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그대로’와 ‘정성과 믿음’의 20년 인기맛집 쌀천국밥집 주인 손춘자녀성의 창업이야기
안도현 명월진의 명월거리 일각
안도현 명월진의 명월거리는 당지사람들에게 명월거리라는 이름보다는 이툐우제(一条街)라는 부름으로 더 가깝다. 지난 2000년대초 안도현이 현성 도시구역 확장과 새로운 음식문화관광거리를 조성하면서 생겨난 명월거리는 현재 안도현의 중요한 상업봉사중심거리로 각광받으면서 각종 료식업종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있다.
명월거리에는 허다한 특색음식점들이 많은데 그중에는 안도현 량병향 고태촌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현성에 올라와 음식점을 꾸려 아근방에 소문높은 손춘자녀성(71세) 가족이 경영하는 ‘쌀천국 밥집’이라는 친근한 이름의 음식점도 들어있다.
‘맛 그대로’와 ‘정성과 믿음’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쌀천국 밥집은 요즘같은 음식업종의 치렬한 경쟁과 불황속에서도 안도현의 유명 맛집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손님들이 즐겨찾는 단골음식점으로 인기를 누리고있다.
3월11일, 기자가 취재간 날도 점심때가 되자 손님들이 음식점을 많이 찾았다. 련이어 밀려드는 식객들때문에 주방에서 눈코뜰새없이 바삐 돌아치는 손춘자녀성을 점심시간이 이윽히 지나 손님들이 뜸해져서야 마주할수 있었다.
‘맛 그대로’ 와 ‘정성과 믿음’의 20년 인기맛집 쌀천국밥집의 주인 손춘자녀성
어떻게 음식점이 이렇게 흥성흥성한가부터 물었을때 손춘자녀성은 "‘맛 그대로’ 와 ‘정성과 믿음’이 아닐가요?!" 하고 대답했다. 알고보니‘맛 그대로’ 와 ‘정성과 믿음’이라는 슬로건이 쌀천국 밥집의 성공노하우가 되기까지는 20년도 넘어되는 손춘자녀성의 파란만장한 창업희로애락이 깃들어 있었다.
지난세기 90년대말 아들딸 두 남매의 미래를 위해 농촌에서 명월진으로 이사와서 세집만해도 9번이나 옮기면서 힘들게 살던 시절이 있었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손춘자녀성이였지만 농촌에서 농사짓고 굴암퇘지를 키워 팔면서 아글타글 모아두었던 만원이 넘는 돈을 해외로무사기와 남편의 출국수속에 써버렸고 금방 결혼한 딸 안미란씨도 얼마 안되는 월급으로 살다보니 생활형편이 어려웠다. 손춘자녀성이 딸 안미란씨의 권유로 함께 명월진의 40평도 되나마나한 가게를 세내 자그마한 김밥집을 꾸린 것은 지난 2004년의 일이였다.
김밥 한줄에 5원씩 하던 때였는데 개업 첫날 매상고 70원을 올렸다. 비록 많은 수입은 아니였지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벌어 나가노라면 치부의 희망이 보일듯도 싶어 힘이 났고 너무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기뻤다고 손춘자녀성은 개업 첫날의 감격을 지금도 잊지 못해했다.
그의 예견은 틀리지 않았다. 안도현에서 제일 처음으로 시작한 김밥집이고 음식에 정성을 기울이고 박리다매여서 매상고는 꾸준히 상승했던 것이다. 김밥집을 하는 1년여시간동안 새벽4시면 일어나서 주방준비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하루 두시간도 채 못자면서 일했다고 한다. 100근이 넘던 체중도 80근밖에 안될 정도로 많이 내렸다.
삼륜차비 단돈 2원을 아끼려고 시장에서 음식재료를 무겁게 구입하고도 그걸 손에 들고 힘겹게 돌아오군 했다. 한푼두푼 그렇게 아끼고 모으면서 절약을 일삼았다. 한줄에 5원밖에 안되는 김밥을 팔아 단 하루에 최고 2,000원의 매출까지 올렸으니 얼마나 힘들고 드바빴을가?
김밥집에서 일정한 경제적 밑천을 장만하게 되자 2006년 3월부터 명월거리에 세를 맡고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명월거리가 음식점이 즐비한 안도현의 이름난 먹자거리가 되였지만 당시는 안도현에서 새롭게 조성한 거리로 음식점이 두집밖에 없었다. 그렇게 황페지나 다름없는 새로운 창업의 터전에 첫 삽을 박은 쌀천국 밥집이 지금은 안도현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인기 음식점으로 성장했다. 2013년도에는 세를 맡은 옆집을 100만원에 구입해서 합친후 음식점 규모도 더 늘였다. 무겁게 내리누르던 수만원의 빚도 5년넘게 일해서 모두 물었다.
40평되는 작은 김밥집으로부터 시작해 200평되는 인기음식점으로 키우기까지 손춘자녀성은 ‘맛 그대로’ 와 ‘정성과 믿음’을 기울인 덕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손춘자녀성이 말하는 ‘맛 그대로’는 제집 음식처럼, 농촌에서 먹던대로 음식재료의 신선도와 질을 보장하면서 지나친 조미료를 쓰지않고 음식본연의 맛과 순수함을 고집한다는데 있다. 의외로 사람들은 너무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보다는 순수하면서도 담백한 집맛 음식을 선호하기때문이였다. ‘정성과 믿음’도 중요했다. 질이 차한 남새나 눅거리 음식재료는 쓰지 않고 상에 올렸던 음식은 아무리 다치지 않은 음식이라도 재리용하지 않고 모두 아낌없이 버렸다. 모든 장사가 그러하지만 음식장사는 특히 량심적으로 해야 하기때문이다.
음식외에도 손님들에게 보여준 ‘믿음’역시 마음 따뜻한 이야기들로 남아있다. 한번은 손님이 식사한후 가방을 두고갔는데 그 가방에 돈 2만원이 들어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손님이 찾으러 오면 돌려줄 생각으로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은채 카운터에 놓고 퇴근했다. 그런데 가방을 놓고간 손님이 급한 마음에 밤에 음식점 창문을 깨고 카운터에 들어와서 가방을 찾아갔다. 이튿날 손님이 찾아와서 해석해서야 손춘자녀성은 그 가방속에 거금이 들어 있는줄 알았다. 손님이 두고간 핸드폰 등 물건들도 여러번 돌려 주었다. 손춘자녀성은 자신은 물론 음식점의 종업원들에게도 손님이 두고간 물건은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믿음을 직접 몸으로 실천했으며 고객들과의 따뜻한 믿음의 이야기들을 엮었다.
쌀천국밥집의 종업원들과도 믿음으로 일관했다. 손춘자녀성의 종업원들에 대한 따뜻한 믿음과 살가운 대우에 많은 종업원들은 10년이상 머물면서 함께 가족처럼 일하고있다.
“성공은 하늘이 주는 게 아닙니다. 땀과 정성으로 쌓아 올리는 거죠. 노력없는 대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성공이 허망 떨어지는 법은 없다고 봅니다. 다 끈질긴 노력과 피땀의 결과이지요. 농촌에서 태여나고 농촌에서 자란 저는 부지런히 일할줄밖에 모릅니다. 부지런하면 반드시 성공하기 마련입니다.”
지나온 인생사를 추억하면서 손춘자녀성은 더는 물러설 곳이 없으니 가족모두 합심하여 이를 악물고 일했다고 말했다. 그런 매일매일의 노력과 정성이 바로 오늘날의 인기음식점을 만든 손춘자녀성의 비결이요, 노하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편, 아들 며느리와 함께 행복한 가정
손춘자녀성은 올해 이미 70세를 넘었다. 지금은 음식점경영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맡기였지만 주방에는 항상 붙어있다. 아들며느리가 시름놓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년간 일하면서 굳어진 습관으로 가게에 나와 있어야만이 시름이 놓이고 마음이 즐겁기 때문이다. “제 인생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아마 두툼한 책이라도 나올겁니다. ”손춘자녀성이 감개무량해서 하는 말이다.
손춘자녀성은 20여년 간의 간고한 창업려정을 통해 작은 식당으로부터 시작해 지역의 브랜드음식문화를 이루어냈으며 정직과 열정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무격려하는 창업이야기를 써냈다.
손춘자녀성의 20년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정직과 근면이 빚어낸 지속 가능한 경영의 교과서이다. 그는 값비싼 마케팅 대신 손님 한 명 한 명의 입소문에 의지했고 이는 오늘날 쌀천국 밥집이 명월거리의 인기브랜드로 성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70세가 넘은 지금도 주방에 서며 "부지런함이 최고의 재산"이라 말하는 그의 모습은 젊은 창업자들에게 과정을 소중히 여길 것을 당부하는 소중한 메시지가 된다. 더 나아가 쌀천국 밥집은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지역 음식문화의 거점으로 자라났다. 손춘자녀성의 창업이야기는 결국 "진정성 있는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작은 김밥집으로부터 시작한 창업의 꿈이 어떻게 지역의 음식브랜드와 자부심이 되는지를 보여주고있다.
/길림신문 안상근 김파기자
编辑:김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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