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 몇 백 년 전의 신라 때 성덕여왕을 짝사랑하는가봐. 자꾸 성덕여왕의 이름을 외운다. 성덕여왕은 참 멋진 데가 있다. 신라 때 지귀라는 별 볼일 없는 노총각, 언감생심 성덕여왕을 사랑했다. 아니 짝사랑했다. 그래서 자꾸 선덕여왕의 행차만 찾아다녔다는 지귀. 그러다가 어느 날 성덕여왕의 불국사행차에 좇아갔다가 만나지 못한 허탈감에 피로가 겹치며 자기도 모르게 절 밖에서 소르르 잠이 든다. 이것을 안 성덕여왕은 절에서 나오자 자기의 팔찌 하나를 끌러 지귀의 가슴 위에 놓아두고 간다~ 잠간, 나는 이 장면이 너무 멋있다. 선덕여왕이 멋있다. 장가 못 간 불행한 노총각 지귀에 대한 인간적 동정이고 배려를 하는 선덕여왕이 멋 있다. 지고무상한 일국의 왕이 별 볼일 없는 최하층의 인간에게 배푸는 동정과 배려임에라 그것은 더 없이 돋보인다. 이것이야 말로 보편적 인도주의의 한 보기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다. 우리 반에는 참 똑똑하고 꽃 같은 처녀들이 많았다. 나는 이 처녀들을 참 많이도 짝사랑했었다. 우리 반에는 나 말고도 나 같은 놈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속에는 괴짜가 있었다. 별명, ‘카시모도’. 허리 구부정하고 너무 못나 빅또르 · 유고의 장편소설『빠리노따르담사원』에 나오는 벙어리이고 곱새인 종치기 이름을 따서 불렀다. 그런데 바로 이 카시모도가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쁜 처녀동지인 ‘양귀비’에게 사랑의 프로포즈를 했다. 결과는 영낙없이 NO였다. 그래도 카시모도는 사랑의 미련을 못 버려 사랑의 연시를 써서 그녀에 대한 애모의 정을 토로했다. 이런 시들은 사랑의 명작으로 되어 당시 문학잡지에 발표되기도 했다. 그래도 성차지 않은지 카시모도는 그녀가 오가는 길목에 서서 ‘거저 보기만 해도 좋은’ 짝사랑을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처녀동지였다. 자기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추물 카시모도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에 대한 최대의 모독이고 이 세상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카시모도에게 붙여준 별명은 ‘정신병자’였다. 그래서 카시모도는 결국 별명 하나를 더 얻게 되었다.
나는 항상 나를 못난이라고 생각한다. 용기없는 못난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때 연애 한번 변변히 못한 나다. 겨우 한다는 짝사랑은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고 끝없는 환상에만 빠졌다. 나는 늘 나는 적어도 지귀와 카시모도보다는 잘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이들보다 못난이다. 여왕이면 어떻고 양귀비면 어떻고 대담하게 사랑의 프로포즈로 나간 그들, 나보다 잘 났다. 사랑에 무슨 죄가 있으랴! 사랑은 워낙 짝사랑으로 시작되는 법이매랴. 나는 지금에야 사랑의 용기가 난다. 사랑하는 그녀가 대통령이라도 프로포즈를 할 용기가 난다.
나는 누구의 짝사랑도 받고 싶다. 이때까지 받은 적 없는 짝사랑을. 그럼 나는 그 짝사랑을 선덕여왕처럼 인간미가 넘치게 우아하게 맞이하리라. ‘양귀비’처럼 그렇게 매정하게 놀지는 않으리라!
200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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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자 : wu
날자:2007-05-09 09:46:17
한바탕 웃고 갑니다 선생님의 유머감에 아마 팔찌의 그림자라도 받길 원하는 미인들이 있을 텐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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