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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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팔부형이 이사가다(4)
2010년 08월 13일 15시 09분  조회:1650  추천:59  작성자: 허룡석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허룡석



                                      4


성철형네는 결혼후 세간났다. 아버지가 리대장네 창고를 맡아놓고는 고모보고 저애들을 세간내우라고 할 때 고모는 펄쩍 뛰였다. 모자라는 저것들이 어떻게 자비살이를 하느냐는것이였다. 아버지는 저들끼리 살고싶은대로 살게 내버려두는것이 서로 편할거라고 재삼 권고해서야 고모는 생각을 달리했다. 무엇보다도 고모가 마음에 걸리는것은 성철형네들이 낮이고 밤이고 같이 있기만 하면 시도때도 없이 사랑짓을 벌리는것이였다. 그통에 고모한테도 여러번이나 들켰었다. 그때면 고모는 조용히 문을 닫고 피해가군 하였다. 자기와 함께 있으면 아무리 부끄러움을 모르는 저것들이라 하지만  얼마나 불편해 할가 싶었던것이다. 고모는 아버지한테 부탁하여 리대장네 창고에 온돌을 놓고 성철형네를 세간나게 했다. 쌀도 푼푼이 보냈고 가장기물들도 두루 갖춰주었다. 세간나는 날에도 형수 곱단이는 저들끼리 사는게 좋은지 사발짝들을 담은 쌀함박을 머리에 이고 애들처럼 까치뜀을 뛰며 가다가 쌀함박을 땅에 떨궈 사발짝들을 박살내기도 했다.

헌 초신짝도 짝이 맞는지 세간내운후 성철형네는 그런대로 별 말썽없이 살았다. 성철형은 결혼후 더욱 성수나게 일했다. 나와서는 똥땀을 흘리며 일하다도 집에 가면 모자라기는 해도 반주그레한 형수가 있는것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는 모양이였다. 그래서 성철형은 아무리 일해도 힘든줄 몰라했고 얼굴에 마냥 웃음이 달려있었다.

그런데 집에 있을 때에도 쥐잡을줄 모르는 고양이 가마목에서 밤낮 잠만 자듯 고이 앉아 놀며 받쳐주는 밥을 먹고자란  형수는 생산대일에는 손도 대려하지 않았다. 성철형이 일하러 나간뒤면 고모가 자주 건너가서는 가마목일은 이러이러하게, 옷견지를 빨고 깁는 일들은 여사여사하게 하라고 가르쳐주었으나 형수는 치매온 할머니마냥 돌아앉으면 까먹군 하였다. 형수도 잊지 않는 일이 한가지 있었으니 그것인즉 바로 군입질이였다. 한달에 입쌀을 인구당 두근씩밖에 배급받지 못하는 시내 아낙네들이 일요일이면 옥수수국수와 밀가루, 지방에서는 타래떡이라 부르는 꽈배기 같은것들을 이고와 농촌마을을 돌아다니며 입쌀을 바꾸어 가군 하였다. 많은 집들에서는 먹고 싶어도 푼푼치 못한 쌀을 랑비할세라 못들은척 하였다. 어떤 집에서는 애들의 성화에 못이겨 조그만치씩 바꿔서 맛을 보이고는 다시는 바꿔먹자는 소리를 입밖에 내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형수는 풀방구리에 쥐 나들듯 한번도 빠지지 않는 단골이였다. 형수는 옥수수국수에는 뒤전이였으나 꽈배기에는 악돌이였다. 밖에서 <타래떡 바꿉소.>하는 소리만 들려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바가지에 입쌀을 푹푹 퍼담아 나가서는 타래떡을 한꾸레미씩 바꿔들이군 하였다. 그러다보니 성철형네는 세간난 첫해부터 벌써 쌀이 모자라 생산대의 보조를 받군 하였다. 생산대에서는 성한 사람도 아껴먹어야 겨우 보리고개를 넘기는 세월에 세간살이를 할줄 모르는 반편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고 여겼던지 그냥 보조대상에 넣어주었다. 그 보조래야 통옥수가 아니면 옥수수가루였다. 그걸로는 꽈배기를 바꾸지 못하는줄 아는지라 형수는 시어머니라고 믿고 그래는지 꺼리낌없이 고모네 집에 와서 입쌀을 퍼내가군 하였다. 고모가 <자꾸 쌀을 퍼내 타래떡을 바꾸지 말라>고 그렇게 타일러도 막무가내였다. 그럴때는 형수도 무슨 궁리가 도는지 자기가 먹고싶어 그래는게 아니라 <성철동무가 밥보다 타래떡을 더 잘먹는다>고 돌려부치는데야 고모도 손을 들고 말았다. 시어머니 집의 입쌀도 거덜이나면 형수도 륜기라는것을 아는지 그 다음에는 우리 집에 와서 입쌀을 구걸하기도 하였다. 그것도 한두번이지 외삼촌댁은 시어머니가 아니였다. 어머니는 형수가 바가지를 들고 온다하면 아예 문을 닫아걸고 멀리찍히 피해버리군 하였다. 우리 집도 애들이 다섯이나 되니 아무리 친척간이라 해도 마냥 쌀을 푹푹 퍼줄 형편이 못되였던것이다. 그러면 별수없이 형수네는 옥수수가루를 돼지죽처럼 끓여 대수 에때우군 하였다. 그렇게 끼니를 에우네마네 하면서도 성철형이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러 다니는걸 보면 과연 힘꼴이나 쓰는 꼬리없는 황소였다. 바보스러운 사람은 머리가 잘 돌지 못하는 대신 힘이 솟구치는 구멍이라도 있는것일가.

성철형은 자기또래들한테 가면 반편이라고 몰리우고 외면당하기가 일쑤였다. 그게 싫은지 성철형은 일할 때나 휴식할 때나 나와 영호며 인섭이네가 있는  아래또래 젊은이들과 섭쓸리기 좋아했다. 그래도 영호또래들한테 와야 담배 한대라도 얻어 피울수 있었고 재수좋을 때면 볶은 콩 한줌이라도 얻어먹을수 있었다. 그보다도 영호네 또래들이 형님, 형님하며 추어올리는것을 더 흐뭇해 하는것 같았다. 젊은 또래들밖에는 자기를 형님이라 부르며 사람대접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성철형도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성철형이 형수와 밤에 하는 <맛있는 일>을 곧이곧대로 그들에게 들려줘야 했다. 영화도 자주 못보고 별 볼책도 없는 시기에 성철형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상없이 재미있고 호기심이 부쩍 동하는 일이였다.

잔치날에 사랑의 맛을 볼대로 본 형수가 이튿날에도 상사구렁이 감기듯 감겨들며 잔치날에 먹던 맛있는걸 또 먹자고 하더란다. 그래서 성철형이 <쩨, 안딘다. 울 엄마 그러는게 맛있는건 뒀다 설에 먹으라 했다. 찰떡보다 더 맛있는 그걸 어떻게 날마다 먹자구 이래냐.> 했더니 형수가 정색해서 <설이 언제 올지두 모르는데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림까.> 하면서 성철형의 아래것을 마구 주물러대니 성철형의 그것이 범을 때려잡을 무송의 몽치처럼 빳빳이 일어섰단다. 자기도 설까지 참을것 같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엄마 모를 때에 먹고싶을 때면 아무때나 먹자 하고 시작한것이 거의 밤마다 맛있는걸 먹어댄다는것이였다. 성철형이 젊은 또래들한테 얼리워 거의 날마다 밤에 한다는 그따위 <사업회보>를 하는것이 낯이 뜨거워 내가 <그따위 시시한 소리는 좀 작작하면 안되오?>하고  죽질러주면 성철형은 정색해서 <야네 이렇게 드, 듣기 싶어하는거 어, 어찌겠니?>하는것이 아니겠는가. 멍청한데는 정말 약이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젊은 또래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키득키득 웃음도 나오고 가슴속에 무언가 이상야릇한 감정이 굽이치며 행복할 미래를 동경하며 사람 살아갈 재미를 느끼기는것 같기도 했다. 이젠 몇해째나 거의 날마다 견지해온 어록학습이요 감상발표요, 밭머리 비판회요 하는것들은 겉으로 말을 못할뿐이지 모두가 이젠 신물이 나도록 싫어하는 노릇이였다. 그러잖아도 이젠 모두 스무살을 벗어나는 젊은이들이라 은근히  탱탱히 부풀어오른 처녀들의 앞가슴과 풍만한 엉뎅이를 훔쳐보며 공연히 납뜨는 그눔을 바지호주머니에서 비틀어 잡고다니는 때라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고 공청단이나 민병련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재미나는 이야기들은 오직 성철형한테서만 들을수 있었던것이다. 정신이 똘똘하다는 사람들은 바른 소리를 안하고 듣기 좋은 소리를 안하는데 왜 모자라고 부실하다는 성철형이 있는대로 말하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해줘야 하는지. 아무튼 그들에게 있어서 성철형은 싱숭생숭한 남녀간의 비밀을 전수해주는 계몽선생이라 할수 있었다. 비록 철리적인 리론은 없지만 사실 그대로라도 그들에게는 큰 만족이였다. 더구나 밭머리 쉼 시간도 길지 않은데 사실 그대로 말하는것이 오히려 더 실감났다. 나도 겉으로는 성철형을 죽질러주면서도 정작 성철형이 그 <맛있는 일>을 구수하게 이야기할라치면 저도모르게 귀가 그쪽으로 돌아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말로는 아니아니 하면서도 귀는 왜 자꾸 그쪽으로 뻗어가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성철형은 생산대에서는 쟁반안의 록두알이지만 젊은 또래들속에서는 제법 자루속의 무우였다. 젊은 또래들은 언제부터인지 성철형을 떨어질수 없는 친구로 간주하게 되였다. 그들은 밭머리쉼때 비판회나 학습회 같은것이 없으면 성철형을 가만가만 손짓하여 언덕뒤로 불러가서는 담배한대 권하며 어제저녁 성철형이 한 <맛있는 일>들을 말하도록 유도해나가군 하였다. 어리무던한 성철형은 담배 한대에 넘어가 어제저녁 형수와 하던 일을 묻는대로 처음부터 거짓없이 털어놓군 하였다. 어떤 때에는 더 짜릿하게 들으려고 익살꾸러기들이 아래위 세절까지 캐고 물으면 성철형은 글을 기르치는 선생마냥 정색해서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어찌나 생동하게 말해주는지 젊은 또래들은 자기가 장가간듯 발버둥치며 웃어번져졌다. 젊은 또래들이 자기가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해 안달이라는것을 안후부터는 성철형도 곧장 배짱을  부리군 하였다. 인젠 담배 한대나 볶은 콩 한줌에 만족하지 않고 구운 고구마나 삶은 감자 혹은 구운 미꾸라지 등 더 맛있는것을 주어야 젊은치들의 간청에 응해주군 하였다. 젊은 또래들은 서로 엇바꾸어가며 성철형의 그만큼한 요구는 얼마든지 들어줄수 있었다. 자기들이 멍청한 성철형을 꼬여 <자산계급의 색정적이고 퇴페적인 것>을 재미나게 듣는다는걸 공작대나 간부들이 알면 큰 일 나기에 그들은 청중범위를 확대하지 않고 되도록 처음부터 듣던 몇 사람들로 고정하였다. 물론 나어린 나는 자기네 또래축에는 들지 못하나 성철형의 동생이라는데서 묵인되였다. 발전하고 바라오르기를 좋아하는 어느 눔이 끼여들었다가 자기네를 발판으로 고자질이라도 하면 자기들이 당장 비판받는것은 둘째치고라도 락후분자감투를 쓰게 되면 시집오려는 처녀들이 없을가봐 더 걱정이였다. 정치가 판을 치는 세월에 락후분자는 처녀들이 왼눈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러면 성철형의 재미나고 싱숭생숭한 남녀간의 이야기는 실천도 못해보고 그저 귀구멍만 간지럽히는 호랑이 담배피우던 때의 먼 옛날이야기로 밖에 남지 않을것이였다.

세월만큼 철을 아는 어르신이 없다더니 어느듯 모내기철이 어김없이 또다시 찾아왔다. 이젠 모내기를 시작한지 보름도 넘었지만 모내기를 한 논은 절반도 되나마나 했다. 드바쁜 모내기철에는 부지깽이도 날뛴다고 했지만 해마다 모내기철이라 해도 일하는 사람보다 노는 사람이 더 많아 일축이 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자개바람 일구며 씽씽 달아다니다도 모내기철이 돌아오면 전염병에 걸렸는지 모두가 고양이 불 앓는 소리를 내며 아프다는 핑게다. 그러다도 추석에 어쩌다 소를 잡거나 돼지를 엎어놓는 년말결산때면 말똥구리에 딱정벌레 모이듯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그믈그믈 쓸어나오는지 모를 일이였다.

힘깨나 쓰고 꾀를 부릴줄 모르는 성철형에게는 해마다 모내기철이면 제일 힘든 모지게를 지는 일이 차려졌다. 그래도 그는 별 불만이 없이 시키는대로 수걱수걱 일만 잘하였다. 성철형은 힘도 좋아 남들은 한번에 벼모 오십단도 지기 어려워 하는 모짐을 그만은 백단도 어렵지 않게 지고 씽씽 달아다녔다. 그래도 대채평공을 할 때면 여느때와 다름없이 손을 높이 쳐들며 시원스레 팔부를 자보하였다. 그러면 기공원이 또 그대로 받아 <팔부.>하면서 모내기철의 최고공수인 18부를 적어넣군 하였다. 성철형이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는것을 누구나 다 빤이 보는 일이라 최고공수를 주지 않으면 다른 사원들이 가만 있지 않았다. 그런데 성철형이 올해는 웬 영문인지 지게를 지고 가다도 씰씰 번져지기가 일쑤였다. 사람들은 뒤에서 저자식 장가를 가더니 벌써 진이 다 빠졌는 모양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오전휴식시간이 되자 성철형은 영호네들이 모여앉은 곳으로 찾아와 지게를 벗어내치더니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형님이 올해는 어찌된 판이요? 언제나 힘이 나서 펄펄 날던 형님이 아까두 보니깐 논두렁에서 힌들 나자빠지더구만.>
<형님이 밤마다 아즈마이를 너무 못살게 굴어 그렇채이요? 하하하.>
성철형은 맥없이 기여일어나며 말했다.
<야, 너네 우리 안까이새끼보구 날 좀 밥 많이 주라 해라.>
<양? 아즈마이 밥을 잘 안주오?>
<말두 마라, 우리 안까이새끼 다 타래떡 바꿔먹구 쌀이 없다.>
<양? 그래 오늘 아침에는 형님이 뭘 잡숫구 나왔소?>
<아무것두 못먹었다. 그저 물 한바가지 먹구 왔다.>

그렇게 말하며 커다란 황소눈을 껌뻑이는 성철형의 두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이렇게 고된 일에 아침을 굶고 나오다니, 그럼 이 며칠째 성철형이 거의 굶다싶이 하면서 지게를 진게 아닌가. 모내기철에는 아무리 힘꼴을 쓰는 황소라도 하루만 굶겨도 논판에 쓰러지는 판인데, 하기에 생산대에서는 푼푼하지 못해도 밭갈이철과 모내기철에는  소들한테 찰떡을 쳐먹이고 콩을 마대채 삶아먹이지 않는가. 성철형이 측은해났다. 나는 성철형이 이렇게 굶고 일하러 다니는줄 여지껏 감감 모르고있었다. 성철형의 말에는 꼬물만한 거짓도 없음을 나뿐만아니라 젊은 또래들도 잘 알고 있었다. 소같이 일하는 성철형이 이 며칠째 밥도 배불리 먹지 못했다는 소리에 모두들 가슴이 찡해났다. 여물 안먹고 잘 닫는 말 어데 있는가. 아무리 모자라는 아들이라도 아끼고 사랑하는 제에미 손에서 밥을 받아먹을 때와 제입밖에 모르는 부실한 녀편네손에서 밥을 받아먹는것이 판판 다른가보다.
영호며 인섭이네들은 자기들이 쉴참에 간식으로 먹자고 꺼내놓았던  누룽지며 삶은 감자며 구운 고구마며 볶은 콩들을 모두 성철형에게 안겨 주었다. 성철형은 먹을것을 보더니 콩여물을 만난 굶은 소마냥 아무런 사양도 없이 덥썩덥썩 쥐여먹기 시작하였다. 량손잡이로 소경이 볼새없이 먹어주는 꼴을 보니 완전히 사흘 굶은 거지였다. 성철형이 불쌍했다. 일은 제일 고되게 하면서 먹기는 아마 온 생산대에서 제일 못먹는것 같았다. 장가를 들면 좋기만 한것이 아니구나. 얼빤한 각시를 얻으면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저꼴이 된다는 섬찍한 생각에 다들 말없이 성철형이 게걸스레 먹는 꼴을 지켜보았다. 삼동서 김 한장 먹듯 어느사이 성철형은 다섯사람의 간식을 훌떡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는 배부른 황소 방귀뀌듯 트림을 껄껄 걸직이 해댔다.

<야 이젠 사, 살것  같다. 근데 너네는 어, 어째 아이먹니?>
<형님이 다 잡솼는데 우린 뭘 먹겠소?>
<야 참, 그, 그랬구나. 야, 아이 됐다 응.>
<괜찮소, 형님이 잡숫는걸 보니 굶기는 굶었구만, 요새는 맥이 없어서 밤에 아즈마이하구 그  맛있는 일두 잘 못하겠소 양?>
<야, 말두 말라, 씨불란거, 너네 이것봐라.>
성철형은 팔소매를 높이 걷어 올리고 구멍이 숭숭한 옷을 들어 잔등을 보여주었다.
<이게 뭐이요? 어째 어디나 이렇게 시퍼렇게 이물었소?>
성철형은 옷을 내리며 말했다.
<씨불란게, 이게 다 우, 우리 안까이새끼 꼬 꼬집어떼서 이렇다.>
<양, 아즈마이 어째 이렇게 꼬집어뗐소?>
<씨불란게, 맛있는거 못해 주니까 바, 발과이나서 이렇게 꼬, 꼬집어뗐지.>
<양?>
젊은 또래들은 놀라 입을 하 벌린채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해달라는걸 못해줘도 저렇게 꼬집히우는가?

모내기철에 잡아들면서 힘든 일을 하는 성철형을 잘 먹여줘야 했으나 해와 달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모르는 형수는 그렇게 해야 하는줄 알바 없었다. 또 잘 먹여줄 쌀도 없었다. 겨울과 봄 내내 쌀과 꽈배기를 바꿔먹다보니 모내기철이 되기 전에 쌀독이 밑바닥이 드러났다. 그런줄 알고 고모가 모내기철에 먹으라고 우리 집에서 입쌀 한자루 가져다주었으나 형수는 그 쌀로도 꽈배기와 과자를 바꿔먹어버렸다. 뭣처럼 먹고는 자고 깨나서는 또 먹고하다 보니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은 그대로 꼿꼿이 살아나 밤마다 그 <맛있는 일>을 해 달라고 칭얼대지만 밥도 배불리 먹지 못하며 하루종일 지게를 지는 성철형은 집에 들어오면 그대로 꼬꾸라졌다. 형수의 성화에 못이겨 어떤 때는 억지로 그 일을 치르다보면 중도에서 하차하기가 일수였다. 그러면 한창 몸이 달아오른 형수는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않는다고 악이 바쳐 성철형의 팔이고 허벅다리고 잔등이고 마구 허비고 꼬집고 물어놓군 하였다. 그렇게 온 밤 발광하고는 새벽녘에야 잠이 드는데  일하러 갈 사람한테 아침밥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었다. 그리하여 성철형은 아침에 일하러 가기 전이면 여기저기 들춰보았으나 뺑덕어미 세간살이라 고양이에게 죽 쑤어줄것 없었고 새앙쥐 볼가심할것 없었다. 성철형은 별수없이 랭수 한바가지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일밭으로 나갔다 그래도 다행한것은 점심때면 생산대에서 점심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점심밥을 해서 밭머리까지 날라오기에 점심은 배불리 먹을수 있었다. 하여 날마다 열시쯤 되면 성철형은 벼모를 나르면서도 여물을 기다리는 황소마냥 그냥 마을쪽을 바라보며 점심밥이 어서 오기를 학수고대하군 하였다.

성철형이 굶어서 일하러 다니는줄 안후 나는 아버지께 말하여 우리도 모자라는 쌀이지만 더러 갈라내여 고모네 집에 보내주게 하였다. 아침과 저녁은 성철형이 고모네 집에서 밥을 먹고 일하러 다니게 하였다. 점심은 생산대에서 해주는지라 걱정할것 없었다. 전에는 성철형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것도 창피하다고 늘 남과 어울려 먹었지만 그후부터 나는 성철형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은근히 성철형을 챙겨주었다. 그게 좋은지 성철형은 볼이 메여지게 밥을 먹다도 자주 나를 쳐다보며 헤헤 웃군 하였다.

그날도 나와 성철형이 점심밥을 배불리 먹고 누워서 따뜻한 볕쪼임을 하며 쉬고있는데 풍각쟁이 문백이가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린채 슬금슬금 우리한테로 다가왔다. 문백이는 자기는 체질이 약해 힘든 일은 못한다며 해마다 모내기철이면 처녀들과 함께 모를 꼽는 기술로동을 하고있었다. 마을의 유일한 <예술가>인 문백은 올해 대운이 텄다. 공작대의 <예술적>인정을 받아 모내기철의 <붉은 선동원>이 되였던것이다. 그는 오전 오후 각각 한번씩 논밭머리에서 노래도 부르고 바이올린을 켜기도 하면서 모내기하는 사원들을 고무추동하기도 했다. 그 대가로 문백이는 하루에 남보다 10부씩 더 챙기였다. 남들은 날마다 <변소>를 하늘로 쳐들고 꺼꾸로 박히다싶이 하며 힘들게 공수를  버는데 문백이는 모내기를 하다도 허리아플가 하면 쉼삼아 풍각쟁이질 하였다. 그러고도 공수를 더 따먹는것이 아니꼬와 사원들은 뒤에서 이마벗어진 덕에 공짜가 잘 생기는 <불쪽이 아홉>인 놈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점심을 배터지게 먹고 식곤이 몰려와 해볕을 쪼이며 끄덕끄덕 졸고있는 성철형의 머리맡에 와 문백이 소리쳤다.
<야, 팔부, 너 자냐?>
그 소리에  성철형은 눈을 거슴츠레 뜨고 쳐다보더니  비스듬이 일어나 앉았다.
<어, 어째 그, 그램둥?>
<임마, 그간 니 새 노래를 배운게 있니?>
<예? 어,없스꾸마…>
사실 누나들이 모두 시집간후에는 그한테 노래를 배워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성철형도 오래동안 사람들앞에서 노래를 불러보지 못한 터였다.
<너 재미있는 노래를 배워 보재이캔니?>
<예? 영 재미있습둥?>
<임마, 재밋재이문 왜 너보구 배우라 하겠니.>
노래에 남다른 취미가 있는지라 성철형은 <붉은 선동원>이 주동적으로 찾아와 노래를 배워주겠다니 몹시 마음이 동해했다. 곁에 누웠던 나도 호기심에 끌려 일어나 앉는데 문백이는 <너는 저쪽에 비껴라>며 쫓는것이 아닌가. 씨, 사람을 알기는, 무슨 개떡같은 노래를 배워주겠기에 듣지도 못하게 하는건가. 나는 문백이를 아니꼽게 쏘아보며 화김에 저쪽에 가 벌렁 드러누웠다. 문백이는 손으로 박자를 쳐가며 성철형에게 뭐라고 소곤소곤 노래를 배워주는것 같았다. 성철형도  재미나는지 모이를 쫏는 닭마냥 고개를 꺼떡꺼떡하며 정색해서  노래를 배우고있었다. 일할 시간이 거의 되자 노래도 다 배웠는지 문백이가 재삼 당부하는 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아까두 말한거 알았지? 너 이 노래를 배워서 아무데서나 부르면 안된다. 꼭 잔치집에서만 불러야 한다?>
<와늘 사람 알기는, 어전 몇번이나 말함둥?>
성철형이 제쪽에서 큰 소리다.
쳇, 무슨 신비한 노래를 배워주었기에 저렇게 꼼꼼이 당부까지 한단 말인가. 그게 다 소귀에 경 읽기지.
성철형은 금방 배운 노래의 가사와 곡을 잊을가봐서인지 일할 때에도 휴식할 때에도 시도 때도 없이 혼자서 시벌시벌했다. 그러자 모르는 사람들은 저 자식 결혼후에 어째 전보다 더 멍청해지지 않았나고 여기기까지 했다. 노래련습을 하느라고 그러냐고 내가 넌짓이 물어도 성철형은 눈을 찡긋할뿐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계속)


장백산 2009년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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