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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소사전] - 풍시조(諷詩調)란?...
2017년 11월 19일 00시 16분  조회:2497  추천:0  작성자: 죽림

 

풍시조(諷詩調)

          

  諷詩調라 이름하는 시지(詩誌)를 받았다. 발행처는 조선문학사였고 5호째였다. 이런 간행물이 있었던가? 나의 과문함을 탓하며 등록일자를 찾아보니 없다. 장원의 주간의 머리글을 읽고『조선문학』별책으로 나오는 부정기간행물임을 알았다. 표지제호 윗머리에 제시한 ‘위트 펀 컨시트와 순수한 痛懲의 미학’이라는 어휘들이 시지 諷詩調의 성격을 대변하는 구호인가보다. 내용을 일별했다. 우선 쉽고 재미있고 세 줄씩 세 줄씩 시가 짧았다. 많은 문인들이 참여했고 풍시조가 지향하는 취지에 걸맞게 정치풍자 사회풍자를 중심으로 일정수준 좋은 실험결과물을 보여 주었다.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풍시조가 어느새 우리 시단에 이렇게 많이 확산되었는지, 그럼에도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참으로 나의 시읽기의 협소함이여. 부끄러웠다.

  풍시조, 우선 이름만 들어보면 평시조니 엇시조니 사설시조니 할 때와 같이 시조의 한 갈래로 들린다. 그러나 글자를 들여다보면 시절가(時節歌)를 뜻하는 시조(時調)가 아니고 시조(詩調)다. 그러니까 諷詩調는 시조형식(3행시)에 담은 풍시 곧 풍자시라는 뜻인가 보다. 다시 말해 시조형식으로 쓴 풍자시 뭐, 이런 뜻이리라. 어쨌든 전통과 현대를 엮어주는 새로운 이름의 장르가 아닌가.

  유구한 문화민족인 우리는 멀리 신라의 향가를 비롯해 고려의 속요와 하여가 조선조의 시조와 가사문학을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근세에 들어 우리는 자유시라는 이름으로 서구의 시풍과 시론을 받아들여 현대성의 수용이라는 차원에서 모더니즘이니 쉬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무의식의 자동기술이니 어쩌니 해서 윤리적인 일체의 반성도 없이 20세기를 풍미했다. 그 결과 일정수준 시가 넓어지고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시가의 실종 내지 정체성에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무의미한 잔소리, 피폐한 난해성으로 시를 몰고 간 과가 없다 못할 것이다.

  아무렴, 살아 꿈틀거려야 할 문학의 흐름이 100년이면 큰 물줄기가 바뀔 때도 되었다. 새천년의 첫 세기에 우리 시단에도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나야 되지 않겠냐고 모두들 알게 모르게 새로운 장르를 모색하고 갈구해 오던 차제에 諷詩調의 출현은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사안으로 생각된다.

  풍시조는 평시조의 3장형식을 따르긴 했지만 평시조 가락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음수율(음보)는 자유시와 다를 게 없다. 3행시에 담긴 주제 또한 순응적인 평시조와는 사뭇 다르게 거의 사회비판적이고 권위뒤집기다. 다시 한 번 풍시조 5호를 숙독해 본다. 시의 미학적 표현 기법으로 위트와 펀 유모와 아이러니 메타포들로 풍시조 5호는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번 호에 소시집을 낸 이소희 시인의 그 첫 번째 작품「진흙과자」를 읽어보자.

 

TV화면에 나오는 아이티 아이들 좀봐!

진흙과자를 먹고 있잖아?

“나의 새해 목표는 살빼기다”

 

아이티 아이들의 진흙과자와 나의 살빼기 사이에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일견 아이티 아이들은 먹을 게 없어 할 수 없이 진흙과자를 먹고 있는데 약 올리듯이 웬 살빼기타령이냐 하겠지만 이것은 타자의 기아를 보면서 자아의 비만을 부끄러워하는 양심이다. 시인의 양심은 살빼기로 조금씩 모여진 적은 양의 식량일지라도 굶주린 아이티 아이들에게 돌아기기를 바라는 동정어린 나눔의 박애정신, 이 뭉클한 휴머니티! 2행과 3행 사이에 심연 같은 함축과 생략,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아이러니와 반전, 무릎을 탁 칠만하지 않은가. 이것이 시의 울림이요. 시의 감동이다.

  풍시조는 비꼬고 꼬집고 뒤집고 비트는 정치풍자나 사회풍자만이 아니고 세계인이 불시에 당하는 재해나 우리가 안고 있는 당면한 시사(時事)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져주는 시치료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간명하고 적절한 장치를 지닌 나무랄 데 없는 장르로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새로운 장르를 연구 창안하고 끝없이 실험하여 벌써 풍시조로만 6권의 시집을 내고 각고의 노력으로 諷詩調 시지를 내는 등 풍시조 보급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박진환 시인의 창의정신과 지칠 줄 모르는 그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풍시조가 우리 시사를 발전시킬 전기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덤으로 더...

 

 

풍시조(諷詩調)의 지향점

 

                                                  靑岩  鄭日相

 

요즘 풍시조가 유행하고 있다. 시(詩)에는 여러 형식이 있지만 여기 풍시조(諷詩調)가 지향하는 점과 그 정신을 살펴보고자 한다.

풍시조는 시로써 감행하는 시(詩)의 복수다.

풍시조는 시대적 부조리, 사회적 부정이나 부패 그리고 악행에 감행하는 복수로서의 통징(痛懲)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

 

이 풍시조(諷詩調)의 지향점은 관념유희, 정서유희를 극복, 시적 징벌로서의 통징(痛懲)이 카타르시스를 통해 이 시대의 답답한 정신적 체증을 해소해주는 복수의 시(詩)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시단(詩壇)에 풍시조(諷詩調)를 보급한 원로시인 박진환(문학평론가)씨에 따르면 “풍시조는 풍자쪼나 투로 쓴 시를 일컫는 새로운 명명이다. 그 때문에 풍시조의 바탕은 풍자시와 무관하지 않는 동질적 맥락 내지는 혈통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고 지적했듯이 우리 고유 해학(諧謔)의 문학과 맥을 같이 하고 있고 많은 옛 시인들이 사회의 비판시를 쓴 맥락과 또한 그 궤(軌)를 같이 한다 하겠다. 그는 이어서 “인간생활, 특히 주어진 시대나 살아가는 현실 및 사회에서 자행되고 경험하게 되는 악행이나 우행, 악덕이나 비리, 부조리에 대해 비꼬고, 조소하며 깎아내리고 부정하며 고발·비판하는 통징의 감행이 풍시조의 시적 역할이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에 통징을 감행하는 시의 복수 이면에는 악을 교정하여 선을 깨닫게 하고자 하는 개선의 의도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고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시대의 사회상을 봤을 때 이를 바로 교정해 주어야 하고, 따라서 이 교정을 통해서 이 사회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터전이 되어야 하므로 그 염원은 시인이 시를 쓰거나 평론가가 시평(時評)을 쓰거나 할 때 이 고발하고 비판하는 통징의 역할을 외면만 해서는 안 된다는 정신이 바로 이 풍시조(諷詩調)의 정신의 일단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풍시조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가령 요즘의 사회상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되어지고 있는 정치적 부조리나, 공직자 비리, 의문부호가 따르는 종교적인 미개안과 회의, 민족과 국체를 잃어버린 이념갈등의 유발, 세계문명과 사조로부터의 일탈과 길 잃은 방향으로의 이끌음, 인간의 악행을 일삼아 통분을 일으키는 사안 등과 도덕적 정신적으로는 비리, 부조리의 온상으로서의 현실이며 그 악폐· 우행· 악행으로서의 현실일수도 있고, 문명적으로는 자연의 파괴와 생명의 위기의 초래, 패권주의와 약소국가간의 갈등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국가·사회·인종·경제·정치·종교·기업·생명에 이르기까지 그 무수한 부정적 축면들 모두가 이 풍시조(諷詩調)의 대상으로 삼고 제시될 수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풍시조(諷詩調)의 생명은 시(詩)의 복수라고 할 수 있는 통징에 있다. 악과 비리와 부조리에 감행하는 시의 복수로서의 통징은 풍시조의 생명이자 존재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통징(痛懲)의 감행 없이 풍시조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여기 어느 시인의 풍시조 한 두수를 소개 하여 보면,

 

(1) 해용백천(海容百川)이라, 바다는 더러운 물, 깨끗한 물 다 수용

     세상은 악인(惡人), 선인(善人) 함께 공존, 이게 다 하늘의 질서

     여기 오직 분별(分別)과 선택의 삶, 자기 몫이니

 

(2) 관홍뇌락(寬弘磊落)마음 너그럽고 크며 사소한일 신경 안 쓴단 뜻

     2011년 키워드, 관용(寬容), 화해(和解), 정의(正義), 책임, 정직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 나 먼저 준법정신 솔선수범(率先垂範)해야

 

여기서 생각해 보면 (1)에서 본봐와 같이 그 시어(詩語)에서, 비록 더러움과 악과 몸 섞어 살면서도 ‘분별과 선택의 삶’은 자기 몫이라 하였듯이 이는 더러움과 악에 물들지 않고 몸 섞지 않음을 의미하고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2)의 풍시조에서 지적했듯이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법(法)을 지키고 솔선수범하는 곳에 어찌 불법과 비리와 탈선이 존재 할 수 있겠는가라고 전제하면서 곧 스스로의 허물을 볼 줄 모르고서야 어찌 남을 탓하겠느냐는 뜻도 담겨있으니 ‘자기의 눈썹은 보지 못한다(目能見而步之外而不能他見其睫)’는 한비자(韓非子)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또한 자정(自淨)과 정화(淨化)에 값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위에서와 같이 풍시조(諷詩調)를 통해 통징(痛懲)하는 미학(美學)은 시조의 글속에 잠겨져 있는 통징(痛懲)은 곧 일종의 순수한 통징으로서 형이상시의 시법과 궤를 같이 하며, 여기서 ‘순수한 통징’이란 육체적 제약이나 물리적, 법적 제재에 의한 징벌이 아니라 문화적 징벌 곧 시적 엄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시적(詩的) 감동이나 감화에 의해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게 하여 정신적 감화, 곧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게 하여 잘못을 개선하게 하는 문화적 수단의 징벌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지난날의 풍자시가 떠오른다. 곧 박노해의 오적(五賊) 시이다. 그는 이 오적시 하나로 시인이 되었고 일약 민주 투사가 되었다. 시인들 중에는 스스로 시인이기 보다는 투사로 불리기를  더 갈망하는 김남주나, 그리고 노동 시인 박노해. 백무산. 등도 투사가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남주를 위한 시와 사회상의 “피여 꽃이여 이름이여”이라는 핏빛 책자에 사실상 해설과 평론이 필요 없는 그의 완벽한 시에 평론가 시인들이 하나같이 부연했듯이 찬사의 글줄을 써댄 것을 보면 쓰지 않으면 적으로 몰릴지 몰라서 인지 몰라도 한결같이 적색 일색이다. 반사회적이었다. 이런 시들은 의도적으로 징벌의 대상을 공격하고 헐뜯고, 비아냥대고, 깎아 내리고, 비판과 고발하는 등의 공격성을 뛰지만 이 풍시조에서는 악의 교정이라는 따뜻한 휴머니티가 작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뛴다 하겠다. 즉 이 풍시조에서의 형이상시의 시법이기도 한 ‘순수한 통징’은 일체의 공격성을 지양하고 정신적 깨달음이나 깨달음을 통한 시정이나, 시정을 통한 스스로의 정화를 체험하게 한다는 관점에서 보아 법적이거나 물리적 육체적 통징을 지양(止揚)하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와 학문의 영역 내에 시문학(詩文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었으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18세기 이래 심지어 판소리가 등장하면서 서양의 침략과 내부적 혼란이라는 현실아래 위기의식과 구국의지는 이 시기 문학의 기본인 주제가 되었고, 이에 따라 해학문학과 더불어 사회상을 풍자하고 비판과 통징의 성격을 뛴 시문학 또한 상당히 발달하였었고 그 정신이 이 시대에 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하겠다.

 

이 풍시조(諷詩調)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목탁으로서의 역할과 사회의 올바른 길로의 진행과 정화를 위한 통징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풍시조는 시로써 감행하는 시(詩)의 복수라는 새로운 영역을 차지해가고 있으며, 시대적 부조리나 사회적 부정이나 부패와 해악, 그리고 악행 감행을 향한 교정과 복수로서 비판적 의도를  분명히 한 신랄미와 심각미를 시법으로 한 시(詩)요 덕목을 지니며  통징(痛懲)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 이 시의 영역은 사회를 정선(正善)한 덕율(德律)로 바로 세우려는 염원을 따 담아, 한편으로는 전통적으로 이어내려 오고 있는 우리 고유 해학(諧謔)의 문학과 맥을 잇고 있고 많은 옛 시인들이 사회의 비판시를 쓴 맥락과 또한 그 궤(軌)를 같이 하는 정신 또한 닮아있고 그 정신들이 살아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덤으로 참고하기...


풍시조는 박진환 시인이 개척한 시의 한 장르다.
풍자투로 쓴 3행시라는 것 외에 자수율 등의 규칙은 없다.
박 시인은 “풍시조는 시대적 비리나 악행, 부조리에
문화적 징벌인 통징(痛懲·엄하게 벌함)을 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의 소재는 늘 신문에서 찾은 것. 그래서 풍시조는 일견 신문의 만평과도 닮아 있다.
박 시인은 “3행이라는 제한을 받기 때문에 기발한 착상과 함축성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
풍시조는 ‘풍자의 어투로 쓴 3행시’를 일컫는다.
시조와 유사한 3행이라는 틀을 갖고 있지만
율격에서 자유로운 ‘자유시’라 할 수 있다.
풍시조가 갖는 풍자와 해학, 야유, 조소(비웃음), 비아냥 등은
타락하고 추악한 현실을 거부하는 청량제라 할 수 있다.

풍시조가 세상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내면서도
달달한 위트로 웃음을 선사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통쾌한 일이 아닌가! 언론에서는 ‘풍시조로 세상을 콕콕’이라 제목을 달기도 했다.

====================
조신권 연세대 명예교수는 박 시인의 풍시조에 대해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 악과 어리석음 등을 헐뜯고 야유하며 질책하는
동시에 그런 풍자를 통해 그 사회악을 교정하고자 하는 시적인 의료행위”라고 평했다.

또 허영자 시인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나아가려는 지향이 풍시조의 기본정신이다”고 평했다.



 

=====================덤으로 또 참고하기...
 

‘풍시조(諷詩調)’는 ‘풍자조 또는 풍자투로 쓴 시’로, 형식적으로는 3행의 정형시다. 

하지만 시인은 "3행을 기본으로 하는 풍시조는 시조와 형태가 유사하나 외형상 3행이라는 것 외에 연관성이 없다. 시조의 자수율이나 율박 그리고 3장 6구라는 제약에서 자유로운 순수자유시가 바로 풍시조다"고 설명한다 

 

 

 

 

 

 
박진환 시인은 최근 언론에 "풍시조가 생명으로 하는 것은 '순수한 통징'이라는 시로 감행하는, 악에 대한 복수에 있다"며 "시대나 현실에서 목도되는 부정·부패는 물론 비리·부조리·악행 등을 외면치 않고 비판·고발하는 양심의 육성이다"고 역설했다. 

박씨는 박진환 시인은 지난 2008년 계간 문학지 ‘풍시조(諷詩調)’를 창간했다. 
박진환 시인은 당시 계간 ‘풍시조’ 창간사에서 “풍시조는 삼행이란 짧은 형식 속에 많은 것을 담아내고자 하는 점에서 가장 적은 언어를 투자해 가장 많은 감동을 얻고자 하는 언어경영의 시미학”이라고 말했다. 

 

 

ⓒ 데일리시사닷컴

 
당시 성찬경 시인은 박진환 시인의 풍시조에 대해 “풍시조의 경우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주제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풍자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의 본질, 더 나아가 참여적인 시와 순수 자율적인 시가 어떻게 서로 조화되어 나가는가를 보여주는 흥미있는 예라 할 것”이라고 평했다. 

김용직 평론가는 “시를 위해 끝없는 변신, 자기 탈각작용을 시도해온 박진환 시인이 3행시와 풍시조를 통해 보여준 지적활동은 또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을 위한 준비작업일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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