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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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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때 스토리는 잇어지고 한가지 이야기만 하라...
2016년 12월 12일 00시 28분  조회:2649  추천:0  작성자: 죽림
7. 시에서 한 가지 이야기만 하고 스토리가 이어져야 한다
 
강의를 가서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뭐가 생기느냐고? 어떤 사람은 사랑이 생긴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애가 생긴다고도 한다. 그럴 수도 있다. 사랑이 생기고 애가 생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질문에는 함정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뭐가 생길까? 하는 것이 내 질문의 요지다. 굳이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이라고 한 것이 함정인 것이다.
 
과연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뭐가 생길까? 두말 할 것도 없이 ‘관계’가 생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기는 이 관계가 세상살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듯이 시에서도 이 관계란 것이 목숨처럼 중요하다.
 
시에서는 문장과 문장이 만나면 분명히 관계를 가져야한다. 행과 행이 만나도 분명한 관계를 맺어야한다. 연과 연 또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져야한다. 그러니 문장과 문장, 행과 행, 연과 연이 서로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은 시가 아니다.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김용택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전문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시 또한 물처럼 위에서 밑으로 자연스럽게 흘러야한다. 아래서 위로 흐르는 것은 구토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뭔가 부자연스럽고 익숙하지 못한 흐름이다.
 
위에서 밑으로 흐르되 끊어짐이 없이 이어져 흘러야 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문장과 문장, 행과 행, 연과 연이 관계를 가지면 그 흐름은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 시를 읽어보면 흐름이 경쾌하지 못함을 느낄 수 있다. 연과 연이 관계를 갖지 못하고 토막토막 나 있는 것이다.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와 그 다음 연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또 ‘마른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와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은 또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다른 연들도 마찬가지다. 이 시는 한 연 한 연의 표현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을지 모르지만 시의 흐름에서는 실패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연과 연이 전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각각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읽다보면 연과 연 사이에서 콱콱 막히는 것이다. 이처럼 연과 연이 토막 나 버리면 시가 물처럼 흘러내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날마다 배추 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빠
살금살금 다가가면
둥그렇게 굽은 등이
아빠보다 먼저 반겨주어요
 
-우리, 민규 왔구나!
눈도 입도 없는 아빠 등이
어느 새 알아보고 말을 하지요
 
날마다 고추 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빠
살금살금 다가가면
둥그렇게 굽은 등이
아빠보다 먼저 반겨주어요
 
-아빠, 힘드시죠!
눈도 입도 없는 아빠 등을
다가가서 살짝 안아보지요
 
이성자 동시 -『우리 아빠』전문
 
이 시도 두 가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실패한 시에 속한다. 1연에서 ‘날마다 배추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빠’ 라고 해놓고 3연에서는 ‘날마다 고추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빠’ 라고 했다. 그럼 아빠가 둘이라는 이야긴가? 고추밭, 배추밭, 두 가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날마다 배추 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빠
살금살금 다가가면
둥그렇게 굽은 등이
아빠보다 먼저 반겨주어요
 
-우리, 민규 왔구나!
눈도 입도 없는 아빠 등이
어느 새 알아보고 말을 하지요
 
-아빠, 힘드시죠!
눈도 입도 없는 아빠 등을
다가가서 살짝 안아보지요
 
이렇게 한 가지 이야기만 하면 문제 될게 없다. 욕심이 지나쳐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 하려다 보면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주제가 흐려지는 그런 오류를 범하게 된다.
 
몸을 한 번만 굴려도 벽에 닿는 좁은 쪽방에서 할아버지가
내뿜는 시린 콧김을 철없는 바람이 장난치듯 싹싹 채가며
놀고 있습니다
시원찮은 닭이 어쩌다가 알을 낳듯 생기는 라면으로 겨우
겨우 명줄을 이어가는 할아버지
운 좋게 미리 얻어먹는 제삿밥처럼 귀한 밥 한 그릇 생겨
쉬어터진 김치뚜껑도 열지 않은 채 밥 한 숟가락 먼저 입에
퍼 넣은 할아버지
밥아 너 참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냐며 빨리 달라고
아우성치는 뱃속과 안 씹히고 그냥은 못 들어가겠다고
버티는 밥이 목구멍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할아버지는 애꿎은 가슴을 치며 눈물만
울컥울컥 흘리고 있습니다
 
신천희 동시 -『쪽방할배』전문
 
문장이 긴 산문시라고 해도 문장과 문장, 행과 행, 연과 연이 관계를 형성하면 이 시처럼 물 흐르듯이 읽혀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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