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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6책 대통령 6칙 인민령수 6품
2016년 11월 22일 09시 11분  조회:4938  추천:0  작성자: 오기활
“임금이 자책하면 하늘이 용서한다.”는 고사가 있다.
 
중국 고대 은나라 성탕왕이 7년째 가뭄으로 상림에서 기도하기를 “정치를 하면서 절약을 잊지 않았는가, 백성들이 직업을 잃지 않았는가, 궁실은 엄숙한가, 녀자들의 청이 너무 많지 않았는가, 뢰물이 만행하지 않았는가, 참소(讒訴)하는 이들이 많지 않는가”라는 육책(6責)으로 자신의 과오를 자책하였고 한다.
 
말하자면 7년이나 되는 가뭄은 다름이 아닌 임금의 부덕으로 하늘에 그 죄를 고하며 근신하려는 뜻을 밝힘으로써 백성의 원망을 풀고자 시도를 하였다는것이다. 결과로 임금의 자책이 하늘의 용서를 받아 그 제사 이후 비가 전국을 적셔 천리가 풍족해졌단다.
 
그 후부터 동양의 제왕들은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면 그것을 곧 하늘의 진노로 생각하고 자신의 부덕을 자책하군 했단다. 리조500년 력사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불린 세종대왕마저 궁궐을 영선(營繕)할 때 채석하는 군사 한명이 압사했다는 보고를 듣고 자기를 크게 자책하였다니 말이다.
 
피터 드러커가 대통령에게 제시한 6칙(則)이다.
 
(1993년에 오스트랄리아계 미국인 작가이며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199.11.19 ㅡ 2005.11.11) 가 제시한 대통령이 지켜야 할 여섯가지 원칙)
 
1,대통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우선해야 한다. 이는 트루먼대통령(33대)이 종전후에 국내문제보다 국제문제를 우선시킨 것을 례로 하였다.
 
2,대통령은 관심과 노력을 분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는 죤슨대통령(36대)이 윁남전쟁과 국내 빈곤과의 전쟁을 함께 벌려 모두 실패한것, 루즈벨트대통령(32대)이 히틀러의 위협을 알면서도 경제문제에 전념하여 성공한 것을 례로 하였다.
 
3,대통령은 겉으로 쉽게 보인다고 만만히 보지 말라.
 
이는 클린톤대통령(42ㅡ43대)이 동성련애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면서 군내 동성련애자의 권리를 옹호한데서 군대의 전투력을 상실한 것을 례로 하였다.
 
4,태통령은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참견해선 안된다.
 
대통령이 아니 해도 좋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5,대통령은 정부 안에 친구를 둬서는 안된다.
 
피터 드러커는 이는 링컨의 교훈이라며 부언을 하였다.
 
정부 관리들은 “대통령의 친구”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고작 대통령을 위한 고자질군일 뿐이다. 그들은 대통령의 신임을 방자해 권력을 람용하기 쉽다. 대통령자리는 외로운 자리로서 대통령은 믿는 친구를 곁에 두고 싶어한다. 허나 그런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
 
6,대통령은 인기작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이는 트루먼대통령(33대)이 케네디대통령(35대)에게 한 충고란다.
 
리은교가 모두어 낸 인민령수 6품(品)이다.
 
리은교(李銀橋)는 모택동주석을 따라 다닌 시간이 제일 길고(1947년부터15년간) 모택동의 제일 마지막 호위병조장으로 자기의 저서(신격화한 모택동)에서 이렇게 밝혔다.
 
1,모택동은 생명의 위험 앞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자리를 뜨셨다.
 
호종남의 군대가 연안을 폭격할 때 모택동은 “나는 제일 마지막으로 연안을 떠나렵니다”며 기관간부들과 군중들이 모두 철거한 다음에야 제일 마지막으로 연안을 떠났다.
 
2,모택동은 모든 것을 혁명사업에 바치였다.
 
모택동은 “누구나 그를 모택동의 아들이라고 부른다오, 그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소?”라며 아들 모안영을 항미원조전선에 보내였다.
 
3,모택동은 세가지 경우에 눈물을 흘린다.
 
섬북에 계실 때 한 말씀이다.
“나란 사람은 평소에 눈물을 흘지리 않소. 단지 세가지 경우에만 눈물을 흘려 보았소. 첫째는 구차한 살림에 모대기며 흐느끼는 백성들을 보면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소. 둘째는 나의 신변에 있던 통신원을 떠나 보낼 때면 아쉬운 심정으로 눈물을 흘렸소. (리은교가 떠날 때도 리은교를 포옹하며 눈물을 흘리였다). 그리고 통신원이 희생되면 괴로워 눈물을 흘리였소.”
 
4,모택동은 백성들과 동고동락을 하셨다.
 
섬북에 계실 때 “나는 타고 다니던 말이 늙었거나 병들어 죽어도, 쓰던 만녈필이 낡아 빠져도 모두 버리기 아깝단 말이요”>라고 말씀하셨고 1957년에 “전국 인민들이 모두 정량식사를 하는데 나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겠소. 첫째로 고기를 먹지 말고 둘째로 알류를 먹지 말며 셋째로 정량을 초과하여 먹지 않겠소!”라고 말씀하시며 이를 엄격히 지켰다.
 
나라의 형편이 어렵던 나날에 여러날이나 낟알 구경을 하지 못하였고 일곱달이나 돼지고기를 한끼도 잡숫지 못하였다.
 
모택동은 널침대를 사용하셨고 기운 자리가 수두룩한 잠옷과 기운 자리가 수두룩한 수건담요를 입고 덮었으며 고급 비누와 치약을 쓰지 않았고 1963년까지 10년간이나 새옷을 한 벌도 해입지 않았다.
 
5,모택동은 돈을 만지지 않았다.
 
1962년 리은교가 모택동의 신변을 떠날 때 눈물을 닦으시며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봉투를 가리키면서 “동무가 천진에 가서 사업하면서 살림을 꾸리자면 돈이 필요 될거요. 그러니 돈을 좀 가져가오. 이 돈이 800원인데 동무에게 좀 도움이 될거요.”라며 하는 말씀에 리은교가 “난 싫습니다. 나는 돈이 딸리지 않습니다”며 거절하니 모택동은 “어서 가지오. 동무도 알지만 나는 돈을 만지는 사람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
 
모택동은 “나는 돈을 제일 시끄러워하오”라고 말씀하면서 한번도 돈을 만지지 않았단다.
 
6,모택동은 인류는 자신을 개조해야 한다고 하셨다.
 
1958년 모택동이 13릉 저수지공사장에서 의무로동에 참가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류는 자연을 개조해야 할뿐만아니라 자신도 개조해야 한다. 인간은 사리사욕에 빠져서는 안된다.”
 
“인류력사에 몇 천년동안의 사적소유제도가 있었기에 사유관념을 개변시키자면 매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어려울수록 이를 꼭 개변시키려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 공산당원들은 무엇을 하겠는가?”
 
오늘에 다시 돌아 보는 임금 6책, 대통령 6칙, 인민령수 6품이야 말로 유효기가 없는 “세가지6”으로서 오늘의 대통령, 국가수령들이 엄하게 당을 다스리고 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책, 칙, 품이라 하겠다.

길림신문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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