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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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김학철정신에 대해 약간 댓글:  조회:1740  추천:0  2015-03-12
    김학철선생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많은 동네에서 꽤나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황이라는 느낌이다.     김학철선생의 생애와 문학작품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것들은 너무나 거창하고 너 무나 정의적이고 너무나 도덕적이고 아름다운것임은 의심할바가 없다.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들에서 또는 기념행사들에서 도대체 무엇을 건져내여야 할가? 짧은 생각이지만 우리가 건져내야 할것은 아웅다웅을 벌릴 필요도 없이 종극적으로는 김학철정신이라고 생각한다.번듯한 행사보다도 거의 아첨스러운 언행보다도 김학철정신 에 대한 똑바른 리해와 계승이야말로 김학철정신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아닐가! 김학철 선생에 대한 진정한 기념이 아닐가!     김학철정신이란 무엇일가? 몇권으로 되는 책으로 집필될수도 있겠지만 쉽게 생각해 보면 김학철정신에 있어서 그 기둥은 우선은 독립적 인격이 받침된 독립적 사유와 독립적 판단 정신이다.누구가 가르쳐주었던 스스로 깨닫었든 무슨 주의의 영향을 받았든,김학철선생남은 모든 인간사를 대함에 있어서 시종일관하게 독립적 사유와 독립적 판단을 집요하게 지키셨다. 이 세상에 어떤 사조가 류행되든 누구의 목청이 높든 무엇이 살판치든 정상적인 인간사회이면 독립적 인격이 보장되고 인간은 누구나 상대적으로 독립된 사유능력과 판단능력을 소유하게 되여 있다.만일 독립된 사유능력과 판단능력이 매 인간들에게 소유만 되고 그 실행이 순조롭지못할 경우에는 인간들은 흔히는 앵무새로나 그림자로만 살어가게 된다. 독립적 인격이 무시당하는 사회환경일수록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독립사유권과 독 립판단권의 실행을 중요시해야하고 진정 실행하여야만 소위 사회진보가 가능해진다.때문에 우리들은 독립적 인격을 존중하고 독립사유능력과 독랍판단능력을 갖추기에 수행을 거듭해야 한다.그것들에 대한 추구와 실행이 상실되면 인테리들마저도 풍문에만 물젖고 류행에만 매달리고 때로는 가엾는 시대정신에만 목매이고 만다.나중에는 남한테 당하고 남들더러 당하게 하고…     김학철정신에 있어서 두번째 기둥은 실천정신이다.김학철선생님은 독립적 사유와 독 립적 판단을 경유하여 이루어진 자신의 리념을 실천에 옮겼다.공담정신도 실험정신도 아닌 그 실천정신,추호의 주저심과 리해득실을 외면하는 그 실천정신은 일반인간으로서는 마련하기가 아주 어려운 정신이다.김학철정신의 실천정신이야말로 인간사회가 똑바르게 나아가는 진정한 힘의 하나가 아닐가?     김학철정신이 있어서 세번째 기둥은 인도주의와 정의감이다.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무진한 사랑 그리고 모든 불의를 외면하는 그 정의감,그러한 김학철정신이야말로 우리가 기념하고 따라배울 진정한 신성함이다.  
15    우리에게도 사조가 받침된 시조가 올가? 댓글:  조회:985  추천:2  2015-02-01
    중세기 동방한자문화권의 성세를 대당제국문화번영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많아졌다.그러면서 애들에게 무조건 를 공부시키고 암기시키고…     는 대당문화의 집약반영이라고 말할수도 있겠다. 그런데 를 죽게죽게 공부한 어느 애가 늘여놓는 말이     당시가 중문특세를 이용하여 이미지 시작들을 엄청난 고봉에 끌어올린것은 의심할바가 없지만 우에 곁들인 애의 말처럼 라는 평을 받을수도 있는 일이다. 적어도 현대인의 시각으로 살펴보면, 당시의 내용이 전반적으로는 어딘가는 빈약하다는 판단이 될수도 있겠다.    대당문화가 대단하기는 하였지만 필경은 사상문화령역에서 문예부흥과 같은 위대한 업적을 만들지는 못했다.때문에 당시문화는 세계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크게 오돌차지는 못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재 우리 시단에서 소위 시혁명을 형식적인 면에서만 지꿎게 추구하는 분들이 계시는듯도 하다.그들이 추구하는 시조(詩潮)는 어딘가 빈약하다.    진정한 시조는 거대한 사조가 안받침된다.다만 시형식과 관련된 시혁명이라 할지라도 거대한 사조의 동력이 없이는 거품으로 흘러버릴수가 있겠다.   시가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시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다. 시는 어디까지나 생각할줄을 아는 인간의 시다. 우리는 거대한 사조의 변두리에도 닿지못하고 있고,지어는 아직도 습관된 사유속에 갇혀 있을수도 있으므로 우리의 시조가 행보가 이처럼 힘든것이다.
14    <꿈의 발자취>>에 대한 약간의 설명 댓글:  조회:1651  추천:42  2011-05-26
장시 에 대한 나름의 설명   ---생명의 각성   김정호시인은 에 속한다. 또는 에 속한다. 그들은  神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실현할수가 없는 화려한 乌托邦리상에 속아넘어갔고 그 과정에 개체생명의 존재의미를 강간당하고 상실하는 경력을 지닌 세대이다. 중국의 시라는것은 사실 애매한 설법이다. 북도를 대표로 하는 시인들은 분명히 기존 사회정치관념에 대한 질의를 품고 생명각성의 내용을 시로 표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라는 야릇한 별명을 달아주었다.그들의 시 적 표현이 이미지(의상적)이고 아름다웠고 전투적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와 다르다는것을 빗대고 말도 아니되는 별명을 선물한것은 시대적인 제한성과 그 시대 중국문예리론가들의 비겁성과 어용상을 드러낸것이다. 장시 는 1986년 에 중문으로 발표된 작품이다. 실 은 태두시인들의 시작과도 어깨를 겨룰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발표된 시 간이 한족시인들의 시보다는 조금 늦었고 의 사회영향력이 차한 등등의 원인으로  중국시단의 주의를 환기시키지 못한것은 유감으로 남아있다.그러나 시작으 로서의 매력을 지닌 작품이 아닐수가 없다. 알아보지못한다고, 이러한 시풍을 싫어한다고 또는 시인의 사인적인 요인을 곁들 어서 의의를 부인하는것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다. 취할바가 아니 다. 는 독립적인 사유능력과 생명선택을 갈망하는 생명의식이 각성된 시이다. 비록 맨발로 또는 작은 신발을 신고 헤매여돌지만 필경은 시이다.
13    詩語적 론리가 제작하는 詩境 댓글:  조회:1663  추천:32  2010-09-10
시어적론리(逻辑)가 제작하는 시경----윤청남의 시 에서        오는 물소리로 흘러 물은 가고 부는 바람에 들은 고요하다 젖은 속눈섭 해살에 깨여나 잠들면 이 골은 안개 순한 전설의 바다 젖은 속눈섭 해살에 깨여나 잠들면 이 골은 안개 순한 전설의 바다 없는 바람에 숲은 흔들렸다 타는 산천의 진한 물감은 이제끔 덮고 숨겨왔던 속이라 흰 버선발 가지끝에 오른 달이 박우물에 철렁 한몸 부실 때     떠는 청솔잎 조는 낭끝 여백을 초저녁 외기러기 비워내고 있었다. 이상은 윤청남의 시 의 전문이다   詩語적 론리는 서술어 론리와 일반적 의미에서의 언어론리와 구별되기도 한다. 서사어 론리로는 일반적 언어론리로는 뜻의 성립이 거의 또는 완전히 불가능한 언어 수법이 詩語적 론리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관용적인 어법이나 언어습관이 만드는 어경보다 색다른 語境과 詩境을 전달하여 주기도 한다  . 오는 물소리로 흘러 물은 가고 부는 바람에 들은 고요하다 흘러가는 물소리나 흘러오는 물소리나 별다름이 없지만 시어적 론리식으로 표현되면 남다른 詩意가  물씬하다. 바람이 부니깐 들은 더욱 고요하다는것은 일상적인 청각론리와 反照되는 표현으로서 詩者의 心境의 고요함을 깨끗하게 제시하여준다 젖은 속눈섭 해살에 깨여나 잠들면 이 골은 안개 순한 전설의 바다 해살의 부드러움을 젖은 속눈섭으로 이르는것은 일반화된 언어습관을 벗어난 표현이고 깨여났는데도 잠들었다(모든 주의력이 주위 환경에만 머물렀다는) 역시 일반화된 언어습관을 벗어난 표현이다. 그리고 골에 끼인 안개에 는 인격을 부여함도 조금은 일반화된 언어습관을 벗어난 표현이다. 없는 바람에 숲은 흔들렸다 타는 산천의 진한 물감은 이제끔 덮고 숨겨왔던 속이라 바람이 없는데 숲이 흔들렸다는 力源과 受力體의 내재적인 관계론리를 분리시키는 서술표현이지만 숲의 색상의 변화를 공간이동으로( 설레이는 움직임) 표현하였으므로 색다른 어경과 시경을 제시하여 준다. 흰 버선발 가지끝에 오른 달이 박우물에 철렁 한몸 부실 때     흰 버선발 가지끝이라는 시어는 나무가지의 모양새(이름못할 깨끗한 모습?)와 색상(달빛에 쪼인 흰색)을 집합하여 표현한 시어로서 모양새와 색상이 一體로 집합된 묘사형 표현이다. 모양새와 색상을 복합시켜 一言으로 묘사함은 역시 일상적 인 조목식 언어묘사와 다른 기법이다. 떠는 청솔잎 조는 낭끝 여백을 초저녁 외기러기 비워내고 있었다. 청솔 한그루가 조으는 낭떠러지가 떠인 하늘에서 초저녁 기러기 한마리가 날아들면서 그 餘白을 메우고 있음을 여백을 비워내고 있다는것도 역시 사실론리와 정반대로 모순되는 시어표현이다.  시 은 詩者심경과 가을풍경이 색다름 수법으로 融합되여 시의와 시경이 가 넘치는 좋은 시로서 한폭의 書意식 중국화를 쳐다보는듯도 하다.  
12    윤청남 시인의 시 <<좋은 날>>에 대한 나름의 시평 댓글:  조회:1664  추천:27  2010-01-23
  좋은 날 산이며 호수며 한없이 다녔다 그대 고운 눈빛 항상 좋더라 혼자가 혼자 아닌만큼 외롭지는 않지만 갈밭머리에 바람이 자면 또다시 달은 떴다 더듬는 봉사의 담백한 느낌으로 걸었던 숲 강뚝 넘어 돌아오는 길은 또 한번 외로웠다.   인간은 고독하지 않을수가 없다.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는 시인은 고독하지 않을수가 없다. 를 수많은 철학가들과 신학가들이 풀이못한 天問적인 라고 한다면 많은 凡人들도 에 생각이 미치면 인간의 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의 유한된 생명과 무한된 객관시간과의 차이성이며 인간의 유한된 인식용량과 객관세계 및 주관세계의 무한용량이 모순되는 결과이다. 인간은 세속적인 방법으로  을 떨쳐버릴 때가 있다. 가 바로 인간이 세속적인 방법으로 을 떨쳐버리는 순간이고 장면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세속적인 방법은 인간들더러 을 순간적으로 떨쳐버리게 할수는 있겠지만 종극에는 무효로 되여있다. 라는 객관환경의 변화와 자극은 인간들더러 또다시 >을 지니게 하며 때로는 >는 세속방법보다는 조금은 형이상학적인 이라는 방법과 수단으로 을 떨쳐버리려는 노력을 실행하게 된다. 윤청남 시인에게 있어서는 이라는 조금은 형이상학적인 방법과 수단이 종극에는 무효로 되여버린다. 그러면서 라는 시어로서 을 시미로 표현하고 기록하였다.     一日   一日 登临了一座山峰  流连了一湾湖水 温情脉脉的你之目光 使我拥有了 与孤身之时截然不同的隐悦   风影潜入静静的苇丛 一轮孤月跃升于天幕 我像一位心存平静的盲人 碎步穿过了幽暗的林间   走在银色月光下的河堤上 我却未能抖去了袭来的孤寂之风  
11    윤청남시인의 시작에서 드러나는 댓글:  조회:2314  추천:42  2010-01-18
윤청남 시인의 詩作에서 드러나는 생명의식 또는 종교의식 --와 를 들어        순수개념이 아닌 宽泛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생명의식과 종교의식은 거의 구별이 없다. 인간의 자아생명에 대한 의식활동들은 종교의식으로도 많이 집중표현되여 왔다. 과거에 종교라는 말만 나오면 미신이라고 뚜드려잡았지만 사실 생명철학과 신학은 同源同根성을 지니고 있으며 시학적인 미학적인 시각으로만 출발한다면 많은 시작들에 드러나는 생명의식이 종교의식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는 종교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수많은 서양시인들의 유명작품들이 그러하다 . 영국시인 앨리트의 이든지 인도시인 타고르의 이든지 앨리트에 의하여 당대의 제일 위대한 시인이라고 불리운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작들에는 생명의식이 종교의식으로 분출되여있다. 韓文시작중에서는 서정주시인과 윤동주시인의 부분적인 시작들이 생명의식을 종교의식 방법으로 다룬 대표적인 시작들이 아닐가고 생각된다.그리고 백석시인의 시작들에도 다소는 무가내적인 숙명적인 종교의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왔다. 중국조선족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왔다. 그러면서 윤청남시인의 시작들에 생명의식이 종교의식으로 집중표출되고 있다고 나름의 생각을 하여본다. 윤청남시인이 어느 종교도 신앙하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일상이 그의 시작에 내재하는 생명의식이 종교의식으로 표출되는것과는 무관하다. 유물론자라고 하여서 의식의 밑바닥에 종교의식적인 경향성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유명한 과학자들도 유명한 시인들도 그러하고 일개 범부들도 마찬가지로서 인간의 숙명이기도 한 생명체험중에 존재하는 종교의식은 문학작품의 심층적인 원인의 하나이다.     윤청남시인의 시집 뒤에 씌여진 시들을 두루 읽어보면 그의 시작들에 전보다도 더욱 유표하게 생명의식이 종교의식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대표작품으로 와 를 좋은 시라고 말하고싶다.   개 화 돌아 못갈 길 걸어와놓고 그렇게 이쁠수 더는 없었다 나를 떠난 모든 꽃들이 그렇게 갔다 자라서 떠난 들꽃같은 꽃 껍질속을 비집고 나온 그대에게 더는 갈 길 없었던가 꽃은 나무밖에 흘러나온 나무의 눈물 아직 봄은 모르리   花开   命里注定不会有一归程 可其影缘何如此地清然 每一朵离我而去的真情 步步播放着无言之永恒 或许实意不过是草木泪 渗出历经风霜的生命时 未曾心存过漫漫之归程   春光施舍给人间是明媚 可她未曾念及过萧瑟意     락 화 언덕 넘는 무거운 그 걸음 젖어 말갛게 소리내여 울어라 살아 뿌리는 죽는 날까지 한자리를 맴돌고 돌아 못올 길 자라서 가는 길 바람은 가다가 돌아서 울어라.   落花   遥远行 一落如万里 伤别离 一默如青玉 在世间 宿命一影地 在彼岸 阔步数天宇   我不知 鹤唳之风 回眸何方     
10    조기천의 시 그리고 부동한 문학주장에 대한 생각 댓글:  조회:1618  추천:31  2010-01-14
      연길행에서 만난 동창생 하나가 조기천의 시 이던지를 왕왕 암송하여 주었다. 그 장소에서 나는 조금은 까맣게 잊어버린 조기천시인의 시를 생각해보고싶었다.       고중을 다닐 때에는 조기천의 시를 조선문으로 된 시의 최상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이 개인적인 편애였다면 도한 사회문화분위기가 만들어준 결과였으리라. 그래서 뒤에도 조기천의 시집도 마련하고 북경류리장에서 일본어로 된 시를 중국어로 번역한 을 한권 구입하고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나니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조기천과 조기천의 시를 까마아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에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는 그럴사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현재 우리의 마음에 과거의 일원정치에 대한 부정심들이 우뚝 솟아있다고 한다면 조기천시인의 시작들 배후에 다소는 작간하여온 사회정치공리성 때문에 그의 시작들을 전혀 무시할수는 있겠다. 그러나 조기천의 시작들에 내재하는 아름다움들에 대하여 아주 내버린다는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조기천 시작들에 피여난 호방미와 격정미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불공평으로도 되겠다.       세상에는 부동한 문학주장들이 우거져있다. 그러나 매 하나의 문학주장마다가 사회적인 문학적인 개인적인 배경이 있다. 때문에 어떠한 문학주장을 해독하든지 그러한 문학주장뒤에 숨겨진 요인들을 읽어낼줄을 아는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구미와는 다른 문학주장을 접하였을 때에는 한마디 노! 보다도 리지적인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물론 부동한 문학주장을 펴는 사람도 펴내보이는 문학주장을 보다 , 말하자면 명확하고 남들이 알아듣기 쉽게 표현하는것도 중요한 일이다.      고금중외에 있었던 문학주장들을 많고도 많다. 그러나 그 문학주장들을 분류해본다면 대부분은 문학의 내용, 문학의 방법 그리고 문학내용과 문학방법의 관계에 대한것들이다. 1 문학의 내용, 문학의 내용면에 있어서는 조금 과거에는 사회정치공리성의 영향을 엄청 받아왔다. 그러나 어떠한 가치관과 사조의 영향을 받아왔던지 문학의 내용은 진실성이 최상의 규준이라고 생각된다. 인간과 인간사회가 아름답던지 추악하던지를 불문하고 문학의 내용이 진실하지못하다면 문학작품은 생명성이 없다. 2 문학의 방법, 부동한 문학방법은 주로는 심미적인 취향이 가져오는 결과이다. 누구는 나무를 즐기고 누구는 꽃을 즐기듯이 부동한 시대에 부동한 문학인들은 자기의 심미취향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꽃을 즐기는 작자가 나무를 즐기는 작자를 삿대질하거나 진달래를 즐기는 작자가 국화를 즐기는 작자를 삿대질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3 문학내용과 문학방법의 관계면에서는 어느 문학인도 그것을 아주 조화롭게 균형되게 처리한다는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그렇게 요구할수는 있지만 필경은 무한대의 접근에 불과하다. 문학내용과 문학방법의 천평이 기울이지거나 흔들리는것은 정상적인 일로서 그것으로만 문학인과 문학작품을 평한다는것은 난쟁이 문학평론가들의 일이다.  
9    박춘월 시 <록>에 대한 나름의 해석 댓글:  조회:1759  추천:35  2009-06-23
박춘월 시 에 대한 나름의 해석   록 ---박춘월    태초 에덴의 잎사귀가 짜낸 도포    몇천년 걸어오며 나붓긴다    그 펄럭임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강가에서 호수같은 날개옷 주어입고    도포속으로 들어간다    현관에 놓인 풀꽃으로 엮은 신 신는다    도포의 서랍에는 새소리 많아    몇알 꺼내 호주머니에 넣고    도포 뒤울안 시원한 그늘 속    무더기로 쌓인 벌레울음 파헤치면    웬 오솔길 입구에 서게 된다    순간    오솔길 깊이 빠져들어 갈 때가 있다    에덴동산에 들어갈 때가 있다    詩는 誤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독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에 대한 나름의 평을 시도해본다.   태초 에덴의 잎사귀가 짜낸 도포 몇천년 걸어오며 나붓긴다 그 펄럭임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의 기록으로부터 보면 에덴동산은 열대지역의 오리브나무가 자라는 온화한 지역으로 추정되며 아담과 이브는 추위를 막기 위한  몸 가림은 전혀 없었다. (혹은 태초에 아담과 이브의 몸에 방한용 身毛가 아 주 무성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헌데 그들은 나중에 뱀의 유혹으로 善惡 果를 따먹고 눈을 뜨면서 부끄러움을 타고 올리브 나무잎으로 몸의 부끄 러운 동네를 가리우게 된다.  인류의 인문문명(윤리도덕 종교 그리고 가정 과 사회제도 등)의 발생과 발전은 물질생산과정과 직접적인 연관성 그리고 의존성을 지니고 있지만 또 상대적인 독립적인 성장과정을 보이여 왔다. 또 나날이 양상되는 물질문명과 背道되기도 하면서 인간의 자연속성이 살 해되는 과정을 이루기도 하였다. 시인은  이 련에서 바로 올리브 나무잎으로 부터 연역되는 도포와 도포에서 연역되는인류의 인문문명 상생과 발전과정 을 詩적으로 敍時적으로 표현하였다. 올리브 나무잎이 도포로 변하고 그 도 포가 수천년 나붓기여 인문문명의 하천으로 바다로 됨은 아주 형상적인 간략 적인 시적표현이고 시적판단이다.   강가에서 호수같은 날개옷 주어입고 도포속으로 들어간다     인문문명이 多元化적이면서도 交接적인 크고도 두터운 그물상태을 이룬 오늘날에 있어서 그 누구도 인문문명의 절대적인 지배하에 생존과 생존보람 을 이룬다. 하지만 소위 자연의 靈物인 인간은 인문문명에 대한 반성과 사색 을 종래로 멈춘적이 없다. 시인은 바로 부처님과 독일철학자 칸트를 대표자로 하는 수많은 인문문명에 대한  회고자 또는 사색자의 한사람으로서 인문의 강 가에서 을 주어입고 라는 인문문명을 자맥질한다. 이 련은 바로 시간중의 逆行이며 자연속성에로의 회귀이며 강가로부터 도포 에로의 상징물의 逆배렬이다. 이 련에서 리해를 진행하기 어려운것은 이다. 언어습관으로 보면 호수는 필경 수액의 집합체로서 무겁 다. 하지만 그 무거운 호수로 가벼운 날개옷을 지어입으려면 누구든지 웬간한 용기와 재간이 없이는 성공하기 힘든 일이다.     현관에 놓인 풀꽃으로 엮은 신 신는다 도포의 서랍에는 새소리 많아 몇알 꺼내 호주머니에 넣고 도포 뒤울안 시원한 그늘 속 무더기로 쌓인 벌레울음 파헤치면 웬 오솔길 입구에 서게 된다 여기에서 시인은 시간과 인문문명을 역행하는 여행에서 끝내 는 첫 목적지에 이르러 일련의 행위를 감행한다. 첫 목적지에서 원초의 때묻지않은 풀꽃으로 신발을 엮어서 신고( 話者의 새로운 여행을 암시한다) 또 저장된 새소리를 몇알 꺼내 호주머니에 넣 고(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는 시어의 표현으로서 새소리를 아직 부 화되지못한 새알처럼 다투면서 인문문명발전과정에 포기되였거 나 저장만이 된 인문요소거나  인문성과의 부활를 희망하는 암시 이다) 뒤울안의 그늘속 벌레울음을 파헤치고 하나의 오솔길을 발 견한다 (화자가 가고싶은 또는 가야 할 길이지만 오솔길로 적혀있 음은 그 험난을 암시한다).   순간 오솔길 깊이 빠져들어 갈 때가 있다 에덴동산에 들어갈 때가 있다     이 련에서는 강가에서부터 도포속으로의 역행을 이어서 다시 도포속으로부터 에덴동산으로의 역행이 제시되고  진행된다. 하 지만 그 역행은 에 지나지 않는다. 이란 돌연적이 고 짧은 시간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그 누구나 자신이 원하든 원 하지않든 현존의 인문문명의 지배를 완전히 떨칠수없음을 암시 하는듯도 하다.        을 읽으면서 우리가 묻혀있는 인문문명이 우리들더러 인간의 천진함과 자연속성을 많이 감추게 하고 잃게 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인문문명사는 어떻게 보면 인류가 자신의 그 림자를 실체로 만들기 위하여 인류가 지닌 천성적인 그림자를 매장하는 과정으로 보여진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난스럽던지 또 그 성과가 얼마나 거대하든지 우리의 그림자는 아직 실체로 변하지못하고 있으며 우리의 꽁무니를 졸졸 추구한다. 을 읽으면서 위대한 인군은 반듯이 인문반성을 진행하 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영국시인 앨리트의 장편시 과 중국소설가 贾平凹의 소설 < 승냥이가 그립다>를 다시 생각해 본다.
8    타고르의 대표작 <정원>7-12 댓글:  조회:1807  추천:11  2009-04-25
7  그이는 날마다 오시고 돌아가신다 친구여 내 머리에 꽂은 꽃송이를 그이에게 선물하여다오 누가 보낸 꽃인가 물으시면 날마다 오시고 돌아가시는 그이에게 나의 이름을 일러주지 말어다오 그이가 나무아래 땅에 앉으시면 무성한 꽃잎으로 방석을 마련하여 다오 그이의 눈길은 우울하여 나의 마음을 괴롭히나니 그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다시 돌아가실것이다 8  그이는 어찌하여 몸소 나를 찾으실가 나젊은 나그네는 어찌하여 새벽이면 내집 문앞에 군림하실가 내가 그이의 곁을 지날적마다 나의 눈길은 그이를 우러른다 나는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아니면 침묵을 행하면 좋을지 모른다 칠월의 밤은 어둡고 무겁다 가을의 하늘은 밝고 푸르다 남풍은 봄을 태운다 그이는 오실적마다 새 노래를 부르시는구나 9          그이는 나의 곁을 지나시면서 고운 치마작을 흩날린다 내 마음속 孤島에 봄이 휘몰아치누나 순간의 실중감이 나를 휩쓴다 마치도 락화가 바람속에 무럭무럭 쏟아지듯이 그이의 탄식과 부드러운 속삭임이 나의 마음에 수북하다  10 친구여 마음에 비밀을 만들지 말어다오 나하고 무엇이든 고백할수가 있다 부드러운 웃음과 고운 음성을 지닌 젊은이의 이야기는 나는 마음으로 귀담아 든는다 밤이 깊고 정원은 고요하다 새들도 잠자고 있다 눈물속에서 속삭임속에서 그리고 수집음과 고통속에서 너의 속비밀을 이야기하라 11 –그대께서 주시면 무엇이든지 받으렵니다 --그렇구나 마음을 알만하도다,너는 너는 나의 모든것을 구걸하는 걸인이로다 - 그대께서 시든 꽃을 주셔도 받겠습니다 --꽃에 가시가 있으면 어떻게 할거냐 - 참고 견디렵니다 --그렇구나 마음 알만하도다 너는 나의 모든것을 구걸하는 걸인이로다 - 그대께서 련민의 눈길을 주신다면 죽어도 행복합니다 --만일 그것이 잔혹한 마음이라면? -그것더러 영원히 나의 마을을 찌르게 하렵니다 --그렇구나 너의 마음 알만하도다 너는 나의 모든것을 구걸하는 걸인이로다   12 사랑이 슬픔을 준다 하더라도 너의 마음을 감금하지 말어다오    눈물과 노래와 함께 바치는것이 마음이려니    ---그대의 말씀이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은 환락속에서 이슬처럼 사라지지만 슬픔이 동반하는 사랑은 영생하려니 ---그대의 말씀이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련꽃은 해빛아래 피였다가 모든것을 지우고 겨울 안개속에 영생하나니  
7    < 님의 침묵>과 님 댓글:  조회:1471  추천:20  2009-04-08
  한국에서 오신 모사장님과 이야기 나누던 중, 그 분이 우리 집 뒤산에 만해 한용운의 무덤이 있어 하는 말에 내가 크게 기쁘하든 기억이 있다.  모사장이 부자여서 정원이 있는 가옥에서 살고 있음이 조금 부러운  일인데 또 내가 좋아하는 만해스님의 묘소를 근처에 두었다니. 예 그럼 언제 한국가면 만해스님 묘소 그리고 백담사 여행을 부탁합니다. 주접이 좋게 청구한 일이 아직은 실현이 아니 되였지만 그 적부터이던가 나는 < 님의 침묵>을 중국어로 번역해보기도 하였다. 꽤나 땀을 흘리고 수개를 거듭해서 또 주제넘게도 한국문학번역원에 출간을 신청하였는데 이미 상해에서 출간되였음 하는 회신을 받았다. ㅁㅁㅁ라는 한국유학을 한 문학박사가 중국어로 번역을 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시집이름이 으로 되여있고 구매를 신청하였지만 잘 진행이 되지못하여 아직도 나의 수중에는 은 없다. 나의 번역고가 출간이 못되고 남의 번역고가 이미 출간이 되였다니 질투심이 나고 속은 불안하기도 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도대채 무엇을 하는 기구인가? 나처럼 을 찾지 않고 뚱딴지 같은 사람을 찾아서 번역을 시키다니 하는 식의 말도 내밷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목록을 검색해보면서 나는 < 님의 침묵>을 으로 번역한것은 오역이라고 생각을 한다. 만해스님의 < 님의 침묵>이란 한일합병뒤에 있게되는 수천만 한반도인의 력력한 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데, < 님의 침묵>에서 님은 분명히 조국을 이야기하는건데,  님을 정인으로 애인으로 번역을 하다니? 중국사람들도 조국을 애인으로는 정인으로는 문자표현하기를 거부하여왔는데 어찌 이라 한단 말인가? 님이란 말은 중국인을 상대해서는 힘든 말인가보다. 그리고 엄격한 의미에서는 시역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성립되는가부다.
6    남영전시인의 <백조> < 바람> 댓글:  조회:2080  추천:35  2009-04-03
백조   식구들 나란히 친지들 떼를 지어 안일을 잃은 운명의 태고연한 풍경을 높은 하늘에 펼친다   북국의 보금자리에 혹한의 빙설이 덮히면 삶의 터전을 떠나 눈물 아련히  고향을 등진다   바람은 머나먼 길이고 별빛은 끝없는 리정표이런가 번개빛 흩날리는 야밤에도 新生의 하늘을 우러른다   남국의 지평가에 해가 작열하여 瘴气가 雲集하면 환락과 희망을 남겨둔채 또 하나의 고향을 등지어 안일을 잃은 운명의 태고연한 풍경을 높은 하늘에 펼친다   반짝이는 눈물빛에는 서러움이 어려있어도 생명의 약동속에 날개를 힘차게 퍼득이며 영원을 구도하는 기연의 전설을 높은 하늘에 펼친다     바람   바람은 무성한 수림과 가없는 초원을 고운 꽃잎과 푸르른 나무잎을 포근한 안식처로 한다   바람은 별빛을 머리에 이고 기상하여 달빛에 젖어 귀가한다 바람은 날마다 산하에 노래를 불러드리고 대지의 혹한과 무더위를 가셔낸다 그래서 바람은 봄의 신록과 여름의 무성함과 가을의 풍요함을 제조하지만 자신은 언제나 비여있다   바람은 포근한 안식처를 찾지못하면 크게 울부짖어 강하를 뒤번지고 대지의 주축을 흔든다 그러다가 피곤에 몰려 제가 만든 페허에서 쪽잠을 자기도한다   바람에게 포근한 안식처를 마련하자 바람더러 우렁찬 노래를 부르게 하자 안식처를 잃은 바람은 좋은 풍경을 선물하지 않는다   바람은 지금 어디에서 류랑하고 있을가  
5    이상각시인의 시 <두루미>에 대한 나름의 시평 댓글:  조회:2191  추천:21  2009-03-26
     리상각시인의 가 최초에 시로 씌여졌는지 아니면 가사로 씌여졌는지는 잘 모르지만은 내가 흥이 날 때는 부르고싶은 노래이다. 또 아름다운 시로 느껴지는 시편이다.  에서 한  구절을 따오면서 나름의 감상을 적어본다.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 떼를 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 그 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 1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떼를 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이 부분은 거의 질박할 정도의 시어로  를 묘사형으로 구성된 서술형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서술형 그림이란 말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련환화라든가 환등으로 표현되는 그림을 서술형 그림이라 칭할수 있다면, 하늘에 날아예는 하얀 두루미들--하나 둘 또는 일거에 백사장에 내려앉는 두루미들--부리로 깃을 다듬는 두루미들 이런 순서로 두루미가 형상화되였고 그림화되였다.   2   백설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떼를 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이상 순서적인 그림화된 이 부분은 또 두루미의 動性을 靜성적으로 옮기어 적은 부분이다. 두루미의 동적인 이동과정과 행위과정을 하나하나 구분하여 그 순서대로 정적으로 다루었다. 정적으로 다루었지만 정속에는 동이 흐르고 그 와중에 동과 정이 잘도 조화된 생명감(어떤 생명도 자연적으로는 동과 정의 연합체이다)이 넘치는 부분이다. 3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 그 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부분은 옛날 중학교 어문교과서에서 말하는 소위 주제사상개괄이라 할수도 있겟지만은 나는 두루미의 내심적인 안온과 靜性을 동적(심리활동)표현으로 마무리지었다 함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문자언어의 제한성으로(조선문은 표음문자로서 중구어처럼 一字로  天機를 다루기가 힘듬도 사실이다) 蜻蜓点水식 또는 완전은페식 경지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는 표상으로 보여지는 두루미의 靜성에 내재하는 동적원동력을 잘 표현한 시구라고 생각된다. 4  시인의 원초의 의도는 잘 모르지만 , 독자로서 나는 는 조선족의 심미리상과 사회리상이 조화스럽게 기록된  시편이라 생각된다.  조선족이 먼 옛날부터 두루미를 즐김은 흰색으로 표현되는 人性의 순진성과 고요하게 표현되는 삶의 우아함을 지향함이 전통으로 되여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 이런 문화전통에는 유학의 심미리상과 사회리상이 내재한다. < 두루미>에 나타나는 흰빛의 고요한 韻과  그림으로 펼쳐지는 舞는 우리의 재래적 심미리상의 절창이며 는 자연스럽고 화목하고 조화된 사회리상의 시적재현으로 보여진다. 5  또  에는 자민족에 대한 자평과 무조건적인 무한대의 민족애 그리고 긍지감이 많이도 담기여 있다.
4    海子시인과 <바다를 마주하고 봄과 꽃을 맞이하리> 댓글:  조회:1790  추천:43  2009-03-26
海子는 查海生의 필명으로서 그는 1964년 생인 안휘성 사람이다. 1979년 어린 나이에  북경대학에 입학하였고 대학시절에 시창작을 시작했으며 1983년 대학졸업뒤 중국정법학원 철학과 조교로 임직했고 1989년 3월 산해관에서 철길에 누워 자살했다. 북도를 대표로 하는 몽롱파시인들의 국가와 민족이라는 군체의식과는 달리 해자는 인간이라는 매 개인의 운명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지녔고 개체에 대한 철학적인 명상과 추구를 진행한 終極파 시인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해자의 시작들은 간소한 필체와 평범한 文語로 그리고 인간 개체의 존엄과 행복을 노래함으로서 오늘날도 많은 독자들의 애대를 받고 있다. 해자의 경력과 시특징은 해자가 살어온 시대와 갈러놓을수가 없다. 해자의 시작은 독선적이고 지배적이던 < 개체보다도 국가와 민족>이라는 과거의 이델레오기에 대한  반성이고 부정이 아닐수가 없다. 또한 텅텅 비여있는 중국혁명식 형이상학생활론에 대한 비판이다. 때문에 1989년에 씌여진  는 현세와 속세의 행복을 최상으로 간주하는 禪의식이 엄청나게 노출되였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1989년 해자가 자살로서 실존주자의 인생에 종지부를 맺은것은 그는 여전히 현세적인 속세적인 추구와 형이상학적인 추구의 갈등속에서 시달리고 있었음을 추측하게 된다. 올해는 해자시인이 서거한지가 20년이 된다. 중국인들의 생활관이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진짜로 해자시인이 바라던 행복시대인가 질문을 해봄도 바람직한 일이다.   바다를 마주하고 봄과 꽃을 맞으리   래일부터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리라 말을 키우고 땔나무를 패고 려행을 시작하리 래일부터 쌀과 야채를 생각하리 그리고 나에게도 집 한채가 있으리라 바다를 마주하고 봄과 꽃을 맞으리   래일부터 나는  친지들에게 편지를 보내리라 내가 느끼는 행복과 번개처럼 번뜩이는 행복의 순간들을 모든 이들에게 알리리라   모든 산과 하천에게 좋은 이름을 선물하고 모든 이들의 행운을 삼가 기도하리 그대에게 행복한 가정이 있기를 그대에게 아름다운 앞날이 있기를 세속의 행복을 길이 누리길를 기도하리라 그리고 나도 바다를 마주하고 봄과 꽃을 맞으리     面朝大海,春暖花开   从明天起,做一个幸福的人   喂马,劈柴,周游世界   从明天起,关心粮食和蔬菜   我有一所房子,面朝大海,春暖花开   从明天起,和每一个亲人通信   告诉他们我的幸福   那幸福的闪电告诉我的   我将告诉每一个人   给每一条河每一座山取一个温暖的名字   陌生人,我也为你祝福   愿你有一个灿烂的前程   愿你有情人终成眷属   愿你在尘世获的幸福    我也愿面朝大海,春暖花开        
3    도스토예프스키의 誤는 무엇인가? (선역) 댓글:  조회:2058  추천:52  2008-02-28
도스토예프스키의 誤는 무엇인가? ---밀란 쿤데라의으로부터           景凯旋   남경대학 교수    1985년1월6일, 에 체코작가 밀란 쿤데라( 노벨문학상수상자,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의 이라는 글이 거재되였다. 밀란 쿤데라는 이 글에서 유럽소설에 대한 관점을 표명함과 동시에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러시아 위대한 작가 ,대표작으로는 < 백치> < 악령>)의 작품은 심미적인 가치는 있지만 내재적인 이미지가 너무나도 정감적이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반영된 인류정감이 인류의 리성가치와 진리를 초월하여 인류문명의 최상 위치를 차지하는 문학경향성에 대하여 반감을 지닌다고 표명하였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의 (1968년, 구쏘련이 체코를 무력강점한 국제정치사건) 발생한 시기에 거리에서 구쏘련점령군 군관을 만나 < 우리 쏘련 군인은 체코인을 사랑한다>는 언설을 듣던 자신의 경력을 곁들어 >고 피력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정감세계 특징을 분석하면서 서유럽의 리성문화정신은 문예부흥의 세례를 거쳐 인류리성과 사물의 상대성에 대한 긍정적인 문화이지만 러시아문화정신은 인류리성과  정감의 불평형이 이룬 문화정신으로서 그것이 구쏘련의 혁명과 동유럽에 대한 군사팽창에서 표현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는 문학을 론한 글이기는 하였지만 , 구쏘련과 미국이 주도한 냉전백열화시기여서 많은 언론의 화제를 모았고 따라서 많은 지성인들이 자신의 상응한 관점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미국에 망명한 러시아 작가 约瑟夫 布罗茨基(1940-1996,구쏘련 레닌그라드 유태인가정에서 출생, 시인, 1987년 노벨문학상수상자, 1964년 문학작품 < 사회기생충>으로 하여 5년 징역, 1972년 구쏘련으로부터 추방당하여 미국으로 이주)도  에 라는 글을 발표하여 자신의 관점을 표명하였다. 布罗茨基는  밀란 쿤데라의 관점은 력사의 필요성에서 출발한 관점이지 미학의 관점에서 출발한 관점이 아니며, 인류에게 있어서 문학은 정치와 력사를 초월하여, 완정한 인성세계를 보여주는 존재로서, 문학의 리익집단의 공리성과 이델레오기를 떠나 자아규칙을 지닌 신성존재성에 대하여 언설하였다. 그는 사회정치적표준으로 문학작품을 평하는 작법에 대하여 강렬한 반박을 거행한 동시에. 인류의 리성세계와 정감세계를 론하면서 20세기의 많은 인류폭행은 정감의 산물이 아니며 반면에 리성세계의 산물이라 하였다.
2    위대한 문학의 표준에 대하여( 選譯 역고) 댓글:  조회:1860  추천:67  2008-01-02
위대한 문학의 표준에 대하여( 選譯  역고)                  徐兆寿   위대한 문학이란 무엇인가? 중국당대문학은 무엇때문에 大師급 문학가를 배태하지 못하는가? 중국당대문학이 세계문학과의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가?  20세기 80년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술한 문제점들이 문단의 화제로 되여있다. 특히는 중국문화와 세계문화의 접목면이 커지면서 중국작가들이 해외에서 문학상을 받기도 하고 해마다 있는 노벨문학상을 둘러싸고 작가와 학자 그리고 독자들의 주요한 의론점으로 되여있다.  2005년 왕몽이 중산대학에서 강연을 하면서 기자들의 중국의 작가들은 어찌하여 위대함에는 손색이 있는가 하는 기자들의 물음에 우스개식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적기에>라는 답을 하여 탐구적인 토론도 일으켰고 같은 해에  미국의 중화계작가 하금이 에 이라는 문장을 발표하여 평론가 호원보와 소설가 소동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토론을 불러일으킨적도 있다. 贝塔斯曼와 新浪读书의 민의조사에서 韩寒、郭敬明、安妮宝贝가 苏轼、李清照、朱自清、徐志摩 의 앞자리에 배렬되여 또 한차례의 문학의 위대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2006년에 평론가 뢰달이 에 당대에 위대한 문학가가 태여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하여 분석하였고 2007년 5월에도 중국당대문학의  정신부족증이 문제점이라는 론점을 다시 제출하였다. 물론 사람마다 무엇이 위대한 문학인가에 대하여 부동한 답을 지니고있을수는 있지만 이 명제에 대한 탐구와 규칙성에 대한 연구는 불가피한 일이다. 무엇이 위대한 문학인가에 대하여 토론한다면 3가지 문제를 해명할수도 있다. 1: 당대문학을 위하여 적극적이고 진실하고 현실적인 정신자원을 제공할수가 있다. 위대성이란 일반적으로 하나의 느낌이며 사람마다의 리해가 다르다. 상대주의 조건하에서는 위대한것도 일반적인것으로 전변이 되며 소위 위대함도 허무주의 상징으로 되여있다. 허무주의 작가 왕삭이 로신에 대한 비평이 문학의 위대성에 대한 혼잡한 인식을 대변하는 실례이다. 왕몽의 위대한 문학은 표준성이 없다는 설 뒤에도 그 정신셰계의 不定상태가 작간함을 설명한다.우수한 작가들도 위대한 문학에 대하여 저마끔의 심리적인 표준을 지니고 있는 현상태에서 위대한 문학의 표준에 대하여 거론을 진행한다면 수많은 작가들에게 적극적인 현실적인 진실한 정신자원과 창작의 방향을 제공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2 위대한 문학의 표준을 거론하면 당대작가들에게 문학적인 실천리상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수도 있다. 하금의 론문에 의하면1868年에.W. Deforest는 위대한 미국장편소설이란 그 내용의 폭이 넓고 진실하고 동정심이 넘치여 감정이 있고 문화가 있는 미국사람들 누구나 받아들이는 소설이라는 통속적인 리상적인 관점을 발표하였다. 이 관점의 핵심은 좋은 소설은 누구나 받아드린다는 리상주의이다. 미국장편소설을 살펴보면 바로 상술한W. Deforest의 리상주의 흔적에 부합되는 작품이 많다. 《汤姆叔叔的小屋》、《哈克贝利-芬历险记》、《白鲸》、《大街》、《愤怒的葡萄》、《奥吉-马奇历险记》 모두가 미국소설가들의 리상주의 실천품이라 보여진다. 하금은 또 목하 중국작가들은 위대한 중국소설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며 宏大한 意识이 없으면 宏大한 作品이 태여날수 없는 점이 바로 중국장편소설의 문제점이라 지적하였다. 哈金의 관점이 도리가 없는것은 아니다. 어떤이는 을 리상표준으로 하고 어떤이는 발자크 돌쓰또이를 리상표준으로 하고 어떤이는 카푸카를 리상표준으로 하는 현실하에서 우리 작가들이 실천적인 표준을 다시 수립하는 일도 바람직한 일이다. 3 현실적으로 문학비평의 가치적도를 다시 정리하고 규범화하는 역활도 할수 있다. 하지만 위대한 문학의 표준에 대하여 거론하는 일은 힘든 작업이다.고대에는 각 민족과 국가가 상대적인 독립체계를 이루어 문화전통도 상대적인 독립성을 보존하고 있었기에 위대한 문학이란 무엇인가, 기정관념에 가까운 명제에 대하여 거론할 필요성이 별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목하는 여러가지 문화가 심층적인 접촉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위대한 문학에 대한 재정리의 필요성이 상승함과 함께 그 간거성을 복잡성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범식하에서 거론할것인가? 력사적으로 어떤 문화인들이 상술한 명제에 대한 연구를 하였는가? 그 탐구범위는 어떠한것인가 등도 꼭  해명하여야 할 문제들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해명해야 할 문제점들을 느끼고는 있지만 아직은 연구정리가 부족하면 이미 제공된 연구방법도 사실 많지는 않다. 그러나 문화세계화의 시대에 인류와 세계라는 시각으로부터 출발하여 위대한 문학을 거론하는 방법은 우리가 걸아갈 길이다. 철학자 雅斯贝尔斯가《大哲学家》라는 저술에서 제기한 위대한 철학가는 1 그 사상이 시대를 초월하였고 2 독창적이여야 하며 3 변증법적인 내재독립성을 지녀야한다는 관점이 문학사 편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그리하여 세계성을 지닌 문학작품들이 흔히 세계문학사에 거론되는 현실추세를 보인다. 이러한 관점하에서 중국문학을 연구하려면 1 중국고대의 위대한 문학의 특징에 대하여 연구하여야 하며2 고대 세계의 위대한 문학의 특징에 대하여 연구하여야 하며 3, 백여년간의 위대한 사실주의 문학의 특징을 연구하여야 하며(중국문학은 현당대에 사실주의가 주류이다)4 백여년간의 노벨문학상작품을 연구하여야 한다(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을 포함하였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필경은 백여년간의 인류정신의 집중표현이 아닐수가 없다.) 이상 4가지 측면으로부터 귀납정리를 하면 이하의 결론이 내려진다. 1 위대한 문학작품은 한시대를 폭이 넓게 심각하게 풍부하게 반영하면서 인류의 생존상태와 정신적인추구를 표현하면서, 심지어는 한 민족의 사시적인 작품으로 되여있다. 특히는 사실주의 위대한 작품은 본질적으로는 식 사시로도 되여있다.荷马史诗、《浮士德》、《唐·吉诃德》、《诗经》、《红楼梦》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2 위대한 문학작품은 인류의 긍정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발양하며 인류의 정의와 리상, 그리고 선량함과 관용성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1949년 福克纳가 노벨문학상시상감수에서 고 재언했고 또 류재복의 에서도 상기의 문학정신과 추구에 대하여 고 지적한것처럼 인류의 진실한 리성과 진실한 감성을 표현하고 발양한 문학작품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지목되고 있다. 3 위대한 문학작품은 전인류성과 전세계적인 지향을 보인다. 종족과 국가와 정치와 종교신앙을 초월하여 전인류적인 전세계적인 정신추구를 내보인는 작품이 나날이 주목을 받고 있다. 4 위대한 문학작품은 자아초탈의 정신적인 계시록적인 경향을 보인다. 위대한 문학작품은 독자들에게 정신세계의 교육과 개조 역활을 하며 인류에게 내재적인 힘을 가져다주어 하나의 정신적인 洗礼에 비유된다 바로 번역가 傅雷가 《约翰·克利斯朵夫》의 중문역고 서문에서 이야기한것처럼 소설《约翰·克利斯朵夫》에서 노래한것은 인류가 물질생산방면이 아니라 정신세계에서 경험한 艰险성과 심령세계를 정복한 흔적이라는 평판도 상술한 표준에 속한다. 5 위대한 문학작품은 인류에게 존재하는 종극적인 가치에 대한 물음과 비판과 해답을 엮은 작품이다.상술한 명제가 철학명제이기는 하지만 문학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해답한 문학작품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플라톤의 과 그리고 장자의 글들이 비록 전통관념에서는 순수한 문학작품이 아니지만 현대인의 시각으로 다시 보면 위대한 문학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괴테의 《少年维特的烦恼》과 《浮士德》 그리고 베토벤을 원형으로 하는 로만 로란의《约翰·克利斯朵夫》도 인간의 종극적인 가치에 대하여 표현한 위대한 문학작품으로서 도 중국의 유불도 가치관에 대한 반성으로서 이런 부류에 속한다. 현대주의 작가들인 카프카의 加缪의 《局外人》 艾略特의《荒原》도 인류존재가치에 대한 반성이고 표현이다. 6 위대한 문학작품은 人性에 대한 새로운 탐구이고 발견이다. 7 위대한 문학작품은 새로운 文本형식을 도입한다. 새로운 문본형식이란 형식의 발명창조에만 그치는것이 아니라 문학가가 인류생활의 존재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고 읽는 방식이고 표현방식이다. 《约翰·克利斯朵夫》의 复调式의 서술법이라든가 加西亚·马尔克斯의 마환주의 서술법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처럼 위대한 문학작품은 독특한 예술표현형식을 내재한다.      이상 위대한 문학이 지닌 특성들에 대한 라렬을 끝내면서 위대한 문학이 지닌 다른 특징들도 많이 존재하리라 생각된다.      또 위대한 문학가와 위대한 문학작품과의 관계도 조금 거론하고싶다. 위대한 문학가는 종교인물이라든가 철학가와는 달리 어느 정도 욕망적이고 인성적이고 일상적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위대한 심령의 소유자로서 주객관원인으로 하여 그 신성함과 거대함이 속세화되여 있을 뿐이다.      
1    윤동주시의 마력 댓글:  조회:1869  추천:98  2007-04-10
80년대 든가 든가? 문예잡지에서 처음으로 윤동주시인의 시를 읽어보았다. 혁명적 랑만주의와  비판적 사실주의라는 탈을 쓴 , 거짓말이 다분한 시들이 많이 득세하던 때라 야, 세상에 이렇게 쓴 시도 있구나 하고 감동했었고 오늘날에 이르끼가지 윤동주시인의 시를 엄청나게 사랑한다.        시를 좀 알고 우리글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윤동주시인의 시를 사랑하지 않을수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윤동주시인이 조선족 시인인가 한반도 시인인가 또는 저항시인인가 순서정시인인가 하는 의론도 있고 윤동주시인에게 이런저런 평가를 내릴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그의 시는 좋은 시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윤동주 시는 그 詩情의 진실함에 마력에 가까운 매력이 있다고 생각을 해본다..         윤동주의 시에서 표현된 시인의 종족적인 나라적인 귀속감은 한반도에 귀결되여 있음은 부인할바가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이론적인 화제로 될수도 있겠지만도 우리의 윤동주시인을 비롯한 수많은 이주민 선조들은 비록 중국이라는 이국타향에서 살았지만은 일제가 망하고 나라가 흥하면 곧 고국에 돌아가려는 소망을 크게 지니고 있었음은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가히 리해를 할수 있는 아름다운 소망이였다. 그러한 민중적인 정신적인 소망을 근본 바탕으로 망향의 설음과 망국노의 설음을 거짖이 없이  빚은것이 바로 윤동주시인의 시이다. 또 윤동주 시인은 일개 무명의 인테리로서 나라와 종족의 흥기를 소망하기는 했지만 국세가 크게 기울어졌고 개인적인 능력으로는 종족과 나라의 운명을 개변할 힘이 없음의 무가내와 발악적인 소망기도에서 자연히 발로되는 무력함과 빈약성은 소위 소자산계급의 소극적이고 자사자리하고 철저하지못한 저항이라고 비판을 받을수도 있겠지만은 나는 오히려 그러한 정서야말로 윤동주의 시에 내포된 진실함이고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한다면 막말로 무산계급의 시든지 소자산계급의 시든지 시인의 정서를 솔직하게 엮어야만 시의 첫 대문을 넘어선다는  말도 이야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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