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tmjssh 블로그홈 | 로그인
두만강수석회

나의카테고리 : 두만강수석회

【탐석기】두만강 남평구간 첫 탐석행 (1)
2006년 05월 24일 00시 00분  조회:4456  추천:100  작성자: 두만강수석회


【탐석기】

두만강 남평구간 첫 탐석행 (1)

리 함

5월 15일과 16일 이틀간 온 연변은 때이르게 찾아든 무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했으나 그에 앞서 화룡시 남평진 송전구간 두만강 돌밭에서 우연히 신주대지— 중국지도 문양석 한점을 주은 필자는 진정할수 없었다.

5월 17일, 떄이른 무더위 사흩날에 필자는 석우 김봉세씨와 더불어 두만강 남평구간 처녀지 탐석행에 나서보았다. 해란강이 심장지대를 흐르는 연변의 곡창지대 룡정 세전이벌과 화룡 60리라 평강벌은 벼모내기가 금방 시작된 참이라 전야는 들끊는, 약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있었다. 연길-화룡행은 76킬로메터라지만 중형뻐스는 세전이벌, 평강벌을 누비며 빨리도 달리여 한시간만에 우릴 화룡뻐스부에다 부리웠다. 오전 8시 남평행뻐스가 이미 떠난데서 택시를 잡아타야 했는데 남평까지 근 100리길 택시비는 일인당 15원에 불과했다.

화룡은 우리 둘의 고향이라 내 고향으로 달리는 두만강 첫 탐석행은 신나기만 했다. 택시가 화룡시가지를 벗어나고 우심령을 넘어서자 김봉세씨는 벌써부터 흥분에 젖어있었다. 알고보니 봉세씨는 1990년에 화룡을 떠난후 16년만에 우심령을 다시 넘어보는데 우심령너머 차장자는 그가 한때 소학시절을 보낸 잊지 못할 고장이였다.

택시가 우심령 서쪽기슭 고산촌을 지나고 차창자구내에 들어서자 김봉세는 이런 얘기를 터놓았다.

김봉세씨는 아버지가 현림업계통에서 사업하다가 차창림산작업소 업무소장으로 전근한데서 가족과 함께 화룡현성을 떠나 차창자로 이사하게 되였다. 지난 60년대초라고 하니 봉세씨는 소학교 저급학년시기를 차창소학교에서 보내게 되였는데 그때까지만도 차창자일대는 말짱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아담한 고장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차창자는 온통 한족들뿐이라며 개탄해마지않았다. 그것도 산동 등지에서 모여든 한족이주민들이 꼬드개로 넘친 초원지대를 개간하고 오늘의 마을을 일떠세우고 밭들을 개간했으니 그 개척정신이 우러러 보인다고 동을 달았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사이 택시는 숭선과의 갈림길과 신흥동, 선경대풍경구를 지나고 흥진, 류동, 추전, 류신촌 구내, 송전령을 너머 송전구간 두만강가에 이르렀다.

송전촌은 남평진의 한개 행정촌으로서 남평서 동으로 10리쯤 떨어진 고장인데 20여세대가 오붓이 모여살던 마을이 지금은 3세대쯤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 두만강가에는 크나큰 돌밭이 생겨나 리상적인 탐석지임은 두말할것도 없다. 그것도 5월 3일 남평송전행에서 발견했으니 연길의 수석인들로 말하면 그야말로 황금의 처녀지와 진배없었다.

수석인들의 눈길은 무서운가 본다. 5월 3일 행에서 두루 한바퀴 돌아보았는데 두번 다시 수석다운 수석을 손에 쥘수 없었다. 점심을 이곳 돌밭에서 거르고나도 옹근 오후시간이 남아 우린 송전 동쪽아래 바위구비로 탐석지를 옮기기로 하였다. 그러나 바위구비로 두만강물이 출렁이며 흐르는데서 산등성이를 타야 했지만 나무숲 우거지고 진달래꽃 가담가담 피여있는 산등성이 길이 그리도 좋을수가 없었다. 연길이나 화룡의 산들은 이자 푸른 옷을 갓 입기 시작하는데 산들로 막히여 기후가 따뜻한 두만강반은 온통 완연한 푸른단장이다.

야산 같은 산등성이와 산기슭을 에돌아내리고 벼랑바위구간을 지나 두만강가로 나아가니 눈이 뒤집혀질 지경이다. 송전마을앞 돌밭이 크다했는데 여기 바위구비구간은 그 몇배나 클것 같았다.

둘은 신바람 났다. 쨍쩅 내리쬐이는 땡볕도 우릴 나무그늘로 이끌지 못했다. 두어시간사이 필자는 표준형 문양석 한점과 구멍난 화산분출돌 몇점을 주었다. 그중 구멍수석 두점만 보아도 한점은 구멍이 닭알만큼이나 통쾌하게 뚫린 수석, 집에 두고 감상하기는 흥나는 수석이였다. 김봉세씨도 구멍수석 한점과 아라비야수자 《1》자가 박힌 보기 좋은 수석 한점을 주어들었다. 희스레한 돌밭천지에서 괜찮은 수석 몇점을 주었다는것은 일대 기문이 아닐수 없었다.

처녀지는 처녀지였다. 오후 시간이 흐르며 비구름이 몰키고 비방울이 떨어졌지만 우리 두 수석인은 처녀지를 떠날줄 몰랐다. 늦어서야 핸드폰으로 택시운전사 야씨와 련계하니 운이 좋게도 택시는 숭선갔다가 남평으로 돌아오는중이였다.

남평에서 화룡까지 택시비 일인당 10원, 250리쯤의 왕복 전체 로비는 120원—참으로 해볼만한 두만강 남평구간 처녀지 첫 탐석행이였다.

(2006년 5월 22일)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614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74 오늘도 20여명 다녀가다 2006-06-30 101 4044
73 김부식선생을 환송 2006-06-30 112 3778
72 가야하는 또 골탕을 먹이다 2006-06-26 110 4371
71 김부식씨 수석회를 찾다 2006-06-21 104 4230
68 가야하 물사태에 어정쩡 2006-06-17 100 4076
66 어디서 이런 돌 얻어옵니까 2006-06-13 83 3898
65 수석전시관이 있어 좋아 2006-06-12 106 3751
64 수석전시청 찾은 한가족들 2006-06-11 87 3763
62 전시회 두번째 날 2006-06-10 109 3368
61 수석전시기간은 8월말까지 2006-06-10 89 4030
46 【시】 수석을 주었습니다 2006-05-11 89 432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