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과부락 동켠에 자리잡은 조창렬로인의 집은 광복전 로과일대에서 제일 잘사는 지주집이였다고 한다. 팔간 초가에 뜰이 넓고 컸다. 광복 착전에 지었다고 가정해도 벌써 50년도 더 되는 집이였지만 초가로는 금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요즘 세월에 벽돌집들이 많이 앉아서 보기에 궁색스러웠지만 생각을 바꾸어 민속으로 곬을 타면 한결 고풍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 팔십이면 쌀벌레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조창렬로인은 년세에 비해 여간 정정하신게 아니였다. 한창 나이엔 쌀마대를 씽씽 메고 다녔을것처럼 느껴지는 장대한 체구다. 허리도 굽지 않았고 살도 별로 빠지지 않아서 60을 갓 넘었다는 아들과 비하면 부자간이라기 보다 형제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면 봉파동 태생이우다. 나서 일곱달만에 업혀서 들어왔으니 꼭 85년이 되우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곳엔 늪천지였다구요. 그래서 이곳 이름이 원래는 늪골이라우.》
1890년부터 1895년사이 청나라 정부는 봉금령을 해제한 뒤를 이어 두만강류역의 지명과 호적을 등록하였다.
《늪골이 어떻게 되여 로과로 변했는지 아십니까?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우. 옛날 이곳에 산동에서 이사를 온 한 한족선비가 있었는데 고향에 편지를 쓰면서 마을 이름을 비슷한 발음을 골라 루궈(芦果)라고 적었다지 뭡니까. 그후 관리들이 내려와 지명을 등록하면서 그것을 따랐지우. 그 다음부터 늪골이 로과로 되였다우.》
근로한 이주민들은 화전을 일구며 부지런히 일했고 땅 또한 비옥해서 씨만 뿌렸다 하면 대풍이였다.
그때 당시 밭에 심은 조의 이삭은 개꼬리만했고 또한 조이대가 참대처럼 마디지고 굵었다고 해서 죽림(竹林)촌의 이름이 생겨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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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23일 경남 함양군 상림연꽃단지에서 원앙(천연기념물 제327호) 한 쌍이 봄비를 맞으며 헤엄치고 있다. 2018.4.23 [경남 함양군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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