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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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은 왜 거기 있는가
2019년 09월 02일 15시 54분  조회:687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조약돌은 왜 거기 있는가
김영분
 
아이를 키울 때의 일이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 때문에 화가 꼭두까지 치밀어 애를 밀치고 당기고 할 때가 없지 않아 있었다. 밥상머리에서 시간을 질질 끌면서 밥알을 어지러 놓을 때, 집에 무져놓은 놀이감이 넘쳐나는데 매장에만 가면 떼를 쓰며 바닥에 드러누울 때, 퇴근해서 집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옷장이 내장이 널부러진 생선처럼 왈칵 뒤집혀져 있을 때, 얼리고 닥치며 재주껏 달래도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분노가 들끓었다. 여기에다 손톱만큼이라도 심기불편한 일이 가세하면 그 분노가 아이를 향해 화난 샴페인 뚜껑처럼 펑하며 튀여나오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순간에는 얼굴에 붙인 팩을 확 떼여내 듯 친절을 팽개치고 아이 엉덩이를 후려친 적도 있었다. 치고 나면 잠시는 속이 후련했었다. 우는 아이를 흘겨보며 자기 화를 참지 못해 눈물이 핑 돌기도 했었다.
헌데 이때 만약 남편이나 할머니가 같이 아이를 때리면 상황은 또 달랐다.

“아니. 아이를 왜 때려요. 말로 해야지.” 하면서 아이를 감싸고 훈계하는 어른을 흘겼었다. 거짓말처럼 폭풍 같은 분노는 스러지는 거품처럼 사그라들고 어른들의 처사가 그렇게 못마땅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었다. 내가 때리면 괜찮고 남이 건들면 괜히 미워진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내 몸의 분신으로 세상밖으로 나온 아이를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손끝 하나 터치하는 것에도 마음이 아프고 불쾌했다.

늦깍이 글쟁이로 문단에 발을 비스듬히 들여놓은 나는 우리 글이 곧 우리 아이처럼 사랑스럽고 정겹다.
우리 주위 작가들의 글을 읽노라면 친근한 이웃이 성큼 내게로 다가와 오늘은 지지미를 구웠으니 맛보시요 라고 친절하게 인사를 하는 것만 같다. 조선족이라야만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정서를 같이 공감하고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빛나는 보석이 아닌 내가의 조약돌처럼 소박하게 그려주고 기록해준다.

세상에 훌륭한 글들이 많고 많지만 우리 작가들의 글은 또 그들만의 토장국냄새처럼 구수한 맛이 있었다. 마치 스테이크나 고급양주도 일품이지만 보쌈과 막걸리를 더 자주 찾는 그런 심정이라 할가.
물론 나도 초보문학인이랍시고 마음 맞는 만만한 문학인들끼리 모여 우리 문단의 병폐에 대해서도 조심히 거론을 한적은 있었다. 그 때는 신나게 문단을 다 알은 것 처럼 평론 같은 평가를 해대기도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왜 글이 안 쓰여지는지 어떻게 하면 소재 발굴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침 튕기며 토론을 했었다.
입방아가 잘 찧어져 마음과 얼굴이 빨갛게 상기될 때쯤이면 우리는 모두 알아챘다. 우리 글의 병폐에 대한 일부 비평도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허심탄회한 토론도 사실은 모두 우리 문학에 대한 애착때문이였다는 것을.

자아비평을 함으로써 우리 문학이 차지한 위치와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희미하게나마 점을 찍을 수 있었다. 앞으로 피 같은 여가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가 하는 기특한 생각도 삼천리 강산 수놓 듯 한땀한땀 넓혀갔다.
그런데 우리 문단의 글들이 읽을 재미가 없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문학그룹의 독자들이 대놓고 염장을 찌르는 댓글을 보았다. 나오지도 않는 글을 치약 짜듯 힘겹게 써내려가고 있는데 독자로부터 예리한 지적을 받으니 저도 모르게 발끈했다. 사실은 글 같은 글이 쓰여지지 않은지 오래된 나의 정곡을 찔려서 마음이 무지 아팠다.

보채는 아이를 혼신의 힘을 다해 얼리고 있는데 남편이 도와준답시고 팔을 걷어부치고 아이를 때리기라도 한 듯 심기가 불편해졌다. 남편도 애가 미워서 때렸을 리는 만무하다. 어쩌면 나보다도 아이를 더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데 도저히 박자에 맞춰주지 않고 칭얼거리니 화가 단단히 났을 것이다.  
200만을 웃돌던 우리 민족은 개혁개방의 세찬 파도를 타고 해외나 연해도시로 거침없이 흩어져 나갔다. 그 와중에 제일 만회하기 어려운 손실이 학생의 감원으로 민족학교가 하나 둘 사라져가면서 우리 글에 대한 아래 세대의 배움이 바위 만난 파도처럼 여기저기 부서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경제리익을 최대화하는 산업시대에 들어서면서 어른들도 글 보다는 물질과 재부에 더 관심을 쏟는다. 특히 고향을 등지고 타향의 달을 자주 쳐다보아야 하는 세대로서 경제활동도 우리의 전통방식보다는 새로운 구도를 접하고 변화를 가져왔다. 그로 인해 문학과 문화생활 역시 자연스레 마트에 진렬된 상품처럼 인기상품만 판을 치는 모습을 암담하게 바라봐야하는 상황을 접하게 되였다.

원래부터 가냘프던 나무가 태풍을 만난 듯 우리 문학이 휘청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건 아니다. 신은 길을 보여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하기도 한다고 했다.
읽을 거리가 식상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지적은 독자들의 우리 글에 대한 애착과 사랑의 회초리라고  생각한다. 새로이 구상하고 신선한 글감을 위해 밤을 패는 작가들도 우후죽순마냥 키돋움을 하고 있다.

낮과 밤이 바뀌 듯 쉴새없이 변화하는 삶의 현장에서 소신껏 적응해나가며 가치를 창조해내고 또 그속의 소금같은 스토리들을 흘어진 보석을 꿰듯 차곡차곡 기록해나간다.
기록의 그 사명을 기꺼이 다해야 할 것이다.
민들레홀씨처럼 흩날려다녔지만 단단히 뿌리를 내렸던 그 사연들을 우리의 숨결로 다듬어야 할 것이다.
도로에 박힌 조약돌도 자기의 존재가치가 있다. 그 조약돌로 인해 도로가 한결 창조적이고 아늑하고 다정하다. 걷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고 발끝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우리 글이 세계 주류는 아니지만 많지 않은 우리 민족이 당당히 지구에 좌표를 찍을 수 있는 하나의 징표라고 감히 자부한다. 제일 완벽한 글은 아직 쓰여지지 않았고 가장 사랑받는 작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서툴고 미흡해도 우리 글로 계속 기록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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