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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2023년 10월 13일 07시 40분  조회:601  추천:0  작성자: 오기활
2007년 5월 9일(음력), 나의 환갑수연례 때 아들이 하객들 앞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아버지는 오호준의 아들이고 나는 오기활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같은 아들로서 아버지와 나의 가장 구별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돌연적인 아들의 물음에 당황해난 나는 평상시의 말대로 “나는 ‘아들을 못 지낸 아들’이고 너는 아버지를 모시는 아들이다.”고 했더니 아들이 “정답입니다”고 했다.
 
아버지 오호준(40)은 내가 10살이 되던 해에 돌아갔다.(아버지가 입음 외투는 어느 친적의 결혼때 대반으로 가면서 이 외투를 빌어 입었다고 한다.)


 
나는 2살에 어머니를, 열살에 아버지를 잃은 조실부모한 고아로 부모들의 사랑을 못 받고 부모들의 교육이 없이 자랐다. 나는 엄마의 얼굴조차 기억에 없고 아버지는 돌아가던 날에 나에게 공책과 싸리연필을 사주던 기억밖에 없다. 부모들이 돌아간 후 우리는 5남매(2남3녀)가 살다가 이상 누님들이 결혼하자 나와 동생이 15년간이나 큰집에 얹혀살면서 뼈를 굳혔다.
내가 날이 갈수록 부모의 필요성을 갈망하게 된 것은 결혼 후부터였다. 말하자면 내가 세대주로서 가정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고 자식들에게 어떤 ‘부친상'(父亲像)을 남겨야 하는 것이 늘 앞서는 고민이였다.
결혼 후 나의 앞에 놓인 첫 과제로 아들을 본후 아들 이름을 어떻게 짓겠는가 하는 것이였다.
‘무지하면 대담하다'고 한다. 나는 1975년에 결혼하고 1976년에 아들을 본 후 며칠간 밤낮이 따로 없이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가를 고민하던 끝에 “내가 낳은 아들 이름을 내가 짓는다.”며 아들의 이름으로 친척이나 동네 로인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거나 ‘작명전문가'를 찾지 않았다.
나는 아들을 늘 푸른 소나무처럼 키우리라는 욕심으로 이름을 오무송(吴茂松)이라고 짓고 계속하여 동생네 두 아들을 오무성(吴茂成), 오무림(吴茂林)이라고 지어 3형제의 이름 막자로 “松成林”,  후대들이 ‘소나무가 자라서 수림을 이루듯' 되기를 이름에 담아서 기대했다.
다음은 평생과제로 ‘아들을 못 지낸 아버지'가 어떻게 자녀교육을 잘 할 것인가였다. 나는 반복적인 추고 끝에 ‘책속에 길이 있다'고 책에서 아버지 모델을 찾아서 내가 ‘책아버지'로 되는 것이였다.
그래서 서점에 다니며 아무튼 책표지에 ‘아버지' 석자가 담긴 책이면 거의 다 사서 열독하였다. 지금 나의 책장에는 《아버지》,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와 아들》 《아들에게 가르켜 주고 싶은 모든 것》, 《아들아, 그것 말이야》, 《아들을 성공시킨 아버지 편지》, 《내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그리운 아버지의 술 냄새》, 《미래에 대응하는 자녀교육》 등 많은 책들이 소장되여 있다.
 
궁핍한 년대에 아버지는 나의 왼손에 만년필을 쥐여주고 돌사진(?)을 찍어주었다


.
십수년간의 독서에서 나는 한국 신재용선생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를 읽고 이를 나의 평생지도 교재로 정하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부지런히 ‘늘 해야 할 일'을 하려고 작심했다. 이하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는 글의 일부이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마음을 큰 바다처럼, 몸은 큰 산처럼 하라셨건만 내 마음은 내 스스로 갉아먹어 좁쌀만 해졌습니다.
내 몸은 즐거움을 쫓느라 허물어져만 갑니다.
바다는 커녕, 산은 커녕, 거품처럼, 티끌처럼 살아갑니다.
나는 아버지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가진 것에 집착하지 말며, 가져서는 안될 것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셨건만 갖고 싶은 것은 갖고 싶고 가지면 더 갖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지면 더 갖고 싶어 안달아합니다.
안달로, 들뜸으로, 미련으로 거짓의 옷을 벗지 못합니다.
나는 아버지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난 이'를 축복하고 ‘늙은이'를 돌보고 ‘아픈 이'를 위로하고 ‘죽은 이'를 잊지 말라고 했지만 ‘난 이'을 위한 빎도, ‘늙은이'를 위한 보살핌도 ‘아픈 이'를 고치려는 의술도 턱없이 부족해 좌절합니다...”
그리고 또 어느 책에서 읽은 아들의 글이다.
“7살인 어린 시절에 나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17살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알고 계시지 않는다.
21살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나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모른다.
35살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생각보다는 많이 알고 계셨다.
50살 된 지금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옳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글 속의 아들이 100세 시대의 아버지를 쓴다면 70살 때 생각, 90살 때 생각을 어떻게 썼을 가가 궁금하다. 필자는 나의 아버지, 나, 그리고 나의 아들을 곁들며 이 글을 맺는다.
아버지(오호준)
ㅡ내가 10살을 먹어 15일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다 보니 먼저 글 속의 아들이 7살에 “나는 생각했습니다.”로 나를 대신한다.
“우리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다음은 아버지의 선경지명 두가지에 감사를 올린다.
하나는 나의 이름을 잘 지은 것에 감사하다.
나의 이름을 풀이하면 ‘나라 오(吴), 터 기 (基), 살 활(活)'이다. 나는 내 이름의 뜻을 ‘오나라에서 기본상 살아간다'로 풀이한다. 나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덕으로 고아신세에 오늘까지 무탈하게 지내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금년 4월에 뇌출혈로 시술까지 하였지만 지금은 큰 후유증이 없이 기본상 종전의 건강상태로 회복하였다.
다음은 그렇게 궁핍한 년대에 나의 왼손에 만년필을 쥐여주고 돌사진(?)을 찍어 준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이러한 ‘선견지명'으로 기자, 작가로 되였으니 말이다.
나(오기활)
아들이 소학교부터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아들과 함께 반급의 흑판보를 전담하여 꾸렸다.
아들에게 서예공부를 시켰다. 하여 아들의 만년필 글쓰기 작품이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 《서예》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글쓰기를 지도하였다. 하여 중학생 때 《연변일보》에서 조직한 응모 작품에 아들의 작품 <부자간의 장성 쌓기>가 입선되였다.
아들에게 가문의 계주봉을 넘겨 주었다. 아들이 동북사범대학에 입학한 축하연에서 내가 5년간 돼지사양원을 하면서 쓰던 ‘멜대'를 가문의 대물림 계주봉으로 아들에게 넘겨주며 가문의 본분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아들이 일본류학을 갈 때는 오성붉은기와 나폴레온 힐이 쓴 책 《성공의 13단계ㅡ어디서나 할 수 있다》를 주면서 애국심을 간직한 성공자가 될 것을 기대하였다.
아들(오무송)
아들은 일본 케이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본교의 평생교수로 취직하였고 학교의 파견으로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2년동안 연수를 하였다. 아들은 우리 가문의 장손으로 ‘정, 지, 검, 관, 강'(正智俭宽康)이라는 가훈을 기초하였다.
나에게 재일본 조선족들의 삶의 현장을 쓰도록 건의하고 내가 쓴 《왜 갔느냐면 일본에, 왜 사느냐면 일본서》책에 서언과 후기를 썼다.
아들은 미국에서 <길>이라는 시를 지어 자기의 앞길을 확고히 하였다.
민들레홀씨가 태평양을 날아넘어
책갈피에 묻힌 채 고금을 잇는데
창밖의 풍경도 춘하추동 비껴간다
창문에 비친 제 모습 용기 내여 직시하며
다원속의 그 진리에 눈 떠보련다
향수의 숙명을 이 몸에 지니고
방종이 아닌 자유를 사랑하노라
봄을 품은 씨앗 하나 허영을 등지고
풍설에 버티며 땅에 내린다
깊숙히 뿌리 박고 고혼의 열매 맺어
산벼랑 광야에서 새 생명 키우리라
오늘도 무지 벅차다.
나의 딸 오염희는 현재 한국에서 산모건강관리사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보람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나는 책속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했기에” 훌륭한 아들로, 훌륭한 아버지로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된 사람’이 되려는 노력으로 사회와 자식들에게 부끄럽게는 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자신한다.
/오기활
                                  길림신문  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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