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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거슬러 온
윤동주의 숨결
“
사람이 1년에 800만 번 숨을 쉬고,
이 숨을 다 합치면 2억 리터가 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생애 53년 간 내쉰 숨이
지구 대류권에 흩어져서 지난 400년간
균일하게 분포해 있다고 가정하면,
이순신 장군의 입에 한 번이라도
들어갔던 숨을 현재의 우리도
들이마실 수 있습니다.
”
지난(2017년) 6월 2일 방송된 tvN ‘알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알쓸신잡)’에서 물리학자 정재승이 주장한 내용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통영으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껴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실제로 그 숨결을 계산해 봤다고 한다. 다양한 과학적, 수학적 이론을 동원해 내린 결론이다.
이순신 장군은 지금으로부터 472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렇다면 불과 100년 전에 태어나 28년 간 살았던 윤동주 시인의 경우는 어떨까.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훨씬 가까운 시기를 살아간 윤동주 시인의 숨결은 더 많이, 더 자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시인 윤동주의 숨결을 느끼는 시간
“
윤동주 시인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도
자주 산책을 즐겼습니다.
그의 숨결을, 그가 사랑했던
연희전문학교 교정에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지난(2017년) 6월 23일 오전 10시,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 4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윤동주 시인이 대학시절 시에 대한 열정을 안고 거닐던 산책길을 따라 걷기 위해서다. 이는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시인 윤동주의 삶과 작품을 기리기 위해 서울시교육청 서대문도서관이 마련한 ‘윤동주, 읽다 쓰다 걷다’ 행사의 일환이다.
△‘윤동주 산책길 따라 걷기’ 행사의 코스는 ‘연희 연전숲길2’ 코스였다. ‘연세대 정문-윤동주 시비-핀슨관-
청송대-외솔관-최현배 흉상-언더우드가 기념관-연세대 서문-연희 문학 창작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 강민혜
정문에서 출발, 연세대 교정을 걷기 시작한지 5분 만에 참가자들이 만난 것은 윤동주 시비였다.
윤동주는 의대 진학을 원하는 아버지에게 맞서 단식과 가출까지 감행하며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 문과에 입학했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던 1941년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연세대 내 세워진 윤동주 시비는 1968년에 윤동주를 아끼는 학생·친지·동문·동학들이 정성을 모아 세운 것이다. 참가자들은 잠시 동안 시비 앞에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시비 앞쪽에는 윤동주의 육필 원고 글씨체를 그대로 옮긴 시 한 수가,
뒤쪽에는 윤동주의 생애가 새겨져 있다. ⓒ 강민혜
시비 뒤쪽으로는 윤동주 기념관인 핀슨관이 보였다. 연희전문 재학 시절 윤동주는 핀슨관 3층 다락방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윤동주의 고종사촌인 송몽규와 친구인 강처중이 “동주 너는 책을 읽고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니, 경치 좋은 방을 써야한다.”며 3층 방을 내줬다고 한다. 지금은 3층이 아닌 2층에 작은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다. 윤동주가 사용했던 책상, 가방, 연필, 펜, 읽었던 책(시집, 철학서), 쓰고 다니던 모자 등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 강민혜
△윤동주가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들. ⓒ 강민혜
참가자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 청량한 숲 내음이 가득한 청송대(聽松臺)에 도착했다. 청송대는 ‘소나무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윤동주 시인의 스승이었던 이양하 교수는 수필 <신록예찬>에서 “우리 연희전문학교 일대를 덮은 신록은 어제보다도 한층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 있는 듯하다”며 청송대의 생명력을 칭송했다. 그래서일까. 제자인 윤동주도 산책을 위해 청송대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소리를 들으며 윤동주의 숨결을 함께 느껴보았다.
| 걷기를 예찬한 철학자들
“
무엇보다 걷고자 하는 열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
날마다 나는 나 자신을 행복 속으로 바래다주고,
모든 아픔에서 걸어 나온다.
나는 나 자신을 최고의 생각 속으로 데려다 준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 걸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괴로운 생각을 알지 못 한다.
”
-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
앉아서 지내는 삶은
성령을 거스르는 진정한 죄악이다.
걷기를 통해 나오는 생각만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
”
- 독일 철학자 니체
키에르케고르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슬픔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지만, 걷는 행위를 통해 위로받았다. 평생 우울증을 알았던 니체도 걸으면서 마음의 병을 다스렸다. 또 제네바의 철학자인 루소는 파리 외각 전원을 걷는 시간을“하루 중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철학자들이 걷기를 통해 사색을 즐기고, 정신적 치유와 위안을 얻었다.
윤동주는 어땠을까. 그도 걷기를 즐겼다. 안소영의 <시인 동주>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동주의 산책은 유명했다. 산보라기엔 꽤 먼 길이었고, 족히 두어 시간 걸릴 때도 많아 원족(遠足, 소풍)이라 할만 했다.” 이처럼 윤동주는 혼자, 또는 친구들과 함께 연희전문 교정을 자주 산책했다.
“
언더우드 동상을 가로질러
노천극장 뒤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맞은편에 이화여전 건물이 보이고
쉬어갈 만한 언덕이 나왔다.
달맞이하기도 좋고, 밤바람 쐬며
나무의자에 앉아 이야기나누기도 좋았다.
”
이 대목이 바로 ‘동주산책길 발굴기획’의 시작이었다. 이번 ‘윤동주 산책길 따라 걷기’ 행사의 주축이 된 ‘동주산책길 발굴기획단’은 윤동주의 산책길을 개발하고 알리자는 취지로 지난해 결성된 모임이다. 현재 회원은 11명이며, 절반 이상이 서대문도서관에서 10년 넘게 활동한 독서동아리 출신이다. 동주산책길 발굴기획단의 조미환 대표는 “안소영의 <시인 동주>를 통해 윤동주가 하루도 산책을 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산책길이 바로 내가 사는 동네임을 깨달았다”며 “윤동주와 그의 시에 조금 더 공감하기 위해 그 길을 우리도 걸어보자는 취지로 동주산책길을 발굴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또 이번 행사 기획에 대해선 “우리가 찾은 길을 서울 시민에게 알려주고, 윤동주 시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동주 산책길을 따라 걷다보면 숲의 청량함과 마주하게 된다. ⓒ 강민혜
산책이란 본래 천천히 걷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게 걷기란 목적지를 정해 놓고 그곳을 향해 가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가는 동안에는 효율을 따질 수밖에 없다. 가장 쉽고, 가장 빠르게 가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윤동주에게 걷기란 시를 완성해 나가는 일이었다. 피부 위를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평소에 못 보던 푸른 나뭇잎과 맑은 하늘을 보면서, 윤동주는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조 대표는 “사람들이 윤동주와 같은 마음으로 ‘산책’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조 대표는 또 “좀 더 나아가서는 윤동주의 시에 담긴 참뜻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동주는 북간도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4년 간 공부했고, 일본으로가 후쿠오카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윤동주를 시인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때문에 윤동주의 작품 중 알려진 것들은 서정적인 시들이 대다수다. 윤동주가 시에 담고자 했던 항일의 원뜻이 굉장히 많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가 걸었던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말도 쓰지 못하는 일제강점기 치하의
그 암울한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고 고민했던
윤동주와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윤동주의 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
△윤동주와 송몽규의 연희전문 학적부와 성적표.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름에 빨간 펜으로
두 줄이 그어져 창씨 개명된 성이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강민혜
‘동주산책길 발굴기획단’이 그동안 고증을 통해 찾아낸 완성된 산책길은 총 3개. 지금도 꾸준히 발굴 중이다. 서대문도서관은 "산책길을 거닐며 윤동주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걷기 행사는 지난 5월 27일에 1차, 이날에 2차가 열렸고, 3차는 오는 7월 8일에 열린다.
이 밖에도 ‘윤동주, 읽다 쓰다 걷다’ 중 ‘윤동주 읽다’에서는 <시인 동주>의 저자 안소영 작가, <윤동주 평전>의 저자 송우혜 작가, 류양선 교수, 김응교 작가 등이 윤동주와 관련된 책을 시민들과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윤동주 쓰다’에서는 오는 7월 5일, 유지희 시인이 시민들과 함께 윤동주의 시를 읽어보고 느낀 점을 시로 적는 시간을 가진다. 서대문도서관은 "이번 사업을 통해 지역주민들이 문학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일제강점기 관련 자료를 통해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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