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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술 나타나자 판화가들 자살로 이어지다...
2017년 01월 25일 23시 13분  조회:1700  추천:0  작성자: 죽림
15세기 말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 유럽 문명사에 괄목할 만한 또 하나의 과학 기술이 나타났다.

바로 1839년 프랑스의 루이 다게르(1787~1851년)가 발명한 사진 기술(‘다게레오타이프’라고 이름 붙임)이다. 


사진술은 사물을 대량 복제(생산)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기술이며, ‘상품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산물이다. 사진 기술의 발명은 기계가 침범할 수 없을 것 같던 인간의 정신적 표현영역인 예술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인물과 자연을 충실히 재현하던 화가들과 문자의 서술적 형식을 빌려 자연을 감성적으로 표현하던 문학가들에게 사진 기술 발명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명성을 얻기 위해 살롱전에 입상하는 화가, 초상화로 명성을 얻은 뒤 국가나 단체들로부터 역사화를 주문받는 관학풍 화가 등이 있었다. 그러나 사진술의 발명으로 초상화를 주문하는 고객이 줄어들자 초상화가들은 흑백사진에 색을 입히는 채색화가로 전락한다. 사진기의 렌즈가 인간의 눈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화가들은 이제 ‘미술은 끝났다’고 생각했으며, 기록에 따르면 판화를 제작하던 화가들이 집단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진술의 발명이 꼭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충실했던 앵그르와 같은 사실주의 화가들은 초상화 제작에 사진을 이용했으며 자신의 작업을 사진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1870년대에 ‘확대된 사진을 적당한 가격에 옮겨드립니다’라는 광고가 신문에 빈번히 게재된 걸 보면 당시 화가들이 사진을 그림에 이용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술의 발명은 당시 화가들에게 커다란 위협이었다. 

이런 미술의 위기상황에서 인상주의 화가들만의 독특한 표현양식이 어떻게 탄생되는가를 살펴본다는 것은 당시 미술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는 자연·인물의 대량 복제 방식 중 하나인 사진술의 발명으로 위기에 처한 당시 화가들이 그들 앞에 놓인 커다란 벽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가에 대해 표현양식의 관점에 국한시켜 살펴보도록 하자. 무엇(What)을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문학가와 공조한 인상주의 화가들 

물론 인상주의 표현양식을 사진술이라는 기계매체의 출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사회적 현상을 시나 소설로 표현했던 보들레르, 에밀 졸라, 플로베르, 모파상 등 문학가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서 ‘교감(交感)’이라는 시의 몇 구절을 인용해보자. “자연은 하나의 신전(Temple)이고, 그곳에 살아 있는 기둥들에서…말소리가 새어나오고, 인간이 그곳 상징의 숲을 지나면 숲은 정다운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중략) 어둡고 깊은 통합 속에서…향기와 색채와 소리가 서로 화답한다. (중략) 정신과 관능의 환희로 노래한다.” 

이 시를 음미해보면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지니고 있는 자연에 대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세계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으로서는 의미가 없다. 그 뒤에 숨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의 상징이 무엇인지가 예술가들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대표적 관점이다. ‘카메라 렌즈로 보는 객관적인 자연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문학자들의 주관적 미안(美眼)에 당시 화가들은 용기를 얻었다. 마네와 보들레르, 에밀 졸라와 모네, 드가 등이 매우 친한 사이였음이 역사적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사물을 재현하는 사진술의 한계 

마네, 모네, 드가 등 인상주의 화가들이 활동하던 1860년대의 사진술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사진기의 기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사물의 재현이라는 기능적 측면에서 당시 사진술의 한계점을 몇 가지 지적해보자. 

첫째로 대상을 흑백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즉, 농염(검은색과 흰색의 짙은 정도)으로 형태를 표현할 수 있었지 색채로 사물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둘째로 움직이는 물체를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1867년에 파리 시내를 찍은 사진을 보면 거리에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같은 시기에 모네가 그린 ‘왕비의 정원’이라는 그림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자연을 눈이 아니라 화가의 마음으로 읽어낸 것이다. 셋째로 특정 인물이나 대상에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으면 사진에 잡히는 구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야외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인물이 서 있는 모습을 찍을 때 인물에 초점을 맞추면 사진에 잡히는 배경(시야)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줌 렌즈가 발명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마네가 그린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1881년)’은 당시 사진 기술로는 불가능한 구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창조력에 높은 점수를 줘야 할 것 같다. 

마네는 좀 더 넓은 배경을 그림에 넣기 위해 거울에 비치는 고객들을 그려 넣었다. 당시 화가들은 사진술의 약점에서 착안해 ‘기계적 눈(사진)이 보지 못하는 사물을 사람의 눈으로 보는 새로운 회화적 기법’을 탄생시켰다. 지금부터 당시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중요한 특징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색채기법으로 승부한 인상주의 화가들 

인상주의 화가들의 색채기법을 이해하기에 앞서서 색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살펴봐야 할 듯하다. 소리가 음의 길이, 높낮이와 어울림으로 이뤄져 있듯 색도 무슨 색인지를 나타내는 색조, 색의 밝기를 표현하는 명도, 색의 맑고 탁함의 정도를 나타내는 채도로 구성돼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공통적 특성은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을 사용하고 명도대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마네의 ‘올랭피아(1863년)’라는 그림은 명도대비를 최대로 활용한 대표적 작품이다. 여인의 피부색을 밝게 표현하기 위해 원래 캔버스 바탕색을 그냥 두고 배경은 어두운 색을 사용해 색의 대비 효과를 극대화했다. 

모네는 명도뿐 아니라 채도가 높은 색을 많이 사용했다. ‘트루빌 해변(1870년)’ ‘아르장퇴유 요트경주(1872년)’ 같은 그림을 보면 독자들도 모네의 색채 감각을 잘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에 날려 사라질 것 같은 모네의 색채는 실제 화가의 눈에 보인 자연의 색이 아니라 화가가 마음속으로 상상한 자연의 색이다. 1865년경에 발명된 컬러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색채기법을 사용했다. 

움직임도 포착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눈 

마네와 모네는 그림을 그릴 때 사진을 이용했으며 드가는 실제로 사진기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사진기가 사물이나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을 다른 화가들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네와 모네는 사물의 움직임을 화폭에 옮기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마네와 모네의 그림에는 구름의 이동, 물결의 흐름, 깃발의 나부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등이 자주 등장한다. 

마네가 그린 ‘아르장퇴유(1874년)’ ‘뱃놀이(1874년)’ 등의 그림에는 흐르는 물결과 움직이는 구름 등의 장면이 나타난다. 모네의 그림에는 사물 움직임의 포착이 더욱 더 확연하게 나타난다. 

‘생타드레스의 테라스(1867년)’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움직이는 구름, 물결치는 바다, 증기선 밖에서 나오는 연기 등이 나타나고 ‘생자르 역(1877)’에는 기차의 연기가 대기에 흐트러지는 동적인 모습이 잘 나타난다. 

한편 주로 실내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드가(1874~1917년)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표현한 ‘발레’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들을 그려낸다. 

실내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곳이 발레 연습장이었고, 인상주의 화가들 중 가장 부유했던 드가가 자신이 발레에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과 발레 연습장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음을 과시하려는 측면도 있다.
 
 그의 발레 그림이 사진과 차별화되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무대 위의 발레 리허설(1874년)’이나 ‘초록빛 무용수(1877~1879년)’ 같은 그림은 높은 곳으로 사진기(초창기 사진기 무게는 50kg 정도)를 이동시키지 않고서는 담아낼 수 없는 구도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해야 될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기법을 그림의 주제와 별도로 이해한다는 것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설명되지 않은 표현양식들은 그림의 주제를 설명하는 시간에 추가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성제환 원광대 교수·경제학부] 

※ 주요 경력: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게임산업개발원장, 원광디지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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