대로 소화해냈으며 또한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필치로 한폭ㅡ 또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며 립체화며 수묵화를 개성있게 그려내고 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아직도 제 자리매김에 집착하고있는 여러 동우시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지않을가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며칠전 필자는 연길에서 부쳐온 조선족시단의 첫하이퍼시집 방순애시인의 <<시간은 원이 되여>>를 읽으면서 또 한번 크나 큰 충격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 언어련금술의 화려한 탈변, 그리고 단순구조로부터 다선구조로의 힘찬 도약, 과거의 대아(对我), 자아(自我)의 뿌리깊은 관습으로부터 당당하게 해탈을 웨치며 한결 숨결이 자유로와지고 시야가 맑아진 무아(无我)의 새로운 경지(境界)ㅡ <<저는 아직 초작자에 불과합니다>> 겸손이 철철 넘쳐나는 그녀와의 짧은 통화에서 필자는 <<나에게 있어서 시는 과연 무엇이였을가?>>하고 다시 한번 자신의 지나온 행보를 뒤돌아보지 않을수가 없었으며 늦게나마 새로운 변화를 결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필자가 알건대 방시인은 시공부를 시작한지 이제겨우 일년이 조금 지난 늦둥이시인이다. 평생을 경찰직에 몸담그고 살아온 그녀가 퇴직후 문학공부를 시작한데는 그녀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 책을 내면서 그녀는 머리글에 이렇게 쓰고있다
 
  <<세상을 향하고 독자를 향하고 자신을 향할수 있는것이 문학입니다. 평생 경찰직에 몸 담그던 내가 문학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2003년9월, 한 친구의 권고로 백일장에 가본적이 있습니다. 처녀애들로부터 중로년 녀성들까지 70여명이 현장에서 글을 쓰고 수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주 평범한 사실로 엮은 수상글을 읽는 순간 나는 감동에 눈물을 흘렸습니다.(아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구나. 그런데 난 뭐하며 살았지?) 그것이 계기가 되여 독서하기 시작하였습니다…2012년초 우연한 기회에 시와 접촉하여 시를 배우게 되였습니다. 불혹의 나이에 어설픈 시공부를 시작하여 안타깝게 잘 되지않아 여러번 시 쓰기를 포기하려고 마음을 먹은적도 있었습니다. 중도에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스스로 자신을 단속하며 시를 익히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년하고도 넉달이 되게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책을 보고 글 쓰며 부지런히 달려왔습니다.
ㅡ하이퍼시를 쓰면서 한 시각에서 또 하나의 다른 시각에로, 상상속에서 자연의 사물들과 현실인간의 조화를 얻어낸다는것은 그리 쉽지않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이미지는 체험감상, 현실적인것, 개인적 자아마저도 잊어야고 사물의 운동으로 시를 엮어야하는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되였습니다. 시적 사색을 가짐에 있어서 선입견을 깨끗이 쓸어버려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는 무의식속에서 숨겨진 존재를 끄집어내고 희열과 고뇌에서 언어를 찾아 순간순간을 살아나게 하고 젊게 하기 위하여 있는 힘을 쏟아넣었습니다….>>

 
   시란 이미지를 기본으로 하는 표현예술이다. 이미지는 사물성과 회화성을 추구하며 관념을 배척한다. 영국의 비평가 시드니(Sir Philip Sidney, 1554-1586)는‘시를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가르치고 즐겁게 할 목적을 가진 “말하는 그림”(speaking picture)이다.’라고 하였다. 그럼 여기서 알알이 통통 잘 여무른 88수로 엮여진 방순애시인의 금싸락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주옥같은 하이퍼시들을 잠깐 함께 살펴보자
 
단순구조로부터 다선구조로의 힘찬 도약그리고 무아(无我) 새로운 경지에서 펼치는 환상의 바이브
 
수천개의 태양이
나무가지사이로 들어온다
태양줄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잎새들
땅구멍마다 숨어있는 진실을 본다
 
개미가 떡함지무대에서 댄스를 쳐댄다
무대등 달덩이는
가슴을 헤치며 내려오고
베짱이들은 악기들고 연주에 여념이 없는데
엿장수가 지나다 멍하니 보며 중얼거린다
 
태고의 텅 빈 배속에
희미한 생명의 맥박이 널뛰기하고
시간의 등에 업혀 굴러나온 생명이
따가운 태양을 마주하느라
시물거리는 눈
 

  <<대나무아래에서>>의 전문이다. 수천개의 태양과 거꾸로 매달려있는 잎새들이 땅구멍의 숨어있는 진실을 살펴보고 있다고 시작된 이 시의 텍스트는 단순구조가 아닌 다선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제목이 <<대나무아래에서>>이지만 마치 한폭의 자연을 무아(无我)와 무의식(无意识) 그대로 그려놓은듯하여 독자들은 대나무숲사이로 수많은 해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느듯한 느낌을 받을수도 있으며 또한 한폭의 생동한 오감도(鸟感图)를 보는듯한 새로운 느낌을 준다. 여기서 다시점(多视点), 다초점(多瞧点)의 역할이 된 수천개의 태양, 개미 , 떡함지 , 댄스 ,달덩이 , 베짱이 , 엿장수 , 악기 , 널뛰기, 시물거리는 눈은 방시인의 숙련된 언어련금술을 통하여 서로 묘하게 새로운 조화를 이루면서 현시대 단순구조적 동화(同化)에 거부와 강한 저항의식이 깔린 다선구조로의 화려한 탈변을 선포하면서 환상적인 바이브와 랩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이 시는 최소한의 상황제시를 하면서 시적 분위기를 나름대로 고조시키려는 작자의 의도가 최소한의 개입이 되여 냉정한 지적 사색과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럼 하이퍼시란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서 잠간 하이퍼시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 함께 료해하여 보자! ‘하이퍼텍스트 문학’(Hypertext literature)은 하이퍼와 텍스트를 조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드 넬슨(Ted Nelson)이 만든 말이다. 단순구조가 아닌 다선구조시를 일종 하이퍼시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한 한국의 문학평론가 문덕수선생의 해석에 귀를 기울이면 꽤도가 올것같다. 문덕수는 [하이퍼(hyper)란‘과도(过渡)한’, ‘과다(过多)한’, ‘초월하여’, ‘넘어서’,‘3차원보다 높은’등의 의미로서 본래 그리스어에서의 일종의 련결어]라고 밝히면서 이렇게 해석하고있다.
    [하이퍼는 본의의 세계에서 유의의 세계로 뛰여넘는(초월해서), 현실세계의 상식을 초과할 때 일컫는 일종의 하이퍼적특징이다. 이 사실을 부정 하는것은 시의 본질적구조자체를 부정하는것과 같다… 더불어 하이퍼시는 ‘’현실세계’’의 경계를 넘어서 불연속성적 균열을 초월하여 ‘’상상세계’’와 연결하는 작시에서 얻어진것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하이퍼시는 초월세계와 연속하려고 하는 정신적, 언어적 운동이라고 할수가 있다.]

    무릇 모더니즘이든 포스터니즘이든 레알리즘이든 휴머니즘이든 필자가 알건대 시는 시인의 체험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진술, 전달하는것이 절대로 아니다. 더불어 시인과 독자 사이에는 시적언어라는 매개물이 있으며 이 매개물 역시 의미전달의 구조가 또한 아니여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의미형성을 위한 언어구조일뿐이다. 어디까지나“시는 예술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인정한다면 전통시든 현대시든 또한 하이퍼시든 시는 단순히 시를 통하여 의미를 전달하려 하거나 전달받으려고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듯 시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말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삶을 체험하게 하는 언어예술이 되여야 한다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그럼 여기서 방순애시인의 하이퍼시를 한수 더 보자
 
지구가 점을 본다
너무 커서 보면 볼수록 어지럽다
지구가 지레대로 점을 앞으로 민다
요지부동이다
지구가  등으로 점을 굴려본다
꿈적거리는것 같더니 또 굳어버린다
 
바람이 쇠스랑 들고
은하수를 긁어어본다
표피가 떨어졌다가도 또 새살이 나온다
태양이 은하수를 바줄로 묶어 던진다
뒤로 번져지는 시늉만 하고
다시 원래 자리에 온다
 
컴퓨터 불이 켜진다
하나하나 또 하나가 켜진다
반짝이들이 세계표면을 덮는다
지구가 들린다
지구가 달린다
 

<<지구>>전문이다
 
    보다싶이 전례의 자의였던 타의였던 아니면 피의였던간에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오랜 세월동안 주류를 이어온 대아(对我), 자아(自我)의 흔적은 꼬리마저 찾아볼수조차 없고 불교에서 달관의 경지에서나 찾아봄직한 무주(无住) , 무득(无得) , 무소위(无所谓), 무아(无我)의 새로운 경계(境界)에서 작자는 마치 우주와 자연과 자연스럽게 남의 이야기하듯이 녀성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펼쳐진 이 시적화자는 우리들에게 <<점>>으로부터 시작하여 현대문명의 산물인 <<컴퓨터 불이 켜진다>>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면서 <<지구가 들린다/지구가 달린다>>로 현실적인 직시, 미래에 대한 불안정과 또한 불안함과 그러한 갈구, 생명운동을 다차원적으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 꼼꼼히 살펴보면 누구나 쉽게 알수 있듯이 지구 , 지레대 , 잔등 , 바람 , 쇠스랑이 , 은하수 ,태양 , 바줄 , 컴퓨터ㅡ 등등 달라도 너무 다른 실물들이 이 시에서 직접 만나 방시인의 섬세한 가공을 거쳐 마침내 하이퍼시의 특유의 새로운 개성을 완성해나가면서 시적인 울림, 즉 허다한 공명과 긴 여운을 독자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
 
   재래로 시를 쓴다면 시적계기요 서두요 발전이요 결말이요 조응이요 하는 말들을
잘 살펴보아야 했다 오늘 시의 현주소도 그런 시가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방순애시인이 쓴 시는 이런 언어들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고 있다. 또 기, 승,
전 ,결이라는 언어로 방시인의 시를 살펴본다는것은 아마 통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시인의 시는 이런 용어들과는 무관하다.방시인의 시는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 시라고
함이 타당할것 같다. 이 시집의 시들은 이미지 토막과 토막의 배렬로서 그 토막과 토막들은 시작이자 결말이고 결말이자 시작이라 하겠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것처럼
시작과 끝이 없고 항상 중간뿐이다…
 
    최룡관시인이 평론에서 한 말이다. 달인의 경지에 이른 옳바른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너무나도 작은 우리 조선족시단에서 내노라하는 시인들과 평론가들이 많지만 진정 후배양성과 현대시보급에서 서슴없이 자신의 <<차키>>마저 선뜻이 문학도들에게 내여줄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가? 이 점에서 나는 최룡관선배의 로고에 나름대로 큰 긍정을 하고 싶다.  /시간이 우리를 버리고 간다/칼바람이 심장을 찢고 그늘들이 모여 몸의 골수를 빼먹는다/흐르는 피는 왜 저토록 푸른걸가?/바이올린 현줄을 켜면 떠나간 아픔이 다시 와서 신경을 켜댄다/노을이 머리를 빠끔히 내밀며 흩어진 가슴을 몰아세운다/바라보는 한순간 두눈길은 멈추고 얼어붙은 등뼈에서 시린 정이 빠져나간다/메마른 가슴에서 백양나무가 다시 잎사귀를 키울수 있을가?/어둠 저편에서 빤히 쳐다볼때 진달래 흐드러진 젊은 산이 내게로 와서 옷소매를 잡는다/문득 가슴이 부푸는 이 시각/초록빛하늘을 들이 마신다/
 
<<찢겨진 가슴>>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는 특히 /어둠 저편에서 빤히 쳐다볼때 진달래 흐드러진 젊은 산이 내게로 와서 옷소매를 잡는다/와 /초록빛하늘을 들이 마신다/라는 이처럼 단단한 긍정어로 부재의 세상속에서 현실적 존재의 충일성을 노래하는것은 부재의 그 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해나갈수 있는 시인의 강한 힘, 그것은 곧바로 시인의 맘속에 포근한 휴머니즘정신이 자리하고있기때문이 아닐가 생각된다. 따라서 시인의 그러한 휴머니즘정신은 더없이 랭철하고 명석한것이며 또한 자성(自醒)이 밑거름으로 안받침되여있다고도 생각된다. 제목이 <<찢겨진 가슴>>이지만 보시다싶이 결말에서는 부푸는 가슴이며 초록색하늘이여서 희망이 보여서 좋다. 이 시 역시 최룡관시인이 말한것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것이 특징이라면 또한 특징으로 될것도 같다
 
파란 하늘에 둥둥 달려 있는
커다란 바위우에
번화한 도시가 앉아 있다
              << 성>>
 
상아는 검은 색 옷을 입고
호화로운 요트에 앉아
입술에 노래를 담고 있다
 
멍청한 후렴은 고해의 값을
벌거벗은 자연에 치르고…
            <<상아의 노래>>
 
돌은 하늘이 버렸을때 침묵의 깃발을 든다
            <<여기서>>

 
스님이 되여 앉아 있다 얼굴부터 새겨진 법글이 쭉 내려오고 몸의 구석진 곳들은 전설쪼각이다…구름이 펜을 들고 쉬고 있다 눈아래 서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입은 닫겨있다     <<어떤 바위>>
 
  이러한 시구들은 방시인이 얼마나 언어련금술을 자유자재로 잘 다루고 있으며 또한 숙련되여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근거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보는이의 시각이 다 즐거워지고 둘째 촉각이 스스로 감미로와지고 셋째 미각이 어느새 시원해지는ㅡ더불어 이러한 시구들은 단순구조로부터 다선구조로의 힘찬 도약의 새로운 상징이며 또한 무아의 경지에서 오직 방순애시인만이 마음껏 펼칠수 있는 화려한 바이브이고 환상적인 랩이라고 한마디로 총괄하고싶다. 그럼 여기서 늦게나마 방순애시인이 이처럼 짧은 시간내에 크나 큰 성과를 이루어낸데 대하여 아낌없는 치하의 박수를 보내 드린다.
 
폭력적조합과 옴니버스기법처리
 
    시에서의 회화성은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으로 감각화하여 객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옴니버스(낯설게 하기)기법은 여러개의 이야기를 배치하여 시의 새로운 구조를 선보이는 하이퍼시창작기법이다. ‘낯설게 하기’는 로만야콥슨 등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사물, 언어, 사건을 충돌하여 낯선 구조와 낯선 의미의 새로운 감각과 미의식을 추구하였던 리론이다. 옴니버스기법은 제목과 내용, 련과 련의 연결고리를 끊어 낯설게 하기를 최대화한다. 즉 낯설게 하기를 최대화하면 구조의 새로움, 의미의 새로움, 감각의 새로움이라는 하퍼시성립조건을 충족시킬수 있기깨문이였다. 그럼 여기서 방순애시인은 폭력적조합과 옴니버스기법을 어떻게 처리하였는가 잠깐 다시 살펴보고 가자
 
  스님이 되여 앉아있다 얼굴부터 새겨진 법글이 쭉 내
려오고 몸의 구석진 곳들은 전설쪼각이다 마음속에서
지줄대는 이야기는 강을 따라 흘러가고 무성한 이파리
매달려있는 줄거리들 줄줄 타래진다
  구름이 펜을 들고 쉬고 있다 눈아래 서있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입은 닫겨 있다 무거운 입술을 열면 하늘중
심에서 우는 천둥소리 지심까지 들썩인다
  작은 귀뿌리는 점점 커진다 열쇠를 가지고 떠나는 사
람들 갇히운 마음을 연다 진펄에 빠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 어떤 바위 >>전문
 
    여기서 1련과 2련ㅡ 그리고 3련은 제각기 생판 다른 세 얼굴이다 , 달라도 서로 너무 다른 불협화음을 조성하는듯하지만(옴니버스기법처리) 마지막련의 제일 끝부분에서 /열쇠를 가지고 떠나는 사람들 갇히운 마음을 연다/ 진펄에 빠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와 절묘하게 어울려 돌아가면서 뜻밖의 아어효과(雅语效果)까지 창출해낸다. 흔히 진펄에 빠진 발걸음이 한결 무겁다로 표현하지만 방시인은 여기서 <<진펄에 빠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로 시를 느긋하게 마무리하면서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진펄속에서도 발걸음이 자유로운 바람과 바람을 타고 둥둥 떠가는 마음을 엿볼수 있게끔 한다. 얼핏 보면 상호 모순이 되는 어구이면서도 또한 얼마나 희망적인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안겨주고있는가? 이것이 방시인의 놀라운 재치가 아닐가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그럼 여기서 폭력적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잠깐 더 살펴보자 . 스님 ㅡ 법글 ㅡ전설 ㅡ 강 ㅡ이파리 ㅡ 구름 ㅡ펜 ㅡ 입술 ㅡ 천둥 ㅡ귀뿌리 ㅡ열쇠 ㅡ진펄ㅡ 어찌면 제법 글깨나 쓴다하는 이름있는 시인들마저도 제대로 잇기가 쉽지 않을것이라는 걱정이 슬그머니 든다 . 이렇듯 언어련금술은 아무나 자유자재로 사용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 언어련금술은 제대로 장악한 자들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기때문이다
 
   돌은 하늘이 버렸을때 침묵의 기발을 든다 갈대숲은
겨울의 어둠속에서 하얀 불을 지펴 지가 낳은 뿌리를
지킨다
   울창한 숲과 새들 그리고 나의 집
   창가의 벽이 피를 흘리고 달은 구름속으로 숨어버린다
창백한 손은 이곳에서 떠다니는 거품을 거둬내고
무지개의 현에 맞춰 밤의 찬가를 부른다
   날개가 없고 얼굴이 없어도 심연의 사색은 새벽 입김우에
가는 발자취를 한뜸한뜸 수놓는다

 
           <<여기서>>전문
 
   “돌은 하늘이 버렸을때 침묵의 기발을 든다”라고 서두를 뗀 이 작품은 마지막 련에서 “날개가 없고 얼굴이 없어도 심연의 사색은 새벽 입김우에  가는 발자취를 한뜸한뜸 수놓는다”고 마감하고 있다. 이는 자유의 혼이 구속의 쇠사슬을 박차고 아무런 구애없이 천애지각을 나름대로 미화해보려는 시인의 조심스런 양상인것 같다. 또 어딘가 모르게 본능에로 끌려가는 생명의 충동 그대로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제목이나 작중에 등장하는 여러 이미지가 암시해주는것은 과연 무엇일가는 독자마다 견해가 다를수도 있겠으나 이 시는 곱씹을수록 무언의 암시와 그런 색깔이 다분히 짙다고 필자는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총체적으로 방순애시인의 많은 하이퍼시는 한수 한수가 거의 환상적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가 완전무결하다는것은 절대 아니다./손에 들려 호강을 받을때/ <<유리컵>>중에서/시베리아 풍차가 /장거리 려행을 떠난다/ <<계절풍>>중에서 이러한 시구들은 표현이 너무 단순하고 형상적인 이미지보다 추상적인 이미지가 더욱 짙어 방순애시인의 특유의 시맛을 많이 떨어뜨리고 있다. 또 일부 시편이 주제가 모호하고 어디로 튈지 몰라 읽기에 불안한것도 더러 있다. 첫술에 배 부를수는 없다. 아무튼 다시한번 방순애시인이 짧은 시간내에 이룬 성과에 다함없는 성원의 박수갈채를 보낸다
 
마무리하면서
 
   조선족시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연변시단이나 북방시단(흑룡강)에 비해 료심시단은 아직도 개간중인 <<황무지>>에 불과한것만 같다. 료녕조선문보 <<압록강>>문예부간, 심양조선족문학회 기관지라고 할수 있는 <<료동문학>>잡지에서 가끔 생소한 얼굴들이 때때로 나타나긴 하지만 별로 읽을만한것이 적고 새로운 시도를 꿈꾸는 시인이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하는 말이 있다 . 두꺼비 한번 눈섭을 찡그렸다 하여 금방 하늘이 흐려지는것도 아니건만 요즘 많은 사람들은 바른 말 하기를 꺼려하며 또한 너무 회피하려고만 드는것은 아닐가?  혹시 가슴 깊숙히 간직한것이 향긋한 파인애플이 아니라 겉이 속보다 더 싱싱한 한알의 진렬된 사과알처럼 자신의 이미지에 기스라도 갈가봐 너무 전전긍긍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아픈 매가 어쩌면 문인이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촉매제가 되고 필연적인 파스효과가 되지 않을가 ? 그럼 여기서 료심시단 중견시인이라고 할수 있으며 십여년간 심양조선족문학회 회장으로 있다가 지금 다시 료녕조선문보 기자부주임으로 사업하고 있는 김창영시인의 시집 <<산처럼 물처럼>>과 <<서탑>>을 잠간 살펴보자
 
산은 나보고 산이 되라 하네
물은 나보고 물이 되라 하네
 
산앞에 산처럼
물앞에 물처럼
 
말을 버리네
고개 숙이네
 
<<산처럼 물처럼 >>전문
 
물은 나보고 흐르라고 하고
산은 나보고
거기, 서라고 하네
산속에 물이 흐르고
물속에 산이 있으니
나, 여기
오도 가도 못하고
뜬구름 더불어 바장임이여

 
 김학송시인의 <<세상살이 어려워라>> 전문
 
  김창영시인은 아마도 도를 딲고 있는상싶다. 시인지 감오문(感悟文)인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ㅡ
<<99편의 시작품을 여러해를 두고 쓰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인의 립장이나 주제의식은 거의 변화가 없다. 이 시들을 쓰기 시작한 동기가 오랜 세월 시인의 의식속에서 발효되다가 련작시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볼수가 있다. 하지만 무르익은 주제의식이라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되기도 하겠지만, 시를 쓰면서 더러 의식의 변화가 있음직하기도 한데 너무 변화가 없다는것은 오히려 약점이 될수도 있다. 혹 력사의 무게를 담아내겠다는 시인의 강박의식이 주제의식의 변화를 제약한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더러 여유를 가지고 좀더 가벼워진 마음, 열린 마음으로 서탑의 새 력사를 쓸수는 없을까 기대해본다.
본고의 서두에서 김창영의 시는 된장이나 김치처럼 소박하면서 깊은 맛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소박하다는것은 다른 말로 하면 단순하다는 표현도 가능하여 약점이 될수도 있다. 화려함에 흔히 동반되는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제거했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되지만 현대시의 많은 표현기교들이 결여되여있다는 측면에서는 약점이 될수도 있는것이다. 현대시의 핵심적인 특징은 이미지의 전략적인 사용이다.>>장춘식연구원이 김창영시인의 련작시 <<서탑>>평론중에 한 말이다.
 
   그럼 여기서 료동문학 호롱불금상 수상자와 대상수상자인 서정순씨와 편도현씨의 근작시도 살펴보자. 본문에서는 이들의 수상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근작시만을 다루고 있음을 분명히 밝혀두며 더불어 아무런 폄하나 저의도 없음을 명백히 밝혀둔다

   맨드라미(鸡冠花)
    (심양)  서정순

  올망졸망 장독대사이로
  빠알간 벼슬만 내여놓은
  수탉 한마리
  사위오면 닭 잡아준다는
  집주인 말에
  제 먼저 놀라
  장독사이에 숨죽이고
  간이 달랑
  빠끔히 내다보네


.숙명

 
ㅡ어머니의 83세 생신을 맞으며

   (심양)  편도현

그 흔하디 흔했던
밭머리의 흙도 아니였소이다
무너진 돌담밑에 얼기설기
그것도 아니였소이다
바위돌 틈새에 가는 실뿌리
훅€?불면 쓰러질듯 가냘픈 신세
그러나 질기디 질긴 그 힘은
쇠사슬처럼 강파르게 살았소이다
헐벗어 드러난 하얀 속살
눈물겹게 가슴 시린데
바위에 매달려 안간힘 쓰며
여린 새싹들을 키우는 크나큰 사랑
어설픈 삶 시작할 때
이른봄 서리찬 새벽하늘은
그리도 차거웠고
밤하늘에 우뢰 울고
비바람도 사나웠소이다
걸음걸음 피눈물 나도록
세상살이 너무도 고달팠소이다
밤이나 낮이나 따로없이
푸름을 이고지고 보듬으며
언제나 분주했던 그 세월
몸에 푹 배인 그 땀이
이슬되여 축축이 젖어왔소이다
그렇소이다
모진 세파 그속에서
죽을 힘을 다하여 살아왔소이다
한잎 두잎
푸름을 받들며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이 두편의 시 모두가 작년에 료녕조선문보 <<압록강>문예부간에 실렸던 시들이다. 단순구조와 이데올리기의 련속이라고 밖에 볼수가 없으며 타임머신을 타고 십오륙년전으로 다시 되돌아 가는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것을 어쩔수가 없다. 맨드라미는 짜임새가 흐트러졌고 어쩐지 동시에 가까운 초학자 냄새를 물씬 풍기고 편도현씨의 <<숙명>>은 어머니의 83세 생일을 맞으면서 쓴 글이다보니 시제선택이 자유롭지 못한것이 사실이나 읽기에 다소 따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끝으로 새로운 한해 료심시단에도 새로운 시적 개혁의 바람이 일것을 희망하면서 여러 동우시인들 그리고 방순애시인이 새로운 한해 더욱 좋은 시들을 써내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해본다
 
   2014년2월15일 심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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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1,전통시)
 
나의 시는
때시걱이 언녕 지났어도
언제 어디서
그 어느 누구라도
쉽게 찾을수 있는 누룽지ㅡ
아픈 피 아픈 살 아픈 뼈를 갈고 갈아
래일의 쪽빛문 랑만으로 열어제치는
이른 새벽 봄풀처럼
아직 기억이 생생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ㅡ
 
찾는 이 적어도
읊는 이 없어도
때로는 고요한 호수
때로는 성난 파도가 되여
이 세상의 가장 성스럽고
이 세상의 가장 더러운것마저 깡그리
가슴속에 담고 담았다가
마스고 부스고
그렇게 나만이 황제
노예 하나 없는
자유의 세계ㅡ
 
꽃같은 너를 들같은 너를
뜰같은 너를 숲같은 너를
풀같은 너를 새같은 너를
때로는 산수화
때로는 인물화
때로는 수묵화
한폭의 생동한 그림으로
그려놓고서
 
시이기에 그냥 시시한 그런 시가 아니라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미우면 또한 밉고
성이 나면 분명 분노도 터뜨릴줄 아는
더불어 함께
생각하는 피
생각하는 살
생각하는 뼈가 되여야 하리!
 
나의 시는 거품이 많대도 좋다
아무렴 삼떼처럼 쓰러지는
무상한 세월앞에
강기슭 핥는 저 흰거품이면
또 어떠하리?
나의 시에는 오늘도
초불이 파랗게 살아
숨을 쉬고 있다
 
 
 
       2012년 7월4일

 나의 ( 2,현대시)
 
손발이 따로 있고
팔다리가 따로 있고
분명 이목구비가 제법 또렷하다
허나 사상은 절름발이
텅 비워버린 머리를 스마트폰에 꽁꽁 저장하여
매일 조심스레 손에 들고 다닌다
사색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
아침마다 새벽이 내 몸속으로 붕붕 날아들어와
감기며 스트레스와 같이
옆꾸리를 쿡쿡 찌르고
가끔 빨갛게 피 칠갑을 한 감동의 에밀레종소리가
고장난 내 심장을 문고리 삼아
내 가슴을 동동 잡아두드리면
나는 손발이 따로ㅡ 팔다리 따로ㅡ
코끝으로 묵향이 찡한 그런 그림을 그리고,
귀뿌리로 쨍하니 독한 술 꿀꺽꿀꺽 떠 마시고,
눈은 즐겁게
이 꽃향기 저 꽃향기를 킁킁 맡아가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그런 사람이 된다
단떼의 지옥은 주저없이 허물어버린다
생종 페르스의 <비>는 파란색으로 다시 염색한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여ㅡ
보이는가 부드러운 접사ㅡ저 부처님의 무위의 깨우침을ㅡ
생소한 얼굴이 반기를 들고
초조하고 경이로운 내 얼굴에 마구 손가락질할때
나는 달과 별의 한숨소리 호주머니에 슬쩍 다시 넣고
왔던 길로 털썩털썩 집으로 돌아간다
나의 시는 매일 열두번을 죽었다가도
열두번 다시 태여난다…
 
 
나의 시( 3,하이퍼시)
 
드르륵ㅡ 지옥의 뜨거운 문이 바람에 스르르 열린다
수천개의 태양이 우리 집 마당에 벽돌집을 짓는다
목 마른 은하수에 잔뼈마디 굵직한 성난 짐승이 되여
순진한 양을 몰고 달려드는 칼을 찬 개미떼들
수모의 피난길에 아담은 언녕 아무런 말조차 없다
 
컴퓨터 창을 활짝 열고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아버지의 그
구부정한 허리를 입술이 뾰족한 돌이 싱싱한 묘목과 부드러운  
칼라활로 그래픽하여 옛노래를 다시 부른다 이슬비가 똑똑똑
누군가의 잔등을 두드리는 엇비스듬한 박자속에는 왠지 어릴적
풀내음새가 코끝을 찌른다
 
유통기한이 훨씬 지난 병마개를 이발로 뽁ㅡ따본다
술에 취한 달이 짐짓 하늘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어댄다
시가 와르르 화려한 옷을 죄다 벗고 반디불을 찾아 이리저리
뛰여 다닌다 길섶의 허름한 돌이 마침내 아픈 기억을 깨끗이 씻고
미래의 새김질속에서 반질반질한 새 자갈돌이 된다…
 
 
2014년3월4일
 
<전통시> <현대시> <하이퍼시상호비교ㅡ 단평
들어가면서
 
  전통시의 특징은 주제가 뚜렷하고 끝까지 한 사물의 움직임과 그러한 변화를 주의깊게 관찰해가면서 자신의 의식세계와 자신의 현실적인 감수, 그리고 자신의 이색적인 감정표출을 한 분출구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시(可视点)적인 효과와 전반 시적인 계기, 즉 서두ㅡ 발전ㅡ 결말ㅡ 등 그러한 시적 흐름들이 명쾌하게 한곬으로만 쏟아지는 저수지의 물과도 같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사실주의와 레알리즘이 전통시의 큰 주축이 되고 또한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누구나 쉽게 알수가 있다 .
 
   반면 현대시는 이미지즘이며 모종 의미로 말하면 언어의 조합이지 사상의 발현은 아닌상싶다 . 작자의 임의로 되는 섬세한 가공을 거쳐 보석으로 새롭게 탄생한 이미지와 이미지즘들은 어제날 판에 박힌듯한 그 틀, 고정관념의 단단한 쇠그릇을 말끔히 깨고 의식의 거대한 흐름에 발맞춰가며 새롭게 한층 또 한층 자아의 중심세계에다 독특한 리상의 생동한 새 그림들을 형상의 이미지로 배렬해가면서 일체 추상어들은 극력 자제하려 하는 그런 특징이 있다. 쉽게 말하면 현대시는 전통시의 넓은 울타리와 기초우에 세워진 탑우의 탑이다 .
 
  그런데 하이퍼시는 << 현대시의 계승자이도 하며 또한 반역자라고도 할수가 있다. 계승이란것은 변형을 그대로 계속 쓴다는 말이 되겠고 반역이란것은 현대시구조를 허물어 버리고[현대시 주요한 구조가 종속결구] 횡적결구를 쓰고 있기때문이다. 하이퍼시의 특점은 현대시들이 세우는 끝이 뾰족한 탑을 허물어 중심을 두지않고 해체시키는것이다. 이미지들이 서로 련계되지 않고 각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제일 간단한 말로 변형과 뛰기가 잘되는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룡관시인의 말을 잠간 인용해본다.
 
   시는 한행에서 명사+동사를 중심으로 써야 하고 규정어를 쓸려면 꼭 한번 이상은 쓰지 말아야 한다. 이렇듯 시어는 시인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으며 또한 창조력이 있기때문에 더욱 매력적이고 더욱 빛이 난다고 필자는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그럼 시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문제를 해답하려면 우선먼저 시란 무엇인가부터 살펴보아야 하는데 오늘까지도 시에 대한 해석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간단한 것이 곧바로 [신과의 대화]이라는것 같다. 이렇듯 “시는 예술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우리 모두 인정을 한다면 전통시든 현대시든 또한 하이퍼시든 이제 공존에는 그늘이 없다고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불교에 아집을 버려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꼭 내것이 맞고 내것이 제일 좋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고집은 이제는 존재의 가치마저 상실된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것이며 또한 부대끼면서 배신과 배격마저 관용으로 보듬어안는것이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배우고나면 항상 즐거운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오죽하면 공자마저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였겠는가?
 
나오면서
  십여년을 문학과 쭈욱 담을 쌓고 살아오다가 이제 겨우 시에 어섯눈을 뜨기 시작한 내가 주제넘게 너무 많은것을 지껄이고 있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세수의 시가 발표작도 아니고 다소 어설픈 곳이 있더라도 독자들이 관심있게 읽어주면 그것으로 이제 만족하겠다. 끝으로 새로운 한해 여러 동우시인들도 새로운 출발로 새로운 자아의 길을 새롭게 열어가길 진심으로 축원해본다
 
    심양에서  2014년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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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녕문보 <명인 탐방>   

 

         한 시인이 피워 올리는 중한 양국 시의 향기

 

   올 여름 김금용시인을 만난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김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틈이 생길 때마다 그녀의 시를 음미하다보면 무더운 이 여름날도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겠다는 예감에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시 하나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김시인이 내게 던져준 메시지는 경건함과 그 경건함 너머 가벼워지는 마음이었다.

   우리는 시로 만났다. 지난 5월 한국 성남문화원과 심양시조선족문학회가 공동 주최하고 주심양한국총영사관이 후원한 시 낭송회에서였다. 심양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한국의 시인들과 심양의 시인들이 어우러진 시 낭송회에 김금용시인이 참석한 것이다. 그 날 시 낭송과 행사 후 뒤풀이장소에서 그녀가 부른 "옛시인의 노래"를 들으며 시가 왜 두루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주고 있는 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김금용시인의 시사랑은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그녀의 시에 대한 사랑이 피워올린 시의 향기는 이미 국경과 민족을 뛰어 넘어 중국과 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한국시단에 피워올린 한떨기 꽃--“중국 현대시

 

   2006년 김금용시인은 “문화혁명이 낳은 중국 현대시”란 번역시집을 출간하며 한국시단에 중국의 현대시를 번역 소개한 첫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1998년 첫 개인시집 “광화문 쟈콥”을 발간한데 이어 2006년 두 번째 개인시집 “넘치는 그늘”을 발간한 그녀는 한국시단에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1991년부터 남편을 따라 북경, 청도, 심양 등지에서 거주하며 지금까지 10년 넘게 중국에서 생활한 그녀가 유독 중국 현대시에 빠져들게 된 것은 순전히 시인다운 호기심 때문이었다.

   “중국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무엇보다 현대 중국시단이 궁금하였어요. 192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 근대문학사의 발전과 그 경향에 대해서는 관련 논문이나 서적들이 많이 있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1967년부터 1977년까지 10년간 겪은 문화혁명 당시와 80년대초까지 그간의 문단 흐름이나 시 경향에 대해 많이 궁금하였어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김금용 시인은 2000년 3월 중앙민족대학에 입학하며 연구대상을  6, 70년대 이후의 중국현대시로 선택했다.

    “한국에서 중국시를 연구하는 사람은 적지 않아요. 하지만 대부분 당.송시에 국한되어 있지요. 한국의 저명한 한학자 허세욱선생님의 중국현대문학연구도 문화혁명 이전까지만 소개되어 있더군요. 당연히 6, 70년대 이후의 중국시들이 한국에선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공백으로 남아있었죠. 저는 이것이 바로 중국의 특정적인 역사 시기의 사회현상과 문화특색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에 연구가치가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현대시에 대한 김금용시인의 궁금증 저변에는 그녀의 시인다운 사명감이 깔려있었다.

   중국 현대시의 생성과 발전에 대해서 중국 조선족시인으론 할빈의 한춘시인이 비교적 상세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한춘 시인의 연구에 따르면 70년대 말 80년대 초 조용하던 중국 시단이 흔들리며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이름 없는 청년시인들이 맘속에 문화대혁명의 상처를 안은 채 암흑의 과거와 타협을 거절하는 결단을 이색적인 시로 토로했는바 이들이 바로 "몽롱시"다.

   몽롱시가 사회의 전면적인 승인을 받기까지는 결코 순풍에 돛단 격이 아니었다. 전국 시단을 석권하기까지 많은 설전과 필전을 겪었다. 몽롱파 시인들은 과거의 직설과 이론적 서정방식에서 탈피하여 생활의 비밀을 이미지에 용해시켜 심각하고 다층차적인 정감을 암시와 상징 속에 용해시킨 시작품을 퍼내였다. 현실의 시공간 질서를 그대로 재현, 분석한 것이 아니라 시인 주체의 정서흐름과 상상의 론리에 따라 세계를 새롭게 조립했다. 이들의 시작품은 거의 다 언어의 생소화를 도입한 이색적인 작품들이여서 "몽롱시"라는 중성명칭이 생기게 되였으며 몇 년동안 중국 시단의 장안화제로 긍정과 부정의 도마 우에 놓여 이런 저런 주목을 받는 와중에 드디어 생존 입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김금용시인은 중국 시단의 발전 전환점을 예리하게 보아낸 것이다. 김금용시인은 중앙민족대학에 입학하여 석사과정를 지도해주던 우극곤교수의 도움을 받아 중국 당대시라 할수 있는 70, 80년대 시작품들을 대량으로 접하며 중국시단에 대한 인식을 깊이하고 중국의 현대시를 한국에 소개하기에 이른다. 그때의 심경을 김금용시인은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중국이 문혁시대를 넘기며 중국 시단엔 '귀거래파'가 등장하고, '몽롱시파'가 나오고, 다시 혼돈의 '신세대파'가 나왔어요. 그들만의 시대 상황 변화에 따라 시인들의 사회적 위치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나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였어요. 중앙민족대학의 우극곤지도교수님으로부터 현대시를 한 편 한 편 소개받고 해석을 해나갈 적마다 나는 그들의 시대적 아픔과 인성에 대한 련민에 빠져들었고 그것은 또 내 것이 되고 내 고통이 되였어요. 그때부터 시인으로서의 감수성과 리해만을 내 힘이라 믿고 중국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하였어요."

   김금용시인은 애칭, 고성, 북도, 서정, 류사하 등 시인들의 시를 특별히 좋아하였는데 김시인은 매달 이들의 시를 한수씩 번역하여 한국에서 월간으로 나오는 "우리시"에 발표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렇게 한국에 소개한 시가 무려 70여수에 달한다. 2006년 김시인은 그중의 40수를 엄선하여 "문화혁명이 낳은 중국 현대시"란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우극곤교수는 김금용시인의 단행본 출간에 즈음하여 "김금용녀사의 중국 신시집은 16명 시인의 40여편 작품만 수록하였지만 20세기 80년대 이래 중국 신시의 정수로서 같은 시기 시의 변화와 발전을 측면적으로 보여주며 한국 시인이자 학자인 김시인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고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중국시단에 주는 큰 선물--“나의 詩에게”

 

   김금용시인은 "중국시를 공부하면서 오히려 우리시에 대한 애정이 날로 더해갔다."고 고백했다. 김시인의 이러한 애정은 당연하게 2008년 김남조, 정진규, 이승훈, 문효치, 박제천, 문정희, 조정권 등 저명시인의 대표시들을 묶은  "나의 詩에게"란 중문판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한국 대표시인들의 시를 건드린다는 것은 외도에 주제넘는 짓임을 잘 안다. 더군다나 시의 행간에 숨겨진 온갖 응축과 비유, 상징의 시어들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도를 멈추지 못한 건 순전히 시에 대한 욕심, 사랑, 정열 때문이였다. 죽을 때까지 시를 놓을 수 없을 것이기에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이라도 멈출 수 없었다."는 김시인은 시를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한국 현대시단의 경향과 위상을 중국어로 해외에 알리는 일에 동참했다는데 큰 기쁨을 느낀다고 심중을 토로했다.

   1964년과 1992년 2차에 걸쳐 중역본 "한국시선"을 중국에서 출간한적 있는  한국의 저명한 한학자 허세욱교수는 "나의 詩에게" 출간을 두고 "중국이 점차 정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인간과 시의 시대로 탈바꿈해서 이미 우리와 한길로 들어섰다는 느낌이다. 그럴수록 시의 교류를 통해 한중 두 나라 사이에 령혼의 깊은 리해를 다져야 한다. 이럴때 그 도랑을 파고 다리를 놓는 이가 있다. 우리 시단에서 촉망받는 현역 시인 김금용씨가 한국 시단에서 대표적인 시인 일곱 분의 대표작을 중역 출간하는 일이 그렇다. 그것은 두 나라 문학교류는 물론 한국의 전위에서 행동하고 고뇌하는 한국 시인의 살아있는 심금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미거로 보인다. 김시인의 역간은 나에 비해 더욱 의지적이요 더욱 발전중이다. 이 시집의 출간함으로써 두 나라의 독자는 물론 두 나라에서 한중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부교재로 제공되였으면 한다."고 평가하였다. 

 

 

               김금용시인과 수팅(舒婷)과의 만남

 

 

   김금용시인의 시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인간면을 리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저 그녀와 서정사이에 있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중앙민족대학에서 중국 현대시를 전공하며 김시인은 서정의 시에 빠져들게 된다. 서정의 시 "상수리나무에게"를 원문없이 줄줄 낭송하는 김시인은 졸업 론문 테마도 "서정의 시"로 정했을 정도다. 김시인은 론문을 완미하게 완성하기 위해 남편까지 동원하여 서정을 찾은 결과 서정이 사먼에 정착하였다는 것이였다. 얼마 후 북경에 회의하러 온 서정이 웬 한국 부인이 자신을 애타게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영사관에 연락하였지만 그때는 김시인이 이미 한국으로 귀국한 뒤였다.

   2004년 남편따라 청도에 거주하게 된 김시인은 마침내 청도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서정의 친구이며 같은 몽롱파 시인인 조안나 교수를 통해 서정과 연락할 수 있게 되었고 이어 한국 영동에서 열린 아시아 시인대회에 서정이 참가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된 김금용시인은 중국 청도에서 한국 영동으로 나가 극적인 상봉을 이루게 된다. 서정의 시를 읽고 서정과 만나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때 서정시인과 함께 온 중국 문학평론가인 부군과 함께 서울 시내를 돌며 주인으로서의 정성을 다했다.

 

   김금용시인은 어디를 가나 시에 대한 뜨거운 열정만은 여전했다. 지금 심양에 거주하고있는 그녀는 올 9월 있게 될 심양 한국주에 맞춰 "심양한중시인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있다. 한국에선 김 남조, 오탁번, 김종해, 이근배,..등 대표적인 시인들이 참석할 예정이며 중국 심양의 <시조>사 주간이자 시인인 이수산과 조선족시인들 대표인 시인협회장 김창녕 시인이 역시 함께 중국과 조선족 대표시인들을 모시고 진정한 한 중 문화교류의 장을 열어갈 참이다. 이에 중국,한국, 조선족 자치주 모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리라 믿는다.

 

                                                          -  중국 심양 료녕성 료녕신문 이창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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