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룡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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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팔부형이 이사가다(6)
2010년 08월 18일 11시 12분  조회:1399  추천:46  작성자: 허룡석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허룡석

                                     6

전해 3월에 중쏘변경인 우쑤리강에 있는 진보도에서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해겨울에 중앙으로부터 전국인민들이 일떠나 방공굴을 깊이 파고 량식을 널리 저장하며 전쟁에 대처할 준비를 잘하라는 중요한 지시가 내려왔다. 지시에는 또한 정치적으로 믿음직하고 군사적으로 튼튼한 변방을 건설하기 위하여 변강지구에 있는 5류분자들을 모두100리밖의 안전지대로 전이시키라는 내용도 망라되여 있었다. 중앙의 지시가 시골마을까지 전해내려올 때는 이듬해 초봄이였다. 립신대대는 중쏘변경에서 60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립신대대의 <계급의 적>들도 전이범위에 들게 되였다. 제2생산대의 부농성분을 가진 두집을 말할것도 없이 이사가게 되였고 새로운 시기 현행반혁명분자 성철형도 말밥에 들게 되였다. 성철형의 이사여부를 두고 현공작대와 대대 토배기간부들 사이에 전에 없던 모순이 생겼다 한다. 계급각성이 높은 공작대 간부들은 성철형의 문제를 새로운 시기 엄중한 정치문제로 보고 현행반혁명분자인 성철형도 반드시 이사보내야 한다고 모를 박았다. 성철형의 사정을 잘아는 대대간부들은 성철형의 문제는 자산계급적인 생활부패 문제로서 남겨두고 교육해도 되지 않느냐 하는것이였다.
 대대토론회에서 원래는 공작대의 말이라면 입안의 혀처럼 노긋노긋하던 당지부서기 덕만이네가 성철형의 문제를 둘러싸고는 생뚱같이 반기를 들고 나오는지라 한조장은 질탕관에 두부장 끓듯 화를 벌컥 냈다한다.
<그런 현행반혁명분자를 왜 보내지 말아야 한단 말입니까? 그 자식이 팔부라는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그게 진짠지 가짠지 누가 똑똑히 알수 있습니까? >
<거야 온 마을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 아니우? 저 나이를 먹도록 여태 눈 먼 중이 갈밭에 들어선듯 어디가 어딘지, 뭐가 뭔지를 가리지 못하는 그런 얼빤한 사람이 노래 한번 잘못 불렀다구 복벽을 꿈꾸는 계급의 원쑤라 취급하면 계급의 적이란게 모두 저런 바보들인가구 사람들이 웃지 않겠수? 그만큼 투쟁해서 사람이 인젠 제앞 발명도 바로 못하는 멍청이로 되였는데 이사까지 보내면 사원들이 너무한다 하지 않겠수?>
성철형의 사정을 잘 알고있는 김덕만이와 대대 다른 간부들도 팔부 성철형을 두둔했단다.
<제가 조사해 보았는데 그날저녁 그 자가 부른 노래가 원래 상급에서 부르지 못하게 엄금되여 있는 ××수정주의 나라 노래일뿐만 아니라 원래 수정주의가사에 또 더 악독하게 가사를 바꾸어 당과 수령을 공격하구 해방군을 모독했는데 이래도 죄가 작단 말입니까?>
한조장은 계급투쟁에 관계되는 무산계급원칙문제에서는 추호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단다.
<조사에 밝혀지다싶이 가사도 그 사람이 지어낸게 아니라 식별능력이 없어 그저 죽은 애비가 배워준걸 그대루 부른게 아니우?>
< 그러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식별능력이 없는 바보를 계속 변방지구에 남겨 두었다가 계급의 적들이나 침략자들의 감언리설에 넘어가 또다시 나쁜짓을 할 때에는 혁명사업에 주는 손실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때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습니까?>
그 말에는 덕만이도 할 말이 없었단다. 아무 식별능력이 없는 팔부가 계급의 적에게 리용되지 않는다고 누구도 담보할수는 없었던것이다. 전번에 불렀다는 그 노래도 식별능력이 없었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그것도 공작대와 대대간부들이 모두 눈이 퍼래 앉아있는 장소에서 재미있는 노래로 간주하고 아무 꺼리낌없이 흥이 나게 부른것이 아닌가. 그런 노래는 그런 장소에서 불러서는 절대 안된다는것을 어지간한 누뇌를 가진 사람은 모두 알수있는 일이였다. 더우기 날마다 계급투쟁의 새로운 동향을 밝혀내고 숨어있는 계급의 적을 모조리 깡그리 붙잡아 낸다며 계급투쟁을 기본고리로 하는 살벌한 정치형세하에서 그런 노래는 누가 돈을 주며 부르라 해도 부를 상머저리가 더는 없을것이였다.
<그런 머절싸한 자식을 이 기회에 이사보내야 합꾸마. 한조장의 말씀마따나 쏘련수정주의가 쳐들어와 성철이보구 비밀을 대라면 그 자식 고도소이 불어댈게 아니미까?>
민병련장 마만철이가 덕만이 눈치를 슬슬 보며 한조장에게 발라맞추었다 했다.
<에끼, 이 사람, 성철이한테 무슨 수정주의가 요구하는 비밀이 있다구 그래?>
덕만이가 한 마을에 살면서도 인정사정이 없이 너불대는 만철이를 쏘아보며 면박을 주었단다.
<어째 그 자식이 아는 비밀이 없다구 그래미까? 그 자식이 적어두 한조장이구 지부서기구 민병련장이구 우리 마을 간부들을 다 알지 않습미까?>
덕만이는 어처구니 없는지 만철이를 쏘아만 볼뿐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아무리 세월이 이렇기로 저 자식 부자집 소 바꾸듯 저렇게 쉽게 상전을 바꾸어 섬길셈인가며 한탄을 했단다.
결국 성철형도 이사가는 5류분자명단에 들게 되였다.
이사가는 날 마을 사람들은 계급계선문제때문에 두 부농은 바래지 못하고 그래도 불쌍한 성철형은 나와 바래주었다. 년로한 고모도 짐을 꿍져가지고 이사가는 수레를 따라 나섰다. 자기가 따라가 곁에서 보살펴주지 않으면 험악한 딱지를 쓰고 가는 성철형네가 외딴 고장에 가 어떻게 살아 갈지 망연하였던것이다. 수레는 아버지가 몰았다. 공사에서 파견해보낸 두 민병이 보총을 메고나서 이사가는것을 감독하였다. 공작대에서는 한마을 민병들은 서로 면목을 알기에 인정사정에 끌려 임무집행을 제대로 할수 없다며 공사무장부에 요청하여 다른 마을 기간민병을 파견해보내게 했다. 성철형네 이사짐이래야 가마 두짝과 낡은 이불, 궤짝과 독 몇개가 전부였다. 고모네 이사짐까지 다 실었대야 수레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수레에는 최신지시가 나올 때마다 들고 나가던 초롱도 실려있었다. 아버지가 그까짓걸 갖고 가 뭐하느냐며 한쪽에 팽개쳤으나 성철형이 그걸 두고가서는 안된다며 다시 수레에 실었던것이다.
눈이 갓 내린 초봄 날싸라 아직도 찬바람이 기승을 부렸지만 영호네 젊은 또래들과 이웃들이 모두 나왔다. 성철형이 그 노래를 부르도록 귀뜸해줬던 죄책감에서인지 아니면 륜기간의 끊을수 없는 정때문이였는지 나도 아끼며 쓰던 하나밖에 없는 목수건을 풀어 성철형의 목에 둘러주었다. 성철형은 나를 물끄럼히 바다보더니 나의 가슴에 주먹 한매 안겨주며 싱긋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에는 서글픔이 가득했다. 나는 그처럼 꺼리고 멀리하던 성철형의 허리를 처음으로 와락 끌어안았다. 갑자기 목이 꺽 메여오르며 눈앞이 흐려졌다.
마을아낙네들도 찹쌀 한되 혹은 닭알 몇개씩 들고나와서는 눈굽을 찍으며 작별하는 고모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네들은 서로가 잘 살지는 못해도 그 사이 든 정을 못이겨 새고장에  이사가서 몸 성히 잘 있으라고 위로하며 함께 눈굽을 찍었다. 영호는 온 마을에 하나밖에 없어 감춰두며 놀던 트럼프를, 그것도 꽃맞추기밖에 모르는 성철형이 못내 갖고싶어 몇번이나 달라는것을 아까와 주지 않던 네귀가 다 떨어져나간 트펌프를 감독민병들의 눈을 피해가며 성철이의 저고리주머니에 슬며시 밀어넣어 주었다. 평소 성철이와 놀아주며 <맛있는 일>을  꼬지꼬지 캐여 물으며 웃어주던 인섭이, 종국이 등 젊은또래 친구들이 성철형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었다.
<형님 잘가오, 갔다  놀라오오…>
<나는 이사가기 싫은데. 나는 우리 동네 좋쓰꾸마…>
성철형은 고모부가 세상뜬뒤 자기를 아들처럼 생각해주던 영호아버지의 옷섶에 얼굴을 비비며 슬프게 울었다. 비록 꺼리낄것 없는 빈농이라지만 노래 한곡 잘못 불러 현행반혁명으로 몰려 이사가는 성철형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서인지 영호아버지는 그저 성철형의 잔등을 다독여주며 물기어린 두눈을 슴뻑이였다. 정치라는게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뭐가 뭔지를 분별못하는 팔부도 현에서 내려온 공작대의 결정이라니 더 떼질을 쓰지 못하고 이렇게 정치행사때에 쓰는 초롱까지 가지고 이사가는것이 아닌가. 여러번 투쟁맞더니 아마 팔부의 골수에도 정치란 락인이 무섭게 찍혔나부다.
고모와 성철형과는 달리 이사간다니 세상모르고 즐거워하는것이 형수였다. 이사가면 자기 친정집과 가까와지는것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애들처럼 이사간다니 덮어놓고 마음이 들떴는지 헐렁한 꽃부리 저고리에 흰색바탕에 때가 들어 검스레한 털실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형수는 이사가는 수레를 빙빙 에돌며 정성스레 춤을 추었다. 그녀는 수레를 앞질러나가며 춤을 추다도 다시 수레있는데로 되돌아오며 춤을 추기도 하였다.
<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조국변강 비춰주네 …>
자기네의 앞길에 어떤 액운이 닥칠지도 모르고 분수없이 춤을 추어대는 형수를 보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은 더구나 쓰려했다. 그 꼴을 보고 눈굽이 젖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저렇게 분수없는것들을 무슨 현행반혁명이라고 이사를 보낸단 말인가. 때묻은 곳에서 그냥 살게 할거지.
이사를 감독하는 민병들이 빨리 수레를 몰라고 재촉했다. 두 부농집 이사수레는 떠난지 이슥했던것이다. 민병 둘이 그쪽으로 따라갔다.
<이랴.>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수레를 몰아나갔다. 눈굽이 젖은 성철형과 고모가 마을사람들에게 손을 저어 작별하고는 수레옆에서 말없이 걸었다. 형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춤을 추며 수레를 따랐다. 그 뒤로는 총을 멘 두 민병이 따라섰다. 마을사람들은 측은한 마음으로 성철형네를 바래였다. 팔간집 문앞을 지날 때 보니 임신하여 배가 뚱뚱한 팔간집새각시가 정주문앞에 서서 이사가는 성철형네를 물끄럼이 바라보는데 손이 자주 눈가로 올라가고 있었다. 성철형한페 쫓겨다니던 때를 다 잊었는가. 우사칸마당 한켠에서는 성철형에게 화근이 된 그 노래를 배워주며 잔치집에 가서만 부르라고 신신당부하던 문백이가 서있었다. 오늘은 웬 일인지 <예술가>로 자처하며 종래로 쓰지 않던 개털모자를 쓰고나와 백양나무밑에서 서성거렸다. 성철형네 이사수레가 나타나자 문백이는 성철형한테 다가왔다. 그는 솜옷 호주머니에서 무엇인가 한웅큼 꺼내여 성철형의 손에 쥐여주었다. 사탕이였다. 그것도 당시에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얻기 힘든 <백토끼>표 우유사탕이였다. 그리고는 말없이 자기가 쓰고나온 개털모자를 벗어 성철형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그는 고모에게도 허리굽혀 인사하고는 한켠에 물러섰다. 영문을 알수 없는 고모는 의아쩍게 문백이를 쳐다보았다. 사탕을 받아쥔 성철형은 뒤돌아서 문백이를 힐긋 바라보고는 말없이 수레를 따라갔다. 형수는 맛있는 사탕을 보더니 성철형의 손에서 사탕을 빼앗아갔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종이를 발라서는 성철형과 고모, 아버지 그리고 나의 입에 밀어넣어 주었다. 두 민병의 입에도 넣어주려 했으나 두 민병은 형수를 탁 밀쳐버렸다. 형수는 두 민병을 아니꼽게 흘겨보고는 그 사탕을 자기입에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깡충깡충 까치뜀을 하며 수레를 따라갔다.
날이 매섭게 추웠다. 눈보라가 일었다. 봄바람은 첩이 죽은 귀신이라더니 송곳같은 바람이 이사가는 사람들한테 벌을 주려는듯 겹저고리안으로 기를 쓰고 파고 들었다. 새 곳을 바라고 떠나가는 수레바퀴밑에서는 눈을 깔고 지나가는 소리가 <아리랑> 노래소리마냥 빠드득빠드득 애처로이 울려나왔다.
 나는 아무리 멀어도 성철형네를 이사가는 마을까지 바래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돌아가 동생들을 돌보라는 통에 동구밖까지 바래고는 멈춰섰다. 마을로 들어오며 보니 문백이는 그때까지도 번들거리는 맨머리로 눈보라 날리는 백양나무밑에 그린듯이 서있었다. 멀리 동구밖으로 사라져가는 성철형네 이사수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문백이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여있었다.

장백산 2009년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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