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동준
국내의 음식배달시장에 삼총사가 있다면 사람들은 대개 바이두배달(百度外卖), 메이퇀배달(美团外卖), 그리고 어러마(饿了吗) 등 브랜드를 떠올릴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도시의 음식배달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부인 연길시에 가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필자가 만난 과과왕회사(呱呱网)의 CEO인 박세봉은 조선족사회 소비문화의 특점을 잘 파악하고 연길 현지의 음식배달시장을 공략한 일인자이다.
10년간의 상해생활, 창업의 기초를 닦다
박세봉은 어릴적부터 취미가 명확했다. 방과후 친구들이 숙제를 완성하고 과외수업을 받을 때 그는 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할아버지가 연변에서 이름난 화가인 리유로 부모들은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에 접어들어 박세봉은 학업을 그만두고 만화 그리기에 올인하였다. 그리고 차츰 회화기초를 토대로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는 2000년초, 인터넷은 속도가 느렸고 PC방이 점차 보급되는 시점이라 국내에는 아직 디자인에 관한 교과서가 매우 적었다. 박세봉은 한국에서 출판한 디자인 교과서를 구입하여 자체로 배웠다.
일정하게 실력을 쌓은 박세봉은 연길의 한 IT기업에 취직을 하였는데 설계를 아는 직원은 전 회사에 그 혼자뿐이였다. 당시 회사 사장은 한국에서 IT산업의 성황을 보고 곧바로 연길에 돌아와 회사를 차렸던것이다. 그곳에 있는 몇년간 박세봉은 인터넷 쇼핑몰, 꽃배달 전문사이트 등을 만드는데 참여하였고 명함, 화첩 심지어 고추장 포장까지도 설계했다. 그 당시 모방할 선례가 없다보니 그의 작품은 가장 좋고 훌륭한것으로 평가됐다. 박세봉은 회사에서 능력쌓기의 한계점에 다달았음을 느끼고 더욱 높은 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고 싶었다.
2003년, 19세의 나이에 박세봉은 단돈 1500원을 가지고 상해로 떠났다. 부모님은 그를 적극 지지해 나섰다. “부모님은 18세를 넘기면 스스로 독립해야 된다고 여러번 얘기하셨습니다. 연길에 있기보다 외지에 나가 단련받는것이 자립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였습니다.”
상해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중한 합작회사인 모 게임회사에 입사하였다.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통하고 게임과 설계도 잘 안다는 점이 회사 책임자에게 어필되였던것이다.
“사실 그때 회사에서는 본과졸업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학력이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으로 이런 학위를 갖고 있는 관련 인재들이 적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이중언어를 알고 IT산업에 종사하면서 게임까지 만들수 있는 조선족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취직후 박세봉은 중한 부서간의 통역을 하면서 게임설계, 웹사이트 설계업무도 맡았다. 그 시기 웹사이트 설계분야는 한국이 앞서고 있어 그는 한국에서 보내온 요구대로 설계를 진행하였다. 이렇게 몇년간 그는 꾸준히 경험과 아이디어를 쌓았다. 그후 또 일본게임회사와 한국게임회사에서 2~3년간 근무하였고 수중의 자원을 리용하여 친구들과 창업도 해보았다. 상해에 간지 10년을 넘길 무렵, 박세봉은 연길을 떠날 때 10년만 상해에서 분투하다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예상대로 연길에 돌아와 창업준비를 시작하였다.
박세봉(좌1)과 회사기술책임자
귀향창업, 음식배달시장 공략
정식으로 연길에서 창업하기전, 박세봉은 여러번 돌아와 시장조사를 하였다. 집을 따로 세맡아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그는 하루세끼를 배달음식으로 해결하였는데 연길의 음식배달시장이 상해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 시기 연길의 음식배달방식은 아주 전통적이였다. 고객이 배달회사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면 배달회사에서 이를 적은 후 해당 식당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고 다음 배달회사에서 소형 무전기를 통해 심부름아저씨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무엇을 배달해야 된다고 통지하는 방식이였다. 이렇게 음식을 주문하는데 전화를 두번씩이나 들고 놓고 또 심부름 아저씨도 직접 통지해야 하니 많은 시간이 소모되였고 또 주문 고봉기에 전화가 아예 안되거나 식당에서 식재가 없어 만들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하여 음식주문 자체가 변수로 충만되여있었다.
“그때 디디택시(滴滴打车)가 연길에서 차츰 보급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디디택시의 고객이 주문을 어플에 내걸면 기사들이 자유로 수주(接单)하는 이러한 모식을 음식배달시장에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고 곧바로 집행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웹사이트가 바로 과과왕닷컴이다. 고객들이 과과왕 사이트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심부름 아저씨들은 어플을 통해 이를 자유로 수주하고 다음 해당 식당에 전화를 걸어 음식을 주문하고는 시간내에 배달하는것이였다.
그러나 단지 이러한 혁신적인 배달방식만을 가지고 음식배달업계의 삼총사가 도사리고 있는 현지시장에서 발목을 굳히기란 약간 부족했다. 고심끝에 그는 과과왕의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삼총사와 차별화되는 전략을 생각해냈다.
우선 그는 각 식당에서 제공한 이중언어 메뉴판을 근거로 사이트에 등록된 모든 료리에 한어와 조선어로 이름표기를 하였다. 이는 고객들이 음식을 검색하는데 편리를 제공하고 또 한족이 대부분인 심부름꾼 아저씨들이 각양각색의 료리이름에 구애없이 무난하게 식당에 전화를 걸어 주문할수가 있게 되였다. 이중언어 메뉴검색은 전국시장을 겨냥하고 만든, 배달업계 삼총사의 어플이 제공할수 없는 기능이였다.
다음 그는 차별화된 주문 메뉴를 선택했다. 보통 배달업계 삼총사가 연길에서 주문량이 많이 들어오는것은 마라탕과 같은 중저가 음식들이였다. 박세봉은 이와 반대로 비싸지만 질과 량이 보장되는 양식, 일식, 조선족 및 한국음식 그리고 고급중식 등 중상권 가격의 료리들을 사이트에 등록했다.
고향이 연길이고 여기서 자라난 박세봉은 그를 포함한 조선족들의 소비심리를 잘 료해하고 있었다. 조선족 고객들은 비싼 가격이라도 맛있고 즐거움을 줄수 있다면 기꺼이 돈을 쓰는 특점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충동소비의 심리에 “통”까지 크다는것이다. 그리하여 가격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이트에는 고객들의 주문이 끊기지 않고 있다. 박세봉의 소개에 따르면 현재 과과왕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가운데 90%이상이 조선족이라고 한다.
음식배달 외에 박세봉은 과과왕닷컴에 24시간 온라인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심부름 아저씨가 수주하여 배달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슈퍼는 연변특산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류 및 간식 등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주말에 축구경기가 있으면 맥주가 불티나게 팔립니다. 수입산이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또 쉽게 저의 사이트를 통해 구매할수 있고 여기에 배송비도 낮아 많이들 찾고 있습니다.”
연길시장을 겨냥하고 제정한 박세봉의 차별화 전략은 배달업계의 삼총사를 따돌리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현재 그는 과과왕닷컴의 상업모식을 진일보 발전시켜 향후 북경의 왕징, 청도의 청양구, 상해의 민항구, 광주의 백운구 등 조선족 집거지까지 넓힐 계획이다. 필자는 이것이 바로 귀향창업의 가장 좋은 발전방향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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