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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과 그 밖의 국가와 영토의 여왕, (영)연방의 원수,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폐하(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er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1] |
이름 |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 |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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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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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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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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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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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녀는 훗날….[7] |
여왕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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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즉위 당시) |
90세 생일 기념으로 애니 레보비츠가 촬영한 사진. |
1952년 즉위한 이래 영국, 호주, 캐나다, 자메이카 등 16개 영연방 왕국 구성원들의 여왕. 해당 국가가 아닌한 일반적으론 '영국 여왕'이라고 부르지만 현재 영국을 포함한 16개국의 군주직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한반도에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부터 65년째 재위 중. 현재 영국 등 16개국[8]의 여왕이면서 영연방의 수장(Head of the Commonwealth)[9]라는 명예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재위 중인 16개국이 아닌 다른 16개국의 여왕이었다.[10][11] 여왕이 과거 재위했던 국가와 현재 재위 중인 국가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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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은 엘리자베스 2세가 현재 재위 중인 국가, 붉은색은 과거 재위했던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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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국가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비고 |
195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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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52.2.6 |
1956.3.23 |
4년 48일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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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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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52.2.6 |
1961.5.31 |
9년 118일 |
국민 투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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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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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52.2.6 |
1972.5.22 |
20년 112일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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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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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57.3.6 |
1960.7.1 |
3년 119일 |
국민 투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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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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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0.10.1 |
1963.10.1 |
3년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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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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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1.4.27 |
1971.4.19 |
9년 360일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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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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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1.12.9 |
1962.12.9 |
1년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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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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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2.8.31 |
1976.10.26 |
14년 61일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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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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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2.10.9 |
1963.10.9 |
1년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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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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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3.12.12 |
1964.12.12 |
1년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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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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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4.7.6 |
1966.7.6 |
2년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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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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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4.9.21 |
1974.12.13 |
10년 86일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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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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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5.2.18 |
1970.4.24 |
5년 67일 |
국민 투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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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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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6.5.26 |
1970.2.23 |
3년 275일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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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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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68.3.12 |
1992.3.12 |
24년 |
헌법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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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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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중) |
1970.10.10 |
1987.9.28 |
16년 358일 |
군사 쿠데타 |
위 표에서 '헌법 개정'은 따로 국민 투표도 없었고 군사 쿠데타도 없이 이뤄진 것만 한정한 것이다.[12]
왕위 계승 직후 여왕인 모든 나라에서 썼던 과거의 칭호는 다음과 같다(현재는 나라마다 다른 칭호를 따로 제정해서 씀).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Queen, Defender of the Faith(라틴어: Elizabeth II, Dei Gratia Magnae Britanniae, Hiberniae et terrarum transmarinarum quae in ditione sunt Britannica Regina, Fidei Defensor)
그리고 다른 여러 칭호들을 한데 다 통합해서 부르는 비공식 칭호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건 다음과 같다. 다만 정식 칭호는 아님에 주의.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와 해외 영국 자치령의 여왕, 신앙의 수호자, 에든버러 공작부인, 메리오네스 백작부인, 그리니치 남작부인, 랭커스터 공작, 맨 섬의 영주, 노르망디 공작, 가터 기사단장, 바스 기사단장, 씨슬 기사단장, 성 패트릭 기사단장, 세인트 마이클 앤드 세인트 조지 기사단장, 대영 제국 기사단장, 무공 기사단장, 제국 공로 기사단장, 인도성(星) 기사단장, 인도 제국 기사단장, 영국령 인도 기사단장, 인도 메리트 기사단장, 버마 기사단장, 로열 빅토리아·앨버트 기사단장, 에드워드 8세 로열 패밀리 기사단장, 오더 오브 메리트 기사단장, 컴패니언 오브 아너 기사단장, 빅토리아 여왕 기사단장, 성 요한 기사단장이신 엘리자베스 2세 폐하(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Queen, Defender of the Faith, Duchess of Edinburgh, Countess of Merioneth, Baroness Greenwich, Duke of Lancaster, Lord of Mann, Duke of Normandy, Sovereign of the Most Honourable Order of the Garter, Sovereign of the Most Honourable Order of the Bath, Sovereign of the Most Ancient and Most Noble Order of the Thistle, Sovereign of the Most Illustrious Order of Saint Patrick, Sovereign of the Most Distinguished Order of Saint Michael and Saint George, Sovereign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Sovereign of the Distinguished Service Order, Sovereign of the Imperial Service Order, Sovereign of the Most Exalted Order of the Star of India, Sovereign of the Most Eminent Order of the Indian Empire, Sovereign of the Order of British India, Sovereign of the Indian Order of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Burma, Sovereign of the Royal Order of Victoria and Albert, Sovereign of the Royal Family Order of King Edward VII, Sovereign of the Order of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Sovereign of the Royal Victorian Order, Sovereign of the Most Venerable Order of the Hospital of St John of Jerusalem)'
그런데 공식 칭호는 1953년 대관식을 맞으면서 그녀가 여왕으로 있는 나라마다 각각 칭호를 제정하게 되었는데 영국의 경우 아래와 같이 변경되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13]과 그 밖의 국가와 영토[14]의 여왕, (영)연방의 원수[15],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폐하(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er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영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의 칭호 및 현재 쓰지 않는 과거의 칭호들은 영어 위키백과에 있는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1953년 이후 엘리자베스 2세가 국가원수로 있는 국가들은 각각 별도의 칭호를 제정해서 사용하고 있으나 영국의 칭호와 형태가 대동소이하다.
이는 영국에서의 칭호며, 현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국가원수로 있는 나라(영연방 왕국)들은 저마다 칭호를 따로 정하게 되었다. 다른 영연방 왕국에서 사용하는 칭호도 대동소이하다.[16][17]
그리고 즉위 이후에 영연방 국가들이 새로 사용할 훈장을 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사단장으로서의 칭호가 덧붙여졌다.
'캐나다 기사단장, 오스트레일리아 기사단장, 뉴질랜드 기사단장, 바베이도스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밸러 기사단장, 캐나다 무공 기사단장, 캐나다 경찰 메리트 기사단장, 뉴질랜드 여왕 공로 기사단장, 뉴질랜드 메리트 기사단장, 바베이도스 성 앤드루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로거후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멜라네시아의 별 기사단장(Sovereign of the Order of Canada, Sovereign of the Order of Australia, Sovereign of the Order of New Zealand, Sovereign of the Order of Barbados, Sovereign of the Order of Valour, Sovereign of the Order of Military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Merit of the Police Forces, Sovereign of the Queen's Service Order, Sovereign of the New Zealand Order of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St. Andrew, Sovereign of the Order of Logohu, Sovereign of the Order of the Star of Melanesia)'
영국 왕립 해군의 사령장관, 노르망디 공작[18], 랭커스터 공작,[19] 맨 섬의 영주[20]이고 영국 성공회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한때 피지의 대추장(Paramount Chief)이었던 적도 있는데, 이는 피지 문서의 대영관계 절을 볼 것.
2017년 현재 3개 이상의 국가의 수장[21]인 유일한 사람. 영국이 공화정이 돼도 캐나다나 뉴질랜드나 호주가서 왕 하면 된다[22] 공화주의자들이 과반수를 차지한 스페인 왕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카더라 또한 현직 국가 원수 가운데 유일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23] 짧게 Elizabeth II, Her Majesty(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로도 쓴다.이라고만 쓰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당연한 것이, BBC는 영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국의 국영방송이므로 영국인들에게 '여왕 폐하'라 하면 엘리자베스 2세를 뜻하기 때문에 굳이 이름이나 어디 왕인지를 적을 필요가 없었던 듯 하다. 마치 일본인들에게 천황 폐하라 하면 아키히토를 뜻하듯이.">[24]
즉위 초 엘리자베스 2세의 명칭 사용에 있어 스코틀랜드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인 이유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있었기 때문인데 엘리자베스 1세 시기는 아직 연합왕국이 형성되기 이전이었다. 즉, 잉글랜드 입장에선 당연히 엘리자베스 2세지만 스코틀랜드 입장에선 그냥 엘리자베스[25]였던 것. 실제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별개의 국가인데 국왕만 같았던(동군연합) 시기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을 구분했었다.[26][27] 한 나라가 되고서부터는 계속 잉글랜드의 넘버링만 사용되었다.[28] 그러니 격분한 것.[29]
엘리자베스 2세라는 이름에 격분한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은 공공연히 엘리자베스 2세를 부정하며 무려 1707년 연합왕국 결성 당시의 연합법까지 들먹이며 법원에 소송까지 냈으나 법원은 "국왕 명칭 결정은 국왕 특권"으로 소송을 기각하여 법적 논쟁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스코틀랜드에서의 반발은 계속되어, 공보물이나 공공시설물에 표기된 엘리자베스 2세 표기에서 '2세' 부분을 훼손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30]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당시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31]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어느 쪽을 채택할 것인지 타협책을 제시했다. 향후의 국왕들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국 각각의 기준으로 ~~세 부분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경우 둘 중 숫자가 높은 쪽을 선택하게끔 한 것. 이 원칙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 뿐만 아니라 그 동안 그냥 잉글랜드의 넘버링을 따르고 스코틀랜드의 것은 무시했던 윌리엄 4세,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8세의 넘버링까지 합리화되었다. 1타 4피 윌리엄 4세,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8세 역시 잉글랜드 쪽의 숫자가 크기 때문.[32] 나머지 역대 영국 국왕들은 잉글랜드를 기준으로 하든 스코틀랜드로 기준으로 하든 넘버링이 우연히 일치하거나,[33] 양국 간에 동군연합이 성립(1603년)되기 이전에 양국에서 따로 모시던 군주들이므로 문제되지 않는다.[34]
타협책도 나온 데다가 무한정 이 문제만 붙잡고 있을 순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스코틀랜드인들의 반발은 일단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수시로 엘리자베스를 스코틀랜드에서만 그냥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곤 한다. 더불어서 여왕을 부르는 폐하에 해당하는 용어가 현재는 Your Majesty(2인칭)과 Her(남자 국왕일 때는 His) Majesty(3인칭)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건 헨리 8세 때 확립된 잉글랜드의 관습이고[35] 스코틀랜드는 줄곧 Your/His/Her Grace라고 했으므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이 관습대로 Your/Her Grace라고 불려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있다.[36] 물론 왕실은 계속 그 요구에 대해 계속 답을 하지 않고 기존 관례(즉 헨리 8세 이후 잉글랜드에서 쓰기 시작한 관례)를 쓰고 있다.
만약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가 가결됐으면 다시 이 이야기가 거론되었을 것이다. 투표에서 Yes(스코틀랜드 독립)이 다수로 결정되면 엘리자베스 2세를 여왕으로 하는 입헌군주국으로서 독립할 예정이었다(즉 영국과 동군연합을 이루는 형태로). 정말 독립하게 됐으면 엘리자베스 2세는 스코틀랜드에서 별도의 칭호를 쓰게 될 테니까 스코틀랜드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것이다.[37] 하지만 독립이 부결돼서 그 문제는 따로 논의될 새가 없었고 앞으로도 이게 거론되긴 힘들 듯하다.
혹시 향후 영국이 군주제를 죽 유지하고,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남거나 독립된 군주국이 된 상태에서 케임브리지 공작 윌리엄 왕세손이 즉위할 경우 다시 이 넘버링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 윌리엄 왕세손은 윌리엄 5세[38]로 즉위할텐데, 스코틀랜드에서는 윌리엄 4세가 돼야 한다고 태클이 들어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 주장을 할 사람들은 아마 19세기의 영국[39] 국왕 윌리엄 4세도 스코틀랜드에서는 윌리엄 3세로 추존[40]돼야 한다는 주장을 같이 펴게 될 듯하다. 영국 왕 윌리엄 4세가 스코틀랜드에서 윌리엄 3세가 돼야 현 윌리엄 왕세손이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4세가 될 수 있으니까.
입헌군주제가 이미 확립되어 근대 정치가 다 잡힌 상태에서 즉위하였기 때문에 정치 권력은 전무함에 가깝다. 게다가 본인도 이점을 생각해서 정치에 관해서는 발언 한마디 안하는 성향이 있어 현대 왕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심지어 1965년에 거행된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외에는 40년 가까이 총리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다가 2013년 마가렛 대처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할 정도. 그래서 그런지 영국 국민들의 평가가 매우 높은 편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정치 불화가 없는 선에서는 국정에도 일부 관여하고 있어 실은 영국을 움직이는 흑막 같은 모습도 보여주곤 한다. 예를 들면 전쟁 등의 민감한 사안의 경우 여왕의 승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 여왕이 이를 거부한 적은 한번도 없긴 했지만 불만을 표시한 적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영국 총리들의 중요한 정치적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여왕을 알현하여 보고서를 올리는 것인데 이 역시도 에피소드가 많다. 윈스턴 처칠은 친한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시가를 피우면서 대담하는가 하면, 마가렛 대처가 왔을 때는 대처가 자신을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15분쯤 기다리게 했다. 포클랜드 전쟁 때 마가렛 대처의 전쟁 준비안을 승인한 뒤에 "내 아들이 이번 전쟁에 참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다. 그녀(대처 여사)가 너무 서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말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자식을 전쟁터로 보내는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 야사 같은 이야기지만 대처의 신자유주의정책 등 정책 전반이 내키기 않아 아침마다 "오늘은 그녀가 얼마나 내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했는가?"라고 씹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래도 미운정이라고 2013년 4월 17일 엄수된 대처의 장례식에 처칠 이후 처음으로 왕실자격으로 참석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처음으로 여왕을 알현했을 때 "총리직을 맡게 되신 걸 축하합니다. 저는 12분의 총리를 만났지만요"라고 말해 캐머런을 쑥스럽게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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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TS(Auxiliary Territorial Service, 2차대전 당시 영국 육군 여군부대)에서 중위(subaltern)로 입대해 대위(junior commander)[41]로 진급하였다. 임무는 보급차량 운행이었다. 이 때문에 여왕이 2차대전 때 일개 운전병으로 참전한 것으로 와전되기도 한다. 활동한건 약 3주 정도였지만 2016년 현재 생존한 국가원수들 가운데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는 인물로 엘리자베스 2세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2009년에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65주년 기념식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초대하지 않아 여왕이 격노하고 국민적인 분노가 일어나는 등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노르망디에서 죽어나간 건 미국군과 영국군이었다. 당시 국가원수 중 유일한 참전용사이자 영국군의 총 사령관인 엘리자베스 2세를 초대하지 않는 행위는 그야말로 큰 결례. 비난 받는 가운데에도 사르코지는 정신 못차리고 "오는 건 환영하지만 노르망디 기념식은 전통적으로 미국-프랑스 간의 행사다"라는 발언을 해서 더욱 어그로를 끌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이 중재를 해서 어쩌어찌 넘어가긴 했지만, 여왕은 자신이 가는 대신 찰스 왕세자를 보냈다. 일단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집권기인 2014년의 D-Day 70주년 기념식에서는 참석했다.
또 하나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해외에 나간 상태에서 왕이 되어버린 국왕. 1952년 2월 6일 아버지 조지 6세가 암투병 도중 사망했을 때 자신은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냐를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로 자고 일어나니 여왕이 된 케이스. 엘리자베스 2세가 묵었던 트리탑 호텔(Treetop Hotel, 실제로 나무 위에 객실을 만든 호텔이다)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다. 여기에는 '공주로 올라가서 여왕으로 내려오다'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도 걸렸다. 주변에 야생동물이 많아서 전설적 사냥꾼이자 자연보호운동가 짐 코벳 육군대령이 밤새 잠도 안자고 경호를 서준 것도 유명한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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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성 대화재(1992.11.20)[42] |
의회개원식에서 제국왕관을 쓴 여왕 |
이후 1992년에 발생한 윈저성 대화재의 복구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것이라 추산되어 국민들의 반발이 있자 스스로 왕실이 가진 면세 특권을 포기하는 초 대인배적인 모습까지 보여줘 반발하던 여론을 한방에 잠재웠다는 전설적인 일화도 있다. 때문에 그 이후로 영국 왕실은 지금까지 계속 납세의 의무를 지고 있다. 진짜 대인배다.[43]
맏며느리였던 다이애나 스펜서와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나라 안팎에서 여왕을 비난하는 여론이 종종 나왔고,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직후 차가울 정도로 무관심하게 대응하자 급기야는 왕실 폐지를 주장하는 소리까지 터져나오기에 이르렀다.[44] 지금은 잠잠한 상황이지만 이때의 불씨가 아직도 잠복중이라서 영국의 공화주의자들도 여왕이 타계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1999년 영연방 왕국의 일원이자 영연방 주요 회원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여왕을 '호주의 군주'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헌법을 바꿔 공화정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운동 끝에 국민 투표가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는 54.87% vs 45.13%로, 대다수의 호주 국민들이 왕정 존속을 선택해 호주의 군주직을 유지하게 됐다. 당시 공화정 전환 운동의 지도자였던 말콤 턴불은 이후 공화정 전환 운동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여러 정치활동을 거쳐 2015년 결국 호주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됐다. 호주 국민들의 여왕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에 총리 당선 이후 계속되는 공화주의자들의 압박에도 공화정 전환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여왕이 만약 가까운 시일 안에 타계할 경우 말콤 턴불 총리가 호주 왕정 유지에 불안 요소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또한 호주의 공화정 국민 투표의 여파가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 다른 영연방 왕국들로 퍼졌다. 해당 국가들의 여론 조사 등을 봤을 때 여왕 사후 왕위 계승의 향방에 따라 영연방 왕국들의 군주제 폐지 여부가 결정될 확률이 높다.[45]
이와는 별도로 2010년대 들어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400년간 이어온 연합왕국의 왕관이 자기 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 10월,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가 2014년 분리 독립 투표를 시행하기로 합의하면서 여왕의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2014년 투표를 앞두고 영국 정가에서는 스코틀랜드 국민들에게 "앞으로 잘해줄테니까 제발 남아줘요"하며 읍소하고 있으며 여러 정치인들은 여왕에게 한마디라도 해달라고 호소하였다. 하지만 개인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독립 문제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선택에 따라야 한다며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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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부부 |
마운트배튼 백작과 여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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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찰스(1948~ ) |
차남 앤드루(1960~ ) |
3남 에드워드(196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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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손자 2명과 증손자 5명과 함께 촬영한 90세 생일 기념사진. 여왕이 안고 있는 아기는 샬럿. |
엘리자베스 2세/가족관계 참고.
오점이 있다면 그 놈의 자식들인데(…),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영국 왕실 스캔들이 여왕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나올 정도로 자식농사는 다 말아먹은 것 같다(…). 그래도 아들이나 손자가 간간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는 기사가 나오는 걸 보면 아주 희망이 없는 건 아닐지도. 남편인 에든버러 공 필립 마운트배튼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손자녀, 증손자녀는 엘리자베스 2세/가족관계 항목 참조 바람.
더불어 북아일랜드에서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는 1972년 1월 31일 일요일 비무장 민간인 학살사건 당시 가해자인 영국 군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한 사건도 오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문에 숙부이자 2차대전 당시 영국 해군원수였던 마운트배튼 백작 (1900 ~ 1979 , 필립 마운트배튼이 아니다!)이 IRA의 보복 폭탄 테러로 끔살[47]당하는 일도 겪어야 했다.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공은 영국 해군 대위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48], 문제아 취급을 받는 장남 찰스 왕세자도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1971~1976년까지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둘째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는 해군 헬기 조종사로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으며, 셋째 웨식스 백작 에드워드는 해병대 장교로 복무. 그리고 찰스 왕세자의 장남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왕세손은 군 통수권자가 되기 위해 육·해·공군을 순회한 후 공군 구조헬기 조종사로 복무 중이다.[49] 남동생 해리 왕자도 근위대 블루스 앤드 로열스 기병연대 소속으로 아프간에 파병되어 일선에서 전투소대장 임무를 완수하고 헬기 조종사 양성 코스를 수료했다. 국방부에서는 "해리 왕자 때문에 다른 전우들이 위험해진다"면서[50] 반강제로 귀국시켰지만, 그후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AH-64 조종사로 군복무 중이다. 2012년 9월 14일(현지시간)에는 탈레반이 해리 왕자를 죽이기 위해 그가 있는 기지에 공격을 가했으나 무사했다.해리 왕자 대신 수많은 미/영국군 인명/재산 피해가 난 것은 안 자랑 군대 안 가면 또 지랄거릴 거잖아
이렇듯 왕실 구성원 중 남성 전원이 군복무를 완료했거나 수행 중인 멋진 나라다. 그런데 신분이 신분인지라 일반병으로 복무하지는 않고 전원 장교로 복무했다.[51]신병 받았는데 왕자면 내무반 분위기 아작나니 아예 장교로 넣어주는 센스
엘리자베스 2세까지는 영국 왕족의 성씨가 윈저(Windsor)이고[52] 윈저 가(House of Windsor)의 일원이다. 하지만 그녀와 남편 필립공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둘의 성을 합쳐 마운트배튼-윈저(Mountbatten-Windsor)를 성(surname)으로 쓰게 되는데,[53] 왕가의 이름(family name)은 성과 구분해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윈저 가(House of Windsor)에 속하는 것으로 하도록 규정되었다. 보통 surname=family name=성씨이지만, surname과 family name을 구분한 특이 케이스에 속한다.[54]
여왕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꽤나 자주 영국의 부자스타들의 재력 측정기가 되곤 한다. 예를 들어 폴 매카트니는 전재산이 여왕보다 많다던지 J. K. 롤링의 재력이 세계 555위로 여왕보다 높다고 하는식으로 자주 이름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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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얼굴마담(?)으로 해외를 종종 국빈 방문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1999년 4월 19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당시 여왕은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서양에서는 발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데, 좌식생활을 하는 한옥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기 때문. 신발을 벗자마자 외신 기자들이 미친 듯이 플래시를 터뜨린 반면 한국 기자들은 '뭥미? 쟤들 왜 그럼?' 이랬다고. 문화의 차이. 마침 방문 날짜가 4월 21일이라서 간 김에 73회 한식 전통 생일상도 받았다. 엘리자베스 2세는 안동 하회마을에서 3박4일 일정으로 사용할 의전 차량으로 쌍용 체어맨을 선택했다고한다.
하지만 환영만 받는 건 아니라서,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연방 국가를 방문하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인도 공화국을 방문했을 때는 일부 인도인들이 야유하며 식민지 시절 자행된 학살과 약탈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영어로 '영국의 위대한 암캐 여왕'이라 적힌 걸개를 들고 가는 곳마다 끈질기게 따라다니기도 했다. 인도 정부는 이들을 물론 처벌 하지 않았고, 영국 언론은 인도가 변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1970~80년대만 해도 여왕이 인도를 방문하면 인도는 식민지 시절 그대로 꿈쩍도 못 했고, 인도도 국력이 강해지면서 식민지배의 앙금을 풀게 된 것이다.
과격 공화주의자들에게는 영국 왕실 전체가 기생충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영국에서도 왕정 폐지에 대한 여론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일례로 가디언지에서는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고는 "For republican"이란 단추를 만들어 이 기사가 눈에 안보이도록 하는 편집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다시 여는 것은 "근왕파" 단추. 하지만 동시에 결혼식날 파업을 한다고 "저런 반역도당" 같은 반응이 나오는 나라가 영국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왕실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문제 때문에 저런 비아냥을 듣는데, 여왕이 빈민 구제기금을 왕실 열병합 발전설비 보수비로 사용하려다 정부가 반발 여론을 의식해 거부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2012년에는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여왕에게 6,000만 파운드(약 1,050억 원)짜리 새 왕실 요트를 헌정하자는 제안이 나와 논란이 벌어졌다. 게다가 이 제안을 한 사람은 마이클 고브 교육장관인데, 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학교 예산까지 긴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비난이 심했다. 이후 2016년 브렉시트가 확정되자 다시 왕실 요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영연방 국가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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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몬트리올 올림픽 개회식(1976.7.17) |
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2012.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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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7일, 증조부 에드워드 7세가 1908 런던 올림픽을, 아버지 조지 6세가 1948 런던 올림픽을 개회한 것에 이어 여왕도 1976 몬트리올 올림픽.[56]2012 런던 올림픽을 개회했다. 또 1956 멜버른 올림픽은 여왕을 대신해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이 개회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영연방 국가에서 열린 3번의 올림픽 즉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여왕이 아니라 총독이 개회했다. 이들 영연방 국가들이 같은 군주를 모시지만, 엄연한 독립국으로서의 면모가 강화되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3년 4월 8일, 영국의 前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의 사망에 큰 슬픔을 드러내며 유족에게 조의를 표했고, 대처의 장례식을 국장보다 한 단계 낮은 군장 규모로 치를 것을 명했다.[57]
인터넷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인 1976년 3월 26일에는 이메일을 최초로 보낸 군주로 기록됐으며, 2014년 10월 24일에는 트위터에 생애 첫 트윗을 올렸다.
2015년 6월 3일, BBC 기자의 실수로 여왕이 사망했다는 글이 트위터 계정에 올라왔다가 삭제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여왕이 고령이다보니 영국 사회가 여왕의 승하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6년 12월, 독감에 걸린 여왕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예배와 신년 예배에 불참해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었으나 2017년 1월 8일 2주만에 왕실 가족과 함께 예배에 참석해 우려를 불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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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차로는 특수제작된 벤틀리를 탄다.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이라고 불린다. |
2015년 7월 18일, 1933년 어린 엘리자베스 2세가 나치식 경례를 하는 영상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었다. 물론 나치식 경례가 금기 중의 금기이지만, 그때는 나치가 악의 축 낙인이 찍히고 스바스티카가 악의 상징이 되기 전이다[58].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2세는 겨우 7살이었고 엘리자베스 2세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의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의 친나치 행보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영상에서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례를 시키는 사람이 에드워드 8세이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11일, 여왕의 생일 공식 기념 행사에서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 나온 왕실 가족이 시민들의 축하를 받을 때 왕세손이 아들 조지와 놀아주면서 앉아 있자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일어나라고 핀잔을 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화제가 되었다.(#)
2016년 3월 9일, 더 선이 해당 일자 신문 1면에 '여왕이 브렉시트를 지지한다'고 기사를 내자 버킹엄 궁전측은 지난 63년 동안 여왕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며 해당 기사를 독립언론윤리위에 제소했다. #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전인 2016년 6월 21일, 여왕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동석한 사람들에게 영국이 유럽연합에 잔류해야 할 이유 세 가지만 대보라고 질문했다고 왕실 전기 작가 로버트 레이시가 밝혀 논란이 벌어졌다. # 레이시는 해당 질문이 여왕의 통상적인 토론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뿐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은 상황. 게다가 브렉시트를 지지했다는 설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 상태이다.#
2017년 1월 현재 영국 내 황색 언론들 사이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가 브렉시트를 지지하였으며 이를 실제로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가 국가 현안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것과 대비되게, 이례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비공식 석상에서라도 표출하고 이것을 전기작가가 누설한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현재 영국 황색 언론들 사이에서 나오는 가장 유력한 이론은 엘리자베스 2세가 영연방 국가들과 영국의 관계는 물론 영연방 자체가 자신의 사후 흔들릴 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황색 언론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고 한다. 데일리 메일의 왕실 소식통은 "현재 여왕 사후 왕위 계승 1위 후보인 찰스 필립 아서 조지는 오래 왕위에 있지 못할 것이고, 이후 2위 후보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가 왕좌에 앉을 것이 분명하다. ... 그는 EU 체제 내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연방 왕국을 유지하는데 그의 할머니 만큼 열성적이지 못하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즉,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영연방 복귀 없이는 자신의 사후 영연방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을 구하기 위해 브렉시트를 지지했다고 한다. 또한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 당시 부총리를 역임한 영국 자유민주당 정치인 닉 클레그의 주장에 따르면, 2011년에 이미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의 유럽 연합 잔류와 이로 인한 영연방의 약화에 부정적 의견을 표출한 적도 있다고 한다.[59] 다만 이건 닉 클레그 개인과 익명의 왕실 소식통의 주장일 뿐이며, 영국 왕실의 공식적 입장은 절대로 아니다.
1999년 호주 공화정 전환 국민 투표와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등으로 지위에 위기를 맞기도 했으며, 브렉시트 이후 스코틀랜드의 불안정이 다시 지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파운드와 영국 속령에서 사용하는 지폐의 모델이다. 또한 호주 달러와 캐나다 달러, 뉴질랜드 달러 지폐와 동전의 모델이다.
여기로 가보면 종류별로 다 있다. 심지어는 어린시절 사진이 지폐모델이 된 것도 있다.
"'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
살아있는 역사요 전설. 아직도 정정하시다(…). 2017년 현재 90세이며[60] 재위기간은 65년째로, 영국 역사상 가장 장수한 군주이자 가장 재위기간이 긴 군주다. 2015년 9월 9일 오후 5시 30분이 경과함에 따라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63년 216일 16시간 30분을 경신 하게 되었다. 여왕은 이 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행사 없이 에든버러 인근에서 열린 열차 노선 개통식에 참석한 후 왕세손 부부와 저녁 만찬을 가졌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여왕이 지난 63년간 끊임없이 변화하는 버팀목이 되어줬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현재 생존한 군주들 중에서는 2016년 10월 13일 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이 재위 70년 126일로 사망하고 , 2015년 1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이 향년 91세로 사망함에 따라 2016년 기준으로 생존한 군주 가운데 최고령이자 오래 재위한 군주가 되었다. 2017년 2월 6일 재위 65주년 사파이어 주빌리를 맞았다. 서구 군주 가운데서는 소국의 제후(그것도 1명)을 제외하고는 최장수한 빌헬름 1세의 만 91세를 1년 앞으로 두고 있으며, 역시 근대 이래 가장 오래 재위한 프란츠 요제프 1세(만 68년 재위) 다음으로 오래 재위한 서구의 (대국) 군주이기도 하다. 만약 10년만 더 살아서 재위 72년을 경신한다면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 즉위한 루이 14세의 기록을 갈아치울 수도 있다. 여왕의 모후 엘리자베스 보우스 라이언 왕대비가 102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여왕이 96세가 되는 2022년에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를 거행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근대 이래 여든을 넘긴 60년 이상 재위한 5명의 (대국) 군주 가운데 한 명인데, 나머지 넷은 거론된 빅토리아, 푸미폰, 프란츠 요제프, 그리고 히로히토가 그들이다. 근대의 범위를 넓히면 청나라의 건륭제도 들어가게 된다. 8060클럽 2014년부로 만 88세에 다다르면서 히로히토보다 장수하게 되었고, 재위기간도 넘겼다.
이 때문에 2002년에는 즉위 50주년을 기념하는 금 희년(골든 주빌리) 행사[61]가 있었고, 2012년에는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 희년(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가 거행되었다. 2013년에는 초상화가 들어간 즉위 6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는데 여왕이 아니라 마가렛 대처를 닮았다는 구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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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에게 양위하라고? 그럴 생각 없거든? |
한때 즉위 60주년 되는 해인 2012년에 찰스 왕세자에게 양위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여왕 본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전임 국왕이 사망해야 후임자에게 왕위가 승계되는 영국 왕실의 전통도 있거니와, 여왕의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남동생 조지 6세에게 양위한 것이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받는 걸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기 때문. 아흔을 바라보는데도 매우 건강한데다 모후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는 101세까지 장수했기에 찰스 왕세자의 즉위가 한참 멀어보인다. 2016년 90세 생일을 맞았을 때 왕실 전기작가 휴고 비커스는 같은 90살이었을 때의 엘리자베스 왕대비보다 더 건강해보인다며, 왕위 승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2007년에는 필립 공과의 결혼 6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는데 영국 군주정 역사에서 가장 긴 결혼 생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막내아들 빼고는 자식들이 죄다 이혼하는 통에 부모 금슬에 먹칠 2011년 6월 10일에는 필립 공의 90세 생일이 있었다.
이렇듯 장수하다 보니 찰스 다 죽게 생겼다 이놈들아 왕위를 계승 중...안되잖아?! 여왕 즉위 후 거쳐간 역대 총리가 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앨릭 더글러스흄,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제임스 캘러헌, 마가렛 대처, 존 메이저,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까지 13명에 달하며 특히 토니 블레어는 1953년생이라서 여왕 재위기간 중 태어나 총리가 된 첫 사례. 고든 브라운은 1951년생으로 빗겨나가고 캐머런은 말할 것도 없다. 메이 역시 1956년생으로 재위기간 중에 태어났다.
또한 재위중 만난 미국 대통령 역시 무려 11명(…)[62]
2012년 6월 4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여왕이 퇴위한다거나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를 건너뛰어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왕세손이 즉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 여왕이 2013년 11월에 열리는 영연방 정상회의에 불참하고 찰스와 카밀라 부부를 대신 보내기로 해 왕위 승계를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63] 1971년의 첫 회의를 제외하면 여왕이 영연방 정상회의에 불참한 적이 없었던 것도 이러한 주장을 나오는 데 한몫했다. 2013년 7월에는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비가 출산 예정일을 넘겼는데도 출산 소식이 없자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으니 내가 휴가 떠날 23일 전에만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7월 22일,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비가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조지 왕세증손을 순산함에 따라 3대 뒤에 왕이 될 증손자까지 보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기록은 빅토리아 여왕 재위 중인 1894년에 에드워드 8세가 태어난 이후 119년만의 일이다. 2015년 5월 2일에는 캐서린 왕세손빈이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공주를 순산함에 따라 외동딸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 이후 25년만의 로열 프린세스도 보게 되었다.
여담으로 고구려의 장수왕도 하도 오래 즉위한지라 (79년) 태자가 그보다 먼저 죽었다.(다만 장수왕의 재위기간은 논란이 많은 편) 따라서 장수왕의 후계자인 문자명왕은 그의 손자였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지? 찰스 안습 2010년대에 들어와 바티칸, 네덜란드, 카타르, 벨기에, 스페인, 일본 등 세계 각지의 군주국에서 국왕이 후계자에게 양위하고 물러나거나 물러날 예정이라 엘리자베스 2세도 동일한 수순을 밟을 지가 관심사지만 아직까지는 양위에 대한 언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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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공식 초상사진 |
2012년 2월 6일부로 재위 60주년(다이아몬드 주빌리)을 맞았는데 이는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가 거행된 1897년 이후 115년만의 경사.관련기사 여왕은 영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공화주의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가급적 기념행사의 규모를 축소해서 낭비를 줄이려고 하지만, 정부에서는 2012 런던 올림픽 개최와 맞물려 관광객을 대거 유치할 수 있는 호기로 보고 각종 행사를 준비했다.
2월 3일, 100만 그루 나무 심기 캠페인에 참석해 첫 번째 나무를 심는 것으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시작했다. 2월 6일은 60주년 당일이지만 부왕 조지 6세의 기일이기 때문에 행사가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이날 노퍽 주의 소도시 킹스린과 샌드링엄 및 인근 학교를 방문한 여왕은 어린이와 시민들을 만나 축하를 받았으며, 즉위 60주년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데 다시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런던 하이드 파크와 에든버러, 고스포트에서는 축포를 쏘았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여왕의 통치에 존경을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월 8일,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에서 여왕을 찍은 사진 1백점이 4월 22일까지 전시된다. 2월 15일, 여왕과 필립 공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의 공관인 램버스 궁전에서 다종교 지도자들이 함께한 즉위 60주년 기념 리셉션이 열렸다.
3월 10일,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6월 본행사를 앞두고 주빌리투어 일정을 시작했다. 이 여행은 오는 7월까지 와이트 섬, 버밍엄, 머서티드빌, 에든버러 등을 거칠 예정이다. 남편과 손자며느리를 대동한 여왕이 제일 먼저 방문한 도시는 레스린으로, 이를 기념해 도시의 광장을 주빌리 스퀘어로 개칭하고 여왕이 참관한 가운데 명판 제막식을 가졌다. 여왕 일행은 드몽포르 대학에서 학생들이 연 패션쇼를 관람한 후 레스터 성당에서 열린 감사성찬례에도 참석했다. 3월 20일, 의회를 방문해 재위기간 동안의 감회를 밝히는 연설을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영국적인 덕목으로 복원력, 창의력, 관용성 등을 예찬한 여왕은 영국군의 희생과 용기, 영연방 내 우호관계 증진 등을 강조했다. 이날 영국 의회는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의원들의 사비를 모아 1,500 조각의 유리로 왕실 문장을 나타낸 스테인드글라스를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공개했다. 한편 왕세자와 콘월 공작부인이 주빌리투어의 일환으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을 순방하기 위해 이날 출국했다. 3월 23일, 영국 역사상 즉위 60주년을 맞은 국왕은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2세뿐이며 영국 국회의사당 서쪽에 빅토리아 타워가 있는 만큼 그동안 영국을 위해 헌신한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빅 벤을 '엘리자베스 타워'로 개명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3월 24일, 주빌리 투어로 맨체스터를 찾은 여왕 부부가 한 서민 커플의 결혼식에 깜짝 참석해 부부와 하객 모두를 놀라게 했다. 평소 왕실의 열렬한 팬이었던 존 캐닝이 버킹엄 궁전에 청첩장을 보냈지만 당연히 거절되었는데, 마침 그의 결혼식날 주빌리투어 공식 일정으로 맨체스터를 방문한 여왕 부부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는 결혼식장을 찾은 것.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4월 16일, 장녀 앤 공주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3일간 방문했다. 4월 19일,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의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로 어린이 20만명이 그린 자화상이 여왕의 초상화와 함께 버킹엄 궁전 정면에 3일간 영사된다. 4월 26일, 3남 에드워드 왕자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여기서 에드워드 왕자는 고조부 에드워드 7세가 152년 전 왕세자 시절에 방미해 2그루의 나무를 기념식수했던 필라델피아 지라드 칼리지(Girard College)를 찾았다.
5월 2일, 차남 앤드루 왕자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인도 공화국을 이틀간 방문했다.
5월 10일, 17개국에서 온 550두의 말과 1,200명의 무용수들이 참가한 윈저호스쇼가 왕실의 성원하에 13일까지 개최되었다. 여왕 부부가 참석한 폐막식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수잔 보일과 호주의 유명 연예인 롤프 해리스의 공연이 있었다. 5월 14일, 마담 투소 박물관이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해 새로 제작한 여왕과 필립 공의 밀랍 인형을 공개했다. 5월 17일, 1952년 즉위한 이래 현재까지의 여왕을 주제로 한 60점의 회화 작품이 선보이는 'The Queen: Art & Image'전이 영국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10월 21일까지 열리는데, 김동유 교수가 아시아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대되었으며 다이애나비의 사진 1,106개로 여왕의 얼굴을 완성한 사진을 출품했다.
5월 18일, 세계 각지의 군주국 왕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이아몬드 주빌리 기념 점심 만찬이 윈저성에서 열렸고, 저녁에는 찰스 왕세자가 주최하는 만찬이 버킹엄 궁전에서 열렸다. 사진에 등장하는 왕족들은 다음과 같다.(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볼드체는 당시 촬영 시점 기준으로 현직 국가원수.
앞줄 : 일본 덴노 아키히토,전 네덜란드 여왕 베아트릭스,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64], 전 그리스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 전 루마니아 국왕 미하이 1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전 불가리아 국왕 시메온 2세[65], 브루나이 술탄 하사날 볼키아,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 스와질란드 국왕 음스와티 3세, 리히텐슈타인 대공 한스-아담 2세
가운데줄 : 모나코 대공 알베르 2세, 룩셈부르크 대공 앙리, 레소토 국왕 레트시에 3세, 벨기에 국왕 알베르 2세,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 카타르 에미르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바레인 국왕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말레이시아 아공 압둘 할림
뒷줄 : 쿠웨이트 에미르의 사촌 나세르 모하메드 알자베르 알사바, 아부다비 왕세자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전 유고슬라비아 왕세자 알렉산다르, 통가 국왕 투포우 6세, 타이 왕세자 마하 와치랄롱꼰, 모로코 공주 랄라 메리얌,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조카 모하메드 빈 나와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같은 날 버킹엄 궁전 앞에서는 바레인 국왕이 행사에 초청된 것을 규탄하는 인권단체들의 시위가 있었다. 그가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독재로 국민을 억압하기 때문이라고. 5월 19일,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하는 군대의 열병식이 윈저에서 열렸다. 5월 21일, 찰스 왕세자 부부가 주빌리 투어로 4일간 캐나다를 방문한다.
다이아몬드 주빌리의 본격적인 행사는 임시공휴일인 6월 2일부터 6월 5일까지 나흘간 열린다.(관련기사) 이 기간 동안 들어가는 행사 비용은 세금을 포함해 1,200만 파운드(약 216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영연방 15개국에서는 2,012개의 기념등을 밝히는 행사를 개최한다.
임시공휴일의 첫날인 6월 2일, 영국 최고 권위의 경마대회 '엡섬 더비(Epsom Derby)'가 개최되어 여왕과 왕실 가족이 관전했다. 엡섬 더비의 개막을 통해 나흘간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대회에는 경마팬인 여왕의 경주마도 출전했다.
6월 3일, 왕실이 국민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빅 런치가 열려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의 분위기를 돋구었으며 한턱 쏘신 여왕님 찰스 왕세자 부부도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를 방문해 시민들과 함께 축하했다. 이번 거리 파티를 위해 영국 주요 도시에서 9,500건의 거리 폐쇄 신청이 허가되었다. 또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포함한 331명의 의원들이 영국 국회의사당의 빅 벤을 '엘리자베스 타워'로 개명하는 캠페인에 서명했는데,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해 의사당 건너편 광장의 타워를 '빅토리아 타워'로 개명한 전례를 따랐다고. 템스강에서는 여왕 부부와 왕실 가족이 첼시 부두에서 로열 바지선 스피릿 오브 차트웰 호에 승선한 가운데 대규모 수상 퍼레이드가 열렸다. ## 스피릿 오브 차트웰 호는 해군 함정과 영연방 53개국에서 온 선박 및 9백여 척의 민간 선박 등 도합 1천여 척의 호위선을 거느리고 템스강 서쪽 배터씨 브리지에서 출발해 동쪽 타워 브리지까지 11km 구간을 90분간 항행했으며, 비가 오는 날씨에도 150만명의 군중이 강변과 다리에 운집해 350년 만에 최대 규모로 수상 퍼레이드가 거행되었는데, 왕실 가족이 외부에 장시간 노출되기 때문에 경호선 190척과 경찰 5,500명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한편 영국의 소도시 글로스터에서 중세부터 이어진 관례에 따라 자기 고장의 전통음식인 칠성장어 파이를 2002년 골든 주빌리(즉위 50주년) 때와 마찬가지로 여왕에게 선물로 보냈는데 글로스터산 칠성장어가 급감하면서 미국와 캐나다의 오대호에서 수입한 칠성장어로 파이를 만들어 논란이 벌어졌다.
6월 4일, 여왕의 부군인 에든버러 공 필립 마운트배튼이 전날 있었던 수상 퍼레이드 참석 후유증으로 급성 방광염 증세를 보여 런던 킹 에드워드 7세 병원에 입원했다. 비가 오는 날씨에 2시간 가까이 선 채로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다이아몬드 주빌리 콘서트를 비롯해 5일에 열리는 세인트 폴 대성당 기념 감사성찬례와 거리행진에 필립 공은 불참하지만 여왕은 공식 일정을 그대로 소화할 예정이다. 버킹엄 궁전 앞에서 로비 윌리엄스.윌.아이.엠, 제시 제이, JLS, 게리 발로, 셰릴 콜, 클리프 리처드, 랑랑, 알피 보, 줄스 홀랜드, 루비 터너, 그레이스 존스, 에드 시런, 애니 레녹스, 러네이 플레밍, 톰 존스, 셜리 베이시, 카일리 미노그, 엘튼 존, 스티비 원더, 매드니스, 폴 매카트니 등이 공연한 대규모 야외 콘서트가 성황리에 열렸다. 한편 영국 전역과 영연방 국가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4,180개의 횃불을 밝히는 행사가 열렸다. 횃불 점화는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40주년과 60주년 때의 행사를 재연한 것으로 오후 10시에 첫 점화가 시작되어 버킹엄 궁전 앞에서 열린 다이아몬드 주빌리 콘서트에 참석한 여왕이 마지막 횃불을 점화히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6월 5일,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2천의 인사가 함께 한 기념 감사성찬례를 마친 여왕과 왕실 가족은 근위대와 기마대, 군악대의 호위를 받으며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버킹엄 궁전까지 마차로 행진했으며, 트라팔가 광장부터 궁전 앞의 더 몰(The Mall)까지 모인 군중은 약 150만으로 추산되었다. 이밖에도 길드홀에서의 리셉션과 웨스트민스터 홀에서의 점심 만찬이 있었다. 나흘간 이어진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는 여왕이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 축제 기간 동안 아낌없는 환호와 축하를 보내준 군중들에 대한 답례를 하고 영국 공군기가 궁전 상공에서 공중 분열식을 펼치는 것으로 대단원을 막을 내렸다.관련기사 이 날 여왕은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 방영된 대국민 연설에서 '나를 겸허하게 만든 경험'이었다며 국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여왕이 대국민 연설을 한 것은 1997년 다이애나비의 교통사고 사망 이후 15년만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미영 양국은 오랜 기간 특별한 관계 속에서 역경도 있었지만 항상 동맹을 유지했으며, 여왕은 이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라고 축하했다.관련기사
6월 26일,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이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북아일랜드를 이틀 동안 방문했다.
9월 11일, 왕세손과 캐서린 왕세손비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솔로몬 제도, 오스트레일리아 등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국가를 10일간 방문했다.
11월 4일, 왕세자와 카밀라 파커 보울스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파푸아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의 영연방 국가를 13일간 방문했다.
현재 나온 미디어 매체 중 엘리자베스 2세를 직접적으로 다룬 것이 있다면 바로 2007년의 더 퀸(The Queen). 영국 출신의 여배우 헬렌 미렌이 여왕 역을 맡아 토니 블레어의 취임부터 며느리인 다이애나비의 장례식까지의 여왕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여왕의 노동당과 다이애나에 대한 반감이 포인트로 블레어의 설득으로 결국엔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다이애나에게 보내는 추도사를 읽었다. 이 영화로 배우 헬렌 미렌은 2007년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된다.
애니메이션 카 2에선 롤스로이스 팬텀(Phantom) 1세대 모델로 등장. 성우는 영국배우 버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이다. 월드 그랑프리 영국 레이스에 참관하는데 시한폭탄이 장착된 메이터가 바로 앞에 난입하는데도 상황을 지켜보자며 여유를 부리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건이 해결된 이후 메이터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다. 검 대신에 느릿느릿 뽑히는 안테나를 사용하는 모습이 웃음포인트.
영화 2012에서는 애완견 두 마리를 데리고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과 함께 방주에 허겁지겁 탑승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유전자 다양성이 아니라 돈을 보고 태운거 아니냐고 폭풍 까인다
킹스 스피치에도 등장. 다만 아역.
애니메이션 미니언즈에서도 나온다. 영화의 배경이 1968년도라 젊은 시절 모습으로. 사실 젊다는게 지금보다 젊다는거지 일반적인 젊음이 아니라 40대가 넘은 아주머니였는데 저렇게 표현 전투력이 대단하다(...).
영화 킹스맨에선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발렌타인의 계획에 영국 왕실과 함께 전원 참여한 것으로 나온다.
영화 유스의 막바지에 에든버러 공과 함께 등장하여 심플송을 듣는다.
달렉의 눈이 꺼져있다
영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여왕은 영국 드라마 닥터후의 올드 시즌을 재미있게 시청했다고 하며, 지금은 닥터후 뉴 시즌을 본다고 한다. 영국 최강 후비안 이러한 점 때문인지 닥터후에 등장한 적도 있다. 제작자들은 실제로 여왕을 등장시키려고 한적도 있었다고 하나 결국에는 불발.
여기서는 닥터후 뉴 시즌을 기준으로 정리했다.
뉴 시즌 2 에피소드 8 "바보 상자(The Idiot's Lantern)"에서는 여왕의 대관식이 텔레비전을 통해 영국 전역으로 생중계되는 것을 이용해 인간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려한 외계인이 나오는데, 이 때 등장한 여왕의 영상은 1953년 6월 2일에 거행된 실제 대관식을 촬영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스페셜 "크리스마스 침공(The Christmas Invasion)"에서는 영국에서 발사한 외계탐사선 귀네비어호에 실어보낸 A형 혈액을 이용해 시코락스가 지구의 A형 보유자들을 혈액 컨트롤할 때 여왕을 포함한 왕실 가족들도 버킹엄 궁전 지붕 위에서 뛰어내릴 뻔 했다.
크리스마스 스페셜 "저주받은 자의 항해(Voyage Of The Damned)"에서는 크리스마스마다 외계인이 런던을 습격하는 사태로 인해 공포에 질린 런던 시민들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다들 교외로 피난갔지만 여왕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버킹엄 궁전에 그대로 머무른다. 별일 없이 지나가나 싶었다가 하늘에서 우주선 타이타닉 호가 버킹엄 궁전으로 돌진하자 닥터가 건 비상전화를 받고 보안코드 771(긴급사태)이니까 당장 나오라는 연락에 황급히 바깥으로 나오지만 충돌 직전에 우주선이 궁전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갔다. 여왕은 우주선을 향해 손을 흔들며 "고마워요, 닥터. 메리 크리스마스"라 인사했다.
부활절 스페셜 "죽음의 행성(Planet of the Dead)"에서는 타디스가 버킹엄 궁전 정원에서 발견되지만 자기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닥터에게 옮겨다주었다.
뉴 시즌 5 에피소드 3 "지하의 야수(The Beast Below)"에서는 51세기의 영국 여왕 리즈 10세가 닥터와 선대 왕들과의 인연을 나열하며 "리즈 2세와 다과를 함께 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또하나, 토치우드 연구소는 영국 국왕의 직속 기관인만큼, 엘리자베스 2세는 토치우드의 수장이시다. 작중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 설정이지만, 캐너리 워프 전투 이후 페허가 된 토치우드 1의 폐쇄를 명령한 것도 이분이시다.
또한 BBC가 쓴 글 중 하나인 '영국의 유명한 후비안'에 따르면, 9대 닥터가 최애 닥터이신 듯 하다.
BBC 드라마 셜록 시즌 2 에피소드 1에서는 어느 왕족 아가씨의 방탕한 사생활을 뒷수습하려고 셜록과 존을 버킹엄 궁전으로 불러들여 대리인을 통해 사건을 의뢰했다. 사실 이 에피소드 어디에서도 여왕의 이름이나 모습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뒤통수에 대고 셜록이 바이올린으로 God save the Queen을 연주했기 때문에(…).
넷플릭스 오리지날 드라마인 더 크라운에서 즉위 직전부터 즉위 이후 부분을 다룬 드라마가 공개되었다.
사우스 파크에서도 잠시 등장했는데, 해당 에피소드에서 함대를 동원해서 미국을 다시 영국의 식민지로 만들려다가 주인공들의 저지로 인해 실패한다.[66] 미국 침공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권총을 입에 넣고 격발해서 자살하는데, 워낙 충격적인 장면이라 영국 방영 당시에는 삭제되었다.
본격 등장인물들이 죄다 정상이 아닌 헬싱에서 나온다. 최후의 대대 때문에 열린 작전회의 때 아카드가 여왕 앞에서 예를 표하는데 이때 대사를 보면 여왕이 어릴 적에 아카드와 만났던 모양.[67] OVA 판에만 나오며 성우는 후지타 토시코. 밀레니엄의 선전포고를 듣고는 인테그라와 아카드에게 밀레니엄을 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최후의 대대가 런던을 침공했을 때 왕실 및 소수의 고위층들이 캐나다로 피난 갔었기 때문에 그녀도 그 끔찍한 학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카포3에서 본편의 주무대인 런던 지하의 마법학교 카자미도리 학원의 학원장을 겸임하는 걸로 나온다. 당연한 거지만 공략가능한 히로인은 아니다(다만 아주 짧게 1.3DASH와 D.C.3R에서 루트를 탈 수는 있다). 천리안을 가지고 있어 마법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면 그걸 감지하고 해결할 카자미도리 학원 내의 특정 단수 내지 다수의 인물에게 여왕의 종을 울려 해결할 것을 명령하는 걸로 나온다. 기존의 마법학교를 개혁해 카자미도리 학원을 지금의 체제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릿카와는 약 30년 전부터 아는 사이이고,그녀의 밑으로는 일반 사무직으로 변장한 마법사들이 다수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또한 히메노가 아직 아기이고 키요타카가 카츠라기가에 입양되기 전 히메노의 부친과 만나서 키요타카 남매와는 어느 정도 면식이 있다. 성우는 T.P. 사쿠라 ~시공수방위전~에서 아사쿠라 준이치를 맡은 카세 아이나.
사실 현실과는 영국의 여왕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적은데 우선 애칭이 리즈[68]이며 다카포3 본편의 시간배경은 1950년 말~1951년 초인데 위의 엘리자베스 2세의 재위기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즉위하지도 않았다. 나이 역시 마법으로 노화하지 않는지라 젊어보이는 것과 달리 50대인 걸로 나오는데[69] 현실에서는 20대 중반이었다. 애니판에서는 원작과 달리 미래편에도 등장하는데 학생회장으로 본편과 프롤로그 & 에필로그에서의 이름이 다른 서브 캐릭터들과 달리 다른데 에리 안젤라 아서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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