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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인 재난이 두렵다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물난리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이전에는 태풍지나갈 때 국지적으로 폭풍우의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올 여름은 장마가 끝났다고
했는데 두꺼운 비구름이 심술을 부리며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물난리를 일으키고
있다. 일찍이 없었던 기상이변이라 두려운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기상이변을 두고 기상전문가들은 ‘엘니뇨’와 ‘라니냐’현상으로
그 탓을 돌린다. 스페인어로 남자 아이를 엘니뇨라 하고 여자 아이를 라니냐라고
한다는데, 이 사내 아이와 여자 아이가 수작을 부려 이번 물난리를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 지구인의 자업자득 ▼
생소한 외국어를 빌릴 것 없이 우리식 표현을 쓰자면, 음양의 조화가 깨뜨러져
지구 전체가 지금 홍수와 가뭄으로 크게 앓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도 음양의
조화가 무너지면 병이 난다. 지구라는 큰 몸뚱이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병들게 마련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는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었다. 지구가 스스로를 지탱해낼 수
없도록 자정능력을 잃게 된 것은 화석연료의 지나친 소비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즉 지구온난화로 인해 음양의 조화가 깨뜨러짐으로써 기상이변이 초래된 것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이 연소될 때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량이
불어나면서 지구의 온도가 높아진 데서 온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사람들의 지혜는 그 후손인 오늘의 우리가 마땅히 배우고 익혀가야 할 교훈이다.
그러니 오늘날 지구인들이 겪고 있는 자연의 재해는 어떤 외계에서 온 재앙이
아니라 지구인들 스스로가 불러들인 자업자득의 재난인 셈이다. 현재의 생활방식에
어떤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도 이런 재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번 물난리를 겪으면서 우리는 자연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임을 뼈아프게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난 물살에 가족과 집을 잃은 사람들의 비통한 마음은 쉽게 아물
수 없는 상처다. 무슨 말로 그들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겠는가.
▼ 천재에 인재까지… ▼
이 물난리에 재산 피해와 인명의 희생이 많은 것은 천재에 인재가 겹친 것이라고
보는 견해에 동의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자연의 재난에 대한 사전 대비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해마다 당하는 일인데도 늘 그때뿐이다.
한평생 산을 의지해 살아가는 처지에서 자연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개울
가까이 집을 짓거나 야영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위험에 대한 충고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의 일에 왜 참견하느냐는 듯
못마땅해 하는 태도다. 말하자면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은 어째서 생겼겠는가.
비슷한 물난리를 겪으면서도 일본에는 피해가 적은 것은 자연의 위력 앞에 미리
대비하는 안전의식을 평소부터 익혀왔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같은 나라가 하류의
사람들이 대피하기도 전에 둑을 무너뜨려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것은 그 나라의
인권에 대한 실상과 수준을 드러낸 것으로 우리 눈에 비쳤다.
내가 전에 살던 암자는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마다 선실(禪室)앞에서 청청하게
너울거리던 파초가 갈기갈기 찢기고 꺾여 보는 마음을 몹시 안타깝게 했다. 찢기고
꺾인 이파리와 줄기를 낫으로 베어내면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그전처럼 청청한
잎을 펼쳐내었다. 이를 지켜보면서 처절하리만큼 강인한 생명력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물난리로 가족을 잃고 집을 잃은 분들은 삶의 의욕마저 잃었을 것이다. 이
사바세계의 삶에는 예측할 수 없는 함정이 놓여 있다. 우리 조상들이 허구한 세월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 함정을 뛰어 넘어 살아왔듯이, 우리 또한 그 기상과
의지를 이어받아 이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 이웃고통 보살필때 ▼
각계 각층에서 이재민을 돕기 위해 나선 따뜻한 마음과 그 손길이 힘이 되고 빛이
되어 오늘 우리는 다시 일어서려고 한다. 이번 물난리를 다행히 비킨 사람들에게는
그 보답으로라도 피해를 본 이웃들을 따뜻하게 보살필 의무가 있다.
경제위기에다 물난리까지 곁들인 이런 재난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되새겨봐야 할 것 같다. 고난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내뿜는 그 기상과
의지력으로 다시 일어서라는 소식은 아닐까. 사람은 고통을 나누면서 더불어 살 때
의젓한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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