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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시인 - 사뮈엘 베케트
2017년 02월 14일 22시 18분  조회:3693  추천:0  작성자: 죽림
 
출생일 1906년 04월 13일
사망일 1989년 12월 22일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 《와트》 등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다. 인간의 삶에 대한 부조리를 독특한 문체와 방식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했다.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사뮈엘 베케트
사뮈엘 베케트

사뮈엘 베케트는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로, 현대 연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극작가 중 한 사람이다. 사뮈엘 베케트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어도 그가 쓴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을 보았든 보지 않았든 귀에 익숙한 제목일 것이다. 인간의 삶을 단순한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의미 없는 대사와 단편적으로 축소된 인물, 배경, 내러티브 등을 통해 보여 준 것으로, 오늘날 현대 연극의 대명사로 통용된다. 이 작품으로 베케트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과 희곡으로 현대인의 빈곤을 변형하여 표현, 승화시켰다."라는 평을 받으며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뮈엘 버클리 베케트는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의 폭스로크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부유한 영국계 아일랜드 출신의 개신교 집안으로,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이었다. 더블린의 얼스포트 학교, 에니스킬렌의 포토라 로열 학교,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등에서 공부했다. 고교 시절 성적이 우수했고, 크리켓, 수영, 럭비 등 스포츠에도 탁월했으며, 대학 시절에는 크리켓 대표를 했다. 또한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교직 과정을 이수했으며, 졸업 후 파리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재직 때 제임스 조이스와 교류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랭보의 시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에세이와 평론도 썼다.

1931년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4학기 만에 그만두고 런던, 독일, 프랑스 등지를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다. 1933년에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가, 런던에서 2년간 정신 치료를 받았다. 이 시기에 융의 이론에 심취했는데, 이는 후일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는 사이 틈틈이 소설을 쓰기도 하고, 절친한 사이인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한다.

1937년, 베케트는 자신의 떠돌이 같은 생활을 못마땅해한 어머니와 결별한 뒤 파리 몽파르나스에 정착했다. 파리에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지내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생활을 했으며,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부조리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게 된 것은 파리에서 '묻지 마 범죄'를 당한 이후부터다. 1938년 1월 6일, 베케트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오던 중에 낯선 청년이 난데없이 휘두르는 칼에 맞았다. 법정에서 범인에게 범죄 이유를 묻자 "나도 모르겠다."라고 진술한 것을 듣고, 베케트는 인생의 무작위성과 부조리에 대해 숙고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며, 독일 점령기에는 프랑스 남부의 뤼시옹에서 농장 일꾼으로 지냈다. 이때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쉬잔 데셰보 뒤 메닐과 동거했으며, 두 사람은 1961년에 결혼했다. 이들은 서로를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하면서 평생의 동지 같은 관계로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고향 더블린으로 돌아가 잠시 일자리를 찾았으나 문학을 하고자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전쟁 전까지 제임스 조이스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습작했으나, 이 시기부터 좀 더 간결한 문체와 스타일로 부조리 철학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45년, 독일 점령기에 농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장편소설 《와트》를 쓰기 시작했고(1953년 발표), 이후 파리로 돌아와 박탈과 상실, 부조리함이라는 주제 의식에 천착하면서 장편소설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들》 3부작,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등 많은 작품을 썼다. 이 중 《몰로이》가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두면서 명성을 얻었으며, 1953년에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몽파르나스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2막으로 된 비희극으로, 별다른 무대 장치도, 특별한 줄거리도, 극적인 사건도 없는 작품이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서 있는 황량한 무대를 배경으로 서로를 '디디'와 '고고'라고 부르는 두 남자가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의 존재는 불명확하며, 이 두 사람의 배경이나 정체 역시 밝혀지지 않고, 심지어 두 사람이 어떻게 그 나무 아래서 만났는지도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서로 연관이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행동하며 시간을 보내고, 주인과 노예가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고, 소년을 통해 고도가 그날은 오지 않음을 알린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 상황이 이어지고, 두 사람은 왠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그곳에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기하는 배우들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기하는 배우들

처음에 이 작품은 많은 연출가와 배우들에게 거절당하여 누구도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공연 다음 날 〈피가로〉 지는 '광대들에 의해 공연된 파스칼의 명상록'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관객들 역시 기존 사실주의극을 전복시킨 참신함에 열광했다. 고도의 의미에 대해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며, 고도가 과연 올 것인지, 각 등장인물, 그들의 말과 행위, 무대 소품의 의미까지 많은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미국의 연출가 알랭 슈나이더가 고도의 의미를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수많은 비평가들의 논쟁에 대해 "이 작품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을 하지 마라. 그저 즐겨라."라고 말했다.

포토벨로 거리에 있는 베케트의 벽화
포토벨로 거리에 있는 베케트의 벽화

〈고도를 기다리며〉 이후 부조리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으며, 베케트는 이 작품으로 현대 부조리극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또한 이후로 그는 장편소설보다는 희곡 작업에 주력해 〈결판〉,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행복한 날들〉 등 실험적인 작품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현대 실험극에 있어 그의 위상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라디오 및 텔레비전 극본, 희곡, 산문과 같은 작업을 천천히 해 나갔으며, 베를린, 파리, 런던 등지에서 공연되는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베케트는 예술가 친구들 몇몇과 교유할 뿐 대중적인 관심에서 멀어지고자 노력한 인물이었다. 파리 근교의 산속 작업실에서 은둔하듯이 살았고, 이따금 카페에서 친밀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홀로 연극이나 영화를 보러 다녔다. 자신의 극이 상연될 때는 리허설 현장에 자주 참석했으나 공연이 시작되면 모습을 감추었다. 이런 행사들에는 쉬잔이 대신 참석하곤 했다. 인터뷰도 지인이 아니면 극히 제한했으며, 자기 작품의 의미에 대해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역시 수상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일체의 인터뷰도 거절했다.

베케트는 기본적으로 염세주의자였으며, 절망적인 세계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허무주의자나 비관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부조리한 인생을 견뎌 내듯이 살아야 한다고 여겼고, 이런 태도는 작품에도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현실을, 오늘을 살고 있으며, 과거 역시 현실에서 해석될 뿐이다. 또한 완전한 절망만으로 작품을 끝맺지도 않았다.

한편 베케트는 금욕적이고 엄격한 수도자 같은 이미지로 유명한데, 그 이미지처럼 평생 여자 문제나 기타 다른 어떤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았다. 1989년 7월, 평생의 동지였던 쉬잔이 사망한 이후 모든 일을 중단하고 칩거했다가 5개월 후인 1989년 12월 22일에 그 뒤를 따르듯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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