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優則仕이라 우리 전통적인 유교사회에서 공부를 잘 하면 출세한다는 법. 그래서 남자들 기를 쓰고 學而優則仕하기. 일자무식인 우리 아버지도 學而優則仕하기. 우리 아버지는 우리 큰 형님을 대단하게 여겼다. 우리 큰 형님이 워낙 공부를 잘 했기 때문이다. 우리 큰 형님의 명언 한마디 들어보시라. 공부, 그 잘난 거 호박에 대침놓기. 공부가 그렇게 쉽다는 것이다. 우리 큰 형님은 그 대학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1960년대 초반에 대학에를 척 붙었다. 學而優則仕할 가망이 보였다. 그때 우리 아버지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우리 이 큰 형님이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실망시키다니 참. 1960년대 초반의 조선바람에 다니던 대학 중도이폐하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으로 제 친구들 몇이하고 덜컹 조선으로 가버렸던 것이다. 잠간 다녀온다고 갔건만 영영 못 돌아오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의 學而優則仕의 꿈은 산산쪼각이 나고. 그래서 우리 아버지 口頭闡 하나 생겼지-상철이 그 자식 있으면 크게 출세하겠는데~ 참! 우리 아버지의 이 口頭闡은 우리 둘째 형, 셋째 형, 넷째 형, 다섯째 형 줄줄이 대학에 못 붙으니깐 푸푸 내쉬는 한숨과 더불어 더 잦아졌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에 붙으니 이 口頭闡은 사라졌다. 내가 우리 아버지한테 효자노릇 한 거 별로 없어도 대학 하나 붙어준거만은 대단한 효자노릇을 한 것이다. 내가 대학에 붙었다는 순간 아버지는 밝은 표정에 이마의 주름살을 쫙 펴며 없는 수염이나마 쓰다듬는 손놀림을 하며 으흠, 그럼 그렇겠지! 하고 하하하~ 호쾌한 웃음을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동네방네에 광고~ 우리 아들 대학에 붙었네, 우리 아들 대학에 붙었네… 그리고는 술상 벌리고 동네사람 불러들이기. 얼씨구 지화자 좋다 연일. 아버지는 내가 공부 안 한다고 그렇게 눈을 부라리더니 이젠 나를 제일 고와한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 모아놓고 하는 말이, 이 자식들아, 그래도 우리 집에 출세한 놈은 상렬이뿐이다. 너네 돈 많이 벌어 상렬이한테 많이 보내거라. 그래야 공부를 잘 하지. 누구의 지엄한 명이라고 우리 형제들은 대학기간에 나한테 경쟁적으로 돈을 부쳐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버지덕택에 대학기간에 돈을 여유롭게 주물럴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 아버지한테 그렇게 실망을 안겨 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집 쪽의 중학교 교원으로 배치 받았다. 우리 아버지는 이것이 못 마땅했다. 짜식, 4년 대학 공부했다는 꼬라지가 고작 그 꼬라지냐 하는 시답지 않은 표정. 우리 아버지 마음속에는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면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금의환향’을 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옆에 비서들이 따라 붙고 기사들이 삐까삐까 승용차로 모시는 적어도 ××시 인민정부의 주임이나 장쯤이나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시세말로 문중을 빛내고 조상을 영예롭게 하는 光宗曜祖할 것을 바랐다. 그런데 내 꼬라지가 개도 안 먹는 똥을 싸는 훈장노릇을 한다니 허구픈 마음에 멍 하니 앉아 할 말을 잊은 그 모습만 보이셨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인민교사요, 인류영혼의 기사니 하는 신성한 말이 잘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워낙 선생노릇을 좀 우습게 보았다. 우리 삼촌 둘 가운데 큰 삼촌은 중학교에 작은 삼촌은 소학교에 교원노릇을 했는데 우리 아버지는 농사짓는 자기보다 늘 못하게 보았다. 훈장 노릇한다는 양반들이 자기보다 못 산다는 것이다. 내 어릴 때 기억에도 우리 교원노릇을 하는 두 삼촌은 쩍 하면 우리 집에서 쌀을 가져가든가 무엇을 잘 가져갔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이제 한다는 얘기가-야, 저 봐라, 저 누구 집 자식은 대학 졸업하고 무슨 주임을 한다든데, 저 누구 집 자식은 대학 졸업하고 무슨 국장을 한다든데, 저 누구 집 자식은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막 번다든데...
그래서 나의 연구생공부도 시작. 아버지 내 연구생에 붙었어요. 무어, 연구생? 얘, 이제 연구생 졸업하는 날엔 한 자리 크게 합니다. 어 진짜냐? 그래 해봐라. 그런데 3년 연구생공부도 우리 아버지에게는 나무아무타불. 내가 대학교에 훈장으로 남았으니 말이다. 나는 또 우리 아버지를 속인 셈이다. 연구생 졸업하고도 아무런 주임이나 장자 자리 하나 못 얻어했으니깐. 그래서 나는 아버지 보십시오, 대학 선생은 중학교 선생하고 다름니다, 돈을 많이 법니다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허리띠 졸라맨 덕택에 장만한 얼마간의 돈을 우리 아버지에게 안겨주었다. 돈으로 떼워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니 그 꼬락서니 다 알고 있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표정에서 헤이, 그래도 한 자리 해야지 하는 아버지의 비탄에 가까운 애원을 읽었다. 그래서 나는 효자노릇 하느라고 마음에 없는 무슨 주임이요, 주석이요 하는 나부랭이가 붙은 것들이 차례지면 아니 아니 하면서도 말없이 받아 물었다. 그리고는 꼭꼭 아버지한테 회보하기. 아버지, 내 무슨 주임, 주석입니다. 은근히 과대포장까지 하면서. 내가 우리 학과의 자습대학 주임자리를 맡아볼 때다. 정말 별 볼일 없는 자리다. 그러나 동료들이 우교장하기도 한다. 농담하느라고. 그래서 내가 우리 아버지한테 아버지 내 자습대학 교장입니다, 차도 타고 다닙니다고 회보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우리 아버지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구나. 그리고는 임마, 교장을 하자면 사람이 성실해야 되고 말을 적게 해야 되고 위엄이 있어야 되고... 어쩌구 하며 교장학을 한바탕 강의하시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말 우기는 일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박사도 우습게 본다. 내가 어렵게 박사공부 할 기회를 얻어 한국에 간다고 야단법석을 떠니 한다는 말씀이 공부만 자꾸 해서 뭘 하냐, 그 잘난 박사 한 자리 하는 것만 못하니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또 포스터닥을 하러 떠난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한테 말을 할까말까 고민이다. 말씀을 드려보았자 박사하러 떠날 때 하시던 말씀을 그대로 반복할 것 같다. 괜히 심기만 불편하게 할 것 같다.
금년 여든이 훨씬 넘은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나한테 學而優則仕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學而優則仕의 출세가도와는 인연이 없다. 내 체질학적으로도 學而優則仕와는 맞지 않다. 나는 교수본연의 평상심으로 애들이나 가르치고 아카데미적 정신유희를 즐기는 것이 낙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벼슬길과 학문의 길이 양자택일로 주어질 때 나는 서슴없이 후자의 길을 택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버지한테는 영원한 불효자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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