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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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의 끝
2018년 08월 10일 09시 23분  조회:1465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우리는 태여나서 부모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자라난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고 재잘재잘 말을 배우고 가나다라를 배우면서 학교에 들어간다. 머쓱하고도 수집은 이팔청춘을 넘어 학문의 세계인 대학으로 들어가 더 넓은 지식을 쌓으며 심적으로 신체적으로 비교적 무르익은 사회인으로 거듭난다. 사과가 익으면 땅에 뚝 떨어져 사람들의 맛나는 과일이 되듯 대학문을 나선 청년들은 첫 직장에 성큼 발을 디디고 내실을 갈고 닦으면서 성숙해지는 길에서 훠이훠이 걸어간다.
이는 보통 사람들의 성장 스토리이다.

나도 별반 다름 없이 학교를 나와 곧장 취직을 했고 뒤이어 결혼과 육아를 경험했다. 다행히 여러 직업을 경험하지 않고 쭈욱 한가지 일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십여년 평탄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게 되였다. 주위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더러 직업이 여러번 바뀌고 복잡미묘하고 굴곡이 많은 인간관계를 겪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내심으로 위로를 하군 했다.

안정된 생활이 쭉 이어졌지만 불안감은 거북이 등에 붙은 미물처럼 시원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절대적인 안정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항상 하고 있는 일 외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싶었다. 꼭 마치 지금 달리고 있는 길 외에 또 다른 길과 세상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가보지 않은 길이 나를 손짓하는 것 같아 그게 무엇일가 항상 고민하고 생각했다.

어릴 때 엄마는 나의 손을 잡고 동네 점집에 갔었다. 점을 쳤더니 깡마르고 성격이 괴퍅한 점쟁이 할머니가 나는 장차 커서 선생을 할거라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매가 독수리를 채가 듯 딱 잘라서 말했다. 긴장하게 점쟁이 입만 바라보고 있던 수더분한 엄마의 얼굴은 활짝 핀 해당화처럼 밝아졌다.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졌지만 고된 시집살이에 자식에게 맛있는 음식도 제대로 챙겨 먹이지 못하는 기 죽은 엄마의 두 눈은  점쟁이의 말에 작달막한 딸이 금방이라도 선생이 되여 교단에 서있는 것 같아 감격에 겨워 반짝이였다. 자신처럼 갈라터진 땅을 만지지 않아도 될 앞날을 약속받은 거 같아 뿌듯해하셨다.

그래서일가. 나도 어린 나이에 감히 선생이라는 직업을 흠모해봤다. 깔끔한 흰 와이셔츠에 까만 양복을 세련되게 차려 입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천사처럼 보였다. 나도 커서는 밭김을 매면서 모기를 때려잡는 힘겹게 살아가는 농민이 아니라 칠판에 글씨를 쓰면서 지적인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 어릴 때의 소원은 뒤골목에 떨군 딱지처럼 기억에서 희미해졌고 여태 이루어지지 않았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여 여느 사람들처럼 출근하고 가정을 돌보는 워킹맘이 되였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여태 잘하고 있던 업종이 도마우에 오른 고기처럼 이리저리 할퀴우고 있을 때는 불안감이 증폭했다. 솜털처럼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아이들이 내 손을 잡고 뚱기뚱기 걸음마를 배우던데로부터 어느새 내 키를 따라잡았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던 아동으로부터 자기 주장을 고슴도치처럼 내 세우는 사춘기 소년이 되였다.

직장도 육아도 이가 맞지 않는 치륜처럼 삐걱거리는 시기에 들어서면서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게 되였다. 요즘은 자라다가 문득문득 생겨나는 참대의 매듭처럼 인생살이가 순탄치 않아 브레이크를 자주 밟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구름이 없어도 비 맞을 걱정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헛헛함을 느낀다. 무언가에 쫓기우면서 팽팽해질대로 팽팽해진 삶에 채워지지 않은 것이 또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생각하게 되였다. 뜨겁고 시뻘건 용암이 지각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맞춤한 분출구를 찾아다니는 기분이였다.

여태 앞만 보고 달리던 길이 아니라 다른 샛길로도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새 동네를 지날 때마다 샛길이 나진다. 그 동네로 들어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가 궁금할 때도 많았지만 갈길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쳤다. 딱 한번 외지 출장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자정을 넘겨서 주위를 검색해봤더니 유명한 온천이 있는 동네를 지나고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주소를 찍고 찾아갔다. 엄동설한에 실외 온탕에서 김이 몰몰 나고 짜릿하게 뜨끈뜨끈한 온천물은 온몸의 피곤을 가셔주었다.

그후 스케줄을 완벽하게 짜고 온천에 가보았지만 한번도 한밤중에 갑작스레 찾아 갔던 온천의 즐거움과 희열을 느낄 수가 없었다. 역시 계획에도 없던 가보지 않았던 길로 가보니 가슴이 먹먹해지게 감동을 주는 운치가 있었다. 수학처럼 정확히 계산된 인생의 퍼즐을 맞추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가보지 않은 동네의 다른 풍경도 꼭 내 삶에 칠해져야 하는 색갈이라는 것을 느꼈다. 더 늦기 전에 그려진 지도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한비야씨는 <<지도밖으로 행군하라>>는 책도 펼쳐내지 않았던가. 길 잃은 아이처럼 세계의 오지라는 오지는 다 찾아다니며 배낭여행을 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아냈다. 그녀는 바람의 딸이라고 자칭하면서 지구 곳곳을 누비며 국제재난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혀 생각지도 않던 인생을 알게 되였고 또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되여 그녀는 매일매일 신선하고 에너기가 넘친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미로에 서있는 사람처럼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나선다. 

마흔이 넘어서 문학이라는 동네를 거닐게 된 일은 참으로 복 받은 일이였다. 아마도 어렸을 때 어렴풋한 점쟁이 할머니 점괘때문에 마흔이 넘어 외롭고 고독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심리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상담을 배우고 있는 것도 지적으로 살아보겠다는 탈농의식에서 온 것 같다.

보슬비에 푹 젖은 옷처럼 무거워진 가족의 경제부담이 마음을 자주 무겁게 눌렀다. 말썽이 많은 사춘기 애들 교육문제도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직장내에서는 작은 말 한마디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히는 후배들도 어지간히 속을 썩였다. 고민에 머리가 터지도록 아파서 시원하게 터놓으려 해도 마땅히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솔직히 여태 살아오면서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경험했다. 실패에 익숙한 나머지 일상이 되여버렸다. 성공은 몇번 오지 않지만 좌절은 수시로 눈앞에서 애매하게 나를 쳐다본다.
갑갑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 시작한 독서가 글쓰기까지 이어졌다. 명품 문장은 아니어도 한편한편 완성을 하면서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 시간만큼은 고민으로부터 해탈되는 것 같았다.

이 또한 인생에서 가보지 않은 길에 나타난 새로운 풍경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퇴근 후 독서하고 글 쓰고 짬짬히 상담하고 공부를 한다. 마흔이 넘어서 주요 생계수단인 생업에 충실하지 않고 엉뚱한데 시간을 소모한다고 나무라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밍크코트 차려입고 우체국 드나들 듯 못마땅해하는 충고였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도 많이 흔들렸다. 마치 미로에 서있는 듯 했다. 특히 글이 안나와서 고통스러울 때는 누가 보지도 않는 글을 왜 써야지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나타난 신기루 같은 꿈은 치렬하게 살아야 하는 생활을 방해하는 훼방꾼은 아닌지. 현재의 삶이 고단하다고 도망치려는 핑계거리는 아닌지 의심도 해보았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읽지도 쓰지도 않았다. 그랬더니 섭섭하게도 세상은 그대로 너무나 잘 돌아갔다. 하지만 놓친 배를 넋놓고 바라보는 심정이라 할가. 아련하게 미련이 자꾸 찾아왔다. 다시 손 내밀어 배전을 끌어당겼을 때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소리가 씩씩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포기하면 나만 손해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은 자기멋대로 돌아갈 것이고 한번뿐인 생에 후회를 남기기 싫었다.미로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쇠몽둥이를 갈으면 바늘이 될 수 있고 비방울이 떨어져 돌에 구멍을 내듯이 나는 새로운 길에서 가슴을 뛰게 하는 운치를 발견했기에 꾸준히 느긋하게 걸어갈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의 풍경은 경이롭다. 아름답고 눈부시다. 그리하여 외롭고 고독하더라도 발길을 멈출 수가 없다.
미로의 끝은 어디일가. 잡히지 않고 미리 내다볼수 없기에 더 신비롭고 파헤치고 싶다.가보지 않은 길의 풍경은 내 생을 더 풍부하게 색칠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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