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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야, 네 맘대로 담장을 넘어라...
2017년 07월 24일 04시 14분  조회:2257  추천:0  작성자: 죽림

 

 

 담쟁이 시 모음

== 빨간 담쟁이덩굴 ==

어느새 담쟁이덩굴이 붉게 물들었다!
살 만하지 않은가. 내 심장은
빨간 담쟁이덩굴과 함께 두근거리니!
석류, 사과 그리고 모든 불꽃들의
빨간 정령들이 몰려와
저렇게 물을 들이고,
세상의 모든 심장의 정령들이
한꺼번에 스며들어
시간의 정령, 변화의 정령,
바람의 정령들 함께 잎을 흔들며
저렇게 물을 들여놓았으니,
살 만하지 않은가, 빨간 담쟁이덩굴이여,
세상의 심장이여,
오, 나의 심장이여.


(정현종·시인, 1939-)


== 담쟁이 == 

날마다 
조금, 조금씩 
기어오르고 있다 
담쟁이가. 

벽을 타고 
창문을 지나 
올해는 처마 밑 

하늘 향해 
솟아 있는 종탑으로 
뻘뻘뻘 
기어오르고 있다. 
종을 치고 싶어서.


(이혜영·아동문학가)


== 담쟁이 ==

준이네가 떠난 
빈 집 
담벼락 위로 

초록 도롱뇽 한 마리가 
푸른 혀를 
낼름거리며 
꿈틀꿈틀 올라갑니다 

앞다리를 
쑥쑥 뻗으며 
뒷다리를 
쭉쭉 뻗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초록빛 비늘이 
출렁대며 
반짝입니다. 

슬금슬금 
천천히 
천천히 

하루하루 커지던 
푸른 몸이 
어느새 
흰 벽 하나를 다 차지했습니다.


(오지연·아동문학가, 제주도 출생)


== 담쟁이의 편지 - 담에게 == 

네가 없었다면 
난 생각지 못했을 거야 
잎을 피울 꿈을 

너를 만나고 나서 
난 알게 되었어 
위로 오르는 길을 

네가 없었다면 
난 그렇게 알았을 거야 
난, 넝쿨뿐인 식물인 줄 

네 위에서 잎을 피우며 
난 알게 되었어 
내 넝쿨 안에도 하늘로 오르는 
힘이 숨어 있었다는 걸


(정갑숙·아동문학가, 1963-)


== 담쟁이덩굴 ==

눈발이 날리는 
교실 창 밖 
바위벽을 
감싸고 있는 
푸른 실핏줄.
팔딱팔딱 
맥박이 뛰고 있었구나!
바위벽이
살아 있었구나!


(손광세·시인, 1945-)


== 생명 - 담쟁이 == 

벽을 온통 끌어안고 
그 사막에 목숨을 
뿌리며 뿌리며 
뻗어오르는 

어둠의 바윗덩이를 
끝끝까지 감싸오르며 
초록의 불꽃을 
손톱 밑마다에서 
명멸케 하는


(백우선·시인, 전남 광양 출생)


== 담쟁이덩굴 ==

천애절벽을 오른다
한 치 두 치 기어오르는 자벌레
하늘 끝에 자일을 건다

다시 내려갈 수 없는 외길
바위에 붙어 잠을 잔다
포타렛지도 없는 암벽 야영

손발 끝으로 더듬는 경전經典
얼마나 더 오르면 그 뜻을 깨우칠 수 있을까
늘 아슬아슬한 길
멀고 먼 면벽수행의 그 길


(임윤식·시인)


== 담쟁이 == 

담쟁이 벽을 오르고 있다
다홍빛 불도장
다섯 손가락
싸늘한 담벼락 위에 
겨울판화처럼
얼음화석처럼
눈물로 아로새겨지도록
한 손바닥 두 손바닥
천천히 몹시 천천히
붉게 뜨겁게 벽을 오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험한
제 안의 벽을 오르고 있다
제 안의 한계를 오르고 있다
담쟁이는 알고 있는 거다
희망은 항상
벽 너머에 있다는 것을


(홍수희·시인)


== 담쟁이 ==

내겐 허무의 벽으로 보이는 것이
그 여자에겐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인지도 몰라
내겐 무모한 집착으로 보이는 것이
그 여자에겐 황홀한
광기인지도 몰라
누구도 뿌리내리지 않으려는 곳에
뼈가 닳아지도록
뿌리내리는 저 여자
잿빛 담장에 녹색의 창문들을
무수히 달고 있네
질긴 슬픔의 동아줄을 엮으며
칸나꽃보다 더 높이 하늘로 오르네
마침내 벽 하나를
몸 속에 집어넣고
온몸으로 벽을 갉아먹고 있네
아, 지독한 사랑이네


(이경임·시인, 1963-)


== 담쟁이 ==

온몸으로 너를 더듬어서
변변한 꽃 한번 피워내지 못했지만
상처 많은 네 가슴 
내 손으로 만지면서
담장 끝
너를 보듬어 오르다 보면
그때마다
사랑이니 뭐니
그런 것은 몰라도
몸으로 몸의 길을 열다 보면
알 길 없던 너의 마음
알 것도 같아
캄캄했던 이 세상
살고 싶기도 하다.

 

 

 

(손현숙·시인, 1959-)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 / 정연복

 

온 몸이 
발이 되어

보이지 않게
들뜨지 않게

밀고 나아가는
저 눈부신 낮은 포복

 

 

담쟁이 / 김상기

 

담쟁이는 벽을 평지로 알고 산다
담쟁이는 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평지 끝 절망의 벼랑과 만난다
벽을 놓지 못한 채
제 한 몸 던져
끝끝내 매달려 있는
담쟁이의 벽
하늘에 목숨을 맡긴 채
평지 끝 절망의 벼랑에서
고공투쟁하는
벼랑 끝 절망이
담쟁이의 희망이다 

 

 

담쟁이덩굴 / 공재동

 

비좁은 담벼락을 
촘촘히 메우고도 
줄기끼리 겹치는 법이 없다. 

몸싸움 한 번 없이 
오순도순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진초록 잎사귀로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에게 믿음이 되어주는 
저 초록의 평화를  

무서운 태풍도 
세찬 바람도 
어쩌지 못한다. 

 

 

담쟁이 덩굴 / 조원

 

두 손이 바들거려요 그렇다고 허공을 잡을 수 없잖아요 
누치를 끌어올리는 그물처럼 우리도 서로를 엮어 보아요 
뼈가 없는 것들은 무엇이든 잡아야 일어선다는데 
사흘 밤낮 찬바람에 찧어낸 풀실로 맨 몸을 친친 감아요 
그나마 담벼락이, 그나마 나무가, 그나마 바위가, 그나마 꽃이 
그나마 비빌 언덕이니 얼마나 좋아요 당신과 내가 맞잡은 풀실이 
나무의 움막을 짜고 벽의 이불을 짜고 꽃의 치마를 짜다 
먼저랄 것 없이 바늘 코를 놓을 수도 있겠지요 
올실 풀려나간 구멍으로 쫓아 들던 날실이 숯덩이만한 매듭을 짓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벌레 먹힌 이력을 서로에게 남기거나 
바람이 먼지를 엎질러 숭숭 뜯기고 얼룩지기도 하겠지만 
그래요, 혼자서는 팽팽할 수 없어 엉켜 사는 거예요 
찢긴 구멍으로 달빛이 빠져나가도 우리 신경 쓰지 말아요 
반듯하게 깎아놓은 계단도, 숨 고를 의자도 없는 
매일 한 타래씩 올을 풀어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오르다 보면 담벼락 어딘가에 
평지 하나 있을지 모르잖아요. 혹여, 허공을 붙잡고 사는 
마법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따박따박 날갯짓하는 나비 한 마리 등에 앉았네요 
자, 손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가요 
한참을 휘감다 돌아설 그때도 곁에 있을 당신 

 

 

담쟁이덩굴의 독법 / 나혜경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이 저랬던가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고 
지문이 닳도록 아픈 독법으로 기어오른다 
한번에 다 읽지는 못하고 
지난해 읽다만 곳이 어디였더라 
매번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다 보면 여러 번 손닿는 곳은 
달달 외우기도 하겠다 
세상을 등지고 읽기에 집중하는 동안 
내가 그랬듯이 등 뒤 세상은 점점 멀어져 
올려다보기에도 아찔한 거리다 
푸른 손끝에 피멍이 들고 시들어버릴 때쯤엔 
다음 구절이 궁금하여도 
그쯤에선 책을 덮어야겠지 
아픔도 씻는 듯 가시는 새봄이 오면 
지붕까지는 독파해 볼 양으로 
맨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읽기 시작하겠지 

 

담쟁이 넝쿨 / 권대웅

 

김과장이 담벼락에 붙어있다 
이부장도 담벼락에 붙어있다 
서상무도 권이사도 박대리도 한주임도 
모두 담벼락에 붙어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밀리지 않으려고 
납작 엎드려 사력을 다해 
견뎌내는 저 손 
때로 바람채찍이 손등을 때려도 
무릎팍 가슴팍 깨져도 
맨손으로 암벽을 타듯이 
엉키고 밀어내고 파고들며 
올라가는 저 생존력 

모두가 그렇게 붙어 있는 것이다 
이 건물 저 건물 
이 빌딩 저 빌딩 
수많은 담벼락에 빽빽하게 붙어 
눈물나게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담쟁이 사랑 / 이민화

 

끝없이 타오르는 
도벽 같은 탐욕으로

남몰래 담을 타며 
밤마다 모의한다 

하늘이 내린 형벌이다 
중독이다 전염이다

그대 집 다 메워도 
그대 맘 곁에 못 가

혹독한 추위에 
몸이 얼고 생각이 얼고

기어이 
가슴 하나 남긴 채 
전설 속에 사라진다

여느 해 그러하듯 
여름 가고 가을 오면

움츠린 몸 뒤척이며 
피가 먼저 나선다

그래도 
그 흔한 사랑이라 
차마 말 못한다 

 

담쟁이 그늘 아래서 / 이은림 (7회 여성문학상 당선작) 

그래도 세상은, 가쁜 숨결 조금씩이라도 나눠가질 수 있는 
튼튼한 잎맥의 담쟁이 넝쿨입니다. 
큰 잎은 작은 잎의 손목 잡고 작은 잎은 아직 어린 순을 달고 
먼길 가는 나무들처럼 마냥 기인 그림자를 가진 담쟁이 넝클입니다. 
서로의 얼굴 그늘로 덮어주거나 혹은 얇은 볕 씌워주면서 
옹기종기 어깨 맞대고 등 부딪고 살아가는 넝쿨식물입니다. 
북치고 장구치며 한참을 떠들다 가는 한떼의 빗줄기 뒤에서 더욱 실해진 손목 쳐들고 
헤매다 보면 우리가 머물 곳은 멀지 않아 어데고 가까운 곳에 둥지틀고 
그리고 다시 길을 앞세웁니다 담장을 넘어가는 우리, 땅바닥에 엎드린 
우리, 지붕 위에 드러누운 우리, 담벼락에 기대선 우리......
그러나, 보이는 손마디 붙들고 쫓아가 보면 실상은 한 뿌리를 딛고 서 있는 우리들, 
결국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의 길 위에 있었던 거지요 



담쟁이 / 최광임

이제 나는 더 이상 벽이 아니다
내 살 속 뿌리를 내리고 키돋움하며 오르는 일
처음엔 나의 알맞은 집은 아니었다 어느날
달그락거리는 뼈만 모여 살던 삶
떡잎의 네 사다리가 되어도 좋을 듯 했다 옆에는
흐드러진 능소화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산다는 것은 내가 너를 만났다는 것이다
다족류의 곤충처럼 셀 수 없는 네 손길은
갈비뼈를 어루만지며 살을 붙이기도 하고
뼈와 뼈를 맞추기도 하고 살과 뼈 사이
아귀틀림을 다듬기도 하며 나를 지워갔다
미처 허공에 줄을 긋지 못한 거미들이
너와 나 사이를 지나쳐 가기도 하였으나
벌레들이 네 몸을 뒤집어 집을 짓고
얼크러진 꿈들을 채우는 일 보며
나 없이 너의 뼈가 되어 살아도 좋았다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계절풍처럼
일정하게 떠나기도 하지만 이내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그길 지워지지 않도록
검게 야윈 금들을 붙잡은 축원
끝나고도 식지 않는 사랑이다

담쟁이 덩굴  / 장성호 

우리 동네 
오래된 성당 하나가 있네
시간의 그물망이 엉켜붙어 있는
성당의 붉은 벽돌 담장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떨고있는 붉은 입술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에 덴 검은 눈썹
그 상처입은 영혼들을 
녹색그물이 부드러운 손길로 감싸주고 있다네
담장 아래 어둡고 습한 그늘에서 자라온
그 뿌리 뽑힌 자들
가느다란 줄기를 맞붙잡고 끈끈한
덩굴손을 뻗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고 있다네
중력을 거부하는 성스러운 용틀임
해를 묵힐 수록 빛바랜 줄기에는 가시같은
비늘이 돋혀 붉은 담장과 한몸이 된다네 

 
담벼락 속에 집이 있다 / 손순미 

그 집은 담벼락 속에 들어가 있다 햇볕이 아무렇게나 흘러 다니는, 
담쟁이덩굴이 꽃처럼 피어있는 담벼락을 열어보면 
허물어진 집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담벼락 속으로 집이 도망치던 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집의 내력은 보이지 않고 집이 서 있던 자리, 
시퍼런 잡초와 썩어 나동그라진 기둥들 서로의 뼈를 만지며 세월을 굴린다 

추억은 남아있을까 항아리를 들여다보면 구름이 누렇게 익어가고 
세상은 집이 삭아가는 것을 방관한다 

벽 속의 집은 봉긋하게 솟아난다 마당을 건너가는 
풍금소리 몸을 찢어 잎을 내 보내는 나무들 투명하게 널려 있는 빨래들 
우물 속으로 곤두박질친 두레박이 집 한 채를 다 씻어내는, 

집은 벽 속의 곳간에서 제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간다 
집은 저 벽을 부수고 나와야한다 


지문 / 권혁웅

   네가 만질 때마다 내 몸에선 회오리바람이 인다 
온몸의 돌기들이 초여름 도움닫기 하는 담쟁이처럼 일제히 네게로 건너뛴다 
내 손등에 돋은 엽맥(葉脈)은 구석구석을 훑는 네 손의 기억, 
혹은 구불구불 흘러간 네 손의 사본이다 이 모래땅을 달구는 대류의 행로를 기록하느라 
저 담쟁이에게서도 잎이 돋고 그늘이 번지고 또 잎이 지곤 하는 것이다



풋여름 / 정끝별 

어린나무들 타오르고 있어요 
휘휘 초록 비늘이 튀어요 
풋, 나무를 간질이는 빛쯤으로 여겼더니 
풋, 나무 몸을 타고 기어올라 
풋, 나무 몸에 파고들어요 
가슴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을까요 
어느새 휘감치는 담쟁이 덩쿨은? 

온몸을 뒤틀며 
뿌드득 뿌드득 탄성을 지르며 
풋, 나무 힘줄 세우는 소리 
트림하는 풋, 나뭇가지 

초여름 저물녘 입술 자국에 
겨드랑이부터 뚝 뚝 
초록 진땀을 흘리고 있어요 
풀물냄새를 풍기는 
저 풋, 나무 
담쟁이 치마폭에 폭 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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