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연길냉면”이 2013년에 있은 제2회 중국음식업 문화절 및 제1회 중국국수 문화절에 이어 재차 “중국 10대 브랜드국수”에 든것으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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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지난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로 평양냉면이 전 세계에 소개됐었죠.
이후 우리나라 면 요리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광상품으로도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김윤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보기만 해도 시원한 평양냉면.
역시 먹는 것보다 찍는 게 먼저입니다.
낯선 맛이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크리스타 건더슨/미국 뉴욕 거주] "차가우면서 신선한 느낌이고요. 식초 맛이 강하고 겨자의 풍미가 좋네요."
[마이크 번스/미국 뉴욕 거주] "차가운 국수(냉면)을 먹은 건 처음인데 매우 맛있네요."
한국 면요리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
[아만다/유튜버(WaegukinKorea)] "북한의 지도자가 냉면을 가지고 왔죠. 그 일 때문에 냉면이 약간 유행이 됐어요."
냉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조쉬/유튜버(영국남자)] "와, 정말 놀라운 맛이야."
특히 일본인 관광객들의 문의가 많아지자 한국관광공사는 한국의 면 요리를 소개하는 책자까지 만들었습니다.
강원도 막국수와 제주도 고기국수 등 지역별 면요리의 특징을 알려주고,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차이 라면을 활용한 조리법도 담았습니다.
[이학주/한국관광공사 일본팀장] "면류를 좋아하는 일본 분들의 어떤 식문화에 착안해서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찾고 지방을 방문해 맛있는 면요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반도에 평화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지난 4월 외국인 관광객 수도 작년보다 24%나 증가했습니다.
관광업계는 면 요리를 테마로 관광 상품을 준비 중입니다.
[이재성/서울관광재단 대표이사] "그 나라의 고유한 음식을 체험해 보기를 원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입니다. 그래서 잘 활성화되면 다시 또 재방문율을 높이는 데 기여 할 수 있어서…"
평양냉면으로 시작된 한국 면요리에 대한 열풍, 이제 문화상품이 됐습니다.
MBC뉴스 김윤미입니다.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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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국수는 냉면이 아닌가 싶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국수이기 때문인데 우리처럼 일부러 국수를 차갑게 만들어 먹는 민족도 드문 것 같다. 물론 일본에도 차갑게 먹는 메밀국수인 냉소바가 있지만 우리 냉면처럼 그렇게 차갑지는 않다. 여름철 중국 음식점 메뉴로 등장하는 중국식 냉면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현지화한 것이다. 원래 중국의 차가운 국수인 량몐은 사실 차가운 것이 아니라 뜨겁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국수를 차갑게 만들어 먹었을까? 냉면의 기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먼저 문자 그대로 차가운 국수라는 뜻의 냉면(冷麪)이 문헌에 보이는 시기는 조선시대 중반이다. 17세기 초반, 인조 때 활동한 문인 장유의 《계곡집》에 처음으로 냉면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냉면을 먹으며 쓴 시인데, 자줏빛 육수의 냉면을 먹으면서 독특한 맛[異味]이라고 표현해놓았다. 글자 뜻 그대로 보면 평소에 먹지 못했던 색다른 맛이라는 의미겠는데, 시 한 편을 놓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독특하다는 표현, 그리고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에서 조선 중반까지만 해도 냉면이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전에도 차가운 국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냉도(冷淘)라는 음식이 있었는데 고려 말기의 목은 이색은 냉도를 먹으니 시원하다는 내용의 시를 읊은 적이 있고,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도 고려의 환관들이 유두절이면 더위를 피해서 머리를 감으며 냉도를 먹었는데 그 맛이 수단(水團)과 비슷하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냉도는 중국에서 먹는 차가운 밀가루 국수 내지는 찬 수제비 종류였으니 여름철 시원하게 먹을 수는 있지만 메밀로 만든 우리 냉면과는 차이가 많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냉면은 언제 만들어진 음식일까? 조선시대 문헌에서 냉면이라는 음식이 본격적으로 보이는 것은 18세기 이후다. 다산 정약용은 면발이 긴 냉면에다 김치인 숭저(菘菹)를 곁들여 먹는다고 했다. 정약용과 같은 시대를 산 실학자 유득공 역시 평양을 여행하면서 가을이면 평양의 냉면 값이 오른다고 했다. 이때면 벌써 겨울철에 접어들 무렵이라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서 냉면 값이 오를 정도로 평양 사람들은 냉면을 많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평양냉면은 냉면이 널리 보급되며 바로 유명세를 탄 모양이다. 《동국세시기》에도 겨울철 계절 음식으로는 메밀국수에 무와 배추김치를 넣고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을 먹는다고 소개했는데 그중에서도 관서(關西) 지방의 국수가 제일 맛있다고 했으니 바로 평양냉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과 유득공보다 두 세대 뒤의 인물인 실학자 이규경은 평양의 명물로 감홍로와 냉면, 그리고 비빔밥을 꼽았는데 감홍로는 계피와 생강을 꿀에 버무려 소주를 붓고 밀봉해 담그는 술이다. 40도가 넘는 독주로 감홍로 중에서는 평양에서 담근 것이 유명했다. 평양에서는 고기 안주에 감홍로를 마신 후 취하면 냉면을 먹으며 속을 풀었기에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이 생겼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베이스로 해 만든 육수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 평양냉면은 감칠맛과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평양냉면의 특징은 꿩고기나 양지머리를 삶아 기름기를 걷어낸 후 잘 익은 동치미 국물을 같은 양으로 섞어 시원하고 감칠맛이 도는 냉면 국물에 있다.
요즘 우리가 먹는 평양냉면은 현대인의 식성에 맞도록, 또 서울 사람들의 입맛에 맞도록 바뀌어 전통 평양냉면의 맛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본래의 맛을 기억하는 연세 드신 평양 출신 인사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다행히 서울에도 전통 평양냉면 집이 몇 집 남아 있다.
현대인의 입맛에는 밍밍하기 짝이 없는 전통 평양냉면이지만 평양 출신들에게는 중독성이 꽤 강했던 모양이다. 평양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서도 고향에서 먹은 냉면 맛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고 한다. 예전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면 김치를 가장 그리워했던 것처럼 평양 사람들도 타향에서 살 때면 문뜩문뜩 떠오른 것이 겨울에 먹는 평양냉면 맛이라고 하니까, 냉면의 맛이 그리운 것인지 고향을 그리는 향수가 짙은 것인지 그 선후를 알 수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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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양 지방의 향토음식.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찬 냉면 국물에 말아먹는다. 평양은 서북부의 문화·경제의 중심지로 들이 넓어 밭곡식이 많이 나며 황해에 면하여서 어물도 많고 과일도 풍성하여 먹는 것을 즐기는 고장이다. 음식은 양념을 적게 하여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은 담백미(淡白味)를 즐긴다.
이러한 풍토에서 형성된 것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만드는 법은 먼저 사골뼈를 푹 끓이다가 사태살을 넣고 삶아내어 건진다. 육수는 뼈를 골라내고 차게 식혀서 기름을 걷어내고, 고기는 편육으로 썰어놓는다.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반반 정도로 섞어 소금·묽은장·식초로 간을 맞추어 냉면 국물을 만든다.
메밀가루와 녹말을 섞어서 익반죽하여 국수틀에 넣고 눌러서 국수를 뺀 다음 끓는 물에 삶아 건져서 사리를 만든다. 배도 얇게 썰고 동치미무도 길쭉하고 얇게 썬다. 겨울에는 통배추 김치줄기도 길쭉하게 썬다. 큰 대접에 사리를 담고 편육·김치·삶은 달걀·배 등을 얹고 찬 육수를 붓는다. 식성에 따라 식초·설탕·겨자 등을 넣어서 먹는다.
냉면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동치미 국물이다. 큰 독을 땅에 묻고 배추에 비하여 무를 많이 넣으며, 양념은 고추를 많이 쓰지 않는다. 국물은 심심하게 하고 넉넉히 부으며, 젓국은 조기젓이나 새우젓을 조금 쓰기도 하고 안쓰기도 한다. 국물이 익으면 얼음같이 차고 시원하여 냉면 국물에 적합하다.
예전에는 꿩을 삶은 국물을 이용하였으나 지금은 꿩이 귀하여 쇠고기와 사골을 쓰고 있다. -20℃ 내외의 강추위 속에서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 몸을 녹여가며 이가 시린 찬냉면을 먹는 것은 이냉치냉의 묘미가 있다.
≪동국세시기≫에서도 냉면을 겨울철 시식으로 꼽으며 서북의 것이 최고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평양 지방에서 즐기던 냉면은 6·25사변 이후 월남민에 의하여 전국에 퍼지게 되어 사계절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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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냉면 : 쫄깃한 면발과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 맛 덕분에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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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즐기는 평양냉면은 또 다른 별미
-막걸리와 마시면 감칠맛이 한층 깊어져
-맥주와 함께하면 청량감 가득 완벽 궁합
[헤럴드경제=최원혁 기자] 평양냉면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평양냉면 맛집은 30분 이상 줄을 서야 맛볼 수 있고 HMR(가정간편식)으로 판매되는 평양냉면까지 인기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 평양냉면 애호가들 사이에 흔히 쓰는 말이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다. 선주후면은 평양에서 유래한 말로 말 그대로 ‘술 한잔 먹고 나서 냉면을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것’이란 뜻이 담겨있다. 냉면 한그릇이 부족하다 싶으면 미리 수육 한 접시를 추가해 여기에 술 한 두잔을 비우고 난 뒤 먹는 평양냉면은 또 다른 별미가 된다. 그럼 평양냉면과 어울리는 주류에 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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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애호가들 사이에 흔히 쓰는 말이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다. 선주후면은 평양에서 유래한 말로 말 그대로 ‘술 한잔 먹고 나서 냉면을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것’이란 뜻이 담겨있다. 사진은 서울의 평양냉면집. |
3일 업계에 따르면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로 만들어 면이 거칠고 굵으며 특유의 향과 독특한 식감을 가진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꿩, 닭, 소고기 등을 우린 육수를 황금비율로 섞어 메밀면에 말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미료 맛이 익숙한 이들에게는 자칫 밍밍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두 번 맛보면 개운하고 담백한 맛에 반하게 된다. 여기에 막걸리를 더하면 평양냉면의 묘한 감칠맛을 한층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지평 생 쌀 막걸리’는 지평의 맑은 지하수와 국내산 원료를 전통 방식으로 주조해 다른 막걸리에 비해 진하면서도 탁하지 않아 목넘김이 일품이다. 또 알코올 도수를 기존 막걸리 대비 1% 낮은 5%로 맞추어 술이 약한 사람도 숙취가 적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에 매료되어 ‘평뽕(평양냉면의 중독성을 빗댄 표현)’, ‘평부심(평양냉면 자부심)’ 등 각종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무미(無味)’의 대명사 격인 음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평양냉면을 시큼한 페어해게 브루어리(Verhaeghe Brewery)사의 ‘듀체스 드 부르고뉴(Duchesse de Bourgogne)’ 사워 에일 맥주와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워 에일은 일반 맥주와 달리 효모나 젖산균 등을 넣어 오크통에서 긴 시간 숙성 기간을 거친다. 와인처럼 신맛과 떫은맛이 나면서도 청량감이 살아 있는 게 특징이다. 블랙체리, 자두, 건포도 등 베리류의 새콤한 과실 향을 품은 산미는 입맛을 돋게 해 평양냉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이밖에도 남북정상회담에서 건배주로 쓰인 문배술 또한 평양냉면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문배주양조원에서 제조하는 문배주는 문배(토종 돌배의 일종) 향이 난다고 하여 문배주란 이름이 붙었으나 실제로 배는 들어가지 않는다. 조와 수수 등 잡곡만을 이용해 만든다. 발효, 증류시킨 후 6개월에서 1년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잡곡의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향이 은은하게 입안에 베여 평양냉면뿐 아니라 수육, 만두 등과도 잘 어울린다. 초창기엔 알코올 도수 40도만 출시했지만 23, 25도 제품도 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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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한국인의 냉면 사랑은 유별나다. 최근에는 ‘평뽕’(평양냉면의 중독성을 빗댄 표현)‘이니, ’평부심‘(평양냉면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 등 각종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그만큼 냉면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오랜 세월 한반도에서 사랑받아왔다. 대표적인 냉면광(狂)으로는 구한말 고종과 순종, 백범 김구 등을 꼽는다. 한국전쟁은 냉면을 전국구 스타로 만들었다. 이북 피란민이 향수를 달래는 음식에서 일반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더 나아가 중독 현상까지 일으키면서 어느듯 한국인 대다수가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기호나 지역에 따라 냉면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진주냉면이다. 앞의 둘은 이북 출신이고, 진주냉면은 유일한 남한 출신이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3대 냉면으로 부른다.
◇담백함과 심심함 사이 ‘평양냉면’
평양냉면은 평안도 지방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추운 겨울, 따뜻한 온돌 아래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던 데서 유래했다. 맵지 않고 담백한 맛이 자랑이다.
평양냉면은 조선 중기 이후 널리 서민에 보급됐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평양의 명물로 감흥로와 냉면, 그리고 비빔밥을 꼽았다. 감흥로는 계피와 생강을 꿀에 버무려 조수를 붓고 밀봉해 담그는 술이다. 40도가 넘는 독주로 평양에서 담근 것이 유명했다. 평양에서는 고기안주로 감흥로를 마신 후 취하면 냉면을 먹고 속을 풀었다고 해서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였다. 지금도 술자리가 끝날 때 마지막으로 국수를 먹는 경우가 있는데, 평양에서 냉면이 해장국 역할을 한 풍속에서 비롯한 것이다.
평양냉면의 면은 전분이 아니라 메밀로 뽑았다. 그래서 면이 거칠고 굵다. 여기에 끊기도 별로 없다. 그래서 밀가루나 전분을 섞어 뜨거운 물에 익반죽해서 치대야 한다. 메밀과 밀가루 혹은 전분과의 비율, 반죽하는 기술에 따라 면의 끈기와 질감이 달라진다.
면도 면이지만, 육수가 가장 중요하다. 육수 맛이 면의 맛까지도 좌우해서다. 육수는 꿩 삶은 국물을 으뜸으로 친다. 사골을 우린 육수나 동치미 국물로 꿩 육수를 대신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소나 돼지, 닭 육수를 사용한다. 이름난 평양냉면집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육수비법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을 정도다. 여기에 고명은 삶은 고기와 달걀지단, 배, 시파, 실고추 등 다양하게 쓴다. 겨자와 식초도 빠질수 없는 감초다. 겨자는 국물에, 식초는 면에 뿌려 먹는다.
서울 장안엔 ‘평양냉면 4대 천왕’이 있다.
을지로4가의 우래옥, 을지로3가의 을지면옥, 충무로의 필동면옥, 장충동의 평양면옥이다.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은 한 집안 사이다. 4대 천왕은 거의 한동네에 모여 있다. 동대문시장 일대 상인 중에 실향민이 많았던 것과 관계가 있다. 닭무침으로 이름난 남대문시장의 부원면옥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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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냉면을 대표하는 고장은 평양과 함흥이다. 예전에는 황해도 해주냉면과 경상도 진주냉면도 유명했다지만 지금은 거의 명맥만 잇는 수준이고, 평양과 함흥 두 곳의 냉면이 전국 냉면 시장을 평정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확연히 다르다. 평양으로 상징되는 관서 지방과 함흥으로 대표되는 관동 지방의 특색이 모조리 반영된 만큼 뚜렷이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물냉면은 평양냉면, 비빔냉면은 함흥냉면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평양냉면을 비벼서 먹기도 하고 함흥냉면을 물냉면으로 먹기도 한다. 하지만 평양냉면은 비벼 먹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고, 반대로 함흥냉면은 비벼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구분하는 본질적 차이는 국수를 만드는 면의 재료다. 원칙대로 만들자면 평양냉면은 메밀로 면발을 뽑는 반면 함흥냉면은 메밀이 아닌 감자 전분으로 국수를 뽑는다. 지금은 평양냉면에도 메밀에 전분을 섞고, 함흥냉면 역시 감자 전분이 아닌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다고 하니 원초적인 평양, 함흥냉면에 비해 진화했다.
평양냉면은 순메밀로 만들기 때문에 구수하고 담백하며 툭툭 끊어지면서도 쫄깃한 맛이 특징이다. 반면 감자녹말로 만든 함흥냉면은 쇠심줄보다 질기면서 오들오들한 맛이 매력이다.
차가운 국수인 냉면은 원래 겨울철에 먹었기 때문에 늦가을에 추수하는 메밀로 국수를 뽑아야 제격이다. 실제로 함흥냉면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냉면들, 이를테면 해주냉면이나 진주냉면도 모두 메밀국수로 만들었다.
그런데 유독 함경도에서만 감자녹말로 국수를 뽑은 까닭에 독특한 맛의 함흥냉면이 발달했다. 이유는 함경도에서는 메밀을 대량으로 재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경도 출신 어른들의 회고에 따르면 함경도는 지형이 험한 탓에 메밀조차 재배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메밀이 부족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풍부한 감자를 갈아서 녹말로 만든 후에 국수를 뽑았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감자를 재배한 지역 역시 함경도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에서 1824년과 1825년인 순조 갑신년과 을유년 사이에 만주의 심마니들이 두만강을 넘어 함경도 땅에 감자를 심었다고 적었다. 남미가 원산지인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최초의 기록이다. 그리고 함경도 회령군 수성천에 사는 사람들은 감자를 심어 양식으로 삼는다고 했다. 감자가 함경도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까닭에 함경도 음식 중에서는 감자로 만든 음식이 유독 많다. 함흥냉면 역시 그중 하나다.
함흥냉면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냉면은 아닌 것이다. 본고장인 함경도에서도 냉면 대신, 녹말국수 또는 농마국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농마국수라고 하지 함흥냉면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은 해방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평양냉면이 크게 유행을 했기 때문이다. 평안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만들어 파는 평양냉면이 인기를 끌자 함경도 출신들도 농마국수라는 향토색 짙은 이름 대신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으로 국수를 팔았다. 심심한 맛의 평양 물냉면과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맵게 양념을 한 비빔냉면인 함흥냉면이 동시에 인기를 얻었다.
함흥냉면의 또 다른 특징은 냉면에 회를 얹는 것이다. 냉면에 홍어회나 가자미식해, 또는 명태식해를 얹어 비벼 먹는 것인데 사실 회냉면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함경도 어르신들의 기억에 따르면 회냉면이 함경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10년 전후라고 한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편인데 따지고 보면 함흥냉면 자체도 그다지 역사가 오래된 음식이 아닐 수 있다.
감자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해진 시기를 1824년으로 보지만 종자 개량을 통해 널리 보급된 것은 1900년 전후다. 따라서 감자녹말로 국수를 만들던 함흥냉면 역시 20세기에 들어서며 발달한 음식일 것으로 짐작된다. 18세기에 이미 명성을 떨친 평양냉면에 비하면 많이 늦은 편이지만 1세기 만에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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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에는 없는 ‘함흥냉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차이를 아는가. 많은 사람들은 둘의 차이를 육수에 말아먹는 것을 평양냉면, 양념에 비벼 먹는 것을 함흥냉면으로 알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이런 식의 구분은 분단 이후 남쪽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사실 둘의 근본적인 차이는 면을 만드는 재료에 있다. 평양식은 메밀가루로 면을 만들고, 함흥냉면은 감자 전분으로 면을 만든다.
함흥냉면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함흥냉면은 일제강점기 때 함경도 사람들이 즐기던 농마국수에서 유래했다. 농마는 녹말의 북한 사투리다. 녹말의 재료는 감자로, 함경도를 대표하는 식재료였다. 함경도는 감자를 재배하기에 생육환경이 적합했고, 크기나 품질도 매우 좋았다. 일제는 이런 함경도의 이점을 살려 개마고원 근처에 대규모 감자농장을 조성했고, 여기서 생산한 감자를 흥남, 함흥, 원산을 통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당시 함경도 사람들도 감자를 값싸게 구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함흥냉면은 매우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냉면 등 북한 음식의 전파 경로를 따지면 실향민들의 피란길이 보인다. 함경도 사람들은 1·4후퇴 때 흥남 부두를 떠나 부산에 도착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고향으로 어서 돌아갈 생각에 속초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고향길은 막혔고, 생계를 위해 속초에서 흔하던 명태 등 해산물이나 건어물을 서울에서 팔려고 중부시장 근처의 오장동에 모였다. 중부시장은 우리나라 최대의 건어물 시장으로, 억척스러운 함경도 상인들이 탄탄한 상권을 형성한 곳이다. 이곳에서 함경도 고향을 떠난 실향민들은 함흥냉면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고향의 중독성 강한 매운맛과 새콤한 회무침의 맛을 잊기 어려워 고향 사람들끼리 즐기다가 상업화에 성공했다.
피란민이 많이 살았던 서울 중구 오장동이 함흥냉면의 ‘성지’로 꼽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1953년 이곳에 자리 잡은 ‘흥남집’이 대표 식당이다. 고구마 전분에 매운 홍어회 또는 간자미회를 쓴다. 비빔냉면은 매운 양념을 비벼서 내오나, 회냉면은 면에 양념하지 않고 매운 양념과 참기름, 설탕 등을 취향대로 더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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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국수(생면) 600g, 무김치 150g, 쇠고기(또는 돼지고기) 150g, 달걀 50g(1개), 배 120g(1/3개), 실고추 , 잣 약간, 식용유 적량, 해물육수 1.2L(6컵)
<고기 양념장> 간장 1/2큰술, 대파 10g(1/4뿌리), 마늘 5g(1쪽), 참기름, 설탕, 깨소금, 후춧가루 약간
<전분액> 전분 1작은술, 물 1/2큰술
<해물육수> 마른 명태머리, 건새우, 건홍합, 물 적량
1. 냄비에 해물육수 재료를 넣고 끓여 육수를 내서 식혀 놓는다.
2. 소고기는 납작하게 저며 양념한 다음 달걀물을 묻혀 가열한 팬에 싯용유를 두르고 지진 다음 1cm 너빌 썬다.
3. 무김치는 물기를 꼭 짜고, 배는 껍질을 벗겨 각각 0.5cm 두께로 채 썬다.
4. 달걀물에 전분액을 섞어 얇게 지단을 부쳐 곱게 채 썬다(5×0.2×0.2cm).
5. 실고추는 3~4cm 길이로 썬다.
6. 메밀국수는 끓는 물에 삶아 찬물에 여러 번 헹궈 낸 후 사리를 지어 그릇에 담는다.
7. 6에 준비한 쇠고기, 무김치, 배, 달걀지단, 실고추, 잣을 올리고 해물육수를 붓는다.
진주냉면은 지리산 주위 산간지역에서 메밀이 수확되었으므로 이 지역에서 메밀국수를 즐겨 먹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냉면이라면 북한의 평양냉면, 남쪽의 진주냉면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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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과 견주다 ‘진주냉면’
“랭면 가운데서 제일로 일러주는 것이 평양랭면과 진주랭면이었다.”
1994년 발간한 ‘조선의 민속전통’이란 북한과학백과사전 일부 내용이다. 메밀가루로 면을 만드는 것도 평양냉면과 비슷하다. 진주냉면의 특징은 육수와 고명에 있다. 남해와 바싹 닿는 진주의 냉면은 마른 명태머리, 건새우, 건홍합 등의 해물을 육수에 더했다. 그 위에 잘게 자른 쇠고기전을 필두로 실고추, 계란 지단과 오이 등을 고명으로 올린다. 원래는 전복과 해삼까지 더해지는 음식이었으나 서민음식으로 사랑받으면서 고명도 소박해졌단다. 또 벌겋게 달군 무쇠 막대를 끓는 육수에 반복해서 담가 비린 맛을 제거한 후 15일간 저온숙성 시켜 깊은 맛을 낸다. 이 중에서 육전이 진주냉면만의 특징이다. 달걀옷을 입혀 부친 육전의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시원한 해물육수와 어우러져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비빔냉면에서는 매운맛을 중화시켜 고소한 맛을 불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로 육전을 한 접시 주문해 같이 먹으면 진주냉면 맛을 두 배로 즐길 수 있다.
진주냉면의 유래는 이렇다. 1800년 말, 진주목에서 나온 숙수(조리사) 한명이 옥봉동 개울가에서 만들어 팔던 것이 시초라고 한다. 진주냉면은 권번가에서, 야식으로 즐겨 먹던 고급요리였다. 권번가는 일제강점기 때 기생을 관장하는 조합이 권번이다. 이 권번이 진주에 있었다. 당시 옥봉동은 기생이 많이 살던 지역이었다. 기생들은 야심한 밤에 냉면집을 찾아 냉면을 밤참으로 먹었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까지 옥봉동을 중심으로 냉면집은 성행했다. 한집에 배달부만 서너 명씩 있었다고 전해질 정도다. 하지만 1966년, 진주시내 중앙공설시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며 냉면 가게도 모두 불타 진주냉면의 맥이 끊어졌다. 그러다 199*년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씨에 의해 진주냉면은 되살아났다. 김 씨는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의 민속전통’에서 ‘냉면 중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라는 기록을 발견하고 진주냉면을 찾아 나섰다. 김영복 씨는 과거 진주냉면 가게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 각자 진주냉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후 공통점을 정리해 사라진 진주냉면을 재현해 냈다. 현재 이 재현한 진주냉면을 맛볼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 ‘하연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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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 랭면 (冷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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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냉면 (위)
비빔냉면 (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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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랭면, 찬국수 (문화어) |
종류 | 찬국수 |
원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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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나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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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나라별 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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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재료 | 오이, 배, 달걀, 메밀, 쇠고기 |
변형 | 밀면, 쫄면 |
비슷한 음식 | 냉국수, 잔치국수, 막국수 등 |
냉면(冷麵, 문화어: 랭면, Naengmyeon 또는 raengmyŏn)은 한반도 고유의 찬국수 요리 중 하나로 삶은 국수를 찬 육수에 넣고 양념과 고명을 얹은 요리이다. 냉면은 칡, 메밀, 감자, 고구마 등의 다양한 가루를 이용하여 만든 면(麵)과 썬 오이 등의 생채소와 배 한 조각, 그리고 고기와 삶은 달걀로 이루어진 음식이다.
냉면의 기원은 고려시대 중기의 평양에서 유래한다. 1973년 북한에서 간행된 요리 서적에 의하면, 평양냉면은 현재 평양의 대동강구역 의암동 지역에서 처음 나왔다고 하며, 메밀 수제비 반죽을 국수로 뽑은 것이 시초라 한다. 고려 중기의 냉면을 기록한 고문헌에는 '찬 곡수(穀水)에 면을 말아 먹는다'는 취지의 기술이 있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조선시대 문헌에서는 17세기(1600년대) 초 조선 인조 때 활동한 문인인 장유(張維)의 <계곡집(谿谷集, 1635년 편찬)>에 냉면(冷麵)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1849년에 쓰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겨울철 제철음식으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냉면이 있다."고 하였으며, 1896년에 연세대에 의해 쓰인 《규곤요람》은 냉면에 대해 "싱거운 무 김치국에다 화청(和淸)해서 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잘 삶아 넣고 배, 밤과 복숭아를 얇게 저며 넣고 잣을 떨어 나니라."라고 기록 되었다. 또한 1800년대말의 《시의전서》 냉면 편에는 "청신한 나박 김치나 좋은 동치미국물에 말아 화청하고 위에는 양지머리, 배와 배추통김치를 다져서 얹고 고춧가루와 잣을 얹어 먹는다."라고 기록되어는데 고기장국을 차게 식혀 국수를 말아 먹는 장국냉면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1]
특히 고종 황제는 냉면을 좋아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덕수궁 대한문 밖의 국숫집에서 배달하여 편육과 배, 잣을 얹어 먹었다고 한다.[2]
냉면은 육수에 따라 물냉면과 비빔냉면으로 분류된다.
물냉면은 보통 위의 재료가 차가운 육수(보통 소고기 육수)에 담겨 나오는 형태이다. 물냉면은 육수 제조법이나, 들어가는 고기나 야채의 종류에 따라 그 종류가 세분화되기도 한다.
비빔냉면은 고추장과 기타 재료로 만들어진 빨갛고 매운 양념에 비벼먹는 형태이다. 함경도 계통의 비빔냉면으로는 면을 감자 등으로 만든 함흥냉면, 회를 넣어 매콤하거나 시원하게 만든 회냉면 등이 있으며, 물냉면에 열무를 추가한 열무냉면 등의 변형도 있다.
또한 재료에 따라서, 감자/고구마분을 이용한 냉면, 칡냉면, 또는 메밀 냉면 등으로 분류하기도 하며, 메밀국수도 면을 차게 먹지만 전통적인 비빔 냉면의 범주에 넣지는 않는다.
평양랭면(표준어: 평양냉면)은 평양직할시에서 유래 또는 발전된 냉면으로 알려져 있다. 메밀을 주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잘 끊어질 수밖에 없고, 거친 편이다. 그래서 비빔면에는 잘 어울리지 않아 주로 물냉면이 많다. 한편 대한민국에서는 메밀이 건강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어, 위치나 기후, 재료를 따지지 않고 전국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메밀을 사용한 비빔냉면도 많이 먹을 수 있다.
함흥랭면(표준어: 함흥냉면)은 함경남도 함흥시 일대에서 유래한 냉면이다. 함흥 일대에서는 감자의 녹말을 사용한 국수 요리가 발달해, 생선회와 고추장 양념으로 이루어진 회국수라는 이름의 냉면과 물냉면인 농마국수가 있었다. 원래 관북 지방에서 냉면이라는 말이 잘 쓰이지 않아 국수로 불린 것일 뿐, 이 음식들도 엄연히 냉면의 일종이다.
한국 전쟁 이후 함흥의 회국수가 대한민국에 들어와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함흥냉면은 보통 국수 재료로 고구마의 녹말을 사용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만든 유명 함흥냉면 전문점들에서는 원래 함흥에서 먹던 형태의 회국수를 '회냉면'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에서 현지화된 '함흥냉면'과 구별해서 팔고 있다.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현재는 함흥시 신흥관에서는 회냉면을 팔지 않으나 평양시에 명태회냉면을 파는 식당이 존재한다. 함흥시의 유명 식당인 신흥관에서는 지역에서 먹는 함흥식 물냉면을 맛볼 수 있다.
진주냉면(문화어: 진주랭면)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주에서 유래 또는 발전된 냉면이다. 조선의 권번가에서 야참으로 즐겨먹던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3] 1960년대 이후로 사라졌다가 199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발행된 《조선의 민속전통》 식생활풍습 부분에 “랭면 중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랭면과 진주랭면이다”라는 기록이 남북간 교류가 시작된 이후 대한민국에 전해져서 2000년대 재탄생한 음식이다.[4]
진주냉면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쇠고기육수에 멸치와 바지락, 마른 홍합, 마른 명태, 문어, 표고버섯 등으로 해물 육수를 만들어 뜨겁게 달군 무쇠를 육수에 반복해서 담가 육수의 비린 맛을 제거한 후 보름 정도 숙성시킨 것을 섞었으나 현재는 이 방법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또, 평양과 함흥의 냉면은 무를 얄게 썰어 절인 것을 고명으로 얹는 데 반해, 진주냉면은 잘 익은 배추김치를 다져 넣고 쇠고기육전과 지단 등 여러가지 고명이 얹어져 모양새가 매우 화려하다는 데에도 차이점이 있다.[5]
2000년대 들어 경상남도 진주시는 지방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향토음식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진주냉면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다, 진주시에서 개최한 '참진주 참음식 페스티벌'에서 진주 고유의 음식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60년대 이후로 명맥이 끊긴 점과 맛의 깊이, 특히 면의 수준이 낮은 점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는 체인점이 많이 등장해 진주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맛볼 수 있다. [3]
연길냉면 "중국 10대 국수"로 평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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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 진달래랭면이 절강성 항주에서 막을 내린 제2회(2013년 8월) 중국식당문화절 및 제1회 중국국수문화절에서 "중국 10대 국수"로 선정됐다.
이번에 선정된 "중국 10대 국수"가운데는 민간에서 중국 5대 국수로 여기는 무한열간면, 북경자장면, 산서칼국수, 란주라면, 사천딴딴면 등 5가지 국수외에도 길림 연길랭면, 하남소기회면,항주편천면,곤산오조면,진강과개면 등 다섯가지 국수가 이름에 올랐다.
연변조선족랭면 제3대 계승자인 김련선이 "진달래 랭면부"를 대표해 시합에 참가했다. 김련선이 만든 연길랭면은 전문가들의 일치한 인정을 받았으며 진달래 랭면부는 "중국10대국수점"으로 평의 받았다.
조선족랭면 제2대 계승자인 최기옥은 연길랭면은 록색건강식품으로서 현대 생활절주에 부합되며 중국10대 국수로 될 자격이 매우 당당하다고 했다.
랭면은 조선족전통음식으로 메밀로 만들어야 국수가 쫄깃쫄깃하다. 또한 육수의 맛이 랭면의 맛을 결정한다. 육수를 만드는 과정에 물이 관건인바 진달래랭면부에서는 20여만을 들여 대형정수설비를 인입해 육수 맛을 보장했다.
【서울=서울뉴스통신】류재복 기자 = “연길냉면”이 재차 “중국 10대 브랜드국수”에 선정됐다. 중국요리협회, 중앙TV방송 (7채널)의 주최로 10월 4일(2016년) 섬서성 함양시에서 진행된 “중국 10대 브랜드국수”초청 맛겨룸 및 중화면식문화 포럼에서 “연길냉면”이 “중국 10대 브랜드국수”에 선정됐다.
이는 “연길냉면”이 2013년에 있은 제2회 중국음식업 문화절 및 제1회 중국국수 문화절에 이어 재차 “중국 10대 브랜드국수”에 든것으로 주목된다. |
편집/기자: [ 안상근 강동춘 ] [ 길림신문 ] [ 2013-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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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랭면 찾는 사람들을 위해 랭면점 차린 원 연길랭면 주방세프 주옥금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맛을 달래주며 연변음식의 브랜드로 소문높던 연길랭면이 연길복무청사(服务大楼)의 파가이주와 함께 력사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있다.
요즘들어 연길시 곳곳에서 다시금 부활하는 연길복무청사 연길랭면점들의 신장개업과 함께 원 연길복무청사 원로랭면세프 주옥금(60세)씨도 연길시목재공사부근에 옥금랭면부를 신장개업하고 사라져가던 연길랭면맛의 부활에 팔 걷고나섰다.
21일, 개업한지 아직 두달도 채 안된 옥금랭면부의 주옥금사장을 만났다. 주옥금사장은 34세때 연길복무청사에 들어가 다년간 연길복무청사 랭면주방일을 맡아하면서 탄탄하게 랭면기술을 익힌 실력자이다.
복무청사에서 퇴직한후에도 연길창명랭면집의 랭면주방장으로 재취직하면서 줄곧 랭면에서 일손을 놓지 않다가 지난해 8월, 60세가 되여서야 랭면을 손에서 놓고 나앉았다.
주옥금씨가 자기로 랭면집을 꾸리게 된것은 본인도 미처 생각못했던 전혀 뜻밖의 일이다. 창명랭면집에서 일손을 놓고 나올 때까지만 해도 주옥금씨는 이젠 자식들도 모두 성장했고 나이도 나이인지라 편안히 쉬면서 여생을 즐기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연길복무청사가 파가이주로 허물어지면서 복무청사의 연길랭면맛을 그리워하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것을 보게 되자 가만히 앉아있을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길랭면 제작기술을 장악하고있는 기술자로서 사람들이 연길랭면을 찾을 때 모른척하고있는다는것이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던것이다.
《허물어진 복무청사자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복무청사에서 근무했던 일원으로서 내가 가지고있는 힘만큼 복무대로의 국수맛을 살려보고싶었습니다. 》
결국 주옥금녀사는 이젠 살만하니 집에서 편히 쉬면서 여생을 즐기라는 자녀들과 남편의 반대도 무릅쓰고 지난 3월 30일 옥금랭면집을 오픈했다.
《저는 제가 만든 랭면을 자시는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니 랭면을 만듭니다. 사람들이 찾는 랭면을 만들어 내놓는것은 즐겁고도 행복한 일입니다…》 주옥금녀사의 허심탄회한 속심말이다. 그는 《손님들이 랭면을 드시면서 이 국수 연길랭면맛이 맞네! 하고 긍정해줄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그만큼 주옥금씨는 다년간의 경험과 실천에서 더듬어낸 독특한 비법의 랭면기술에 강한 자부심과 신심을 가지고있다.
연길랭면이 유명한 원인은 영양과 음식맛의 조합이다
랭면점을 신장개업한후 얼마 안되는 어느날 할머니 여러분이 랭면드시러 들어왔는데 신장개업한 랭면집이라 국수맛이 어떨지 먹을가 말가 망설이고있었다. 주옥금씨는 할머니들에게 《먼저 드셔보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냥 드셔도 좋습니다》하고 랭면을 정성껏 만들어 대접했는데 할머니들의 입맛을 정복한것은 물론 할머니들을 단골손님이 되게 했다.
지금까지 옥금랭면부는 개업한지 채 두달이 안되지만 맛객들이 입소문으로 소문이 나 매일 찾아드는 손님들로 분주하다.
연길복무청사의 연길랭면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것은 누구나 잘 알고있는 일이다. 다년간 연길복무청사에서 근무해왔고 근 30년간이나 연길랭면을 만들어온 랭면기술 보유자인 주옥금씨는 연길랭면의 인기는 단순히 하루아침에 얻어진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연길랭면의 영양과 음식맛은 물론 가장 중요한 인기비결이겠지만 그러한 영양과 음식맛을 내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식재료와 조리기술이 밑받침되여야 하기때문이다.
《좋은 식재료를 써야 좋은 음식맛이 나옵니다.》 연길복무청사 근무시절부터 깊이 인식하고있던 음식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일가견이다. 음식은 성실하게 만들어야 하며 손님을 속이지 말아야 성공할수 있다는것이다.
아침이면 시장에 나가 가장 좋은 식재료들을 아낌없이 사들여 온갖 정성으로 맛을 내고 다년간 끊임없이 노력하고 련마해 쌓아온 풍부한 조리경험이 어우러져 비로소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연길랭면으로 거듭나는것이였다.
《큰 욕심은 없습니다. 연길랭면은 연변의 브랜드가 아닙니까? 늙어서 더는 움직일수 없을 때까지 연길랭면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대접하고싶고 죽기전에 내가 가지고있는 랭면기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수해서 우리 연길랭면을 더욱 널리 알리고싶은 생각입니다. 》주옥금사장의 소박하지만 마음에 와닿는 속심의 말이였다.
모리오카 냉면은 재일 한국인 1세 양용철이 1954년 일본 모리오카 시에서 개발한 함흥식 물냉면을 모태로 한 변형된 냉면의 일종이다. 양용철이 모리오카 냉면을 파는 식당인 《식도원》을 연 이후, 《삼천리》, 《명월관》 등 여러 재일 한국인들이 냉면집 운영을 시작하였고,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어 도쿄에까지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다.[6]
한국식 중화요리이다.
현대에는 냉면 면이 길고 잘 넘어가지 않아 그대로 먹기 힘들기 때문에, 가위로 면을 적당한 길이로 자르는 풍습이 생겼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긴 면발은 긴 수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예전에는 면을 함부로 자르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자르지 않고 냉면을 먹으며, 보통 냉면집에서도 자르기 전에 자를지 여부를 꼭 물어본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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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오픈한 복무청사 58년 력사 자랑
고객과 친지들을 반갑게 맞이하고있는 김련희사장(우1) 한동안 떠돌던 연길 服务大楼 연길랭면(사장 김련희)이 드디여 제자리를 찾았다. 9월 20일 새로 오픈한 레저종합청사 ‘백리성’ 6층에 服务大楼 연길랭면부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추억을 더듬으며 옛맛을 느낄수있게 되였다. 이는 연길랭면의 력사를 새롭게 엮어가는 계기가 된다. “1958년에 일떠선 복무청사 연길랭면은 58년의 력사를 자랑하고있습니다. 랭면의 력사를 반세기 넘게 써내려올수 있었던것은 고향의 맛, 민족의 맛을 잃지 않았기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연길복무청사유한회사 김련희사장은 복무청사 연길랭면이 드디여 제자리를 찾았다며 감개무량해했다.
연길복무청사(服务大楼)를 두고 사람들은 연길복무대로(服务大楼)라 부른다. 연길복무청사의 전신은 1958년에 일떠선 연길식당(延吉饭店)이다. 연변자치주의 초대주장 주덕해가 1966년 3월에 직접 설계에 나섰고 연길시중심에 재건토록 했다,그후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연길랭면부’는 ‘연길복무청사로 개명했고... 연길복무청사에서는 랭면의 맛을 살리기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가지 육류와 중약재를 넣어 우려낸 탕으로 육수를 만들었고 여러가지 고명을 얹어 연변인민들이 즐겨먹은 랭면을 개발했던것이다. 복무청사는 일 평균 랭면 2000~3000여그릇을 판매했었다. 이렇게 인기가 짱이던 랭면부가 2012년 6월 2일, 연길시백화청사의 확장건설로 하여 청사가 철거범위에 들면서 력사속으로 사라졌다.
김련희사장은 “백리성은 음식, 쇼핑, 헬스, 오락 등을 일체화한 종합청사인것만큼 젊은이들도 즐겨먹을수 있는 메뉴를 추가했습니다."며 "복무대로 연길랭면의 명맥을 세기를 넘어 대대손손 이어갈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전통을 살리면서 새록새록 메뉴개발에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말했다. 연길랭면의 력사를 새롭게 엮어가는 복청청사, 아니 복무대로가 시민들과 외지 손님들이 즐겨찾는 민속식당으로,모두의 입이 즐거운 곳으로 또다시 급부상할것으로 전망된다. ///조글로미디어 문인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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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랭면》의 국가표준제정 시급하다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연변의 랭면집들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있다. 연변사람이면 조선족이든 한족이든 막론하고 여름이면가장 먼저 꼽는것이 랭면일것이다. 그만큼 연변사람들의 랭면사랑은 대단하다. 예로부터 우리 조선민족은 추운 겨울 따뜻한 온돌방에서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미국에 랭면을 말아 먹었다고 한다. 그 습관이 세세대대 이어져 오면서 랭면은 겨울뿐아니라 4계절 가장 즐겨 찾아먹는 음식으로 되였다. 연변에 살고있는 한족을 비롯한 타민족들도 그 영향을 받아 연길랭면을 즐겨 찾는 형편이다. 연변지역의 랭면은 《연길랭면》으로 불리우면서 지역의 대표음식으로 발돋움했다. 연변에 오는 관광객들은 연변에 오면 꼭 한번 먹어보는 음식으로 연길랭면을 꼽는다. 연변뿐만아니라 북경, 상해, 청도 등 내지에서도 연길랭면이라는 간판을 쉽게 찾아볼수 있고 서울 등 해외에도 연길랭면집이 있다. 이는 연길랭면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연길랭면》은 《중국10대 유명 면음식》이라는 영예를 따냈고 올해에는 길림성에서 유일하게 신화넷에서 추천한 《중국미식지도》에 편입되였다. 이런 《국자호》미명은 연길랭면의 브랜드가치가 날따라 높아지고있음을 시사한다. 연변조선족전통음식협회 김순옥회장은 《연길랭면》의 국가표준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국가표준을 제정하면 《연길랭면》이 건전한 산업화체계로 발전할수 있으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민족음식문화를 고양하는데 매우 리롭다는것이다. 국가표준이 제정되면 면을 만드는 표준화공장이 늘어날것이고 육수를 만드는 표준화공장이 생겨날것이며 그에 따른 표준화포장공장도 늘어 날것이다. 따라서 민족전통음식문화의 보호발전은 강유력한 탄력을 얻게 될것이며 우리 지역경제와 취업률 제고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우리는 민족적인 가치야말로 우리지역의 경쟁력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우리의 오랜 력사속에서 형성된 깊이 있는 문화유산은 남들이 갖지 못한 우리만의 경쟁력이고 우리지역 미래의 희망이 될수 있는 우리민족 고유의 다양한 문화를 상품화할수 있는 유력한 바탕으로 된다. 관련부문에서 우리민족과 우리지역의 대표음식인 《연길랭면》의 국가표준을 제정하는데 하루빨리 나서야 할것이다. /연길인민방송국 아리랑방송 류련 |
연변동포사회의 자랑이 된 중국 유일의 냉면 계승자
연길 진달래냉면
2000년 전국노력모범으로 당선되어 유일하게 한복을 입고 천안문에 오른 최기옥 사장
90년 한국방문으로 기업가 꿈 가졌던 최기옥씨
총면적 7,000㎡ 규모에 3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진달래냉면
연변은 '춤과 노래 그리고 축구의 고향'이다. 또 '진달래 고향'이기다 .연변조선족전통음식이라면 김치, 개고기(보신탕), 냉면을 꼽을수 있는데 으뜸냉면으로 당연히 진달래냉면을 꼽을수 있다.
최기옥 사장의 가족, 2005년 중앙CCTV에 반영된
2006년 진달래냉면이 길림성무형문화재로 지정돼
2000년 연변 최초 음식업의 유일한 전국노력모범 당선
◇사업가로 성공한 이후 최 사장의 눈부신 활약들
최기옥 사장은 1994년 연변부녀대표로 한국 방문시 전 김영삼대통령을 접견하기도 하고, 2000년 전국노력모범으로 당선되었다. 연변지역에서 유일하게 음식업으로 당선된 전국노력모범이며 민족단결모범이며 3.8붉은기수였다. 당시 유일하게 한복을 입고 천안문에 올라 민족의 자긍심을 느꼈다고 최기옥 사장은 말한다.
◇앞으로 어떤 일을?
최기옥 사장은 아들 고봉렬 이사에게 회사를 맡기고 현재 북한과 무역하고 있는 무역회사와 전국 분점 그리고 서시장 근처에 있는 대형창고만 관리하고 5월말쯤부터 주농업은행과 손잡고 소액담보신용대출업무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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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팡팡] ‘평화냉면’이 된 ‘평양냉면 이야기’
# (평화를 상징하는 음식)
#단짠단짠 입맛에겐 멀고도 멀지만
요즘 ‘평양냉면’이 핫하죠?
4·27 남북 정상의 공식 만찬메뉴로 등장하며 화제에 오른 평양냉면.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인데도‘남북 정상회담 호재’ 바람을 타고 인기 급상승중입니다.
이 ‘평양냉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우선 평양냉면이란 이름 그대로 평양 지방의 향토음식이죠.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찬 냉면 국물에 말아 먹습니다. 앙념을 적게 넣어 담백한 맛이 특징입니다.
고기 육수(닭, 돼지, 소)를 단독으로 쓰거나 동치미 국물을 넣어 먹기도 하는데요. 원래 평양에서는 겨울철에 즐기는 음식입니다.
평양에서는 1910년 대 이미 전문적인 평양냉면 식당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1920년대에는 평양 시내에 수십 곳이 생겨났죠.이 ‘평양의 별미‘ 가 서울에서 자리잡은 것도 1920년대입니다. 당시 낙원동 ’부벽루‘, 광교의 ’백양루‘ 등이 유명했습니다. 1930년대는 서울에서 배달음식으로 평양냉면이 인기였죠.
평양냉면이 일반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입니다.전쟁 후 북한 실향민들이 동대문과 을지로 일대에 터전을 잡으며 그들이 해 먹던 음식을 팔게 되며 알려졌죠.당시 북한 출신 냉면 기술자들을 영입한 일부 식당들은 ‘평양냉면 강자’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도 흔히 ‘평양냉면 4대천왕’ 등 평양냉면 맛집 리스트 등이 있는데요.평양에서 평양냉면이 유명한 식당은 옥류관입니다. 평양의 4대 냉면집 (고려호텔식당, 옥류관, 민족식당, 청류관) 중 하나입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는 옥류관의 전문 요리사들까지 초빙돼 왔다고 하죠.
평양냉면 하면 맛과 먹는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들이 오갑니다.첫 시식 경험담은 ‘밍밍하기만’, ‘수돗물 맛’ 심지어는 ‘걸레 빤 맛’ 이라는 표현도 종종 등장합니다.먹는 법에 대해서도 ‘면에 식초를 쳐야한다’, ‘면을 가위로 자르면 평양냉면 먹을 줄 모르는 것’ 등등이죠.
실향민의 그리움을 담은 음식이기도 하지만 젊은 층에게는 음미해야 하는 맛, 비밀스러운 맛으로 색다르게 다가가기도 합니다.
어쨌든 평양냉면은 미식가의 음식임에 틀림없습니다.“평양냉면은 양념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시식을 하면서 감각을 집중하게 된다. 감각을 깨우기 위한 음식으로 평양냉면만한 음식이 없다. 그래서 미식가의 음식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평화냉면으로 거듭나고 있는 평양냉면진짜 북한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맛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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