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서 송년회가 찬바람을 타고 눈꽃처럼 활짝 피여난다. 정말로 한해가 다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올 한해는 어떤 한해였나 혼자 되짚어본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일도 열심히 했고 책도 틈틈히 새겨보았으며 제일 큰 성취는 뭐니뭐니해도 작가협회 송년회때 작가증을 떡 하니 받아쥔 것이였다.
오랜 짝사랑 같은 련애끝에 결혼증을 어렵게 따낸 기분이라 할가. 어깨가 으쓱해지고 괜시리 마음이 든든해졌다. 글을 금방 쓰기 시작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작가라 부르면 괜히 거짓말을 해서 사기를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주 쑥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결혼도 안하고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부모에게 털어놓는 경우와 비슷한거라 할가?
그래서 증서를 받아쥔 이틑날에 위쳇 모멘트에 “나도 이제부터는 증서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자랑도 서슴지 않았다.
한낱 종이장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 증서로 인해 되물리지도 못하고 이젠 사명을 다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려운 글쓰기를 마다할 리유가 깡그리 없어졌다.
글이 안 나온다고 징징댈 일도 없어졌다. 저울추를 삼킨 듯 이젠 마음을 글이라는 작자에게 꽉 잡힌건 분명하다. 증서가 없을 때는 짝사랑 하듯 조심스레 다가갔다면 지금은 짝사랑이 승화한 것처럼 더 열정적으로 글에 다가가고 싶어졌다.
이제부터 더 적극적으로 글에게 다가가야 할 마음이 생겼으니 본격적으로 짝사랑이 수면우로 자기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이런 뜻에서 이 증서는 나에게 머뭇거릴 리유를 걷어내고 탄탄대로에로 달려나가게 하는 채찍이 되였다.
살아가면서 채찍 하나쯤 생기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애들도 다 커버리고 허무한 나이에 들어선 이 시점에 채찍이 있어 올해는 정말 팽이처럼 돌아쳤다. 그 덕에 이런 저런 모임에 자주 나가게 되여서 한가한 적은 없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도 아주 바쁜 일이였다.
그렇더라도 회사를 다니면서 한가히 글을 쓰겠노라고 시간을 낼 수도 없었다.그래서 항상 오후 세시쯤 일을 다 마무리 해놓고 회사에 앉아서 글을 구상하고 쓰고 지우고 하면서 두시간 남짓이 글을 쓴다. 저녁에 퇴근해서는 낮에 써놓은 글을 되살려 보면서 잘된 점과 보완할 점을 머리속에서 채 거르듯 꼼꼼히 다듬질한다. 저녁 설겆이를 마치고 운동과 독서를 끝내면 또 한번 소가 새김질 하듯 되짚어본다. 그리고 이틑날 아침 선생님과 교류를 하면서 글을 다듬는다. 한편의 완성된 글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작업을 거쳐서 문학지에 전달이 된다. 그곳에서도 채용이 될지 안될지 또 짝사랑 하듯 오랜 시간 숨죽이면서 기다려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남의 글을 또 많이 읽었다. 우리말 신문,잡지는 물론 베스트 셀러 책으로부터 무명 작가의 글까지 골고루 보기 좋아한다. 매 한권의 책에는 작가의 령혼과 숨결이 흐른다. 좋은 글귀는 줄을 그어놓기도 하고 메모를 해두기도 한다.
요즘은 오디오북도 많아서 출 퇴근 시간에는 전자책을 듣기도 한다.
이전에는 출근하면 점심은 의례 맛집에 가서 먹는 걸로 되여 있었지만 독서를 시작하면서 점심은 회사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맛집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하여 조용히 책을 펼쳐본다. 회사원들과 사이도 돈독해지고 성격도 차분해지고 배속에 글이 들어있으니 마음도 든든해진것 같다.
독서모임에도 나가게 되였다. 책 나눔을 하기도 하고 짧은 강연을 해보기도 한다. 강연을 하기 위해서 원고를 작성하고 여러번 혼자서 소리내여 리허설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을 앉혀놓고 감정을 살려가며 강연 연습을 하니 애들은 눈이 올롱해서 엄마를 쳐다본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엄마를 보면서 시작은 아무때나 늦지 않다는 열정을 배우는지 관계하지 않고 엄마는 자기 일에 집중하기에 급급하다.
독서하는 사람들은 펭귄과 같다. 펭귄은 바다에 뛰여들기 전에 서로 눈치를 본다. 머뭇거리다가 한 녀석이 뛰여들면 다른 펭귄들도 덩달아 뛰여든다. 내가 책을 보고 글을 펴내자 주위에서도 따라서 책장 번지는 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우리 식구들이 책을 따라서 보기 시작했고 친구들도 하나 둘씩 서점에 들리기 시작했다. 글쓰는 길에서 문우들도 첨벙첨벙 발표의 다이빙을 즐기고 있다.
용감히 바다에 먼저 뛰여든 펭긴이 되여서 많은 펭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채찍을 뒤늦게 찾은 이 해의 끝자락에서 명년은 더 열심히 해볼 것을 다짐한다. 다른 사람들의 무의미한 이야기나 사건에 시간을 허비하거나 허영을 뒤쫓기보다는 자신을 진지하게 응시하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에 대한 짝사랑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번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비록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내가 좋아하고 노력했던 것만큼 글들도 나에게 푸짐한 보상을 내릴거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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