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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과 시인] - "새로운 시"의 동의어를 만들어낸 시인
2017년 10월 29일 01시 26분  조회:3503  추천:0  작성자: 죽림
 
(영국) - T. S. 엘리엇 .                출생 1888년 09월 26일
사망 1965년 01월 04일
대표작 〈황무지〉, 〈사중주〉, 〈칵테일 파티〉 등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였다. 20세기 모더니즘을 이끈 대표적인 시인으로 염세적인 정서와 새로운 방식의 시적 기교로 독창적인 시 세계를 펼쳐 나갔다. 194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T. S. 엘리엇은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20세기 시와 비평 분야에 혁명을 일으킨 인물이다. 1922년 그의 시 〈황무지〉가 출판되었을 때, 이 작품은 '새로운 시'의 동의어로 여겨졌고, 그 '새로운 시'의 의미가 '모더니즘'을 지칭하게 되었을 때는 모더니즘 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현대시를 지배했다.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은 1888년 9월 26일 미국 미주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헨리 웨어 엘리엇은 사업가였으며, 어머니 샬럿 챔프 스턴스는 시인이었다. 엘리엇이 태어났을 때 부부는 40대였고, 엘리엇 위로 4명의 누나가 있었다. 시인이었던 어머니가 아이들 양육보다 문학이나 자선 활동과 같은 사회 활동에 열정적이었던 탓에 늦둥이였던 토마스는 유모의 손에서 자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 토마스가 자라면서 조숙하고 남다른 지적 능력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어린 아들에게 역사와 문학, 철학 등의 책을 읽히고 시를 쓰도록 독려했다. 모자는 문학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 있었고, 토마스는 평생 어머니와 편지를 나누고, 어머니에게 시를 바치는 등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또한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은 후에는 인정받지 못한 시인이었던 어머니의 시극 《사보나롤라》에 서문을 붙여 출간해 주기도 했다.

T. S. 엘리엇
T. S. 엘리엇

유년 시절에는 세인트 루이스의 스미스 아카데미와 뉴잉글랜드의 밀턴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으며, 1906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 철학과 불문학을 전공했다. 4년의 학부 과정을 3년에 마쳤으며, 이때 프랑스 상징주의, 특히 라포르그1) 에 심취했다. 졸업 후 1년 만에 하버드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에는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 독일의 마르부르크필리프스 대학을 거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다. 프랑스어, 독일어, 산스크리트어, 인도 철학, 독일 철학, 그리스 철학 등을 공부했으며, 아르튀르 랭보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15년, 시인이자 비평가인 에즈라 파운드의 추천으로 〈포이트리〉 지에 〈앨프리드 프루프록의 연가〉(이후 〈프루프록의 연가〉)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프루프록의 연가〉는 노년의 화자 프루프록의 내적 독백을 통해 현대 문명의 잔인성과 메마른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자아의 상실과 회복을 위한 자아 성찰을 그린 작품이다. 엘리엇은 비평가로서 '객관적 상관물'의 개념을 공식화시켰는데, 객관적 상관물이란 '어떤 특정한 정서를 나타낼 때 공식이 되는 일련의 사물, 정황, 사건'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이런 시적 방법론과 시인으로서의 주요 관심사와 정서는 초기 시인 〈프루프록의 연가〉에서부터 이후의 시들에 일관적으로 드러난다.

엘리엇은 1915년 비비언 헤이우드와 결혼했으며, 런던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서평을 잠시 쓰다가 이듬해 로이드 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약 9년간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시를 쓰고, 〈에고이스트〉 지의 부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프루프록의 연가〉를 보고 '최초의 현대적 작품'이라고 일컬었던 에즈라 파운드는 엘리엇이 시에만 몰두하기를 바랐고, 그를 후원하는 인물들을 모아 생활을 후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엘리엇은 은행 일과 시작(詩作)을 병행하는 생활에 나름대로 만족해했다. 내성적이고 까다로운 성격에 신경쇠약 증상까지 있던 엘리엇에게 이 두 생활을 양립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현실 생활과 문학 생활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1922년 10월 엘리엇은 계간지 〈크라이테리언〉을 창간하고 편집을 담당했으며, 이 잡지에 〈황무지〉를 발표했다. 433행의 이 장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정신적으로 황폐화된 유럽을 황무지로 상징화한 것으로, 라틴어, 희랍어, 산스크리트어 등 6개 언어를 사용하고, 셰익스피어, 단테, 보들레르 등 고전 시구에 대한 암시와 인용을 비롯해 J. S.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와 J. L. 웨스턴의 《제의에서 로망스까지》 등에서 나타나는 제의, 성배 전설 및 신화와 종교적 관점, 성경 등을 토대로 한 수많은 상징으로 뒤덮여 있다. 역사와 문명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미지화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로 재편성하는 엘리엇의 작품 세계가 확립된 작품이다. 또한 엘리엇은 낭만성을 제거하고 철저하게, 병적일 만큼의 정확성과 논리성, 지적인 태도를 지니고 언어와 다양한 자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시를 썼는데, 이는 그의 비평론적 태도이기도 하며, 이후의 소설, 희곡, 예술 비평의 주요 방식이 된다.

〈황무지〉가 발표되었을 당시 평론가들은 시의 난해함과 새로움에 당혹해 마지않았으나, 젊은이들은 오히려 엘리엇의 시에 담긴 염세적인 정서와 새로운 시적 기교에 열광했으며, 현대의 정신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엘리엇을 '시대의 대변인'으로 추앙했다.

1925년에 엘리엇은 로이드 은행을 그만두고, 파버 앤드 파버 출판사의 이사로 일했다. 1927년에는 영국 국교회로 개종하고 영국으로 귀화했다. 그리고 영국 국교도로서의 종교적 시각을 투영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재의 수요일〉(1930), 〈사중주〉(1943) 등이 그것이다.

또한 엘리엇은 이 시기부터 무대 상연을 고려한 시극2) 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시들은 시극으로 불리는 새로운 장르가 된다. 〈바위〉(1934), 〈대성당의 살인〉(1935), 〈칵테일 파티〉(1950) 등이 대표적이며, 이 작품들은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

비평 분야에서도 엘리엇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문학적 취향을 재규정했다. 예술에 있어 낭만성을 배제하고 고도의 지적 사유를 좇으며, 존 던과 같은 형이상학파 시인들을 칭송한 그의 비평론은 빅토리아 시대 낭만주의 문학의 모호성과 도덕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현대 고전주의의 비평 체계를 수립했다. 비평집으로는 《단테론》(1929), 《시의 효용과 비평의 효용》(1933), 《고금 평론집》(1936) 등이 대표적이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엘리엇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계속 글을 쓸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당시 그는 시극에 힘을 쏟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면서 시극 〈가족의 재회〉가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고, 전쟁 때문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전후의 혼란스런 상황, 정신질환 성향이 있던 아내와 불화 끝에 결별을 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30년 전부터 지녀온 유럽 문명에 대한 회의, 미래에 대한 염세적인 관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계속 시를 써 나갔고, 말년의 걸작 〈사중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전쟁 후 그는 엄청난 명성을 누리며 행복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1950년 영국에서 발행된 〈칵테일 파티〉 초판 표지
1950년 영국에서 발행된 〈칵테일 파티〉 초판 표지

194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해 영국의 문화훈장인 메리트 훈장을 받으면서 시인으로서의 명성은 절정에 달했다. 그의 시극들은 계속 무대에 올려졌고, 특히 말년의 대표작 〈칵테일 파티〉가 브로드웨이에서 200회 이상 공연 기록을 세우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1947년 아내 비비언이 세상을 떠난 뒤, 1957년에는 8년간 비서로 일하던 29세의 발레리 플레처와 재혼했다.

1965년 1월 4일,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사망했으며, 유해는 고향 이스트 코커의 성 마이클 교회에 안장되었다. 2년 후 영국 정부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구역에 엘리엇의 기념석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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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8. 9. 26, 미국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사망 1965. 1. 4, 런던
국적 미국/영국

요약 <황무지> 같은 시와 <성당의 살인>·<칵테일 파티> 등의 희곡을 통해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다.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20세기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시어·문체·운율 등의 실험으로 영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일련의 평론들을 통해 과거의 정통적 견해를 타파하고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다.
엘리엇의 편집자로서의 활동은 그가 주로 관심을 쏟은 일에 부수적인 것이었지만, 그가 맡았던 계간 비평지 <크라이테리언>은 당시 가장 탁월한 국제적인 비평지였다. 엘리엇은 제2차세계대전 중에 발표한 <4개의 4중주>로 당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가로 인정받아 1948년 메리트 훈장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개요

〈황무지 The Waste Land〉(1922) 같은 시와 〈성당의 살인 Murder in the Cathedral〉(1935)·〈칵테일 파티 The Cocktail Party〉(1950) 등의 희곡을 통해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다.

성공적인 뮤지컬 〈캣츠 Cats〉는 〈늙은 주머니쥐의 고양이에 관한 책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1939)을 기초로 한 극으로, 1981년 영국에서 막을 올렸고 1982년 뉴욕에서 상연되었다.

시인·극작가·문학평론가·편집인으로서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20세기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시어·문체·운율 등의 실험으로 영시(英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일련의 평론들을 통해 과거의 정통적 견해들을 타파하고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다.

또한 사회적·문화적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으며, 페이버앤드페이버출판사의 이사로서 젊은 시인들을 관대하면서도 분별력있게 도와주던 후원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발표된 〈4개의 4중주 Four Quartets〉로 당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가로 인정받아 1948년 메리트 훈장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가정 배경과 초기생애

엘리엇의 첫 미국 조상은 앤드루 엘리엇으로 그는 영국 서머싯 이스트코커의 구두제조공이었으며, 1670년 보스턴으로 이주했다.

할아버지인 윌리엄 그린리프 엘리엇 목사는 1834년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뒤, 즉시 보스턴에서 세인트루이스로 이주했다. 그는 열렬한 연방주의자·유니테리언교도였으며 노예제도가 허용된 주에서 활동했던 반노예주의자로서, 워싱턴대학교를 창설했으며 그가 반대하지만 않았다면 그 대학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을 것이다. 1872년 그는 워싱턴대학교의 총장이 되었다. 아버지인 헨리 웨어 엘리엇은 가문의 전통을 깨고 사업을 했다.

어머니인 샬럿 챔프 스턴스는 어느 정도 이름이 났던 다작(多作) 시인으로서 시아버지의 전기를 썼다. 또한 15세기 이탈리아의 종교개혁자인 사보나롤라의 순교를 소재로 한 시극을 짓기도 했는데, 1926년 그녀의 아들이 이 시극에 서문을 붙였다. 엘리엇이 태어날 무렵, 그 가문은 54년 동안이나 미주리 주에만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남부나 서부의 영향을 배제하고 뉴잉글랜드의 정치적·신학적 문화를 보존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말년에 자신이 보스턴이나 뉴욕·런던에서 태어나지 않고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뉴잉글랜드인이었다.

엘리엇의 가정 배경은 시인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실무적'이 되거나 사업에 투신하지 않은 채 당시 가능했던 가장 광범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세인트루이스의 스미스 아카데미를 다닌 후 매사추세츠 주의 대학 예비학교인 밀턴 아카데미를 다녔고, 그곳을 졸업한 뒤 1906년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다.

보통 대학 수학 기간이 4년이었지만 그는 3년 만에 문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하버드대학교 재학 당시 그에게 깊은 감화를 준 사람은 철학가이자 시인인 조지 산타야나와 비평가인 어빙 배빗이었다. 그는 배빗으로부터 반낭만주의적 태도를 흡수했는데, 훗날 영국 철학자들인 F.H. 브래들리와 T.E. 흄의 사상을 전공함으로써 반낭만주의적 태도가 더욱 심화되어 그의 일생 동안 지속되었다.

1909~10년에 그는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조교를 지냈다.

1910~11년은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시인인 엘리엇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였다. 그는 프랑스에서 그 해를 보내면서 소르본대학교에서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 강의를 들었고, 알랭 푸르니에와 함께 시를 읽었는데, 그의 '가르침'으로 프랑스어를 완전히 익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샤를 보들레르에서 쥘 라포르그를 거쳐 스테판 말라르메에 이르는 상징주의 시에도 정통하게 되었다.

1914년 처음으로 에즈라 파운드를 만났다. 1946년 〈포이트리 Poetry:A Magazine of Verse〉에 그의 정치성을 무시한 채 파운드의 문학 경력을 옹호하는 글을 기고했는데, 그 글에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10년 동안 젊은 미국 시인들이 처했던 무미건조한 문학적 환경을 묘사했다. 엘리엇과 파운드는 모두 외국 시인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파운드는 투르바두르(중세 남프랑스의 음유시인)와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인들을, 엘리엇은 라포르그와 단테를 사숙(私淑)했는데, 이들은 엘리엇이 자신의 문체를 발견하는 데 있어서 존 웹스터와 존 던 이상으로 영향을 주었다. 1911~14년 그는 하버드대학교로 돌아와 인도철학을 전공하고, 탁월한 학자인 찰스 랜먼으로부터 산스크리트를 배웠다. 1913년 그는 브래들리의 〈현상과 실재 Appearance and Reality〉를 접하게 되었고, 1916년 유럽에서 〈F.H. 브래들리의 철학 지식과 체험 Knowledge and Experience in the Philosophy of F.H. Bradley〉이라는 표제의 논문을 완성했다.

이 논문은 1964년에야 비로소 출판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박사학위 취득에 필요한 최종 구두시험을 치르기 위해 하버드대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초기의 출판물

엘리엇은 편집인, 극작가, 문학비평가, 철학적 시인이라는 4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아마도 당시 영어권 시인들 중 가장 해박한 시인이었을 것이다. 대학 재학시절에 쓴 그의 시들은 '문학적'이고 관습적이었다. 그의 최초의 중요한 출판물이며 영어로 씌어진 '모더니즘'의 첫 걸작은 〈J. 앨프레드 프러프록의 연가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였다. "자 우리는 가세, 그대와 나,/저녁은 마취되어 수술대 위에 있는 환자처럼/하늘에 몸을 뻗어 누워 있는 이때……" 엘리엇은 이 시의 복사본을 그의 친구인 콘래드 에이컨에게 주었고, 그는 이 시를 에즈라 파운드에게 전했으며, 파운드는 다시 이 시를 〈포이트리〉지의 편집장인 헤리엇 먼로에게 보냈다.

먼로가 그것이 시의 장르에 속한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1년 이상이나 발표가 늦어지게 되었다. 비록 파운드가 1908년에 개인적으로 소책자 〈A lume spento〉를 이미 출간했었지만, 〈J. 앨프레드 프러프록의 연가〉는 이 문학적 개혁가들이 실험 단계를 넘어 완성한 첫 시였다. 이 시는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와 윌리엄 워즈워스의 〈서정 민요집 Lyrical Ballads〉(1798)과 같이 과거와 철저한 단절을 이루었음을 보여주었다.

20세기 시의 혁명은 엘리엇의 첫 시집 〈프러프록 외(外) Prufrock and Other Observations〉를 출간한 1917년에 성숙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제시 〈프러프록〉 이외에도, 이 책에는 〈서시 Prelude〉·〈어느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Lady〉 등의 원숙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시의 혁명은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이 혁명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콜리지와 워즈워스의 낭만주의 혁명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엘리엇과 파운드는 이 18세기 시인들인 콜리지와 워즈워스처럼 시어를 개혁하면서 혁명을 시작했다. 워즈워스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엘리엇은 교육받은 사람이 쓰는 '현학적이지도 않고 천박하지도 않은' 시어를 추구했다.

그는 스윈번에 대해 "그렇듯 탁월한 시에서 최초로 의미 없는 소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1년 동안 그는 하이게이트 학교에서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쳤다. 1917년 그는 잠시 로이드은행의 은행원으로 근무했다. 그동안에도 그는 문학비평과 전문적인 철학분야에서 많은 평론을 썼다. 1919년 〈시집 Poems〉을 발표했는데, 무운시 형식으로 씌어진 명상적 내적 독백시 〈제론션 Gerontion〉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시는 영시 사상 유례없는 것이었다.

〈황무지〉와 비평

1922년 〈황무지〉가 출판됨으로써 엘리엇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5부로 구성된 이 시는 서유럽의 거대한 현대도시들의 20세기적 감성의 단편적인 경험을 반영한 '수사적 불연속성'의 원칙에 따라 전개되어간다. 엘리엇은 스스로를 영원한 도시가 타락하여 생긴 세속화된 도시의 시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황무지〉의 궁극적인 주제이며, 지속적인 수사학적 전환과 대조적인 문체의 병행으로 주제가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 시는 초기의 비평가들이 예측했던 대로 훌륭했던 과거와 타락한 현재를 단순히 대조한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도덕적 위엄과 도덕적 타락을 시간을 초월하여 동시에 인식한 것이다.

원래 800행쯤 되었던 이 시는 에즈라 파운드의 제의로 433행으로 줄었다. 〈황무지〉는 엘리엇의 가장 유명한 시이지만 가장 위대한 시는 아니다.

엘리엇은 시인비평가는 불가피하게 '계획적인 비평'(programmatic criticism)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이는 역사적 학문과는 매우 다르게, 시인으로서 시인 자신의 관심사를 표현하는 비평을 말한다. 의식적으로 의도했든 아니든 이러한 종류의 비평은 시인비평가 자신의 시가 이전 세대의 비평기준이 지배적인 문학적 풍토에서 발표된 경우보다는 더 잘 이해되고 감상될 수 있는 분위기를 창출했다.

엘리엇의 첫 비평집 〈거룩한 숲 The Sacred Wood〉(1920)에 실려 있는 평론 〈전통과 개인의 재능 Tradition and Individual Talent〉은 워즈워스의 〈서문 Preface〉만큼 역사상 중요하고 역사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다. 엘리엇은 "전통은 반드시 시인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지, 과거에 씌어진 작품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다", "참신한 것이 반복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호메로스에서 현재에 이르는 모든 유럽 문학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영어로 글을 쓰는 시인은 과거의 시대나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자료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전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여러 언어로 인용하고, 다른 시인의 문체를 심각하게 패러디했던 개혁적인 참신성을 독자에게 수용시킨다는 점에서 '계획적'이다. 또한 〈거룩한 숲〉의 〈햄릿과 그의 문제들 Hamlet and His Problems〉에는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관계 이론이 설명되어 있다. "예술의 형식에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 상관관계', 즉 그 독특한 감정을 나타내도록 관습적으로 정해진 한 무더기의 사물들, 상황, 일련의 사건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각적인 체험으로 끝나는 그 외적인 사실들이 주어질 때 감정이 즉시 환기된다."

엘리엇은 그 어구를 산타야나, 미국의 화가이자 작가인 워싱턴 올스턴으로부터 차용해 자신의 일반적인 시이론에 알맞게 적용시켰다. 그것은 단어와 대상과의 대응을 중시함으로써 후기 빅토리아 시대 수사법의 모호성을 수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거룩한 숲〉이 출판된 다음해에 처음 발표된 다른 두 평론들은 엘리엇의 비평 기준을 거의 완성시킨 것이다.

이 〈형이상파 시인 The Metaphysical Poets〉·〈앤드루 마블 Andrew Marvell〉은 〈비평선집 1917~32 Selected Essays, 1917~1932〉(1932)에 실려 있다. 이 평론에서 그는 영시의 계급적 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17세기 형이상파 시인들을 최상의 위치에 두고, 18, 19세기 시인들의 위상을 격하시키고 있다(마블형이상파 시인). 엘리엇의 2번째 유명한 어휘인 '감수성의 분열'도 이 비평문에 나와 있는데, 이 말은 존 던과 앤드루 마블 이후 영시에서 일어났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창안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상과 감정의 조화로운 일치를 상실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 어휘는 비난받기는 했지만 이러한 어휘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사실은 부정될 수 없다. 더욱이 엘리엇과 파운드의 시는 17세기의 몇몇 시인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갖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엘리엇 비평의 최초의 단계, 즉 계획적 단계는 〈시의 효용과 비평의 효용 The Use of Poetry and the Use of Criticism〉(1933)이라는 하버드대학교에서의 찰스 엘리엇 노턴에 대한 강연으로 마무리짓게 된다.

이보다 얼마 전에 그는 신학과 사회학으로 관심의 폭을 넓혔으며, 3권의 짧은 비평집들인 〈램버스절(節) 이후의 명상 Thoughts After Lambeth〉(1931)·〈그리스도교 사회의 사상 The Idea of a Christian Society〉(1939)·〈문화 정의론 Notes Towards the Definition of Culture〉(1948)은 그결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비평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걸작인 〈단테 Dante〉(1929)와 더불어 문학의 기본영역을 신학과 철학으로 확대했다.

즉 어떤 작품이 시인지 아닌지는 문학적인 기준으로 결정해야 하지만, 위대한 시인지 아닌지는 문학적인 것보다 더욱 높은 기준으로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평과 시는 너무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통합된 지성과 감성의 산물이므로 이들을 따로 떼어 논의하기는 어렵다. 단테에 대한 위대한 평론은 엘리엇이 영국성공회의 고교회파가 된 지 2년 후에 발표되었다(1927). 그해에 그는 또한 영국 국민으로 귀화했다. 개종한 뒤에 쓴 첫 장시는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1930)로, 그의 이전 시들과는 전혀 다른 문체로 씌어진 종교적 명상시이다.

사실상 엘리엇의 시들은 모두 그 자신이 쓴 작품들임이 분명하지만 엘리엇은 절대로 같은 주제나 형태의 시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재의 수요일〉은 아직도 시는 자율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엄격히 비종교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시절에는 호평받지 못했다. 특히 에드먼드 윌슨 같은 비평가가 그러했듯이, 개인의 환멸감을 표현한 것으로 잘못 해석되기도 했다.

후기의 작품활동과 영향

엘리엇의 걸작은 〈4개의 4중주〉이다.

이 작품은 각 〈4중주〉가 모두 완성된 시들이기는 해도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1935~41년에 간격을 두고 출간된 이 4편의 시들은 1943년 단행본으로 발행되었다. 이 책으로 엘리엇은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희곡으로는 1926년 출간되었고 1934년 초연된 〈스위니 아고니스테스 Sweeney Agonistes〉가 엘리엇의 첫 작품이며, 1958년 초연되었고 1959년 출판된 〈원로 정치가 The Elder Stateman〉가 마지막 작품인데, 그의 서정시나 명상시보다 뒤떨어진다.

세속적인 소재를 다룬 극이라도 무의식적으로 종교를 찾던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야 하며, 사실상 모든 극은 자기인식·화합·정화로 향하는 종교적 발전구조를 갖고 있다는 엘리엇의 신념 때문에, 그는 극을 다른 시형들보다 우위에 두었다. 그의 극들은 모두 그가 고안한 무운시이며, 그 의미는 그 운율적 효과와 분리되어서는 이해되지 못한다. 즉 그는 '시극'을 다시 대중무대에 올려놓은 것이다. 〈가족의 재회 The Family Reunion〉(1939)·〈성당의 살인〉은 그리스도교적 비극들로 전자는 복수 비극이며, 후자는 교만의 죄악을 다루고 있다.

다른 극들은 희극인데, 플롯은 그리스의 극에서 가져온 것이다. 가장 성공적인 극작품으로 1949년 초연되었고 1950년 출판된 〈칵테일 파티〉를 들수 있는데 이 극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에우리피데스의 〈알케스티스 Alcestis〉이다.

엘리엇의 편집자로서의 활동은 그가 주로 관심을 쏟은 일에 대한 부수적인 것이었지만, 그가 맡았던 계간 비평지 〈크라이테리언 The Criterion〉(1922~39)은 당시 가장 탁월한 국제적인 비평지였다.

그는 페이버앤드페이버출판사의 '이사', 즉 사무직도 수행하는 편집인으로서 1920년대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했다. 엘리엇의 사후에 출간된 비평집 〈비평가에 대한 비평 외(外) To Criticize the Critic, and Other Writings〉(1965)에는 매우 중요한 2편의 평론이 수록되어 있다.

〈비평가에 대한 비평〉은 평론으로, 자신의 문학비평에 대한 진지하고도 겸손한 평가이다. 〈미국 문학과 미국어 American Literature and the American Language〉는 미국 영어가 독립된 언어라는 국수주의적인 통념을 다루고 있으며, 그와 같은 확신으로 영국문학과 미국문학이 하나의 문학에서 생겨난 것임을 논하고 있다. 18세기 중반이 존슨 시대라고 불리고 있듯, 20세기 전반은 아마도 역사가들에게 '엘리엇의 시대'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새뮤얼 존슨은 신고전주의 시대의 마지막에 활동하면서 그 시대를 요약했지만, 엘리엇은 비평가 겸 시인으로서 자신의 시대를 창조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사생활을 가능한 한 표면에 드러내지 않았다. 1915년 비비언 헤이우드와 결혼했고, 1933년 이후 그녀가 정신질환에 걸리자 그들은 별거했으며, 그녀는 1947년 죽었다. 1957년 1월 그는 발레리 플레처와 재혼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와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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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무        지 

 T.S 엘리엇 의 장시 ((황무지))는 20세기 정신문화사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으로 이렇게 시작된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작은 생명만 유지했으니.

황무지는 미국문학사의 과정 속에서 일대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다. 뿐만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모나라 그리고 세계와 모든 문학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제공한다. 

휘트먼의 시((풀잎), ((내 자신의 노래))가 미국 민주주의 정신과 자연에의 사상을 건강하고 

폭넓게 담아 영향을 끼쳤다면 에리엇은 20세기 대표적인 문예사조인 모더니즘을 자신의 

시작품과 해박한 이론으로 여실히 밑바탕을 다져 놓은 시인이다.

1922년에 발표된 이 장시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전역을 강타한 죽음과 절망의 황폐함, 

그리고 저 세계문화의 붕괴를 새로운 시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곳곳에 널려있는 문명의 파편들을 잘못된 역사의 쓰레기더미인 양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시는 절묘한 음악성 순간적인 기억에로의 활기장치, 문학적인 상상력을 풍부하게 펼쳐놓는다. 

원래 이 시는 엘리엇이 미국에서 영국으로 귀화한 직후 썼는데 용양중인 스위스의 로잔이란 도시다. 

 자동차 사고의 휴유 증으로 로잔의 한 요양소에서 정신의학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신경장애 

현상을 통해서 시인은 전후 유럽문명의 황폐함을 처절하게 깨달은 나머지 방대한 주석과 시적 

사건들의 담긴 ((황무지))를 노래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엇은 이 책의 첫 구절에서 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언급했을까? 

일 년이 열두 달인데 하필이면 무슨 이유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 이라고 단정지어버린 것이었을까? 

미국이나 유럽 또한 4월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고 꽃이 피는 봄이 아닌가.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라는 시구의 비밀을 알고 나면 사실상 ((황무지)) 전편의 궁금함이 눈 녹 듯 사라진다.

 이 시를 쓸 당시 스위스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던 엘리엇은 어느 날 산책을 나선다.

 아. 그런데 읻게 무엇인가? 눈 쌓인 알프스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사색에 잠겨 걸음을 옮기던 

시인은 예상치 못한 장면을 보게 된다.

때는 바야흐로 4월 겨울 동안 쌓인 눈들이 녹고 있었는데 시인은 자신의 바로 앞에서 제1차 

세계대전, 그러니까 지난 전쟁의 잔해를 발견한 것이다. 

녹슨 철모와 총칼, 죽은 시체들의 뼈가 눈 덤 속에서 드러나는 것을 목격한다.

 참으로 잔인한 주검들 차라리 눈을 감고 있을 걸, 봄이 오지 않았으면 눈이 녹지 않았을 것을

 망각 속에 영원히 파묻혀 있어도 좋을 그것들이 들어온 것이 아닌가. 

시인은 그러한 장면을 목격하고 한숨을 쏟아 냈던 것이다.

시인은 잔인한 4월을 노래한다.

 “아아. 봄이 오는 4월은 잔인하구나! 차라리 봄비가 내리지 않는다 면 전쟁과 잔인한 기억의 

잔해들이 모두 파묻혀 있었다면 몰랐을 것인데,” 엘리엇은 그런 괴로운 생각을 하면서 자신과 독자들에게 묻는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들은 따듯하게 했었다.”라는 역설 혹은 역발상적인 표현으로 길게 한숨을 짓는다.

 

메마른 돌 틈엔 물소리도 없다. 다만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려므나)

그러면 나는 아침에 너를 뒤따른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마주서는 그림자와는 다른 무엇을 보여주리라

오늘날 인류의 문명을 ‘기억과 욕망“이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서 뿌리 채 흔들리는

 그것으로 파악한 엘리엇 그는 전쟁과 문명으로 상징되는 인간들의 삶의 현장을 ’돌더미

 쓰레기‘로 비유하다가 자욱한 안개 속의 런던교(런던 브리지)를 이렇게 묘사한다. 전쟁 후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마저 ’죽은 사람‘으로 바라본다.

공허의 도시

겨울 새벽 갈색 안개 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런던브리지 위로 흘러간다. 저렇게 많이

주검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멸망시켰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시는 1920년대 영미시의 모더니즘을 대표한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엔 1930년대에 들어와 

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수입하게 되는데 김기림. 김광균. 정지용에 이어 1940년대

 중반기((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란 동인지를 펴낸 김수영과 박인환 등이 모더니즘의 깃발을 내건다.

 모더니즘은 과거의 전통과 형식을 부정하고 새로운 미학을 내세운 문예운동의 하나인데 물론 

‘주지주의’란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귀납법’을 창시한 것으로 유명한 F.베이컨인데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에겐 오성(悟性)에 반하는 비이성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전통을 이어받은 20세기의 시인 엘리엇은 ‘지적 정보’ 가 대거 출현하는 

주지주의적 모더니즘을 크게 옹호하거나 강조한 시인으로 나선다. 

특히 그의 시의 경우 언어적 기법에선 감정억제와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한 이미지즘을 선호한다. 

이미지란 ‘심상(心象)이란 것인데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감정을 ‘눈에 보이듯이 

그린다.’는 뜻에서 ‘마음의 그림’으로 번역할 수 있는 어휘가 아닐까? 

영국으로 귀화한 엘리엇은 런던 은행에 취직, 거기에서 남은 돈으로 ‘크라이티 어리언’이란 

출판사를 차려 유명한 ((황무지))를 간행하기에 이른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감수 아래에서 출간을 하게 되는데 엘리엇이

 원래 썼던 원고의 반절이 바로 파운드의 붉은 색연필로 지워져 나간다.

“고전이란 말을 최대한 압축시켜 정의를 내린다면 그것은 ‘원숙(圓熟)이라는 말일 것이다.

 고전은 문명이 원숙하고 언어와 문학이 원숙할 때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고 원숙한 정신의 

소산이다.”라는 담론을 시종일관 엘리엇은 강조한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시로 평가를 받은((황무지))로 1948년에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작품의 감동은 전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고 할 것이다.

 엘리엇이 목격한 ’가장 잔인한 4월‘이 다시 오지 않을까 조바심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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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어트

1888 - 1965

 

금세기 최고의 시인이며 비평가, 극작가로 꼽힌다.

 

시인·극작가·문학평론가·편집인으로서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20세기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시어·문체·운율 등의 실험으로 영시(英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일련의 평론들을 통해 과거의 정통적 견해들을 타파하고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다. 또한 사회적·문화적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으며, 페이버앤드페이버출판사의 이사로서 젊은 시인들을 관대하면서도 분별력있게 도와주던 후원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발표된 〈4개의 4중주 Four Quartets〉로 당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가로 인정받았다.

 

 

황무지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I.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태공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일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하지만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유명한 천리안 소소스크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영특한 카드 한벌을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네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에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보이는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현실감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 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망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보면서

언덕을 넘어 킹 윌리엄 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노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스테슨!

 

자네 밀라에 해전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아닌 서리가 묘상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전쟁은 살인과 파괴로 인해 외부 세계를 황폐케 하듯이

인간의 내부 세계에도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이 내부의 전쟁 체험에

의해 비로소 전쟁의 황폐의 의미와 평화의 가면과 참다운 평화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다.

 

이 시는 1차세계대전 후 유럽의 황폐를 유럽인들의 정신적인 황폐로써

조명하려는 강렬한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엘리어트도 길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 "지난 해 자네가 마당에 심은

시체는 싹트기 시작했나?  금년에는 꽃이 필 듯 하던가?" 하고

이 시에서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의 시체에서 어떤 문명이

싹트고 어떤 꽃이 필 것인지는 유럽 문명의 과거 전통을 지켜보고,

절망하면서 뭄직이는 인간들의 회화나 유희, 또는 비즈니스나 전설,

그리고 미신을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엘리어트는

이 시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1922년에 발표된 이 시는 전체가 5장으로 되어 있고

1장 죽은 자의 매장

2장 체스놀이

3장 불의 설교

4장 익사

5장 천둥의 말 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433행의 장 시이며

 

유럽인의 풍습, 전설 및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이해하기 힘든다.

첫머리의 "4월은 가장 잔인 달"로 시작되는 선명한 이미지나,

"사람의 아들이여, 너는 말도 추측도 할 수 없다."로 시작되는 폐허 속의

인간 내부 세계의 이미지, 붙어다니는 죽음의 그림자의 이미지는

누구나 공감을 느낄 것이다.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만일 나의 대답이 저 세상에 돌아갈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고 내 생각한다면 이 불길은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러나 내가 들은 바가 참이라면 이 심연에서

살아 돌아간 이 일찍이 없으니, 내 그대에게

대답한들 수치스러운 염려 없도다.

 

 

그러면 우리 갑시다, 그대와 나

지금 저녁은 마치 수술대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 갑시다, 거의 인적이 끊어진 거리와 거리를 통하여

값싼 일박 여관에서 편안치 못한 밤이면 밤마다

중얼거리는 말소리 새어 나오는 골목으로 해서

 

굴껍질과 톱밤이 흩어진 음식점들 사이로 빠져서 우리 갑시다.

음흉한 의도로

싫증나게 질질 끄는 논의처럼 연달은 그 거리들은

 

그대를 압도적인 문제로 끌어 넣으리다.

아아, '무엇이냐'고 묻지는 말고

우리 가서 방문합시다.

 

 

방안에선 여인네들이 왔다 갔다

미켈란젤로를 이야기하며

 

유리창에 등을 비벼대는 노란 안개,

저녁의 구석구석까지 혀를 핥고서

 

수채에 괸 웅덩이 위에서 머뭇거리다가,

굴뚝에서 떨어지는 그을음을 등에 받으며,

 

테라스곁을 살짝 빠져 껑충 한 번 뛰고선,

아늑한 10월달밤인 줄 알았던지,

집 둘레를 한바퀴 핑 돌고선 잠이 들어 버렸다.

 

 

유리창에 등을 비벼대며

거리를 미끄러져 가는 노란 안개에도

확실히 시간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만날 얼굴들을 대하기 위하여 한 얼굴을 꾸미는 데에도

시간은 있으리라, 시간은 있으리라.

 

살해와 창조에도 시간은 있으리라.

 

백번이나 망설이고

백번이나 몽상하고 백번이나 수정할 시간은 있으리라.

토스트를 먹고 차를 마시기 전에.

 

 

방안에서 여인네들이 왔다갔다.

미켈란젤로를 이야기하며

 

 

정말 생각해 볼 시간은 있으리라.

'한번 해 볼까?' '해 볼까?'하고 망설일 만한 시간은

 

한복판은 대머리가 벗겨진 내 머리를 끄덕이며

발을 돌려 계단을 내려갈 만한 시간은

(여인들은 말하리라, 저이 머리는 어쩌면 저렇게 벗겨진담.)

 

 

내 모닝코트, 턱까지 빳빳이 치받치는 내 칼라

화려하고 점잖지만 수수한 핀 하나로 그 것을 나타내는 넥타이

여인들은 말하리라. '참 저이 팔다리는 가늘기도 하지?'

 

한 번 해  볼까?

천지를  뒤흔들어 볼까?

 

이 일순간에도 시간은 있다.

일순간에 의하여 역전하는 결단과 수정의 시간을.

 

 

나는 이미 그 것들을 다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다.

저녁과 아침과 오후를 알고 있다.

 

나는 내 일생을 커피 스푼으로 되질해 왔다.

저쪽 어느 방에서 음악에 섞여

 

갑자기 낮아지며 사라지는 목소리들도 나는 안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감히 해 볼 것인가?

 

 

그리고 나는 이미 그 눈들을 알고 있다. 그 것들을

모두 알고 있다.

공식적인 문구로 사람을 꼼짝 못하게 노려보는 눈들을

 

그리고 내가 공식화되어 핀 위에 펼쳐질 때

내가 핀 꽂혀 벽위에서 꿈틀댈 때

 

어떻게 나의 생활 나의 태도의 한토막 한토막을

비로소 모조리 뱉어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미 그 팔들을 알고 잇다. 그것은 모두 알고 있다.

팔지 낀 허옇게 드러나 팔들을

(그러나 램프 불에 보며, 엷은 갈색 솜털로 덮인)

 

내가 이처럼 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는 것은

옷에서 풍기는 향기 때문인가?

 

테이블에 놓인 팔, 쇼올을 휘감은 팔

그러면 한번 해 볼까?

그러나 어떻게 말을 꺼낼 것인가?

 

 

이렇게나 말해볼까, 나는 저녁때 좁은 거리를 지나왔습니다.

샤쓰만 입은 외로운 사나이들이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뿜어대는 파이프의 연기를 나는 보았습니다라고

 

 

나는 차라리 고요한 바다 밑바닥을 어기적거리는

한 쌍의 엉성한 게 다리나 되었을 것을.

 

 

그런데 오후도 저녁도 저렇게 편안히 잠들었구나.

긴 손가락들도 쓰다듬어져서!

잠이 들었거나, 피곤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앓은 체 하는 것이다.

 

그대와 내 곁 여기 마루 위에 펼쳐서

차도 끝내고 케이크도 아이스크림도 먹고 났는데,

이제 내게 무슨 힘이 있어 이 순간을 한 고비로 몰아 가겠는가?

 

그러나 나는 울기도 하고, 단식도 하고, 울며 기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 머리(조금 벗겨지긴 했지만)가 쟁반 위에 놓여 들어오는 것을

보긴 했지만,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여기에 별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나는 나의 위대한 순간이 가물거리는 것을 보았고,

 

영원한 '하인'이 내 코트를 잡고 킬킬 거리는 것을 보았다.

결국 나는 두려웠었다.

 

 

도대체 그 것이 보람이 있었겠는가?

잔을 거듭하고, 마말레이드를 먹고, 차를 들고 나서,

 

화병을 옆에 놓고 내 그대와 주고 받는 이야기에서

그 것이 보람있었겠는가?

 

미소로써 문제를 물어 뜯어 버리고

우주를 뭉쳐서 공을 만들어

 

어떤 어마어마한 문제로 그 것을 굴려 간다한들

또는 '나는 주검으로부터 살아나온 나자로다.

 

너희들에게 모든 것을 알리기 위하여 돌아왔다,

모든 것을 말하리라'고 말한들.

 

만약 어느 여인이 머리맡에 베개를 놓고서

'나 조금도 그런 뜻에서 말한 것 아네요,

조금도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한들,

 

 

아니다! 나는 햄릿 왕자가 아니다, 될 처지도 아니다.

나는 시종관 행차나 흥성하게 하고

한 두 장면 얼굴이나 비치고

 

왕자에게 진언이나 하는, 틀림없이 만만한 영장,

굽실굽실 심부름이나 즐겨 하고,

 

빈틈 없고, 조심정 많고, 소심하고

큰 소리치지만, 좀 머리가 뜨고

 

때로는 정말 바보같기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때로는 틀림없이 <어릿광대>

 

 

나는 늙어 간다... 늙어 간다.

바짓가랑이 끝이나 접어 입을까

 

 

머리를 뒤에서 갈라 볼까? 복숭아를 한번 먹어볼까?

흰 플란넬 바지를 입고 해변을 걸어 볼까?

 

나는 인어들이 서로 노래를 주고 받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 인어들이 날 들으라고 노래 부르는 것은 아니겠지.

 

 

그 것이 물결타고 바다 안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흴락 검을락 물결이 바람에 불릴 때

 

뒤로 젖혀지는 파도의 흰 물머리를 빗질하며

우리는 적색 갈색의 해초를 두른 바다 처녀들에 섞여

 

바다의 방안에서 지금까지 머뭇거리다

그만 인간의 목소리에 잠이 깨어 물에 빠진다.

 

 

히스테리

 

                    

 

그녀가 웃으면,나는 그녀의 웃음속에 휘말려

그것의 일부분이 된다는 건 알았지만,

 

그녀의 이는 分隊敎練의 재능을 가진

우연의 星群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갑작스런 가쁜 숨결 속에

끌려들었고,게서 빠져나려 하면 그때마다 들이마셔져,

 

마침내는 캄캄한 그녀의 목구멍 속에서 떠돌아 다니다

보이지 않는 근육의 파문에 상처입었다.

 

늙수그레한 웨이터가,녹이 슨 초록빛의 철제 식탁위에,손을 떨며,

핑크빛의 흰 격자무늬를 수놓은 식탁보를 급히 펴면서 말했다.

 

'만일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싶으시다면,만일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싶으시다면....'하고.

 

그녀 가슴의 진동을 멈출 수만 있다면,나는 오후의 단편을 얼마간

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세심하고 교묘하게 나의 주의를

이 목적에 집중했다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열두 시.

달의 종합 속에 들어있는

쭉 뻗은 거리를 따라

속삭이는 날의 주문은

기억의 심층과

그 모든 뚜렷한 관계와

그 구분과 정밀성을 용해하고,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은 저마다

숙명적인 북처럼 울리고,

어둠의 공간을 통하여

한밤은 기억을 뒤흔든다,

광인이 죽은 제라늄을 흔들듯이.

 

 

한 시 반.

가로등은 침을 튀겨대고,

가로등은 중얼대고,

가로등은 말했다. "저 여자를 보라

방긋 웃는 듯이 열려 있는 문간의

불빛 아래서 그대를 향해 망설이고 있는 저 여자를,

 

그녀의 옷자락이 찢겨져

모래로 더렵혀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눈꼬리가

구부러진 핀처럼 비틀린 것도 볼 수 있다.

 

 

추억은 많은 뒤틀린 것들을

높이 밀어올려 마르게 하고,

해변의 비틀린 가지는

매끈히 벌레에 먹히고 반들반들 닳아

마치 세계가 희고 빳빳한

그 뼈대의 비밀을

내던져 버린 것 같다.

 

공장 마당의 부서진 용수철,

힘이 빠져 막막하게 구부러지고

꺾일 지경이 된 그 형체에 달라붙은 녹.

 

 

두시 반,

가로등이 말했다.

 

"보라 도랑에 납작 업디어

혀를 쑥 내밀고

한 조각의 썩을 버터를 탐식하는 저 고양이를"

 

그렇게 어린 아이의 손이 자동적으로

쑥 나와 부두를 따라 달리는 장난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그 아이의 눈 뒤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나는 거리에서,불켜진 덧문 사이로

들여다보려고 하는 눈들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날 오후 웅덩이 속에서 게 한 마리가,

등에 조개삿갓이 붙은 늙은 게 한 마리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막대기 끝을 움켜잡았다.

 

 

세시 반.

가로등은 침을 튀겨대며,

가로등은 어둠속에서 중얼댔다.

가로등은 흥얼거렸다--

 

"저 달을 보라,

달은 아무런 원한도 품질 않는다,

그녀는 약한 눈을 깜박이며

구석구석에 미소를 보낸다.

그녀는 풀의 머리털을 쓰다듬는다.

 

달은 기억을 잃었다.

색이 바랜 천연두로 그녀의 얼굴은 금이 가고

그녀의 손은 먼지와 오 드 꼴로뉴의 냄새를 풍기는

종이 장미를 비튼다.

 

그녀는 다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오랜 밤의 온갖 냄새와 더불어 있도다"

 

추억이 밀려온다

햇빛 받지 못하는 마른 제라늄과

갈라진 틈바구니의 흙과

 

거리의 밤 냄새와

덧문 닫힌 방의 여자의 냄새와

복도와 담배와

술집과 캐테일 냄새 등의 추억이.

 

 

가로등은 말했다.

지금은 네 시,

여기 문 위엔 번호가 있다.

추억이라고!

 

열쇠를 가진 것은 그대,

작은 등불이 계단에 원을 펼쳤으니,

올라오라.

침대는 비었고,칫솔은 벽에 걸려 있다

신일랑 문간에 놓고,잠자라,그리고 내일의 삶에 대비하라

 

 

나이프의 마지막 비틀림

 

 

 

 

버언트 노오튼 I. - '4중주곡'에서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된다.

 

모든 시간이 끊임없이 존재한다면

모든 시간은 보상할 수 없는 것이다.

 

있을 수 있었던 일은 하나의 추상으로서

다만 사색의 세계에서만

영원한 가능성으로서 남는 것이다.

 

있을 수 있었던 일과 있은 일은

한 점을 향하여, 그 점은 항상 현존한다.

 

발자국 소리는 기억 속에서 반향하여

우리가 걷지 않은 통로로 내려가

우리가 한 번도 열지 않은 문을 향하여

장미원薔薇園속으로 사라진다. 내 말들도

이같이 그대의 마음속에 반향反響한다.

 

그러나 무슨 목적으로

장미 꽃잎에 앉은 먼지를 뒤흔드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 밖에도 메아리들이

장미원에 산다. 우리 따라가 볼까?

 

빨리, 그걸 찾아요, 찾아요, 모퉁이를 돌아서.

새가 말한다. 첫째문을 빠져,

우리들의 최초의 세계로 들어가, 우리 따라가 볼까

 

믿을 순 없지만 지빡새를? 우리들의 최초의 세계로 들어가.

아 있구나. 위엄스럽게, 눈에도 안 보이게,

죽은 잎 위에 가을 볕을 받으며,

하늘거리는 대기 속에 가벼이 움직인다.

 

그러나 새는 노래한다, 관목 숲속에 잠긴

들리지 않는 음악에 호응하여.

보이지 않는 시선이 오고간다. 장미는

우리가 보는 꽃들의 모습이었다.

 

그건 영접받고 영접하는 우리의 빈객이다.

우리들이 다가서자 그들도 하나의 정형의 패턴으로

텅 빈 소로小路를 따라 변두리 황양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물마른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연못은 마르고, 콘크리트는 마르고, 변두리는 갈색

햇빛이 비치자 연못은 뮬로 가득차,

연꽃이 가벼이 가벼이 솟아오르며,

수면은 광심光心에 부딪쳐 번쩍인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의 등 뒤에서 염못에 비치고 있었다.

그러자 한 가닥 구름이 지나니 연못은 텅 빈다.

가라, 새가 말했다. 나뭇잎 밑에 아이들이 가득

소란하게 웃음을 지니고 숨어 있다.

 

가라, 가라, 가라, 새가 말한다. 인간이란

너무 벅찬 현실에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니.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

있을 수 있었던 일과 있었던 일은

한 끝을 지향하는 것이고, 그 끝은 언제나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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