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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62]잊을 수 없는 할아버지의 사랑
2020년 12월 10일 16시 25분  조회:2491  추천:0  작성자: 오기활
[수기 62]잊을 수 없는 할아버지의 사랑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2-09 11:23:38 ] 클릭: [ ]
우리 할아버지는 (1892―1978) 훤칠하게 큰 키에 름름한 체격이셨는데 얼굴에는 수염까지 멋지게 드리워 제법 풍채가 름름한 분이시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일찍 할머니를 저세상에 보내고 젊은 홀아비로 어린 두 아들과 젖먹이 딸을 키웠다. 어린 것들이 새 엄마와 살기 싫다고 하여 재혼했던 할머니까지 돌려보내고 할아버지는 혼자서 자식 셋을 키우고 시집장가까지 보냈다.
 
                                                                    필자의 할아버지


하늘의 뜻이였는지 장가 보낸 두 아들집에서는 귀여운 손자손녀들이 줄줄이 태여나 고생하시던 할아버지는 세상에 부럼 없듯이 손군들을 금지옥엽으로 보듬으며 정성을 몰부었기에 손군들은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께서는 저세상에 가셨고 손군들도 70~80세를 바라보는 로인으로 되였다. 하지만 따뜻했던 할아버지의 사랑은 잊혀질 줄 모르고 손군들 가슴마다에는 할아버지의 사랑이 깊이 새겨져 애틋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우리 사촌 형제자매들은 명절 때나 집안 군일이 있어 모여 앉으면 저마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노라 자랑하며 웃고 떠들며 행복한 추억속에서 할아버지를 그려보 군 한다.
어린 시절 우리 집과 삼촌네 집은 몇 발자국도 안되는 아래웃집이였는데 두 집 손군들은 문턱에 불이 날 지경으로 들락거리며 뛰놀았다. 엄마들은 분주스럽고 구들 까래가 다 판난다고 귀찮아 했지만 할아버지는 천진하게 뛰노는 손군들이 마냥 귀엽고 대견스러워 만면에는 언제나 웃음끼가 돌았다. 때로는 어린 것들이 마구 뛰놀며 다칠가 걱정되여 개구쟁이들의 잔등을 뚝뚝 두드려 주저 앉히군 하였다. 그럴 때면 어린 것들은 할어버지 앞에 둘러앉아 히히닥닥 재롱도 피웠고 응얼응얼 응석도 많이 부렸다. 사촌동생 순금이와 나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 잔등에 쌍둥이마냥 같이 업혀 다녔다고 자랑하면 두집 막둥이들인 신숙이와 송욱이도 할아버지 잔등에 같이 업혀 다녔다고 자랑한다.
어릴 때 두집 손군들은 옷단추가 떨어 졌거나 양말에 구멍이 나면 엄마에게 청들지 않고 할아버지 앞에 내놓았기에 할아버지는 제때에 꿰매주고 살뜰히 보살펴 주었다. 사탕과자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우리는 콩이나 옥수수를 닦아서 간식으로 즐겨 먹었는데 엄마는 식량이 랑비되고 집에 먼지 난다고 해주지 않았다. 하여 우리는 엄마가 군일 집에 가거나 장마당에 가는 날이면 엄마가 문밖에 나서기 바쁘게 할아버지와 콩, 옥수수를 볶아 달라고 졸라대며 응석부렸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부엌에 내려가 불을 지펴놓고 가마에 넣은 콩, 옥수수를 솔비로 슬슬 저었다. 가마에서 콩이랑, 옥수수랑 탁탁 튀며 구수한 냄새를 풍길 때면 우리는 한없이 즐겁고 행복했다. 이 세상에서 우리 할아버지가 제일 좋다고 짝짜꿍을 쳤고 할아버지께서 큼직한 바가지에 떠주는 볶은 콩과 옥수수를 꿀맛으로 실컷 주어 먹고는 호주머니에 불룩이 넣고 동네돌이 하며 으시대기도 했다.
어릴 때 우리는 할아버지 밥상에서 밥 먹겠다고 서로 투정질도 많이 했다. 어머니는 맛난 음식과 색다른 음식이 있으면 언제나 할아버지 밥상에 먼저 올렸는데 할아버지는 한입 맛 보시고는 일부러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손군들에게 넘겨 주었기에 우리는 볼이 메지게 먹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그래그래, 너네들이 많이 먹고 어서어서 쑥쑥 크거라”라고 하시며 즐거워하셨다.
나는 어릴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수남소학교에 다녔는데 눈보라치는 겨울 아침이면 할아버지는 나를 붙잡아 앉혀놓고 낡은 천으로 감발싸개를 하여 신을 신겨 주었고 할아버지가 만든 각반으로 발목까지 꽁꽁 감싸 주었기에 추운 줄 모르고 학교에 다녔다. 그 때 철부지였던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앉혀놓고 매무시하는 것이 귀찮고 투박스럽다고 투정부리며 울상을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나를 달래며 발목에 눈이 들어가면 온몸이 얼어들고 추워서 병이 난다고 하시며 기어코 붙잡고 매무시해 내놓았다. 지금 할머니로 된 나는 그 때 할아버지의 따뜻했던 사랑이 가슴으로 느껴지며 할아버지가 점점 더 그리워 진다. 우리는 어릴 때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좋고 제일 미더운 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서럽고 바쁜 일이 있을 때면 엄마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를 찾았고 울어도 유별나게 “아바예! 아바예!” 하면서 울었다. 그래서였던지 내가 16살 쯤 되던 어느 여름날에 도문에서 혼자 걸어서 집에 오는데 (그 때는 모두 걸어 다녔다) 길옆 산기슭에서 책을 보던 청년남자가 갑자기 같이 놀자고 하며 나의 앞을 가로 막았다. 당황했던 나는 엉겁결에 “아바예! 아바예!” 소리치며 “저 앞에서 우리 아바이가 나를 가다리는데…” 하면서 정신없이 앞을 향해 뛰였다. 그 위기일발의 시각에 마치 신화 속 이야기마냥 진짜 할아버지 한분이 멜대에 짐을 메고 나를 향해 우줄우줄 걸어오고 있었다(옛날 홀롱재라고 불렀다). 그 분이 우리 할아버지인 줄 알았던지 그 청년은 어디로 사라지고 나는 무사히 집까지 달려왔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가슴만 벌렁벌렁하며 몇날 며칠 밤잠을 설치였다. 60여년전 그 아슬아슬했던 순간에 나의 앞에 나타났던 그 ‘홀롱재’할아버지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나의 은인이였고 그 할아버지는 정녕 우리 할아버지의 뜻을 알고 나를 마중하러 온 ‘신선’할아버지였다고 믿고 싶다.
나는 고중을 다닐 때 왕청에서 기차 타고 곡수역, 도문역에 와서 몇리길을 걸어 집까지 갔다. 우리 할아버지는 겨울방학이면 곡수역에서, 여름방학이면 도문역에서 나를 마중했다.
1962년 겨울방학 때라고 기억된다.
나는 방학 날자를 미리 편지로 집에 알렸는데 예상 외로 학교에서 열흘이나 더 늦게 방학하게 되여 할아버지는 열흘 내내 곡수역에서 나를 기다렸다. 열흘 지나 끝내 나를 마중한 할아버지는 마치 잃어 버렸던 손녀를 다시 찾은듯 기뻐하시며 나를 안아 주었다. 1965년 내가 연변사범학교에 갈 때에도 할아버지는 녀자애들이 침대에서 차게 자면 랭병이 생겨 큰일 난다고 하시며 할아버지 잠자리에 깔았던 노루가죽을 나에게 내주셨다. 그 때 철없고 매정했던 나는 별란 거 다 가져가라고 한다며 짜증내며 두덜거렸다. 그러나 나의 속내를 알고 있던 할아버지는 노루가죽에 천을 씌워 곱게 다듬어서 끝내 나의 이불 짐에 넣어 주었다. 효자였던 아버지께서 차가운 웃방에서 쉬는 할아버지에게 랭기 들지 않게 깔아드렸던 노루가죽이였는데 그것을 나에게 내주시고 할아버지는 차가운 방에서 얼마나 춥게 겨울을 지냈을가?! 지금 할머니로 된 나는 생각할수록 가슴 아프고 목이 멘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는 만년에 잠자리에 오줌을 자주 흘렸고 바지춤에도 오줌이 흘러 자주 빨래하는 며느리에게 민망해하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그 때 할아버지께서 노루가죽을 나에게 내주시고 차가운 잠자리에서 주무셔서 그런 병에 걸린 것 같아 나는 너무 죄송스럽고 가슴 쓰려 눈굽이 적셔진다. 할아버지는 손군들이 귀여워 애지중지하였지만 례의범절을 지키지 않거나 함부로 말썽 부리며 싸움 질 하면 추호의 용서도 없이 불호령을 내리시며 엄벌을 주었다.
 
                                      달라자로인협회 활동에 참가할 때 기념사진을 남긴 필자(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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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인 태욱이와 영욱이는 어릴 때 마당에서 딱지치기를 하다가 싸움이 붙어 서로 밀고 닥치고 했는데 터밭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는 손에 들었던 삽을 메고 당장 찍을 듯한 기세로 달려와 그 놈들의 목덜미를 잡아끌고 삽으로 엉덩이를 두들겨 팼다. “세상에서 제 종자끼리 싸우는 놈이 어디 있다더냐!” , “제 종자끼리 싸우는 놈은 개보다 못한 놈이다.” “ 다시 이렇게 싸우면 네놈들은 집에 들어올 생각도 말아라”고 하시며 노여워 야단치셨다. 난생처음 당한 봉변에 태욱이와 영욱이는 엉엉 울면서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이와 같은 할아버지의 대바른 교육과 사랑이 있었기에 손군들은 례절을 지키며 정직한 마음가짐으로 잘 자랐다. 우리 할아버지는 어린 손군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몰부었을 뿐만 아니라 성인으로 자란 손군들에게도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을 주었다. 부지런한 할아버지는 매년 집 뜰안에 담배농사를 하였는데 겨울이면 아버지, 어머니는 담배 묶음을 이고 지고 장마당에 가서 팔아 푼돈을 만들어 할아버지에게 드렸다. 할아버지는 한푼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서는 60년대초에 대학생이였던 큰 손자에게 쏘련제 손목시계를 사줬다. 그 후 차례로 둘째 손자에게도 똑 같은 쏘련제 손목시계를 사줘서 사업하는 직장인들도 시계를 찬 사람이 별로 없던 그 시절에 할아버지 손자들은 팔목에 시계를 차고 시뚝해했다. 뿐만 아니라 1967년도에 처음 사업에 참가한 나에게까지 국방패 자전거를 사주셔서 나는 씽씽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서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이렇게 손군들을 보배마냥 쓰다듬고 아끼고 사랑하며 건실하게 성장하도록 했다. 손군들이 출세하는 모습을 지켜 보시며 평생의 락으로 삶고 살아오신 그이였다. 하기에 할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자란 우리 손군들은 저마다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력으로 사회활동에 참가했고 고향마을 동년배들중에서도 우리 형제들은 비교적 건강하고 장수하는 편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할아버지를 마음껏 자랑하고 싶다. 우리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우리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분이라고. 하늘나라에 계시는 우리 할아버지는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계신다.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할머니를 만나 못다한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세요! /

최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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