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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도 마침내 시인을 가졌노라
충북 남부지방에서 내 마음을 제일 짜릿하게 자극한것은 옥천군이였다. 한것은 거기엔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시 <향수>의 시인 정지용님의 혼불이 그냥 숨쉬고있기때문이다. 그리고 지난번 (2005년 봄) 나는 성인시집<불새>를 민족출판사에서 출간했는데 바로 정지용님의 이름으로 명명한 <지용문학상>입상작품집으로 간행된것이다.
옥천군은 진짜 시인의 고향답게 온 군이 정지용이란 그 숨결속에 진한 향기를 터쳐올리고있었다. 옥천사람들은 누구나 지용시인님이 있음으로 하여 자부심에 넘쳐 세인에게 웨친다. <우리도 마침내 시인을 가졌노라!>고 .
지용님께서 살던 생가가 그대로 복원되여있었고 생가마당가에는 까치밥이 달린 감나무가 한그루, 그리고 바로 그 옆에 남으로 쭉 뻗어간 옥천벌을 휘감으며 실개천이 여전히 흐르고있었다.
후에 만들어놓았겠지만 우리 키보다도 훬씬 더큰 물방아도 옆에 있어 더구나 시인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수 있게 했고 오른쪽 한 50메터쯤에는 정지용님의 동상과 올해 (2005년)갓 개관했다는 현대화적인 설비로 완미화된 <정지용문학관>이 멋진 건물로 장식되여 보란듯이 옥천의 자랑인 정지용님의 그 혼불을 추켜들고 있었다.
너무나도 뭉클하는 감동을 억제할길이 없어 그날 저녁 11시 30분즈음에 나는 청주에 마련된 숙소에 와서 인터넷으로 중국에 있는 대형 조선문문학지 <장백산>지에다 채 익지도 않은 시 3수를 날렸다.
그중 한수는 이렇게 썼었다.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휘돌아 나간 실개천
한오리로도 족했습니다
마당앞 까치밥 감 한알로도
풍성했습니다.
님께서 사색을 일구시던
도배한 온돌방과 물난 두리상
너무나 소박한 초가에
너무도 아름찬 명상을 펼쳤습니다
하늘 높이 휘날리는
저-혼불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옥천벌 가득
불이 되여 날아내립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군 옥천면(현 옥천읍) 하계리에서 부친 정태국과 모친 정미하의 장남으로 출생한 정지용은 옥천보통공립학교와 휘문보고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휘문고보에 다닐 때부터 습작활동을 시작하여 1922년 <풍랑몽>을 쓰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 들어도 어마어마한 <시문학>, <구인회>등의 문학동인과 <카톨릭청년>, <문장>등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휘문고보의 교원을 거쳐 해방후에는 리화녀전문대 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 직을 력임하기도 했다.
그후 조선전쟁이 일어나자 전쟁의 란리속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정확한 행적은 알수 없고 그의 죽음에 대해 소문과 추측만이 떠돌아 더욱 애절하고 더욱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리다.
그의 시집으로 <정지용시집>, <백록담>, <지용시선>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문학독본>, <산문>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에는 시골(전통)과 도시(현대), 동심(동요)과 구원(종교시), 바다(이미지즘)와 산(동양정신)등이 빛나는 언어로 완성되여있다. 절제된 사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 그리고 섬세한 언어감각으로 빚은 시편들을 통해 그는 한국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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