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에 몸 담은지 거의 스무해가 되여간다. 그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품들이 우리 회사 동료들의 손을 거쳐 세계 방방곡곡으로 전해졌다. 제품 하나를 기획하고 샘플을 만들어 그 효과를 가시화하고 그 뒤엔 바리바리 생산을 해서 소비자의 손에 전달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어린 정성과 숨겨진 노고가 스며들어있다.
소비자는 상품이 필요하고 상품을 만들려면 제조업체가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 그런데 량자는 보통 강을 사이 둔 련인처럼 에이젠트라는 건널목 회사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만나게 된다. 즉 우리가 흔히 부러워하는 갑질하는 바이어이다. 바이어는 제조업체에 오더를 주고 제품을 받아서는 소비자에게 파는 일을 맡아한다.
제조업을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바이어가 상전이다. 왜냐 하면 바이어가 내려주는 오더는 우리 몸에 흐르는 피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더가 많이 내려져 계곡물 처럼 콸콸 흐르기를 바라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빤히 알고 있는 일인지라 미지근하게라도 가늘게 길게 흘러주길 바랄 뿐이다. 그것마저 파투가 나서 흐르다가 물줄기가 마르게 되면 회사는 기름 떨어진 자동차가 되여 끽하고 멈춰야 한다.
회사의 이런 난감한 상황을 꿰뚫기라도 한 듯 밉상인 바이어가 한 둘이 아니다. 샘플만 가득 시켜놓고 컴품이 합격되여 오더가 성사되면 가격을 더 깎으려 드는 바이어는 아주 량심이 있는 편에 속한다. 가격을 좀 내려주소 하고 일정한 실랑이를 벌인 뒤에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오더는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샘플 만들 때부터 눈여겨 온 제조과정에서 불거져 나올 여러가지 미쓰들을 미리 념려해두었기에 생산 도중에서 꼼꼼히 체크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제조업체는 오더 가격은 다소 섭섭하더라도 생산의 의무를 다 할 수 있어 뿌듯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샘플개발비를 뺀 싼 가격에 오더를 진행하고 자기 리익을 더 많이 챙기려는 치사한 사람도 있다. 내가 저주를 퍼부은 건 아니지만 이런 바이어와는 이상하게도 새끼처럼 일이 자주 꼬인다.
샘플개발은 한 사람의 몸에서 머리에 해당한다. 만드는 법과 자재 사용의 적절한 도를 머리가 알고 있다. 팔 다리가 아무리 날렵해도 머리를 쓰지 않고서는 날아가는 새를 잡지 못하는 법이다. 근육질이라 건장하다고 믿었던 팔 다리를 허우적대다가 날이 가고 밤이 깊어간다. 불량품이 산출되고 납기가 지연된다. 그러면 저 멀리 바다 건너 바이어한테 묵직한 박스들을 비행기에 태워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애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운송비용이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른다.
제조업체는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식이 되여 맹랑하고 바이어는 지붕에서 하늘을 날아보겠다고 허공에 몸을 던진 닭이 되여 푸드득거리다 맨땅에 헤딩하고 만다. 요즘 처럼 윈윈하는 세상에 맛있는 커피잔을 부둥켜 잡고 있다가 떨어뜨려 누구도 맛볼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안타깝다고 하면 무드있는 표현이고 실제로는 아주 배 아프고 꽤씸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외에는 일을 잔뜩 시켜놓고 결재를 차일 피일 미루는 밉상 바이어도 있다. 그나마 그룹이라는 명칭을 내건 큰 회사라면 비교적 후날에라도 결재를 후딱 해준다. 부자는 망해도 삼년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헌데 운이 밑바닥을 내리 칠 때는 제일 밉상 바이어를 만난다. 작정하고 잠적하거나 련락 두절이거나 경기 탓으로 돌리고 부도내는 회사들이다. 길 가다가 돌을 걷어찼다고 혼자 발을 끌어안고 호호 거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조심했어야지 하는 자책감때문에 피고름을 짜내여 봉급을 다 주고도 힘들게 일한 동료들 보기가 미안해진다. 누구에게나 몰부었던 정성과 시간들은 누구한테나 모두 값진 것이다. 그 대가가 가시화 되지 않을 때는 정말 화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훌륭한 바이어는 조용하다. 두터운 얼음 밑의 물처럼 쉴새없이 흐르지만 넘쳐나거나 멈추는 법이 없다. 얼음장 속으로 정겹게 흐르는 한겨울의 시내물 소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회사는 물론 그 일을 에워싸고 작업을 하는 동료들의 삶에 안정제를 놓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기에 가족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안정된 령혼은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낸다.
샘플지시도 프로답게 간단명료하다. 가격도 너무 싸면 그쪽에서 되려 긴장한다. 행여 싸구려 제품을 내여줄가봐 은근히 걱정한다. 생산 도중에 문제점을 미리 보고하면 끄트머리를 잡았다고 으시대며 훈계에 급급한 밉상 바이어들과는 달리 충분히 검토하고 같이 해결방법을 모색해준다. 결재도 종종 선불금으로 보내준다. 무릇 재정상황이 안정돼야 자기 제품에 들어가는 자재도 좋은 거로 사들이지 않겠느냐 하는 진실을 꼬집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꺼내기도 한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이런 바이어들이 있어 퍽퍽한 일상에 따뜻한 위로가 감돌기도 한다.
이 상황들을 2대8원칙으로 생각하면 그리 신기할 일도 아니다. 무릇 바이어가 열이라면 둘은 상전 처럼 대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훌륭한 바이어인데다가 매출의 80프로를 거뜬히 차지한다. 나머지 여덟은 매출의 20프로를 겨우 메워주는 대신 엉겨진 실타래 처럼 잘 풀려지지 않는 고민거리를 80프로나 던져주는 일명 밉상바이어이다.
우리는 매일 갑과 을 사이를 실북처럼 드나든다. 우리가 갑질을 하는 바이어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2대8원칙을 빌려 어떤 갑을 선택하고 어떤 제스츄어를 취 할 것인지 뒤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갑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만큼 갑에게는 권위가 있고 남다른 능력이 있다. 갑은 소수고 을은 다수다. 갑은 을을 흥하게 하고 망하게 하기도 한다. 을에게 희망과 안정을 주기도 하고 더러는 피눈물을 흘리게 하기도 한다. 소수가 다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갑이 되였을 때 훈훈한 파문을 일으켜야 행복한 소용돌이로 거침없이 퍼져나갈 것이다.
식당에 가서 밥을 시켜 먹을 때, 옷 가게에서 옷을 살 때, 택시를 탈 때,우리 아이들을 훈계 할 때 우리는 어떤 갑이였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반짝이는 반디불처럼 잠간이 아니라 두터운 얼음밑에서 쉬지 않고 흐르는 겨울 시내물처럼 다른 사람에게 안정감과 푸근함을 선사할수 있는 갑이면 좋겠다.
반복해서 행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거늘 습관이 축적이 된 참된 갑으로 가는 길을 택하면 좋겠다.
신뢰와 행복이 춤추는 소용돌이로 퍼질수 있게 작은 돌맹이도 신중하게 호수에 던져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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