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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는 정착역이란 없다...
2016년 10월 01일 17시 46분  조회:3937  추천:0  작성자: 죽림
좋은 시에 나타나는 상징(은유)의 예 / 신재한 


우리는 시를 쓰면서 '메타포(Metaphors)'란 용어를 많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메타포'는 우리말에 딱 이거라고 표현할 만한 단어는 없으므로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사전에는 '은유', '비유'라고 나오긴 하지만, 실제의 의미는 뉘앙스가 좀 다르거든요. 
메타포는 단지 수사법의 일종일 뿐 아니라 
대단히 많이 쓰이는 언어의 광범위한 현상입니다. 
원래 구상적 사물을 가리키는 언어가 추상적, 비유적으로 사용되면 메타포가 됩니다. 
따라서 전의적(轉義的)인 언어는 모두 메타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한 은유보다는 보다 더 상징적이고 함축적인데, 
그렇다고 '상징' '함축'하고는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메타포'는 일반적으로 비유, 은유, 암유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이, 
사물을 생각하거나 설명할 때에 "비슷한 것"을 빌려서, 
또는 모방하여 전달하는 것이라 편의상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음 속으로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그 여자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 게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그 여자에 대해 생각하면, 쇼팽의 '녹턴'이 떠오른다든가, 
아니면, 벚꽃이 휘날리는 게 떠오른다든가 

상징을 구사하는 대표적 방법이 메타포의 일종인 은유인데 
"A는 B와 같다"의 직유 형식이 아니라, '같이, 처럼, 같은, 듯'이 등의 연결어가 없이 
본의(本意,원관념)와 유의(喩義,보조관념)를 결합시키는 비유법을 말합니다. 
보통 은유는 'A는 B다', 'A의 B'와 같은 구조형태를 취합니다. 

메타포(은유)는 직유와는 달리 설명은 완전히 생략하고 
비유할 목적을 숨기면서, 
표면에 직접 그 형상만을 꺼내어 독자와 상상력으로써 
그 본질적인 想事性을 알게 해 나갑니다. 
이러한 은유는 시인의 언어에 관한 인식과 
대상에 대한 태도 및 표현에 대한 정신의 긴박감 등이 문제가 됩니다. 
은유가 만일 안이하게 사용되면 이미지가 아니라 혼란만 야기 시키게 됩니다. 

시를 확실한 은유의 결정체라고 했을 때 확실한 은유는 
시작 기술에서 '낮설게 하기' 표현도 되고 
결과적으로 시를 멋지게도 하지만, 어떤 이는 무조건 은유를 구사하여 
시를 혼란에 빠지게도 합니다. 
따라서 이번 강의에서는 확실한 은유의 구사에 대하여 그러면서 나타나는 
상징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결합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시들을 보면 
원관념 따로 보조관념 따로 노는 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이라는 용어에서 
우리는 '결합'부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결합'이라는 부분은 유기적으로 얽혀있다는 것이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로 백날 설명을 해보았자 이해하기 어려우니 
샘플 시를 놓고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샘플1시> 
- 미루나무 - 

詩 - 이 영숙 

키 큰 그 사람 옆에 예쁘장한 여인처럼 
나도 풀꽃 같이 기대고 싶은 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는 사람마다 한 번씩 쉬어 가는 곳 
낙엽이 떨어질 때까지 사랑했지요 
가끔 빗방울이 떨어져 옷깃을 적셔도 
얼굴에 튈까봐 조금도 움찔하지 않고 
가을이 와도 내 눈에만 새파랗게 보이는 사람 
강물이 술이라면 취하도록 마시고 싶은 날 
창문이 심하게 덜커덩거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물빛에 파르스름하게 스며드는 가슴 
담배연기 연거푸 품어대는 갈대꽃 허리 꺾이듯 기울고 
그 사람 숨기고 있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나의 눈 먼 사랑이여, 고백도 하기 전에 
낙엽 되어 사방에 뒹굴었습니다 
그리 넓어 보이지도 않은 그의 가슴 속에 
작은 대문 열어놓고 하늘을 잡으려는 듯 
덩그런 빈집 지키는 아내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향 가는 길 내내, 전혀 눈치채지 못했거든요 
일평생 꼼짝 못하고 한 자리만 있었던 사람 
그 사람, 아무것도 물어오지 않았는데 
어머! 몰랐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걸요,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산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 의해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거 
추위에 독하게 취해 있는 나는 
그의 아내가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이 작품은 등장 인물이 3명(편의상 명이라 함)나옵니다. 
미루나무, 까치집,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 
이것을 원관념이라 하며 이 원관념에 대한 보조관념이 
미루나무 --> 키 큰 남자 
까치집 --> 키 큰 남자 아내 
화자 -->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 
이렇게 구성됩니다. 

이 시를 해석하면 
미루나무 키 큰 그 남자가 혼자였는 줄 알았는데 
낙엽 하나 둘 떨어지며 
숨기고 있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덩그런 빈 집 지키는 그의 아내가 까치집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항상 남편의 그늘에 가려 알려지지 않았던 초라한 아내라도 
남편의 품에 안긴 아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런 것이 우리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표현인 것이지요. 

만약에 이 시에서 미루나무는 온데 간데 없고 
보조관념인 키 큰 남자일행만 나오게 되었다면 이는 은유면에서 
죽은 시에 해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샘플시가 잘 된 이유는 원관념의 미루나무의 의미가 끝까지 살아있고 
보조관념인 키 큰 남자의 의미도 끝까지 살아있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이 시는 
요즘은 시에서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막연한 추상보다는 테마가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려 하는데 
그 추세를 발 빠르게 따라가고 있어 보여 더욱 좋은 시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의 샘플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 샘플2시> 
조개는 입이 무겁네   

詩 - 마경덕 

조개는 나이를 등에 붙이고 다니네. 등딱지에 너울너울 물이랑이 앉아 한 겹, 두 겹, 주름이 되었네. 끊임없는 파도가 조개를 키웠네. 

저 조개, 무릎이 닳도록 뻘밭을 기었네. 어딜 가나 진창이네. 평생 몸 안에 갇혀 짜디짠 눈물을 삼켰네. 조개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네. 

조개장수 아줌마. 쪼그려 앉아 조개를 까네. 날카로운 칼날이 앙다문 입을 여는 순간 찍, 조개가 마지막 눈물을 쏟네. 
“지랄한다, 이놈아가 오줌빨도 쎄네.” 
조개 까는 아줌마 쓱, 손등으로 얼굴을 닦네. 조개껍질 수북하네. 


이 시에서는 원관념은 조개이고 보조관념은 화자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를 읽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원관념인 조개의 이미지를 잃지 않았지요. 
그러면서도 보조관념인 화자의 인생을 적절하게 표현하였지요. 
그런데 이 시는 앞서 샘플로 든 시보다 좋은 것이 
전체적 원관념 보조관념이냐, 개별적 원관념 보조관념이냐 부분으로 보았을 때 
개별적 원관념 보조관념이 들어있어 
시에 있어 조금 더 품격이 있어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개 등에 있는 주름 --> 나이 --> 화자의 연륜 
조개껍질의 맨질거림 --> 무릎이 닳도록 --> 화자의 인고의 세월 
조개장수 아줌마 --> 조물주(또는 주님, 절대자) --> 화자의 인생을 통제하는 그 무엇 

결국 이 시를 해석하면 인간이 아무리 연륜이 있고 경험과 학식이 많아도 
조물주 앞에서는 초라한 인간이 듯이 
조개 까는 아줌마의 손끝에서는 
한낮 남들과 똑같은 수북한 조개에 불과하다는 내용입니다. 

샘플1시는 전체적 은유를 통한 서정을, 
샘플2시는 전체적이면서도 개별적 은유를 통한 생의 철학을 담고 있는데 
두 시 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끝까지 살아있다는 점이 
두 시를 좋은 시로 만든 것입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사용하는 방법은 
시의 내용(전문)상에서 사용하는 방법도 있고 
제목은 원관념 내용은 보조관념으로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후자의 방식은 전자의 방식보다 조금 쉬운 측면이 있어 
기교면에서는 떨어지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따로 노는 경우는 
어떤 글(원문)을 놓고 개별 개별 비슷한 단어로 단순 대치하였을 경우 
주로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을 여러분은 생각하시고 시작을 하신다면 
좋은 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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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사평역(沙平驛)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오래 앓은 기침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1954 -  ) 「사평역(沙平驛)에서」 전문

1980년대 젊은이들의 한 정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시다. 
작품 속의 사평역이 지금은 없어진 남광주역을 모델로 했다는 설도 있고 곽 시인의 고향에 있는 남평역의 이름을 고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시를 읽는 사람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모두의 가슴에는 뚜렷이 느껴지는 시골 역의 대합실에서 잠시 피곤한 몸을 녹이는 나그네가 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그리웠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한줌의 눈물을 불빛에 던지며 때론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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