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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알고싶다] - "은어"란?...
2017년 02월 12일 15시 46분  조회:6487  추천:0  작성자: 죽림
 

요약 특수한 집단이나 계층 또는 사회에서 남이 모르게 자기네끼리만 쓰는 말.

 

변말이라고도 한다. 같은 환경에 있거나 특정하게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집단에서 흔히 발생하며, 타인이 이해하기 어렵게 하고 구성원간의 결속력을 강하게 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은어는 음절의 도치·전환·첨가, 경음·격음의 사용, 의태·의성어 등 음성상징의 이용, 연상과 비유 등을 통해 형성된다.

대체로 거지·범죄인 등 소외집단에서 많이 사용되며, 학생·군인 등 청년층에서도 많이 쓰인다. 한국에서는 심마니(산삼캐는 사람)의 은어가 많이 연구되어왔다. 은어의 예를 들면 왕초(거지대장)·양아치(동료거지)·똘마니(어린 거지) 등의 걸인어, 토끼다(도망가다)·빵가다·먹통(변기) 등의 범죄인어, 곡차(술) 등의 승려어 등이 있다.

은어는 일반 어휘와 마찬가지로 출생·성장·유행·도태의 과정을 거친다. 은어가 오랫동안 사용되어 다른 집단에서도 쓰이게 되면 그 집단에서는 은어로서의 성질은 사라지고 보통어로 변하기도 한다.→ 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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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란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사용하는 말이에요.
은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집단의 구성원들끼리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집단의 비밀을 지켜 이익을 유지하는 데 쓰여요. 따라서 은어가 일반 사회에 알려지게 되면 그 단어는 은어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지요. 집단의 사람들은 그것 대신 새로운 은어를 다시 만들어서 그 비밀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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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주 삼패 을씨 을씨본 살본 땅본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은어를 사용하면, 은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로 인해 그 사람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어요. 또 예의 없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더구나 사용한 은어가 비속어인 경우 말하는 사람의 품위가 떨어지고 듣는 사람이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 소속감(所屬感) :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
* 동질감(同質感) : 서로 성질이 비슷해서 익숙하거나 잘 맞는 느낌
* 소외감(疎外感) : 주위에서 따돌림을 받는 것 같은 느낌

 

보통어와 대립되는 말로서 변말이라고도 한다. 은어는 같은 환경에서 같은 운명에 놓여 있거나, 공통된 생활을 영위하면서 어떤 고립된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사이에서 발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학생·군인·체육인 등 주로 청년층으로 구성된 집단에서 쓰이는 독특한 집단언어, 그리고 직업에 따라서 특수하게 쓰이는 특수어(직장어)도 은어라고 하는 수가 있다. 은어와 보통어와의 차이는 주로 어휘에 있으며 문장구조 등은 일상적인 보통어와 다른 점이 적으나 때로는 보통어와 다르게 변형시킨 짧은 문장을 이용하는 수도 있다.

은어로 사용되는 어휘는 대개 그 집단 안에서 공동적으로 발달시킨 것인데, 그 구성은 의태어·의성어를 발달시켜 사용하는 것, 음절을 도치(倒置)시킨 것, 음운을 첨가시킨 것, 경음과 격음(激音)을 이용한 것, 음절을 생략한 것, 비유를 이용한 것, 연상법(聯想法)을 활용한 것, 외국어를 이용한 것 등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으나, 어원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전체 어휘로 보면 용언보다는 명사가 훨씬 많고, 관형어나 한정어(부사) 등은 드물다.

우리 나라 은어로는 산삼채취인(山蔘採取人)들의 은어가 상당히 많이 연구되어 왔으며, 이 밖에도 상인·운수업자·학생·범법자(犯法者)·유흥업소 등의 은어가 조사되어 있다. 산삼채취인의 은어는 백두산·설악산·소백산 등 고산지대에 걸쳐 분포되고 있음이 밝혀졌으며, 상호 공통되는 어례(語例)는 극히 드물고 대개 각 지역별로 발달된 것들이다.

산삼·천문·지리·시령(時令)·신체·인륜(人倫)·의복·동물·음식·기구·수목·화소(禾蔬) 등 명사에 관한 은어가 대부분이고, 동사에 관한 은어는 극소수가 쓰일 뿐인데, 이런 현상은 다른 부문의 은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산삼채취인의 은어를 몇 개 들면 심(산삼)·심메꾼(산삼채취인)·어이마니(老人)·네폐(곰)·실른다(먹는다)·어이님 무림 다부리쇼(어른님 밥 자시요) 등이다.

은어의 성립은 타집단에 그 말뜻을 숨기려고 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때로는 그 집단이 인간집단이 아닌 경우도 있다. 예컨대, 백정(白丁)들이 옛날에 소를 잡을 때 도살장 안에서 일반어를 쓰지 않고 은어를 썼는데, 그 이유는 일반어를 쓰면 소가 불안해하기 때문에 소가 모르는 은어를 써서 소의 영혼을 편히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한다는 뜻에서였다.

이처럼 백정의 은어는 소를 대상으로 하는 은어라는 점, 그리고 산삼을 캐는 이의 은어 또한 산신에게 숨기려는 뜻에서 성립되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타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은어와 구별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은어가 오랜 기간 사용되어 여타집단에 알려진 경우는 은어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게 되어 그 은어 자체의 사용이 사라지거나, 그 반대로 타집단에까지 널리 사용되게 되어 보통어로 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다음의 예들은 각 집단에서 사용되는, 또는 사용되던 은어로 알려져 왔던 것들이다.

(1) 거지[乞人]의 은어

왕초(거지 대장)·양아치(거지 동지)·내초(새로 나온 거지)·묵은초(묵은 거지)·똘마니(거지 어린애)·걸(밥)·냉걸(찬밥)·탈(물)·모라이(밥)·꿀꿀이(식당밥)·쌔리깐(파출소, 경찰서)·빵두럭(형무소)·싱(돈)·데부셍(五錢)·데부깡(五十錢)·후이로(二圓)·빠이(十圓)·햑빠이(百圓)·갑지(지갑)·맹꽁이(수갑)·똑데기(시계)·개코(구두)·꼴(옷)·밴댕이(칼)·딸딸이(자전거)·따시다(훔치다)·토끼다(도망가다)·다구리지다(들키다)·빵가다(징역가다)·마추다(먹다)·꿀이다(잠자다)·깨지다(죽다).

(2) 범죄인 사회의 은어

먹쟁이(거지)·양아치(거지)·먹보(바보)·필쟁이(기자)·빵쟁이(도둑놈)·쪽쟁이(마약범)·논끔쟁이(놀음꾼)·죽쟁이(판사)·먹통(변기통)·먹관(변소)·까바리(밥그릇)·똑대기(회중시계)·똑다기(철조망 절단기)·여물통(입)·호박씨(이)·밀판(얼굴)·먹통(眼晴)·식구통으로 핥다(입으로 먹다)·기챙이 벌찜 까다(개가 짖다)·힝씹고 토끼다(돈 가지고 도망가다)·남수 띠다(거짓말하다)·안 실렸다(아무도 없다).

(3) 시장(市場)에서의 은어

나까마(日語 동업자)·덴바이(日語 轉賣→들고 다니며 파는 사람)·자가용(돈 많은 손님)·바람분다(단속반이 나왔다)·파리 붙었다(외국산 물건 단속반이 나왔다)·떴다(이익금이 많이 남았다)·밥이 많다(생선 양이 많다)·잘 먹는다(잘 팔린다)·할켰다(손님이 가버렸다)·야리(100원)·후리(200원)·가찌(300원)·다마(400원)·데부(500원)·미스(600원)·아끼(700원)·아따(800원)·아부나이(900원)·야리셍(천원)·백원(만원)·만원(100만원).

(4) 운수업자의 은어

삥땅(수입금 유용)·스페어 돈(잔돈)·기성(경력이 많은 안내양)·신입생(초보 안내양)·한탕(1회 운행)·나라시(자가용차의 영업행위)·아다리쳤다(손님이 많아서 수입이 올랐다)·쇼부본다(교통순경과 교통법규 위반을 적당히 해결한다).

(5) 살롱가에서의 은어

화상 삐게이(치킨프라이)·궁디스텍(비프스테이크)·장작(야채샐러드)·짬빰통(샌드위치)·보따리(오므라이스).

(6) 혈액원(血液院)에서의 은어

작때기(A형의 피)·귀때기(B형)·망통(O형)·잡종(AB형)·물건(피를 뽑으러 오는 사람).

(7) 군대에서의 은어

짠물(인천 출신)·깎사(이발사)·올빼미(유격대)·어머니(인사계)·말뚝(장기복무자)·새총(M1 총)·걸레장수(군수병)·핀셋(의무병)·큰집(본부), 쪼인트 깨졌다(발로 얻어맞았다), 빨리 3층집을 부숴야지(빨리 병장이 되어야지), 별들에게 물어봐(나는 모른다).

대학생과 군대의 은어는 속어(俗語)와 구별하기 힘든 것이 많으며, 외국어가 많이 이용되는 것이 특색이다. 이 분야의 은어도 형상(形狀)의 유사(類似)를 딴 것(F학점=권총차다), 행위의 유사를 딴 것(파트너 예비심사=가봉한다), 의미의 유사를 딴 것(영업용=접대부) 등으로 분류된다. →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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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택동선집“ 1 - 4권에 실려있는 160여편의 문장가운데, 모택동 본인이 직접 집필한 문장은 단지 12편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이 기초한 문장을 모택동이 직접 가필하여 수개한 것은 13편 뿐, 나머지 130여편은 모두 중공중앙내 다른 주요성원들이 실제 저자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오래동안 모택동을 연구해오고 있는 관련 학자들이 모두 驚愕하고 있다.

   특히 모택동의 시사(詩詞)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심원춘, 눈”(沁园春·雪)의 실제 저자도 실은 호교목(胡乔木)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모택동선집”의 지식재산권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까지 생겨났지만, 돌이켜보면 실제로 이 문제는 단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이미 1995년 6월 중순 경에 중공중앙 문헌연구실과 중공중앙당시연구실, 및 중공중앙당교가 연명으로 “‘모택동선집’의 실제 저작자 원고 심열, 및 고증의견”이라는 제목의 서면보고서를 중공중앙 서기처에 제출하였던 적이 있었다. 

   이 서면보고에 의하면, “모택동선집”에 수록되어 있는 대부분의 문장들은 중국공산당의 주요 지도성원들이 각자 부동한 시기에 주고받았던 서신, 전보문건, 및 강연고 내용들을 묶은 것으로, 일찍 연안시절에는 소책자로 만들어 발행하였으나 동북이 해방되면서 할빈에서 처음 “모택동선집”이라는 이름으로 인쇄되었다. 공화국창건 이후 중공중앙에서는 “모택동선집출판위원회”를 내왔고 선후로 1951년 10월12일에는 제1권, 1952년 4월10일에는 제2권, 1953년 4월10일에는 제3권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7년이 지나 1960년 10월1일에 제4권이 출판되었는데, 이때의 출판설명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선집에는 모택동 동지께서 중국혁명의 매개 시기마다 집필하였던 중요한 저작들을 포함하였다. 몇 년전 각 지방에서 여러 가지 판본의 ‘모택동선집’이 출판되었으나 모두 저자의 심사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틀린 부분이 적지 않으며, 지어 일부 주요한 저작들은 수록되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오늘의 이 선집은 중국공산당성립이후 경과하였던 모든 역사적 시기별로 순서에 따라 나렬하고 편집하였으며 모든 문장들을 저자(모택동을 가리킴)가 직접 교열하였다.”

   이 출판설명에 의하면 “모택동선집”에 수록된 내용들에 대하여 모택동 본인이 일일이 심열하였음을 알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선집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문장들은 모택동 본인이 자신이 쓴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44년이 지난 1995년에 중공중앙 관계부문(중공중앙 문헌연구실과 중공중앙당사연구실, 및 중공중앙당교)에서 제출한 이 서면보고서에 보면 “모택동선집”의 1 - 4권에 수록되어 있는 160여편의 문장중 모택동이 직접 집필하고 기초한 문장은 단지 12편에 불과한 반면에, 나머지 140여편은 전부 구추백(瞿秋白)、주은래(周恩来)、임필시(任弼时)、왕가상(王稼祥)、장문천(张闻天)、사각재(谢觉哉)、동필무(董必武)、임백거(林伯渠)、유소기(刘少奇)、애사기(艾思奇)、진백달(陈伯达)、강생(康生)、호교목(胡乔木)、륙정일(陆定一)、양헌진(杨献珍)、등력군(邓力群) 등 사람들이 실제 저자인 것으로 고증(考证)되었다.

   이에 앞서 1980년 9월에도 습중훈(习仲勋) 담진림(谭震林)、서향전(徐向前) 등 사람들은 중공중앙에, 만약 “모택동선집”을 다시 출판하게 될 경우 기타 저작자들의 이름도 함께 밝혀줄 것을 제출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시 1985년 2월에는 중앙당교의 12명 주임급 교원들과 25명의 학원생들이 중공중앙과 당시의 총서기 호요방(胡耀邦)에게 또 이 문제를 제출하였으나 이선념(李先念), 왕진(王震)、송임궁(宋任穷) 등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다.

   1985년 3월에 발행되었던 중앙당교 내부간보(简报)를 보면, 당시의 중앙당교 교장이었던 왕진은 당교 당위원회에서 “누가 감히 모택동의 빛나는 일생을 부정하려고 하고, 누가 감히 모주석의 저작을 반대한다면 나는 그를 철직시키고 당적까지도 제명할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의 앞에서 모주석을 부정한다면 나는 총으로 대답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原話:谁敢否定毛主席光辉的一生,谁敢反对毛主席著作,就撤他的职,开除他的党籍;谁敢当我面否定毛主席, 我就用枪来回答)(见1985年3月中共中央党校《简报》)

   당시 모택동의 오랜 부하들이었던 이선념, 왕진 등 사람들의 반대로 “모택동선집”에 실제 저작자들의 이름을 밝히는 문제는 해결을 보지 못하였고, 일찍 1945년 6월에 열렸던 중국공산당 제7기 1중전회의에서 “다른 사람의 문장도 모택동의 연설을 통하여 발표된 것은 모택동을 실제 저작자로 한다”는 내용의 결의 이후, 아무도 이를 개변시키지 못하였다. 

   연안시절 모택동으로부터 ‘공산당의 제1호 문필가’로 호평받았던 호교목은 1992년 사망을 앞두고 병문안을 왔던 양상곤(杨尚昆)과、교석(乔石)、온가보(温家宝)에게 모택동의 이름으로 된 저작중에 노삼편(老三篇)으로 불리는 “뻬쮼을 기념하여”(纪念白求恩)와 “우공이산”(愚公移山), 그리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자”(为人民服务)는 실제로 모택동이 쓴 것이 아니고 자신이 쓴 것이라고 밝혔고, 나아가 모택동의 시사중에 가장 유명한 “심원춘, 눈”(沁园春· 雪)의 실제 저자도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했다. 

   호교목이 사망한 후, 역사학자들은 “모택동선집”속의 “노삼편”의 실제 저자는 확실히 호교목인 것을 고증하였으나, “심원춘, 눈”의 실제 저자가 당신의 아버지가 옳은가"고 묻는 학자들의 질문에 국가 공상총국에서 사업하다가 퇴직하였던 호교목의 딸 호목영(胡木英)은 “그렇게 웅장하고 위대한 시를 장정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쓸수 있느냐.”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실제 저작자가 아니일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 시가 처음 발표된 것은 일본이 투항하고나서 장개석과 만나러 중경에 갔던 모택동이 옛 친구인 류아자의 요청으로 이 시사를 선물하게 되었고, 1945년 10월4일, 중경의 ‘신화일보’와 ‘신민보’가 선참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모택동은 1936년 2월, 2만 5천리 장정을 마치고 주덕과 함께 섬북에 도착하여 섬북의 청간현(清涧县) 원가구(袁家沟)에서 지형을 관찰하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눈벌을 보고 감동을 받아 즉흥적으로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 시에서 넘치고 있는 “패왕적인 기운”(覇王之氣)에 대하여 중국의 대다수 독자들은 모두 “모택동이 아니고는 아무도 못 쓴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모택동선집”에 수록되어 있는, 가장 주요한 문장들의 실제 저작자 이름들을 보면 아래와 같다.

  
    '당내의 착오적인 사상을 시정할데 관하여' (关于纠正党内的错误思想)

    ― 이 문장은 1929년 12월 공농홍군의 제9차 당대표대회결의 일부분으로 주은래가 직접 기초(起草)한 것이었다.

   '한점의 불꽃도 요원의 불길로 타오른다' (星星之火,可以燎原)

    ―'모택동선집'중에 가장 주요한 문장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이 문장도 실제로는 모택동이 1932년 당시의 당의 책임자였던 구추백(瞿秋白)으로부터 직접 받은 지시문건가운데 하나로, 당시 모택동, 등대원(滕代远)、주일군(周逸群) 등 사람들이 홍군부대에서 선전용 자료로 활용하였다.

    '중국혁명전쟁의 전략문제' (中国革命战争的战略问题)

    ―'모택동선집' 에 따르면 이 문장은 1936년 2월 제2차 국내혁명전쟁의 경험을 총결하면서 중공중앙 정치국의 책임자들이었던 장문천과 주은래가 직접 기초하였고, 모택동은 이 문장을 가지고 홍군대학에서 강연하였다.

   '실천론' (实践论)(1938년 5월)、'모순론' (矛盾论)(1937년 8월)

   ― '모택동선집'에 따르면 이 2편의 문장도 모두 모택동이 쓴 것으로 되어있으나, 사실은 연안의 항일군정대학에서 모택동이 강연고로 사용하였던 문장으로서, 실제 저술자들은 주은래、임백거(林伯渠)、왕가상(王稼祥)、강생(康生)、진백달(陈伯达)이었다. 강연할 때 모택동의 수개를 거쳤을 뿐이었다.

   '지구전을 논함' (论持久战)(1938년 5월)、'항일유격전쟁의 전략적문제' (抗日游击战争的战略问题(1938년 5월),

   ― 너무나도 유명한 이 '지구전을 논함'도 모택동이 1938년 5월26일부터 6월3일까지 연안에서 진행되었던 항일전쟁연구회의 때 하였던 사용하였던 강연고로써, 실제 저술자는 주은래, 장문천、임백거、강생이었고, 강연고를 최후 수정할 때는 모택동과 함께 동필무(董必武)도 참가하였다. 


  '신민주주의를 논함' (新民主主义论)

  ― 이 문장은 모택동이 1940년 1월9일 섬감녕변구 문화협회 제1차 대표대회에서 한 강연으로써, 중공중앙에서 직접 강생과 진백달, 애사기(艾思奇) 등 사람들에게 위탁하여 함께 토론하여 원고를 작성한 것이었다.

   
   '당의 작풍을 바로 잡자'(整顿党的作风)、'당팔고를 반대한다' (反对党八股)

  ― 이 문장들도 각기 1942년 2월1일 중앙당교 개학날과 1942년 8월 연안간부회의에서 모택동이 하였던 연설의 강연고로써, 실제 저자는 임풍(林枫)과 진운(陈云)、이부춘(李富春)이었다.

   '연합정부를 논함' (论联合政府)

  ― 이 문장은 모택동이 1945년 4월20일, 중공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하였던 정치보고로써, 직접 강생과 애사기, 호교목이 저술하고, 임필시와 장문천, 유소기의 수개를 거쳤다.

   '인민민주전정을 논함' (论人民民主专政)(1949년 6월30일)

   ― 이 문장은 중국공산당 건당 28주년 기념토론회에서 발표된 기조문건으로써, 중공중앙 정치국 전체 성원들이 함께 토론하였고 직접 집필한 사람은 진백달(陈伯达)과 애사기(艾思奇), 등력군(邓力群)이었다.

                                                                                         ―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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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동물원 동물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25 0 4915
2212 [그것이 알고싶다] - 새들의 떼죽음과 포도주 찌꺼기?... 2018-04-25 0 4803
2211 [그것이 알고싶다] - 강아지 혀 내밀고 "헥헥" 할때는 왜?... 2018-04-25 0 4892
2210 [쉼터] - 봄비는 뭇생명들을 부른다... 2018-04-25 0 5098
2209 [별의별] - 원숭이가 사진기를 빼앗아 사진 찍다... 2018-04-25 0 5186
220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폐사 "바다거북",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25 0 5011
220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돌고래 "폼폼"아, 잘자라거라... 2018-04-25 0 5595
2206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도 "판소리 막걸리축제"가 있었으면... 2018-04-24 0 5609
220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참대곰아, 무럭무럭 자라거라... 2018-04-23 0 4494
220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눈표범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23 0 4714
220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아이구... 흑조 내 새끼야, 함함해라... 2018-04-23 0 5426
2202 [고향축구력사] - 길림축구팀 창립 멤버 중 한사람 - 박광순 2018-04-23 0 2806
2201 [고향소식] - 너도나도 "씨름장수" ~황소는 내것이다~... 2018-04-23 0 3405
2200 [고향소식] - 벗님네들, 진달래민속촌으로 놀러 오이소... 2018-04-23 0 3614
2199 [동네방네] - 기네스 도전 = 태권도 "평화의 함성" 2018-04-22 0 5285
219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소등에너지절약, 남의 일이 아니다... 2018-04-22 0 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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