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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詩碑)가 뭐길래 시비(是非)인거야...
2017년 03월 16일 23시 50분  조회:2784  추천:0  작성자: 죽림

[천안=일요신문] 박하늘 기자 = 충남 천안시가 시비(詩碑,시를 새긴 비석) 건립을 둘러싼 지역 문화예술인 간의 갈등을 조장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시비(詩碑)는 천안시 출범 이후 최초로 세워지는 것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시비로 세워지는 시(詩)의 선정이 편파적이었다며 첫 시비 건립인 만큼 천안의 시인이 들어가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반면 시비 건립을 주관한 백석대학교는 전국적인 명소를 표방하기 때문에 천안지역 시인에만 국한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천안시는 문제가 되는 시비만 골라 철거하는 것으로 갈등을 무마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천안시가 시비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면 불거지지 않았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천안 도솔공원에 설치된 '시(詩)가 있는 산책로'. 도솔공원은 동남구 신부동 경부고속도로 천안IC 일원 6만1507㎡ 규모로 조성되며 올 4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일요신문 충남지부 박하늘 기자

 

#시비(詩碑)가 뭐길래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천안문협)는 14일 천안시에 도솔공원의 '시(詩)가 있는 산책로'에 설치된 시비(詩碑)에 대한 질의서를 제출했다. 

이 질의서는 ▲특정 문학단체 일률적인 시비 선정 이유와 경위 규명 ▲선정 시인 중 고 김명배 시인에게만 건립비용을 수수한 이유 ▲애초 시비가 20기에서 2기가 추가된 이유 등을 골자로 한다. 

천안 도솔공원은 6만1507㎡ 규모로 동남구 신부동 경부고속도로 천안IC 인근에 조성된다. 공원에는 565억 원의 예산을 투입됐으며 지난 2013년 12월 착공했다.

백석대 문현미 산사현대시 100년관장은 지난해 7월 도솔공원 내 '시(詩)가 있는 산책로' 건립을 제안했다. 시는 이를 받아들였다. 

당초 시는 공원조성 예산을 540억 원으로 책정했으나 '시(詩)가 있는 산책로'를 비롯, 공원 활성화를 위한 인공암벽, 야외광장, 체육시설 추가, 건립 등을 위해 설계변경을 하고 25억 원 추가 투입했다. 

백석대는 지난해 10월 도솔공원의 주 시공사인 (주)대림과 시비 20기 설치를 골자로 한 '시가 있는 산책로' 조성 계약을 맺었다. 

문현미 관장은 자신을 포함해 백석대 디자인과 교수와 국문과 교수, 산사현대시 100년관 근무자 등 7명으로 '시가 있는 산책로 프로젝트' 팀을 꾸렸으며 3~4개월에 걸쳐 시비 제작에 들어갔다. 디자인과 교수들의 재능기부로 시비 시공에는 시에 대한 저작권료, 시공비, 기타비용만 사용됐으며 9600만 원이 들었다. 

#이육사 '청포도', 윤동주 '서시'가 사랑과 희망을 노래? 시비 선정 기준은?

프로젝트팀은 자체 협의로 시 20편을 선정했다. 문현미 관장 본인의 작품도 포함됐다. 이후 천안문인협회 초대회장인 故 김명배 시인과 윤동주 시인의 시비 2기가 추가됐다.

프로젝트팀의 문학과 관련된 팀원은 문현미 교수와 국문과 교수 1명, 현대사 100년관에 재직 중인 팀원 1명 등 3명이었다. 

문현미 관장은 "처음에는 천안과 어울리는 '애국·애족'과 관련된 시를 다루기로 했으나 다소 딱딱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사랑과 희망'으로 주제를 바꿨다. 이 주제가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시의 선정 기준을 밝혔다.

프로젝트팀이 선정한 시인은 ▲신달자, 김남조, 정호승, 고은, 유한진 등 전국적이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시인 13명 ▲나태주, 이근배, 이제무, 구제기 등 충남 출신 시인 4명 ▲윤동주, 이육사 등 민족시인 2명 ▲안수환, 김명배, 문현미 등 천안지역 시인 3명 등 22명이다.

이를 두고 천안문협은 "특정 문학단체에 편중된 선정"이라며 문 관장의 지인 위주로 선정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2인에 포함된 작가 중 이육사, 윤동주, 안수환, 김명배를 제외한 18명이 모두 한국시인협회(한국시협)의 전·현직 임원이었던 것이다. 문현미 관장은 현재 한국시협의 부회장과 교류위원장을 맡고 있다. 

조유정 천안문협 지회장은 "도솔은 천안의 옛 이름으로, 도솔공원에는 천안을 노래하는 시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천안의 정체성과 관련된 공원에 개인의 사견이 들어갔다. (안수환, 김명배를 제외한) 20명 선정의 이유가 모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2인에 포함된 안수환 시인도 "천안예술인을 배제한 문 관장의 시인 선정이 편파적이었다"고 말했다. 천안문협과 문현미 관장의 갈등이 불거지자 안수환 씨는 자신의 시비 철거를 요구하며 저작권료를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시(詩)가 있는 산책로에 설치된 안수환 시인의 시비(詩碑)가 비닐에 싸여 있다. 안수환 시인은 한국문협과 백석대 간의 갈등이 불거진 후 자신의 시비철거를 요구하고 있다.일요신문 충남지부 박하늘 기자

 

문현미 관장은 "도솔공원을 전국적 명소로 만들기 위해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해 시인을 선정했다"고 해명했다. 

한국시협에 편중된 시인 선정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사실 학교 일이 바빠서 한국시협의 일을 잘 하지 않았다. 사실 한국시협이 부회장직을 제안했을 때도 놀랐다. 한국시협 회원들과의 친분이 많지 않다"고 일축했다. 

 

문 관장이 제시한 '사랑과 희망'이라는 주제와 실제 제작된 시비의 주제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비로 만들어진 이육사의 '청포도'와 윤동주의 '서시'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일반적이지 사랑, 희망과는 다소 동떨어진 주제라는 것이다.

 

천안문협의 윤성희 평론가는 "2편의 시 모두 저항적 성격이 크다. 청포도는 일반적으로 암흑기에 미래에 대한 염원 의지가 담겼으며 서시는 자기고백과 내면적 성찰이 주가 된다"며 "일반적 의미의 사랑과 희망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추가된 시비 2기의 진위는? 

백석대 프로젝트팀은 당초 (주)대림과 시가 있는 산책로에 시비 20기를 세우기로 계약했다. 천안시도 20기만 제작되는 것으로 보고 받았다. 

그러나 이후 시비 2기가 추가됐다. 

천안문협은 추가된 2기가 지역의 반발을 두려워해 천안지역의 시인인 안수환, 김명배의 시를 추가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조유정 지부장은 "미안한 마음에 2명 추가해서 김명배 안수환 시인이 포함됐다. 이점을 치욕스럽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문현미 관장은 천안문협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단언했다.

문 관장은 "추가된 2기는 윤동주 시인과 김명배 시인이며 안수환 시인은 이미 최초 선정된 20기 안에 포함됐다"며 "(주)대림이 시비가 세워지는 공간에 여유가 있으니 시비를 추가해달라고 제안이 들어왔다. 이에 윤동주 시인을 포함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성열 천안문화역사 실장을 통해 김명배 시인의 유족이 자비를 들여서라도 시비를 건립하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으며 1기를 더 추가토록 했다"고 설명했다.

추가된 2기의 시비의 제작비용에 대해서는 "시비 시공업자가 좋은 일에 쓰이는 것이라며 2기를 기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천안 도솔공원 전경.일요신문 충남지부 박하늘 기자  

 

#시비는 천안시가 건립하는데 제작비용은 시인이 납부?

천안문협은 김명배 시인의 유족이 김 시인의 시비 건립비용으로 400만 원을 송금했다가 다시 반환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명배 시인에게 지급돼야 할 저작권료가 시비가 완성된 지 2달 뒤인 올해 2월에서야 받았다며 이와 관련된 의혹을 제기했다.

문현미 관장은 "시비 시공업자가 윤동주 시인의 시비는 기부할 수 있으나 김명배 시인의 시비제작에는 난처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래서 시비 제작비용 지급을 자처한 김명배 시인의 유족에게 시공업자에 직접 비용을 송금하라고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시공업자가 김명배 시인의 시비도 부담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400만 원을 직접 돌려준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 천안시의 졸속행정이 지역 문화예술인의 갈등 자초 

이런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갈등은 천안시의 안일한 행정이 자초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역 문화예술인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담긴 문제를 무책임하게 시공사에 일임해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이다. 

도솔공원 조성을 맡은 천안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이런 갈등이 생길 줄 예상치 못했다. 시비 선정에서 백석대가 전문성이 있으므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또한 문화예술에 관련된 사안을 관련 부처와의 상의없이 진행한 것도 일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도시계획과는 시비 건립 문제에 있어서 문화관광과의 협의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문화관광과는 시비가 세워진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윤성희 평론가는 "시청의 관리가 부족했다. 문화관광부와 의논했다면 지역 문화예술인과 협의해 문제를 키우지 않았을 것이다. 도시개발만 생각하다 문화단체 간의 갈등이 촉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안문협의 불만표출 이후 천안시의 감정적 대처도 문제 되고 있다. 앞선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추가된 2기의 시비를 제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조유정 지부장은 "2명(안수환, 김명배)의 시비를 철거하는 것으로 안다. 천안 문인들의 자존심을 뭉갠 것"이라며 "추후 시장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보고 협회 원로, 이사회와 의논해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심화된 갈등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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