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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을 다닐 때에는 조기천의 시를 조선문으로 된 시의 최상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이 개인적인 편애였다면 도한 사회문화분위기가 만들어준 결과였으리라. 그래서 뒤에도 조기천의 시집도 마련하고 북경류리장에서 일본어로 된 시를 중국어로 번역한 <<백두산>>을 한권 구입하고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나니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조기천과 조기천의 시를 까마아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에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는 그럴사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현재 우리의 마음에 과거의 일원정치에 대한 부정심들이 우뚝 솟아있다고 한다면 조기천시인의 시작들 배후에 다소는 작간하여온 사회정치공리성 때문에 그의 시작들을 전혀 무시할수는 있겠다. 그러나 조기천의 시작들에 내재하는 아름다움들에 대하여 아주 내버린다는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조기천 시작들에 피여난 호방미와 격정미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불공평으로도 되겠다.
세상에는 부동한 문학주장들이 우거져있다. 그러나 매 하나의 문학주장마다가 사회적인 문학적인 개인적인 배경이 있다. 때문에 어떠한 문학주장을 해독하든지 그러한 문학주장뒤에 숨겨진 요인들을 읽어낼줄을 아는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구미와는 다른 문학주장을 접하였을 때에는 한마디 노! 보다도 리지적인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물론 부동한 문학주장을 펴는 사람도 펴내보이는 문학주장을 보다 <<깨끗하게>>, 말하자면 명확하고 남들이 알아듣기 쉽게 표현하는것도 중요한 일이다.
고금중외에 있었던 문학주장들을 많고도 많다. 그러나 그 문학주장들을 분류해본다면 대부분은 문학의 내용, 문학의 방법 그리고 문학내용과 문학방법의 관계에 대한것들이다.
1 문학의 내용, 문학의 내용면에 있어서는 조금 과거에는 사회정치공리성의 영향을 엄청 받아왔다. 그러나 어떠한 가치관과 사조의 영향을 받아왔던지 문학의 내용은 진실성이 최상의 규준이라고 생각된다. 인간과 인간사회가 아름답던지 추악하던지를 불문하고 문학의 내용이 진실하지못하다면 문학작품은 생명성이 없다.
2 문학의 방법, 부동한 문학방법은 주로는 심미적인 취향이 가져오는 결과이다. 누구는 나무를 즐기고 누구는 꽃을 즐기듯이 부동한 시대에 부동한 문학인들은 자기의 심미취향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꽃을 즐기는 작자가 나무를 즐기는 작자를 삿대질하거나 진달래를 즐기는 작자가 국화를 즐기는 작자를 삿대질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3 문학내용과 문학방법의 관계면에서는 어느 문학인도 그것을 아주 조화롭게 균형되게 처리한다는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그렇게 요구할수는 있지만 필경은 무한대의 접근에 불과하다. 문학내용과 문학방법의 천평이 기울이지거나 흔들리는것은 정상적인 일로서 그것으로만 문학인과 문학작품을 평한다는것은 난쟁이 문학평론가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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