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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언어를 도구로 하여 작가 자신의 감정이나 사고(思考), 체험, 표출하고자 하는 것 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표현하는, 예술 행위이다. 따라서 이런 점에서만 본다면 소설이나 시, 희곡, 그리고 수필 등은 같은 문학 행위로서 다같이 문학의 범주에 속한다. 더욱이 이 중에서 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산문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더욱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소설과 시, 희곡, 수필 등은 분명히 각자만의 고유 영역을 갖고 있고 나름대로의 특징을 각기 지닌, 서로 다른 형태의 문학 장르이다. 이 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구분되어 온 것이고,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소설과 시, 희곡, 수필 등이 같은 문학이면서도 그 형태가 서로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시, 희곡, 수필 등이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다르며 각기 어떤 특징이나 특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차이점이나 특성 등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거나 혼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히 소설과 수필의 차이점이나 각기 다른 특성을 잘 구분하지 못하거나 혼동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것은 아마도 소설과 수필이 같은 산문 형식을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얼핏 보기에는 비슷한 면도 있어 보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소설과 수필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마치 사과와 감이 얼핏 보기엔 색깔이 비슷한 것 같아도 이들은 서로 본질적으로 분명히 다른 과일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특히 수필은 작가 자신의 체험이나 생각, 또는 사상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문학 행위이다. 즉 수필은 허구 세계가 아닌, 사실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근래에 와서는 수필에서의 허구성 문제를 놓고 수필가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고, 일부에서는 수필에서 어느 정도의 허구는 용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수필에서는 근본적으로 허구 세계가 용납되지 않고 있다. 또 수필에서의 허구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견해도 수필에서의 허구는 문학으로서의 예술성과 극적 효과 등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지 소설에서처럼 무한정의 허구 세계를 용납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수필과는 크게 다르게 무한정의 허구 세계가 용납된다. 작가의 체험이나 생각, 또는 사상이나 가치관 등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허구와 가상의 세계를 그려내고 가공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소설이다. 또한 이러한 허구와 가상의 세계, 가공 인물 등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고, 이를 통해 작가의 사랑이나 의도를 표출하고 창조적·예술적 문학 행위를 하는 것이 바로 소설의 기본 형태이다.
그러면서도 소설에서는 그 허구와 가상의 세계를 마치 그것이 현실인 것처럼, 또는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얘기를 사실 그대로 그려놓은 것처럼 묘사하는 수가 많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소설의 기법이자 특징이며, 또 그래야만 소설로서의 가치가 있고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소설에서의 이러한 허구와 가상의 세계를 실제 상황으로 착각하고, 자신의 체험이나 생각 등을 사실 그대로 묘사한 수필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는 수가 있다. 특히 소설에서는 1인칭 수법으로 '나'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수가 많은데, 소설에서의 이 '나'를 그 소설을 쓴 작가 자신의 모습이나 생각, 또는 체험을 그대로 그려놓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나'의 형식을 빌어 쓴 소설과 작가 자신의 모습이나 생각 등이 그대로 그려진 수필에서의 '나'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소설 속의 '나'나 수필 속의 '나'를 모두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여 소설이나 수필을 비슷한 문학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숫자는 아주 적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 속의 '나'와 수필에서의 '나'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소설 속의 '나'는 거의 대부분 소설의 극적 효과와 사실감 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허구의 '나'일 뿐이다. 반면에 수필에서의 '나'는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모습과 생각 등이 그대로 투영된, 실제 모습의 작가 자신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 속의 '나'는 작가 자신의 인격이나 가치관, 생각, 성격, 또는 교육 수준이나 교양 정도 등과 무관하게 얼마든지 작가의 의도대로 그려질 수 있지만, 수필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수필에서의 '나'는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의 인격이나 가치관, 생각, 성격 또는 교육 수준이나 교양 정도 등에 따라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소설 속의 '나'는 저속한 말이나 욕설 따위를 마구 쓰는 등 용어 선택이나 언어 표현 등에 거의 제약이 없다. 그러나 수필에서의 '나'는 곧 작가 자신의 모습이며 작가의 인격이나 품위 등을 나타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같은 표현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으며, 용어 선택이나 언어 표현 등에 작가 스스로 신중을 기하기 마련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수필에서의 '나'가 소설 속에서의 '나'처럼 저속한 표현이나 욕설 따위를 마구 쓴다면 독자들은 그 수필을 쓴 사람의 인격이나 품위를 아주 천하게 여길 것이다. 또 수필에서의 '나'가 소설에서의 '나'처럼 허구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거나 그 내용이 허구적이라면 독자들은 그것도 사실 그대로 믿어 버리기 쉽다.
소설과 수필과의 이러한 관계와는 달리 시와 수필은 그 형태부터가 눈에 띄게 달라 보이기 때문에 이를 서로 혼동하거나 동일시 하는 사람들은 적다. 특히 시는 수필에 비해 대체로 분량이 적고 몇 구절의 짤막한 시구로 표현되는 수가 많기 때문에 구분하기 용이한 편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시의 분량이 늘어난 것들도 적지 않고, 산문 형식처럼 쓰여진 시들도 있다. 장편시나 서사시 같은 것들 중에는 수필보다도 그 분향이 훨씬 많은 것들도 흔히 보게 된다.
다라서 이러한 시들과 수필을 자칫 혼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시인이 쓴 수필이 많이 발표되고 있는데, 이런 수필 중에는 시적인 표현과 시적인 형식이 자주 인용되어 그것이 시인지 수필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소설과 수필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시와 수필의 관계도 분명히 다른 것이다. 특히 시는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 생각 또는 체험 등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기 보다는 무한한 상상력과 허구적인 요소까지도 가미하여 재구성, 또는 재창조하여 표현하는 수가 많으며, 시적인 언어의 선택과 배열, 구성 등이 독특하기 때문에 수필과는 같을 수가 없다.
또한 희곡은 줄곧 대화체의 문장으로 이어지며, 주로 대화와 행동의 표현 묘사로 쓰여진 문학 장르이기 때문에 그 형식에서부터 수필과는 쉽게 구분괸다. 특히 수필에서는 가능한 한 대화체의 문장은 절제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대화체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희곡과는 더욱 잘 구분된다.
'수필'이란 이름으로 쓰여진 글등 중에는 더러 그것이 소설인지 희곡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화체의 문장을 많이 쓴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본질적으로 수필이라고 할 수 없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산문 형식의 묘사로 표현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수필은 소설이나 시, 희곡 등 다른 문학 장르와 분명히 다른 것이며, 나름대로의 영역과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 이 점을 망각하고 소설이나 시, 또는 희곡 등의 특성과 마구 혼합하여 수필을 쓴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아닌, 이상한 형태의 잡문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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