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재복은 연길 려인숙 걸상에 앉아 황혼빛에 물든 창밖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어두운 황혼빛속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얼굴만 짓궃게 얼른거렸다.
아버지와 얼굴을 맞대일 일은 진짜로 괴롭고 무서운 일이다.그리고 만일 아버지가 모든것을 할아버지에게 이미 고해바쳤다면 나는 무슨 얼굴로 할아버지를 대할것인가? 하지만 나는 이틀동안 눌러있은 이 작은 려인숙에서 계속 살아갈수는 없다.세집아파트는 작년 가을 몽강진으로 돌아가면서 반환해버렸다.친구들을 찾아가 “피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나는 우선 몽강진으로 돌아가 적당한 챤스를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고 할아버지에게는 이제는 연길로 돌아와서 “꿈공간기획”을 계속 운영할것이라고 말해주어야 한다.그리고 연길에 돌아와 세집아파트 하나를 수소문해야 한다…
핸드폰이 울렸다.핸드폰에 떠오르는 전화번호는 아버지 핸드폰번호였다.
“예,아버지…”
“재복아,너 애비가 아니라 나다.”
“예,할아버지…”
“재복아,너 애비 말이다.쩌-어-쩌,나이를 쳐먹은 사람이 소낙비를 피할줄도 몰라 그저께 비를 푸-우-욱 맞아 고추개구리 물참봉이 되여서 들어온게 지금 집에 들어누워 있다.아마도 된감기가 온것 같다.목소리가 고추개구리 끼꿀-끼꿀이 되였고 열이 나서 이마가 솥뚜껑처럼 달아올랐다.너 애비는 한국류학 수속에 관한 일을 하고 있을 너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된감기로 죽일수는 없지! 내가 지금 너 애비 모르게 집 바깥에서 너에게 전화를 하는거다.재복아,한국류학을 수속하는 일은 잠간 제쳐놓고 집에 돌아와서 너 애비를 살려주어야 하겠다…”
비는 잠간 멎었지만 날씨가 크게 흐려져 있었고 황혼무렵이였으므로 몽강진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쳐다보는 고추개구리산 모습이 전혀 쳐다보이지 않았다.재복은 달리는 뻐스내에서 며칠전에 있었던 일을 머리에 떠올렸다.
아버지는 며칠동안 도망가버린 고추개구리 양식장 고추채구리들이 아까워서 밤낮으로 얼굴을 크게 찌프리고 있었다.그는 웬간한 일에도 재복에게 짜증만 내였다.
그날밤에도 바깥에서는 고추개구리 울음소리 끼꿀끼굴 대합창음이 요란스러웠다.재복은 정주간 온돌우에 화구상자를 털어놓았다.그리고는 접이식 삼각대를 벌려놓고 그 림틀우에 캔버스를 고정시켰다.
고추개구리산전설을 그림에 옮겨볼수가 없을가? 가능하다면 “고추개구리문자비석” 도 고추개구리산전설에 병행시켜야 한다.근년에 내가 겪어온 일들과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세대들이 겪어온 일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고추개구리산전설은 재미있다기보다도 너무나도 무거운 이야기임은 틀림없다.그리고 고추개구리가 탈변을 원하듯이 몽강진 사람들과 나는 탈변의 몸부림을 거듭하여 왔지만 아직도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다.그 원인은 무엇일가? 누구도 말해내지를 못하는 그 원인! 그 원인이야말로 “고추개구리문자비석” 부각체상형문자에 기록된 내용과 마찬가지로 신비스럽고도 몽롱한것 이다.
최진장은 “그림그리기란 사람이 착잡한 현실을 떠나 리상세계로의 행진을 진행하는 일이라고 볼수가 있지않을가?”고 말하였다.비록 그것은 쉽게 이루어지는것이 아니지 만 나는 오늘밤따라 고추개구리산전설과 “고추개구리문자비석”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진다!
만일 고추개구리산 바위돌 고추개구리를 마주하고 있는 “고추개구리문자비석”에서 기여나오는 여러가지 형태들의 부각체 고추개구리들과 올챙이 고추개구리들의 표정을 희노애락적으로 그려내고 놈들의 몸뚱이 절반은 “고추개구리문자비석”에 잠겨져 있고 몸뚱이 절반은 이미 “고추개구리문자비석”을 뛰쳐나 온것으로 그려낸다면 괜찮은 그림으로 될지도 모른다.
만일 그림의 바탕을 고추개구리 커다란 퉁방울눈 이미지로 한다면 특이한 구도가 잡힐수도 있다.그런데 그림의 제목은 무어라고 달아줄가?…
고추개구리 양식장을 지키러 나갈 준비를 하던 아버지가 얼굴을 찌프리고 곁으로 다가왔다.
“연길로 올라가서 류학수속을 수소문해본다는 놈이 또 무슨 놈의 고추개구리 그림이냐?”
“글쎄요,나는 래일 연길로 가볼가 하는데요.”
할아버지도 한마디 끼여들었다.
“래일 연길로 가보련다구? 응-,그러면 좋지! 그런데 천기예보에서는 래일 장마비가 소낙비로 변해질거라구 하던데!”
재복은 사실 류학은 아직 생각이 없었다.그런데 집내 분위기가 깨여져 있고 머리에는 줄곧 ‘어야디야’를 얻어듣고 고추개구리꼴망신 개꼴망신을 당하던 일만 떠오르면서 갑자기 연길에 가서 김선옥에게 하소연 비슷한것이라도 털어내보고 싶었다.그리고 그가 아버지와 통화한 내용도 꼭 알아내고 싶었던것이였다.
이튿날.연길로 가는 뻐스에 오르자 재복은 김선옥의 핸드폰 번호를 여러번 눌러보았다.그런데 김선옥은 이미 핸드폰번호까지 바꾸어버렸는지 새핸드폰에서는 “고객이 거신 전화는 사용하지 않는 전화번호입니다.”만 흘러나왔다.
김선옥이 살고있는 아파트아래에 이르자 하늘에서는 갑자기 꽈르릉-꽈르릉 천둥소리가 길게 울려터졌다.멀리 모아산쪽 검은 하늘에 시퍼런 번개불들이 번뜩거리는것이 바라보였다.창대같은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재복은 아파트단지내 주차장을 가로질러 아파트 현관으로 뛰여들어갔다.
김선옥은 어디로 일보러 나간 모양이였다.초인종을 몇번이나 눌러주었지만 아파트 내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재복은 김선옥의 아파트문 어구를 서성거리면서 “장백산” 몇대를 태워버렸다.한시간가량 지나가자 소낙비가 멎어버리것 같았다.재복은 아파트를 내려왔다.현관문을 나서자 주자창쪽에 빨간 “혼다” 표 CR-V퍼스트카가 들어서는것이 보였다.김선옥의 자가용이였다.
“아니,어떻게?”
차를 내리던 김선옥은 재복이가 차문어구에 서있는것을 발견하고 반가움과 놀라움이 섞인듯한 한마디를 토해내였다.그는 오늘도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습관대로 입가에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소를 알릴락말락 띄워올렸다.재복은 화장기가 사라지니깐 김선옥의 전보다도 겉늙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가 보고싶어서,그런데 핸드폰번호는 어째서…”
재복은 자기도 모르게 김선옥은 허리를 꾹 끌어안았다.김선옥은 거절하듯이 약각 몸부림하다가 갑자기 재복의 목을 끌어안고 키꺽다리에게 동동 매달렸다.재복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김선옥의 입술에 갖다대였다.
“누나가 보고싶어다고요! 진짜로 보고싶었나요? 하지만…”
“젠장 씨불랑,이게 무슨 놈의 세월이냐? 고추개구리 지랄병을 하다가 천둥맞을 놈들!”
갑자기 뒤에서 걸직한 욕소리가 한마디 들려왔다.분명 아버지 목소리였다.재복은 흠칫 놀랐고 욕소리가 전해오는 켠을 잠간 바라보던 김선옥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재복의 목을 풀어주었다.재복은 머리를 돌리고 김선옥의 뒤허리를 쓰다듬던 오른손 손등으로 이마우에 질벅한 땀방울들을 훔쳐대였다.그의 눈에는 주차장 곁 아파트 모퉁이를 재빠르게 빠져나가는 아버지 뒤모습이 안겨왔다.
아버지가 연길까지,여기까지 나를 미행하여 따라오다니?
“아버지!”
재복은 아버지를 쫓아갔다.수십메터를 쫓아가자 아파트단지를 뛰쳐난간 아버지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버지,어째서 연길까지? 여기까지? 소낙비를 맞아서 물참봉이 되였는데 감기라도 걸리면…”
“젠장,무슨 고추개구리 똥같은 감기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말어! 굶어죽은 고추개구리를 잡아먹은 잡귀신한테 홀리우지 말라고 몇번을 부탁했느냐? 그런데도 사람 엉뎅이가 고추개구리 엉뎅이로 되구 그 엉뎅이에 털이 나버릴 일을 저지르다니! 고추개구리 지랄병을 하다니! 망할놈자식! 망할놈자식! 어-아-,망 할놈자식!”
아버지가 “망할놈자식”을 련거퍼 소리지르것을 보니 그는 아마도 아들이 나이 많은 녀자와 서로 껴안는것을 죄다 지켜본 모양이였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구? 잘나고 잘난 네가 잘못한게 있느냐? 난 이제부턴 네가 사놓은 고추개구리 똥같은 병술은 한방울도 안먹어! 아-야- 아이구,내 고추개구리 팔자라구야!”
아버지는 히스테리 부르짖음을 울부짖다가 끝내는 아들의 손에 이끌려서 자리를 일 어섰다.크게 휘우뚱거리던 그는 갑자기 오른손 주먹을 쳐들어 아들의 얼굴을 올리밖았다.재복은 코구멍으로부터 뜨겁고 찐득찐득한 코피가 줄줄 흘러나옴을 느꼈다.
“젠장,씨불랑,너는 이젠 집으로 돌아오지도 말어! 아-야- 아이구,저 고추개구리 쌍년도 그렇지,하필이면 내 아들을 홀려내!”
아버지는 또다시 거리바닥에 주저앉았다.그런데 거의 발버둥까지 치려는듯 하던 그는 자기를 이끌어서 세워주려는 재복의 손을 크게 팽개쳐버렸다.그리고는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길거리를 지나가던 몇사람이 그들을 지켜보면서 쑥덕거렸다.
“부자간 싸움같은데! 말릴 필요가 없지!”
아버지는 비속에서 떠나가버리고 재복은 아버지 뒤모습을 길게 지켜보다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돌아왔다.김선옥은 이미 아파트로 올라갔는지 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재복은 김선옥의 아파트로 올라가서 아파트 초인종을 눌러대였다.그런데 인기척이 약간 전해지는듯하던 아파트내 김선옥은 아파트문을 열어주지 않았다.재복은 나중에는 아파트문을 쾅쾅 두드려대다가 몸에서 흘러내린 비물이 질벅해진 발아래를 길게만 내려다보았다.
아파트내 김선옥은 끝까지 아파트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아무말도 해주지 않았다…
뻐스가 몽강진에 도착하였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집에 들어서자 할아버지는 “사자머리”를 푹 떨어뜨린 손자에게 한국류학과 유관된 일만 길게 물어보았다.다행이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듯 하였다. 재복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고는 할아버지에게 류학수속은 번거러운것이므로 천천히 밞아야 할것 같다고 몇마디 얼버무려 말해주었다.
정주간에 이불을 뒤집고 누워있는 아버지는 크게 쿨룩거리고 있었다.그는 아들이 곁으로 다가와 앉아서 자기의 뜨거운 이마를 짚어보려고 하자 그만 얼굴을 돌려버렸다.그러다가 두눈을 꾹 감아버렸다.그의 꾹 감아버린 두눈에서는 두줄기의 눈물이 주르 르 흘러내렸다.
재복은 이틀새에 십여년이나 겉늙어버린듯한 아버지의 피색을 잃어버린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그만 한바탕 크게 울고 싶어졌다.그러나 할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소리내여 울어댈수는 없었다.두손바닥을 마구 마주비벼대는 그의 두눈에서도 두줄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몽강진병원에 입원하자는 아들의 건의에 도리머리를 하였지만 할아버지와 재복이가 눈물을 흘려대자 왕진의사를 불러오는 일은 반대하지 못하였다.점적주사를 맞자 그는 얼굴에는 피색이 많이 돌아왔고 저녁식사 때에는 삶은 계란 몇개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그런데 그는 아들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생강차 한사발을 머리 맡에 놓아주자 갑자기 이부자리를 걷어차면서 일어났다.
“젠장,씨불랑 망할놈 자식! 나는 네가 끓인것은 아무것도 안먹을테다! 이제부턴 네가 사주는 병술도 안먹을테다! 너는 하루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려! 연길에 가서 살든 한국에 류학가든 프랑스류학을 가든 화구상자를 둘러메고 나의 눈앞에서 영영 사라져버려!”
아들이 너무나도 갑작스레 광기를 부리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쩌-어-쩌”만 몇마디 내뱉으며 아들을 꾸짖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손으로 베개머리에 놓인 뜨거운 생강차가 담긴 사발을 콱 밀어버렸다.사발이 온돌우를 나뒹굴고 누우런 생강차가 온돌과 이부자리를 흥건하게 적셨다.
재복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렸다.그는 덤덤하게 앉아있다가 화구상자와 옷가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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