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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심지역 조선족 혁명인물]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 군수부장 한진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2월18일 11시04분    조회: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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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韩震, 1900-1936)은 1900년에 서울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여났다. 중학시절에 진보단체인 ‘반일애국기독교청년회’에 참가했고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 1928년에 반일투쟁에 참가하기 위하여 가족의 반대도 무릅쓰고 길림성 반석현에 와서 반일단체를 찾았다. 그는 반석현의 초석산소학교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당지의 반일단체들과 련계를 가졌으며 선후로 농민동맹, 청년동맹 등 조직에 참가해 반일혁명활동을 전개했다.

 

 

1930년 8월 한진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31년에 변절자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1년 동안 옥중생활을 했다. 아무런 단서도 쥐지 못한 적들은 그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출옥후 그는 중공반석중심현위의 파견으로 화전현 팔도구 일대에서 당의 지하사업을 했으며 중공괴자항(拐子炕)특별지부 서기직을 맡았다. 1933년 9월에 남만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로 개편된 후 독립사 당지부 서기직을 맡았고 그 이듬해 11월에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 군수부 부장으로 됐다.

 

 

한진은 흥경, 환인, 본계 등 지구에서 유격근거지 창설사업을 책임지고 깊은 산 속을 오가면서 군수물품비밀창고, 무기제조수리공장, 피복공장, 군사훈련장, 군병원, 부상병휴양소 등과 10여개의 비밀숙영소, 주둔지를 건설했다. 또 지방사업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가는 곳마다에서 군중들에게 당의 항일구국방침과 항일무장투쟁의 의의에 대해 선전했으며 반일단체와 지방 무장조직을 조직해주고 이런 반일단체와 지방무장을 통해 항일련군에서 필요한 식량, 마초 등을 구했다.

 

 

1935년에 한진은 환인에서 활동하고 있던 토비 '주사령'을 수차례 설복 교육하여 200여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양정우를 찾아가 항일부대에 참가하도록 했으며 본계, 신빈, 환인에서 활동하고 있던 '로북풍'이라는 토비를 교육하여 양정우부대에 투항하게 했고 환인 경내에 있는 '점동변', '서해선', '구주' 등 산림대를 교육 설득하여 항일부대와 련합 항일하도록 했다. 한진은 또 본계 경찰교무청의 교무장 상백로를 설득하여 20여명의 경찰을 데리고 의거하게 했다.

 

 
1936년초, 한진은 부대를 거느리고 환인현 화첨자 일대에서 항일력량을 통일하고 항일부대의 확군사업을 위해 활동했다. 3월 2일 지금의 환인현 목위자진 선인동촌(木盂子镇仙人洞村)에 있는 한족농민 장수림의 집에서 골간회의가 열렸다. 회의가 거의 끝날 무렵 반역자의 밀고로 일본군과 괴뢰군이 갑자기 마을에 들이닥쳤다. 이 위급한 시각에 한진은 부대의 포위돌파를 지휘하다가 기타 17명의 전우들과 함께 장렬히 희생됐다. 그 때 그의 나이는 36세였다.

제공: 료동항전연구센터/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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