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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상’으로까지 일컬어진 하루키 소설의 인기는 한국 작가들 사이에 크고 작은 표절 논란을 낳았다. 이인화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1992)에 대한 글에서 작고한 평론가 이성욱이 더 큰 혐의를 둔 것은 요시모토 바나나와 공지영 소설에 대한 표절이었지만, 하루키 소설의 문장과 문체 역시 표절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하루키를 흉내 내거나 베낀 것이 이인화만은 아니어서, 90년대 초 한국 작가들은 경쟁적으로 ‘하루키풍’ 소설을 선보였다. 장정일과 박일문은 서로가 하루키를 표절했다며 공방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세계관의 표절’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하루키 베끼기’로 시끌했던 90년대
조정래 ‘이적성’ 고발에 11년 고초
‘외설 시비’ 마광수 창살에 갇혀
문화권력·성폭력 논란 한창
<태백산맥>은 완간 5년 뒤인 1994년 우익 단체들의 새삼스러운 고발로 검찰에 의해 이적성 여부를 조사받았다. 작가는 후속 작품인 <아리랑>과 <한강>을 쓰는 도중에 검찰에 불려가고 해명 자료를 준비하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얼굴 없는 이들의 전화 협박도 이어졌다. 이 고발 사건은 11년이나 시간을 끌다가 2005년에야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마무리되었다.
마광수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1992년 10월 음란물 제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가 두달 만에 집행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그가 쓴 소설 <즐거운 사라> 때문이었다. 여자 대학생 사라의 자유분방한 성 편력을 소재로 삼은 이 소설을 두고 외설이냐 표현의 자유냐 하는 논란이 펼쳐졌다. 장정일도 1996년에 출간한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다. 유부남 조각가와 여고생의 온갖 변태적 성행위를 다룬 이 소설로 장정일은 법정 구속된 뒤 두달 가까이 형을 살았으며 보석 상태에서 열린 항소심과 최종심에서도 유죄 판결(집행유예)을 받았다.
90년대 중반 문학 전문 출판사 문학동네가 출현한 뒤 한국의 문학출판은 기존의 창비와 문학과지성사 양립 체제에서 문학동네가 추가된 삼분할 체제로 재편되었다. 문학동네는 단지 삼분할 체제에 만족하지 않고 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출판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 출판사는 적극적인 기획과 공격적 마케팅으로 문단과 독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나, 그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주례사비평과 문학권력 논쟁이 이 삼분할 체제를 대상으로 펼쳐졌다. 김명인·김진석·권성우·고명철 등 ‘비주류’ 평론가들이 필자로 참여한 책 <주례사비평을 넘어서>(2002)는 “출판 자본과 문단 미시권력의 결합으로 점차 폐쇄적 기득권 구조 속에 안주해가는 한국문학장에 대한 비주류 비평가들의 광야의 외침과 같은 경고의 목소리”(김명인)로서 “문학비평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의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 공감을 얻었다.”(서영인) 2015년에 불거진 신경숙 표절 사건은 문단 권력의 자족적 폐쇄성에 대한 이들의 경고가 근거 없지 않았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 여파로 출판사들은 잡지 편집위원을 교체하거나 아예 새로운 문예지를 창간하는 등 변신의 몸부림을 보였다. 그러나 2016년에는 시인들을 중심으로 한 기성 문인들이 연루된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고 2018년에는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과거 성폭력을 고발하고 나선 데 이어 소설가 하일지 역시 ‘미투’ 캠페인의 대상이 되는 등 문인들의 언어적·신체적 성폭력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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