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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수필의 방향/ 한상렬
“문학의 주체는 작가가 아니라 언어다. 1970년대 이래 언어행위 이론은 뚜렷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소쉬르를 위시한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은 시, 소설 또는 신화 등에서 일종의 규칙 체계를 찾아내려 한다. 이렇듯 언어는 육체적 감수성을 표현하는 장치이며 글쓰기는 욕망의 대상에 해당한다.” (『수필학』제 16집, 박양근 <윤재천 수필문학 전집의 문학적 시원과 극점, 그 시그마에 대한 해석>, 2008. 문학관,66-67쪽)
윤재천은 그의 《수필문학전집》권2 《명수필 바로알기》의 서문인 <생명의 미학을 위해>에서 “문화의 대홍수 사태에 침몰당하는 수필장르가 되지 않기 위해 퓨전수필, 접목수필, 해체수필, 마당수필, 수필적 다다이즘까지를 따라가는 수필문학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결단을 밝힌 바 있으며, 제3권의 발문인 <수필문학을 향한 네비게이션>에서는 시대적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서구를 휩쓸던 해체주의도 기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흔들리며 새로움을 찾고 있다. 이것은 인간본성인 호기심에 의한 자연스러운 발상이며 현상이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우리 수필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실험정신이다. (5쪽에서)
『현대수필』을 중심으로 한 그룹은 이런 테마수필의 경향이 농후하다. 예를 들면 조재은의 영화에세이, 오차숙의 성에세이, 이옥자의 풍자에세이, 남홍숙의 형이상학에세이, 김소희의 동물에세이, 김희수의 일러스트에세이, 김미자의 동수필 등이 그것이다. 박양근은 앞의 『수필학』16집(70쪽)에서 현대 독자는 구태의연한 소재에서 벗어나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영역을 다루는 작품을 선호한다, 고 하면서 “독자 수용에서 보아도 테마와 소재의 차별성을 지니지 못하는 수필은 예술적 긴장감과 가독성을 저하시키며 사이버 공간에 익숙해진 독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작가는 고유한 문학을 구축하는데 성실하여야 한다는 명제에서 볼 때 테마수필의 정립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다.
퓨전Fusion이 미래의 비전Future Vision을 의미하듯 “이종결합은 21세기의 문학의 키워드”(한상렬, <수필의 일성성 벗어나기와 문학적 낯설게 하기>, 『수필학』, 제13집, 2005. 291쪽) 그러나 미술과 음악에 비해 문학의 이종결합이 더딘 이유는 봇구적 문단의 경직성 때문일 것이다. 윤재천도 이에 대하여 “21세기의 문화적 특성에 다른 문화적 대응 방안”(윤재천, <21세기가 요구하는 ‘퓨전수필’>, 『수필학』제8집, 한국수필학회, 2001. 133쪽)으로 이미 제시한 바 있다. 퓨전은 문학 장르의 혼성 이외에 문학과 미술, 문학과 음악 나아가 인문학과 공학의 접목까지 확장되는 광의적 이종결합으로 나아간다.
이에 대하여 윤재천은 《윤재천수필문학전집》( 제1권, 2008, 252쪽)에서 메타의 의미를 “메타는 시나 소설, 수필이나 비평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거나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정신적 질서에 걸맞은 문학의 한 양식을 낧기 위한 자연스러운 노력, 반성과 기대가 총체화되어 나타난 당의적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수필은 체험의 문학임으로 메타문학을 “새로운 정신적 질서에 걸맞은 문학의 한 양식을 위한 반성과 기대”라는 윤재천의 언명을 보면 수필의 화자는 곧 작가임으로 삶 자체가 텍스트이고 이를 수필로 디시 쓰는 작업에 메타 글쓰기라는 해석이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소설적 허구가 아닌 상상은 수필쓰기에 불가피하고 메타수필은 픽션과 리얼리티 사이의 틈을 메우는 글쓰기가 된다는 게 박양근의 해석이다. 소설이나 시에서 메타픽션과 메타시가 본격적으로 발표되는 현상도 허구가 아니라 다시 글쓰기를 근거로 하듯이 텍스트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을 도모하는 메타수필의 등장은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6. 隨畵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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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 국보문학/ 주간 한국문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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