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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원이 된 기쁨
2021년 05월 11일 10시 20분  조회:778  추천:2  작성자: 예술세계
방송원이 된 기쁨
□서방흥
 

   1970년 6월 29일, 나는 아침 일찍 훈춘—도문행 뻐스에 몸을 실었다. 산길이 험악하여 내내 뻐스는 장장 3~4시간 덜컹거리며 달려서야 도문역에 도착하였다. 이어 렬차에 올라 한시간 남짓 지나 연길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저녁 무렵이였다.
   역에 마중 나온 연변인민방송국 일군들을 따라 무작정 들어선 곳이 바로 방송국 울안 동쪽에 자리 잡은 단층숙사였다. 창문너머로 라지오형태로 지은 아담한 방송국 2층 청사가 한눈에 안겨왔다. 나의 마음은 저으기 설레였다. 그 때의 방송국청사는 아마 지금의 국제호텔처럼 멋져보였던 것 같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눅잦히면서 필기장이며 수첩, 만년필 등을 다시 멜가방에 정리해넣었다.
   이번 걸음은 방송원강습반에 참가하라는 통지를 받고 오게 된 것이다.
   이튿날 아침 8시 반, 2층에 있는 방송조 사무실에서 나는 그동안 라지오를 통해서만 들어왔던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였다.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는데 내가 그렇게도 마음속으로 그리던 묵직하고 굵은 톤의 남성 방송원과 친절하면서도 부드러운 톤의 녀성 방송원의 손을 잡는 순간, 너무 격동되여 오래동안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서로 인사를 마치고 바로 강습이 시작되였다. 방송조 조장이 방송원 모집의 전반 과정, 두주간의 수업내용과 강습요구를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이번 강습에는 400여명 응시자 가운데서 예비합격자로 뽑힌 남자 4명, 녀자 6명 이렇게 도합 10명이 참가하게 되였다. 방송국에서는 이전처럼 모집광고를 내지 않고 직접 각 현, 시에 내려가 여러 지방을 돌면서 선발하였다. 방송조 조장은 강습을 거친 후 재평가를 통해 최종 남자 2명, 녀자 3명을 남길 예정이더라도 조건미달시 한두명만 남길 수도 있다면서 강습생들더러 마음의 준비를 잘하고 자기의 능력과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줄 것을 희망하였다.
   강습반에서는 화술의 기초로부터 시작하여 뉴스를 비롯한 순서예고, 일기예보, 통신, 실화 등 다양한 쟝르의 문장표달을 가르쳤다. 화술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많은 것들이 신기하였다. 잘 배워야겠다는 다짐으로 저녁시간에도 쉬지 않고 학습과 훈련을 계속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힘들고 뜻 대로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났고 은근히 불안해났다. 마지막 시험을 며칠 앞두고 나는 죽기내기로 발음법을 익히고 여러 쟝르의 문장들을 밤 늦게까지 소리 내여 읽으면서 각고의 열정을 쏟았다. 특히 사전에 내준 준비원고를 말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모든 발음이 정확하도록 애쓰면서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렇게 두주간의 강습을 마친 우리는 마지막날 평가시험을 치르게 되였다. 시험형식에 따라 사전에 준비한 원고와 즉석에서 내준 다른 한편의 글을 읽고  록음하게 되였다.
   ‘이 록음에 근거하여 최후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지? 강습반에서의 총적 학습과 훈련정황에 준하는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록음을 마친 후 자기도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록음한들 얼마나 큰 차이가 있으랴.
   제1단계 시험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부터 강습이 끝날 때까지 늘 이러저러한 우려와 압력 속에서 지냈지만 그래도 언제나 마음은 기뻤고 한가닥 희망은 남아있어 힘이 되였다. 짧은 기간의 학습이였으나 배운 것이 많았다. 그러나 학습을 마치고 남긴 록음이 최후를 결정한다는 심사기준이 떠오르자 갑자기 기쁨도 즐거움도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한편 강습시간을 연장하여 더 배우고 훈련한다면 꼭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신심도 생겼다. 그렇다고 방송국에 그냥 버티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천근 짐을 진 듯한 무거운 마음으로 연길을 떠났다.
   시간은 빨리도 흘러 강습반에 참가한 지도 어언 9개월이 지났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또 봄이 왔다. 그 사이 나는 인민공사(지금은 훈춘시 양포만족향)의 선전간사를 맡고 드바삐 보내다보니 방송원 강습에 갔다 온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 하루, 일 보러 포자연대대에 내려갔다가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인민공사 우편배달원이 웃는 얼굴로 나에게 편지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온 편지였다. 순간, 나의 마음이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하였다. 속으로는 ‘안되면 말지.’ 하면서도 ‘합격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면서 봉투를 열 용기가 안 났다. 한참후에야 나는 긴 호흡을 하고 나서 편지봉투를 열었다. 빨간 연변인민방송국 도장이 찍힌 방송원 합격통지서가 눈에 확 안겨들었다.
 
   “서방흥동무:
   동무가 연변인민방송국 방송원으로 합격되였음을 알리며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4월 30일까지 호구, 식량, 조직관계 수속을 하여가지고 본 방송국에 도착하십시오.
     연변인민방송국
     1971년 4월 1일”
 
   나는 날듯이 기뻤다. 그러면서도 하고 있는 인민공사일 때문에 우려심도 없지 않았다. 사실 방송원시험의 전반 과정을 인민공사 지도부에서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인민공사 당위서기는 상급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보내줘야지 하면서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1971년 4월 21일, 나는 인민공사의 동료들과 마을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향을 떠났다. 정든 고향, 정든 사람들과 헤여지는 순간 방송원으로 되였다는 기쁨보다는 소중한 그 무엇을 잃은 것 같은 서운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북받쳐올랐다. 차창가에 몸을 기댄 나는 고향사람들의 바람에 어긋나지 않게 첫시작부터 잘해보리라 속다짐하였다.
   내가 연길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시였다. 마중 나온 방송국 찌프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방송국이 아니라 축구장이였다. 축구장의 열기는 대단하였다. 방송국 임직원들이 박수를 치며 응원했고 두 팀이 격렬하게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알아보니 문화계통 축구시합이였다. 어리둥절함도 잠시, 이 때에야 나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처음 방송원시험 면접 때 무슨 특장이 있느냐고 묻기에 “학교에서 축구를 좀 찼다.”고 하였던 게 떠올랐다. 한편 그 때 ‘학교’ 발음이 ‘핵꾜’로 되여 창피했던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방송국 책임자가 심판원한테 뭐라고 말하자 한 선수가 나오고 내가 들어가게 되였다. 유니폼은 그대로 웃옷만 바꿔입고 아래는 내복(아래우에 고무줄을 넣은 속옷)만 입은 채로였다. 왼쪽 윙어(왼쪽 날개 공격수) 위치에 배치되였으나 경기가 시작되자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뛰며 미드필드 역할을 하게 되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 날 일이 눈에 선하다. 내복을 기폭처럼 날리며 나는 뽈을 몰고 문대로 향해 뛰였고 응원소리와 함께 뽈은 그대로 꼴문 안에 날아들었다.
   그 이튿날은 목요일, 나의 첫 출근 날이였다. 신입방송원들 모두에게 전용 사무상과 걸상이 차례졌다. 
   첫 회의에서 방송조 조장은 첫걸음을 잘 내디뎌야 한다면서 정식 방송을 시작하기 전까지 집중훈련과 함께 선배방송원들이 한 사람씩 맡아 지도하게 된다고 하였다. 나의 지도선생은 녀자방송원이였다.
   회의후 우리는 록음실에 들어가 록음기 조작법을 비롯한 전반 프로제작과정을 돌아보았다.
   나의 학습과 훈련은 지도교원의 요구에 따라 이뤄졌다. 처음은 발음법칙의 장악과 함께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였는데 자음발음들에서의 혀의 위치, 모음발음들에서의 입술모양 등 발음기관의 정확한 부위를 찾아 발음해야 했다.
   처음 받아쥔 문장 가운데서 ‘오늘 낮부터’, ‘맞고’, ‘변명’, ‘몇몇이’ 이런 단어들을 발음해보게 했는데 [오늘 낟부터]가 아니라 [오늘 납부터]로, [맏꼬]가 아니라 [막꼬]로, [변명]이 아니라 [볌명]으로, [면며치]가 아니라 [몀며치]로 틀리게 발음하게 되는 원인을 찾아 시정하도록 했다. 발음은 습관적으로 틀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고서는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이렇게 매 원고를 련습할 때마다 발음을 계속 고쳐야 했고 내용표달을 위한 끊기와 잇기 등 화술의 기초적인 부분의 학습과 훈련을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했다.
   어느 하루, 나는 그동안 수집하여 만든 발음훈련자료를 지도교원에게 보여드렸다.
 
   [훈련자료]
   1. 나갔는가: 학교에서 상급생이 나갔는가 살피였다.
   2. 돋구는, 마련했다: 구미를 돋구는 음식을 마련했다.
   3. 몇몇: 선생님은 몇몇 학생들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4. 눈물: 밥 먹기 전부터 눈물이 앞섰다.
   5. 전문: 고중, 중등전문학교 학생들의 생활을 반영했다.
   6. 인물: 새로운 인물들이 용솟음쳐나왔다.
   7. 내쫓고: 채소밭에서 닭을 내쫓고 있었다.
   8. 몇백원: 그들은 몇백원의 돈을 들였다.
   9. 옷차림: 람루한 옷차림에 때투성이였다.
   10. 네댓번씩: 하루에도 네댓번씩 먹어댔다.

   이 훈련자료는 정확한 받침소리 발음과 발음법칙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 나의 발음실정에 따라 만든 것이였다. 선생님은 잘 만들었다고 치하하면서 나더러 읽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혀를 분주히 웃이뿌리에 붙였다 떼면서 [ㄴ], [ㄷ] 받침 발음을 정확하게 내는 데 주의하였다. 선생님은 발음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면서 왜 우리말의 긴 음(장음)을 전혀 발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실 우리말에 장음이 있다는 것은 강습을 통해 알고 있지만 어떤 음절이 긴 음인지 도저히 가릴 수 없었다고 이실직고하였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장음에 대해 알려주었다.
   “훈련자료의 ‘구미를 돋구는 음식을 마련했다’에서 [구], [음], [했]은 다 긴 음입니다. 긴 음은 모두 사전에 표기가 되여있는데요. 조선에서는 긴 음 우에 짧은 금을 그어 표기했습니다. 이제 훈련자료에서 긴 음들을 찾아보십시오.”
   나는 사전을 뒤져가며 훈련자료에서 긴 음을 찾아내면서 열심히 장음을 익혔다.
   그후 장음(장단법칙)뿐만 아니라 우리말 음절의 고저법칙과 강약법칙 수업이 계속되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초를 든든히 다지는 것이 후날 방송을 잘할 수 있는 기본임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훈련하였다.
   정식방송전의 학습과 련습은 이렇게 하루하루 이어졌다. 한달이 지나도록 정식 방송에 나가라는 지시는 없었다. “언제면 너의 방송을 들을 수 있느냐?”는 고향친구들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조바심이 들었고 기다려지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어느 날 아침, 신입방송원들의 회의가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조장이 낮방송 순서예고 원고를 한편씩 나누어주면서 당부하였다.
    “이건 이미 방송된 낮방송 순서예고인데 오늘 오전 모두 잘 련습해보세요. 오후에 검사하겠어요.”
    나는 정신을 집중해 소리내여 읽었다. 그리고는 어려운 발음과 장음단어를 찾아보았다.
    (원고의 장음은 타자의 편리를 위해 두점을 찍어 표기하였다.)
 
    [낮방송순서]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낮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본 방:송국에서는 중파 12:06키로싸이클 파장 2:48.8메터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시간 이:후에 진행될 방:송순서를 예:고해드리겠습니다.
    이 순서소개에 이어서
    11시 15분 노래 〈일:할수록 성수나요〉, 〈모를 내세〉 그외 한곡
    11시 30분 경제정보
    11시 35분 매:주일가 〈오:월의 찬가〉
    11시 40분 특집방:송
    11시 45분 청년생활
    12시 00분 전 주 각 방:송소 중계방:송 및 일기예:보
    12시 15분 광:고
    12시 20분 리:론학습
    12시 30분 음악 〈백산의 붉은 꽃〉
    12시 35분 광:고
    12시 40분 소:설련속랑:독 〈조야와 수라〉 제:1회
    12시 55분 중앙농업방:송학교강좌
    13시 20분 노래 〈꽃 피는 마을〉 그외 몇곡
    13시 40분 낮방:송이 끝납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은 이 시간 이:후에 진행될 방:송순서였습니다.
 
   오후에 출근하자 신입방송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장은 방송프로예고 원고를 정식 방송한다는 자세로 읽어보라고 포치하였다. 신입방송원들은 저저마다 열심히 방송하였다. 프로예고 방송이 끝나자 조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방송프로예고는 주로 전달을 위주로 하는 만큼 그 표현에서 발음을 똑똑히 하면서 말에 가깝게 해야 합니다. 프로예고의 내용 리해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청중들이 그 소개에 의하여 선택성 있게 시간에 맞춰 방송을 청취하게 되므로 시간과 프로내용은 어느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똑똑히 전달되도록 표현해야 합니다.
   방금 동무들이 원고작업에 기초하여 자기의 개성과 특성을 살려 프로예고를 방송했는데 모두 괜찮게 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감정표달이나 발음을 입말에 보다 가깝게 한 서방흥동무의 표달이 비교적 잘되였습니다. 그의 표달에서는 첫마디 인사말에서부터 청중을 존경하고 벗으로 사귀는 그러한 다정다감한 감정이 안받침되여있었습니다. 이러한 감정이 계속되면서 반복되는 방송시간 안내에서까지 극력 말로 표현하려 했기에 방송이 뚝뚝 끊기는 것을 피면할 수 있었고 반복되는 것 같은 억양의 빈도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음뿐만 아니라 장음단어들을 제대로 찾아 발음한 데서 방송흐름이 유순하여 듣기에도 좋았습니다.”
   조장은 앞으로 빠른 기한내에 방송프로예고와 같은 간단한 프로들부터 시작하여 정식 방송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과 간단한 것일지라도 모두 종합적인 표현기교를 요구하는 만큼 련습과 훈련에서 파고드는 정신을 가질 것을 바란다고 하면서 회의를 마쳤다.
   나는 비록 칭찬을 받았지만 도리여 자기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부끄럽게 생각되였다. 그 이후로 자기의 학습계획에 따라 더 열심히 훈련해나갔다.
   지도교원은 자기의 방송당번 때마다 자기가 담당하는 프로예고를 나더러 먼저 표현해보게 하고서는 나타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시정해주었고 일기예보도 때가 되면 나더러 기상국에 전화를 걸어 먼저 한문으로 받은 후 조선문으로 번역하고 그것을 표현해보게 하였다.
   며칠후, 오전 9시가 갓 넘자 조장은 래일 방송프로예고라고 하면서 나더러 먼저 원고작업을 해보라고 하였다. 나는 은근히 긴장되였지만 마음을 다잡고 내용을 훑어보면서 발음과 장음, 표현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찾아보았다.
   30분후였다. 조장은 자기가 맡은 프로의 록음을 끝낸 후 사무실로 올라왔다.
   “프로예고 원고작업을 끝냈지요?”
   조장은 나의 곁에 와 앉으며 자못 엄숙하게 묻는 것이였다.
   “네.”
   “그럼 좋습니다. 먼저 정식 방송한다는 기분으로 읽어보십시오. 래일 하루 프로예고 록음은 동무가 담당하기로 결정되였습니다.”
   “네? 제가 말입니까?”
   나는 저으기 놀랐다. 훈련할수록 나 자신이 진정 방송원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갑자기 마이크 앞에 서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조직의 결정입니다. 별다른 우려를 갖지 말고 자기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보십시오.”
   나는 큰숨을 몰아쉬고 참답게 방송해나갔다. 어쩐지 며칠전에 선생님 앞에서 훈련하며 읽을 때보다 자꾸 긴장해났다.
   아차, 그만 실수가 생겼다.
   “…아침방송은 8시에 끝납니다. 다음 낮방송은 10시 50분에 시작하여 순서예고 이어서 노래를 보내드립니다. 다…달님은…”
   아침방송 프로예고를 아주 ‘멋지게’ 방송하다가 그만 낮방송 프로예고중의 〈달님은 내 사랑〉에서 희미하게 찍힌 글자 때문에 꺽꺽거리고 말았다.
   아침방송 프로예고에서는 낮방송과 저녁방송의 예고까지 하기로 되여있다. 나는 비록 낮방송 프로예고에서 틀렸지만 말없이 아침방송 프로예고 첫시작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어길 수 없는 ‘규정’이였다. 그런데 그 날은 실수가 참 많았다. 벌써 세번째나 첫머리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나는 네번째 만에야 아침프로예고 방송을 한곳도 틀리지 않고, 그것도 나로서는 최고 수준이라 할 만치 마쳤다.
   “수고했습니다. 정식으로 방송에 내보낸다니 대단히 긴장되는가 보군요. 이제 곧 록음실에 들어가 록음하겠는데 그 땐 긴장을 풀고 대담하게 해보십시오. 오늘 긴장해서인지 소리가 좀 높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록음실에 들어가 정식 록음할 때의 자세, 마이크와의 거리 등과 일부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하여 재차 까근히 알려주었다.
   “이번 록음방송은 동무가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처음 청취자들과 대면하는 프로입니다. 어떻습니까? 잘할 수 있겠죠?”
   “네!”
   나는 록음하기 전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리용하여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한번 련습하였다.
   록음준비가 다되였다. 마이크를 마주하고 앉은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록음 키를 당겼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아침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침착하게 방송해나갔다. 록음실 밖에서는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방송원들과 다른 신입방송원들이 듣고 있었다.
   나는 끝내 한번도 틀리지 않고 아침프로예고 방송록음을 끝냈다. 4분 20초였다. 뒤이어 낮방송 프로예고와 저녁방송 프로예고의 록음도 순리롭게 끝냈다.
   록음실에서 나오니 선생님이 나의 손을 덥석 잡아주었다. 나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나는 자기의 방송이 성공적이였는지 아니였는지를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그렇게도 기뻐하는 것을 보니 말 못할 느낌이 가슴을 꽉 메우며 치밀어 오르더니 눈물이 되여 왈칵 쏟아져나왔다.
   그동안 자신이 들인 피타는 노력 그리고 나에게 몰부은 선생님들의 심혈이 헛되지 않고 이 시각 자그마한 열매라도 맺혀 보답하게 되였다는 데서 오는 기쁨의 눈물이였다.
   나는 마침내 방송인생에서의 첫걸음을 내디디였다. 
 
《예술세계》 2021년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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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흥 프로필
길림성 훈춘 출생
중국 조선족 아나운서 제1임 방송지도
연변대학 통신학부 중문학부 졸업
1984년—2007년, 연변인민방송국 방송부 주임 력임
1986년, 1988년, 1990년, 1992년 길림성방송콩쿠르 특등상
1994년, 길림성 10대 방송원(十佳播音员)으로 선발
《방송원입문》(1995년), 《현대화술론》(2002년), 《말하기와 읽기 기교》(2012년) 등 저서 출간
2017년, 중공연변주위,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 특출기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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