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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큰 못이다"...
2018년 07월 12일 23시 17분  조회:2370  추천:0  작성자: 죽림

<어머니의 고달픈 생에 관한 시 모음> 

+ 어머니의 못 

교회에 다니는 작은 이모는 
예수가 사람의 죄를 대신해 
못 박혀 죽었다는 그 대목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흐느낀다 
어머니에게 전도하러 왔다가 
언니는 사람들을 위해 
못 박혀 죽을 수 있나, 며 
함께 교회에 나가 회개하자, 며 
어머니의 못 박힌 손을 잡는다 
어머니가 못 박혀 살고 있는지 
작은 이모는 아직 모른다 
시를 쓴다며 벌써 여러 해 
직장도 없이 놀고 있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작은 못이며 
툭하면 머리가 아파 자리에 눕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큰 못이다 
그렇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나는 삐뚤어진 마루판 한 짝이어서 
그 마루판 반듯하게 만들려고 
삐걱 소리나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는 스스로 못을 치셨다 
그 못들 어머니에게 박혀 있으니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식당일 하시는 
어머니의 손에도 그 못 박혀 있고 
시장 바닥으로 하루 종일 종종걸음치는 
어머니의 발바닥에도 그 못 박혀 있다 
못 박혀 골고다 언덕 오르는 예수처럼 
어머니 못 박혀 살고 있다 
평생을 자식이라는 못에 박혀 
우리 어머니 피 흘리며 살고 있다 
(정일근·시인, 1958-) 


+ 두 개의 무덤 



어머니의 젖무덤은 
오래된 무덤이다 
봉분이 다 가라앉아 
평지와 구별되지 않는다 

결혼 생활 오십여 년에 
희망이나 바람 따위 
모두 그 무덤에 묻혔다 



이 땅의 여자들 
두 개의 
무덤을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사랑을 잠재우기 위해 
다른 하나는 자신을 
묻기 위해) 
(이대흠·시인, 1968-) 


+ 히말라야의 노새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멜로드라마 

멜로드라마는 눈물을 쥐어짠다 
멜로드라마는 손수건을 적신다 

비웃지 마라 
멜로드라마가 슬프다면 
그건 우리 삶이 슬프기 때문이다 
멜로드라마가 통속적이라면 
그건 우리 삶이 통속적이기 때문이다 

보라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만이 
멜로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있지 않느냐 
적어도 그들만큼은 겪어봐야 안다 
삶을 연습하고 싶다면 
우리는 멜로드라마에 기댈 수밖에 없다 

거룩한 멜로드라마 
위대한 멜로드라마 
(강연호·시인, 1962-) 


+ 손등에 떨어진 눈물 

늙으신 어머니를 씻겨드리다 
손등에 눈물을 떨구었네 
퉁퉁 핏줄 불거진 손등을 매만지다가 
내 마음 주저앉아 버렸네 
뼈마디 앙상한 손등을 쓰다듬다가 
와르르 무너져 참회하였네 
울고싶어도 눈물 참아온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아픔조차 아픔인지 모르고 살아온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섭섭함도 먼 시선에 묻어 살아온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여자이기 전에 어머니였던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오늘 나는 무릎을 꿇고 
눈물로 야윈 손을 씻겨드렸네 
향기로운 외로움을 씻겨드렸네 
(홍수희·시인)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시인, 강원도 평창 출생) 


+  어머니 

어머니 

열일곱에 시집오셔 
일곱 자식 뿌리시고 
서른일곱에 
남편 손수 흙에 묻으신 뒤, 

스무 해 동안을 
보따리 머리에 이시고 
이남 땅 온 고을을 
당신 손금인 양 뚝심으로 누비시고 
휜히 익히시더니, 

육십 고개 넘기시고도 
일곱 자식 어찌 사나 
옛 솜씨 아슬아슬 밝히시며 
흩어진 자식 찾아 
방방곡곡을 누비시는 분. 

에미도 모르는 소리 끄적여서 
어디다 쓰느냐 돈 나온다더냐 
시 쓰는 것 겨우 겨우 꾸짖으시고, 

돌아앉아 침침한 눈 비비시며 
주름진 맨손바닥으로 
손주놈의 코를 행행 훔쳐주시는 분. 
(조태일·시인, 1941-1999) 


+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沈淳大) 
초등학교 마당도 못 밟아서 글 모르지만 
열여섯에 시집와서 자식 일곱 낳고 
한 자식 잃었지만 육남매 거뜬하게 키운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다 

내 나이 열두 살이 되도록 시집살이에 매여 
남동생 둘 잃고도 친정 한 번 못 가보고 
주정뱅이 외삼촌 술 취해 올 때면 
소나무장작으로 두들겨 패 쫓고는 
불 아궁이 앞에서 눈물짓던 어머니 
행여 누가 볼 때면 덜 마른 장작 탓이라며 
두들겨 팬 동생보다 가슴에 멍이 더 든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장날 그 흔한 자장면 한 그릇 못 사드시고 
녹두콩 열무다발 푼푼이 내다 팔고 
벼농사 고추농사 찌들려서 
끝물 고추대궁처럼 바삭 마른 어머니 
이제는 관절염으로 두 무릎 쇠붙이 박아 
걸음조차 못 내딛는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병원 약국 앞에서 
심순대씨! 심순대씨! 하고 부를 때 
사람들 그 이름 우습다고 키득대지만 
'여기 갑니다. 심순대씨 갑니다' 
나는 소리치며 약봉지 받아든다 

이제 좀 편히 사시라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 지어드렸더니 
새 집에 흙 묻는다고 현관부터 맨발로 들어서는 어머니 
무릎 수술자국이 눈에 아려 왜 맨발로 들어가느냐고 소리치면 
그냥 말없이 웃는, 이제는 너무 작아 어린아이 같은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202번지 
마당 넓고 잘 지은 그 집 문패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하나가 걸려있다 
어머니가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한문으로 쓴 이름 沈淳大 
내 어머니는 거기서부터 맨발로 들어가시며 
매일매일 바라보신다 
(김시탁·시인, 1963-) 

* 엮은이: 정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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