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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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상 차릴게요
2018년 06월 30일 13시 40분  조회:1796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제가 한상 차릴게요
김영분
 
오디오 북에서 명절마다 시댁에서 고된 주방일로 쓰러져 눕게 되는 한 어설프게 착한 며느리의 삶을 듣게 되였다. 손이 커서 장을 많이 봐오는 년로한 시어머니 덕분에 다리가 붓도록 서서 음식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준비가 다 끝나갈 무렵이면 곱게 차려 입은 손우 동서가 두손 가득히 선물 꾸러미를 사들고 사뿐히 나타나서는 도울 일 없냐고 상냥히 안부를 물어온다. 식사내내 다른 식구들에게 많이 먹으라고 권유하는 시어머니와 잔심부름만 시키는 남편은 전혀 그녀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착하게 보이고 싶은 며느리는 웃으면서 불만을 쏙 숨기고 가족내 행사를 원만히 치른다.

쓰러진 며느리 때문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녀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바보천치같다는 생각에 얄밉기까지 하였다. 곰처럼 미련하게 일만 할줄 알았지 자기 자신은 억울해도 그냥 참고 지나는 무심함이 너무 한스러웠다.

한편 나자신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였다. 설이 되면 우리 식구들은 바리바리 큰형님네 집으로 모인다. 회사일을 하는 관계로 그믐 전날에야 시댁에 도착한다. 그러면 설 장은 물론 웬만한 음식은 다 준비되여 있다. 시어머니와 큰 형님이 바쁜 와중에 다 준배해 놓은 것이다. 막내 며느리인 나는 애들 손을 잡고 멋내기 코트를 차려 입고 나타나서 설인사를 깍듯이 해왔을 뿐이다.

설준비 때문에 힘들어 하는 며느리를 보니 새삼스럽게 해마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잘해주시는 시어머니와 큰형님에 대해 숙연히 고마워지는 한편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손님처럼 살며시 맛있는 음식만 얻어먹고 돌아오는 자신이 갑자기 사연속의 동서처럼 느껴져 죄스러운 마음이 갈마들었다.

하지만 설 쇠는 내내 몸이 편하다고 마음마저 가벼웠던 건 아니였다. 앉는 자세도 서성이는 모양도 어색하기만 하다. 평소에 우직스럽다가도 시댁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주방일이 서툰 나로서는 마늘 바르고 설겆이 같은 허드레 잡일을 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려 애쓴다.

일을 하는 며느리는 음식을 많이 장만하느라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치지만 나처럼 얻어먹기만 하는 며느리는 왜 마음이 송구방석일가.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작은 며느리라고 내리 사랑을 받기만 했지 어떻게 돌려드려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당연지사로 번잡한 식구들에게 갈비를 찌고 닭을 삶아 대접하는 일은 지레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놀고 먹는다는 인상을 남길가봐 은근히 걱정이 되였다.그래서 주방에 큰 일은 맡아서 할수는 없지만 과일 깎아서 돌리는 일이라든가 맛있게 먹고 편안한척 하고 같이 오락하고 웃고 노는 것은 잘 할수 있었다. 좀 편안하게 해드려야겠다 짐을 좀 덜어드려야겠다 이런 생각은 잠자리가 물 차듯 잠시 스쳐지났지만 주인공 의식이 결핍했던지 어떻게 처사할줄을 몰라 늘 웃고 있으면서도 긴장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또 내 집이 아니니 지레 음식 장만은 내 소관이 아니라는 생각에 설겆이에만 눈독을 들여 나도 설을 쇨 때 일을 좀 했노라고 자기위안을 하기도 했다.

항상 받는 립장에서 신세를 크게 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평소에도 남의 신세를 지기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라 도움을 받으면 꼭 보답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아둔하게 설에는 왜 손우 동서에게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가 하는 후회가 절로 생겨났다. 일이 사랑이라고 봉투보다는 팔소매 걷고 나서는 모습이 진정 보답이였을텐데 말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주어들은 기억이 있어서 미안한 마음을 감사하다는 말로 메우려고 애쓴다.
“정말 맛있어요. 이 많은 음식 장만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
“올해도 얻어먹기만 하네요. 항상 고마워요.”
헌데 이런 인사말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배처럼 하면 할수록 더 미안한 감이 더 든다. 시어머니와 형님이 괜찮다고 연신 손사래를 쳐도 자신은 한없이 미안하고 작아진다.

내 집이 아니더라고 십여년 넘게 설 쇠는 동안 한번쯤은 내가 여러 식구들을 대접하겠노라고 한상 차렸을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념불에는 마음이 없고 제사상에만 성의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고맙다는 말보다는 서툴더라도 한번쯤은 음식을 장만해봤어야 했다.

일 때문에 그믐날에야 시댁에 갈 수 있다는 것도 어찌보면 얌전히 얻어먹기 위한 자기 합리화였을 수도 있다. 주인공의 마음으로 다가갔더라면 훨씬 더 편안하고 행복한 설이였을 것이다.

설 준비하느라 고생하는 시어머니와 형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보면서 올해 설에는 나도 팔 걷어부치고 씩씩하게 한상 차리리라 다짐해본다. 갓 배운 감자탕에 생선도 굽고 오이도 시원하게 무치고 소고기 불고기도 하련다. 십여년동안 루적되었던 미안함과 그분들에 대한 사랑을 따뜻한 밥상에 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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