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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山あり谷あ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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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두자춘(일한번역문) 댓글:  조회:3532  추천:0  2015-07-09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번역:김정웅(연변대학 일어계)   一   어느 봄날의 저녘 무렵이였다. 당나라의 수도 낙약성의 서쪽 성문 아래에서 멍하니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젊은이의 이름은 두자춘이라고 하며 원래는 부자집의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재산을 탕진하고 그날그날  살아가기도 힘들 정도로 가련한 처지가 되였다. 여하튼 그 때 즈음 낙양이라고 하면 천하에 어깨를 겨룰만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번창한 수도였기에 사람과 차들이 끊임없이 다녔다. 노인이 쓴 비단모자라든가 토이기 여성의 금귀걸이 그리고 백마에 장식한 색실로 만든 말고삐들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모습은 마치도 한 폭의 그림 마냥 아름답다. 하지만 두자춘은 여전히 성문 옆의 성벽에 몸을 맞긴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이미 가는 달이 나부끼는 운무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마치도 손톱 자욱처럼 어렴풋이 하얗게 떠있다. 《날은 저물어 가고 있고 배는 고프고 게다가 이젠 어디를 가더라도 재워줄 곳은 없을 것 같고……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살 바엔 차라리 강에라도 몸을 던져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두자춘은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이렇게 목숨까지 버릴가하는 가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때 어디에서 왔는지 갑자기 그의 앞에 외눈박이 작은 눈을 한 노인이 발걸음을 멈춘고 서있었다. 그 노인은 석양 빛을 받아서  큰 그림자를 성문에 드리우면서 지그시 두자춘의 얼굴을 보더니 《너는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하고 건방지게 말을 걸었다. 《저 말입니까. 저는 오늘밤 잘 곳이 없어서 어쩌면 좋을가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노인이 갑작스런 질문에 두자춘은 눈을 내리 깔고 생각없이 정직한 대답을 해버렸다. 《그런가. 가엽기도 하구나》 노인은 잠간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길가는 사람들을 빛추고 있는 석양 빛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럼 내가 좋은 생각을 하나 가르쳐 주리라. 지금 이 석약 속에 서서 너의 그림자가 땅에 비추어지면 그 머리에 해당하는 곳을 밤중에 파보면 좋을 것이다. 반드시 한 수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황금이 묻혀있을 것이다.》 《정말이십니까?》 두자춘은 경악해서 내리 깔았던 눈을 올리 떻다. 그런데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그 노인이 어디를 갔는지 이미 근처에는 그와 비슷한 그림자도 형태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창공에 걸린 달빛은 방금 전보다도 더욱 밝아지고, 쉴줄모르고 오가는 행인들의 위에는 이미 성급한 박쥐 두 세 마리가 펄펄 춤추고 있었다.   二   두자촌은 하루 사이에 낙양성에서도 제일로 가는 부자로 되였다. 그 노인의 말과 같이 석양에 그림자들 비추고 그 머리에 해당하는 곳을 밤중에 살그머니 파보았더니, 큰 수레에도 다 못 실을 정도의 황금이 한가득이 나온것이다. 큰 부자가 된 두자춘은 인츰 훌륭한 집 한 채를 사서 현종황제도 부럽지 않을 정도의 사치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란릉의 술과 계주의 용안을 사들이고 정원에는 하루에도 네 번씩 색갈을 바꾼다는 목란을 심고 백공작새 몇마리를 풀어놓고 사육했다. 그리고 옥을 모으고 비단 옷을 짓고 향목으로 된 마차을 만들고 상아된 걸상을 사들이는 등 그 사치함을 하나하나 쓸려면 언제까지나 이 이야기가 끝이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자 이러한 소문들을 듣고, 지금까지 길에서 만나도 인사조차도 하지 않던 친구들이 조석으로 물려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날이 지나면서 그 수는 불어나서 반년 정도 지났을 즈음에는  이름 있고 재능 있는 남자와 미녀들이 많다고 하는 낙양성에서 두자춘의 집에 오지 않은 것은 한사람도 없을 정도로 되여버렸다. 두자춘은 손님들을 상대로 매일과 같이 주연을 베풀었다. 그 주연의 성대함은 이루다 입으로는 말할 수가 없다. 극히 일부분만 말하더라도, 두자촌이 금술잔에 서양에서 가져온 와인을 부어마이고 인도태생의 마법사가 칼을 삼키는 쇼를 열심히 보고 있으면 그 주위에는 20여명의 여자들중 10명은 비취로 만든 연꽃을, 또 10명은 마노로 된 목란꽃을 머리에 장식하고 피리와 거문고를 재미있게 연주하는 풍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부자라 할지라도 돈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므로, 그 대단한 부자인 두자촌도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는 사이에 점점 가난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라는 것은 박정한 물건이므로 어제까지 매일과 같이 오던 친구들도 오늘에는 문앞을 지나도 인사하로 조차도 오지 않는다. 끝내 3년째의 봄, 두자촌은 또 다시 이전과 같이 땡전 한 푼 없는 알거지가 되고보니, 넓은 낙양성내에서도 그에게 잠자리를 빌려주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아니 잠자리를 내여주기는 커녕 지금은 물 한 사발도 베풀어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는 어느날 저녘무렵, 또 한 번 그 낙양성의 서쪽 성문 아래로 가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망연자실하고 서있었다. 그러자 역시 옛날 처럼 외눈박이 노인이 나타나서 《너는 뭘 생각하고 있냐?》라고 말을 거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자춘은 노인의 얼굴을 보자 부끄러운듯이 눌길을 아래로 향한채로 잠간동안은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인은 그날도 친절하게 같은 말을 반복하기에 이쪽도 전과 같이 《나는 잘곳 조차도 없기에 어떻게 된 판인가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고 주뼛주뼛 대답했다. 《그런가. 그것은 참말로 불쌍한 일이로구나. 그럼 내가 좋은 일을 하나 그르쳐 주리라. 지금 이 석양빛 속에 서서 너의 그림자가 땅에 비추어지거던 그 가슴에 해당하는 부분을 밤중에 파보면 좋을 것이다. 틀림 없이 한 수레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의 황금이 묻혀 있을 것이다》 노인은 이런 말은 남기고는 이번에도 인파 속으로 깜쪽같이 숨어버렸다. 두자춘은 그 이튿날부터 즉시로 천하 제일의 대부자로 되돌아 갔다. 부자가 된 동시에 그는 변함없이 마음껏 사치한 생활을 시작했다. 정원에 피어있는 목란꽃, 그 속에서 잠자고 있는 백공작새, 그리고 칼을 삼키는 인도에서 온 마법사, 모든 것이 여전 그대로인 것이다. 때문에 한 수레 가득했던 그 엄청난 황금도, 또 3년이 지나는 사이에 깨끗이 없어져버렸다.   三    《너는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외눈박이 노인은 세전째로 두자춘의 앞에 와서 같은 말을 물어왔다. 물론 그는 그때도 낙양성의 서쪽 성문 아래에서 갸날프고 연약한 모양새로 운무를 비집고 나오는 초승달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서있었다.  《저 말입니까. 저는 오늘 밤 잘 곳도 없어서 어떻게 할것인가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가. 그것은 가엽은 일이로구나. 그럼 내가 좋은 일을 하나 가르쳐주리라. 지금 이 석양빛 속에 서서 너의 그림자가 땅에 비추어지거던 그 배에 해당하는 부분을 밤중에 파보면 좋을 것이다. 틀림 없이 한 수레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의……》  노인이 여기까지 말하자 두자춘은 급히 손을 들어 그 말을 가로챘다.  《아니, 돈은 이젠 필요없는 것입니다》  《돈이 이젠 필요 없다고? 음…… 그럼 사치를 누리는 것에도 끝내는 실증이 났다는 말이네》  로인은 의심스러운듯한 눈길을 하면서 지그시 두자촌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사치에 실증을 느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것에 정나미가 뚝 떨어진 것입니다 》고 두자춘은 불평 가득한 얼굴로 돌견빈(突慳貪)에게 말했다.  《그것 재미있네. 왜서 또 인간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것인가?》   《인간은 모두 박정합니다.내가 큰 부자로 되였을 때는 간살부리며 빌붙지만은, 일단 가난해지면 보세요 상냥한 얼굴 조차도 보여줄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것들을 생각하면, 만약 또 한번 대부자가 되더라도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노인은 두자춘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히쭉히쭉 웃기 시작했다. 《그런가. 아니 넌 젊은 놈 답지 않게 기특하게 사리를 아는 사내이다. 그럼 지금부터는 가난하게 살지라도 안온히 살 작정인가》 두자춘은 조금 망설이였습니다. 하지만 인츰 단념한 듯이 눈을 올리뜨고 호소라도 하듯이 노인의 얼굴을 보면서 《그것도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제자로 되여 선술을 수행할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니 숨겨서는 않됩니다. 당신은 덕행이 높으신 신선입니다. 신선이 아니라면 하루 밤 사이에 나를 천하의 대부자로 만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부디 나의 선생이 되여 불가사의한 선술을 가르쳐 주세요》 노인은 양미간을 찌푸린 채로 잠간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무슨 일인가 생각하고 있는듯 하더니 이윽고 썽긋 웃으면서 《어찌 됐든 나는 아미산에 살고 있는 철관자(鉄冠子)라고 하는 신선이다. 처음 너의 얼굴을 보았을 때, 어딘가 빨리 깨닫을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두 번이나 대부자로 되게했지만 그 정도로 신선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 나의 제자로 받아 들이기로 하리라》고 흔쾌히 응낙해 주었다. 두자춘은 기쁘기 그지 없었다. 노인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땅에 이마를 붙이고 몇번이나 철관자에게 큰 절을 올렸다. 《아니, 그렇게 례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아무리 나의 제자로 되였다 할지라도, 훌륭한 선인이 될수 있는가 없는가는 너한테 달려 있는 것이므로. 하지만 하여튼간에 우선 나와 함께 아미산 산중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 다행히 여기에 대나무 지팡이가 하나 떨어져 있네. 그럼 서둘러 여기에 타게나, 단숨에 하늘을 날아보세》 철관자는 거기에 있던 푸른 대나무 한대를 주어 올리고서는 입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두자춘과 함께 그 대나무 가지에 말이라도 타듯이 두 다리를 벌리고 올라탔다. 그러자 불가사의하게도 죽장은 금세 룡이나 된듯이 기세 사납게 창공으로 날아올라서 맑게 개인 봄날의 밤하늘을 아미산의 방향을 향하여 날아서 갔다. 두자춘은 감담이 서늘하여 겁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아래에는 단지 푸른 산들이 저녘 어스름 속에 보일 뿐으로서 그 낙양성의 서쪽 성문은(운무에 가려진 탓에) 어디를 찾아도 보여지지를  않았다. 그 사이 철관자는 허연 턱수염을 바람에 나붓기면서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침엔 북해서 놀고 해질녘에는 창오 소매의 안감은 청사로되 성질 또한 조잡하구나 세 번이나 악양에 들어갔건만 사람조차 모르고 시 읊조리며 동정호를 날아지난다      四   두 사람을 태운 청죽은 어느 틈에 아미산에 날아내렸다. 거기에는 깊은 계곡에 인접한 폭이 넓은 하나의 큰 암석의 위였다. 너무나도 높은 곳이여서 창공에 드리워져 있는 북두칠성이 사발 만큼씩한 크키로 빛을 내고 있었다. 원래부터 인적이 끊긴 산인지라 주의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고  겨우 귀에 들어오는 것은 절벽에서 자라고 있는 구불구불한 한 그루의 솔나무가 밤바람에 내는 소리 뿐이다. 둘이 이 바위의 우에 오자 철관자는 두자춘에게 절벽의 아래에 앉힌다. 《나는 지금부터 하늘에 가서 서왕모를 뵙고 올테니 너는 그 사이 여기에 앉아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도리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마 내가 없어진 사이 여러가지 마성이 나타나서 너를 속이려고 할것인데 예를 들어 어떠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결코 소리를 내여서는 않된다. 만약 한 소리라도 내면 너는 절대 선인이 될수 없다는 것을 각오하라. 알아들었어. 천지가 찢어지더라도 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거야》라고 말했다. 《괞찮아요. 결코 소리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목숨이 잃더라도 소리를 내지 않고 참을 것입니다》 《그런가 그말을 듣고 나도 안심했다. 그럼 나는 다녀오겠으니》 노인은 두자춘에게 이별을 고하고 또 그 죽장을 타고서 밤 어둠에 자취를 감춘 산들을 떠나 하늘로 깜쪽 같이 없어져 버렸다. 두자춘은 단지 혼자서 바위 위에 앉은 채로 조용히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이럭저럭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심산의 차건운 밤 기운이 엷은 옷을 스며들 즈음에 갑자기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있는 자는 누구냐?》라고 욕설을 퍼붓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두자춘은 선인의 가르침대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또 잠간 지나니 역시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당장 목숨이 끊길 것을 각오하라》고 위엄있게 위협하는 것이였다. 두자춘은 물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어디에서 왔는지 반짝반짝 눈빛을 번뜩이는 호랑이 한 마리가 공연히 바위 위에 뛰여올라서 두자춘을 노려보면서 큰 소리로 사납게 날뛰였다.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머리 위의 솔나무 가지가 격심하게 와삭와삭 흔들린다고 생각할 찰나, 뒷켠의 절벽의 꼭대기로부터는 큰 나무통 정도 굵기의 뱀 한 마리가 불길 같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순식간에 가까이에 내려오는 것이였다. 하지만 두자춘은 태연히 눈썹 하나 찌프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범과 뱀은 하나의 먹이를 겨낭하고 서로 틈만 노리고 있는가 싶더니,잠간 서로 노리다가 이윽고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것 없이 거의 동시에 두자춘에게 덤벼들었다.하지만 범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리우는가 아니면 뱀에게 삼키우는가. 두자춘의 목숨이 순식간에 없어지리라고 생각할때 범과 뱀은 미치 안개 처럼 밤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오직 절벽의 솔나무만이 방금 전과 같이 스륵스륵 나무가지들이 소리만은 내고 있는 것이였다. 두자춘은 안도의 숨을 몰아 쉬면서 이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것인가를 마음 속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자 한 가닥의 바람이 불어치고 먹장과 같은 검은 구름이 일면을 뒤덮으면서 연한 자주색의 번개가 어둠을 두 가닥으로 째면서 굉장한 천둥이 울었다. 아니 우뢰 뿐만 아니였다. 그것과 함께 폭포와 같은 장대비가 갑자기 죽죽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두자춘은 이 천변의 속에서 무서움도 없이 앉아있었다. 바람 소리와 장대비 그리고 끊임 없는 번개 빛, 잠간 사이에 그 유명한 아미산도 전복되는가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사이 귀청을 찢는 듯한 큰 번개 소리가 들리더니 하늘에서 소용돌이치던 검은 구름 속으로 부터 시뻘건  한 줄기의 불기둥이 두자춘의 머리 위에 떨어져내렸다. 두자춘은 무심결에 귀를 막고 바위 위에 엎드렸다. 하지만 인츰 눈을 뜨고 보니 하늘은 여나 다름 없이 맑게 개이고 저켠에 치솟은 산의 위에도 사발 만큼한 북두칠성이 변함없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볼라니 방금전의 대폭풍우도 저 범과 하얀 뱀도 모두다 철관자가 없는 틈을 타서 마성의 못된 장난질임에 틀림이 없다. 두자춘은 끝내 안심하고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또 한번 바위 위에서 자세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그 한숨 소리가 멎기도 전에 이번에는 그가 앉아 있는 앞에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신장이 3장이나 될것 같은 엄숙한 신장(神将)이 나타났다. 신장은 손에 세 가닥이 달린 극(戟)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극의 끝은 두자춘의 가슴에 대면서 눈을 부릅뜨고 욕하는 것을 들으니, 《이놈아, 너는 도대체 누구냐? 이 아미산이란 산은 천지개벽한 이래 옛날부터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그것도 꺼리낌없이 단지 혼자서 거기에 들어오리라고는. 설마 보통 인간은 아닐 것이다. 자! 목숨이 아까우면 한시라도 빨리 다답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자춘은 노인의 말대로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대답을 않하는가? 않하네. 좋다. 하기싫으면 말던지 마음대로 하라. 그 대신 나의 권속들이 너를 갈기갈기 베여버릴 것이다.》 신장은 극을 높이 들고 저쪽 켠 산 위의 하늘을 불러왔다. 그 찰나에 어둠이 슬쩍 갈라지면서 놀랍게도 무수한 신병이 구름과도 같이 하늘을 채웠는데, 모두들 손에는 창검을 번뜩이면서 당장이라도 여기에 눈사태 처럼 공격해올것 같은 태세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두자춘은 엉겹결에 ‘앗!’아고 소리를 지를뻔했지만, 인츰 철관자의 말씀을 생각하고선 노력을 다해 참고 있었다. 신장은 그가 무서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선 화가 칠밀어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강심장을 가진 놈아! 아무리 하여도 대답하지 않으면 약속대로 목숨은 가져갈테야 》신장은 이렇게 큰소리로 웨치면서 세 가닥의 극을 번뜩이여 한 칼에 두자춘을 죽였다.  신장은 아미산에 울펴퍼질 정도로 높은 소리로 껄껄 웃으면서 어딘가에 없어졌다. 물론 이때에는 무수한 신병도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와 함께 꿈과 같이 사라진 뒤였다. 북두칠성은 또 다시 차겁게 바위 위를 비추기 시작하였다. 절벽의 솔나무도 여나 다름 없이 스륵스륵 나무가지들이 부닥치는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두자춘은 숨이 끊어져 엎드린 채로 그곳에 누워있었다.   五    두자춘의 몸은 바위 위에 뒤집힌 채로 넘어져 있었지만, 두자춘의 혼은 몸 속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지옥의 밑바다으로 떨어져내려 갔다. 이 세상과 지옥과의 사이에는 암혈도(闇穴道)가 있어서 거기에는 일년내내 어두운 하늘에 얼음처럼 차거운 바람이 휙휙 불어대고 잇는 것이다. 두자춘은 그 바람에 휘말려 잠간사이에 나무잎 처럼 하늘을 떠돌아다니다가 얼마 안 있어 심라전(森羅殿)이라는 편액이 걸린 훌륭한 대궐 앞에 이르렀다.   대궐 앞에 있던 많은 귀신들은 두자춘의 모습을 보자마자 인츰 그 주위를 둘러싸고 섬돌 계단 앞에 끌고 갔다. 계단의 위에는 한 왕이 시꺼먼 의복에 금으로 된 관을 쓰고 위엄있게 주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문으로 들은 염라대왕임에 틀림이 없다. 두자춘은 어찌 될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품고 그 곳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봐라. 네놈은 왜서 아미산 위에 앉아 있었는가?》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뇌성과 같이 계단 위에서 부터 울러퍼졌다. 두자춘은 인츰 그 물음에 대답할려고 했지만,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절대 입을 열지 말라》는 철과자의 훈계였다. 그래서 오직 머리를 수그린 채로 벙어리 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손에 쥐고 있던 철로된 홀(笏)을 들고서 얼굴의 수염을 곤두세우면서   《네 놈은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빨리 대답을 하면 좋다. 그렇지 못할 경우 곧 지옥의 가책을 받게 될것이다》고 기고만장해서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두자춘은 여전히 입술 조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을 본 염라대왕은 인츰 마귀 무리들 쪽을 향하여 거칠게 뭔가를 명령하니 마귀들은 황공해하면서 즉시로 도자춘을 억지로 끌고 가서 심라전 위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옥에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칼산과 피못 외에도 초열지옥과 같은 화염협곡이거나 극한지옥라고 하는 얼음바다가 시꺼먼 하늘 아래에 늘어서 있다. 귀신들은 그런 지옥 속에 번갈아 가며 도자춘을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도자춘은 무참히도 검에 가슴이 관통되고, 화염에 얼굴이 타고, 혀를 빼우고, 겁질을 벗기우고, 철절구에 찧기우고, 기름가마에 튀기우고, 독사에 뇌수를 빨기우고, 뿔매에게 눈알을 먹히우는 등 그 고통을 수를 세자면 도저히 끝이 없을 정도로 모든 질고를 감당해야만 했다. 그래도 도자춘은 인내력 있게 꾹 입을 다문 채로 한 마디도 입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렇게 하니 그 대단한 귀신들 조차도 질리고 말았던 것이다. 또 한번 칡흙 같이 어두운 하늘을 날아서 심라전 앞에 돌아오니, 방금 전과 같이 두자춘을 계단 아래에 끌러내면서 대궐 위에 앉아 있는 염라대왕에게   《이 죄인은 아무리 하여도 말할 기색이 없습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을 올렸다. 염라대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간 생각에 잠긴듯 하더니 이윽고 뭔가 생각난듯 보였다.   《이 사내의 부모는 축생도에 전락하여 있을 것이므로 어서 여기에 끌고 오너라》고 한 놈의 귀신에게 명령했다.   귀신은 곧 바람을 타고서 지옥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별이 흐르듯이 두 놈의 귀신이 짐승을 강제로 끌고와서 날렵하게 심라전 앞에 내려왔다. 그 짐승을 본 두자춘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마리 모두가 형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여윈 말이였지만, 얼굴은 꿈에도 있을 수가 없는 죽은 부모와 똑 같았다.   《여봐라 네놈은 왜서 아미산 위에 앉아있었는가? 똑바로 자백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네놈의 부모에게 고통을 안겨주리라》   두자촌은 이런 위헙을 받아도 여나 다름없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불효자 놈아. 네놈은 부모가 고통스러워도 네놈만 좋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염라대왕은 심라전이 무너질 정도로 무서운 소리를 질렀다.   《때리라. 귀신들이여. 그 두 마리의 짐승을 피골이 상접하도록 때려 부수라!》   귀신들은 일제히 《예》하고 대답하면서 철채찍을 쥐고 일어나서 사면팔방에서 두 마리의 말을 미련없이 때려눕혔다. 채찍은 윙윙 바람을 가르면서 분별없이 말의 가죽과 살을 쳐부셨던 것이다. 말-짐승으로 변한 부모는 고통스러운 몸을 몸부림치면서 눈에는 피눈물을 머금은 채로 보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어떻냐. 아직도 네놈은 자백하지 않을터인가?》   염라대왕은 귀신들에게 잠간 채찍질을 그만하게 하고 다시 한번 두자춘에게 대답을 촉박했다. 이미 그때는 두 말의 말도 살이 찢기우고 뼈가 부수러져 숨도 끊일학 말락한 상태로 계단 앞에 엎어진채로 넘어져 있었던 것이다.   두자촌은 필사적으로 철관자의 말을 생각하면서 굳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 그의 귀에는 거의 소리라고는 말할 수 없는 정도의 미약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근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어떻게 되더라도 너만 행복해진다면 그것 보다 더욱 좋은 것은 없으므로. 천왕이 뭐라고 말씀하더라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참고 있으라》   그것은 틀림 없는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두자촌은 생각없이 눈을 떻다. 그리고 한 필의 말이 맥없이 땅에 넘어진 채로 서럽게 그의 얼굴을 꼼짝 않고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이런 고통 속에서도 아들의 마음을 배려하여 귀신들의 채찍에 맞은 것을 원망하는 기색 조차도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대부자가 되면 아양을 떨고 거지가 되면 말도 걸지 않는 세상의 인간들과 비하면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런가. 얼마나 건전한 결심이런가. 두자춘은 노인의 훈계를 잊고 굴러가듯이 그 곁에 달려가서 양손으로 반죽음이 된 말의 목을 끌어안고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하고 소리쳐 불렀다.   六     그 소리에 정신이 들어 보니, 두자춘은 여나 다름 없이 석양 빛 속에서 낙양성의 서쪽 성문 아래에 멍하니 서있었다. 희미한 하늘 그리고 하얀 초생달, 끊임 없이 이어지는 인파와 차량-모두가 아직 아미산에 가기 전과 똑 같은 것이였다. 《어떤가. 나의 제자로 되긴 했지만, 아무리 해도 선인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외눈박이 노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될 수가 없습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되지 못한 것을 도리여 기쁘다는 감이 듭니다》 두자춘은 아직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엉겁결에 노인의 손을 잡았다. 《아무리 선인이 되였다 할지라도 나는 그 지옥의 심라전 앞에서 채찍을 맞고 있는 부모를 보고는 침묵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만약 네놈이 말하지 않고 있었더라면……》라고 철관자는 갑자기 엄숙한 얼굴로 꼼짝 않고 두자춘을 응시했다. 《만약 네놈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더라면 나는 즉시로 너놈의 목숨을 끊을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은 이미 선인이 되고싶다는 욕망은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고 큰 부자가 되고저 하는 것은 원래부터 정나미가 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럼 네놈은 지금부터 무었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느냐?》 《무었이 되더라도 인간 다운 정직한 생활을 할 작정입니다》 두자춘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후련함이 슴배여 있었다. 《그 말을 잊지 말라. 그럼 나는 오늘을 끝으로 두번 다시 네놈과는 만나지 않을테니》 철관자는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이미 걷기 시작하였지만, 급히 걸음을 멈추고선 두자춘을 뒤볼아보면서 《아아, 다행이도 지금 생각났지만 나는 태산의 남쪽 기슭에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다. 그 집을 밭 채로 네놈한테 줄테니, 서둘러 가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 쯤은 마침 집 주위의 복숭아꽃들이 온통 피여있을 것이다》고 아주 유쾌한 듯이 덧붙여 말했다. 2015년6월23일 번역  
17    杜子春(芥川龍之介) 댓글:  조회:2449  추천:0  2015-06-23
               一  或春の日暮です。  唐の都洛陽(らくやう)の西の門の下に、ぼんやり空を仰いでゐる、一人の若者がありました。  若者は名は杜子春(とししゆん)といつて、元は金持の息子でしたが、今は財産を費(つか)ひ尽(つく)して、その日の暮しにも困る位、憐(あはれ)な身分になつてゐるのです。  何しろその頃洛陽といへば、天下に並ぶもののない、繁昌を極めた都ですから、往来(わうらい)にはまだしつきりなく、人や車が通つてゐました。門一ぱいに当つてゐる、油のやうな夕日の光の中に、老人のかぶつた紗(しや)の帽子や、土耳古(トルコ)の女の金の耳環や、白馬に飾つた色糸の手綱(たづな)が、絶えず流れて行く容子(ようす)は、まるで画のやうな美しさです。  しかし杜子春は相変らず、門の壁に身を凭(もた)せて、ぼんやり空ばかり眺めてゐました。空には、もう細い月が、うらうらと靡(なび)いた霞の中に、まるで爪の痕(あと)かと思ふ程、かすかに白く浮んでゐるのです。 「日は暮れるし、腹は減るし、その上もうどこへ行つても、泊めてくれる所はなささうだし――こんな思ひをして生きてゐる位なら、一そ川へでも身を投げて、死んでしまつた方がましかも知れない。」  杜子春はひとりさつきから、こんな取りとめもないことを思ひめぐらしてゐたのです。  するとどこからやつて来たか、突然彼の前へ足を止めた、片目眇(すがめ)の老人があります。それが夕日の光を浴びて、大きな影を門へ落すと、ぢつと杜子春の顔を見ながら、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と、横柄(わうへい)に言葉をかけました。 「私ですか。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たものかと考へてゐるのです。」  老人の尋ね方が急でしたから、杜子春はさすがに眼を伏せて、思はず正直な答をしました。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  老人は暫(しばら)く何事か考へてゐるやうでしたが、やがて、往来にさしてゐる夕日の光を指さしながら、 「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一つ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に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頭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黄金が埋まつてゐる筈だから。」 「ほんたうですか。」  杜子春は驚いて、伏せてゐた眼を挙げました。所が更に不思議なことには、あの老人はどこへ行つたか、もうあたりにはそれらしい、影も形も見当りません。その代り空の月の色は前よりも猶(なほ)白くなつて、休みない往来の人通りの上には、もう気の早い蝙蝠(かうもり)が二三匹ひらひら舞つてゐました。        二  杜子春(とししゆん)は一日の内に、洛陽の都でも唯一人といふ大金持になりました。あの老人の言葉通り、夕日に影を映して見て、その頭に当る所を、夜中にそつと掘つて見たら、大きな車にも余る位、黄金が一山出て来たのです。  大金持になつた杜子春は、すぐに立派な家を買つて、玄宗(げんそう)皇帝にも負けない位、贅沢(ぜいたく)な暮しをし始めました。蘭陵(らんりよう)の酒を買はせるやら、桂州の竜眼肉(りゆうがんにく)をとりよせるやら、日に四度色の変る牡丹(ぼたん)を庭に植ゑさせるやら、白孔雀(しろくじやく)を何羽も放し飼ひにするやら、玉を集めるやら、錦を縫はせるやら、香木(かうぼく)の車を造らせるやら、象牙の椅子を誂(あつら)へるやら、その贅沢を一々書いてゐては、いつになつてもこの話がおしまひにならない位です。  するとかういふ噂(うはさ)を聞いて、今までは路で行き合つても、挨拶さへしなかつた友だちなどが、朝夕遊びにやつて来ました。それも一日毎に数が増して、半年ばかり経つ内には、洛陽の都に名を知られた才子や美人が多い中で、杜子春の家へ来ないものは、一人もない位になつてしまつたのです。杜子春はこの御客たちを相手に、毎日酒盛りを開きました。その酒盛りの又盛なことは、中々口には尽されません。極(ごく)かいつまんだだけをお話しても、杜子春が金の杯に西洋から来た葡萄酒を汲んで、天竺(てんぢく)生れの魔法使が刀を呑んで見せる芸に見とれてゐると、そのまはりには二十人の女たちが、十人は翡翠(ひすゐ)の蓮の花を、十人は瑪瑙(めなう)の牡丹の花を、いづれも髪に飾りながら、笛や琴を節面白く奏してゐるといふ景色なのです。  しかしいくら大金持でも、御金には際限がありますから、さすがに贅沢家(ぜいたくや)の杜子春も、一年二年と経つ内には、だんだん貧乏になり出しました。さうすると人間は薄情なもので、昨日までは毎日来た友だちも、今日は門の前を通つてさへ、挨拶一つして行きません。ましてとうとう三年目の春、又杜子春が以前の通り、一文無しになつて見ると、広い洛陽の都の中にも、彼に宿を貸さうといふ家は、一軒もなくなつてしまひました。いや、宿を貸す所か、今では椀に一杯の水も、恵んでくれるものはないのです。  そこで彼は或日の夕方、もう一度あの洛陽の西の門の下へ行つて、ぼんやり空を眺めながら、途方に暮れて立つてゐました。するとやはり昔のやうに、片目眇(すがめ)の老人が、どこからか姿を現して、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と、声をかけるではありませんか。  杜子春は老人の顔を見ると、恥しさうに下を向いた儘(まま)、暫(しばら)くは返事もしませんでした。が、老人はその日も親切さうに、同じ言葉を繰返しますから、こちらも前と同じやうに、 「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たものかと考へてゐるのです。」と、恐る恐る返事をしました。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一つ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へ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胸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黄金が埋まつてゐる筈だから。」   老人はかう言つたと思ふと、今度も亦(また)人ごみの中へ、掻き消すやうに隠れてしまひました。  杜子春はその翌日から、忽(たちま)ち天下第一の大金持に返りました。と同時に相変らず、仕放題(しはうだい)な贅沢をし始めました。庭に咲いてゐる牡丹の花、その中に眠つてゐる白孔雀、それから刀を呑んで見せる、天竺から来た魔法使――すべてが昔の通りなのです。  ですから車に一ぱいあつた、あの夥(おびただ)しい黄金も、又三年ばかり経(た)つ内には、すつかりなくなつてしまひました。        三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  片目眇の老人は、三度杜子春の前へ来て、同じことを問ひかけました。勿論彼はその時も、洛陽の西の門の下に、ほそぼそと霞を破つてゐる三日月の光を眺めながら、ぼんやり佇(たたず)んでゐたのです。 「私ですか。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ようかと思つてゐるのです。」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へ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腹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  老人がここまで言ひかけると、杜子春は急に手を挙げて、その言葉を遮(さへぎ)りました。 「いや、お金はもう入らないのです。」 「金はもう入らない? ははあ、では贅沢をするにはとうとう飽きてしまつたと見えるな。」  老人は審(いぶか)しさうな眼つきをしながら、ぢつと杜子春の顔を見つめました。 「何、贅沢に飽きたのぢやありません。人間といふものに愛想がつきたのです。」  杜子春は不平さうな顔をしながら、突慳貪(つつけんどん)にかう言ひました。 「それは面白いな。どうして又人間に愛想が尽きたのだ?」 「人間は皆薄情です。私が大金持になつた時には、世辞も追従(つゐしよう)もしますけれど、一旦貧乏になつて御覧なさい。柔(やさ)しい顔さへもして見せはしません。そんなことを考へると、たとひもう一度大金持になつた所が、何にもならないやうな気がするのです。」  老人は杜子春の言葉を聞くと、急ににやにや笑ひ出しました。 「さうか。いや、お前は若い者に似合はず、感心に物のわかる男だ。ではこれからは貧乏をしても、安らかに暮して行くつもりか。」  杜子春はちよいとためらひました。が、すぐに思ひ切つた眼を挙げると、訴へるやうに老人の顔を見ながら、 「それも今の私には出来ません。ですから私はあなたの弟子になつて、仙術の修業をしたいと思ふのです。いいえ、隠し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は道徳の高い仙人でせう。仙人でなければ、一夜の内に私を天下第一の大金持にすることは出来ない筈です。どうか私の先生になつて、不思議な仙術を教へて下さい。」  老人は眉をひそめた儘、暫くは黙つて、何事か考へてゐるやうでしたが、やがて又につこり笑ひながら、 「いかにもおれは峨眉山(がびさん)に棲(す)んでゐる、鉄冠子(てつくわんし)といふ仙人だ。始めお前の顔を見た時、どこか物わかりが好ささうだつたから、二度まで大金持にしてやつたのだが、それ程仙人になりたければ、おれの弟子にとり立ててやらう。」と、快く願を容(い)れてくれました。  杜子春は喜んだの、喜ば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老人の言葉がまだ終らない内に、彼は大地に額をつけて、何度も鉄冠子に御時宜(おじぎ)をしました。 「いや、さう御礼などは言つて貰ふまい。いくらおれの弟子にした所で、立派な仙人になれるかなれないかは、お前次第できまることだからな。――が、兎も角もまづおれと一しよに、峨眉山の奥へ来て見るが好い。おお、幸(さいはひ)、ここに竹杖が一本落ちてゐる。では早速これへ乗つて、一飛びに空を渡るとしよう。」  鉄冠子はそこにあつた青竹を一本拾ひ上げると、口の中に呪文(じゆもん)を唱へながら、杜子春と一しよにその竹へ、馬にでも乗るやうに跨(またが)りました。すると不思議ではありませんか。竹杖は忽(たちま)ち竜のやうに、勢よく大空へ舞ひ上つて、晴れ渡つた春の夕空を峨眉山の方角へ飛んで行きました。  杜子春は胆(きも)をつぶしながら、恐る恐る下を見下しました。が、下には唯青い山々が夕明りの底に見えるばかりで、あの洛陽の都の西の門は、(とうに霞に紛(まぎ)れたのでせう。)どこを探しても見当りません。その内に鉄冠子は、白い鬢(びん)の毛を風に吹かせて、高らかに歌を唱ひ出しました。 朝(あした)に北海に遊び、暮には蒼梧(さうご)。 袖裏(しうり)の青蛇(せいだ)、胆気(たんき)粗(そ)なり。 三たび嶽陽(がくやう)に入れども、人識らず。 朗吟して、飛過(ひくわ)す洞庭湖。        四  二人を乗せた青竹は、間もなく峨眉山へ舞ひ下りました。  そこは深い谷に臨んだ、幅の広い一枚岩の上でしたが、よくよく高い所だと見えて、中空に垂れた北斗の星が、茶碗程の大きさに光つてゐました。元より人跡の絶えた山ですから、あたりはしんと静まり返つて、やつと耳にはひるものは、後の絶壁に生えてゐる、曲りくねつた一株の松が、こうこうと夜風に鳴る音だけです。  二人がこの岩の上に来ると、鉄冠子は杜子春を絶壁の下に坐らせて、 「おれはこれから天上へ行つて、西王母(せいわうぼ)に御眼にかかつて来るから、お前はその間ここに坐つて、おれの帰るのを待つてゐるが好い。多分おれがゐなくなると、いろいろな魔性(ましやう)が現れて、お前をたぶらかさうとするだらうが、たとひどんなことが起らうとも、決して声を出すのではないぞ。もし一言でも口を利いたら、お前は到底仙人にはなれないものだと覚悟をしろ。好いか。天地が裂けても、黙つてゐるのだぞ。」と言ひました。 「大丈夫です。決して声なぞは出しはしません。命がなくなつても、黙つてゐます。」 「さうか。それを聞いて、おれも安心した。ではおれは行つて来るから。」  老人は杜子春に別れを告げると、又あの竹杖に跨(またが)つて、夜目にも削つたやうな山々の空へ、一文字に消えてしまひました。  杜子春はたつた一人、岩の上に坐つた儘、静に星を眺めてゐました。すると彼是(かれこれ)半時ばかり経つて、深山の夜気が肌寒く薄い着物に透(とほ)り出した頃、突然空中に声があつて、 「そこにゐるのは何者だ。」と叱りつけるではありませんか。  しかし杜子春は仙人の教通り、何とも返事をしずにゐました。  所が又暫くすると、やはり同じ声が響いて、 「返事をしないと立ち所に、命はないものと覚悟しろ。」と、いかめしく嚇(おど)しつけるのです。  杜子春は勿論黙つてゐました。  と、どこから登つて来たか、爛々(らんらん)と眼を光らせた虎が一匹、忽然(こつぜん)と岩の上に躍り上つて、杜子春の姿を睨みながら、一声高く哮(たけ)りました。のみならずそれと同時に、頭の上の松の枝が、烈しくざわざわ揺れたと思ふと、後の絶壁の頂からは、四斗樽程の白蛇(はくだ)が一匹、炎のやうな舌を吐いて、見る見る近くへ下りて来るのです。  杜子春はしかし平然と、眉毛も動かさずに坐つてゐました。  虎と蛇とは、一つ餌食を狙つて、互に隙でも窺(うかが)ふのか、暫くは睨合ひの体でしたが、やがてどちらが先ともなく、一時に杜子春に飛びかかりました。が、虎の牙に噛まれるか、蛇の舌に呑まれるか、杜子春の命は瞬(またた)く内に、なくなつてしまふと思つた時、虎と蛇とは霧の如く、夜風と共に消え失せて、後には唯、絶壁の松が、さつきの通りこうこうと枝を鳴らしてゐるばかりなのです。杜子春はほつと一息しながら、今度はどんなことが起るかと、心待ちに待つてゐました。  すると一陣の風が吹き起つて、墨のやうな黒雲が一面にあたりをとざすや否や、うす紫の稲妻がやにはに闇を二つに裂いて、凄じく雷(らい)が鳴り出しました。いや、雷ばかりではありません。それと一しよに瀑(たき)のやうな雨も、いきなりどうどうと降り出したのです。杜子春はこの天変の中に、恐れ気もなく坐つてゐました。風の音、雨のしぶき、それから絶え間ない稲妻の光、――暫くはさすがの峨眉山(がびさん)も、覆(くつがへ)るかと思ふ位でしたが、その内に耳をもつんざく程、大きな雷鳴が轟(とどろ)いたと思ふと、空に渦巻いた黒雲の中から、まつ赤な一本の火柱が、杜子春の頭へ落ちかかりました。  杜子春は思はず耳を抑へて、一枚岩の上へひれ伏しました。が、すぐに眼を開いて見ると、空は以前の通り晴れ渡つて、向うに聳(そび)えた山山の上にも、茶碗程の北斗の星が、やはりきらきら輝いてゐます。して見れば今の大あらしも、あの虎や白蛇と同じやうに、鉄冠子(てつくわんし)の留守をつけこんだ、魔性の悪戯(いたづら)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漸(やうや)く安心して、額の冷汗を拭ひながら、又岩の上に坐り直しました。  が、そのため息がまだ消えない内に、今度は彼の坐つてゐる前へ、金の鎧(よろひ)を着下(きくだ)した、身の丈三丈もあらうといふ、厳かな神将が現れました。神将は手に三叉(みつまた)の戟(ほこ)を持つてゐましたが、いきなりその戟の切先を杜子春の胸もとへ向けながら、眼を嗔(いか)らせて叱りつけるのを聞けば、 「こら、その方は一体何物だ。この峨眉山といふ山は、天地開闢(かいびやく)の昔から、おれが住居(すまひ)をしてゐる所だぞ。それも憚(はばか)らずたつた一人、ここへ足を踏み入れるとは、よもや唯の人間ではあるまい。さあ命が惜しかつたら、一刻も早く返答しろ。」と言ふのです。  しかし杜子春は老人の言葉通り、黙然(もくねん)と口を噤(つぐ)んでゐました。 「返事をしないか。――しないな。好し。しなければ、しないで勝手にしろ。その代りおれの眷属(けんぞく)たちが、その方をずたずたに斬つてしまふぞ。」  神将は戟(ほこ)を高く挙げて、向うの山の空を招きました。その途端に闇がさつと裂けると、驚いたことには無数の神兵が、雲の如く空に充満(みちみ)ちて、それが皆槍や刀をきらめかせながら、今にもここへ一なだれに攻め寄せようとしてゐるのです。  この景色を見た杜子春は、思はずあつと叫びさうにしましたが、すぐに又鉄冠子の言葉を思ひ出して、一生懸命に黙つてゐました。神将は彼が恐れないのを見ると、怒つたの怒ら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 「この剛情者め。どうしても返事をしなければ、約束通り命はとつてやるぞ。」  神将はかう喚(わめ)くが早いか、三叉(みつまた)の戟(ほこ)を閃(ひらめ)かせて、一突きに杜子春を突き殺しました。さうして峨眉山もどよむ程、からからと高く笑ひながら、どこともなく消えてしまひました。勿論この時はもう無数の神兵も、吹き渡る夜風の音と一しよに、夢のやうに消え失せた後だつたのです。  北斗の星は又寒さうに、一枚岩の上を照らし始めました。絶壁の松も前に変らず、こうこうと枝を鳴らせてゐます。が、杜子春はとうに息が絶えて、仰向(あふむ)けにそこへ倒れてゐました。        五  杜子春の体は岩の上へ、仰向けに倒れてゐましたが、杜子春の魂は、静に体から抜け出して、地獄の底へ下りて行きました。  この世と地獄との間には、闇穴道(あんけつだう)といふ道があつて、そこは年中暗い空に、氷のやうな冷たい風がぴゆうぴゆう吹き荒(すさ)んでゐるのです。杜子春はその風に吹かれながら、暫くは唯(ただ)木の葉のやうに、空を漂つて行きましたが、やがて森羅殿(しんらでん)といふ額の懸つた立派な御殿の前へ出ました。  御殿の前にゐた大勢の鬼は、杜子春の姿を見るや否や、すぐにそのまはりを取り捲いて、階(きざはし)の前へ引き据ゑました。階の上には一人の王様が、まつ黒な袍(きもの)に金の冠(かんむり)をかぶつて、いかめしくあたりを睨んでゐます。これは兼ねて噂(うはさ)に聞いた、閻魔(えんま)大王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どうなることかと思ひながら、恐る恐るそこへ跪(ひざまづ)いてゐました。 「こら、その方は何の為に、峨眉山の上へ坐つてゐた?」  閻魔大王の声は雷のやうに、階の上から響きました。杜子春は早速その問に答へようとしましたが、ふと又思ひ出したのは、「決して口を利くな。」といふ鉄冠子の戒めの言葉です。そこで唯頭を垂れた儘、唖(おし)のやうに黙つてゐました。すると閻魔大王は、持つてゐた鉄の笏(しやく)を挙げて、顔中の鬚(ひげ)を逆立てながら、 「その方はここをどこだと思ふ? 速(すみやか)に返答をすれば好し、さもなければ時を移さず、地獄の呵責(かしやく)に遇(あ)はせてくれるぞ。」と、威丈高(ゐたけだか)に罵(ののし)りました。  が、杜子春は相変らず唇(くちびる)一つ動かしません。それを見た閻魔大王は、すぐに鬼どもの方を向いて、荒々しく何か言ひつけると、鬼どもは一度に畏(かしこま)つて、忽ち杜子春を引き立てながら、森羅殿の空へ舞ひ上りました。  地獄には誰でも知つてゐる通り、剣(つるぎ)の山や血の池の外にも、焦熱(せうねつ)地獄といふ焔の谷や極寒(ごくかん)地獄といふ氷の海が、真暗な空の下に並んでゐます。鬼どもはさういふ地獄の中へ、代る代る杜子春を抛(はふ)りこみました。ですから杜子春は無残にも、剣に胸を貫かれるやら、焔に顔を焼かれるやら、舌を抜かれるやら、皮を剥がれるやら、鉄の杵(きね)に撞(つ)かれるやら、油の鍋に煮られるやら、毒蛇に脳味噌を吸はれるやら、熊鷹に眼を食はれるやら、――その苦しみを数へ立ててゐては、到底際限がない位、あらゆる責苦(せめく)に遇はされたのです。それでも杜子春は我慢強く、ぢつと歯を食ひしばつた儘、一言も口を利きませんでした。  これにはさすがの鬼どもも、呆れ返つてしまつたのでせう。もう一度夜のやうな空を飛んで、森羅殿の前へ帰つて来ると、さつきの通り杜子春を階(きざはし)の下に引き据ゑながら、御殿の上の閻魔大王に、 「この罪人はどうしても、ものを言ふ気色(けしき)がございません。」と、口を揃へて言上(ごんじやう)しました。  閻魔大王は眉をひそめて、暫く思案に暮れてゐましたが、やがて何か思ひついたと見えて、 「この男の父母(ちちはは)は、畜生道に落ちてゐる筈だから、早速ここへ引き立てて来い。」と、一匹の鬼に云ひつけました。  鬼は忽ち風に乗つて、地獄の空へ舞ひ上りました。と思ふと、又星が流れるやうに、二匹の獣を駆り立てながら、さつと森羅殿の前へ下りて来ました。その獣を見た杜子春は、驚いたの驚か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なぜかといへばそれは二匹とも、形は見すぼらしい痩せ馬でしたが、顔は夢にも忘れない、死んだ父母の通りでしたから。 「こら、その方は何のために、峨眉山の上に坐つてゐたか、まつすぐに白状しなければ、今度はその方の父母に痛い思ひをさせてやるぞ。」  杜子春はかう嚇(おど)されても、やはり返答をしずにゐました。 「この不孝者めが。その方は父母が苦しんでも、その方さへ都合が好ければ、好いと思つてゐるのだな。」  閻魔大王は森羅殿も崩れる程、凄じい声で喚きました。 「打て。鬼ども。その二匹の畜生を、肉も骨も打ち砕いてしまへ。」  鬼どもは一斉に「はつ」と答へながら、鉄の鞭(むち)をとつて立ち上ると、四方八方から二匹の馬を、未練未釈(みれんみしやく)なく打ちのめしました。鞭はりうりうと風を切つて、所嫌はず雨のやうに、馬の皮肉を打ち破るのです。馬は、――畜生になつた父母は、苦しさうに身を悶(もだ)えて、眼には血の涙を浮べた儘、見てもゐられない程嘶(いなな)き立てました。 「どうだ。まだその方は白状しないか。」  閻魔大王は鬼どもに、暫く鞭の手をやめさせて、もう一度杜子春の答を促しました。もうその時には二匹の馬も、肉は裂け骨は砕けて、息も絶え絶えに階(きざはし)の前へ、倒れ伏してゐたのです。  杜子春は必死になつて、鉄冠子の言葉を思ひ出しながら、緊(かた)く眼をつぶつてゐました。するとその時彼の耳には、殆(ほとんど)声とはいへない位、かすかな声が伝はつて来ました。 「心配をおしでない。私たちはどうなつても、お前さへ仕合せになれるのなら、それより結構なことはないのだからね。大王が何と仰(おつしや)つても、言ひたくないことは黙つて御出(おい)で。」  それは確に懐しい、母親の声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思はず、眼をあきました。さうして馬の一匹が、力なく地上に倒れた儘、悲しさうに彼の顔へ、ぢつと眼をやつてゐるのを見ました。母親はこんな苦しみの中にも、息子の心を思ひやつて、鬼どもの鞭に打たれたことを、怨む気色(けしき)さへも見せないのです。大金持になれば御世辞を言ひ、貧乏人になれば口も利かない世間の人たちに比べると、何といふ有難い志でせう。何といふ健気な決心でせう。杜子春は老人の戒めも忘れて、転(まろ)ぶやうにその側へ走りよると、両手に半死の馬の頸を抱いて、はらはらと涙を落しながら、「お母さん。」と一声を叫びました。……        六  その声に気がついて見ると、杜子春はやはり夕日を浴びて、洛陽の西の門の下に、ぼんやり佇んでゐるのでした。霞んだ空、白い三日月、絶え間ない人や車の波、――すべてがまだ峨眉山へ、行かない前と同じことです。 「どうだな。おれの弟子になつた所が、とても仙人にはなれはすまい。」 片目眇(すがめ)の老人は微笑を含みながら言ひました。 「なれません。なれませんが、しかし私はなれなかつたことも、反(かへ)つて嬉しい気がするのです。」  杜子春はまだ眼に涙を浮べた儘、思はず老人の手を握りました。 「いくら仙人になれた所が、私はあの地獄の森羅殿の前に、鞭を受けてゐる父母を見ては、黙つてゐる訳には行きません。」 「もしお前が黙つてゐたら――」と鉄冠子は急に厳(おごそか)な顔になつて、ぢつと杜子春を見つめました。 「もしお前が黙つてゐたら、おれは即座にお前の命を絶つてしまはうと思つてゐたのだ。――お前はもう仙人になりたいといふ望も持つてゐまい。大金持になることは、元より愛想がつきた筈だ。ではお前はこれから後、何になつたら好いと思ふな。」 「何になつても、人間らしい、正直な暮しをするつもりです。」  杜子春の声には今までにない晴れ晴れした調子が罩(こも)つてゐました。 「その言葉を忘れるなよ。ではおれは今日限り、二度とお前には遇はないから。」  鉄冠子はかう言ふ内に、もう歩き出してゐましたが、急に又足を止めて、杜子春の方を振り返ると、 「おお、幸(さいはひ)、今思ひ出したが、おれは泰山の南の麓(ふもと)に一軒の家を持つてゐる。その家を畑ごとお前にやるから、早速行つて住まふが好い。今頃は丁度家のまはりに、桃の花が一面に咲いてゐるだらう。」と、さも愉快さうにつけ加へました。 (大正九年六月)   底本:「現代日本文学大系 43 芥川龍之介集」筑摩書房    1968(昭和43)年8月25日初版第1刷発行 入力:j.utiyama 校正:野口英司 1998年5月20日公開 2004年3月12日修正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杜子春 芥川龍之介        一  或春の日暮です。  唐の都洛陽(らくやう)の西の門の下に、ぼんやり空を仰いでゐる、一人の若者がありました。  若者は名は杜子春(とししゆん)といつて、元は金持の息子でしたが、今は財産を費(つか)ひ尽(つく)して、その日の暮しにも困る位、憐(あはれ)な身分になつてゐるのです。  何しろその頃洛陽といへば、天下に並ぶもののない、繁昌を極めた都ですから、往来(わうらい)にはまだしつきりなく、人や車が通つてゐました。門一ぱいに当つてゐる、油のやうな夕日の光の中に、老人のかぶつた紗(しや)の帽子や、土耳古(トルコ)の女の金の耳環や、白馬に飾つた色糸の手綱(たづな)が、絶えず流れて行く容子(ようす)は、まるで画のやうな美しさです。  しかし杜子春は相変らず、門の壁に身を凭(もた)せて、ぼんやり空ばかり眺めてゐました。空には、もう細い月が、うらうらと靡(なび)いた霞の中に、まるで爪の痕(あと)かと思ふ程、かすかに白く浮んでゐるのです。 「日は暮れるし、腹は減るし、その上もうどこへ行つても、泊めてくれる所はなささうだし――こんな思ひをして生きてゐる位なら、一そ川へでも身を投げて、死んでしまつた方がましかも知れない。」  杜子春はひとりさつきから、こんな取りとめもないことを思ひめぐらしてゐたのです。  するとどこからやつて来たか、突然彼の前へ足を止めた、片目眇(すがめ)の老人があります。それが夕日の光を浴びて、大きな影を門へ落すと、ぢつと杜子春の顔を見ながら、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と、横柄(わうへい)に言葉をかけました。 「私ですか。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たものかと考へてゐるのです。」  老人の尋ね方が急でしたから、杜子春はさすがに眼を伏せて、思はず正直な答をしました。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  老人は暫(しばら)く何事か考へてゐるやうでしたが、やがて、往来にさしてゐる夕日の光を指さしながら、 「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一つ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に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頭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黄金が埋まつてゐる筈だから。」 「ほんたうですか。」  杜子春は驚いて、伏せてゐた眼を挙げました。所が更に不思議なことには、あの老人はどこへ行つたか、もうあたりにはそれらしい、影も形も見当りません。その代り空の月の色は前よりも猶(なほ)白くなつて、休みない往来の人通りの上には、もう気の早い蝙蝠(かうもり)が二三匹ひらひら舞つてゐました。        二  杜子春(とししゆん)は一日の内に、洛陽の都でも唯一人といふ大金持になりました。あの老人の言葉通り、夕日に影を映して見て、その頭に当る所を、夜中にそつと掘つて見たら、大きな車にも余る位、黄金が一山出て来たのです。  大金持になつた杜子春は、すぐに立派な家を買つて、玄宗(げんそう)皇帝にも負けない位、贅沢(ぜいたく)な暮しをし始めました。蘭陵(らんりよう)の酒を買はせるやら、桂州の竜眼肉(りゆうがんにく)をとりよせるやら、日に四度色の変る牡丹(ぼたん)を庭に植ゑさせるやら、白孔雀(しろくじやく)を何羽も放し飼ひにするやら、玉を集めるやら、錦を縫はせるやら、香木(かうぼく)の車を造らせるやら、象牙の椅子を誂(あつら)へるやら、その贅沢を一々書いてゐては、いつになつてもこの話がおしまひにならない位です。  するとかういふ噂(うはさ)を聞いて、今までは路で行き合つても、挨拶さへしなかつた友だちなどが、朝夕遊びにやつて来ました。それも一日毎に数が増して、半年ばかり経つ内には、洛陽の都に名を知られた才子や美人が多い中で、杜子春の家へ来ないものは、一人もない位になつてしまつたのです。杜子春はこの御客たちを相手に、毎日酒盛りを開きました。その酒盛りの又盛なことは、中々口には尽されません。極(ごく)かいつまんだだけをお話しても、杜子春が金の杯に西洋から来た葡萄酒を汲んで、天竺(てんぢく)生れの魔法使が刀を呑んで見せる芸に見とれてゐると、そのまはりには二十人の女たちが、十人は翡翠(ひすゐ)の蓮の花を、十人は瑪瑙(めなう)の牡丹の花を、いづれも髪に飾りながら、笛や琴を節面白く奏してゐるといふ景色なのです。  しかしいくら大金持でも、御金には際限がありますから、さすがに贅沢家(ぜいたくや)の杜子春も、一年二年と経つ内には、だんだん貧乏になり出しました。さうすると人間は薄情なもので、昨日までは毎日来た友だちも、今日は門の前を通つてさへ、挨拶一つして行きません。ましてとうとう三年目の春、又杜子春が以前の通り、一文無しになつて見ると、広い洛陽の都の中にも、彼に宿を貸さうといふ家は、一軒もなくなつてしまひました。いや、宿を貸す所か、今では椀に一杯の水も、恵んでくれるものはないのです。  そこで彼は或日の夕方、もう一度あの洛陽の西の門の下へ行つて、ぼんやり空を眺めながら、途方に暮れて立つてゐました。するとやはり昔のやうに、片目眇(すがめ)の老人が、どこからか姿を現して、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と、声をかけるではありませんか。  杜子春は老人の顔を見ると、恥しさうに下を向いた儘(まま)、暫(しばら)くは返事もしませんでした。が、老人はその日も親切さうに、同じ言葉を繰返しますから、こちらも前と同じやうに、 「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たものかと考へてゐるのです。」と、恐る恐る返事をしました。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一つ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へ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胸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黄金が埋まつてゐる筈だから。」   老人はかう言つたと思ふと、今度も亦(また)人ごみの中へ、掻き消すやうに隠れてしまひました。  杜子春はその翌日から、忽(たちま)ち天下第一の大金持に返りました。と同時に相変らず、仕放題(しはうだい)な贅沢をし始めました。庭に咲いてゐる牡丹の花、その中に眠つてゐる白孔雀、それから刀を呑んで見せる、天竺から来た魔法使――すべてが昔の通りなのです。  ですから車に一ぱいあつた、あの夥(おびただ)しい黄金も、又三年ばかり経(た)つ内には、すつかりなくなつてしまひました。        三 「お前は何を考へてゐるのだ。」  片目眇の老人は、三度杜子春の前へ来て、同じことを問ひかけました。勿論彼はその時も、洛陽の西の門の下に、ほそぼそと霞を破つてゐる三日月の光を眺めながら、ぼんやり佇(たたず)んでゐたのです。 「私ですか。私は今夜寝る所もないので、どうしようかと思つてゐるのです。」 「さうか。それは可哀さうだな。ではおれが好いことを教へてやらう。今この夕日の中へ立つて、お前の影が地に映つたら、その腹に当る所を、夜中に掘つて見るが好い。きつと車に一ぱいの――」  老人がここまで言ひかけると、杜子春は急に手を挙げて、その言葉を遮(さへぎ)りました。 「いや、お金はもう入らないのです。」 「金はもう入らない? ははあ、では贅沢をするにはとうとう飽きてしまつたと見えるな。」  老人は審(いぶか)しさうな眼つきをしながら、ぢつと杜子春の顔を見つめました。 「何、贅沢に飽きたのぢやありません。人間といふものに愛想がつきたのです。」  杜子春は不平さうな顔をしながら、突慳貪(つつけんどん)にかう言ひました。 「それは面白いな。どうして又人間に愛想が尽きたのだ?」 「人間は皆薄情です。私が大金持になつた時には、世辞も追従(つゐしよう)もしますけれど、一旦貧乏になつて御覧なさい。柔(やさ)しい顔さへもして見せはしません。そんなことを考へると、たとひもう一度大金持になつた所が、何にもならないやうな気がするのです。」  老人は杜子春の言葉を聞くと、急ににやにや笑ひ出しました。 「さうか。いや、お前は若い者に似合はず、感心に物のわかる男だ。ではこれからは貧乏をしても、安らかに暮して行くつもりか。」  杜子春はちよいとためらひました。が、すぐに思ひ切つた眼を挙げると、訴へるやうに老人の顔を見ながら、 「それも今の私には出来ません。ですから私はあなたの弟子になつて、仙術の修業をしたいと思ふのです。いいえ、隠し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は道徳の高い仙人でせう。仙人でなければ、一夜の内に私を天下第一の大金持にすることは出来ない筈です。どうか私の先生になつて、不思議な仙術を教へて下さい。」  老人は眉をひそめた儘、暫くは黙つて、何事か考へてゐるやうでしたが、やがて又につこり笑ひながら、 「いかにもおれは峨眉山(がびさん)に棲(す)んでゐる、鉄冠子(てつくわんし)といふ仙人だ。始めお前の顔を見た時、どこか物わかりが好ささうだつたから、二度まで大金持にしてやつたのだが、それ程仙人になりたければ、おれの弟子にとり立ててやらう。」と、快く願を容(い)れてくれました。  杜子春は喜んだの、喜ば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老人の言葉がまだ終らない内に、彼は大地に額をつけて、何度も鉄冠子に御時宜(おじぎ)をしました。 「いや、さう御礼などは言つて貰ふまい。いくらおれの弟子にした所で、立派な仙人になれるかなれないかは、お前次第できまることだからな。――が、兎も角もまづおれと一しよに、峨眉山の奥へ来て見るが好い。おお、幸(さいはひ)、ここに竹杖が一本落ちてゐる。では早速これへ乗つて、一飛びに空を渡るとしよう。」  鉄冠子はそこにあつた青竹を一本拾ひ上げると、口の中に呪文(じゆもん)を唱へながら、杜子春と一しよにその竹へ、馬にでも乗るやうに跨(またが)りました。すると不思議ではありませんか。竹杖は忽(たちま)ち竜のやうに、勢よく大空へ舞ひ上つて、晴れ渡つた春の夕空を峨眉山の方角へ飛んで行きました。  杜子春は胆(きも)をつぶしながら、恐る恐る下を見下しました。が、下には唯青い山々が夕明りの底に見えるばかりで、あの洛陽の都の西の門は、(とうに霞に紛(まぎ)れたのでせう。)どこを探しても見当りません。その内に鉄冠子は、白い鬢(びん)の毛を風に吹かせて、高らかに歌を唱ひ出しました。 朝(あした)に北海に遊び、暮には蒼梧(さうご)。 袖裏(しうり)の青蛇(せいだ)、胆気(たんき)粗(そ)なり。 三たび嶽陽(がくやう)に入れども、人識らず。 朗吟して、飛過(ひくわ)す洞庭湖。        四  二人を乗せた青竹は、間もなく峨眉山へ舞ひ下りました。  そこは深い谷に臨んだ、幅の広い一枚岩の上でしたが、よくよく高い所だと見えて、中空に垂れた北斗の星が、茶碗程の大きさに光つてゐました。元より人跡の絶えた山ですから、あたりはしんと静まり返つて、やつと耳にはひるものは、後の絶壁に生えてゐる、曲りくねつた一株の松が、こうこうと夜風に鳴る音だけです。  二人がこの岩の上に来ると、鉄冠子は杜子春を絶壁の下に坐らせて、 「おれはこれから天上へ行つて、西王母(せいわうぼ)に御眼にかかつて来るから、お前はその間ここに坐つて、おれの帰るのを待つてゐるが好い。多分おれがゐなくなると、いろいろな魔性(ましやう)が現れて、お前をたぶらかさうとするだらうが、たとひどんなことが起らうとも、決して声を出すのではないぞ。もし一言でも口を利いたら、お前は到底仙人にはなれないものだと覚悟をしろ。好いか。天地が裂けても、黙つてゐるのだぞ。」と言ひました。 「大丈夫です。決して声なぞは出しはしません。命がなくなつても、黙つてゐます。」 「さうか。それを聞いて、おれも安心した。ではおれは行つて来るから。」  老人は杜子春に別れを告げると、又あの竹杖に跨(またが)つて、夜目にも削つたやうな山々の空へ、一文字に消えてしまひました。  杜子春はたつた一人、岩の上に坐つた儘、静に星を眺めてゐました。すると彼是(かれこれ)半時ばかり経つて、深山の夜気が肌寒く薄い着物に透(とほ)り出した頃、突然空中に声があつて、 「そこにゐるのは何者だ。」と叱りつけるではありませんか。  しかし杜子春は仙人の教通り、何とも返事をしずにゐました。  所が又暫くすると、やはり同じ声が響いて、 「返事をしないと立ち所に、命はないものと覚悟しろ。」と、いかめしく嚇(おど)しつけるのです。  杜子春は勿論黙つてゐました。  と、どこから登つて来たか、爛々(らんらん)と眼を光らせた虎が一匹、忽然(こつぜん)と岩の上に躍り上つて、杜子春の姿を睨みながら、一声高く哮(たけ)りました。のみならずそれと同時に、頭の上の松の枝が、烈しくざわざわ揺れたと思ふと、後の絶壁の頂からは、四斗樽程の白蛇(はくだ)が一匹、炎のやうな舌を吐いて、見る見る近くへ下りて来るのです。  杜子春はしかし平然と、眉毛も動かさずに坐つてゐました。  虎と蛇とは、一つ餌食を狙つて、互に隙でも窺(うかが)ふのか、暫くは睨合ひの体でしたが、やがてどちらが先ともなく、一時に杜子春に飛びかかりました。が、虎の牙に噛まれるか、蛇の舌に呑まれるか、杜子春の命は瞬(またた)く内に、なくなつてしまふと思つた時、虎と蛇とは霧の如く、夜風と共に消え失せて、後には唯、絶壁の松が、さつきの通りこうこうと枝を鳴らしてゐるばかりなのです。杜子春はほつと一息しながら、今度はどんなことが起るかと、心待ちに待つてゐました。  すると一陣の風が吹き起つて、墨のやうな黒雲が一面にあたりをとざすや否や、うす紫の稲妻がやにはに闇を二つに裂いて、凄じく雷(らい)が鳴り出しました。いや、雷ばかりではありません。それと一しよに瀑(たき)のやうな雨も、いきなりどうどうと降り出したのです。杜子春はこの天変の中に、恐れ気もなく坐つてゐました。風の音、雨のしぶき、それから絶え間ない稲妻の光、――暫くはさすがの峨眉山(がびさん)も、覆(くつがへ)るかと思ふ位でしたが、その内に耳をもつんざく程、大きな雷鳴が轟(とどろ)いたと思ふと、空に渦巻いた黒雲の中から、まつ赤な一本の火柱が、杜子春の頭へ落ちかかりました。  杜子春は思はず耳を抑へて、一枚岩の上へひれ伏しました。が、すぐに眼を開いて見ると、空は以前の通り晴れ渡つて、向うに聳(そび)えた山山の上にも、茶碗程の北斗の星が、やはりきらきら輝いてゐます。して見れば今の大あらしも、あの虎や白蛇と同じやうに、鉄冠子(てつくわんし)の留守をつけこんだ、魔性の悪戯(いたづら)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漸(やうや)く安心して、額の冷汗を拭ひながら、又岩の上に坐り直しました。  が、そのため息がまだ消えない内に、今度は彼の坐つてゐる前へ、金の鎧(よろひ)を着下(きくだ)した、身の丈三丈もあらうといふ、厳かな神将が現れました。神将は手に三叉(みつまた)の戟(ほこ)を持つてゐましたが、いきなりその戟の切先を杜子春の胸もとへ向けながら、眼を嗔(いか)らせて叱りつけるのを聞けば、 「こら、その方は一体何物だ。この峨眉山といふ山は、天地開闢(かいびやく)の昔から、おれが住居(すまひ)をしてゐる所だぞ。それも憚(はばか)らずたつた一人、ここへ足を踏み入れるとは、よもや唯の人間ではあるまい。さあ命が惜しかつたら、一刻も早く返答しろ。」と言ふのです。  しかし杜子春は老人の言葉通り、黙然(もくねん)と口を噤(つぐ)んでゐました。 「返事をしないか。――しないな。好し。しなければ、しないで勝手にしろ。その代りおれの眷属(けんぞく)たちが、その方をずたずたに斬つてしまふぞ。」  神将は戟(ほこ)を高く挙げて、向うの山の空を招きました。その途端に闇がさつと裂けると、驚いたことには無数の神兵が、雲の如く空に充満(みちみ)ちて、それが皆槍や刀をきらめかせながら、今にもここへ一なだれに攻め寄せようとしてゐるのです。  この景色を見た杜子春は、思はずあつと叫びさうにしましたが、すぐに又鉄冠子の言葉を思ひ出して、一生懸命に黙つてゐました。神将は彼が恐れないのを見ると、怒つたの怒ら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 「この剛情者め。どうしても返事をしなければ、約束通り命はとつてやるぞ。」  神将はかう喚(わめ)くが早いか、三叉(みつまた)の戟(ほこ)を閃(ひらめ)かせて、一突きに杜子春を突き殺しました。さうして峨眉山もどよむ程、からからと高く笑ひながら、どこともなく消えてしまひました。勿論この時はもう無数の神兵も、吹き渡る夜風の音と一しよに、夢のやうに消え失せた後だつたのです。  北斗の星は又寒さうに、一枚岩の上を照らし始めました。絶壁の松も前に変らず、こうこうと枝を鳴らせてゐます。が、杜子春はとうに息が絶えて、仰向(あふむ)けにそこへ倒れてゐました。        五  杜子春の体は岩の上へ、仰向けに倒れてゐましたが、杜子春の魂は、静に体から抜け出して、地獄の底へ下りて行きました。  この世と地獄との間には、闇穴道(あんけつだう)といふ道があつて、そこは年中暗い空に、氷のやうな冷たい風がぴゆうぴゆう吹き荒(すさ)んでゐるのです。杜子春はその風に吹かれながら、暫くは唯(ただ)木の葉のやうに、空を漂つて行きましたが、やがて森羅殿(しんらでん)といふ額の懸つた立派な御殿の前へ出ました。  御殿の前にゐた大勢の鬼は、杜子春の姿を見るや否や、すぐにそのまはりを取り捲いて、階(きざはし)の前へ引き据ゑました。階の上には一人の王様が、まつ黒な袍(きもの)に金の冠(かんむり)をかぶつて、いかめしくあたりを睨んでゐます。これは兼ねて噂(うはさ)に聞いた、閻魔(えんま)大王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どうなることかと思ひながら、恐る恐るそこへ跪(ひざまづ)いてゐました。 「こら、その方は何の為に、峨眉山の上へ坐つてゐた?」  閻魔大王の声は雷のやうに、階の上から響きました。杜子春は早速その問に答へようとしましたが、ふと又思ひ出したのは、「決して口を利くな。」といふ鉄冠子の戒めの言葉です。そこで唯頭を垂れた儘、唖(おし)のやうに黙つてゐました。すると閻魔大王は、持つてゐた鉄の笏(しやく)を挙げて、顔中の鬚(ひげ)を逆立てながら、 「その方はここをどこだと思ふ? 速(すみやか)に返答をすれば好し、さもなければ時を移さず、地獄の呵責(かしやく)に遇(あ)はせてくれるぞ。」と、威丈高(ゐたけだか)に罵(ののし)りました。  が、杜子春は相変らず唇(くちびる)一つ動かしません。それを見た閻魔大王は、すぐに鬼どもの方を向いて、荒々しく何か言ひつけると、鬼どもは一度に畏(かしこま)つて、忽ち杜子春を引き立てながら、森羅殿の空へ舞ひ上りました。  地獄には誰でも知つてゐる通り、剣(つるぎ)の山や血の池の外にも、焦熱(せうねつ)地獄といふ焔の谷や極寒(ごくかん)地獄といふ氷の海が、真暗な空の下に並んでゐます。鬼どもはさういふ地獄の中へ、代る代る杜子春を抛(はふ)りこみました。ですから杜子春は無残にも、剣に胸を貫かれるやら、焔に顔を焼かれるやら、舌を抜かれるやら、皮を剥がれるやら、鉄の杵(きね)に撞(つ)かれるやら、油の鍋に煮られるやら、毒蛇に脳味噌を吸はれるやら、熊鷹に眼を食はれるやら、――その苦しみを数へ立ててゐては、到底際限がない位、あらゆる責苦(せめく)に遇はされたのです。それでも杜子春は我慢強く、ぢつと歯を食ひしばつた儘、一言も口を利きませんでした。  これにはさすがの鬼どもも、呆れ返つてしまつたのでせう。もう一度夜のやうな空を飛んで、森羅殿の前へ帰つて来ると、さつきの通り杜子春を階(きざはし)の下に引き据ゑながら、御殿の上の閻魔大王に、 「この罪人はどうしても、ものを言ふ気色(けしき)がございません。」と、口を揃へて言上(ごんじやう)しました。  閻魔大王は眉をひそめて、暫く思案に暮れてゐましたが、やがて何か思ひついたと見えて、 「この男の父母(ちちはは)は、畜生道に落ちてゐる筈だから、早速ここへ引き立てて来い。」と、一匹の鬼に云ひつけました。  鬼は忽ち風に乗つて、地獄の空へ舞ひ上りました。と思ふと、又星が流れるやうに、二匹の獣を駆り立てながら、さつと森羅殿の前へ下りて来ました。その獣を見た杜子春は、驚いたの驚か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なぜかといへばそれは二匹とも、形は見すぼらしい痩せ馬でしたが、顔は夢にも忘れない、死んだ父母の通りでしたから。 「こら、その方は何のために、峨眉山の上に坐つてゐたか、まつすぐに白状しなければ、今度はその方の父母に痛い思ひをさせてやるぞ。」  杜子春はかう嚇(おど)されても、やはり返答をしずにゐました。 「この不孝者めが。その方は父母が苦しんでも、その方さへ都合が好ければ、好いと思つてゐるのだな。」  閻魔大王は森羅殿も崩れる程、凄じい声で喚きました。 「打て。鬼ども。その二匹の畜生を、肉も骨も打ち砕いてしまへ。」  鬼どもは一斉に「はつ」と答へながら、鉄の鞭(むち)をとつて立ち上ると、四方八方から二匹の馬を、未練未釈(みれんみしやく)なく打ちのめしました。鞭はりうりうと風を切つて、所嫌はず雨のやうに、馬の皮肉を打ち破るのです。馬は、――畜生になつた父母は、苦しさうに身を悶(もだ)えて、眼には血の涙を浮べた儘、見てもゐられない程嘶(いなな)き立てました。 「どうだ。まだその方は白状しないか。」  閻魔大王は鬼どもに、暫く鞭の手をやめさせて、もう一度杜子春の答を促しました。もうその時には二匹の馬も、肉は裂け骨は砕けて、息も絶え絶えに階(きざはし)の前へ、倒れ伏してゐたのです。  杜子春は必死になつて、鉄冠子の言葉を思ひ出しながら、緊(かた)く眼をつぶつてゐました。するとその時彼の耳には、殆(ほとんど)声とはいへない位、かすかな声が伝はつて来ました。 「心配をおしでない。私たちはどうなつても、お前さへ仕合せになれるのなら、それより結構なことはないのだからね。大王が何と仰(おつしや)つても、言ひたくないことは黙つて御出(おい)で。」  それは確に懐しい、母親の声に違ひありません。杜子春は思はず、眼をあきました。さうして馬の一匹が、力なく地上に倒れた儘、悲しさうに彼の顔へ、ぢつと眼をやつてゐるのを見ました。母親はこんな苦しみの中にも、息子の心を思ひやつて、鬼どもの鞭に打たれたことを、怨む気色(けしき)さへも見せないのです。大金持になれば御世辞を言ひ、貧乏人になれば口も利かない世間の人たちに比べると、何といふ有難い志でせう。何といふ健気な決心でせう。杜子春は老人の戒めも忘れて、転(まろ)ぶやうにその側へ走りよると、両手に半死の馬の頸を抱いて、はらはらと涙を落しながら、「お母さん。」と一声を叫びました。……        六  その声に気がついて見ると、杜子春はやはり夕日を浴びて、洛陽の西の門の下に、ぼんやり佇んでゐるのでした。霞んだ空、白い三日月、絶え間ない人や車の波、――すべてがまだ峨眉山へ、行かない前と同じことです。 「どうだな。おれの弟子になつた所が、とても仙人にはなれはすまい。」 片目眇(すがめ)の老人は微笑を含みながら言ひました。 「なれません。なれませんが、しかし私はなれなかつたことも、反(かへ)つて嬉しい気がするのです。」  杜子春はまだ眼に涙を浮べた儘、思はず老人の手を握りました。 「いくら仙人になれた所が、私はあの地獄の森羅殿の前に、鞭を受けてゐる父母を見ては、黙つてゐる訳には行きません。」 「もしお前が黙つてゐたら――」と鉄冠子は急に厳(おごそか)な顔になつて、ぢつと杜子春を見つめました。 「もしお前が黙つてゐたら、おれは即座にお前の命を絶つてしまはうと思つてゐたのだ。――お前はもう仙人になりたいといふ望も持つてゐまい。大金持になることは、元より愛想がつきた筈だ。ではお前はこれから後、何になつたら好いと思ふな。」 「何になつても、人間らしい、正直な暮しをするつもりです。」  杜子春の声には今までにない晴れ晴れした調子が罩(こも)つてゐました。 「その言葉を忘れるなよ。ではおれは今日限り、二度とお前には遇はないから。」  鉄冠子はかう言ふ内に、もう歩き出してゐましたが、急に又足を止めて、杜子春の方を振り返ると、 「おお、幸(さいはひ)、今思ひ出したが、おれは泰山の南の麓(ふもと)に一軒の家を持つてゐる。その家を畑ごとお前にやるから、早速行つて住まふが好い。今頃は丁度家のまはりに、桃の花が一面に咲いてゐるだらう。」と、さも愉快さうにつけ加へました。 (大正九年六月)   底本:「現代日本文学大系 43 芥川龍之介集」筑摩書房    1968(昭和43)年8月25日初版第1刷発行 入力:j.utiyama 校正:野口英司 1998年5月20日公開 2004年3月12日修正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16    天馬 댓글:  조회:2588  추천:0  2013-06-29
天馬 金史良   一  ある重苦しい雲の垂れこめた日の朝、京城での有名な廓(くるわ)、新町裏小路のとある娼家から、みすぼらしい風采の小説家玄竜がごみごみした路地へ、投げ出されるように出て来た。如何にも彼は弱ったというふうに暫く門前に佇(たたず)んで、一体どこから本町通りへ抜け出たものかと思案していたが、いきなりつかつかと前の方の小路へはいって行った。けれど界隈が界隈だけに、地に這うような軒並のいがみ合っている入りくんだ小路の、どこをどう通れば抜け出られるか皆目見当がつかない。右に折れるかと思えば又左の方へはいって行く。やっと左から出て行くと又路地は二つに岐(わか)れて立ん坊になるといった工合である。何か深い物思いに沈んで彼はてくてく歩き続けたが、袋小路などに突き当って、はっと思い、辺りを見廻したりした。前といわず、横といわず、大門に赤や青のペンキを塗りたくった、いずれも土壁が今にも崩れ出しそうな家ばかりである。こうして又、黙々と折り返し方々縫い歩く中に、とうとう彼は迷い込んでしまったのだ。そう早くもない時刻だが、どの小路もひっそりとして、時々朝帰りの客が、きまり悪そうに肩をすぼめてふらふらと通り過ぎる。どことも知らず迷い込んだ塩売り爺さんは、やけに、 「塩やーい、塩やい!」  と叫び廻っていた。玄竜はようやく三叉に岐れたところまで出て来ると、ゆっくり「みどり」を一本取り出して咥(くわ)え、辺りを見廻しつつ不機嫌そうに何かをぶつくさ呟いた。どうも気に食わぬ女を抱いたものだと思ったら、帰り途にさえこんなに手古摺(てこず)るわいと彼は愚痴(ぐち)るのだった。だが、それよりも先程から彼の心の一隅にはどうしても払いのけることの出来ない黒い雲のわだかまりがあるのだ。時々それは強く胸をしめつけるようでさえある。実に彼はあるのっぴきならぬ事情から、この二日の中に頭髪を剃りお寺へ修行に参らねばならぬ身の上だった。それ故娑婆(しゃば)の悦びもこれでおしまいかと思えば興奮のあまり、昨夜敵娼(あいかた)の頬をメロンだメロンだと叫んでかぶりついたのであるが、女はこういう天外な芸術家を理解しようとはせずにびっくりして飛び出したのである。彼はそんな不快なことを思い出して畜生、忌々(いまいま)しいと再び呟きつつ、兎に角一応小高い所まで出て見ねばなるまいと考えをきめ、いくらか坂になっている小路をさして又とぼとぼ歩き出した。やはり突き当ったり、くねりくねり曲ったりしつつ、ようやく坂の上、陽春館というそれも青ペンキ塗りの大門の前まで辿り着いた。辺り一面、数百千と坂をなして密集している朝鮮人の娼家の屋根が、右にも左にも上にも下にも波打っている。生温かい初夏の風に吹かれつつ誰かの詩にあるような、われ今山上に立つといった恰好で暫し突立っていると、ひたひたと寄せて来るやるせない淋しさをどうすることも出来なかった。男達が右往左往し娼女達の嬌声が高らかに響き返っていた昨夜の娼家界隈とも思われない程、辺りは森閑(しんかん)としている。だがこの満ちあふれる家々の中に何千という若い女が洗いざらしの藷(いも)のようにごろごろしているのに、自分は二日もすれば薄暗い妙光寺の中で寝起きせねばならないのか。玄竜はそこで二本目の煙草を取り出して火を附け、ふーと煙を吹き上げた。ぼうっと陽炎(かげろう)に霞んで程遠く西の彼方に天主教会堂の高く聳(そび)え立った鐘楼が見え、そこら辺りに高層建築が氷山のように群立っている。正に彼の行こうとする目標だ。それにしてもさて何処から下りて行ったものだろうかと頭(こうべ)をめぐらしたと思うと、彼はわれ知らずくすりと笑った。朝鮮家の屋根屋根を越えて南の麓の方を眺めた時、本町五丁目と思われる辺りに、黒い変圧器を幾つものせた異様な電信柱がふと目に附いたのだ。それはいつだったか、泌尿病院を捜して徨(さま)い歩いた時、そこにさる所の広告がぶら下っていたことを急に思い出したからである。そうだ、あれを目印にして下りて行けばいいと彼は自分に云った。――  本町通りと云えば京城では一番繁華な内地人町(日本人町)で、それは蜿蜒(えんえん)と東西に細長く連なっている。ようやく廓の出口を捜し当て、そこから本町五丁目へ玄竜がのっそり現われ出たのはもう十時すぎ、通りには人影も多く割り方賑やかだった。彼は文人でも官吏でも、誰か親しい人に会いたいものだと思いながら、眼尻を下げやや俯向(うつむ)き加減で通りの真中をがに股で歩き出した。或は彼自身が云っているように、本当に柔道初段以上のために広過ぎる程の肩が凹み込んでいるのかは知らないが、がに股はあの妙な電信柱を知るようになって以来のことだった。殊に救いのないような孤独と深い憂悶の中に捉われている今の彼である。けれどとうとう明治製菓の近くに来るまで、ついぞ誰一人にも会うことが出来なかった。その時ふとこの明菓で開かれた昨夜の会合のことが思い出される。「貴様こそ朝鮮文化の怖ろしいだにだ!」と叫んで、皿を投げて来た評論家李明植の鋭い顔がすうっと閃(ひらめ)いて見える。彼は思い深げにその入口の前に立ち止ると、へん、青くさい野郎奴、今こそ豚箱で……とにやり薄笑いを浮べた。それからどれ、一つはいってやるかなという気になったらしく、急に胸を張り肩を怒らして慌しげに扉を押してはいって行った。ホールの中はがらんどうで、隅っこに僅か二人の外交員風の男が向い合って、ひそひそ何かを話し合っているきりである。玄竜はその真中の方へ徐(おもむ)ろに進んで行きどっかり坐り込むと、給仕の女の子を手招き寄せ暫くじいっと顔を見上げていたが、女の子が気味悪げに赧(あか)らむのを見るなり突然叫んだ。 「コーヒー」  女の子はびっくりして飛んで行った。で、彼はすっかり満足してにたっと笑いを浮べお尻を上げると、今度はどういうつもりか調理場の方へ狗(いぬ)のようにはいって行くや、 「ひー済みませんね」と相好をくずし、手をぴょこんと差し出した。「おしぼりを一つ……」  こういった馴れ馴れしさからみるに、調理人達はとうに自分を知っているに違いないと思っている訳であろう。成程彼等は昨夜二階で起った不祥事件を知っているので玄竜を覚えていた。丁度朝鮮文人達の会合があって何かを皆が熱心に討論し合っているところへ、片隅で突然玄竜がけらけら笑い立てたかと思うと、彼は一人の若い男から突然皿を投げ附けられ、頭を打たれて倒れたが、仰向けになったまま尚も不貞腐(ふてくさ)れたようにけらけらと笑うのを止めなかった。その場で李明植というその若い男は傷害のかどで臨席の警官に連行されて行った。調理人達はその席上の玄竜のふてぶてしさに随分驚かされたが、又こういう調理場のような変なところへ彼が現われてみると、いよいよ面喰らって怪訝(けげん)そうにお互い顔を見合わせた。誰とて笑う者もなく、ただ一人が驚いたように首を振っておしぼりはないという仕草をした。と、彼は一度でれりと横目で皆を睨み附け、いきなり鼠のように水道の方へ飛んで行ってざあざあ水をぶっ放したかと思うと、頭を突き出してふーふー水を浴びながら顔を洗うのだった。皆はてんから呆気(あっけ)にとられたが、彼がへへへと照れ臭そうに笑いつつ出て行った時、 「気違いじゃろか」と先の一人は首をひねったのである。 「いや、玄竜だ、玄竜だよ」 「そうだ、あれに違いない」 「小説家の玄竜だよ」  等と、皆は口々に囁き合いながら、食器の出し口に寄り集って覗き出した。見れば玄竜はもう自分の席に帰って、丁度傍においてあった朝刊を鷲掴(わしづか)みにして顔や首筋をふいているのだった。彼はちらっと流眄(ながしめ)で調理人達が詰め寄り自分の方に目を注いでいるのを見やると、すっかりいい気になって、真黒く濡れて皺くちゃになった新聞紙をぽんと鷹揚(おうよう)に卓の上へ投げた。そこで何気なしにそれに目をやったところ、紙の一つの襞(ひだ)の方を大きな一匹の南京虫がのそのそ這い廻っているのを見て目を瞠(みは)った。思わず彼はにこりと笑いを浮べ、心持ち体を乗り出したのである。南京虫はあまりに血を貪(むさぼ)り啜(すす)ったのであろうか、急に逃げ腰になってはいるが、赤く膨れ上り過ぎて足が云うことをきかぬらしく体を持てあましている形だった。時々辷(すべ)って転げ落ちそうになるが、指先を持って行けば又慌てて逃げ出すのだった。もともと彼は南京虫が好きである。地べたにひっついて這い歩く様子が、自分の態(ざま)によく似ているとでも考えているのだろうか。或はその図太さや狡さが好ましく思われ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それにおやこれは今まで自分の首筋を這い廻っていたのに違いない、さてはあのメロン頬の女から背負わせられた奴かなと思うと、何故かしらくすぐったいような腹立たしさを感ずるのだった。彼はいきなり肩をうねらせてひひひと笑った。が、おやっと思ってみるといつの間にやら、南京虫はすごすご急いで今度は襞の裏の方へ逃げ隠れようとしている。彼は素早くその一端をつまみ上げてそうっと裏返し、いかにも面白そうに飽(あ)くまでその行方を見守った。ところがものの二三分もせぬ中に突然彼は目をむいて仰山(ぎょうさん)に驚き上った。南京虫は丁度ある一つの見出しの上を通りながら、一字一字を彼へそれとなく読ませたのだ。実に何ということか。瞬間、これは天祐ともいうべきいいチャンスだぞと彼は思ってしまった。キリストの復活だとも考えた。たとえ学芸欄の一隅の小さな活字とはいえ、彼とはそれこそ本当に並々ならぬ親交のある、東京文壇の作家田中が、満洲へ行くついでに京城へ立ち寄って朝鮮ホテルに投宿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それは知らしていたのだ。 「行かねばならん」  玄竜はぶるっと身をふるわせて立ち上ると、一旦重々しく肩をすくめ出口に向って南京虫のように動き出した。彼には固く念ずるところがあったのである。丁度行きしなにコーヒーを運んで来る女の子とぶっつかりそうになると、ひったくるように茶碗を捉え上げて熱いのも構わずぐいぐい飲み干し、呆然となっている女の子や調理人達を尻目にあたふたと出て行くのだった。  本町通りはいくら午前中でも明菓あたりから通り出口の方にかけては、人々の群でいつも氾濫する程に雑沓する。そそっかしく下駄を鳴らして歩く内地人(日本人、以下同じ)や、口をぽかんとあけて店先を眺める白衣のお上(のぼ)りさんや、陳列窓に出した目玉の動く人形にびっくりし合う老婆達や、買物に出掛ける内地婦人、ベルの音もけたたましく駆けて行く自転車乗りの小僧に、僅か十銭ばかりの運賃で荷物の奪い合いをする支械(チゲ)軍などで。玄竜はこういう人々の波をくぐるように急ぎ足で通り抜け、鮮銀(朝鮮銀行)前の広場に出て立ち止った。電車が繁く往き交い自動車が群をなしてロータリーを走り廻っている。彼は慌てふためきつつ広場を突き渡って、向い側の静かな長谷川町の方へはいって行った。暫く歩いて行くと右側に高い昔風の塀が続いて、古色蒼然とした宏壮な大門が立ち現われる。それをくぐってはいれば広い庭園の中に、韓国時代どこかの国の公使館であったとかいう立派な洋館があった。玄竜はそこまで殆んど無我夢中に辿り着くと、胸を躍らせつつ廻転扉を押して追い込まれるようにはいって行った。 「田中君に取り次いで下さい」と彼は帳場の前に立ち現われるなり、十二分に威厳をつくろって口を切った。「僕、玄竜と申します」  髪を綺麗に梳(す)いて分けたボーイは野郎又来やがったなといった調子で、彼の方を上から下へとじろじろ眺めてから、 「お出掛けですが……」 「出掛けた?」玄竜は如何にも意外らしげに、しかも自分はそれを充分意外に思ってもいい人だというふうに、「一体誰と?」 「はあ」ボーイはいささかけおされて恐縮した。「そのう何でも雑誌社の方でしょうか」 「雑誌社の方?」  はたと悪い予感に襲われてから慌しく問い返す玄竜の顔には、明らかに狼狽したような焦だたしい不安な影がかすめ通った。それはきっと大村に違いない。大村だとすればこれは大変だと思ったのである。それでせき込んで質(たず)ねた。 「U誌の大村君じゃないんですか?」 「それは、分りませんよ」と今度は横合いの方から他の中年のボーイが恰(まる)で怒ったように叫んだ。実際内地(日本、以下同じ)の芸術界から誰か知名の人でも来ると、ぐうたらな文学くずれ達がいかにも朝鮮の文人を代表するような面で押し掛けて来るので、ボーイ達はうんざりするのだった。今も田中が大村やある専門学校教授とに伴われ、後には朝鮮人のそういった文学くずれを四五人ぞろぞろ随えて出て行った後である。玄竜は殊にこういう訪問の癖がひどくて毎日のようにお客を訪ねて来るので、ボーイ達でさえよほど彼を持て余している訳だった。「一々それまで覚えておれませんからね」 「へ、成程これはどうも、へへへそうでしょうな」  と、玄竜は云いつつ頭に手をやって卑屈そうに笑うのだった。けれどどうしてもそのことが気にかかってならないので、「……多分大村君じゃないでしょうね、そうですよ、きっとそうですよ」と何度も独りで強く肯いてみせた。  それから急に首を突き出し、手では奥のロビーの方を指しながら、 「一寸ソファーを借りますぜ」  と云うとくるり背を向けた。そしてロビーは人を待つのに役立つことを、自分はこんなによく知っているぞといわぬばかりの様子で、肩を揺りつつゆっくりとロビーの方へ向って進んだ。そう云えば彼の小説にはいつも、ホテルやロビーとか、ダンスホール、サロン、貴族夫人、黒ん坊運転手といったようなものがどっさり登場していた。ところで彼は何を思い出したのか、つと立ち止ったと思うと、振り返ってから叫んだのである。 「田中君が帰ったら一つ頼みますぜ。へ、僕は眠いんですよ」           二  広々としたロビーのソファーに横になって鼾(いびき)の音も高く、優に四五時間も心ゆくままに眠りをとった玄竜は、洋服の埃(ほこり)を打ち払いつつぼそぼそ起き上った。ロビーの中はもう薄暗くがらんどうである。両手を拡げてゆっくりと伸びをしながら何度もあくびをやった。すると急に彼は空腹を感ずるばかりでなく、中々田中が帰りそうもないので、一応出て行こうと思って寝呆けた顔を突き出し帳場の方を窺ってみた。ところが丁度もっけの幸いに帳場には誰もいなかったので、彼は素早く脱兎のように抜けて外気の中へ飛び出したのである。もはや午後の日差しがうっすら淋しく大道にかげり、空風(からっかぜ)があちらこちらに埃を吹き上げている。どこかで安い食事を取って、それから一先ず田中達が行っておりそうな所を方々捜し廻らねばならないと彼は考えた。けれど自分にもどういう訳かははっきり分らないが、彼は再び歩き出しつつ怪しからんと憤(いきどお)ろしげに呟いた。恐らく田中が自分に朝鮮へ来るからという知らせの葉書一枚もくれなかったことをいうのであろう。確かに彼は自分が朝鮮に帰って今は歴とした大家になっているなどと、あられもないことを何度も云ってやった筈だのに。  わが京城は黄金通りを境界線として、その以北が純然たる朝鮮人街である。長谷川町から黄金通りへ出、茶房リラの前へ通りかかった時、玄竜は一寸覗くだけにしようと首を突き入れ一亘(わた)り紫煙の中を見渡したが、そのとたんにわれ知らずにこりと笑った。一杯人々のとぐろを巻いているさ中に、目もさめるばかり真白く着飾った女流詩人文素玉が、百合のように楚々(そそ)と坐っていたのだ。彼は急に幸福な気持になって転ぶようにその中へはいって行った。有名な玄竜が現われたので人々はお互い突つき合ったり、ぷっと吹き出したり、わざと蔑(さげす)むようにそっぽを向いたりしていた。女流詩人は丁度若い大学生の恋人を待っていたところだが、こういう注視の的(まと)の小説家が自分の方へやって来る嬉しさに、つい何もかも忘れてしまい、やや大きいめの脣を歪めて含み笑いながら彼を迎えたのだ。 「あらまあ、玄さん、珍しいですこと」 「へへえ、これは又至極(しごく)面白いところで……」  と近附くや、玄竜は彼女の向い側の方にどっかりと坐り込んだ。皆の好奇の目は一斉にこの二人の方へ注がれた。尤(もっと)も彼等は皆とっくからもう退屈していた。だが、退屈といえば毎日のように退屈な連中ばかりである。所謂(いわゆる)茶房の彼等も亦現在の朝鮮の社会が生んだ特別な種族の一つであろう。少しばかり学問はあるが職は与えられず、何もなすことがないので髪でもクラーク・ゲーブル式に分けてみようといった手合とか、或はどこかに製作費を出すような莫迦(ばか)息子はいないものかと、首をひねり合うちょび髭を生やした映画不良やら、何かこそこそと隅っこで企(たくら)み合う金山ブローカー達、原稿用紙の束を片手に持って歩かねば芸術家でないと思い込んでいる低級な文学青年、そういった連中ばかりだが、さすがに彼等も二三時間以上も頑張っておれば、話題は尽き頭も疲れていた折なので、突然玄竜が現われ美しい女流詩人と向い合うようになったことは、確かに興味深いことに相違なかった。京城の文化社会で誰一人知らぬものはない二人が偶然そろいもそろって対坐した訳である。それに文素玉は玄竜にとっては単なる女流詩人ではないということも、彼等はよく知っていたのである。 「今日は又どうなさいまして」  彼女はわざと恥らうように口元へハンケチをあてがった。 「実は――ヘーノイエ・シュタット(新町)に行って来たんですよ」と云って、玄竜はいかにも好奇心をそそるようににやにやと笑いを浮べた。むろん女流詩人はそのドイツ語の意味を知るよしもなかったので、 「え?」  と目を丸くするや、彼はいよいよ得意げに腹の皮をよじらせつつ笑うのだった。そして又思い出したようにふふふと笑った。頽廃のかげりを宿した彼女の頬には紅潮がほんのりとさし現われ、ちぢれた前垂れの髪はゆらぐかの如く見えた。玄竜は急に痙攣でも起したように強ばって、ぐっと食い入る目附で彼女の顔を凝視した。  軽薄な女流詩人文素玉は玄竜をこの上もなく尊敬しているのだった。彼はいみじい詩の言葉、ラテン語やフランス語を知っているばかりか、彼女の好きなランボウやボードレールともただ国籍を異にしているだけに過ぎないと彼女は固く信じている。玄竜は又自分でもそう嘯(うそぶ)き廻っていた。何しろ彼女は詩人としてもランボウの詩を幾つかもじってみた位のところであるが、それを玄竜が二三流の雑誌に担ぎ上げて彼女の美貌と共にその前途を謳(うた)ったのだ。彼女がすっかり詩人になった気取りで、人の出版記念会とやらにはどういうことがあっても出席するようになったのも、それ以来のことである。彼女が目もまがうようなあでやかな姿で会場に現われると、玄竜は何時もぶるっと立ち上ってこっちへ、こっちへいらっしゃいと自分の傍へ連れて来るのだった。彼女も所詮は現代の朝鮮が生み出した不幸な女性の一人であるとも云えようか。口を開けば合言葉である封建打破という若々しい熱情から、女学校を出るなり結婚問題さえふりきって東京にまで留学に旅立った彼女。だが内地で専門学校を出ると同時に、曾つては自分が打破せねばならぬと云い且つ又闘ったつもりの封建性の復讎を、真先に彼女自身受けねばならなかった。当時は結婚しようにも早婚のため妻を持たぬ青年はどこにも見附からなかったのだ。あたら青春の血潮を如何ともすることが出来ず、こうしてだんだん男達と接触する中に乱倫の道に陥ち込んだ。だが彼女は己こそ真向から旧制度に反抗し新しい自由恋愛の道を切り拓く先駆者だと思い込み、次々と自分の方から男を作って行くのだった。玄竜も他ならぬその相手の一人である。ただ違うとすれば、それは玄竜とだけは、二人同志がお互いの狂痴に馴れ合いすっかり満足し合っていることと云わねばなるまい。 「昨夜U誌の大村君が又僕んところへ来たんですよ、いいですか、大村君がウイスキーを持って来たんですよ」と玄竜は続け出した。「今夜中に書いてくれなければどうしても帰らんといったような訳でしてね、それにはさすがに僕も弱りましたよ。丁度東京への原稿を書いていたところなんですから。一寸素晴しいもんですぜ。Dという一流雑誌に三月も前からせびられている奴なんですよ」 「期待しますわ」女流詩人はこの上もなく感動して小さな目を輝かした。 「僕はもう朝鮮語の創作にはこりました。朝鮮語なんか糞喰らえです。だってそれは滅亡の呪符ですからね」そこで昨夜の会合のことを思い浮べながら、出鱈目(でたらめ)な見得を切ってみせた。 「僕は東京文壇へ返り咲くつもりです。東京の友人達も皆それを一生懸命にすすめているんです」  けれどその実文素玉のような女は、昨夜明菓で本当に朝鮮の文学を守りたてているような真摯な文人達の間に会合があったことを知っている訳がない。玄竜だってどこかでこの文人達の集りのことをかぎつけて、殆んど会も終る頃のっそりと現われたのだ。が、そこには彼を朝鮮文化の怖ろしいだにとして憎悪擯斥(ひんせき)している男女ばかりがずらりと並んで、面々に興奮と緊張の色をみなぎらせて朝鮮文化の一般問題だとか、朝鮮語による述作問題の是非について熱心に討論し合っていた。彼はへーと笑いつつきまり悪そうに片隅へ離れてちょこなんと腰をかけた。やはり彼等は自分達自身の手で朝鮮の文化を打ち樹てそしてその独自性を伸長させるべきで、そのことは又結局は全日本文化への寄与でもあり、又ひいては東洋文化のため世界文化のためでもある等と語っていた。玄竜は一人一人の顔をじろりじろりと眺め廻しつつ、恰(まる)で人を食ったようににたにた嗤(わら)ってばかりいたものだ。一瞬間若い血気盛りの評論家李明植の鋭い視線とかち合ったことを覚えている。彼は思わずその時ぎくりとした。何だか李はぶるぶる神経の一つ一つをふるわせているようである。突然李は興奮のあまりに、喉元をごくごくさせつつ、 「それは自明なことだ」と叫ぶのだった。「朝鮮語でなくては文学が出来ぬという訳ではない。僕は言語の芸術性のためにのみこのことを云っているのではない。何百年という長い間固陋(ころう)な漢学の重圧のもとで文化の光を拝むことが出来なかったわれわれが、曲りなりにでもだんだんとわれ等の貴い文字文化に目覚めて来た今日ではないか。李朝五百年来の悪政の陰に埋れた文化の宝玉を発掘し、それによって過去の伝統を受け継ぐために、過去三十年間われ等はどれ程血みどろな努力を払ってこれ位の朝鮮文学でも打ち樹てたのであろうか。この文学の光、文化の芽をどういう理由で僕達の手で又葬るべきだと云うのか。だが僕はこれのために又徒(いたず)らに感傷的になって云うのでもない。実に重大な問題は朝鮮人の八割が文盲であり、しかも字を解する者の九〇%が朝鮮文字しか読めないという事実なんだ!」  その時玄竜は突然きききと嗤い声をたてた。 「黙れ!」 「黙れ!」  と云う声が嵐のように起った。 「まあ、いい」と李は目をつぶって気を押し静めようと努めながら呻くようにふるえを帯びた声で論を進めた。「朝鮮語での述作がこの人達に文化の光を与える為にも、はた又彼等を愉(たの)しませるためにも、絶対的に必要なのは論を俟(ま)たぬことではないか。今も厳として朝鮮文字の三大新聞は文化の役割を立派に果しているし、朝鮮文字の雑誌や刊行物も民衆の心を豊かにさせている。朝鮮語は明らかに九州の方言や東北の方言の類(たぐい)とは違う。もちろん僕は又内地語で書くことを反対しているのでもない。少くとも言語のショービニストではないのだ。書ける人はわれらの生活や心や芸術を広く伝えるために大いに働いて貰わなければならない。そして内地語で書くことを慊(あきた)らずとする者、又は実際に書けぬ者の芸術のためには、理解ある内地の文化人の支持と後援のもとに、どしどしいい翻訳機関でも拵(こしら)えて紹介するように努めるがいい。内地語か然らずんば筆を折るべしという一派の言説の如きは余りにも言語道断である」そこで急に卓を叩いて立ち上った。 「それでだ! 玄竜、君はこの問題をどう考えるんだ?」  玄竜を睨み附ける目からは火が出るようだった。彼は瞬間すくみ上ったことである。その実玄竜は体(てい)よく愛国主義の美名のもとに隠れて、朝鮮語での述作はおろか言語そのものの存在さえも政治的な無言の反逆だと讒誣(ざんぶ)をして廻る者の一人なのだ。それでなくてもこういう純粋な文化的な述作行動も、朝鮮という特殊な事情から、その本来的な芸術精神さえがややもすれば政治的な色彩を帯びているものとして、当局の誤解を招き易いと云えば云える。殊に事変以後その危惧は一層甚しかるべきである。玄竜はそれにつけ込んで愛国主義をふりかざし人々を売りつけながらのさばり廻っているのだった。それでどれ程多くの無実な人々が不安と焦躁、苦悶の深淵に突き落されたことだろうか。実際この会合は玄竜一派の言説に対する批判会だったのである。玄竜はその時体を反らしていかにも莫迦(ばか)にしたように、 「朝鮮語か」  と一言あしらってせせらわらった。ここにおいてついに李明植は心燃え上り皿を取り上げてぶち投げた。皆はどっと騒ぎ出した。だが彼は頭を打たれて仰向けに倒れてからも不貞腐(ふてくさ)れたように尚けらけらと笑い続け、李明植は傷害のかどで検挙されたことは既に御承知である。後から彼は会場を出て一人で新町の廓の中へ浮れ込んで行って、どこか安い銘酒屋でウイスキーを何杯もひっかけるなり、その足で娼家の門をくぐったものである。彼はそれを思い出すと何となく気恥しくもあり又おかしくもなってくすりと笑ってしまった。それからまぎらわせるように慌てて立ち上りかけた。 「何時頃でしょうか」 「まあいいじゃありませんの、本当にせっかちですこと」と云いながら、文素玉はちらっと腕時計を覗いた。「まだ六時前ですのよ。そらおコーヒーを早く持って来てよ」 「じゃついでにトーストも貰いましょうかね」と云って、釣り込まれるように再び玄竜は腰を下ろした。 「……それでです。何しろ社長の大村君がじきじきやって来られたんじゃね、とうとう僕も参って書いてやったんですよ。すると奴さんすっかり悦びやがって僕を引っぱり出してね、ぐでんぐでんに酔っぱらわせてあのノイエ・シュタットに連れ込んだんですよ。ところが、それがね、メロンのように頬の黄色い女でしたよ……」  それからこのメロンのようにという言葉がとても肉感的に思われて自分ながらすっかり気に入ったらしく、もう一度繰り返して強調した。 「メロンのようにね」  さすがの女流詩人も彼が臆面もなく行って来たというその意味がやっと分ったとみえわれ知らず顔を火照(ほて)らしたが、それでも自分の気づまりな様子をみせては安っぽく見られるに違いないと思い返して、いかにもそれはもうとっくによく知っているけれどといった調子でこう応じたのだ。 「よかったんですわね、……素敵ね。それでも玄さんをお寺へ入れるというお方が、よくまあそんな所へ連れて行きましたのね」 「だからですよ」と小説家は顔の筋肉をひきつらせて慌てたように叫んだ。「それだから官僚たちの気はどうも分らんというのですよ。一種の気紛れなんですね。要するに大村君は僕という人間がまだ分っていないんです。つまり尋常でない芸術家が分らんのです」 「そうね」女流詩人は愁然として肯いてみせ、それから不意におほほほと笑い出した。 「いや笑うことではないのです。ランボウやボードレールが一般の俗人達にどんなに非難されたかを少しでも憶い出してごらんなさい」玄竜はいよいよ雄弁になって手を振り上げた。「朝鮮の芸術家、それは何という不幸な存在でしよう。自然は荒廃し民衆は無知であり、インテリは又芸術の高貴さを知らない。僕はここでゴーゴリがペテルブルグの画家を慨(なげ)いたことを思い出します。凡てが鈍重で悦びもなく又誰一人にも朝鮮の芸術家は大事にされないのです。捨てられた芥(あくた)の中でもがき合っているだけなんだ。僕もつまり芥の中に掃き出された一人の犠牲者なんですよ。成程僕は誰よりも大村君とは親しいしどんなことでも相談し合って来た。だが、今になっては彼はこの僕に向ってお寺へ行って坐禅をくめと云うのです。彼のそう云う気持は分るけれど、それは芸術家には自殺を意味しますよ。坊主になるなんて。だがまあ宜しいと僕は思う所あって云ったのです。ボードレールも詩の言葉で、おー静謐(せいひつ)よ静謐よと憬れました」  けれどそう結びつつ口元に笑いを浮べた彼の顔は、妙に痙攣を起したようにふるえた。 「一種の保護観察なんですのね、思想犯じゃないけど……」 「そうなんですよ」と彼は泣面をかきながらおろおろ声をしぼった。「僕は明後日までには坊主になってお寺へ行かねばならんのです」そこで彼はぶるっとふるえ上り膝を乗り出した。「ところがですね、実に素晴しいことには、東京の作家で僕の親友でもある田中君が京城へ来ているんです。是非会いたいということで先程朝鮮ホテルへ行ったけれど、とても遅かったので奴さんはしびれを切らして、大村君あたりと一緒に出掛けたらしいのです、あまり気の毒なんで僕はこれから捜しに行こうとするところです。何なら紹介して上げましょうか、朝鮮のジョルジュ・サンドとして又僕のリーベとして……」 「…………」詩人は目をつぶって嫣然(えんぜん)と笑った。彼女はいよいよ若い大学生と待ち合わせていることをすっかり忘れてしまった。「え有難う、紹介して戴きますわ」 「そうしたら」玄竜はじいっと彼女の笑顔を見つめていたが瞬間、そうだ今晩は久し振りにこの女を連れて帰るんだとひとり肚(はら)で定め込み、 「これを聞くと田中君の妹が妬きましょうぜ、へへへ」 「あら、そうでしたの、東京の恋人ってその方のお妹さん? おほほこれは面白いわね」 「そうなんですよ、そうなんですよ」と彼は我意を得たりとばかりいかにも愉快そうに叫んだ。「僕が東京を引き上げる時彼女が追いかけて来ると云って大変だったのです。兎に角田中君も今じゃ大いに芽が出て、もう中堅の作家ですよ。どうでしょう、彼を囲んで僕達が一度集ったら、その時も是非来て下さいね」 「え、それはむろん行きますわ」 「ところで、実はですね、田中君は大村君とは大学の同窓でとても親しい仲なんですよ」と後にぐっと身を反らして急に真剣な表情を作った。が、それには惨めとまでいえるようなほのかな明るい影が浮び上った。「そこで僕は田中君に大村君を口説いて貰おうという訳なんです。つまり芸術家を理解させるんですよ。そうです、これは確かにパリ娘のアンナに会ったこと以上に重大なことです。そしたらきっと僕はお寺へ行かないで済むと思うのです」 「そうですわね、それがいいですわ、それがいいですわ」女流詩人は肩をゆすぶりつつ息もせわしく心からの悦びを現わした。 「ほんとうにそうなればいいですわね」  事実小説家玄竜にしてもそう悪い人間ではなく、性根は至って弱い臆病者で、文学の才能にもいささかは恵まれていた。ただ長い間のどうすることも出来ない窮乏や孤独や絶望が、彼の頭を攪乱(かくらん)してしまった。それに今は朝鮮という特殊な社会が彼を益々混迷にぶち込んだのである。一種の性格破綻から父や兄には勘当され、学業は成らず生活費のあてとてなかった。東京での十五年間の生活というものは、それこそ正しく哀れな野良犬同様だった。殊に悪いことには自分が朝鮮人であることをどう隠そうにも、彼の骨組や面貌がまぎれもなく朝鮮人に出来ているので、下宿へ宿ろうとしても第一が顔、それにぼろぼろのズボンと来ているから、てもなく断られるのである。で、彼はふと神の啓示でも受けたように苦肉の一策として、急に自分は朝鮮貴族の息子でしかも文学的な天才であるばかりか朝鮮文壇では第一流の作家だとふれ廻ることにした。彼はそれで、朝鮮人であるがためにより余計に受けねばならない蔑視や気拙いことをも多少は緩和させ、いくらか暮しの上でも融通をきかせようとする心算である。ところが奇蹟的なことにはその方法が全く功を奏して次々と二三人の女に飼われることが出来た。こうしてとやかく一二年する中にすっかり彼は自分が本当の朝鮮貴族であり又文学の天才であると錯覚を起してしまった。だが文学の道だけはどうにもままならずで悶々としていたが、或る年、女を斬りつけた罪で送還を余儀なくされ、ついに破れかぶれの気持で朝鮮へ引き上げたのである。それからは朝鮮語で奇を衒(てら)うような、或は淫靡(いんび)を極めたような文章を綴って低俗な雑誌へ方々売り込みに歩いた。信玄袋にはいつも原稿を入れて担いで廻り、バーやカフェーを荒しては巡査に捕えられ職を訊かれると、得意になって文士の玄竜だと云い放った。招ばれもしない会に現われては口を開けば、フランス語やドイツ語ラテン語のうろ覚えているだけの単語を出鱈目(でたらめ)に喋りちらし、人の前では自分は柔道初段以上だからと胸を張ってみせる。そしていつも東京文壇で自分が如何にも大活躍していたようにだらだら自慢話を並べ立てた。それが恰(あたか)も今の朝鮮での自分の存在を高めるとでも思っているかのように。万事がこういう調子なので、だんだん世間の人は彼を気違いとして取り合わぬようになったが、そうなればなるほど彼は願ったり叶ったりでいよいよ有頂天になって、真実の天才なればこそ俗人達には容れられぬものだと嘯(うそぶ)いた。だが、彼の素質がおいおいと露見するにつれて、とうとう卑俗なジャーナリズムでさえ彼の文章を受けつけなくなり、文化人達は相結束して彼を文化圏内から放逐することにした。こうして身動きが出来なくなったその時から、彼は酒を飲めば柔道のことはもう一切口に出さず、いつの間にか誰に向ってでも貴様こそ監獄にほうり込まれてえのかと、こけおどかしに叫ぶようになったのだ。同時に彼はどんなことでもしおおせる男として皆から怖れられ出した。こういう男にでさえ、苟(いやしく)も時局的な言葉で迫って来る限りびくびくせねばならぬとは、朝鮮の文化人のために何という悲しむべき事であろうか。それにつれて玄竜の心も益々やけに荒(すさ)び、街で一層暴行や恐喝に猥雑な行為を働き廻るようになったが、今度は巡査にとがめたてられても、けらけらと嗤い僕のことなら大村君に聞けと呶鳴り附けるのだった。  彼がこういうふうに人の前でいつも君附けに呼ぶ大村というのは、実は朝鮮民衆の愛国思想を深めるために編輯される時局雑誌Uの責任者である。内地から渡って来たばかりの元官吏でまだ朝鮮やその文化の事情に疎(うと)い彼は、最初に近寄って来た玄竜こそ、彼の言葉の通りに朝鮮文壇を実際に担(にな)う小説家であり、又その性格破綻に近いところなどは、いよいよ彼が非凡な芸術家である所以(ゆえん)だと頑(かたく)なに信じ込んだ。こうして絶望の玄竜はわけもなく大村に取り入り重用されるようになったのだ。ところが、好事魔多しとかでそれから間もなく、玄竜は或る至って奇妙な事情からスパイの嫌疑を受け憲兵隊に挙げられたのである。丁度或る麗かな日の午後のこと、彼はいつもの本町通りで一人の年若い妖艶なフランスのアンナと称する女を見かけたのだった。彼は勇躍してボナミとかマドモアゼル、ウイメルシイとか片言を並べつつ近附いて行った。青い瞳の女も中々心得たものでたどたどしい日本語ながら、自分は漫遊に来ていて間誤(まご)ついていると云ってやんわり笑った。彼は益々いい気になって方々彼女を連れて歩きながら、道行く人々に聞えよがしに、ボンジュール、トレビアン、ボウギャルソン、ススワルとか知っているだけのフランス語を全部叫んだ。そして態々(わざわざ)古本屋へ引張ってはいり、自分のプロフイルの出ている三流雑誌を捜し出してグラビヤの頁を開き、誰であるかを知っているかと得意気に自分の写真を指差した。おーと彼女は驚いたふうをする。そこで彼は悦に入っていきなり人の目を盗んでその写真をちぎり取り、無理矢理に彼女のハンドバッグへ押し込んだ。その後アンナは豆満江国境でスパイとして検挙され、彼は件(くだん)の写真が彼女の手元から出て来たために、同じく嫌疑を受けて留置された。こうして大変なことになるところを、大村が官庁の力でいろいろと釈明奔走して身柄を貰い下げてくれたので、彼は大村には一世一代の恩義を感ずるようになった訳である。でなくても朝鮮の一般の人々に野良犬同様に見放された現在の彼は、大村にまで捨てられては野垂死(のたれじに)するより致し方がなかった。が、今はもう朝鮮にも愛国熱は漸次高まって所期の目的は殆んど達せられつつあるのに、愛国主義をふりかざして社会の公安を妨げ到るところで悪事を働く玄竜を、そのまま用いることは大村の威信にも関ることと云わねばならぬ。その実又玄竜に関する限り、司直当局に対する非難攻撃が甚しく警察でもそろそろ内査を始めたのだった。それで大村は警察に渡すには忍びない気持と持前の信心深さから、お寺へ赴(おもむ)き坐禅修行をして早く謹慎の状でも見せろと命じたのである。事態がこうなってみると、玄竜はその命令に背(そむ)く訳には行かなくなったのだ。いよいよこの二日の中に出掛けねばならなかった。それ故この際東京の作家であり又大村と同窓でもある田中が来城したことに一切の望みをかけ、自分が自由に足を伸ばし得るように、いろいろと大村を彼から口説いて貰おうとする訳である。だからパリ娘のアンナに会った以上に重大であることはむろんだった。 「僕はこれから田中君を捜しに鐘路裏へ行くのです。さあ一つ出掛けましょうか」  と、玄竜は急に元気になってトーストを一度に二片も口に突っ込みながら尻を上げた。 「あたしも行きますわ、……あ、それいいわよ」  と云って、女流詩人は彼の手から勘定書をもぎ取って立ち上ったが、どうしたのか急に表情が強ばって石のように固くなった。間もなく彼女は少しばかりおずおずし出した。おやっと思って玄竜が振り返って見れば、入口のところに角帽を目深く被った背のひょろっとして高い大学生が蒼くひきつった顔をして突立っていた。そしてじろりと玄竜を睨んだ。その時急に悩しげなスペイン民謡のレコードは止り、人々の視線は一斉にこの三人の方へと向けられていた。文素玉はいきなりそそくさと身をかわして入口の方へ行き、ドアを開け若い大学生を引張るようにして外へ出て行った。玄竜は打ち砕かれたように茫然と立ち尽してそれを眺めた。後の方では皆がきききと笑い合う声が聞える。ところが又三四分もしない中に、彼女は慌しく彼の方へ飛び込んで来て、「あたしの従弟ですの」とせき込みつつ小さく叫んだ。「芝居へ行こうと約束していたのをすっかり忘れていたんですの」  そしてはっと思う間に、 「明日の朝行くわ」  と耳元に囁いて再び飛んで出て行ったのである。 「待て、待て!」  と、後から急に狼狽したように叫びつつ彼は手を振りながら飛び出した。だがもう外は暗い夜で二人の影はどこへ行ったのやら、既に杳(よう)として消え失せていた。           三 「くそ忌々しい、畜生! 覚えとけ」  等と、小説家玄竜は肩をすくめたまま何度もぶつぶつ呟きつつ、朝鮮人街で一等賑やかな鐘路通りをさしていかにも浮れたような足取りで歩いて行った。あの女郎奴までこの俺を莫迦にしている、少々ふざけているぞと彼は自分に云った。何だか大事な手中の玉を奪われたような気がしてならなかった。するといつものように彼女の不調和にも長い胴の下に続くいびつに大きなお尻が目の前にちらついて見え、それに向って温かい血潮の擾乱がどくどくと流れる切ない快感を覚えるのだ。彼はひとりでに気がむせんで来てごくりと音を立てて固唾(かたず)をのんだ。その時ふとどうしたことか、彼は自分の耳元に彼女の囁き声が聞えたように思われたので、はっと驚いて振り向いてみた。けれどむろんそこに文素玉の影もあろう筈がなく、ただ道行く人が一人胡散臭(うさんくさ)そうに立ち止って彼の姿を眺めていた。くそ忌々しいと彼は再び口に出して呟いた。  白堊建の大きな朝鮮人経営の銀行前を通って、いつの間にか鐘路四辻の方へ近附いて来た。急に辺りは騒々しくなり、人力車は走り自動車は流れ電車はもどかしげに警笛を鳴らしている。百貨店和信と韓青ビルの高層建築を起点として、東大門の方へ向って大通りを挟み立派な建物が海峡のように連なっていた。丁度四つ角に立っている旧世紀遺物の鐘閣の前へ出ると跼(せぐくま)っていたおいぼれの乞食達は手をさし伸べ、きたならしい乞食の子供達はどこからともなく稲虫のように群がって来た。今年はめっきり乞食がふえている。彼は物々しく手を振り上げて子供達を追い散らした。韓青ビルの前あたりからは歩道にも夜店が出張っていて人々の流れで雑沓し、売子達の掛声が喧しく響き返っている。丁度その夜店並びの入口のところでは、物見高い連中に囲まれて白い頭巾をくるんだ百姓男が酔いつぶれたらしく手を振りつつ、何かを喉につまった声でしきりに喚いている。一体どうしたのだろうと首を出して覗いてみれば、男の傍には支械(チゲ)が立てられ、そこには大きな桃の花の一杯ついた枝々がのっかっていた。それで支械は花束に埋れた形で、首をうな垂れている花々はいかにもいたいけである。 「わっしあ嬶(かか)を貰った年に二人でこの桃の木を植えたんでがす。その嬶が死にやがっただ。その嬶がよ」と百姓は叫んだ。「白米の重湯が食べてえちゅうので地主さんところへ借りに行った間に死にやがっただ。さあ、わっしあ桃の枝をぶった切って担いで来たんでがすぞ、買って下せい、一枝二十銭、多くはいらねえ、二十銭でええ」  山をなす人々は面白そうに顔を見合わせながらげらげらと笑い合った。玄竜は懐手をしたまま人垣を押して中の方へぬっと現われ出た。そこで暫くの間目尻を下げて、いかにも感慨無量といった様子でしげしげ桃の枝を打ち眺めた。何故かしら惻々(そくそく)と胸の中を伝わって来る悲しみを覚える。彼は何かに取り憑かれたようにつかつかと支械の傍へ進んで一枝を取り上げじいっと思いをこめて見上げた。今を満開に咲き誇っている薄紅色の花が二十程もつづらなりに枝をおおうている。 「さあ、旦那買って下せい。わっしあこれをたたき売って酒を飲んで斃(くたば)ってみせまさあ、え、皆どうして笑うんでがす、買って下せい。笑うでねえ、買って下せい。……へ、これは有難え、有難え」  片方の手でばら銭を捜していた玄竜が白銅貨を二つ三つ掴み出してぽんと投げ出したのだ。百姓は狂喜して頭を地につけ拝んだ。それを尻目に玄竜は黙ったまま桃の枝を肩にかけると人々をかき分けるようにして再び人混みの中へ出て来た。その時彼は自分の恰好からか不意にそれといった脈絡もなしに十字架を負えるキリストを憶い出し、自分にもその殉教者的な悲痛な運命を感じようとした。自分こそ或る意味では朝鮮人の苦悶や悲哀を一上身に背負って立ったような気がせぬでもなかった。成程朝鮮という現実であればこそ、彼のような人間も生れ出、且つ社会の中をのさばり廻ることが許され得たからである。混沌とした朝鮮が僕のような人物を必要として生み出し、そして今になっては役目が尽きると十字架を負わせようとするのだ、彼はそういう自覚に立ち至ると益々悲しみが胸をつき上げて来て、どうっと慟哭したい位だった。けれどそういうことも束の間、歩道一杯の人々が驚いたように皆自分の異様な恰好を眺めているのに気が附くと、寧(むし)ろ今度はけろりとしていささか得意にさえなったのである。へっぽこ詩人の女郎奴、貴様がついて来たら本当にこの僕の天外な像が分っただろうに、莫迦な女郎奴と彼は心の中で文素玉を憎々しげに罵った。夜店の前は押すな押すなの込み合いである。先からの乞食の子供達は面白そうに五六名後をついて行った。その中に突然前の方で喧嘩が始まったとみえ騒ぎ出したので、彼は避けるようにして少しばかり戻って来ると、イエス書館の横から折れて薄暗い小路をはいって行った。乞食の子供達はこの時とばかりもう一度彼の傍へまつわりついて来て手を出しながら、 「旦那、恵んで頂戴」 「恵んで頂戴」  と哀れっぽい声を絞った。彼はつい気が滅入ったようになって銅貨をばらばらと五六枚投げ与えた。子供達は奇声を上げ暗がりの中で頭をお互いぶっつけ合いながらもがき出した。玄竜はそれを振り返ってひひひと嗤いかけたが、ふっと涙がこみ上げて慌てて腕を上げてふいた。  裏小路に出ればそこは所謂(いわゆる)鐘路裏で、カフェー、バー、立飲屋(ソンスルチビ)、おでん屋、麻雀屋、周旋屋、飲食店、旅館等が、目をぴかぴか光らせたり、口を開けたり、尻ごみしたり、地べたにひっつくように蹲(しゃが)んだりしている。ぎーぎーとレコードが騒々しく辺り一面で唸り立て、洋服や白い着物がうろつき廻っている。景気のいい商人や、総督府あたりの朝鮮人雇員、無職で金のある青年、モダンボーイ、そしてカフェー音楽家、バーマルキスト等が、夜はよくこの界隈で気焔を上げるのだった。中には大枚をばらまきに来た金山男もいる。いよいよ目的地へ来たぞと玄竜は考えた。たとえ田中が大村に案内されていないとしても、誰かに連れられてきっとこの界隈へ朝鮮色を満喫するために来ているに違いなかった。成るべくは大村君と一緒でないようにと……彼はこう念願しつつ一つ一つ飲み場へ首を突き入れて調べてみることにした。その後をやはり子供達はにやにや笑いながらついて来る。彼はたとえ自分を尊敬する人がいてどんなに引張ろうとも決して道草は食うまいと固く決心した。それ故カフェー鐘路会館の扉を開けるや誰かがよう玄さんと叫んだ時も、彼はへへへと笑ったまま踵(きびす)を返し、バー新羅の中を窓を開けて覗いたとき、おい気違い、乞食野郎! と皆から罵声を浴びせられた時も、彼はただ自分が柔道初段以上もあることを思い起すだけでへらへらと笑い去った。或るところはうっかり飛び込んで、朝鮮服に洋装とりどりの女からお花頂戴頂戴と襲われたが、それでも彼は女共のお尻一つ叩かず花を二つ三つ投げてやりながらほうほうの態で逃げ出しただけであるが、このようにその界隈を西から東へと殆んど虱潰(しらみつぶ)しに捜し廻ったけれど、どうしても田中の一行は見当らない。彼はいよいよ焦だたしい気持に追いたてられ、あてどのない憎々しさと憤りをどうすることも出来なかった。  玄竜は再びどこといった目当てもなしに、がに股の足を重そうに引きずりつつ捜し廻った。今度はところどころへ首を突き入れて女達に質ねさえしてみた。が、かれこれ二時間あまりも歩き廻ったけれど一向に埒(らち)が明かず、激しく疲れが出、空腹を感ずるばかりだった。とうとう優美館裏あたりの大分淋しいところまでやって来た時は寸歩も足を運ぶことが出来ないまでにくたくたに疲れ、一先ずそこらのとあるきたならしい立飲屋へ潜(もぐ)り込んだのである。埃っぽい明るみの中では、みすぼらしい人々が各々二三人ずつ一団をなして相寄りかたまってがやがや騒ぎ立てつつ盃をかわしていた。玄竜は桃の枝を担いだまま皆の驚きの視線を浴びながら、中央正面の方へのっそり進み出た。前の方に長い板で酒台が据え附けられていて、その向うの方に顔の小綺麗な女がちょこなんと坐っていた。彼は台の上に出してくれる大きな盃を取って、女から薄黄色っぽい薬酒をついで貰うなり一杯ぐっと飲み干した。それは妙にすっぱい味だった。顔を上げて辺りをじろっと一度眺め廻したが誰一人とて知る者はいない。他の人達は彼と視線がかち会うとびっくりしたようにぐっと口を噤(つぐ)んでそっぽを向いた。玄竜はそのため一層不機嫌になり、もそっと動いて行って、傍の方に据えてある網張り棚の中から豚の足を取り出して来るとむしゃむしゃ噛み始めた。それは朝鮮特有の安直な酒場で、茶碗程もある盃一杯に肴までついて唯の五銭で飲めるのだった。彼はあの好きな明けすけの淫らな冗談さえ一言も云う遑(いとま)もあらばこそ立て続けに何杯もひっかけた。外の方から暖簾(のれん)の中へひょこひょこ首を出して、彼の出て来る気配をさぐっていた乞食の子供達も、ついにあきらめていつの間にかどこかへ消え失せてしまった。  彼はこんなに飲み始めると耳鳴りがし足が動けなくなるまでぐでんぐでんに酔わねば収まらない性分である。でも彼が泥酔するまでにはこの薬酒なら六十杯は少くとも必要とせねばならなかった。こうして一杯又一杯と盃を重ねる中に、酔いがけだるく全身に廻って来て、次第に胸をしめつけるような悲しみが襲うて来た。今夜中にはどうしても田中を掴まえねばならないのだ。そうだ、ここからすっかり酔いつぶれて出てもう一度朝鮮ホテルへ押し掛けて行くんだ。そして田中に助けを求めれば凡ては巧く運ぶに違いない。そう思うと何だか自分がお寺へ預けられるということが、急に哀れな喜劇のようにさえ思われてならなかった。自分もあの瓢(パカチ)のようなぐりぐり坊主になって袈裟(けさ)を身にまとい、鼻汁をよく啜り上げる正覚禿坊主の前で、毎日毎晩数珠(じゅず)を首にかけて神妙に禅をくまねばならぬとは。彼はこの悲痛さを打消すように妙に喉にからんだ甲高い声を出して一人でに笑ってみた。だが彼は自分の笑い声にびっくりして慌てて肩にかけていた桃の枝を胸に抱きしめじっと息をころした。暫くそうしていると気はしずしずととおのいて行き体じゅうがとろけ込むようで、ふっと幽かな光芒を帯びていろいろな女の幻影がとりとめもなくちらちら動いて見える。×××××(五字欠)メロン頬の女。その陰で女流詩人がにっと笑っている。口を心持ちすぼめて明日の朝行くわと囁くのさえ聞えるようである。そうだ、今夜はどうしてもあのじめじめした下宿の穴部屋へ戻って彼女を待たねば……。すると彼女の水で洗ったような××××××××(八字欠)が空間に浮び上り、それがだんだんと腕をひろげて熱いむせるような息を吹きかけつつ自分の体をおそうて来るような錯覚が起きた。それにしても田中は一体どこにいるのであろう。彼はこのように現実と夢幻の間を右往左往している中に、今度は又何とはなしに田中の妹の明子のことを思い起した。田中もその頃は一介の文学青年として苦労していたが、一緒にいる妹の方は女子大に通っている美しい娘さんだった。当時彼はありったけの熱情を傾けて彼女を愛しているつもりだったが、田中にしろ彼女にしろ自分にいい感情を持っていないばかりか軽蔑さえしていたのだ。よく彼は一里もある明子の所まで歩いて行っては、いろいろと大胆さの限りを尽してみたが、彼女は彼の図々しい程異常な情熱を莫迦にするだけだった。朝鮮の貴族で天才だということも彼女にはちっとも効目がなかった。こういうふうに毎日彼女に素気なくされて帰る道すがら、前々から知り合いの女給の宿へ行っては泊っていた。彼がこの女給を斬りつけたのは、いよいよ意を決し田中のいない中を見計って明子を襲うたのがしくじったその晩の帰りのことだった。そのために内地から追放されて朝鮮に帰り、どうやら渡りをつけて娯楽雑誌などに筆を取るようになったが、彼は空想を逞しゅうしてこの若い恋の経験を神秘化し、明子という美貌の純粋な娘に熱烈な恋を寄せられたというふうなことを、バルカンの志士インサローフとロシヤの乙女エレーナとの恋物語(ツルゲーネフの作品『その前夜』より)まがいにいつも方々へ書き連ねたものである。それで人々もこれだけはまさか嘘ではあるまいと信じ、自分もそれを幾度も書いている中に、ほんとうのことのように思い違いさえして今は美しい思い出となった。あーあの明子は今どうしているのだろう。早く田中に会って訊いてみたい。凡てが今になっては自分を悲しませる種ばかりではないか。  頭が急にくらくらして来て、何か突飛なことでもしおおせ兼ねない気持である。不意に又先程の百姓の絶望的な喚き声が聞えて来るようである。自分こそあの百姓のように救いのない絶望のどん底へ突き落されてもがいている人間に違いない。淫乱な言葉もとうに書き尽し、法螺(ほら)ももう誰一人とて信用しはしない。僅かばかり知っているドイツ語の単語も既に何度となく繰り返して書いたし、十三箇のうろ覚えのラテン語も十三回以上に喋ったし、フランス語は尚更のこと、文章の終りには必ずFINという字をつけたのに、もう今は文章の註文も来なくなったのでそれもおさらばになった。柔道初段以上というおどかしもどうやら効目がなく二段や三段はおろか物騒な拳闘選手までうようよしている。家もない、妻もない、子もない、金もない。最後に彼が拠りどころとして思い附いたのは、愛国主義者という美名のもとに隠れて凡てに向って復讎を計るばかりか、勢威のある大村にかばわれることだったのだ。だが朝鮮の文人達の間にも澎湃(ほうはい)として時局認識運動が高まり、鮮かに水煙りを飛ばして彼等が自分を追い越し去ったのだ。それを思えば他の連中が歯ぎしりする程憎くてならない。今では貴様を監獄にぶち込むぞという恫喝(どうかつ)も出来なくなってしまった。彼に残されているものは方々ゆすり歩いて文なしでも酒の飲める口だけである。それが怪しからんというので、大村はこの僕に寺へ行けと命じているではないか。もう大村にまで見捨てられたからにはどこへも行き所のない人間なのだ。彼は使うだけ使って今になり事新しく自分にお寺へ行けと命ずる大村が憎くてさえならなかった。だがもうほとほと気力もつきてごとりと桃の枝を床の上に落し、彼は目頭に涙さえ浮べながら更に沈んで盃を重ね始めた。           四  凡そ十時頃にでもなったのであろうか、玄竜はへべれけに酔い潰れてしまった。お客は始終入れかわり立ちかわり騒々しかったが、ふと彼の後の方から又新しい客のはいってくる気配がして、歯切れのいい内地語が聞えた。 「至極悠長な朝鮮人にしては一寸面白いせかせかした所ですよ」  おや聞いた様な声だぞと思って、玄竜はじっと聞き耳をたてた。 「まあ内地で云えば大きくした焼鳥屋とでも云いますかな。あのくだらない鮮人(ヨボ)連中から解放されたすがすがしい気持で、一つ朝鮮の酒でも嘗めてみませんか。全く大変でしたね」  新しくはいって来た男達二人は玄竜の傍へ立ち並んだ。こう云われている男は今まで彼等の後をぞろぞろとついて廻りながら、田中に先生先生とぺこぺこしていた朝鮮人の事大的な文学くずれ達のことに違いなかった。玄竜は警戒するように首をちぢかめた。 「それでもまあ面白いじゃないですか。あんな人達と会って話してみるのも……実際大陸の気分が出ましてね」  確かにこの勿体振(もったいぶ)っただみ声は田中に違いないぞと、玄竜ははっと耳を欹(そばだ)てた。 「おや、あなたはそれを本気で云うんですか」  と、案内役の男は大分不服らしげに叫んだ。「あなたは妙なところに又感心したもんですな」 「いや、それ程でもないんですけれど……だが実際にあの人達は自分で云っているように、文壇や劇壇等で相当活躍しているんでしょうかね」 「そうですよ、あの連中が一流どころですよ」と、せっかちになって先の男は事実を誣(いつわ)るのだった。「今度鮮人(ヨボ)連中の作品が内地語で翻訳されたのを読んで私は先ず安心しましたね。すっかり安心しましたよ。それ位なら私のような素人でも書けますよ。朝鮮の地方的な文化もやはりここへ来ているわれわれの手で築き上げるべきもんですな。ところでさあ、一つどうです」  と盃を取り上げた。  やっとその時になって玄竜は横合いの方から臆病そうに首を突き出し、慌てたように朦朧(もうろう)とした目をこすって見据え、口をばっくりと開けた。実にそれはまぎれもなく東京の田中が、ある官立専門学校教授の角井に案内されていたのである。盃を口に持って行っていた彼等二人も、玄竜に気が附いてびっくりした。 「やあ田中、田中!」と玄竜は叫びつつ大手を拡げて、すぐ傍のひょろひょろした体へ抱き附いてしまった。他の客や女はみな驚いて目を瞠(みは)りこの異様な光景に魂消(たまげ)た。内地人をそんなふうにして果していいのだろうかと気味悪くさえ思うのである。田中は一目でそれが先程大村や角井と三人で噂し合った玄竜であることを知ったが、あまりにも意外な場所での邂逅と突拍子もない抱擁に面喰らってしまった。何よりも息がつまりそうで苦しかった。玄竜は彼を抱いたまま狂気のようにぐるぐる廻るのである。 「怪しからん、怪しからん、僕は恨んだぞ、大いに恨んだよ。黙って来るってそんな法があるかよ」 「済まん、済まん」  と、田中は救いを求めるようにかすかな声で呻いた。 「さあ、そこで一杯やろう、盃を取ってくれ!」玄竜は素早く飛びのき盃を取り上げた。 「おう田中君、僕は君が朝鮮に寄ってくれたので感謝しているぞ、本当に嬉しいぞ!」田中が大村と一緒でないことが尚のことうれしいに違いなかった。彼は再び殆んど抱き附くばかりの恰好で、「やっぱり君はやって来たな。ようくこの新しい朝鮮を観察してくれよ。頼んだぞう! さあ、一杯ぐっとやってくれ!」  そしてついはめを外したあまり、 「さあ、角井さん、あんたも大いに飲んで下さい!」  と、彼の背中さえ痛い程叩いた。角井は玄竜とはU誌の会で一二度会ったきりで、そうこんな男に馴れ馴れしくされては自分の沽券(こけん)に関ると考えるのだった。もともと彼は大学の法科を出ると共に朝鮮くんだりへ来て真直ぐ教授にもなれたのだが、此頃は芸術分野の会にまでのさばり出るなど内地人の玄竜ともいうべき存在だった。朝鮮に出稼ぎ根性で渡って来た一部の学者輩の通弊の如く、彼も亦口では内鮮同仁(日本帝国主義の植民地政策の一つで、朝鮮民族を日本人に同化させるためのスローガン)を唱えながらも、自分は撰ばれた者として民族的に生活的に人一倍下司(げす)っぽい優越感を持っている。だがただ一つ芸術分野の会合等に出ると、自分が朝鮮の文人達のように芸術的な仕事を何もし得ないことにひけ目を感じ、弾(は)ね返っては彼等を憎々しくさえ思っているのだ。それで特に朝鮮の文人達を莫迦にしようとこれ努め、内地から誰か芸術家でも来ると玄竜にひけをとらぬ程の熱情で授業さえ休んで出掛け、加俸の分だけを惜しいともせずに方々引張って酒を飲ませながら、事毎(ことごと)につけて朝鮮人の悪口を学問的な言葉で並べたて、口癖のように、あ、あれを見て安心した等と呟く。今夜は殊にこういう最も卑しむべき文人の玄竜に会ったので、いよいよ彼の自尊心は増長したのである。それでいかにも物々しく肩を聳(そびや)かしてくんと吠えながら背を向けてしまった。だが玄竜もさる者それには振り向きもしないで、依然田中を掴まえたまま喚きたてていた。 「おう田中、僕はな君を捜し廻ってすっかり草臥(くたび)れ、さんざん恨みながら飲んでいた所なんだぞ。よう会えたな。全く六年振りじゃねえか、そうだ、妹の明子さんは元気か? 僕は今も明子さんのことを忘れていやしないぞ」  気の弱い田中は彼の口まかせに喋りたてる言葉にいい加減うんうんと肯きつつ、口を窄(すぼ)めて薬酒を少しばかり嘗めるふりをした。  角井もひとりで丁度二度目の盃を口に持って行くところだったが、明子の話が出て来たので吹き出してしまった。そしてそれだけでは足りないと思ったのかはははと声を出して哄笑をした。先程玄竜の噂をしている中に、彼は田中からこの男が彼の妹に無茶をして困ったということを聞かされたからである。玄竜はいつも田中のいない頃を見計って彼女を訪ねて来ては、田中のどてらに着替えいかにも主人顔で机に頑張っていて、当の彼が帰れば恰(まる)でお客でも迎えるような調子でこれは珍しいね等と云っていたという話だった。それも或る日の夕方のこと、田中は街のなかでひょっこり玄竜に会い、大変なことがあるからと持金をすっかりまき上げられた。そして後から帰ってみれば、玄竜は林檎やシュークリームをどっさり買って来て妹に無理矢理に食べさせながら、きききと悦んでいたのだ。角井はそれを思い出したのである。――だが今や玄竜は田中に会えたことを思うともう凡ての悲しみも苦しみも霧散し、ひとりでに嬉しくなっていよいよ多弁になっていた。殊に傍には角井もおり、今まで筆を取る度に威張り散らした手前もあるので、思い切って大きく出て来た。 「帰ったらS先生にも宜しく云ってくれ、奴は朝鮮に帰ってからも中々やりおりますとね」  或は、 「T先生は元気かね」  それから、 「R君はどうしている?」 「D君の奥さんは?」  けれど生憎(あいにく)、田中はSやTとも親しくしているような小説家ではなかったので、しどろもどろにばつを合わせた。何しろ彼は此頃スランプの中にいて書けないので、流行の満洲にでも行ってうろついて来れば違ったレッテルもついて新分野の仕事が出来るかも知れないと出掛けたまでだった。それでも発つ時に或る雑誌から朝鮮の知識階級に関する文章を求められているため、彼は今先まで自分に先生先生と馴れ馴れしくついて廻っていた低級な文学青年達を興味深く観察し、彼等と別れると大村や角井からいろいろ参考意見を聞いた所だった。殊に角井の至って人間学的な説明に依れば、朝鮮の青年というものは悉(ことごと)く臆病でひがみ根性があり、おまけに図々しくしかも党派心の強い種属ということである。丁度そのいい標本が田中も東京から知っている玄竜だと述べていた。それ故東京の或る知名な作家尾形が京城へ立ち寄った際、大村の肝煎(きもい)りで朝鮮の幾人かの文人達と一席を設けたところ、その席上で三十分もせぬ中に彼が玄竜の中に朝鮮人全部を見てとったのは、さすがに鋭い芸術家の烱眼(けいがん)だと讃嘆して附け加えた。尾形がここに朝鮮人ありと叫びながら玄竜を指差した時、実のこと、朝鮮の文人達は全く唖然とせざるを得なかった。が、当の玄竜はいかにも得意そうににたにたと悦に入っていたのである。田中は僅か一両日の滞在でしかも酒にばかり追い廻されて観察どころではないが、尾形に負けない程辛辣独特な観方をして書き送らねばならないと決心していた矢先なので、寧ろ代表的な朝鮮人と角井から太鼓判を捺された玄竜にひょっくり再び会ったことを幾らかは悦んだ。彼は角井の悪意に満ちた言葉に些(いささ)かも疑いを挟まなかった。いよいよ自分の直観の鋭さを示す時が来たと躍起(やっき)になって、彼は今度は朝鮮民族を検分するかのような物腰で自分から先に口を切った。 「君は帰ってからは朝鮮語で小説を書いていたんだってね」 「そうだよ、そうなんだよ」と玄竜は待っていたとばかり有頂天になって叫んだ。「僕は朝鮮に帰るなり素晴しい作品を矢継早(やつぎばや)に出したんだ。始めは野郎たち朝鮮にも天才のランボウが現われたと云って、目を丸くしやがった。だがだんだんと僕の読者がふえ地位も高まって来ると、文壇の奴等は嫉妬して葬ろうとさえしたんだ。大体君も見れば分る通り朝鮮人ちゅうのは仕様がねえんだ。いいか。狡くてそれに臆病なんだから党派を作って人が偉くなろうとすると突き落すんだ」その時角井はそれごらんと云わぬばかりに田中に向って顔をしゃくってみせた。田中は肯いた。 「奴等は僕が東京文壇で皆の注目をひいて活躍していたことさえ知らないんだよ」そしてちらっと角井の方を偸(ぬす)み見て、「無知だよ、全く無知だよ!」  内地人と向い合った時には一種の卑屈さから朝鮮人の悪口をだらだらと述べずにはおれない、そうして始めて又自分も内地人と同等に物が云えるのだと信じ切っている彼である。いよいよ玄竜は火のような熱情に燃えて激しい息づかいをしながら叫んだ。 「僕はこういう度し難い民族性を考えると悲しくてならないんだ、田中、おう君、僕の気持を分ってくれるか!」  彼は声を出してよっぽど泣こうかと思ったが、ただ手で顔をおおうてしゃくり上げただけである。田中はすっかり感動して、 「分るとも、分るとも」  と共に泣く気持になり、やはり朝鮮にも来てよかったと思うのだった。内地にくすぶっていては島国文学しか出来ないと云うのは全くだ。ここに大陸の人々の苦しむ姿がある。箸にも棒にもかからないような男だった玄竜でさえ、もっと大きな本質的なもののために全身をゆすぶって悩んでいるではないか。そうだ、これこそ朝鮮の知識階級の自己反省として内地に報らせよう。尾形に俺の目が負けてはなるものかと力みつつ沁々(しみじみ)歓びを感じた。支那人は分らんと云う連中は愚の骨頂だ。朝鮮人を僅か二日で分ったこの調子でなら、俺は四日位で充分分ってみせるぞ、とも心の中で叫んだ。兎も角それのためにはいきおい玄竜を朝鮮の代表的なインテリにして書かねばなるまいとまで、頭でちゃんと構想をねっていた。が、角井にしては玄竜のことが滑稽でならないので、とうとう凱歌を上げたい気持になって意味ありげに彼の方をじろりと見やってから、 「莫迦に大村君は遅いですな、一人で帰ったのでしょうかな」  と田中に向って云った。彼は玄竜が大村を雷のように怖れ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るからである。 「え、大村君?」果して玄竜は一時に酔いがさめたように目を大きくしてぐっと体を起した。「大村君、大村君と一緒だったんですか?」 「うん、そこらで何か買物をすると云っていたがね」  怪訝(けげん)そうな顔をしてから答える田中の話を聞いて、あ、これはいけないと慌てて、 「そうなんだ」と訳の分らぬことを叫んだ。「だから大村君と力を合わせて、朝鮮民族を改良するために努力しているんだ。問題は簡単なんだ。朝鮮人悉(ことごと)くが今までのような固陋(ころう)な思想からぬけ出て、東亜の新事態を確認し、そしてひとえに大和魂の洗礼を受けることなんだ。それがため僕は人から気違いとまで云われながらも、大村君のU誌にいつもセンセイショナルな論文を書き立てたんだ」そこで急に声をひそめて首を突き出し、 「大村君は僕のことを何とも云わなかったのかい?」と訊いた。 「いや別に……」  と田中はお茶をにごしたが、玄竜は又急にもとのような調子にかわって、 「大村君は実に当代稀にみる立派な奴だよ。だから僕など民間にいながら率先して全力を尽し助けているんだ。だが惜しいかな、好漢大村君も芸術家が分っていないんだよ、真の芸術家というのが……だから田中、君のような作家が大いに啓蒙してやるべきだと思うんだよ。ハムレットでもあるまいに、僕にお寺へ行けと無茶を云うんだから愉快なんだよ。それがね、尼寺へならともかく禿坊主のところへなんだよ。ねえ、僕がオフェリヤかよ? 僕はこう見えても憚(はばか)り様ながら頭はしっかりしているんだ!」  角井はいかにも憐れむように田中に嗤ってみせつつ、すっぽらかして出て行こうというふうに、その洋服の裾を引張った。ところが玄竜が妙に喉にからんだ声を張り上げて強がりを云っている時、当の大村が悠然と入口の方からはいって来た。見るからに四十がらみの堂々とした立派な紳士である。玄竜はすっかりうろたえて、へーと笑いながら首筋に手をやるとぺこんと頭を下げた。角井は傍で意地悪い声を出してけけけと突然嗤うのだった。大村はここに玄竜がいるのを見て急に不機嫌になって呶鳴った。 「どうしたんだ、君は又こんな所へ来てくだをまいているのか」 「へー大村さん、へ、どうも」と玄竜は纏(まつ)わりつきながら腰をかがめた。「……実はそのう、田中君を一日中捜し廻ったんですよ。それで腹ぺこになったもんですから……つい、へ」 「おい、どうしたんだ、お寺には? ぐずぐずしないで一日も早く行くんだ!」 「はあ」と畏(かしこま)って玄竜はばつ悪そうにもじもじするのだ。「それはもうよく分っているんです」  大村は角井や田中ににやりと目配せをしてみせ、それから遠来の客もあることなので自分が朝鮮にいて如何に朝鮮人のためを思っているかを身をもって示さねばならぬと考えた。 「早く謹慎の状をみせるんだ! 警察の手に君を渡すに忍びない気持があるからこそ、立派な和尚さんの所へ行って頭を直して来いと云うのじゃ。要するに君のような人間たちの魂を引き上げるためなんじゃ。煩悩を断つんだぞ、煩悩を」 「はあ、だから僕も……」 「分ったか、宜しい」そこで得意げに一度肩を張った。客達は皆目をきょとんとさせてこの光景を眺めていたが、さすがに田中は感慨無量そうに目をつぶったまま聞いていた。 「今はどういう時局だと思う。はっきり時局を認識しなくてはいかん。酒場を飲み倒したり、女を強奪したり、人を恐喝するなどもっての外じゃ。君は内鮮一体内鮮一体と気違いのように叫び廻るけれど、朝鮮人は誰一人君を相手にしないそうじゃないか。もう少し反省するんだ。まともな人間に帰れと云うのじゃ。分ったか、わしが君を応援することにつけ込んで、人の好意を利用するなんて絶対に許されん。莫迦奴! そんなに恩知らずだとはわしは始めて分った!」それから自分の語調に感動しついには興奮してしまった。「全く恩知らずの悪い奴め! まだ君の悪いことが分らんのか。内鮮一体ちゅうのは君のような人間の魂まで引上げて内地人同様にしてやることなんだぞ」 「それはそうです、だから僕は人に気違いとまで云われる程の熱情でそれを主張して来たんです。そうですとも、実際男分の日本が女分の朝鮮に手を伸して仲よく結婚しようと云うのにその手に唾をひっかける理由はないですからね。一つの体になることによって始めて朝鮮民族も救われるんです。僕は感激しているあまり朝鮮人に誤解さえ受けているのです。朝鮮人ちゅうのは一体に猜疑深い劣等民族ですから」 「それは待った」と大村は手を上げて思い深げに差し止めた。「朝鮮人の君達はあまりに自虐性にかかっている。わしの周囲にいる朝鮮人は皆自分の民族の悪口ばかり云って来るがそれが先ず第一いかんことじゃ。分ったか。もちろん反省し自分達の悪い点をなおすことは肝腎じゃ。だが自分を大事にしなくちゃいかん。大事に。それが出来ないのが、他の民族に劣る点じゃ。内地人を御覧! 内地人は決してそんなことはない」 「そうですよ、だってそうじゃないですか」と玄竜は慌てふためきつつ何の前後脈絡もないことを叫び始めた。彼は自分が何時か書いたことのある、至って学術的な文句を先から思い出してそれで頭が一杯だったのである。「少くとも地理的にみても、考古学的にみても、それから人類学的にみても、即ちアントロポロジー的にみても、生物学的にみても……」  こうしきりに並べたてる時、角井ははたと学者的な良心に突き当ったので、 「それは君、アントロポロジーじゃなくてアントロポロギーだよ」と訂正した。 「そうですよ、そのアントロポロギー的にみても、又フィロロギー的にみても日本と朝鮮は男と女の相違しかないんです……」  大村は彼のこのペダンチックな慌て方がおかしくてひとりでにやにや嗤っていたが、ふとそれを見た玄竜はもう大村が自分の熱情に気をよくし直したのに違いないと考えたので、いきなり全身をぐっと前に乗り出して、 「ところが大村さん」と叫んだ。「田中君とは僕はかけがえのない親友なんですよ」  だが大村は云うだけ云ったというような調子で、くるりと田中や角井の方へ向き直って云った。 「さあ、もうそろそろ引上げましょうかな。大抵どんなものか見当がついたでしょうな」 「ああ大村さん、もうお帰りになるんですか」  と玄竜はびっくりして、急にばね仕掛けにでも弾(はじ)かれたように大村の腕へ獅噛附(しがみつ)くように飛び出した。が、そのとたんに落ちていた桃の枝に足元がひっかかったので、彼は咄嗟(とっさ)にそれをすくい上げて抱え込みながら喘いだ。 「大村さん、大村さん!」 「どうしたんだね、それは又」と大村は不審そうに体を反らしてじっと見つめたかと思うと、「そんな様をして又歩いているのか、君のことはもうわしは知らん!」 「大村さん、大村さん」玄竜は急にへなへなに腰がくだけて悲しげに叫んだ。「あまりに花がいたいけないので街で百姓から買って来たまでなんです」その時自分の飲み代まで角井が払いをすましている様子なのを見て、彼はきまり悪くなったのか、慌しく田中の方へ廻って来て袖を引張りつつせき込みながら、 「田中君、田中君、実は君に折り入っての話があるんだよ」  と哀願するように呻いた。 「もっとつき合ってくれな、もっと」 「ほう、これはいい花だね」  と、田中はまぎらわせる様にしどろもどろに呟いた。そこで玄竜は急に勝ち誇った様に元気を出して桃の枝を肩に担ぎあげるや、 「そうだろう、いい花だろう、桃の花だよう、桃の花なんだ」と、声高に銅鑼(どら)声を上げつつ、恰(まる)で兵隊ごっこをする子供のように先頭を切って出て行った。やはり自分もこの偉方達にくっついて一緒に歩き廻りたくもあったのである。大村や角井と田中は後から仕方なさそうに嗤いながらぞろぞろと出て来た。蒼然とした月がぼっかり空にかかっているけれど、小路は相も変らず薄暗かった。彼は少しくおどけて桃の枝を担いだまま体を揺りながら二間程進軍して行ったが、突然立ち止って胸を張り空を見上げ不意に桃の枝を股の下に引きずり込んで乗っかるようになったかと思うと、天に合図するかの如く手を振り上げて一度けらけら笑った。他の三人は知らぬ振りをして彼の横をすごすごと過ぎて行く。彼は慌てて声高らかに叫んで曰くに、 「僕は天に上るんだ、天に上るんだ、玄竜が桃の花に乗って天に上るんだ!」  そこで恰も木馬に乗った勇士のようにすっすっと彼等の傍を突き進んで行った。意想天外なこの神秘主義者を見てくれといわぬばかりに。花々が無慙に首を折られ花びらをよごして所々に落ち散らばった。が、ふと思い出したように振り返って見ると、田中が一人暗がりの芥溜に小便を垂らしている。それで玄竜はこの時だとばかりその傍へ飛んで戻るや息をはあはあ切らしつつ、「田中君」と喉に詰った声で囁いた。「大村君に僕のことを頼んだぜ。お寺へ行かぬようにしてくれ、お寺へ」  その声があまりにも絶望的な悲しみにうちふるえていたので、驚いて田中は玄竜の顔を見つめた。ぞっとするようにひきつって見える形相が急に崩れて、気味悪い笑顔が浮んだ。それから彼の片方の手が自分の肩を卑屈そうに打って来た。 「あれはどうも官僚だからへいへい云わないと悦ばんのだよ。芸術家というのも分っていないんだよ……明日ホテルに行くぜ」  と云い捨てると、再びこれ見よがしに桃の枝に跨がって引きずりつつ天を仰いで喚き始めた。 「玄竜が天に上るんだ、天に上るんだ!」  その際に大村と角井は田中を横小路の方へ引張って大通りに出ると、自動車を止めるために手を挙げた。小路では益々いい気になった玄竜の喚き声が続いていた。           五  とうとう天には上れなかったのだ。翌朝彼はやはりいつものように穴部屋の中で、苦しそうに悲鳴を上げると共に目を覚した。誰かに縄で首をしめられる悪夢にとりつかれたのである。体は汗びっしょりだった。何しろ体を動かすのが怖ろしいようで、再び目をつぶり息ばかり激しく喘いだ。本当に首の方は大丈夫なのだろうかとわくわくふるえつつさわってみようとして、手を持って行こうとしたとたんに、何かごついものに手先がふれたのでびっくりした。本当だなと思い、目をつぶったままじっと息をころした。全く祈るような気持になって、今度は憚るようにそうっと反対の方の手を出して用心深そうに首筋の方へ近づけようとした。おや、そうでもないらしいぞと思う矢先に何かが又指先にふれてぎょっとし、そのまま仏像のように固くなった。ものの二三分もしたであろうか、やっとこさ心を落着けて、それは一体何だろうかともう一度つついてみようとした。気のせいか今度は触れたものが少しばかり揺れたようである。何だかおかしいぞと思って二つの指で挟んでみて、おやおやと引きずられるままにそれをまさぐっていたかと思うと、 「なあんだ!」とあきれ返ったように叫びながら、彼は首筋の所へおいかぶさっているものを慌てて払いのけるのと同時にはね起きた。それはがさがさと物音をたてて吹っ飛び温突(オンドル)の上で揺れている。他ならぬ、泥まみれになった桃の枝だったのだ。彼はふーと大きく息を吐き出し手で首筋の汗をふいていたが、急に気でもふれたようにけらけらと笑った。が、瀬戸物でもこわれたような自分の声までちっとも変っていないので、彼はいよいよもう大丈夫だと胸を撫で下した。  むさくるしい部屋の中が尚薄暗いところからすれば、まだ朝は早いようである。一日中これっぽっちも陽の当らない穴ぐらのような所ではあるが、でも彼には紙張障子の明るさ加減が時計のかわりになっていた。裏の方に続いた台所の土間では、老婆が今日も亭主と喧嘩をしているらしく何かを突慳貧(つっけんどん)に喚きたてながら焚口に火をくべていた。土間に一杯たちこめた煙が温突紙のやぶけたところや、障子の穴、壁の割れ目等からもやもやと侵入して来る。彼は息がむせるようで二三度苦しそうに咳をして、相貌を険しく歪めたまま不機嫌らしげにじいっと桃の枝を見つめた。もう花はすっかりなくなり枝々の先も折れ、見るかげもなく泥によごれている。触(さわ)らぬ神に崇(たた)りなしとどんな男からも怖れられた玄竜が、それしきの夢にこれは又何ごとだと思えば急に忌々しくもなって来た。惨めな残骸を曝(さら)している桃の枝が今の自分の姿とも思われるのだ。すると昨夜の花売り百姓の哀れな像が大写しで現われ、それが両手を振りながら絶望的に喚いている声が聞えて来る。 「どうして皆笑うんでがす、笑うでねえ、わっしあ斃(くたば)っちまうんだ。笑うでねえ!」  部屋の中は恰(まる)で煙幕をはられたようである。玄竜はこういう絶望的な声からのがれようとして、急に腕の間に頭を抱えて耳をふさいだ。そしてごろっとその場に倒れ身悶えした。そうだ、僕こそいよいよ斃ってやるぞ! 鐘路四辻の真中で自動車と電車の間に挟まって爆弾のようにはね散って死んでやるぞ! 事実彼は昨夜から自分の死ばかりを考えているのだった。死ぬには交通自殺に限る。大通りの真中でむごたらしく死んでやってこそ、最上最後の復讎が出来ると思っているのだ。それで僕も以って瞑するぞ。するとその時部屋の中は真暗くなり、天井といわず壁といわず温突の底といわず方々から、自分の残骸を嘲笑(あざわら)う群衆の嗤い声がわっははと湧き上った。彼はたえかねて追い散らすようにはね起きて、 「僕は死にやしない、死にやしないぞ」と悪魔のように叫んだ。激しく格闘でもするかの如く両手をめちゃくちゃに振り廻しつつ慌てふためいた。もう煙で目はくらみ息さえ苦しい。彼はついに正気の沙汰ではなくぐるぐると温突の上を這い廻り出したが、膝頭ががたがたふるえる。わっはは、わっははという声々は行手を塞ぎ、又方々から赤い焔がめらめらと燃え上って迫り来る。幻影に襲われたのだ。いよいよ彼は恐怖につきぬかれて何かを叫び叫びつつ出口を求めてあがき廻った。老婆はこの気違い男は又どうしたのだろうかと戸口の方へやって来てぶるぶるふるえ出す。だが、丁度うまく彼の逃げ惑う体が障子戸にのしかかったので、いきなり明るみの地べたへ投げ出された。老婆はきゃっと叫んで飛びのいた。少しは息使いも苦しくなくなり、暫く倒れている中に怖ろしい幻覚も収まって、彼はただ放心状態に大きな目だけをぐりぐりさせている。空には激しく雲が流れていた。その時約束通りに女流詩人文素玉が爽(さわや)かないでたちで現われたのである。彼女はその光景を見て驚いて立ち止ったが、直ぐ、大げさに手を拍ち腰をゆすぶってきゃあきゃあと笑いこけてから、 「おやおや、どうなさいましたの」  と駆け寄って来た。が、玄竜は気でもふれたようにただじろじろと彼女を物珍しそうに見上げただけである。老婆は魂消(たまげ)たと云わぬばかりにぶつくさ呟きつつ台所の方へ消え失せた。文素玉はひとりで当惑してしまったが、やっと気を立て直し渾身(こんしん)の力をふりしぼって彼を抱き起した。彼は昨夜酔いつぶれて帰ったなり寝床へ俯伏せになっておーおーと泣く中に寝附いていたので、洋服着のままであった。詩人は彼の洋服についた埃をはたいてやりながら、「一体どうしたというんですの」と云った。「ええ、玄竜さん、今日は又何かの霊感でも得たようね。早く行きましょうよ、もう直ぐ時間になりますのよ」  玄竜は痴者(しれもの)のように坐って気味悪げににたにた笑ってばかりいたが、その時ほんの少しの意識のかけらでも閃いたのであろうか、怪訝そうに首を長くして質ねた。 「何が?」 「おやまあ」彼女は玄竜の顔附にびっくりして後ずさってもじもじした。「……今日は祭日じゃありませんの、神社へ行きますのよ」 「神社?」  彼は何か六カ敷いことでも思い出すように問い返した。 「……そうよ」  すると玄竜は急にどうしたことかけっけっと笑い出した。神社という言葉が彼には突然忌々しく思われたのだ。神社の神は内地人の神であると誰も拝みに行かなかった頃、率先して内地人の群に投じ社頭にぬかずいた当初の彼は真に重大な人物で後光さえさしいろいろな役目もあった。けれど今はもうそうではないのである。寧ろ有象無象(うぞうむぞう)神社へ神社へと雲のように押しかけて行く朝鮮人達が憎くてならない位だった。文素玉は身の毛もよだつようにぞっとして身をすくめたと思うと、 「行って来ますわ」  とかすかに一言云い捨ててほうほうの態で逃げ出した。それを見て玄竜は気味よげにけらけらと嗤ったが、つと驚いたように立ち上った。空は益々鬱陶(うっとう)しくなり雲が北の方へ北の方へと押し寄せて行く。咄嗟に彼は文素玉の温かくしめっぽい肢体に対する慾情にかられ、これは今こそ掴まえねばならぬぞと考えたのだ。その足で彼は慌てて崩れかかりそうなくぐり門を抜けて庭を飛び出した。じめじめした路地に家々は芥箱のようにいがみ合い、下水には灰やきたないものを捨てたり流したりしているので、悪臭がむんむんとむれ上り、激しい風に灰や埃が吹き飛んでいた。小路を抜けて遠くの方へ蒼惶(そうこう)と逃げて行く女流詩人の姿がひらひらと靡(なび)いて見える。玄竜はけらけら笑いながらがに股を懸命に泳がせて意地悪く追いかけ始めた。逃げ足だっている彼女は一度振り返って見たとたんに、両手を振り振りやって来る玄竜に一層魂消て悲鳴を上げんばかりになりつつ走って行った。彼はだんだんと追いつくようになるにつれ、益々面白くなって何かを叫んだり喚いたりさえした。土壁の傍で土遊びをしていた二三の子供達が手を叩きながらはやしたてた。が、やっとのことで転げるように文素玉は路地をぬけて黄金大通りへ逃げ出した。丁度その時だった。玄竜が最後の路地を曲ろうとした瞬間に、突然大通りの方から喇叭(らっぱ)の音が嚠喨(りゅうりょう)と響いて来た。玄竜はぎくりとして立ち止ったかと思うと、急にどうしたことかぶるぶると体をふるわせ始めたのだ。次の瞬間自分の方から逃げ隠れるように傍の家の煙突の後ろにぴったりと体をすりつけて、息をころし目を爛々(らんらん)と光らして大通りの方を睨んだ。楽隊を先頭に立てた長い行列が神社の方へ向って行進している。何だかそれが自分を包囲し迫って来そうに思われるのだった。ゲートルを巻き附けた中学生や専門学校の生徒達が行けども行けども続き、後の方には国防服を着けた先生やその他新聞雑誌の人や顔見知りの文人達がぞろぞろとついて行く。  行列が通り過ぎてしまうと彼は又急に慌てて出口まで飛び出した。物陰に息をひそめてどんよりとした目で眺めれば、それはもうひっそりとして遠くに消えかかっている。もはやどこか行列の中へでもまぎれ込んだらしく姿を消した女流詩人のことは忘れ去って、玄竜は行列の進んで行った方向とは反対の方へ、誰かかに追われてでもいるかのように逃げて行った。頭の中が砂を一杯ぶち込まれたようにくらくらと混乱しているのだ。時々ホテル、お寺という想念が雲母(うんも)の如くぎらぎらと光を帯びて正面に塞がるけれど、立ち所に又激しい砂風におおいまくられてしまう。何だか薄寒い日である。今に月でも出そうな朝であると、彼の心の一隅に別な人間がいて思うようだった。だが月どころか小雨がしょぼしょぼと降り始めた。路行く人々の足が目立って急がしくなってゆく。玄竜は電車路の真中を狂犬のようにあてどもなく進んで行った。もうぼうぼうの頭が雨に濡れて渦を巻き、肩は雨で重そうに垂れていた。自動車が傍を掠(かす)めて走り電車は後ろの方で激しく警笛を鳴らす。その音がようやく耳にはいると彼は黙ったまま静かによけるのだった。時にはよけると共に振り返って拳を振り上げて、「野郎僕を殺す気か」と狂人のように叫んだ。  けれど半時間あまりも歩いて師範学校前辺りまでやって来たかと思うと、ふと何かに取り憑かれたように右に折れて暗い小路の方へはいって行った。泥が靴にはねつき靴は水を蹴る。その中に雨は本降りになり出した。路地をばたばた走っていた人々は驚いて立ち止り、振り返って見て首を振った。彼はどこまでもどこまでも小路の続く限り、無我夢中に左へ曲ったり右へ抜けたりしつつ縫い歩いて行くのだ。今自分は寺を捜して行くんだと、ちりぢりにほぐされた神経の一つが遠い所でのように囁く。その小路をしまいまで登りつめれば妙光寺になると思われているのだった。再びあの新町裏小路の蜘蛛の巣のような迷路にはいっていたのである。玄竜の幻覚においては、それはポプラの亭々(ていてい)として立つ広い並木路のように見える。泥だらけの下水は綺麗に水の澄んだ小川の流れのように思われる。そこでは盛んに蛙が口をそろえてぐわっぐわっと鳴き騒いでいるような耳を聾するばかりの幻聴を聞いた。その上風がひゅうひゅうと吹き荒んでポプラの枝がへし折れそうに見える。もはや彼の足は躓(つまず)いたりのめったり、水溜りにあやまって落ち込んだりしていた。でも彼は夢中になって這い上る。その時に突然足元の方で蛙共が、 「鮮人(ヨボ)!」 「鮮人(ヨボ)!」  と騒ぎ出したように聞えたのである。彼は怯えたようにいきなり耳を塞いで逃げ出しながら叫んだ。 「鮮人(ヨボ)じゃねえ!」 「鮮人(ヨボ)じゃねえ!」  彼は朝鮮人であるがための今日の悲劇から胴ぶるいしてでも逃れたかったのであろう。ところが突然彼の鼓膜が轟音を立てて爆発したように思われたが、不思議にも先の蛙共の音は消え失せ、何かしら急に辺り一面から不思議な音が聞え出した。それがだんだんと複雑に大きくはっきりと聞えて来る。いつの間にかもう何千何万の人々が唱え合ってでもいるような、南無妙法蓮華経、南無妙法蓮華経という念仏が、太鼓や木魚の音にのって海のように彼の周囲に拡がってしまった。彼はその中を恰も泳ぎもがきながら救いを求めるように慌てふためきつつ徨(さまよ)い廻った。だが迷路は思いのままにぐるぐると筋を引いているので、どんなに歩けど歩けど果しがない。混乱の中ではあるとはいえ、玄竜は極度の焦躁に追いたてられて、あー坊主共のお経や念仏が一斉に僕を呪って追い廻しやがるぞと叫びつつめちゃめちゃに走った。それで躓(つまず)いてどさりと倒れることもある。のそのそと又這い上る。こうして彼は目だけを赤々と燃えたぎらせ狂った泥牛のように怖ろしい恰好になった。だがその実今度こそお経や念仏のただよう海風にあおられて、ふわりふわり天上へ上って行きそうな気になった。ところがそうではない。彼の心の真底(しんそこ)ではちゃんと自分が娼家界隈へはいっ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るのである。本当は自分の泊ったことのある家々をあがきつつ捜し廻っている訳なのだ。けれどどこにもかしこにも同じような赤や青のペンキを塗りたくった家ばかりで、折からざあっと土砂降りになった雨の水煙りにけぶって見えなくなる。彼は腕を振り上げて何かを二言三言声高に叫んだ。それから突然又殺気だった断末魔の闘牛のように怖ろしい勢で駆け出し、一つ一つの家の大門を叩き廻り始めたのである。 「この内地人を救ってくれ、救ってくれ!」  彼は息をぜいぜいさせながら喚くのだった。そして又他の家へ飛んで行き大門を叩きつける。 「開けてくれ、この内地人を入れてくれ!」  又駆け出す。大門を叩く。 「もう僕は鮮人(ヨボ)じゃねえ! 玄の上竜之介だ、竜之介だ! 竜之介を入れてくれ!」  どこかで雷がごろごろと唸っていた。   底本:「光の中に 金史良作品集」講談社文芸文庫、講談社    1999(平成11)年4月10日第1刷発行 底本の親本:「金史良全集 1[#「1」はローマ数字、1-13-21]」河出書房新社    1973(昭和48)年2月 初出:「文芸春秋」    1940(昭和15)年6月号 入力:kompass 校正:土屋隆 2010年1月26日作成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表記について このファイルは W3C 勧告 XHTML1.1 にそった形式で作成されています。 [#…]は、入力者による注を表す記号です。 傍点や圏点、傍線の付いた文字は、強調表示にしました。
15    故郷を想う 댓글:  조회:2284  추천:0  2013-06-20
故郷を想う 金史良  内地へ来て以来かれこれ十年近くなるけれど、殆(ほと)んど毎年二三度は帰っている。高校から大学へと続く学生生活の時分は、休暇の始まる最初の日の中に大抵蒼惶(そうこう)として帰って行った。われながらおかしいと思う程、試験を終えると飛んで宿に帰り、急いで荷物を整えてはあたふたと駅へ向った。それも間に合う一番早い時間の汽車で帰ろうとするのである。  故郷はそれ程までにいいものだろうかと、時々不思議になることがある。成程郷里の平壌には愛する老母が殆んど独りきりで侘(わび)住居している。母はむろん、方々へ嫁いだ心美しい姉達や妹達、それから親族の人々も私の帰りを非常に悦んでくれる。庭は広くないが百坪程の前庭と裏庭がある。それが又老母の心遣いから、帰る度に新しい粧(よそおい)をして私を驚きの中に迎えるのだ。昨年の夏帰った時には、庭一杯に色とりどりの花が咲き乱れ、塀のぐるりには母の植えたという林檎の苗木や山葡萄(モルグ)の蔓(つる)がひとしお可憐だった。それに玄関際の壁という壁にはこれから背伸びしようとするつたが這い廻っていた。秋に入りかけ花盛りが過ぎ出した頃、コスモスをもう少し咲かせればよかったのに、それが気付かなかったのだと、母や妹は済まなそうに云っていた。私がそれ程の花好きというのでもないのに。母ももう年を取ったものだと思う。そして帰る度毎に、気力や精神が衰えているように思われて悲しい。六十をこえると老い方も一層早いのだろうか。  殊に昨年はコスモスの咲き出す頃、すぐ上の姉特実(トクシリ)が亡くなった。三十という若い身空で、子供を三人も残してはどうしても死にきれないと云いながら、基督教聯合病院の静かな部屋で息を引取った。その死は今思うだに悲痛なものに感じられてならない。それを書くには今尚私の心の痛みがたえられそうもない気がする。彼女は私のはらからの中では一等器量がよくて、心も細やかであり明朗でもあった。父が母と違って絶壁のように保守的で頑固なために、幾度母に責め諫(いさ)められながらもついにあの姉を小学校にさえ出さなかった。女に新教育は許せないというのである。いくら泣き喚いても、それは無駄であった。でも彼女は無智の中にあきらめていようとはしないで、七八の頃から千字文で一通り漢字を習い、朝鮮仮名はもう既に自在に読み書きが出来、小学校へ上ったばかりの私を先生としてそれ以来ずっと諸学科の知識をかじり、それから雑誌を取り寄せ新聞を読むなどして、その識見や思慮は私が中学にはいった頃はもう尊敬すべき程だった。  こういうところからして、私と彼女の間に於る姉弟の情にも又特別なものがあったと云える。私が帰る頃を聞き知って真先に母の許へやって来て待ってくれたのもこの姉だった。そして私が林檎好きだと彼女は勝手にきめて、いつも国光に紅玉など水々しくて色のよい甘そうなのを一抱えずつ買って来てくれた。彼女の死が老母に与えた精神的な打撃というものは余りにひどい。正にその次は自分位であろうとひとりよがりに考えて、少しでも余計に悲しもうとする私である。その姉が今度帰ればもういないのだと思うと、丈夫な歯が抜けたように心の一隅が空ろである。  それでもやはり故郷への帰心は抑え難くはげしい。これは一体どうしたものだろうか。左程に故郷を恋しく思わない友人達を見る度に、私はむしろ羨しくなり又自分をはかなく思うのである。此頃も私の家では母と京城の専門学校から戻って来たばかりの妹が二人きりで侘しく暮していることであろう。先日の妹の手紙には、私の帰って来るという四月は平壌の花植時だからその時揃って庭いじりをしましょうと書いてあった。私は丁度その先便で母や妹宛に、今度帰って行くことにしたから、裏庭にはあきれる程までにトマトを植え、井戸の上には藤棚をしつらえ、私のささやかな書斎の前にはヘチマを上げるように、そして前庭には絵屏風となるまでに朝鮮朝顔をと書いて送ったのだ。私は悲しみに打ち沈んでいる老母を、そんな仕事からでも気をまぎらわせたかったからである。それで妹の返事を見て重ねて手紙を出したところ、つい五六日前の手紙には母が着々用意を整え、トマトの方もあきれる程までに沢山註文したし方々から花種も取寄せているということだった。その上この文を草している今日は又奇しくも母が愈々(いよいよ)掘り返しをはじめましたと云って来た。それがどれ位の出来栄えか、今度帰ったら殊更(ことさら)私も仰々しくそれをほめそやさねばなるまいと考えたりする。  とはいうものの故郷に帰りたいという思いは、ひとえに母や姉や妹、それから親族の人々に会いたいという気持からだけではない。やはり私は自分を育んでくれた朝鮮が一等好きであり、そして憂欝そうでありながら仲々にユーモラスで心のびやかな朝鮮の人達が好きでたまらないのだ。東京でいつもせせこましい窮屈な思いで暮している私は、故郷に帰れば人が変わったように困る程冗談を云う。友達にはむろん先輩にさえ、気がどうかしていると思われる位に実のない冗談を持ちかける。もともと人一倍そういったところが好きで、深刻そうに真面目ぶるのが苦手の性分でもあるが。だから帰れば家でも毎日を冗談と笑い話で暮しているようなものである。そういえば又思い出すが死んだ姉などは殊に私とは調子が合って、何事にも声を出して笑い、笑ってはついに腰が折れるまでに笑いこけたものだ。だが時々急にこの地で致し方ない程の郷愁にかられると、大概は神田の朝鮮食堂にでも行って元気な学生達の顔を嬉しそうに眺めたり、朝鮮歌謡の夕だとか野談や踊りの催しなどをさがしては出掛ける。それも今は少くなったが。――そこで移住同胞達の笑顔を見たりはしゃぐ声を聞いたりすると、時には思わず微笑ましくなり、又涙ぐましくも悦に入ったりするのだ。あの朝鮮語のふざけた弥次(やじ)を聞くのが又大好きと来ている。思わず吹き出してしまう。これはどうにか一種のセンチメンタリズムと云えたものかも知れない。  朝鮮の空は世界のどこにもないと云われる程、青くからりと澄んでいる。早くその下を歩きたいと此頃思い出したので、どうにもしようがなくなって来た。こうして私はいつも朝鮮と内地の間を渡鳥のように行ったり来たりすることになろう。何しろ母も年が年なので、あの澄み渡った青空の下、どこか好きな大同江の流れでも見下ろされる丘の上に住みたいものと心では考えている。   底本:「光の中に 金史良作品集」講談社文芸文庫、講談社    1999(平成11)年4月10日第1刷発行 底本の親本:「金史良全集 4[#「4」はローマ数字、1-13-24]」河出書房新社    1973(昭和48)年4月30日 ※初出:「知性」    1941(昭和16)年5月号 ※底本にあった割り注および注は、編者もしくは編集者が付けたものと判断し、削除した。 ※本文中の「内地」とは、当時日本の統治下にあった朝鮮などの地域との対比の上での日本を指す。 入力:大野晋 校正:大野裕 2001年1月1日公開 2005年12月16日修正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表記について このファイルは W3C 勧告 XHTML1.1 にそった形式で作成されています。 [#…]は、入力者による注を表す記号です。 傍点や圏点、傍線の付いた文字は、強調表示にしました。
14    玄海灘密航 댓글:  조회:1799  추천:0  2013-06-20
玄海灘密航 金史良  荒潮の渦巻く玄海灘を中心にして、南朝鮮、済州、対馬、北九州等の間には、昔から伝説にもあるように住民の漂流がしばしばあったと云われている。或は最初の文化的な交流というものは、概してこういう漂流民を通じてなされたのであろう。――だが面白いことには文明の今日においてさえ、漂流という形を借りたものが又想像以上にあるのである。それが密航である。  けれど密航と云っても、そうロマンチックなものではなく、それを思いたつまでには余程の勇気と度胸が要ることだろうと思う。玄海灘を挟んでの密航と云えば、旅行券のない朝鮮の百姓達が絶望的になって、お伽話のように景気のいいところと信じている内地へ渡ろうと、危かしい木船や蒸気船にも構わず乗り込むことを云うのだから、度胸云々どころではなく、全く命がけ以上の或は虚脱と云ったところであろう。何れにしても、この密航に関して私にははかない思い出が一つある。この間も朝鮮人の密航船が玄海灘で難破して、一行二三十名が藻屑(もくず)となったという報道を読んで、転(うた)た感深いものがあった。  その実私も釜山から一度密航を試みようとしたことがある。それは十八の時の十二月のことであるが、或る事情で堂々と連絡船には乗り込めないので、毎日のように埠頭に出て寒い海風に吹かれながら、どうしたらばこの海を渡って行けるだろうかとばかり思い焦っていた。何しろ若い年先であり、それに丁度中学からも追い出されたばかりなので、ゆっくりと形勢を見るとか智慧をめぐらすとかいうようなことは出来なかった。玄海灘の彼方というのは、私にはその幾日間かは全く天国のようにさえ思われていたのであろうか。  或る日も私は埠頭で、帆船や小汽船が波頭ににょきにょきと揺れている様を見ながら、じっと立っていた。それはみぞれの降る日だった。その時黒い縁の眼鏡をかけた内地人の男が、通りがかりに独言のように、海を渡りたければ明朝三時に××山の麓に来たらいいと云うのである。私は驚いて振り返って見た。だが男は吹き荒ぶみぞれの中に、どこかへ消え失せてしまった。さすがに私はその晩いろいろと苦しみ悶えたものである。丁度二三日前から、宿屋のボーイにも三十円程出せば密航させるからとしきりに誘われていた訳なので、よっぽど思い切ってやってみようかと考えた。だが何故となくおっかなかった。隣りの部屋に一人の客がやって来たが、言葉がどうも郷里の北朝鮮系である。私はその夜中に客の寝ている部屋へはいって行った。そして密航に対して意見を求めた。すると客はしげしげと私の顔を眺めてから、 「よしなせえ」と一言のもとに反対した。今も思い出すことが出来るが、彼は小さな口の上に黒い鼻髭のある三十男で、目をしょっちゅうしばたたいていた。その目をしばたたきながら、彼は一晩中密航に関していろいろな話をしてくれた。彼も内地へ行っていたが、渡る時はやはり旅行券がなくて密航をしたというのである。船は小さくて怒濤に呑まれんばかりに揺れるし、犬や豚のように船底に積み重ねられた男女三十余名の密航団は、船員達に踏んづけられ虫の息である。喰わず飲まず吐瀉(としゃ)や呻きの中で三日を過ぎ、真暗な夜中に荷物のように投げ出されたのが、又北九州沿岸の方角も名も知らない山際だったそうである。船の奴等は結局どこへでも船を着けて卸(おろ)してから、見付からぬ中に逃げればいい訳である。だから時には奴等は内地へ来たぞと云って、南朝鮮多島海の離れ小島にぞろぞろと卸して影をくらますことさえあるそうである。兎に角内地へ渡って来たのは来たが、皆はひどい船酔いと餓えに殆んど半死の有様で、夜が明けるまでぶっ倒れていた。彼だけはしきりに気を立て直して、行先をさぐった。そして灯のまだらについている小さな町の方をさして、這うように山を越え逃げ込んだのだった。ぼろぼろでも洋服を着ていたからよかった。だが他の連中は白い着物を着たまま群をなして徨(さまよ)い歩く中に見付かって、再び送還されたのに違いない。私はとうとう密航を思い切らねばならなかった。 「じゃが今は内地も不景気でがして、屑屋も駄目じゃけん、内地さ行くなああきらめるがええ」と、彼は結んだ。  翌日の朝彼は郷里へ帰るといって、やはりぼろぼろの洋服で小さな包みを一つ抱え、釜山鎮という駅から発って行った。私は余りの心寂しさに、彼を親でも送るような気持で、遠くから手を振って見送ったが、この小さな鼻髭を持ったおじさんは今どこで何をしているのだろう。  その後私は北九州の或る高校に籍をおくようになったが、この地方の新聞には毎日のように朝鮮人密航団が発見されて挙(あが)ったという記事がのる。それを読んでいく時は、何とも云えない複雑な感情に捉われた。沿岸の住民がとても訓練を得て監視するために、稀の場合でなければ成功しないのである。あっちは命がけの冒険上陸とも云えるが、こちらは又こちらで必死になって上陸させまいと目を光らせている。僅か八つの小学生が学校へ行く途中、密航団を見付けて駐在所に告発したので表彰されたというでかでかした記事も稀ではなかった。それを読んでいると私は、自分までが来れない所へやって来て監視されているような、いやな気持になることがままあった。そのためでもなかろうが、私は九州時代有明海にしても、鹿児島海岸にしても、別府の太平洋にしても随分親しんだものだが、目と鼻の先の玄海灘の海辺には余り遊びに出掛けなかった。  それにしても卒業の年の初秋だったと思う、一度だけ郷里の或る学友と唐津へは行ったことがある。波の静かな夕暮で、海辺には破船だけが一つ二つ汀(みぎわ)に打ち上げられていたが、海の中へ遠く乗り出している松林には潮風がからんで爽やかに揺れていた。その時ふと私達の目には白い着物を着た婦(おんな)達が四五人、遠く砂浜を歩いて来るのが見えた。丁度夕焼頃となり、それが迚(とて)も美しく映えて見えるのだった。私はぎくりとして、さてはちりぢりになった密航団のかたわれではなかろうかと思った。ところが彼女達が近くやって来た所を見ると、近所の海辺に住んでる移住民の奥さん達のようだった。若い婦達が下駄を手に持って、時々腰を屈(かが)めて沙場の貝殻を拾っている様は美しい。その頃の高校の歌に、 「夕日や燃ゆれ、吉井浜、天の乙女がゆあみする」という句節があった。  私は滅多(めった)に歌など歌ったことがないが、その時はちょっとそういう文句を思い浮べた。   底本:「光の中に 金史良作品集」講談社文芸文庫、講談社    1999(平成11)年4月10日第1刷発行 底本の親本:「金史良全集 4[#「4」はローマ数字、1-13-24]」河出書房新社    1973(昭和48)年4月30日 ※初出:「文芸首都」    1940(昭和15)年8月号 ※底本にあった割り注および注は、編者もしくは編集者が付けたものと判断し、削除した。 ※本文中の「内地」とは、当時日本の統治下にあった朝鮮などの地域との対比の上での日本を指す。 入力:大野晋 校正:大野裕 2001年1月1日公開 2005年12月14日修正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表記について このファイルは W3C 勧告 XHTML1.1 にそった形式で作成されています。 [#…]は、入力者による注を表す記号です。
13    光の中に 댓글:  조회:2666  추천:1  2013-06-19
光の中に 金史良   一  私の語ろうとする山田春雄は実に不思議な子供であった。彼は他の子供たちの仲間にはいろうとはしないで、いつもその傍を臆病そうにうろつき廻っていた。始終いじめられているが、自分でも陰では女の子や小さな子供たちを邪魔してみる。又誰かが転んだりすれば待ち構えたようにやんやと騒ぎ立てた。彼は愛しようともしないし又愛されることもなかった。見るから薄髪の方で耳が大きく、目が心持ち白味がかって少々気味が悪い。そして彼はこの界隈のどの子供よりも、身装(みなり)がよごれていて、もう秋も深いというのにまだ灰色のぼろぼろになった霜降(しもふ)りをつけていた。そのためかも知れないが、彼のまなざしは一層陰鬱で懐疑的に見える。だが妙なことに彼は自分の居所を決して教えようとはしなかった。私は大学からS協会への帰りみちなど、押上駅の前で二三回彼に遇ったことがある。彼の歩いて来る方向からすれば、どうやら彼は駅裏の沼地あたりに住んでいるようだった。それでいつか私はこう質(たず)ねたものである。 「駅の裏に住んでいるの?」  すると慌てて頭(かぶり)をふった。 「違うやい。僕の家は協会のすぐ傍だよ」  勿論途方もない嘘である。彼は学校からの帰りに、わざわざここへ遠廻りして遊びに来ると、夜の部がひけるまでは決して帰ろうとはしなかった。聞けば婆やの部屋で飯を貰って食べたことも一度ならずあったようである。私ははじめそんなに彼に注意を向けてはいなかった。だが或る晩彼が薄暗い婆やの部屋で飯をかき込んでいる様を見た時は、はっと驚いて立ち止ったのである。「へんだな」と私は自分に云った。だが私はどういう意味でそう云ったのか、はっきりはしなかった。そしてもう一度「へんだな」と呟いた。その恰好がどうも私には曰(いわ)くがありそうでなかなか思い出せなかった。ちぢかんだ丸背にしろ、顔にしろ、口の恰好にしろ、箸の使いわけまでも。しまいには私は息苦しくなって黙ったまま彼の傍を離れて行った。だがその後というもの、私は彼のことをあまり気にしなくなった。その中に彼と私の間にはまことに奇妙な事件が一つ起ったのである。――  その頃私はこのS大学協会のレジデント(寄宿人)だった。ただ私の仕事といえば、そこの市民教育部で夜の二時間程英語を教えていればよかった。それでも場所が江東近くの工場街で、習いに来る人々が勤労者であるだけに、二時間の授業といっても骨が折れた。昼間へとへとに仕事で疲れている彼等であってみれば、余程こちらが緊張してかからない限り、みなはうつらうつらまどろんでしまうからである。  夜の部で元気なのはやはり子供部である。私たちの教室のすぐ下がその教場になっていて、いつもわあっと彼等の騒ぎ立てる音が聞えて来た。私の生徒たちはその音に驚いて腰を掛けなおすといった工合である。古いピアノがきんきん鳴り始めると、子供達は一斉に「われらはすこやかに、いざ育とう」という歌を、屋根でも飛んでしまいそうな元気な勢で張り上げた。 (もう時間だな)と思うが早いか、今度は豆でも挽き立てるような騒ぎが湧き上る。子供たちは階段をわれ先にと駆け上って来るのだ。授業を終えて教室を出ようとした私は、すぐに子供たちにつかまって、全(まる)で鳩飼いじいさんのようになるのだった。甲は肩にのり、乙は腕にすがりつき、丙はしきりに私の前を小躍りしながらはね上る。幾人かは私の洋服や手を引張り、或は後から声を立てて押しやって私の部屋まで来る。そこで戸を開けようとすると、もはや先からはいって待ち伏せていた子供たちが、一生懸命になって開けさせまいとしている。こちらでも子供たちが蟻のようにたかってしきりに開けようとする。こういう時にきまって山田春雄ははたから邪魔をするのだった。 「ほっときなよ。ほっときなよ。あーあーあー」  と叫びながら、私の鼻先の前で気味よさそうにひょうきんな踊りをしてみせた。とうとうこちらが凱歌を上げてなだれ込んで行くと、室内では先から待ち構えていた六七人の少女がきゃあきゃあしながら悦び立てた。 「南(みなみ)先生! 南先生!」 「あたいも抱っこして」 「あたいも」 「あたいも」  そう云えば私はこの協会の中では、いつの間にか南(みなみ)先生で通っていた。私の苗字は御存じのように南(なん)と読むべきであるが、いろいろな理由で日本名風に呼ばれていた。私の同僚たちが先ずそういう風に私を呼んでくれた。私ははじめはそんな呼び方が非常に気にかかった。だが後から私はやはりこういう無邪気な子供たちと遊ぶためには、却ってその方がいいかも知れないと考えた。それ故に私は偽善をはる訳でもなく又卑屈である所以(ゆえん)でもないと自分に何度も云い聞かせて来た。そして云うまでもなくこの子供部の中に朝鮮の子供でもいたならば、私は強いてでも自分を南(なん)と呼ぶように主張したであろうと自ら弁明もしていた。それは朝鮮の子供にも又内地の子供にも感情的に悪い影響を与えるに違いないからだと。  ところが、或る晩のこと子供たちと騒いでいる所へ、私の生徒の一人が真蒼(まっさお)にひきつったような顔をしてはいって来た。それは自動車の助手をしながら夜になると英語や数学を習いに来る李という元気な若者であった。彼は戸を閉めると挑(いど)みかかるような調子で私の前に立ちはだかった。 「先生」それは朝鮮語だった。  私ははっと思った。子供たちもどういう意味かは知らないが何か嶮しい空気にけおされて、彼と私の顔をかわるがわる見守っていた。 「さあ、又後で遊ぶんだ。これから先生は用事があるんだから」と私は落着きをつくろいながら口元に微笑みさえ浮べた。  子供たちはすごすごと出て行った。だが山田春雄のまなざしばかりは異様な光を点(とも)して、さぐるようにじっと私を見つめていた。私は今だにその薄光りしていた目を忘れることは出来ない。彼は蟹のように横歩きで方々へぶち当りながらぬけ出るのだった。 「まあお掛けなさい」私は二人きりになった時静かに朝鮮語で話しかけた。「ついお互い話し合うような機会もありませんでしたね」 「そうです」李は立ったまま叫んだ。「私は実際あなたにどちらの言葉で話しかけていいか分りませんでした」彼の言葉の中には若者らしい憤りがのたうっていた。 「勿論私は朝鮮人です」という自分の答は心なしかいささかふるえを帯びていた。恐らく彼に対しては少くとも苗字のことが気にかかっていたのであろう。或は平気な気持でいられなかったのも、その点自分の身の中に卑屈なものをつけていた証拠に違いなかった。そこで私は寧(むし)ろ少しばかりうろたえながら、こう質ねてしまった。「何かお気にさわるようなことでもあったでしょうか」 「あります」彼は昂然と云った。「どうして先生のような人でさえ苗字を隠そうとするのです」  私は咄嗟(とっさ)で言葉につまった。 「まあ落着いて坐ろうじゃありませんか」 「どうしてか、私はそれが訊きたいのです。私は先生の眼や顴骨(かんこつ)や鼻立から、きっと朝鮮人であるのに違いないと思いました。だがあなたはそんな素振り一つしなかったようです。私は自動車の助手をしています。寧ろ私のような職場の人々に苗字のことでいろいろ気拙(きまず)いことが多い筈です。だが」彼は波打つ激情の余り吃(ども)り出した。どうして彼はこんなにまで興奮しているのであろうか。「だが私はそんな必要を認めないのです。私はひがみたくもなければ、又卑屈な真似もしたくないのです」 「全くです」私はかすかに呻(うめ)くように云った。「私も君の云うことと同感です。だが私としては子供達と愉快にやってゆきたかっただけのことです」廊下では相も変らず先の子供たちが騒ぎ合いながら、時々戸を開けては洟(はな)たれ顔で覗いたり、目をつぶって舌を出してみせたりした。「例(たと)えば私が朝鮮の人だとすれば、ああいう子供たちの私に対する気持の中には、愛情というものの外に悪い意味での好奇心といっていいか、とにかく一種別なものが先に立って来ると思うのです。それは先生として先ず淋しいことです。いや寧ろ怖ろしいことに違いない。だからと云って私は自分が朝鮮人だということを隠そうとするのではない。ただ皆さんがそういう風に私を呼んでくれた。又私もそうことさらに自分は朝鮮人だとしゃべり廻る必要も認めなかっただけなんです。だが君にそういう印象を少しでも与えたならば、私は何とも弁解のしようもないのです……」  と云った時、戸を開けて覗き込んでいた子供の中、突然大きな声で喚いたものがある。 「そうれ、先生は朝鮮人だぞう!」  山田春雄だった。瞬間廊下はしんとなった。私も一寸ばかり面喰わ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そこで努めて気を落着けるようにしてこう云った。 「いずれ又会ってゆっくり話しましょう」  李はわなわな手をふるわせながら出て行った。山田をはじめ二三の子供たちが逃げ出すようだった。私は呆然と立ち尽していた。一瞬間電光のように俺こそ偽善者ではないかという考えが閃(ひらめ)いたのである。階下の方ではがんがんと鐘の音が聞えていた。子供たちは騒ぎたてながら雲のように下りて行く、その音が恰(あたか)も遠い所からのように響いて来た。すると戸がそっと開いて忍び足でやって来た山田が、背をちぢかめて隙間から部屋の中を覗き込むのだった。それから、 「やい朝鮮人!」と云って舌をぺろりと出して見せると、追われるように再び逃げて行った。  これ以来、益々山田春雄は意地悪くなって私につきまとって来た。私が彼に一層の注意をむけるようになったのはそれ以後のことである。  成程そう考えてみれば、ずっと以前から彼は私を疑りの目で監視しながらつきまとっていたようであった。時々私が言葉尻などにひっかかって舌が廻らないような場合にも、よくそれを真似て殊更(ことさら)にわらい立てたりするのは彼だった。彼は最初から私を朝鮮出身だとにらんでいたのに違いない。でありながらも彼はいつも私につきまとい、私の部屋に来てはよくいたずらをした。それというのも彼は一種の愛情に似たものを私に対して感じていたためであろうか。ところがそのこと以来は、私を極度に敬遠しているとみえ、なかなか近寄っては来ないで、私のぐるりを一層うろうろとつきまとうだけだった。今に私がへまでもしたら一隅で意地悪く悦び立てようと身構えでもしているように。だが私は恐らく誰よりも愛情深い態度でいつも彼に臨んだ。私はむしろ彼を宥(ゆる)したかったのである。そして出来るだけ彼を研究し徐々に指導して行こうと決心した。私は先ずこういう風に考えたのだった。貧しい彼の一家は今まで朝鮮に移住生活を続けていた。その時に彼も外地へ渡った一般の子供のようにつむじ曲りの優越感を持たされて帰ったのであろう。だが私は或る日とうとう見兼て真赤に怒ってしまった。その時も私は教場に下りて子供達と遊んでいたが、二三度私の方をわざとらしく気遣ってから、急に何でもないことに怒って、傍の小さな女の子を実に残忍な程までに腕をふり廻して打ったのである。女の子は泣きながら逃げて行った。彼は逃げて行くのを追いかけながら、 「朝鮮人ザバレ、ザバレ――」と喚き立てた。  ザバレと云うのは捕えろという意味の朝鮮語で、朝鮮移住の内地人がよく使う言葉だった。勿論女の子は朝鮮人ではない。私に対して見よがしに言ってみるのであろう。私は飛んで行って山田の襟首をつかまえると、前後見さかいなしに頬打ちを喰わした。 「何んということをする奴だ!」  山田は声をひそめて何も云わなかった。ただそれは木偶(でく)のように私のするがままになっていた。泣きもしなかった。そして荒々しい息づかいをしながら、下の方からじっと私の顔を見上げた。殊更に目が白かった。子供達は私の廻りを囲んでつばを呑んでいる。彼の目にはふと一粒の涙がにじみ出したように見えた。だが彼はしずかに涙をおしこらえたような声で叫んだのである。 「朝鮮人の莫迦(ばか)!」 二  元来S協会は帝大学生が中心となっている一つの隣保事業の団体で、そこには托児部や子供部をはじめとして市民教育部、購買組合、無料医療部等もあって、この貧民地帯では親しみ深い存在となっていた。赤ちゃんや、子供のためには勿論、日常の細々した生活にまで、それはもう切りはなされないような緊密な連りをもっていた。そしてここへ通う子供達の母の間には「母の会」もあって、お互いに精神的な交渉や親睦を計るために、彼女たちは月二三度ずつ集まるのだった。だが今までついぞ一度も山田春雄の母は顔を出したことがなかった。自分の子供が夜遅くまでここへ来て遊んでいることを知っていようものなら、たとえ他の母達のように関係大学生達への温かい感謝の念からではないにしろ、時には親として自分の子供に対する心配からでもやって来ようというものではないか。――私はこの異常な子供に関心を持つとともに、こういう彼の家庭からして知らねばならないと考えたのである。  間もなく週末の三日続きの休みを利用して、子供達がどこかの高原へキャンプ生活に出掛けるようになった時、私は山田を自分の部屋に呼んで来た。山田は今までこんな機会にはいつも参加出来なかったことを私は知っている。 「どうだね、君も行くかい」  少年は頑(かたく)なに黙っていた。彼はこういう場合はこちらがどんなにやさしく持ちかけてもいつも疑り深くなるのだった。 「今度は君も行こうね」 「…………」 「どうしたんだね、君もお母さんを連れて来たらいいよ。父ちゃんでも構わない、どなたか父兄の方が来て承諾すればいいことになっているからね」 「…………」 「連れて来る気かい」  山田は首を振った。 「じゃ行かないの?」 「…………」 「費用は先生が出してやる」  彼は空々しい目で私を見上げた。 「そうしようね」 「…………」 「そんなら君のうちに先生が一緒に行って話してやろうか」  彼は慌てたように又首を振った。 「でも三日もとまって来るんだから、父ちゃんや母ちゃんの許しを受けないわけにはゆかないだろう?」 「先生も山に行くの?」その時になってやっと少年はずるそうに訊ねた。「行かない?」 「うん、先生は駄目だ、今度は留守番をすることになったんだ」 「じゃ僕も行かないや」  彼はひそやかな微笑を唇の上に浮べた。 「どうしてだね?」  すると彼はいーと歯をむいて白痴のように顎を突き出してみせた。  こういう風にして私はかねがね彼の家を一度訪問してみようと思いながら、とうとう果すことが出来なかった。彼はどうしたのかその隙を与えてくれないのである。  いよいよ土曜日が来て、S協会子供部の百余名は悦びざわめきながら上野駅へ列をなして出掛けたが、やはりその時間になるまで山田は見えなかった。だが後から屋上に用を思い出して上って行った私は驚いてしまった。物干台の柱にもたれて山田春雄が遠く並んで行く子供たちの行列をじっと眺めている。私は何とはなしに目頭が熱くなるのを感じた。物音に気附いて振り向いた彼はひどくまごついたようである。私は強いて笑いを作りながら彼の肩を後からそっと抱いてやった。 「そうら、あすこにアドバルンが上っているだろう」 「うん」彼は消え入りそうな声で云った。煤(すす)けた煙突や黒々した建物を越えて遠くの上野公園あたりに、二つ三つそれが尾をひいて浮んでいる。私はふと彼を温かくいたわってやりたいような気持になった。 「なあ春雄、これから先生は暇だから一緒に上野へでも行こうかい」  少年は見上げながらにっと笑った。 「じゃ行こう。先生は学校にも用事があるから丁度いい」  学校に用事があると云ったのは勿論嘘だった。そんなにも心にもないことを云う程、私は内心山田をはばかって遠慮しているのだろうか。 「へえ」彼は目をみはった。「先生も帝大なの?」彼はほんとに驚いたのに違いなかった。 「朝鮮人も入れてくれるかい?」 「そりゃ誰だって入れてくれるさ、試験さえうかれば……」 「嘘云ってらい。僕の学校の先生はちゃんと云ったんだぞ、この朝鮮人しょうがねえ、小学校へ入れてくれたのも有難いと思えって」 「ほう、そんなことを云う先生もいるのかい。それで生徒は泣いたのかい」 「うん泣くもんか、泣きやしねえよ」 「そうか、何という子供だい。一度先生の所へ連れて来てごらん」 「いやだい」彼はせき込んだ。「いないんだよ、いないんだよ」 「おかしなことを云うね」 「誰にも云わないんだよ、云わないんだよ」  彼はむきになって取り消した。全くへんな子供だなあと私は思った。丁度それと殆んど同じ瞬間だった。もしや彼がその朝鮮の子供ではないかという考が不意に浮んで来たのは。私は驚いたように彼の顔をじっと見つめた。彼は顔をこわばらせ警戒するように後ずさりした。そして急に一目散に階段をかけ下りながら叫ぶのだった。 「うん、僕、帽子をかぶって来るよ」  私は静かに首をふりながら階段を下りて行った。  だが私は玄関口から近い階段まで下りかけた時に、下の方で並々ならぬことがもち上っているのを知った。息をひそめてもみ合いながら、医療部の医師や看護婦や購買組合の男たちが、玄関口に横着けにされた自動車から一人のみすぼらしい恰好をした婦(おんな)を運び込んでいる。その後から助手の李がひどく興奮しているとみえ、肩で呼吸をきらしながらはいって来るのが見えた。婦の頭は血まみれになって後へぐんなりと垂れている。春雄がその傍をぶるぶるふるえながら二三歩ついて来たが、私を見附けるとぎょっとして立ち竦(すく)んだ。私はすぐに李の方へ近附いて行って、心配そうにどうしたことだと質ねた。すると彼は歯ぎしりしながら叫んだ。 「亭主に刃物で頭をやられたんです」医療部の戸口でがやがやしていた人々は皆驚いて彼の方へ振り向いた。「あの婦は朝鮮の人です。亭主は内地人の、これはひどい悪党なんだ」それからハンケチで首筋をふこうとしたとたんに、傍の方でうろたえている山田春雄を見附けると、彼は恐ろしい勢で少年の方へ飛びかかった。 「丁度こいつだ。こいつのおやじなんだ」彼は山田の手首をねじ曲げながら恰も犯人でも挙げたように「こいつの、こいつの」と口に泡をふくんで叫ぶのだった。その声はもはや興奮のあまり泣声にかわっていた。  山田はひどく苦しそうに悲鳴を上げながら、 「違うんだよ、違うよ」と喚いた。「朝鮮人なんか僕の母じゃないよ、違うんだよ、違うんだよ」  男達が中にはいってようやく二人をひき放した。私は殆んど茫然としていたのである。李君はいきりたって再び襲いかかり山田の背中を勢にまかせて蹴りつけたので、春雄はよろめきながら私の方へ抱きついて来た。そしてわーっと泣き出した。 「僕は朝鮮人でないよ、僕は、朝鮮人でないんだようー、なあ先生」  私は彼の体をしっかりと抱いてやった。私の目頭には熱いものがじーんとこみ上げて来るのを感じた。あの李のやけのような取り乱し方にしろ、又この少年のいたましい叫び声にしろ、私はどちらも責められないような気持だった。その場へぐったりとして倒れそうであった。婆やが一先ず山田を連れ出したので、やっとその場が収拾のついたようなものである。李君は激しく罵るように皆の前で云った。 「あいつのおやじは博徒(ばくと)の人でなしなんだ。つい先日監獄から帰って来たんだ。その間あの気の毒な婦は飲まず食わずにどんなに苦しんだか知れないや。その間中僕のうちへ、近処でなつかしいもんだから、やって来ては御飯を貰って行ったんだ。だのにあの悪党野郎は監獄から出ると、僕の所へ自分の嬶(かか)がゆききをしていたというので、ひどいやきを入れちゃったんだ。助かりやしねえ、もう助かりやしねえんだ」  彼はひーんと洟をかんだ。医療室から人が出て来て静かにしてくれるように云った。私は李を少しばかり離れた所へ連れて行きながら質ねた。 「君は山田春雄の家を知っているんですね」 「知っているもいないもないです」彼は忌々(いまいま)しそうに云った。「奴も駅裏の沼地に住んでいるんです」 「そうですか、随分ひどいもんだね。どうして君の家へゆききしたというのでいじめたのでしょう?」  彼は歯を食いしばった。 「そ、それは僕のお袋が朝鮮服を着ているからなんです。それで朝鮮人のところへ行くなってんです。へん、ふざけてらあ、莫迦(ばか)野郎奴が、あの前科者奴は何だと思うんです。たかがあいのこじゃねえか」そして目の前に相手をおいたとでも云うように叫び声を上げた。 「野郎、覚えておくがええぞ、一度でも出会(でくわ)したなら、貴様の首ねっこはもうねえと思うんだぞ、やい、この半兵衛野郎!」 「え、半兵衛?」私は驚いて問い返した。 「そうです」彼は息を切らしながら云った。「ひどい悪党です、残忍な奴なんです、へん、だがな、今度こそ僕が承知しねえからな、野郎! 嬶の殺人罪をきせてやるからな」 「半兵衛」私は再び呟いてみた。どう考えてもそれは確かに私には耳なれの名前である。 「半兵衛、半兵衛」私は何度も口ずさんでみたが、記憶の中を空廻りするだけでどうしても思い起せなかった。  その時に医師の矢部君が出て来たので、私たちは彼の方へ駆け寄って経過をきいた。彼の話では生命には別状もないだろうが、何しろひどい刺傷でどうしても一カ月の入院治療は要するから、今に意識を返すのを待って、どこかほかの病院へ移さねばならないとのことだった。李はその話を聞くと真蒼になって声をふるわせ、亭主が何しろ半兵衛で鐚銭(びたせん)一文持たないごろつきであるから、入院などとても覚束(おぼつか)ない、助けると思ってここに治るまで寝かせてくれとすがり附いて頼んだ。 「先生、お願いです、僕の方でお粥だのそんなのは持ちますから、先生……」  だが実際のところここは医療部といっても、有志医学士が二三人昼間やって来て簡易治療にたずさわるという程度で、重傷患者を入院させるという程の所ではなかった。それで矢部君も暗然として首をひねりながら、私にどうしたものだろうと訊ねるのだった。私はすぐ近処の相生病院の尹医師を思い出したので、その方へ電話でお願いすることにした。それは貧民救済医院といったもので、資金が朝鮮の労働者たちのか細い懐から出ているだけに、朝鮮人にはいろいろ特典があった。丁度空いているベッドがあったために工合よく話がまとまった。それで再び彼女は担ぎ出された。もはや頭や顔には白い繃帯が何重にも厚ぼったく巻かれていた。それは丁度羽根のとれたとんぼのようにみじめだった。彼女は私たちに護られながら小路をぬけた所にある古ぼけた相生病院に運ばれた。手術台にのせられた時にもほんの少ししか意識がないようだった。彼女は二言三言呻いたようだったが、はっきりと聞きとることが出来なかった。体の小さい、弱々しそうな女だった。指先は蝋のように真蒼で血の気も通っていないようだった。その傍で尹医師は矢部君の話に耳を傾けながら、いろいろな医具の準備をととのえていた。私は彼等が再び彼女の繃帯をほどこうとするのを見て静かにその部屋から出て来た。  外はだんだん険しい空模様になっていた。風が出て来た。藤棚の葉っぱが激しく揺れていた。  病院には半兵衛も春雄も現われなかった。 三  日の暮れる頃はもうどしゃ降りになっていた。ますます風もひどくなり、雨は桶を流したような威勢で降り出した。窓ががたがたふるえ電灯が明滅していた。子供は一人も来ていなかった。ただ二階で数学の授業がひっそりと行われているだけだった。  私は食堂の方で二三の同僚たちや婆やと山へ行った子供部のことを心配し合っていた。だが私の脳裡には先程起った事件のショックがやきついてどうしても離れなかった。と云っても私はその事をどうしたのか、まともに考えてみようとはしないのだった。私自身その怖ろしさにけおされていたのかも知れない。私はただ目を蔽いたかった。  その時に凄じい風が吹き附けて唸りを上げ、どーんと勝手口の扉が吹き飛ぶような音が無気味に響いた。一同はびくっとして息を殺した。近寄って行った婆やはあっと悲鳴を上げてたじろいだ。駆けて行って見れば、扉は倒れ雨と風の中に山田春雄が竦然(しょうぜん)として立っていた。折も折、稲光りがぴかぴか光ってそれは幽霊のようにおののいて見えた。 「どうしたんだ、春雄」私は彼を抱え込んではいって来た。そしてそのまま二階の自分の部屋へ上って行った。何とも云えない気持だった。ずぶ濡れになった着物を脱がし、タオルで体をふいて寝床へ横にさせた。彼の体はわなわなふるえていた。熱いお茶をやると何杯もがぶがぶ飲んだ。そこで漸く元気を取り戻して、悲しそうに私を見上げるのだった。私は何となく胸の中も打ち解けるような、ほかほか温かいしんみりとしたものを感じた。この少年は又どんなことがあって、こういう嵐の夜中をやって来たのであろう。 「病院へ行って来たのかい?」  彼は口をひくひくさせたかと思うと急にいーと引張るように泣き出した。 「莫迦だな、泣いたりして」 「違うんだよ。病院へ行きやしないよ。行きやしないよう」 「まあ、いいよ」私の声はかすれていた。「まあいいんだよ」 「うん」  彼はすぐに安心したように肯いた。そこでぽかぽか暖かそうに蒲団の中に足をのばして首をすぼめて見せた。私にはそれがこよなくいじらしいものに見えた。彼の目はきらめき、口元はにっこりと微笑を浮べたのである。すっかり私に心を許したというものであろう。私は彼の心の世界にもこういう美しいものがひそんでいるに違いないと考えた。本能的な母親に対する愛情にしろ、どうしてこの少年にだけ欠けていると考えていいのだろうか。それはただ歪められたのに過ぎないのだ。私は近所の人々からいためつけられ擯斥(ひんせき)されている一人の同族の婦を想像した。そして内地人の血と朝鮮人の血を享けた一人の少年の中における、調和されない二元的なものの分裂の悲劇を考えた。「父のもの」に対する無条件的な献身と「母のもの」に対する盲目的な背拒、その二つがいつも相剋しているのであろう。殊に身を貧苦の巷に埋めている彼であって見れば、素直に母の愛情の世界へひたり込むことをさし止められたのに違いない。彼はおおっぴらに母に抱き附くことが出来ない。だが「母のもの」に対する盲目的な背拒においても、やはり母に対する温かい息吹はひしめいていたのであろう。彼が朝鮮人を見れば殆んど衝動的に大きな声で朝鮮人朝鮮人と云わずにはおれなかった気持を、私はおぼろながらに理解出来ないでもない。だが彼は私を見た最初の瞬間から朝鮮人ではあるまいかと疑いの念を抱きながらも、始終私につきまとっていたではないか。それは確かに私への愛情であろう。「母のもの」に対する無意識ながらの懐かしさであろう。そしてそれは私を通しての母への愛の一つの歪められた表現に違いない。その実彼は母の病院へ訪ねて行くかわりに私の所へやって来たのかも知れないのだ。母を訪ねる気持と何が違うのであろう。こう考えて来ると私はたとえようもない悲しい気持になって、彼のいが栗頭を撫でてやりながら、強いて笑顔をつくり、 「母ちゃんの病院へ行こうかい?」と質ねてみた。  彼は悲しそうに首を振った。 「どうして?」  彼は答えなかった。  だんだん嵐もしずまりかけたのであろう。小雨が時々思い出したように軒をふりたたいている。私は窓を開けてそろそろ晴れ渡りそうな空を眺めた。遠い北の方の空にはちぎれ雲の合間から、二つ三つ星さえ光り出していた。 「もう晴れそうだよ、ねえ、君、これから一緒に見舞に行ってみる?」  答えがない。見れば彼は蒲団をすっぽりと被っていた。 「父ちゃんは行ったのかい」 「行くもんか」後は蒲団の中でやや反抗的に云った。 「おかしな父ちゃんだね。母ちゃんが気の毒じゃないか」 「…………」 「それなら父ちゃんの所へは帰るつもりだね。父ちゃんだってきっとうちで心配しているよ」 「…………」彼は顔を出してすねたような目附をした。「僕はここでいいよ」 「うん、そりゃ……」私はしどろもどろ仕方なさそうに云った。「ここでもいいけれど……」  丁度数学の授業がひけたとみえて、廊下がどやどやざわめき出した。暫くするとドアにノックがして李が悄然と現われたが、山田の寝ているのを見るとはっと顔をこわばらせた。私はいささかあわて気味に、外へ出て話しましょうと彼を廊下へ連れ出した。 「先生は朝鮮人呼ばわりされるのに困って」と彼は罵るように叫んだ。「あいつをいよいよ抱き込もうと云う訳ですね」 「失礼なことを云うな」私はどうしたことか、かっとなって呶鳴(どな)った。確かに私は彼の出現に戸惑いしたのであろう。 「山田はこのひどい雨の中にやって来たんです。そして帰るに帰る所がないんだ」 「誰が帰る所もないと云うのです? あの気の毒な婦人こそそうです。今の餓鬼は自分のおやじの所へ行けばいいんだ。ああ呪われろ、悪党奴!」それから急に彼はへなへなになって哀願するように啜り泣いた。「どうして先生はあの気の毒な婦に対して同情しないんです。あの可哀そうな婦のことを考えないのです……」 「どうか止めてくれ」私は頼むように云った。私の言葉はふるえていた。どうしていいのか頭がくらくらして分らなかった。 「先生……」 「止めてくれんのか!」私は突然断末魔のような叫び声を上げた。気まで狂いそうだった。  彼はよろよろと立ち去った。私は激しい格闘でもした人のようにぐったりとなって壁によりかかった。  勿論私は純情な李を理解することが出来るのだと自分に云った。過去において私自身もそういう時期をとおって来たからである。だが私はその次の瞬間、自分が現在は南(みなみ)と呼ばれていることがじーんと電鈴のように五官の中へ鳴り響いて来るのを感じた。それで私は驚いたようにいつもの様々な云いわけの理由を考え出そうとした。だがもはや駄目だった。 「偽善者奴、お前は又偽善をはろうと云うのだな」私の傍で一つの声が聞えた。「お前も今は根気が続かなくて卑屈になって来ているじゃないか」  私はびっくりし、それからさげすむように云い返した。 「卑屈になるまい、なるまいとどうして僕はいつもいきまい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んだ。それが却って卑屈の泥沼に足をつっ込み始めた証拠ではないか……」  だが私はしまいまでを云い切る勇気がなかった。今まで私は自分がすっかり大人になっていると思い込んでいた。子供のようにひがんでもいなければ、若者のように狂的に××してもいないのだと。だがやはり私はお安く卑劣を背負い込んだまま寝そべっていたのだろうか。それで今度は自分に詰め寄った。お前はあの無垢な子供たちと少しも距たりをもちたくないためだと云った。だが結局、自分をしきりに隠そうとするおでん屋に来た朝鮮人とお前は何が違うと云うのだ! そこで私は抗弁のためとでもいうように李のことをやりこめようとした。それなら一時の感傷にせよ激情にせよ「俺は朝鮮人だ、朝鮮人だ」と喚いているおでん屋の男と、貴様は一体何が違うと云うのだ。それは又自分は朝鮮人ではないと喚き立てる山田春雄の場合と本質的な所、何の相違もないではないか。私は毛色の違うトルコ人の子供でさえこちらの子供と角力をとりながら無邪気に戯れているのを見る。だがどうして朝鮮人の血を享けた春雄だけはそれが出来ないのだ? 私はその訳を余りにもよく知っている。だから私はこの地で朝鮮人であることを意識する時は、いつも武装してい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そうだ、確かに私は今自分一人の泥芝居に疲れている。  私は暫くの間そのまま茫然としていた。もう李はそこにはいなかった。私はよろめくようにして自分の部屋へ帰って来た。  部屋は薄暗かった。私は春雄の寝床の傍へ近寄って行った。その時私ははっと驚いて目を瞠(みは)った。えびのように体をちぢかめて自分の右腕を枕にし目を半ば開いたまま寝ついている山田春雄の寝姿。私は思わず口に手をあてて声をかみ殺した。 「あっ、半兵衛の子だ!」とうとう私は思い出したのだった。今まで目の前にちらつきながらどうしても思い起せなかった、半兵衛。「半兵衛の子だ!」  私は顛倒せんばかりに驚いた。あ――これは又何ということであろう。私はこういう恰好をして寝ている半兵衛をどれ程長い間見て来たのか知れない。だらしなげにぽかんとしている口や、大きな目に老人のような隈がふちをえがいている様までも、父に丸うつしではないか。その子が又そっくり同じ様子をして私の傍に寝ているのだ。実に私はその半兵衛とは二カ月余りも同じ留置場に寝起きしていた。彼のことを思うだけでも背筋には冷っこいものが走るのを感じた。それは私が一層春雄を愛しているからである。私の脳裡には一瞬間、この変質的な春雄がしまいには父のような人間になりはせぬかという怖ろしい予感が走ってぞっと身慄いした。  思えば先年の十一月のことである、私がM署の留置場で半兵衛に会ったのは。その時彼はにやにやしながら私の方へ寄りかかって来た。皺(しな)びた馬面(うまづら)に大きな目がでれりとして薄気味悪い男だった。だがおや朝鮮人だなと私は思った。 「おう! お前のシャツ貸せ!」彼は私の洋服のボタンをはずしかけた。私は幾らか興奮していたので、無造作に振りきって隅の方へ腰を下ろした。他の連中は皆何かを気味悪く期待するような目附で、私たちをかわるがわる見守った。 「野郎やりやがったな」彼は如何にも切り口上で出た。「この朝鮮人野郎、おれを見損いやがったな」  彼は腕をまくし上げた。その時廊下を歩いていた看守が格子窓から覗き込んで、 「山田、坐っておれ!」と呶鳴ったので、それを聞いて私は彼が内地人であることをはじめて知った。  彼はにたっと歯をむき出して笑うと、大人しく自分の席へもどった。そこで用もなしに上服(うわぎ)をとって外から見えないように壁にかけるとけろりとしていた。弁当の箸を折ってそれを釘のようにさし込んでいた訳である。私は思わず吹き出しそうなのをやっとこらえた。その時に彼のすぐ傍で居眠りをしている鬚(ひげ)もじゃな小男が頭を彼の方へもたせかけたと見るや、いきなり彼は荒くれた拳骨(げんこつ)を男の頭上へごつんと打ち下ろした。そしていかにも凄い権幕でにらみつける。その夕彼は私には弁当を渡さなかった。自分でがつがつかき込んで貪(むさぼ)り食べていた。私にはその瞬間の彼の様子が今にも見えるような気がする。それでいつだったか、春雄が食事をしている所を見てふと半兵衛のことを思い出しそうにさえなった程である。  彼は一人の卑怯な暴君だった。みなに恐れられながらも陰では非常に憎まれていた。彼は必要以上に看守の目を恐れているが、そのかわり新入者や弱い者に対してはひどい乱暴をしていた。中でも物凄い権幕で啖呵(たんか)を切ることは、彼の最も得意とする所に属するらしかった。「こちとらはな、これでも江戸八百八町を股にかけて歩いて来た男なんだ。余りふざけるねえ、手前のようなこそ泥とはちと訳が違おうぜ……」  留置場の様子から見れば、彼の他に相棒と思われるのも都合六七人はいた。彼の啖呵に従うとすれば、彼等は浅草を縄張りとしている高田組で、有名な俳優連を恐喝して大金をせしめたのだった。その中で自分はいかにも最猛者(もさ)のように云いふらした。だがどうやらその連中の中でも「足らず者」という意味で、半兵衛と呼び捨てにされているらしいのはすぐに分った。私は今だに彼の本名を知らない。その中に私は彼にも馴れて来たし彼の素性もほぼ理解することが出来た。それと共に私の席もだんだん彼に近づいて行った。というのは監房内では古い者程格子扉の傍へ近附くようになるからである。ついに私は半兵衛と向い合って坐るようになり、寝る時は丁度隣り合うようになった。彼は私に対してはもはや温順しくなったが、しかし一緒に寝るのは私にはひどい苦痛だった。彼の口臭も我慢ならない程臭いけれど、何より一晩中股ぐらをごしごしかいて明かすのである。自分でも梅毒だと云った。私はもうそれが頭にまで来ているのだろうと考えた。いつかの夜半彼は妙にしんみりとなって私に質ねたものである。 「君は朝鮮のどこだい?」 「北朝鮮だ」 「おらは南朝鮮で生れたぜ」彼はずるそうに私の気色を覗(うかが)うのだった。そしてひーんと打ち消すように鼻で笑ってみせた。だが私は強いて驚くような気色を見せまいとした。 「そうか」  すると彼は歯をむき出した。 「ほんとうだよ」  勿論こういう話は二人でこそこそと云いかわすのだ。 「おらあの女房も朝鮮の女だぜ」 「ほう……」私は思わず目を丸くした。  彼はいかにも小気味よさそうににやにやした。私は彼に何か訳合があるに違いないと考えた。 「朝鮮に行って貰ったのかい」 「おかしくって、面倒臭せえや。じかに洲崎の朝鮮料理屋に親方とかけ合いに行ってさ、この女をおらあの手に渡せ、でねえとこっちが承知しねえぞ、障子に火を附けてやらあとおどかしたんだ。すると野郎たち蒼くなってくれやがった訳さ」  彼はじろりと横目で私を見た。折しもさし込んで来た夜明けの月の光にその目は一層凄惨な影を宿していた。  だが翌朝はけろりとして、いつ自分がそんなことを云ったんだろうというような調子である。やはりいつものように弱い者をいじめ、新入者の弁当は取り上げた。だが私はその晩以来ますます彼のことを不審におもうようになった。それでも彼が警察の中で山田と呼ばれているからには、内地人であるに違いなかった。それでは彼の母が朝鮮人であるかも知れないと考えたが、ついぞ確かめることが出来ずに私は起訴猶予となって出て来たのである。――  そして私は今ようやく彼のことを思い出したのだった。私は何という迂闊(うかつ)さであろう。苗字の符合からしてもそれ位はとうに感附いていそうなものではないか。最初に山田春雄を見た瞬間から、私の眼の前には半兵衛の映像がかすかながらの光芒をもってちらついていた筈だった。だが私はそれが半兵衛であることに気附くことが出来なかった。或は春雄に対する愛情からして、ひそかにそれが半兵衛であることを私は怖れていたのかも知れない。 「半兵衛」私はもう一度静かに呟いた。  だが春雄はすやすやと心よい眠りにおちている。私の網膜には、 「おらあの女房も朝鮮の女だぜ」と云っていた半兵衛の卑屈な笑い顔が幾重にも浮び上って来た。するとそれがいつの間にか今度は春雄の寝姿の上にのりうつってしまった。その時かすかに春雄は呻き声を出したようである。彼は顔をひくひく痙攣させたと思うと、うーうーうなされながら寝返りをうって驚いたように目を瞠った。 「どうしたんだ、夢でもみたのかい」  私は汗だくになっている彼の首筋をふきながら訊いた。  彼は再び目をとじると譫言(うわごと)のように呟いた。 「父ちゃんが今度は僕を片附けるんだって」 四  私も一晩中うつらうつらとしてとりとめのない夢ばかりみていた。朝、目をさましてみたらもはやそこには春雄はいなかった。私は驚いたように相生病院へ行ってみればいいのだと自分に云った。その日は日曜日で春雄にも学校がない筈である。いつの間にか私はそこの玄関に立って呼鈴を鳴らしていた。丁度よく尹医師が出て来て、私を春雄の母親の病室へ連れて行きながら云った。 「何でも山田貞順という名前になっているよ。朝鮮の人じゃないんだね。言葉の調子や貞順という字づらがおかしいと思って、負傷した瞬間の模様を朝鮮語で訊いてみたが口を噤(つぐ)んで答えないんだよ。ただ倒れたのだと日本語で云うんだ」 「ううん、そうか」私はしどろもどろで云った。「傷は大丈夫かい」 「まあ、大丈夫だよ。だがどうしても顔面に刀傷の痕はつくんだろうね。全く気の毒な程ひどい傷がこめかみの所に出来るんだよ。そうれ、あそこなんだ、……山田さん、お子さんの協会の先生がいらっしゃいましたよ」  春雄はいなかった。十二畳位の部屋に寝台が五つ程交互に並んでいて、いずれにも病者が沈み込んでいた。その隅の方に彼女が横たわっていた。白い繃帯でぐるぐる巻かれた顔の中に口と鼻の所だけが少しばかり明いてみえる。彼女はじっとしたまま何も答えない。尹医師は回診のために席をはずしてくれた。私は彼女にどういうふうに話しかけたものだろうかと一寸ばかり当惑した。 「どんなにかお痛みのことでしょう。春雄君も随分心配していたようです」とつい言葉のはずみで山田のことをひっぱり出した。「実は私、春雄君の通っている協会の先生だもんだから……私、南(なん)と申します」  彼女は心なしか少しばかり体を動かしたように思われた。きっと彼女は私が朝鮮の苗字をしているので驚いたのに違いないと考えた。 「あ、あ」彼女は指先を小刻みにふるわせながら呻いた。 「春雄……春雄がほんとうに妾のことを……」 「…………」私は答えるに言葉がなかった。 「あは」彼女は感動の余り嗚咽(おえつ)した。「妾の春雄が、ほんとうに……妾を心(すん)配すると……云ったでしょうか……」  私もほろ苦い気持になった。だがいきおい春雄のことで彼女を慰めねばならなくなった。 「私は毎日春雄君と遊んでいるのです。時にはいろいろ気を落しなさるようなこともあるでしょう。だがまだほんの子供だし、その中にはきっとお母さんとしても自慢の出来るような春雄になると思うのです」私は実際にもそう考えていた。彼に今日の性格を与えたいろいろなものに思いを馳(は)せて、温かい手をさしのべ指導して行くならば、必ずや彼はだんだん深い自分の人間性に目覚めるであろうと信じた。  だが彼女は答えなかった。息を殺して私の云うことに注意を向けているばかり。私は続けた。 「始めはやはりあなたが春雄を連れて朝鮮へ帰るよりほかはないと考えました」  彼女はびくっとした。 「あなたのためにも又春雄の将来のためにもそれが一番いいと思ったのです。だが、あなたにはやはり今も半兵衛さんを大事にするような気持があるのでしょうね」 「アイゴ……何も訊かないで下さい」彼女は小さな声で哀れ深く云った。「私の主(す)人ですもの……」 「何も隠しへだてなさることはないと思います。私はかねがね半兵衛さんのこともよく知っているのです」 「あ」と彼女はさすがに驚いて声を呑んだ。彼女は全く沈没したように呻いた。「……でもあの人、妾を自由な身にしてくれました。……そして妾、朝鮮の女です……」しまいはもう咽(むせ)び声になっていた。  彼女は今もやはりこういう奴隷のような感謝の念をたよりにして生きているのだろうか、私は無道な半兵衛のことを思い出してたとえようもない愁然とした気持になった。いつか洲崎の朝鮮料理屋をおどかして連れて帰ったというのは丁度この女である筈だった。卑怯で残忍な半兵衛にしてみれば、この寄るべない朝鮮の女にいかにも目を附けて貰い受けそうな話ではないか。彼女は始めから彼のいけにえとして択(えら)ばれたのに過ぎない。あの怖ろしい薄莫迦の半兵衛に比べればこれは又何といういたいたしい婦であろう。私には彼女等夫婦の日常の生活さえ想像することが出来そうに思えた。彼女は毎日いじめられるのであろう。すってんてんに転びながら合掌して拝むのに違いない。そういう所から春雄のような異質的な子供も出来た筈であった。妾は朝鮮人でありますと彼女はいかにも悲しく云っていた。彼女の方では又もしかすれば自分が内地人と結婚していることを一種の誇りと思って、この逆境に生きてゆくせめてもの慰めとし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私は寧ろあの半兵衛に向って彼女が激しい憎悪をもっていることを期待し、そして同じ郷国から出て来た者として義憤の悦びに酔いたかった。だが私は見事に肩すかしを食わされたではないか。 「先生」 「え」 「妾、お願(ねか)いすることがあります」 「お話して下さい」 「お願(ねか)い……します。どうか妾の春雄の……相手をしないで……下さいませ」 「…………」私は黙ったままじっと彼女を見守った。彼女は今にも泣き出さんばかりの声であった。 「……春雄は……一人でもよく遊びます……」だが傷がひどくうずいて痛み出したのであろう、彼女は再び死者のようになった。だが又かすかに呻き声を出しながら「一人で……幾人の子供の……声も……真似て……にぎやかに……遊ぶのです……踊りがうまいのです。妾悲しゅうございました。どこかで見て来ては……一人で一生懸命踊ります……そして自分でも泣いています……」 「やはり朝鮮人だと云って外でいじめられるからでしょうか?」 「だが今は泣きません」彼女は力をこめて強く打消した。 「春雄は内地人テす……春雄はそう思っています……あの子は妾の子ではありません……それを……先生が邪魔するのは……妾悪いと思います……」 「私は半兵衛さんも南朝鮮で生れたというふうに聞いているのですが……」 「え……そうです……母が私のように朝鮮人でした。……だが今は……朝鮮といえば言葉だけでも……あの人はオコリます……」 「だけど春雄君は朝鮮人の私に非常になついて来ました。実は昨夜あの子は私の部屋で泊って行ったのです」 「…………」 「その中にあの子供のあなたに対する態度もだんだん変って行くだろうと思うのです」それから励ますように云い張った。「きっと近い中に春雄はあなたに対する愛情をよび返すでしょう。春雄が私になついて来たことはあながち私に対する愛情からだけではなく、実はあなたに対する愛の一つの違った表わし方だと思うのです。きっと春雄は愛情というものに餓えているのに違いありません。あなたに素直な愛情をよせることも出来なく、又あなたの愛情を純真に受けいれることの出来ない春雄でした。だがそれはだんだんとなおって行くことと思いますが……」 「そうでしょうか」彼女は寧ろ絶望的に深く溜息をついた。 「……あの子が……」  その時に戸口から一人の朝鮮服を着た老婆が転ぶようにはいって来た。私はそれとなしに、彼女が李の母であることが一目見て分った。それで私は少しばかりベッドの傍を離れて立った。老婆は貞順の無慙な姿を見附けるなり、ふーと息を吐き出して朝鮮語で慨(なげ)いた。 「何ちゅうむごい事だよ。きっとあの悪党に天罰がおちるだよ。なあ、春雄の母ちゃん。わしを分るのけえ、李チャンの母だよ。李チャンの。しっかり気をもって早く治すのでっせ、分ったけえ」  貞順は指先をふるわせて辺りをまさぐった。老婆はその手をとった。 「傷でも治ったら今度こそ見附からねえように郷里へ逃げて帰るのでっせ。いつかみてえに又戻って来るでねえだよ。何もええことああるもんでねえだろ」  貞順は呻いた。老婆は急に何か思い出したとみえ急いで風呂敷包をほどくと、夏蜜柑を二つばかり取り出した。 「夏蜜柑だよ。食べると喉の乾きが少しはなおるかも知れねえよ」そこで彼女は一生懸命になって皮をむきはじめた。 「李チャンがおばさんにやってくれと買って来たんだよ。あれも今日から免許状が下りて一人前になったちゅうて喜んでな」 「どうぞお大事にして下さい」やはり私はその場を外した方がいいと考えたので、そう云うと戸口の方へ進んで行った。その時何か春雄の母の息苦しそうな、ほそぼそした朝鮮語が聞えたので私ははっと立ち止った。彼女は老婆に向って朝鮮語で哀願するように云うのだった。 「おばさん。……妾、やはり帰りませんわ……それに妾の顔にひどい傷が出来るそうですの……そうなれば……あの人……妾を売り飛ばそうとも云えませんし……誰もこんな妾なんか買いはしませんもの……」それから痙攣でも起したように急に起き上ろうとした。 「あ!」 「お前さん、どうしたんだよ」老婆は慌てて彼女を抱えて寝床の中へ落着かせた。 「……何か……音がしたの」彼女は気でもふれたように息を切らした。「おばさん……春雄が来るのです。そうれ妾を訪ねて来るのです……」それから急に金切り声で叫び出した。 「おばさん出て行って下さい。……隠れて下さい!」 「誰も来やしねえだよ、誰も見えやしねえじゃねえか」老婆は悲しそうに泣き声をしぼった。  私は忍び足で戸口を出て来たがどうしたのか汗がびっしょりだった。その時私は誰かの小さな影が廊下のかどを慌てて横ぎったように思った。誰かははっきりと見分けがつかなかったが、おや、ほんとうに春雄ではなかったのかという考えがさっとひらめいた。私は急いでその曲り角まで行くと不審そうに辺りをながめた。果して私の推測は間違いではなかった。二階へ上る階段の裏側の薄暗い隅の方に、山田春雄が射すくめられたように身を隠したまま目を光らしていたのである。 「どうしたんだね」私は近寄って行った。  慌てて彼は首を振った。そしておびえたようにますます隅の方へ尻ごみした。何か隠し物でもあるのか、右の手を後の方へぎゅっと廻して放さなかった。今に悲鳴でも出しそうだった。 「母ちゃんの見舞に来たんだね」私は喉元が熱くなるのを感じながら云った。非常に感動したのだった。「母ちゃんは今も君が見たいと云っていたよ」  彼は一層強く首を振った。私は不満な気持になって彼の体を引き寄せた。彼は後手を放さなかった。それは何か白い小さな紙包を握りつぶして一生懸命に隠そうとしている。瞬間春雄は母のために何か持って来たのだなと私は思った。自分の母を見舞いに来ていながら人の前を憚(はばか)ったり、知られまいとしたりせねばならないのは、何と悲しいことであろう。私は寧ろ少年のそういう姿が何とも云えない程いじらしいものに思えた。私は云った。 「きっと母ちゃんが喜ぶよ」  その時突然彼は私の体に頭を埋めながら啜り泣きをはじめた。 「莫迦だな」  彼はますます激しく泣いた。その時どうしたはずみか白いもみくしゃになった小さな紙包がずり落ちた。私はそれを見て少からず異様な気持になった。きざみ煙草の紙包である。それは私が今朝起きた時に、机の上や抽斗(ひきだし)の中を随分さがしたがとうとう見附からなかった「はぎ」の古い包である。 「なあんだ、それで先生をこわがっているのか。ただ先生にそうことわって持って来ればよかったんだよ。さあ、これからそんなことは気を附ければいいんだ。それ、それ、母ちゃんが待っているよ、持って行っておやり、左側の三番目の部屋だよ」それから彼を元気附けるように肩をたたいてやった。「何だ、山田らしくもない。これからな、先生は協会へ帰って待っているよ。君が来たら昨日約束したように二人で上野へ遊びに行こうね」  彼はわーと泣き出した。私の心もゆらいでいた。だが病院の中にいるのは彼をますます窮屈にさせるだろうと思ったので、彼に病室を教えてから私は急いでそこから出て来た。そして何故彼が私の所から煙草を持って来たのだろうかといろいろと考えをめぐらしてみた。彼の母が吸うのだろうとしか想像がつかなかった。何という思わぬだしぬけたことをする少年であろう、私にはその時にも半兵衛が監房の中で上服を壁にかけてにたにたしていたことが思い出された。 五  一時間ばかりして山田春雄は再び私の前に姿を現わした。だが彼は指を口に咥(くわ)えたまま足元ばかり眺めていた。何だかすっきりした安堵もあるのだろうか。口元が今にも綻(ほころ)びそうにさえ思われた。何か素敵な事をした子供が大人の前でてれているようでもある。今まで彼の面上にこれ程素直な子供らしい影が現われたことがあろうか。彼はもうすっかり私を信じているのに違いなかった。だが私もひそやかに微笑を浮べるだけで何も訊かなかった。「さあ、出掛けようか」と帽子をとり乍(なが)ら一言云っただけである。  前夜の嵐の後をうけてうすら寒い位の午後だった。広小路で市電を下りた時は丁度日曜で押し合いへし合いの雑沓ぶりである。いつの間にか呑まれるように松坂屋の入口まで来たので、私は別に用事はないものの彼の手を引いてはいって行った。中も非常に込んでいた。春雄がエスカレーターに乗ろうというので二人で並んで乗った時は、さすがに彼は幸福そうで晴々としていた。私もみちあふれるような歓びを全身に感じた。少年春雄は今凡(すべ)ての人々の中にいるんだという考えが、私にはどうしても不思議な程に嬉しくてならなかった。彼は春雄であると同時に今は私の傍に立ち又人々の中にもいるのだ。二人は相並んで三階まで運んでもらった。そこでも人込みの間を縫いながら私達は五階か六階かの所まで上って行くと、食堂の一隅に向い合って腰を掛けたのである。だがその実二人は必要以上の言葉はいくらも交さなかった。彼はアイスクリームとカレライスをとり私はソーダ水を飲んだ。 「うまいかい」 「うん」彼は皿の上に顔をつけたまま私を上目で見た。「デパートのカレライスはうまいんだなあ」  そこからエレベーターで下りて来ると、一階の特売場で彼のアンダーシャツを一円で買った。彼はにこにこしながら包の紐を長くぶら下げて出て来た。  公園も珍しい人出であった。私達は石段を上って大通りに出た。こんもりとした木立は午後の淡い光をうけてものうそうに静かにゆらいでいた。空はどんよりと濁り風は折々高い木の梢に雨のような響きをたてている。だだっ広い大通りにはお上りさん風情の婦や男たちがぞろぞろと歩いていた。少年はいつの間にか新しいアンダーシャツに着替えて、ぼろぼろの上服を脇にかかえたまま、時々口笛などを吹き鳴らした。私は何とも云えない程彼がしおらしくなって来た。だが私はあまり彼に言葉をかけることが出来なかった。突然彼が私の袖を引きながら云った。 「先生云うのかい」 「何をだい」  見ると彼の目はいつものように猜疑と反逆の光をともしていた。私ははっと気がついた。煙草の一件を云うのだった。 「云うもんか、誰にも云いやしないよ、可哀そうな母ちゃんのために持って行ったんだもの、今日は実に君が善い行いをしたと先生は思っている位だ。母ちゃんは煙草が好きなんだろう?」 「好いていやしないよ」と彼は妙にしょげて渋々(しぶしぶ)呟いた。「母ちゃんは血が出たら……いつもきざみ煙草を傷にはっていたんだもの、僕ちゃんと知っていたんだもの」  成程と私は思わず息をのんだが、どうしたことか驚きの色さえ顔にあらわすことは出来なかった。私の目先が急にぼうと霞んで来たような気持だった。×××××××××血を流しては、彼女はいたましくもきざみ煙草をつばで練っては、幾つも幾つも傷口にはりつけていたのに違いなかった。丁度彼女の郷里の百姓達がそんな風にして傷を治そうとするように。 「そうか」  私たちはいつの間にか交番に近い所まで来ていた。その傍に頑丈そうな体重計がおいてあった。私はそれを見ると、とりつくろうように振り向いて淋しく笑いかけながら計ってみないかと質ねた。すると彼は悦んで飛びのった。余りに激しい力を一時に受けたので針がてんてこ舞いをし始めた。案外重いようだった。その時春雄は何かに驚いたとみえ、私の方へ飛びかかりながら小さく指で大通りをさしてみせた。何だろうと思って彼のさしている方を振り向いてみると、丁度一台の自動車が私たちの傍へすうっと横着けになるのだった。 「おや」と思ってみると運転手台で李が新しい帽子の庇(ひさし)に一寸ばかり指を上げてにこっと挨拶をしてみせた。私も嬉しくなって彼の方へ近寄って行った。 「お目出度う、先程病院で君のお母さんが云ってましたよ。うまくいったそうですね」  春雄は別に悪びれずに私の傍へよりそうて来た。それを見て李は工合悪そうに目を逸(そ)らした。 「え、今先私も病院へ行って来たんですよ」それなら彼はそこで春雄にも会った筈だった。黒い美しい目をしばたたきながら、さすがに彼は悦びをつつみ隠せずに珍しくはしゃいだ。 「僕もやっと一人前ですよ、随分これはいい車でしょう。三七年型だけれどわりに新しいし、エンジンもしっかりしていますよ」  そこで鷹揚にセルモーターを踏んだ。私の目にはありきたりのフォード型でそれ程いいようにも思われなかったが、「成程いい車ですね」と答えた。「今日はこの春雄君と一緒に遊びに来たんですよ」そして少年を引き立てるように続けた。「今も僕は気が附かなかったが春雄君が教えてくれたんでね」 「どうです、ひとつ乗ってみませんか。動物園にでも行くんでしょう」彼は戸を開けてしきりにすすめ出した。  二人は仕方なしに手をとって乗り込んだ。動物園の入口まではいくらもなかった。 「どうですか乗り心地がいいでしょう」彼は私たちを下ろしながら云った。この純真な若者には今日という日がたのしくてならないのであろう。「ほかのお客さんもみんなそう云ってくれましたよ」 「そう、新しくて気持がいいですね」私は正直に云った。  そこで彼は満足して見事にハンドルを操り切り返しをやると、先刻のように指を一寸立てて別れを告げ、ぶーぶー警笛を鳴らして人を散らしながら河豚(ふぐ)のように走って行った。春雄はじっと立ったまま羨望に満ちたまなざしで車を見送っていた。私は何という恵まれたうれしい日だろうと考えた。 「李君は立派な運転手になったね。君は大きくなったら何になる積りだい」私は春雄を顧みながら楽しそうに質ねた。 「僕、舞踊家になるんだよ」彼はいきなり明るい声で叫んだ。 「ほう」私は驚いて彼を見つめた。一時に彼の体が光彩を放ち出した様に思われた。「舞踊家になるのか」ふとこれは実に素晴しい舞踊家になれるかも知れないぞと考えた。 「そうか」 「うん、僕、踊るのが好きだよ。だけど明るいところでは駄目だよ。舞踊は電気を消して暗い所でやるもんさ。先生は嫌いかい?」 「ううん、それはきっと素晴しいことだろうな。そう見れば君は体も実にいいぜ」私は夢想するように云った。 「先生も踊りがとても好きなんだ……」  私の目の前には、この異常な生れをもつ、傷めつけられ歪められて来た一人の少年が、舞台の上で脚を張り腕をのばして、渡り合う赤や青の様々な光を追いながら、光の中に踊りまくる像がちらついて見えた。私の全身は瑞々(みずみず)しい歓びと感激にあふれて来るのを感じた。彼も満足そうに微笑を浮べながら私を見守った。 「先生だって踊りを作ったことがある位だよ。先生も暗い所で踊るのが好きなんだ。そうだ。これからは先生と一緒に踊りを稽古しよう。うまくなったらもっと偉い先生の所へ連れて行こうな」私は何も作りごとを並べているのではなかった。私も一時は舞踊家になろうと思って創作舞踊を試みた覚えさえあった。 「うん」彼の目は青い星のように輝いていた。 (そうだ、近い中に協会の傍のアパートにでも移って行こう。そこで一先ず二人きりになるんだ)と私は自分に云い聞かせるのだった。彼がどうこれから豹変(ひょうへん)するかは知らない。寧ろ又私を立ち所に裏切るには違いない。だが頑なにこちこちといじけ固っていた気持を、ほんの少しでもほぐしかけて来たこの機会を、私は逃してはならないと思ったのだ。  どうしたものかその時二人は浮かれ浮かれて老木の間をぬけて弁天様の傍を通っていた。そこにもここにも昨夜の嵐の跡が残って、折れた枝が落ちかかったり雨に洗われた地面に所々わくら葉が落ちたりしていた。鳩の群が弁天様の屋根や五重の塔のまわりをにぎやかに飛び交っていた。灯籠の傍に出ると下の方に茂みの合間を通して不忍池が見渡される。それは鏡をのべたように夕陽に照り返り時々ぎらぎらと金色に光ってみえた。五つ六つボートが浮んでいた。池に渡した石橋のてすりには多勢の人々がもたれて水面をながめている。何んだか軽い霧が立ちこめはじめているように思われた。もうだんだんと夕暮になって来るのであろう。ゆるやかにそれが池をつたわってこちらの方へ次第にひろがって来るように感ぜられる。それにつれて二人の心はますます清澄なものにしずまって行くのであった。 「動物園というのがここまで来てしまったね」 「だけど僕、ボートに乗りたいな」彼ははにかみながら云った。 「そうか、じゃ下りて行こう」  そこからは長い段々が続いていた。私と春雄はそれを一つ一つ下りて行った。彼は一段下の方を歩いて、恰も老人でも連れているように用心深そうに私の手を引きずって行くのだった。だが彼は中段まで下りて来ると急に立ち止って、私の体にぴったりよりついて私を見上げながら甘えるようにこう云った。 「先生、僕は先生の名前を知っているよう」 「そうか」私はてれかくしに笑って見せた。「云ってごらん」 「南(なん)先生でしょう?」そう云ったかと思うと彼は私の手に自分の脇にかかえていた上服を投げ附けて、嬉々としながら石段をひとり駆け下りて行くのだった。  私もほっと救われたような軽い足取りで倒れそうになりながら、たたたっと彼の後を追うて下りて行った。   底本:「光の中に 金史良作品集」講談社文芸文庫、講談社    1999(平成11)年4月10日第1刷発行 底本の親本:「金史良全集 」河出書房新社    1973(昭和48)年2月28日 初出:「文芸首都」    1939(昭和14)年10月号 ※底本の注によれば、9文字欠落した「×××××××××血を流しては、」は、初出では「半兵衛に打たれて血を流しては、」となっています。 入力:大野晋 校正:大野裕 2001年1月1日公開 2012年12月7日修正 青空文庫作成ファイル: このファイルは、インターネットの図書館、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で作られました。入力、校正、制作にあたったのは、ボランティアの皆さんです。    
12    살아있는 총갈 댓글:  조회:1827  추천:0  2013-01-23
                                                                                                                                                                                             마키무라 고(일본)                                                                                                                                                      번역:김정웅(연변대학) 수수밭을 가르면서 총칼의 그림자가 줄줄이 이어진다 총갈이여 너는 나의 심장에 이상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피와 같은 저녘노을에 물들어 너희가 묵묵히 전진할 때 너의 그림자는 인간의 형태를 잃고 너의 모습은 배낭에 가려져 너는 사상이 없는 단지 살아있는 총칼일 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전진하고 있는 총칼을 보았다 대렬의 선두에 선 일장기, 득의 양양하여 말 탄 장군들, 창백한 얼굴에 피곤에 쌓인 병사들의 무리- 아, 이 집단이 모습을 나타내는 곳엔, 중국과 일본의 압제자들이 손을 잡고, 희생의 선혈은 수물두개성의 땅을 물들였다 (하지만 경험은 중국의 민중을 일깨워주었다!) 보라, 미련한 군기에 대하여 주먹을 흔드는 어린이들을, 얼굴을 돌리고 욕하는 여자들을, 말없이 반항의 시선을 불태우는 남다들을! 대렬은 지금 봉천의 성문을 통과한다 -들으라, 자본가의 리권을 대표하는 한 무리들의 환성을, 군악대가 연주하는 승리의 곡을! 이놈들, 자본가와 장군은 획실히 이겼다! –하지만 우리들은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로동자 농민에게 있어서 그것이 무슨 승리이겠는가 우리들의 입술은 환호의 소리를 지르기에는 너무나도 말라있다 우리들의 가슴은 개선가를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힘들다 그 놈들이 이기던지 지전지, 중국과 일본의 형제들 머리우에는 탄압의 채찍이 한층 더 높게 울리고 폭력과 학대는 더욱 광란한다   나는 생각한다, 총검이 차갑게 번뜩이는 밤거리에 반전의 전단지를 붙이며 돌아다니는 로동자를 광고패 뒤에 몸을 감추고 지붕과 담장을 가만히 넘어 대담하게 적의 눈을 피하여 그 남자는 작업을 계속한다 그가 마지막 한 장을 남겼을 때, 보초병의 날카로운 고함이 그의 귀청을 찧는다 그는 서둘러 삐라를 붙이고 재빠르게 옆 골목에 몸을 날린다 그때 그는 배후에서 가까워지는 구둣발 소리를 듣고 앞에서 번뜩이는 총검을 보았다 그는 땅 우에 넘어져 연이어 찔러대는 총검의 밑에서, 썰물이 빠지는 것 같이 전신에서 빠져나가는 힘을 느꼈다 놀란 눈길을 보초병이 든 燈에 던지고 갈기갈기 찢어서 던져 버려진 흙투성이가 된 전단을 바라모며 손을 간신히 올려 입술을 훔치며 잃어져 가고 있는 감각과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끝까지 지켜낸 당의 이름을 뛰염뛰염 웨쳤다 중, 국, 공, 산, 당, 만…… -가을에 봉천의 거리에서는 총칼이 한 동지를 빼앗아 갔다 그러나 다음날 저녘 무렵, 나는 돌아가는 로동자들 모두의 손에 쥐여져 있는 삐라의 한쪽 끝을 보았다. 전선주에 창고 옆에 바람에 펄럭이는 전단을 보았다. 동지여 안심하라, 그대가 목숨 걸고 붙인 삐라의 흔적은 지금도 생생하다. 남겨진 동지들은 그 우에 또다시 계속하여 전단을 붙일 것이다 자작나무와 적양(赤楊)의 혼합림이 무성한 수풀 속에 총칼의 그림자는 오늘도 계속하여 간다 너의 력사는 류혈로 물들여져 있다. 여전에 가메도(亀戸)의 수림에 스미타(隅田)의 해안에 또 조선에 대만에 만주에 너는 동지의 목을 찌르고 심장을 도려내 쌓이여 있는 시체 위를 피에 취하여 돌진했다 살아있는 총칼, 아 집을 떠나서 들판에서 잠든 사이, 바람은 고향소식을 너에게 전하지 않는 것인가 사랑하는 너의 아버지, 너의 어머니, 너의 아내, 너의 자식, 그리고 많은 너의 형제자매들이, 토지에서 쫓겨나고 직장을 거절당하고, 기아에 시들려,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먼 북쪽 하늘에 던지는 저주의 눈빛은, 조금도 너희들의 꿈에는 나타나지 않는가 태워서 던져 버려지는 출입금지라는 패쪽, 해고에 대한 대중들의 항의, 온 시가지를 흔드는 대파업의 웨침. 몰락을 가속화하는 데모. 휘몰아치는 탄압의 폭풍 속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너희들, 우리들의 선봉대, 아, 일본공산당! -그것도 너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살아있는 총칼, 너는 목적도 모르고 리유도 없이 너와 같은 타국의 살아있는 총칼을 살상하고 너희가 죽음으로서 지키지 않으면 않될 선봉대의 가슴에, 너의 총검을 찌를 때 배후에서 울려 퍼지는 비웃음소리가 귓전에 들리지 않는가   갑자기 연회색의 지평에 둔직한 소리가 작렬한다. 모래는 무너져 내리고 그림자는 비뚤어져가고 총갈은 피를 토하면서 땅 우에 쓰러진다. 지금 한 사람의 “충성스러운 신민”이 여기에서 미련한 생애를 마쳤다 하지만 우리들은 기대한다, 다른 많은 너의 친구들이 이윽고 총부리를 뒤에 겨누고, 검을 뒤로 향하여 자신들의 해방에 정확한 길을 선택하여, 살아있는 총칼을 하는 것을 그만둘 것이다.   일어나라 만주의 농민과 로동자들이여 그대들의 분노를 몽고의 폭풍에 단련하고 안산의 용광로에 녹이라! 아, 닥쳐오는 혁명의 노도 저 멀리 아무르강 강뚝을 치는 파도의 울림은 흥안령을 넘고, 송화강을 지나, 할빈의 사원을 흔들고, 간도의 마을마다에 전하여, 널리 료녕의 공사를 흔들어놓고, 일본주둔군의 진영에 쳐들어간다   아, 국경을 넘어 팔을 걸고서 혁명적 요새를 구축할 그날은 언제. 2013년1월23일 번역 1932년2월「대중의 벗」에서 발취                                                          生ける銃架 高粱(こうりゃん)の畠を分けて銃架の影はきょうも続いて行く 銃架よ、お前はおれの心臓に異様な戦慄を与える――血のような夕日を浴びてお前が黙々  と進むとき お前の影は人間の形を失い、お前の姿は背嚢に隠れ お前は思想を持たぬただ一個の生ける銃架だ きのうもきょうもおれは進んで行く銃架を見た 列の先頭に立つ日章旗、揚々として肥馬に跨る将軍たち、色蒼ざめ疲れ果てた兵士の群― おおこの集団が姿を現わすところ、中国と日本の圧制者が手を握り、犠牲の鮮血は二十二  省の土を染めた (だが経験は中国の民衆を教えた!) 見よ、愚劣な軍旗に対して拳を振る子どもたちを、顔をそむけて罵る女たちを、無言のまま  反抗の視線を灼きつける男たちを! 列はいま奉天の城門をくぐる ――聞け、資本家の利権屋の一隊のあげる歓呼の声を、軍楽隊の吹奏する勝利の曲を! やつら、資本家と将軍は確かに勝った! ――だがおれたち、どん底に喘ぐ労働者農民に  とってそれが何の勝利であろう おれたちの唇は歓呼の声を叫ぶにはあまりにも干乾びている おれたちの胸は凱歌を挙げるには苦し過ぎる やつらが勝とうと負けようと、中国と日本の兄弟の上に弾圧の鞭は層一層高く鳴り 暴虐の軛(くびき)は烈しく喰い入るのだ おれは思い出す、銃剣の冷たく光る夜の街に 反戦の伝単を貼り廻して行った労働者を 招牌(しょうへい)の蔭に身を潜め 軒下を忍び塀を攀じ 大胆に敵の目を掠めてその男は作業を続けた 彼が最後の一枚に取り掛かった時、 歩哨の鋭い叫びが彼の耳を衝いた 彼は大急ぎでビラを貼り 素早く横手の小路に身を躍らせた その時彼は背後にせまる靴音を聞き ゆくてにきらめく銃剣を見た 彼は地上に倒れ、次々に突き刺される銃剣の下に、潮の退くように全身から脱けて行く力  を感じ おとろえた眼を歩哨の掲げた燈に投げ 裂き捨てられた泥に吸われた伝単を見詰め 手をかすかに挙げ、唇を慄わし 失われゆく感覚と懸命に闘いながら、死に至るまで、守り通した党の名をとぎれとぎれに  呼んだ 中、国、共、産、党、万…… ――秋。奉天の街上で銃架はひとりの同志を奪い去った。 しかし次の日の暮れ方、おれは帰りゆく労働者のすべての拳の中に握りしめられたビラの  端を見た、電柱の前に、倉庫の横に、風にはためく伝単を見た。同志よ安んぜよ、君が  死を以て貼りつけたビラの跡はまだ生々しい。 残された同志はその上へ次々の伝単を貼りめぐらすであろう 白樺と赤楊の重なり合う森のしげみに銃架の影はきょうも続いて行く お前の歴史は流血に彩られて来た。 かつて亀戸の森に隅田の岸に、また朝鮮に台湾に満州に お前は同志の咽を突き胸をえぐり 堆い死屍の上を血に酔い痴れて突き進んだ 生ける銃架 おお、家を離れて野に結ぶ眠りの裡に、風は故郷のたよりをお前に伝えないのか 愛するお前の父、お前の母、お前の妻、お前の子、そして多くのお前の兄妹たちが、土地  を逐われ職場を拒まれ、飢えにやつれ、歯を喰い縛り、拳を握って、遠く北の空に投げる  憎しみの眼は、かすかにもお前の夢には通わぬのか 焼きすてられる立禁の札、馘首に対する大衆抗議、全市を揺がすゼネストの叫び。 雪崩れを打つ反戦のデモ。吹きまく弾圧の嵐の中に生命を賭して闘うお前たち、おれたち  の前衛、ああ日本共産党! ――それもお前の眼には映らぬのか! 生ける銃架、お前が目的を知らず理由を問わず お前と同じ他の国の生ける銃架を射殺し お前が死を以て衛らねばならぬ前衛の胸に、お前の銃剣を突き刺す時 背後にひびく哄笑がお前の耳を打たないのか 突如鉛色の地平に鈍い音が炸裂する。 砂は崩れ、影は歪み、銃架は血を噴いて地上に倒れる。 今ひとりの「忠良な臣民」が、ここに愚劣な生涯を終えた だがおれは期待する、他の多くのお前の仲間は、やがて銃を後ろに狙い、剣を後ろに構え 自らの解放に正しい途を撰び、生ける銃架けたる事を止めるであろう 起て満州の農民労働者 お前の怒りを蒙古の嵐に鍛え、鞍山の溶鉱炉に溶かし込め! おお、迫りくる革命の怒濤 遠くアムールの岸をかむ波の響きは、興安嶺を越え、松花江を渡り、ハルピンの寺院を揺  すり、間島(かんとう)の村々に伝わり、あまねく遼寧の公司を揺るがし、日本駐屯軍の陣  営に迫る おお、国境を越えて腕を結び、革命の防塞を築くその日はいつ。 1932年2月「大衆の友」  
11    槙村浩と彼の抒情詩―「間島パルチザンの歌」 댓글:  조회:2728  추천:1  2012-09-30
槙村浩と彼の抒情詩―「間島パルチザンの歌」   故 鄭判龍(元延辺大学の副学長) 翻訳:金正雄 延辺大学 外国語学院   1      何年か前に我が延辺大学を訪問した日本のある学者は私に槙村浩について話しながら「…おそらく、彼は東満一帯で活動した抗日パルチザンに関する詩を一番最初に書いている方でしょう」と話をした。  日本侵略者が東北地方を侵略した後、我々の東北地域、特にわれらが住んでいる延辺の地では日本侵略者に反対する抗日闘争が継続的に行われてきていたし、また、このような闘争を反映する文学作品も少なくない。ところが、当時の抗日闘争は極めて困難に満ちた条件の下で行われたし、また、いろいろな歴史的な原因により、その時創作された作品が今日までに保存されているのは極めて少ない。それ故に、その時の状況のほとんどは、歌謡或いは革命物語、それにその当時抗日パルチザンに参加してた抗日闘士達の回想に頼るしかないのが現状である。  それで、私は抗日パルチザン運動が展開されていた当時に、それもまた一般の人ではなく日本人の詩人が簡単な歌謡とか物語ではない叙情叙事詩を書いたことに対して非常に大きい興味を持っていた。その後、私は槙村浩の叙情叙事詩―「間島パルチザンの歌」原文を手に入れようといろいろな工夫をしたが全部だめだった。  ところが、昨年の冬に偶然なチャンスで日本高知県解放運動旧友会にて編集出版した『槙村浩文集』一冊をようやく手に入れることができた。私はこの本を通じて槙村浩は26歳の若さでこの世去ってしまった若き日本革命家であり、「間島パルチザンの歌」は彼が1932年3月13日に書いたもので日本プロレタリア作家同盟機関紙である「プロレタリア文学」(臨時増刊)に初めて発表された一編の叙情叙事詩であること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た。  高知県解放運動旧友会の代表である岡本正光先生は『槙村浩文集』の前書きの中で「1983年9月3日は土佐が生み出した反帝反戦詩人として広く知られている槙村浩の逝去45周年の日である。この日を目の前にして、我々は26歳の若き年で世を去ったこの同志の革命的戦闘的な文学と彼の人生を再び回想すること」でこの文集を編集するようになったと書いている。  彼の話の通りに槙村浩は日本の優秀な革命詩人の一人であり、我が中国東北地方と延辺地域で抗日パルチザン闘争が高潮に入った30年代に抗日パルチザン戦士達を声高く歌った日本の唯一の革命詩人である。  槙村浩の本名は吉田豊道という。彼は1912年6月1日高知市の清貧な家庭で生まれた。彼は6歳の時に父親を失い、看護婦だった母親の手の下で育てられた。幼い時から彼の非凡な記憶力は周りの人を驚かせたというが、その後彼がしたことを振り返ってみれば生れ付き非凡な才能を持っていた一人であることには間違いなさそうだ。小学校4年生の時からその当時日本の有名な詩人たちの作品を読んでおり、一部、西洋の古典文学作品も読み始めたようだ。彼が小学校時代に書いた童謡と童話からそのような痕跡を少なからず見ることができる。彼は中学校に通っているときから中国の唐宋時期の古文詩を愛読し、またマルクス主義の古典を研究し始めた。  当時、日本の男子高校では現役の士官が来て学生たちの軍事訓練を担当していたが、槙村浩は他の一部革命的な学生たちと一緒にこれに反対する運動をして退学処分を受けるようになる。彼は日本の中学校においてのファシズム教育に嫌悪感を感じて、むしろ退学させられたことに対して幸いだと思っていたが、母親の切実な頼みと彼の才能を惜しむ先生方々の斡旋で岡山に行って学業を続けるようになった。1931年3月に槙村浩は優秀な成績で岡山中学校を卒業して故郷に戻ってきた。  この時、日本軍国主義を反対する荒波は高知県にも影響を及ぼしていた。1927年から高知県では日本共産党と日本共産主義青年会それに労働組合などの高知地方委員会が成立され、1931年には日本プロレタリア文化同盟・作家同盟の高知地方組織まで設立されるようになった。  中学校を卒業して家に戻ってきた槙村浩は、文章を書いたり翻訳のような仕事に就こうと思っていた。しかし、当時厳しい経済危機におかれていた日本で安定した仕事を手にすることはなかなか難しいことであった。1931年7月、彼はプロレタリア作家同盟に加入し、この同盟の高知支部設立ための準備事業に積極的に参加した。それに、彼は作家同盟に参加したその時から自分のペンネームを槙村浩とし、同年の11月に「大衆の友」の創刊号に槙村浩という名前で詩―「生ける銃架―満州駐屯軍兵士達へー」を発表した。 槙村浩はこの当時、文学活動だけではなく、日本共産党の地下組織が指導する日本労働組合全国協議協会の活動にも積極的に参加した。そうして、1931年12月下旬には日本共産主義青年同盟の指導メンバーの一人となり、高知県地方委員会の宣伝教育方面の責任者として任命された。  槙村浩は小学校の頃から文章を書き始めたが、文学刊行物に正式に登載されたのは1931年に書いた「生ける銃架」である。この詩は、日本帝国主義がいわゆる「9.18」満州事変という名目の下で中国に対する公然とした侵略戦争を発動してわずか一か月も過ぎてない時点で、日本帝国主義のこのような強盗的な行為を批判するために書いたものである。彼はこの詩の中で、中国の革命的な労働者たちが日本帝国主義の侵略戦争に反対して戦う英雄的な姿を描きながら、日本軍兵士たちは帝国主義たちの生ける銃架にならず、銃口を日本軍国主義者たちにつきつけるべきであると叫んでいる。  その翌年の1932年の初めころ、もと高知に駐屯していた日本軍歩兵第44連隊が上海戦線へ向かうという噂があった。槙村浩は共産主義青年同盟のほかのメンバーと一緒に第44連隊兵士たちに反戦思想を宣伝する目的でたくさんの反戦ビラを作って兵士たちに配った。ある時は、槙村浩などの青年たちは反戦ビラを持って警戒が厳しい連隊の兵営までにはいってビラを配布し、彼らのこのような行為は日本共産党の表彰を受けたという。槙村浩をはじめとする青年たちの努力により、日本歩兵第44連隊の一部日本兵士たちは上海戦線で中国19路軍愛国兵士たちと戦ういことを断ったという。この消息を聞いた槙村浩は、さっそく「出征」、「白色テロに倒された44連隊の革命的な兵士達へ」など二首の詩を書いて、中国と戦うことを断った一部の日本兵士たちの反抗闘争をほめたたえた。  1932年3月13日、槙村浩は中国東北地方で烈火のように燃え上がる抗日パルチザンの消息を聞いて、彼らを褒め称える抒情叙事詩「間島パルチザンの歌」を完成した。この詩には槙村浩の一番重要な特色の一つであるプロレタリア(無産階級)国際主義思想が充分に反映されており、また、彼はこの詩によって日本の優秀な革命的詩人という栄誉を貰うようになった。  1932年初、槙村浩は日本共産党に加入した。槙村浩は日本共産党の加入後にも相変わらず共産党青年組織と作家同盟で働いた。1932年4月21日、日本プロレタリア文化同盟を中心とする左翼文化人たちを弾圧するために、日本軍警らは全国的規模でいわゆる第三次総検挙をやり始めた。このために高知県の党員、共産主義青年団、共同組合のメンバー、プロレタリア文化同盟のメンバーの大部分がこの日の夜に日本軍警に逮捕された。槙村浩もその翌日の早朝、高知市内の自宅で逮捕され、高丘町警察署に連行された。  槙村浩は日本軍警の苛酷な拷問にも屈することなく革命家としての意思を曲げることはしなかった。一緒に逮捕された少なくない「同志」は日本軍警の拷問に耐えられず、いわゆる思想「転向」声明書にサインをしたが、槙村浩をはじめとする何人かの真の共産党員たちは「死ぬことがあっても自分の主義は変えることはできない」と再三に言明した。  苛酷な拷問により、槙村浩の健康は深刻に損なわれた。彼は食道狭窄症により一時期食事も口ですることができず、また後期には精神分裂症にもかかったそうだ。しかし、彼の革命精神は少しの動揺もなかった。1933年4月28日、日本政府は槙村浩をいわゆる秘法的な左翼文化組織の責任者であり、文章を持って「日本帝国を冒涜した罪」で三年間の有期判決を下すと宣告した。 槙村浩は獄中生活の中でも作詞に精進した。「思想転向声明」に同意し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彼には鉛筆や紙などを与えかった。槙村浩は詩を考えては出来上がった詩を何回か読むことでその詩を暗唱したという。そうして、1935年6月に出獄後それを原稿用紙に書き直して出版したそうだ。  獄中で書いた詩の中には、献詩ー「青春」、タタル海峡以南である北海道の監獄に監禁されている革命同志を懐かしんで書いた詩ー「タタル海峡」、獄中で国外労働階級の革命活動を声援する詩―「獄中でドイツの革命同志を偲んで歌った歌」、「中国の詩人たちに」、「獄中でコミュンテルン戦士たちを偲ぶ」などがある。タイトル自体が説明しているように、獄中で書いた彼の詩は、全てが無産階級の国際主義と同志愛、それに敵の如何なる強圧にも屈しない革命節義を守ろうとする彼の精神で一貫している。  それに彼は監獄の中で、政治犯達を感化させるために監房ごとに配置された仏教経典と儒教道徳著書をすべて読んだという。出獄後の彼は、これを基にして『アジア的な生産に基づいた政治・経済・文化の批判』いう著作を一編書いたというが、この本の中に出てくる数多い仏教経典と中国古典の引用文は、すべて監獄の中で覚えたものを書き写したものだという。  1935年6月、出獄した槙村浩は主に家の中で療養しながら、詩を書いたり著述活動に従事したという。その当時、高知県では弾圧された革命組織を再建する事業が猛烈に進められており、また新しい人民前線運動が展開されている時期であった。しかし、槙村浩の同志たちは彼の健康を心配して危険な地下活動には彼を参加させなかったという。しかし、槙村浩の健康は日増しに悪化した。1938年9月、不撓不屈の革命家でありプロレタリア詩人であった槙村浩は、26歳の若さにもかかわらず自宅で自分の戦闘的な生涯に終わりを告げた。槙村浩の遺骸は蛭ヶ谷にある彼の父のお墓の傍に埋蔵され、彼の戦友達は彼のお墓の前に「反戦革命的詩人槙村浩之墓」と刻み込まれた石碑を立てた。   2   「間島パルチザンの歌」は、中国東北地方で抗日烽火が激しく燃え上がった1932年に書かれた作品である。「9・18事変」以後、烈火のように燃え上がった抗日武装闘争は日本帝国主義者達に危機感を持たせており、彼らの「御用新聞」は毎日のように抗日パルチザンを冒涜する各種の「新聞報道」を載せた。たとえば、1930年6月2日の高知で出版された『土陽新聞』は、「間島不法朝鮮人蜂起、学校を燃やし電線を切断、爆弾を無差別に投げつけ放火、彼らの戦時焦土化計画を暴露」などのタイトルで間島地区で起こった人民たちの抗日武装闘争状況を歪曲するニュースを報道していた。彼らはこのように間島地区のパルチザンを「強盗」、「殺人犯」だと冒涜しているが、日本の進歩的な青年たちはこれを信じないばかりではなく、むしろこのような歪曲された報道を通じて間島パルチザンの英雄的な闘争を理解するようになった。  1932年1月、日本共産主義青年同盟に参加した熱血青年である槙村浩は、間島パルチザン闘争の真実を日本の国民に伝え、また間島パルチザンに自分の敬意を送るために抒情詩「間島パルチザンの歌」を書くことにした。槙村浩がこの詩を書くためには、まず間島パルチザン闘争の真実とそこの地理環境を理解する必要性を感じた。それで、彼は毎日のように近所の図書館に通いながら関連資料を集め、また当時高知滞在中の朝鮮からの留学生と朝鮮人労働者を訪問して朝鮮人たちの生活習慣を把握したという。  「間島パルチザンの歌」は、1932年3月1日に発行された日本プロレタリア作家同盟機関紙である『プロレタリア文学』臨時増刊に発表された。この詩は発表されてすぐ当時日本の進歩的な文芸界と青年たちの歓迎を受け、数多い群衆大会で朗読された。数年後この詩はブルガリア語で翻訳され、ヨーロッパ無産階級にも紹介されたというが、未だこれを証明できるような証拠は見付かっていない。 それに、槙村浩のこの戦闘的な詩が戦っている間島パルチザンの戦士たちに伝わったかどうかはわからない。日本帝国主義者たちの進歩的な文化に対する弾圧が深刻になるにつれ、この詩も禁止されたのは間違いない。  この詩は、30年代初めごろに延辺地域で結成された抗日ゲリラ根拠地を守る一人の戦士の戦闘過程を回想する形で書かれている。詩の主人公は、朝鮮半島北部にある咸鏡道の貧しい家庭で生まれて幼い時から「チゲを負ひ、枯葉を集めに姉と登った裏山の楢林よ」のように苦しい肉体仕事をせざるを得なかった。その後、ソウルから里帰りした崔先生という若者から「10月社会主義革命」に関する物語を聞くことになり、次第に革命的に覚醒するようになる。1919年、朝鮮半島で凄まじい勢いの「3・1」反日民族闘争が勃発すると彼もやはり階級的に覚醒した大衆と一緒に反日闘争の隊伍に加入した。しかし、この闘争は日本軍隊と警察の残虐な弾圧により失敗に終わってしまう。その後、この詩の主人公をはじめとする12人の少年は、やむを得ない状況で頭満江を超えて間島
10    효성스러운 딸 댓글:  조회:2181  추천:0  2012-02-18
   ―일본니이가타껜의민화―   번역;김정웅   옜날어떤곳에가난한어머니와딸이살고있었다고한다.   딸은아직나이도차지않은소녀이지만몸이허약하신어머님을대신해다른사람의밭의기음을매거나잔신부름을하여삯돈을받아서는약이랑먹을것들을사면서그날그날을살고있었다고한다.  그기특한효성이원근에소문이나서마을의령주님의귀에도들어갔다고한다.   령주는   고하인에게부탁했다고한다.  하인은인츰그마을에가서여러가지방도로살실의여하를물었다고한다.   그랬더니그평판은대단한것으로서누구나할것없이입을모아그여자애를칭찬했다고한다.  하인은자기의일인듯이기뻐서   라고말하면서그모녀가살고있는집에갔다고한다.  그리하여장지문틈사이로슬쩍집안상황을살펴볼라니마침저녘밥을먹고있는중이였다.   잘살펴보니어머니는거무스름한이상한밥을먹고있고딸은어찌된영문인지새하얀이밥을먹고있었다.   라고생각하면서계속하여보고있노라니여자애는밥을먹고난후에식탁도치우지않고어머니가아직국물을마이고있는데뻘써잠자리에들어쿨쿨잠들어버렸다.  하인은이여자아이가평판에짝지는효성스럽지못한아이구나.말이아니구나라고화를내면서고을에돌아갔다고한다.   그리하여군수에게   라고말을올렸다.  고말하였다고한다.   이튿날여자애는고을에불리워왔다고한다. 군수는직접묻기를   라고물었다고한다. 그러자여자애는   고대답했다고한다.               라고말하고서는눈물을흘리셨다고한다.   라고말하면서포상을내렸다고한다.  그상금으로어머니와딸은한평생밥을먹고살수있게끔되였다고한다.   이것으로한시름놓인다. 2010년5월6일
9    나그네와 호랑이 그리고 여우 댓글:  조회:3422  추천:1  2011-11-18
나그네와 호랑이 그리고 여우 ―일본의야마가타껜설화― 번역; 연변대학 외국어학원 일본어학부 김정웅    옜날에 있은 일이라고 한다.   어느 여름날의 땡볕이 내리쬐는 때에 나그네가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우리에 갇혀있는 호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모르는 척하고 지나갈려고 하니,  애처로운 목소리로   라고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나그네는      라고 말하자, 범이 말하기를        라고 말하므로 범의 말을 믿고서 우리의 자물쇠를 열고 범을 내 놓았다.    그렇게 계속 배를 곯던 호랑이가 우리안에서 나오자,  나그네를 잡아먹고파서 참을수 없게 되였다고 한다.       나그네는 생각하고 나서,    라고 말하고 걷기 시작했다한다.    처음 만난것은 소였다고 한다.  소에게 물어서 대답을 기다린즉,  소가 말하기를     라고 말했다고한다.  범은 기세사납게 나그네에게 덮쳐들려고 했다고 한다. 라고 말하고 또 조금 걸었더니 땀에 흠뻑 젖어 길옆의 큰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했다고 한다. 거기서 큰 나무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 자 큰나무는,         고 말했다고 한다.  나그네는,   고 말하고서는 다시 걸어 갔더니 이번엔 여우와 만났다고 한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나서 대답을 물은즉,  여우는 열심히 생각하고 나 서, 라고 말하므로 나그네는 범과 여우를 데리고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범은 또 다시 우리속에 되들어가게 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자물쇠를 잠그었다고 한다. >라고 여우가 말하므로 나그네는 겨우 안심 하고 길을 걸어갔다고 한다.  
8    동북아세아의 발전을 향하여 댓글:  조회:2047  추천:0  2011-11-18
동북아세아의 발전을 향하여   후쿠이현립대학(福井県立大学) 학장(学長): 시모타니 마사히로(下谷 政弘)        오늘 연변대학에서 주최하는 국제학술포럼에 초청받게 된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학자 여러분들과 만나게 된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연변대학은 작년에 개교60주년을 맞이한 유서 깊은 대학이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귀대학을 방문합니다. 규모가 대단히 크고 또 멋진 분위기를 가진 캠퍼스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연변대학은 긴 력사와 휘황한 전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특색은 그 지리적인 요인으로 인한, 중조한일4개국에 이르는 다국간 학술교류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수 있다는 점이 아니겠는가고 생각하여 봅니다. 실제로 이번과 같은 형식의 국제포럼을 주도할수 있는 것은, 중국이 넓다고는 하지만 연변대학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할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연변대학이 동북아세아서국간의 학술교류를 추진하기 위하여 힘써 온 노력과 실적에 깊은 경의를 표시합니다. 그럼과 동시에 앞으로도 한층 더 주도적인 역할을 발휘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중국정부는 국가적 차원의 개발계획으로, 이지역을 포함한 장춘으로 부터 도문에 이르는 지역을 개발개방의 ‘선도구’로 지정하였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지역이 금후 국가계획에 의한 발전과 더불어 동북아세아 전체의 안정과 발전에 다시 없는 챤스를 제공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본국제학술포럼에서 각국의 연구자 여러분들간에 활발한 의론이 오갈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도1990년대에는 ‘도문강지역개발계획’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이 지역이 장래  ‘동북아세아발전의 삼감지대’로서의 중핵이 될것이라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당시의 동북아세아에는 이와 같은 다국간에 걸치는 대규모의 개발계획을 실현할수 있을 정도의 상호간 신뢰관계가 충분히 온양되여 있지 못한 상황이였습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동북아세아에는 아직 엄혹한 정치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야 말로 이번과 같은 국제적인 학술교류를 통하여 상호간의 리해와 우정을 보다 깊이 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더 강조할것이 필요한것이 아닐가요?!  미력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을 뛰여넘기 위한 노력을 한보한보 진척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동아세아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세계경제의 중심은 동아세아 속에서도 특히는 동북아세아에로 이동되고 있으며 동북아세아의 존재감이 급속하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본경제는 그 속에서 지금까지의 경험과 실적들을 배경으로 하여 독자적인 역활을 하지않으면 않된다고 생각합니다. 동북아세아에는 아직도 정치적인 현안이 남아 있지만 이번과 같은 국제적인 학술교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것이야 말로 동북아세아 여러 나라들지간의 상호리해를 보다 넓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우기는 연구자들간의 돈독한 우정과 인연을 쌓아가는 것에 의하여, 곤난을 극복하여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지혜가 생겨나오는것이 아니겠는가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본 도문강학술포럼이 동북아세아 전체의 한층 더 되는 발전에 있어서, 또 동북아세아 여러 나라들 지간의 신뢰관계를 만들어 감에 있어서, 알 찬 포럼이 될것을 마음속으로 빕니다.        마지막으로 이 국제학술포럼을 준비하고 운영하여 오신 조직위원회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되는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번역: 김저웅(연변대학 외국어학원 일본어학부) 2010년11월27일 [원문] 北東アジアの発展に向けて                             福井県立大学                          学長 下谷政弘      本日は、延辺大学の主催による国際学術フォーラムにお招きいただき、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また、多数の研究者の皆様方に会うことができまして、大変光栄に思っています。  延辺大学は、昨年に開学60周年を迎えた由緒ある大学だと聞いております。私は今回、初めて貴学を訪問しましたが、大変に広大で、またすばらしい雰囲気のキャンパスを拝見して、大いに感銘を受けました。  延辺大学は長い歴史と輝かしい伝統を誇っています。また、大きな特色は、その地理的な要因から、中・朝・韓・日4カ国にまたがる学術交流のイニシアティブを存分に発揮することができる点にあると考えています。実際、今回のような形での国際学術フォーラムを主導できるのは、中国広しといえども延辺大学を置いて他にはないだろうと思います。私は、これまで延辺大学が北東アジア諸国間における学術交流の推進に向けて積み上げてこられた努力と実績に深い敬意を表します。それとともに、これからも一層主導的な役割を果たしていかれることを強く期待しております。  幸いにも最近、中国政府は、国家レベルでの開発計画として、この地域を含めた長春から図們に至る地域を、開発開放の「先導区」に指定したと聞いております。この地域が今後とも国家計画に沿って発展することは、おそらく北東アジア全体の安定と発展にとってまたとない機会を提供することになるものと思われます。その意味でも、この国際学術フォーラムにおいて、各国の研究者の皆様方の間で活発な議論が交わされることを期待いたします。 ところで、日本でも、1990年代には「図們江地域開発計画」への関心が高まりました。この地域が将来的に北東アジアの「成長の三角地帯」の核になるのではないかと、多くの期待を集めてきました。しかし、残念ながら、その当時の北東アジアでは、このような多国間にまたがる大規模な開発計画を実現できるほどに、相互の信頼関係は十分には醸成されていませんでした。今日でも、北東アジアにおいてはまだまだ厳しい政治状況が続いています。しかしながら、そのような状況であるからこそ、今回のような国際的な学術交流を通じて、相互の理解と友情を深める努力を一層強めていくことが必要ではないでしょうか。たとえ微力ではあっても、今は厳しい状況を乗り越える努力を一歩一歩進めていく以外に途はないものと考えております。  この21世紀は「東アジアの時代」であるといわれています。実際、世界経済の中心は、東アジアのなかでもとくに北東アジアへと移りつつあり、北東アジアの存在感が急速に高まりつつあります。日本経済は、そのなかでこれまでの経験と実績とを踏まえて、独自の役割を果たしていかねばならないと考えています。北東アジアにはまだまだ政治的な懸案が残っていますが、今回のような国際的な学術交流を続けていくことこそが、北東アジア諸国間の相互理解をより深めるもっとも確実な途だと思います。さらに、研究者間での友情の絆を強めることによって、困難を乗り越えていくための新たな知恵が生まれてくるのではないかと期待しております。  今回の図們江学術フォーラムが、北東アジア全体の一層の発展にとって、また北東アジア諸国相互の信頼関係の醸成にとって、実り多いものになることを心より願っております。  最後になりましたが、この国際学術フォーラムを準備・運営してこられました組織委員会の皆様方に、心より感謝申し上げます。 翻訳:延辺大学 外国語学院 日本語学部 金正雄
7    일본의 고대도시와 동아세아 교류 댓글:  조회:2131  추천:0  2011-11-18
일본의 고대도시와 동아세아 교류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우노다카오 번역:김정웅 1 머리말   일본열도에 있어서 동아세아 여러 지역과의 문물교류는 구석기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빈번하게 진행되어 왔고 그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되어 왔다. 문명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도시건설에 관해서도 같은 배경 속에서 추이했다.   도시의 정의는 여러 가지 있지만 5~10헥타르 이상의 규모, 밀집한 거주 와 계획적인 배치, 해자(垓字)와 성벽과 같은 도시의 내외를 구분 짓는 시설의 존재 등을 지표라고 할 때 , 일본렬도에는 야요이(弥生)시대의 환호집락(環濠集落)에 고대도시의 단서가 있으며 후지하라꾜(藤原京)·헤이죠꾜(平城京)·헤이안꾜(平安京)라고 하는 일본율령국가의 수도가 그 완성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일본열도의 고대도시는 연속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고 야요이(弥生)시대의 환호집락(環濠集落)이 한번 두절 된 다음 부활하는 과정을 경과하였다. 이 현상도 동아세아 교류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2 환호집락(環濠集落)의 형성과 쇠태   일본열도의 야요이시대 초기, 규슈(九州)북부에서 환호집락(環濠集落)의 건설이 시작되고 신속하게 일본서부와 일본중부에 퍼져나갔다. 후쿠오카(福岡)현의 이타츠키유적(板付遺跡)을 비롯하는 야요이환호집락(弥生環濠集落)의 해자(垓字)는 지형에 맞추었기 때문에 고정된 형식이 없고 동시대의 중국의 성시에서 보여지는 판축(版築)에 이용한 성벽축조기술이 없었다.   야요이환호집락(弥生環濠集落)의 먼 기원은 중국섬서성강새(姜塞)유적과 반파(半坡)유적과 같은 신석기시대전반기의 계보를 이어, 직접적으로는 동북아세아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립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특히는 한국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검단리유적과 같은 환호집락의 직접적인 영향 밑에서 성립한 것이라고 보인다.   야요이환호집락(弥生環濠集落)은 규모가 크고 다중의 해자(垓字)를 가지고 있거나 지금까지 조선반도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특색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환호집락이 조선반도에서도 발견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하남성정주상성(河南省鄭州商城)을 비롯하여 전국시대의 성시에 이르기까지 외성과 내성 혹은 대성과 소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있고, 조선반도를 통하여 야요이환호집락의 다중환호(다중해자)설계와 어떠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야요이시대의 환호집락은 야요이시대를 계속하여 존재했지만 야요이후기에는 수가 줄어 야요이시대말기에는 거의 멸종했다. 그 결과, 내성·소성에 상당하는 작은 구화(区画)가 거관(居館)으로 독립하고 외성과 대성의 거주자는 공간적으로 분리되여 분산적으로 살게 되었다.   이것은 야요이시대의 전란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이 만지만, 본격적인 환호집락은 최초로 건설되고 그 밀집 지대이던 규슈(九州)북부의 후쿠오카(福岡)평원에 있어서 가장 빨리 환호집락이 쇠퇴했다는 것에 주목하여 두고 싶다. 후쿠오카(福岡)평원에서는 기원1세기를 중심으로 하여 전한경(前漢鏡)을 수입할 즈음에는 벌써 환호주락이 없어졌다. 그것을 대신하여 후쿠오카평원에 범위가 넓게 직선도로가 건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는 중국정사(한서)에 왜인이 파견한 사절이 처음으로 기록된 때이며 그 대부분은 규슈북부의 유력자가 사절을 파견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그 경에 왜가 100여개 국가로 나뉘어 통합하는 과정이었고 평화로운 시대였다고 생각하기에는 힘들다.   기원전1세기에 왜인이 사절을 파견한 전한(前漢)의 장안성(長安城)을 보면 그것이 전국시대까지의 성시와 크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전한의 장안성은 대규모이지만 그 대다수가 궁전지구였다. 그리고 종전의 외성·대성에 거주하고 있던 상공업자를 비롯한 일반민중은 주로 능읍(陵邑)등에 분산 거주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장안성에 거주하는 관중평원(関中平野)에는 장안과 마찬가지로 직선도로가 설계·건설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당시의 일본열도에 있어서 가장 고도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던 후쿠오카평원에 노예제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나라들은 전한제국(前漢帝国)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들의 지배영역에서 재현할려고 했던것이 형태가 불정형적인 해자를 가진 환호집락을 버린 유력한 배경이었다고 추정하여 두고 싶다. 환호집락의 쇠퇴경향은 이러한 한제국 도성 정보의 전파와 채용과정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중국에서는 삼국시대이후 이방(里坊)을 가진 도성이 부활하지만 일본에서는 고분(古墳)시대를 통하여 서력6세기까지 궁전·거관을 독립시켜 건설하는 방식이 계속되었다. 이 시대는 중국주변의 여러 세력이 강장 독자적인 특색이 있는 경영을 한 시대이며 왜도 그 일례로 될것이다. 3 고대도성의 건설과 동아세아교류 일본열도에서는 서력7세기말에 이르러 본격적인 도성건설이 개시되었지만, 거기에는 동아세아교류 혹은 강대화한 수당제국을 축으로 하는 국제적인 긴장관계라는 배경이 존재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때까지의 일본열도의 유력자의 지배거점은 호족(豪族)의 거점이고, 그 정점에 대왕의 궁전이 있다. 그리고 대왕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궁전을 건설하는 것이 기본이었다(역대의 천궁). 이러한 존재방식을 일조일석에 고쳐서 도성을 건설하는 것은 당시의 지배층에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 였고 비조(飛鳥)시대(서력6세기말~7세기)가 견수사(遣隋使)파견을 계기로 하는 중요한 준비기간이였다.   비조시대의 최대의 변혁은 일시적인 오오사카·난파관(難波宮)에로의 이전을 예외로 하여, 궁전을 나라현(奈良県)남부·비조의 작은 공간에 고정한 것에 있다. 그 중요한 계기는 서력588년에 백제·고구려와의 관계에 있어서 가능하게 된 비조사(飛鳥寺)의 건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는 원래부터 인도·중국을 경유하여 동북아세아에 전파된 것이지만, 그 사회적인 위치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던 것 같다. 대당제국에 있어서는 불교가 중시되었던 시기도 있었는가하면 불교를 페기한 시기도 있었던 것에 비하여, 일본율령국가에서는 대개 일관하게 불교는 중요하게 여겨왔다. 또 발견된 사원과 사당의 수도 천개에 가깝고 국토의 크기에 비교하여 비상히 많은 수가 운영되었다. 이 것의 한가지 원인으로서, 비조사 건립이 율법국가건설의 기점의 하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조사는 백제 도래인 기술자가 주도하여 건설되었지만, 그 방위는 정방위이였을 가능성이 높고, 일본에서 최초로 되는 천문관측에 의한 정방위 사당 건설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비조지역에는 이전부터 사행(斜行)하는 토지분할법이 있었지만, 7세기전반에는 정방위로 토지를 분할하는 궁전·사원을 정연히 배치했다. 이 것은 비조에 멈추지 않고 나라분지전체를 종단·횡단하는 정방위의 직선도로건설에 이어지고 그 후 도시건설의 기준선으로 되었다.   690년에 착공하여 694년에 천도한 후지하라꾜(藤原京)는, 일본의 처음으로 되는 본격적인 도성이다. 후지하라꾜(藤原京)에 대한 조사가 친전된 결과, 과거의 복원안이 부정되였으며, 그것은 헤이죠꾜·헤이안꾜를 초과하는 크기의 정방형이며, 동서·남북 각각 아홉 갈래의 대로로 10×10의 지구로 분할하여 중앙에 궁을 배치하고 있다.   후지하라꾜는 당나라의 장안성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그리고 동아세아 율령국가는 도성을 건설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하지만, 후지하라꾜와 같은 설계를 하는 것은 그 일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일본과 당나라·신라는 군사적인 대립상태에 있고, 견당사의 파견이 중단되여 있던 시기에 해당한다. 그 때문에 장안성의 정보를 얻을 수 없었고, 중국의 고전인 ‘주례(周礼)’에 그려져 있는 이상의 도시를 기준으로 설계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후지하라꾜는 일본이 당과 신라의 연합군에 의해 백촌강(白村江)전투에서 패한 후, 내란을 거쳐 정치권력의 통일이 실현되는 중에 건설한 것이다. 그것은 동아세아 여러 세력이 수당제국에 대항하여 가기 위하여서는 종래의 사회체제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율령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한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나는 당시 장안성의 정보가 결핍한 것이 아니라, 당의 책봉체제 밖에 있는 나라소서 독자의 국가건설을 목표로 한, 하나의 상징인 의미로서 후지하라꾜를 설계·시공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6    日本の古代都市と東アジア交流 댓글:  조회:2140  추천:0  2011-11-18
  日本の古代都市と東アジア交流   国際日本文化研究センター・宇野隆夫   1 はじめに  日本列島において,東アジア諸地域との文物交流は,旧石器時代から現代に至るまで盛んであり,その社会発展の原動力となってきた。文明の形成において重要な都市建設についても,同様の背景の中で推移した。  都市の定義は色々あるが,5〜10ヘクタール以上の規模,密集した居住とその計画的配置,濠や城壁など都市の内と外を画する施設の存在,などを指標とすると,日本列島では弥生時代の環濠集落に古代都市の端緒があり,藤原京・平城京・平安京という日本律令国家の首都がその完成形態であると考えることができる。  この日本列島の古代都市は連続的に発展したものではなく,弥生時代の環濠集落が一度途絶えてから復活するという過程をへた。この現象も東アジア交流に根ざしたものであることを述べたい。   2 弥生環濠集落の成立と衰退  日本列島では弥生時代の初め(紀元前10世紀前後)に,北部九州で環濠集落の建設が始まり,速やかに西日本,中部日本に広まっていった。福岡県板付遺跡をはじめとする弥生環濠集落の濠は地形に合わせて不定形であり,同時代の中国の城市にみる版築による城壁築造の技術はない。  弥生環濠集落の遠い起源は,中国陝西省姜塞遺跡・半坡遺跡や山東省城頭山遺跡など新石器時代前半期のものの系譜をひき,直接的には東北アジアからの影響を受けて成立したものであると推定できる。とりわけ韓国慶尚南道蔚山市検丹里遺跡のような環濠集落の直接的な影響の下で成立したとみられる。  弥生環濠集落は規模が大きく,多重の濠をもつものがあるなど,今のところ朝鮮半島ではみつかっていない特色をみることができる。しかしいずれそのような環濠集落が朝鮮半島でも発見される可能性が高いであろう。中国では河南省鄭州商城をはじめとして戦国時代の城市に至るまで,外城と内城あるいは大城と小城からなるものがあり,弥生環濠集落の多重環濠のレイアウトとなんらかの,おそらくは朝鮮半島を介しての関係があった可能性がある。  弥生時代環濠集落は,弥生時代を通じて存在したが,弥生後期には数が少なくなり弥生時代の終わり頃(西暦3世紀頃)にほとんどが廃絶した。その結果,内城・小城に相当する小さな区画が居館として独立し,外城・大城の居住者は空間的に分離されて分散的に暮らすようになった。  このことは弥生時代の戦乱と結びつけて理解されることが多いが,本格的な環濠集落を最初に築き,またその密集地帯であった北部九州の福岡平野において,最も早く環濠集落が衰退したことに注目しておきたい。福岡平野では紀元前1世紀を中心とする前漢鏡を舶載する頃,いち早く環濠集落を営まなくなった。それに変わって福岡平野に広く直線道が建設された可能性がある。  この頃は中国正史(漢書)に倭人の遣使が初めて記録される頃であり,その多くは北部九州の有力者が遣使したものと推定できる。またこの頃は倭が百余国に別れて統合過程にあり平和な時代であったとは考えにくい。  紀元前1世紀に倭人が遣使した前漢長安城をみると,それが戦国時代までの城市と大きく異なることが分かる。前漢長安城は大規模ではあるが,その大多数が宮殿地区であった。そして従来は外城・大城に居住しいていた商工業者をはじめとする一般民衆は,主に陵邑などに分散居住したと考えられる。そして長安城が所在する関中平野には長安城と一体的に直線道路が設計・施行されていたと考えられる。  このようにみるなら,当時の日本列島において最も高度な社会を形成していた福岡平野の奴国を中心とする国々は,前漢帝国の都城建設の原理をよく理解し,それを自らの支配領域において再現しようとしたことが,不定形な濠をもつ環濠集落を捨てた有力な背景であったと推定しておきたい。環濠集落の衰退傾向は,このような漢帝国の都城の情報の伝搬・採用過程を示している可能性が高い。  中国では,三国時代以後,里坊をもつ都城が復活していくが,日本では古墳時代を通じて西暦6世紀まで宮殿・居館を独立させて建設する方式が続いた。この時代は中国周辺の諸勢力が最も独自色のある営みをした時代であり,倭もその一例になるであろう。   3 古代都城の建設と東アジア交流  日本列島では,西暦7世紀末に至って本格的な都城建設を開始したが,そこに東アジア交流,あるいは強大化した隋唐帝国を軸とする国際的な緊張関係という背景が存在したことは間違いない。  それまでの日本列島の有力者の支配拠点は豪族の居館であり,その頂点に大王の宮殿があった。そして大王が代替わりする毎に新しい宮殿を建設することが基本であった(歴代遷宮)。このようなあり方を一朝一夕に改めて都城を建設することは当時の支配層にとっては難しいことであり,飛鳥時代(西暦6世紀期末〜7世紀)が,遣隋使派遣を契機とする重要な準備期間であった。  飛鳥時代の最大の変革は,一時的な大阪・難波宮への移転を例外として,宮殿を奈良県南部・飛鳥の小空間に固定したことにある。その重要な契機は西暦588年に百済・高句麗との関係によって可能となった飛鳥寺の建設に求められるであろう。仏教は,もとよりインド・中国をへて東北アジアに広まったものであるが,その社会的に位置には大きな違いが存在したようである。唐帝国においては仏教が重視された時期もあれば廃仏に時期もあったことに比べて,日本律令国家ではほぼ一貫して仏教は重要であった。また発見された寺院・堂の数も千に近く,国土の広さに比較して非常に多くの数が営まれた。このことの一因に,飛鳥寺建立が律令国家建設の起点の一つであったことがあると思われる。  飛鳥寺は,百済渡来の技術者が主導して建設されたが,その方位は正方位であった可能性が高く,日本で最初の天文観測による正方位の地割の施行がなされたと考えられる。飛鳥地域には従来,斜行する地割があったが,7世紀前半には正方位の地割がなされて宮殿・寺院を整然と配置した。このことは飛鳥にとどまらず,奈良盆地全体を縦断・横断する正方位の直線道路建設につらなり,後に都城建設の基準線となった。  690年に着工して694年に遷都した藤原京は,日本の本格的な都城として最初のものであった。藤原京は調査が進展した結果,過去の復元案が否定され,平城京・平安京をしのぐ大きさの正方形であり,東西・南北各9条の大路で10×10の地区に区画しその中央に宮を配置している。  藤原京は,唐長安城とは非常に異なるものである。そして東アジアの律令国家は都城を建設するという点においては共通していたが,藤原京と同じレイアウトをとるものは,一例も存在しない。当時,日本と唐・新羅は軍事的な対立状態にあり,遣唐使の派遣が中断していた時期に当たる。そのため長安城の情報を得ることができず,中国の古典である『周礼』に描かれた理想の都市に準じて設計したとする説が有力である。  藤原京は,日本が唐・新羅に白村江で破れた後,内乱をへて政治権力の統一が実現される中で建設したものである。それは東アジアの諸勢力が隋唐帝国に対抗していくためには,従来の社会体制では不可能であることを自覚して律令国家の建設を目指したことと深く関わっていた。私は,当時,長安城の情報が乏しかったのではなく,唐の冊封体制の外にあって,独自の国家建設を目指した一つの象徴として藤原京を設計・施工したものと推定している。  西暦710年に遷都した平城京は,遣唐使派遣の復活を契機としたものであり,明確な平城京型の都城として建設した。宮を京の北端におくことをはじめ,唐長安城と平城京の共通点は多く,渤海上京龍泉府との共通点も多い。同時に,平城京は唐長安城の単なる縮小版ではなく,全体の形,羅城,条坊の数,宮の建物配置原理など,相違点も数多く存在した。おそらくこれらの相違点は,日本律令が唐律令に変更を加えていることと同様に,意図したものであり,冊封と東夷の中華帝国建設との微妙な位置にあった日本律令国家の独自性の表れであったと推察している。  4 結 び  以上,日本の弥生環濠集落と古代都城について,東アジア交流に焦点をあてて,その推移を考えた。そしてそのいずれも東北アジアあるいは中国王朝との関わりが重要であったと考えられる。  この中で,弥生環濠集落の盛衰が東アジア交流を背景とし,それほど明確な個性を発揮しなかったのに対して,古代都城は律令国家の形成という共通する社会基盤を形成しながら,それぞれの個性をより強く発揮したと考えた。  日本の弥生時代は国家形成過程の初期段階であり,国際情報・文物や漢帝国の力を背景とすることが非常に重要であった。これに対して,日本古墳時代や朝鮮三国時代は,中国周辺地域での国家形成の歩みが早まった時代であり,最も個性的な政治中心を作り競合していたと考えられる。古代律令国家の段階に至ると,諸勢力は古代国家形成の頂点をむかえると同時に,強大な隋唐帝国と対峙することとなった。この中で律令制度を採用し都城を建設したが,それぞれの古代国家の独自性が否定されることはなく,所々において個性を発揮したことを考古資料にみることができると思う。   参考文献 宇野隆夫2006「中国城市の発展過程と日本の都市形成」『東アジアの交流と地域諸相』思文閣出版,pp.53-67。 井上和人2008「日本古代都城造営の史的意義-東アジア世界の歴史潮流の中で-」『古代東アジア交流の総合的研究』国際日本文化研究センター。  
5    정판룡 선생을 그리면서 댓글:  조회:2831  추천:0  2011-11-12
정판룡 선생을 그리면서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일본 와세다대학교 명예교수) 번역:김정웅      정판룡 선생이 돌아가신지 벌써 10년이 된다고 생각하니 세월의 무정함을 알겠다. 정판룡 선생도 가시고 권철 선생도 가셨다. 이젠 나 혼자만 남았다.        정판룡 선생과 처음 만난 것은 1985년의 일이다. 당시 연변에 있은 외국인은 가가노와 미란이라고 하는 두 외국인 전문가와 우리들 부부 밖에 없었다. 와세다대학의 해외연구원이라는 신분으로 연변에 갔으니 전문가도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변에 1년 간 체류하는 동안 정판룡 선생은 우리 부부를 뜨겁게 맞아주고 대해주었다.   당시 연변은 아직 건설 중에 있었으므로 대학의 교직원들은 촘촘히 처마를 잇댄 단층집에서 살았고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비만 오면 장화가 없이는 그야말로 촌보난행이었다. 우리는 남몰래 “흙탕길(おしるこ道路)”했다.   1985년 우리가 연변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유수천발전소의 땜이 무너져 한 달 동안이나 상수도(上水道)가 끊어져 물을 공급하지 못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4시 경에 트랙터로 싣고 오는 물탱크로부터 물 한 통씩 받아가지고 하루를 지내야 하였다. 물 긷는 행렬 중에 정판룡 선생의 큰 음성도 섞여 있었다. 대학의 교장이 일반 서민들과 함께 줄을 서서 물을 공급 받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중국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큰 감동을 받았다.   1985년 5월 연변대학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40년간 방치되어 있던 윤동주의 묘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4,5년 후 정판룡 선생과 함께 윤동주의 묘소를 다시 찾았을 때, 정판룡 선생은 무덤 위에 자란 풀을 베고 삽으로 무덤에 흙을 올렸다. 그 때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삽질을 하던 정판룡 선생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지프 두 대를 나누어 타고 갔었는데 제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한 대가 덜컥 고장이 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지프 한 대에 아홉이 합승(合乘)하여 연길시내까지 돌아왔던 일도 지금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선생은 짬만 나면 우리의 거처를 찾아주었다. 한 시간쯤 지나면 느닷없이 선생의 손이 떨렸다. 문지방에 써서 붙인 “금연(禁煙)”이란 표식을 의식하고 담배를 참았을 것이다. 실은 연변 사람들이 지독하게 담배를 피우는 솜씨에 우리는 질려있었던 것이다. 술도, 담배도 모르는 내가 정판룡 선생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1985년 일 년간 연변대학의 신세를 진 후 우리는 해마다 연변대학을 찾았다. 1986년도 8~9월, 1987년도 8~9월, 1988년도 8~9월, 1989년도 9~10월, 1991년도 7~8월, 거의 해마다 연변대학을 찾았다. 1989년은 “천안문사건”직후였다. 연변대학 숙소에 머물고 있었는데 연속 이틀 밤이나 공안경찰들이 들이닥쳐 “검사”를 했다. 우리가 수상한 인간으로 보였을 것이다. 훗날 정판룡 선생을 만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선생은 호방하게 웃으면서 천안문사건 당시 북경에 가서 학생들을 데리고 돌아오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희들은 조선족이다. 한 사람도 죽어서는 안 된다.  조선족은 전국에 고작 200만, 연변에 70만 밖에 없다. 한 사람이라도 죽어봐라, 조선족의 장래가 어떻게 되는가? 연변에 돌아가자.”라고 말해서 한 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고 연변에 데리고 돌아왔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목숨을 걸고 사변에 대처하고 있는데 외국에서 와가지고 이틀 밤 정도 자지 못한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는가 하고 말하는 것 같아 낯이 뜨거웠다.   정판룡 선생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01년의 여름이다. 연변대학부속병원에 입원했는데 이미 위독한 상태였다. 단 둘이만 있을 때 선생은 소리를 내지 않고 울었다.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 선생의 눈물을 본 것은 그 때 처음이었다. 늘 호방하게 웃던 분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연변이 잘 되고 제자들이 무럭무럭 자라 큰 그릇이 되는 것을 보고 정판룡 선생은 지금 하늘나라에서도 껄껄껄 호방하게 웃고 계실 것이다. - 2011년 9월 27일 (일본말 원문)   鄭判龍先生をしのんで  大村益夫   鄭判龍先生がなくなられてもう10年になると思うと感無量です。鄭判龍先生が逝き、権哲先生が逝き、わたしひとり取り残されてしまいました。わたしが初めて鄭判龍先生にお会いしたのは1985年でした。当時、延辺大にいた外国人は、ガガーノ、ミランのふたりの専家と、わたしたち夫婦しかいませんでした。早稲田大学在外研究員の身分で、専家でもないのに、一年間滞在したわたしたちを、鄭判龍先生は暖かく迎えてくれました。 当時は延辺もまだ建設中で大学の教職員住宅区は平屋がならび、道は未舗装で、雨が降ったら長靴をはかないと歩けないほどでした。わたし達はひそかに「おしるこ道路」と呼んでいました。 1985年、わたしたちが延辺に着いてまもなく楡樹川発電所のダムが崩れ一ヶ月に渡って断水したことがありました。わたしたちは朝4時にやってくる耕運機にのせられたタンクからバケツ一杯の水をもらって一日をすごす日々を送っていました。行列の中に鄭判龍校長の大きな声もまじっていました。一般庶民も大学の総長もいっしょにならんで水をもらう姿に、中国の未来像を見てわたしは感動しました。 1985年5月、延辺大の人たちの助けを借りて、40年間放置されていた尹東柱の墓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ました。それから4,5日後、鄭判龍先生を交えて墓参りに行ったとき、墓の草むしりをしたり、スコップで墓の土を盛り上げていた鄭校長の姿を忘れることはできません。ジープ2台に分乗していき、墓前で法事を済ませての帰り道、一台が故障して、ジープ一台に9人が乗って延吉市内に帰ってきたのも、いま思えば楽しい思い出です。 仕事に暇ができると、先生はわたし達の部屋をちょくちょく訪れてくれました。一時間ほどすると先生の手が震えてきます。ドアに張られた『禁煙』の張り紙を気にされたのでしょう。実は、わたし達は延辺の人たちのヘビースモーカーぶりにまいっていたのです。酒もタバコもやらないわたしは、鄭判龍先生の目にどう映ったのでしょうか。 1985年から一年間、延辺大でお世話になって、それからは毎年のように延辺大を訪れました。86年8・9月、87年8・9月、88年8・9月、89年9~10月、91年7・8月と毎年のように延辺大を訪れています。 89年のときは天安門事件のすぐ後でした。延辺大の宿舎に泊まっていて,2晩続けて真夜中に公安の『臨検』にあったことがあります。怪しげな人間と見られたのでしょう。その話をすると、鄭判龍先生は豪快に笑い、天安門事件の際、北京に行って学生を連れ戻した話をしてくれました。 「おまえたちは朝鮮族だ。ひとりたりとも死んではならない。朝鮮族は全国で200万、延辺に70万しかいない。それがひとりでも死んでみろ。朝鮮族の将来はどうなるんだ。延辺に帰ろう」 と、ひとりの犠牲者も出さずに延辺に連れ帰ってきたといいます。中国では命をかけて事件に対処してるのに、外国から来て一晩二晩寝られないからといって、何を騒いでいるのかという事だ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 最後に会ったのは2001年の夏、延辺大学病院に入院されて、もはや重態の病状でした。ふたりきりになったとき、先生は声を出さずに泣きました。黙って涙を流されました。後にも先にも、先生の涙はそのとき見ただけでした。いつも豪快に笑っている人でした。  
4    3『여우의 시집가기』 댓글:  조회:1836  추천:0  2011-11-11
3『여우의시집가기』   ―야마나시겐(山梨県)―   옜날이라고해도좀전의일이다.그렇지50년전이라고할가.  야마나시(山梨)의가나야마(金山)란곳에숱을굽는할아버지가있었다.  할아버지는산에서숱을굽어서는그것을가지고거리에팔러갔다가돌아오는길에산길을지나게됐다고한다.   따스한바람이솔솔불어와서어쩐지모골이송연함을느끼게하는밤이였다고한다.   라고생각하면서문득앞을보니이쁜처녀가제등을들고어린이를데리고걷고있었다.   고잔걸음을재우쳤지만거리가줄어들지를않는다고한다. 그렇다면방법을바꿔보지라고생각하고이번에는달아보았지만역시거리를줄일수가없었다.     어둠속을뚫고잘내다보았더니어린이의엉둥이로부터큰꼬리가나와서흔들흔들하고있었다고한다.  할아버지는이상하게생각되여   라고말하자, 인츰절반정도를들여보냈다.     할아버지가장난으로손을내미니처녀여우가울음소리를지르면서질겁하여달아났다고한다.   어린이도제등을놓아둔채로달아났다고한다.    할아버지는그것을주어서돌아갔다고한다.  다음날밤이깊은다음문을두두리는자가있었다.   문을열고보니이쁜여자가서있었다고한다.        할아버지는가엽게생각되여돌려주었다고한다.   그날밤의밤중에여우의시집가기가있었고많은제등들이빛을뿌리고그것은매우아름다웠다고한다.
3    2『노파가죽』 댓글:  조회:1685  추천:0  2011-11-11
2『노파가죽』   ―니이가타(新潟県)―     옜날어떤곳에매우성격이좋은처녀가있었다고한다.   처녀의집은신분이있는집으로서처녀의기량도뛰여나고마치공주처럼곱게재리웠다.  그러나꿈같은달콤한생활도오래가지는않았다. 가엽게도엄마가갑작스런병으로세상을떠나고말았다.   얼마간지나계모가들어왔지만, 그계모에게는못생긴딸이있었다고한다.  그래서계모는기량이뛰여난딸이미워서참을수가없게되였다.  기회만있으면괴봅히기만하였다.   아버지도이것을알고있어지만계모에게는아무말도할수없었다.  그래서가엽기는하지만이집에있다가는이제부터어떻게될지도모른다고생각하고돈을쥐여집을떠나보내기로했다.  유모도  라고말하면서노파가죽이란것을주었다.  처녀는그것을쓰고나이를먹은할머니모양을하고집을떠났다.  이리하여처녀가여기저기를떠도는사이에한상인의집의물들긷는여자로고용되게됐다고한다.   처녀는항상노파가죽을쓰고일을했다.   목용통에들어갈때도집사람들이다목욕이끝난다음에들어갔으므로그것을벗어도누구에게도발각되지않았다.  어느날밤의일이였다.   처녀는여느때와같이노파의가죽을벗고목욕통에들어갔더니생각밖에젊은주인집도련님한테발견되고말았다.  글쎄그때부터젊은주인집도련님은한번본아름다운처녀의미모를잊을수가없었다. 끝내상사병이나고말았다. 의사도고칠수가없다고한다. 젊은주인집도련님의부친이걱정이되여점쟁이한테점괘를보았다고한다.  그러자점쟁이가하는말이   라고말했다.  할아버지는기겁하여집안에있는여자라는여자는모두젊은주인의방에보내봤다. 하지만마음에들어하는자는없었다고한다.   최후로할아버지는설마하고생각하면서물긷는노파를젊은주인의방에데리고갔다.  그러자도련님이인츰알고나있듯이노파의가죽을벗겨버렸다고한다.  안에서아름다운처녀가나타나서집안사람들이좋아서들썽거렸다  처녀는그집의며느리가되여언제까지나행복하게살았다고한다. 
2    1『배유령』 댓글:  조회:1654  추천:0  2011-11-11
1『배유령』    ―찌바껜(千葉県)―   옛날 어느 해의 우란분재날 밤의 일이다. 한 해변가로부터 한척의 배가고 기잡이를 떠났다.   그날밤은 바람도 고요하고 하늘에 도바다에도 별들이 반짝이여 마치 고요한 호수와 같았다고 한다.  바다에 나가서 구물을 치니 많은 고기들이 걸려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어부들도 전에 없던 대렵에 담이 커져가지고 고기그물 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하여 어느덧 별이 자취를 감추고 주위에 음침한 공기가 떠돌아 오고있는것을 누구도 낌새를 채재 못했다.   갑자기 센 바람이 불었다.   바다 는갑작스레 거칠어졌다.   집채같은 삼각파도가 습격해와서 배는 마치 나무잎새 마냥 세차게 흔들렸다.  어부들은 쳐놓았던 그물들을 끊고 죽을둥살둥 노를 저었다.  그것은 어부들과 바다와의 싸움이였다.  얼마만큼이나 자났을가.  방금전까지만해도 광폭하던 바다가 거짓말과도 같이 잠잠해지고 어부들이 지친몸으로 누워있을 때였다.  썩어가기시작하는 큰배가 기척도 없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배로부터 사람그림자도 얼신하지 않는데   고 무었이라고 딱히 짚어말할수 없는 모골이 송연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물푸개라는 것은 배밑창의 물을 퍼내는 국자를 말한다만,  너무나 무서워서 오직 달아나고 싶은 일념으로 던져주었다.   그러자 그 물푸개로 어부들의 배안에 물을 자꾸 퍼넣었다.    어부들의 배는 물범벅이되여 가지고 간신히 변가에로 아왔을 때는 얼이다나간상태였다고한다.   이일은어부들사이에쭉퍼졌다.   그때부터 말하기를 우란분제에는결코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는 일은 없어졌다고 한다.  
1    一杯のかけそば(우동 한 그릇) 댓글:  조회:4593  추천:1  2011-11-11
作品紹介: 1989年に日本中で話題になった作品です。週刊誌で「(涙なしでは読めないので)他人がいない所で読んでください」として紹介され、民放TV各局が取り上げている最中、作家の不祥事のことが持ち上がって各局とも放送を止めてしまいました。「坊主憎けりゃ袈裟まで憎い」で作家が悪ければ作品も悪い、みたいでした。この作品を読んで、聞いた多くの人が流した涙は何だったのでしょう。  週刊誌掲載のものと、TVの口演録音を元にしていますので原作と同じではないかも知れません。  この物語は、今から15年ほど前の12月31日、札幌の街にあるそば屋「北海亭」での出来事から始まる。  そば屋にとって一番のかき入れ時は大晦日である。  北海亭もこの日ばかりは朝からてんてこ舞の忙しさだった。いつもは夜の12時過ぎまで賑やかな表通りだが、夕方になるにつれ家路につく人々の足も速くなる。10時を回ると北海亭の客足もぱったりと止まる。  頃合いを見計らって、人はいいのだが無愛想な主人に代わって、常連客から女将さんと呼ばれているその妻は、忙しかった1日をねぎらう、大入り袋と土産のそばを持たせて、パートタイムの従業員を帰した。  最後の客が店を出たところで、そろそろ表の暖簾を下げようかと話をしていた時、入口の戸がガラガラガラと力無く開いて、2人の子どもを連れた女性が入ってきた。6歳と10歳くらいの男の子は真新しい揃いのトレーニングウェア姿で、女性は季節はずれのチェックの半コートを着ていた。 「いらっしゃいませ!」  と迎える女将に、その女性はおずおずと言った。 「あのー……かけそば……1人前なのですが……よろしいでしょうか」  後ろでは、2人の子ども達が心配顔で見上げている。 「えっ……えぇどうぞ。どうぞこちらへ」  暖房に近い2番テーブルへ案内しながら、カウンターの奥に向かって、 「かけ1丁!」  と声をかける。それを受けた主人は、チラリと3人連れに目をやりながら、 「あいよっ! かけ1丁!」  とこたえ、玉そば1個と、さらに半個を加えてゆでる。  玉そば1個で1人前の量である。客と妻に悟られぬサービスで、大盛りの分量のそばがゆであがる。  テーブルに出された1杯のかけそばを囲んで、額を寄せあって食べている3人の話し声がカウンターの中までかすかに届く。 「おいしいね」  と兄。 「お母さんもお食べよ」  と1本のそばをつまんで母親の口に持っていく弟。  やがて食べ終え、150円の代金を支払い、「ごちそうさまでした」と頭を下げて出ていく母子3人に、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どうかよいお年を!」  と声を合わせる主人と女将。  新しい年を迎えた北海亭は、相変わらずの忙しい毎日の中で1年が過ぎ、再び12月31日がやってきた。  前年以上の猫の手も借りたいような1日が終わり、10時を過ぎたところで、店を閉めようとしたとき、ガラガラガラと戸が開いて、2人の男の子を連れた女性が入ってきた。  女将は女性の着ているチェックの半コートを見て、1年前の大晦日、最後の客を思いだした。 「あのー……かけそば……1人前なのですが……よろしいでしょうか」 「どうぞどうぞ。こちらへ」  女将は、昨年と同じ2番テーブルへ案内しながら、 「かけ1丁!」  と大きな声をかける。 「あいよっ! かけ1丁」  と主人はこたえながら、消したばかりのコンロに火を入れる。 「ねえお前さん、サービスということで3人前、出して上げようよ」  そっと耳打ちする女将に、 「だめだだめだ、そんな事したら、かえって気をつかうべ」  と言いながら玉そば1つ半をゆで上げる夫を見て、 「お前さん、仏頂面してるけどいいとこあるねえ」  とほほ笑む妻に対し、相変わらずだまって盛りつけをする主人である。  テーブルの上の、1杯のそばを囲んだ母子3人の会話が、カウンターの中と外の2人に聞こえる。 「……おいしいね……」 「今年も北海亭のおそば食べれたね」 「来年も食べれるといいね……」  食べ終えて、150円を支払い、出ていく3人の後ろ姿に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どうかよいお年を!」  その日、何十回とくり返した言葉で送り出した。  商売繁盛のうちに迎えたその翌年の大晦日の夜、北海亭の主人と女将は、たがいに口にこそ出さないが、九時半を過ぎた頃より、そわそわと落ち着かない。  10時を回ったところで従業員を帰した主人は、壁に下げてあるメニュー札を次々と裏返した。今年の夏に値上げして「かけそば200円」と書かれていたメニュー札が、150円に早変わりしていた。  2番テーブルの上には、すでに30分も前から「予約席」の札が女将の手で置かれていた。  10時半になって、店内の客足がとぎれるのを待っていたかのように、母と子の3人連れが入ってきた。  兄は中学生の制服、弟は去年兄が着ていた大きめのジャンパーを着ていた。2人とも見違えるほどに成長していたが、母親は色あせたあのチェックの半コート姿のままだった。 「いらっしゃいませ!」  と笑顔で迎える女将に、母親はおずおずと言う。 「あのー……かけそば……2人前なのですが……よろしいでしょうか」 「えっ……どうぞどうぞ。さぁこちらへ」  と2番テーブルへ案内しながら、そこにあった「予約席」の札を何気なく隠し、カウンターに向かって 「かけ2丁!」  それを受けて 「あいよっ! かけ2丁!」  とこたえた主人は、玉そば3個を湯の中にほうり込んだ。  2杯のかけそばを互いに食べあう母子3人の明るい笑い声が聞こえ、話も弾んでいるのがわかる。カウンターの中で思わず目と目を見交わしてほほ笑む女将と、例の仏頂面のまま「うん、うん」とうなずく主人である。 「お兄ちゃん、淳ちゃん……今日は2人に、お母さんからお礼が言いたいの」 「……お礼って……どうしたの」 「実はね、死んだお父さんが起こした事故で、8人もの人にけがをさせ迷惑をかけてしまったんだけど……保険などでも支払いできなかった分を、毎月5万円ずつ払い続けていたの」 「うん、知っていたよ」  女将と主人は身動きしないで、じっと聞いている。 「支払いは年明けの3月までになっていたけど、実は今日、ぜんぶ支払いを済ますことができたの」 「えっ! ほんとう、お母さん!」 「ええ、ほんとうよ。お兄ちゃんは新聞配達をしてがんばってくれてるし、淳ちゃんがお買い物や夕飯のしたくを毎日してくれたおかげで、お母さん安心して働くことができたの。よくがんばったからって、会社から特別手当をいただいたの。それで支払いをぜんぶ終わらすことができたの」 「お母さん! お兄ちゃん! よかったね! でも、これからも、夕飯のしたくはボクがするよ」 「ボクも新聞配達、続けるよ。淳! がんばろうな!」 「ありがとう。ほんとうにありがとう」 「今だから言えるけど、淳とボク、お母さんに内緒にしていた事があるんだ。それはね……11月の日曜日、淳の授業参観の案内が、学校からあったでしょう。……あのとき、淳はもう1通、先生からの手紙をあずかってきてたんだ。淳の書いた作文が北海道の代表に選ばれて、全国コンクールに出品されることになったので、参観日に、その作文を淳に読んでもらうって。先生からの手紙をお母さんに見せれば……むりして会社を休むのわかるから、淳、それを隠したんだ。そのこと淳の友だちから聞いたものだから……ボクが参観日に行ったんだ」 「そう……そうだったの……それで」 「先生が、あなたは将来どんな人になりたいですか、という題で、全員に作文を書いてもらいましたところ、淳くんは、『一杯のかけそば』という題で書いてくれました。これからその作文を読んでもらいますって。『一杯のかけそば』って聞いただけで北海亭でのことだとわかったから……淳のヤツなんでそんな恥ずかしいことを書くんだ! と心の中で思ったんだ。  作文はね……お父さんが、交通事故で死んでしまい、たくさんの借金が残ったこと、お母さんが、朝早くから夜遅くまで働いていること、ボクが朝刊夕刊の配達に行っていることなど……ぜんぶ読みあげたんだ。  そして12月31日の夜、3人で食べた1杯のかけそばが、とてもおいしかったこと。……3人でたった1杯しか頼まないのに、おそば屋のおじさんとおばさんは、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どうかよいお年を! って大きな声をかけてくれたこと。その声は……負けるなよ! 頑張れよ! 生きるんだよ! って言ってるような気がしたって。それで淳は、大人になったら、お客さんに、頑張ってね! 幸せにね! って思いを込め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と言える日本一の、おそば屋さんになります。って大きな声で読みあげたんだよ」  カウンターの中で、聞き耳を立てていたはずの主人と女将の姿が見えない。  カウンターの奥にしゃがみ込んだ2人は、1本のタオルの端を互いに引っ張り合うようにつかんで、こらえきれず溢れ出る涙を拭っていた。 「作文を読み終わったとき、先生が、淳くんのお兄さんがお母さんにかわって来てくださってますので、ここで挨拶をしていただきましょうって……」 「まぁ、それで、お兄ちゃんどうしたの」 「突然言われたので、初めは言葉が出なかったけど……皆さん、いつも淳と仲よくしてくれてありがとう。……弟は、毎日夕飯のしたくをしています。それでクラブ活動の途中で帰るので、迷惑をかけていると思います。今、弟が『一杯のかけそば』と読み始めたとき……ぼくは恥ずかしいと思いました。……でも、胸を張って大きな声で読みあげている弟を見ているうちに、1杯のかけそばを恥ずかしいと思う、その心のほうが恥ずかしいことだと思いました。  あの時……1杯のかけそばを頼んでくれた母の勇気を、忘れてはいけないと思います。……兄弟、力を合わせ、母を守っていきます。……これからも淳と仲よくして下さい、って言ったんだ」  しんみりと、互いに手を握ったり、笑い転げるようにして肩を叩きあったり、昨年までとは、打って変わった楽しげな年越しそばを食べ終え、300円を支払い「ごちそうさまでした」と、深々と頭を下げて出て行く3人を、主人と女将は1年を締めくくる大きな声で、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どうかよいお年を!」  と送り出した。  また1年が過ぎて――。  北海亭では、夜の9時過ぎから「予約席」の札を2番テーブルの上に置いて待ちに待ったが、あの母子3人は現れなかった。  次の年も、さらに次の年も、2番テーブルを空けて待ったが、3人は現れなかった。  北海亭は商売繁盛のなかで、店内改装をすることになり、テーブルや椅子も新しくしたが、あの2番テーブルだけはそのまま残した。  真新しいテーブルが並ぶなかで、1脚だけ古いテーブルが中央に置かれている。 「どうしてこれがここに」  と不思議がる客に、主人と女将は『一杯のかけそば』のことを話し、このテーブルを見ては自分たちの励みにしている、いつの日か、あの3人のお客さんが、来てくださるかも知れない、その時、このテーブルで迎えたい、と説明していた。  その話が「幸せのテーブル」として、客から客へと伝わった。わざわざ遠くから訪ねてきて、そばを食べていく女学生がいたり、そのテーブルが、空くのを待って注文をする若いカップルがいたりで、なかなかの人気を呼んでいた。  それから更に、数年の歳月が流れた12月31日の夜のことである。北海亭には同じ町内の商店会のメンバーで家族同然のつきあいをしている仲間達がそれぞれの店じまいを終え集まってきていた。北海亭で年越しそばを食べた後、除夜の鐘の音を聞きながら仲間とその家族がそろって近くの神社へ初詣に行くのが5~6年前からの恒例となっていた。  この夜も9時半過ぎに、魚屋の夫婦が刺身を盛り合わせた大皿を両手に持って入って来たのが合図だったかのように、いつもの仲間30人余りが酒や肴を手に次々と北海亭に集まってきた。「幸せの2番テーブル」の物語の由来を知っている仲間達のこと、互いに口にこそ出さないが、おそらく今年も空いたまま新年を迎えるであろう「大晦日10時過ぎの予約席」をそっとしたまま、窮屈な小上がりの席を全員が少しずつ身体をずらせて遅れてきた仲間を招き入れていた。  海水浴のエピソード、孫が生まれた話、大売り出しの話。賑やかさが頂点に達した10時過ぎ、入口の戸がガラガラガラと開いた。幾人かの視線が入口に向けられ、全員が押し黙る。北海亭の主人と女将以外は誰も会ったことのない、あの「幸せの2番テーブル」の物語に出てくる薄手のチェックの半コートを着た若い母親と幼い二人の男の子を誰しもが想像するが、入ってきたのはスーツを着てオーバーを手にした二人の青年だった。ホッとした溜め息が漏れ、賑やかさが戻る。女将が申し訳なさそうな顔で 「あいにく、満席なものですから」  断ろうとしたその時、和服姿の婦人が深々と頭を下げ入ってきて二人の青年の間に立った。店内にいる全ての者が息を呑んで聞き耳を立てる。 「あのー……かけそば……3人前なのですが……よろしいでしょうか」  その声を聞いて女将の顔色が変わる。十数年の歳月を瞬時に押しのけ、あの日の若い母親と幼い二人の姿が目の前の3人と重なる。カウンターの中から目を見開いてにらみ付けている主人と今入ってきた3人の客とを交互に指さしながら 「あの……あの……、おまえさん」  と、おろおろしている女将に青年の一人が言った。 「私達は14年前の大晦日の夜、親子3人で1人前のかけそばを注文した者です。あの時、一杯のかけそばに励まされ、3人手を取り合って生き抜くことが出来ました。その後、母の実家があります滋賀県へ越しました。私は今年、医師の国家試験に合格しまして京都の大学病院に小児科医の卵として勤めておりますが、年明け4月より札幌の総合病院で勤務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その病院への挨拶と父のお墓への報告を兼ね、おそば屋さんにはなりませんでしたが、京都の銀行に勤める弟と相談をしまして、今までの人生の中で最高の贅沢を計画しました。それは大晦日に母と3人で札幌の北海亭さんを訪ね、3人前のかけそばを頼むことでした」  うなずきながら聞いていた女将と主人の目からどっと涙があふれ出る。入口に近いテーブルに陣取っていた八百屋の大将がそばを口に含んだまま聞いていたが、そのままゴクッと飲み込んで立ち上がり 「おいおい、女将さん。何してんだよお。10年間この日のために用意して待ちに待った『大晦日10時過ぎの予約席』じゃないか。ご案内だよ。ご案内」  八百屋に肩をぽんと叩かれ、気を取り直した女将は 「ようこそ、さあどうぞ。 おまえさん、2番テーブルかけ3丁!」  仏頂面を涙でぬらした主人、 「あいよっ! かけ3丁!」  期せずして上がる歓声と拍手の店の外では、先程までちらついていた雪もやみ、新雪にはね返った窓明かりが照らしだす『北海亭』と書かれた暖簾を、ほんの一足早く吹く睦月の風が揺らしていた。       栗良平:一碗阳春面     一碗阳春面    日本栗良平    对于面馆来说,最忙的时候,要算是大年夜了。北海亭面馆的这一天,也是从早就忙得不亦乐乎。    平时直到深夜十二点还很热闹的大街,大年夜晚上一过十点,就很宁静了。北海亭面馆的顾客,此时也像是突然都失踪了似的。    就在最后一位顾客出了门,店主要说关门打烊的时候,店门被咯吱咯吱地拉开了。一个女人带着两个孩子走了进来。六岁和十岁左右的两个男孩子,一个身崭新的运动服。女人却穿着不合时令的斜格子的短大衣。    “欢迎光临!”老板娘上前去招呼。    “呃……阳春面……一碗……可以吗?”女人怯生生地问。那两个小男孩躲在妈妈的身后,也怯生生地望着老板娘。    “行啊,请,请这边坐,”老板娘说着,领他们母子三人坐到靠近暖气的二号桌,一边向柜台里面喊着,“阳春面一碗!”    听到喊声的老板,抬头瞥了他们三人一眼,应声答道:“好咧!阳春面一碗——”    案板上早就准备好的,堆成一座座小山似的面条,一堆是一人份。老板抓了一堆面,继而又加了半堆,一起放进锅里。老板娘立刻领悟到,这是丈夫特意多给这母子三人的。    热腾腾香喷喷的阳春面放到桌上,母子三人立即围着这碗面,头碰头地吃了起来。    “真好吃啊!”哥哥说。    “妈妈也吃呀!”弟弟挟了一筷面,送到妈妈口中。    不一会,面吃完了,付了150元钱。    “承蒙款待,”母子三人一起点头谢过,出了店门。    “谢谢,祝你们过个好年!”老板和老板娘应声答道。    过了新年的北海亭面馆,每天照样忙忙碌碌。一年很快过去了,转眼又是大年夜。    和以前的大年夜一样,忙得不亦乐乎的这一天就要结束了。过了晚上十点,正想关门打烊,店门又被拉开了,一个女人带着两个男孩走了进来。    老板娘看到那女人身上的那件不合时令的斜格子短大衣,就想起去年大年夜那三位最后的顾客。    “……呃……阳春面一碗……可以吗?”    “请,请里边坐,”老板娘将他们带到去年的那张二号桌,“阳春面一碗——” “好咧,阳春面一碗——”老板应声回答着,并将已经熄灭的炉火重新点燃起来。    “喂,孩子他爹,给他们下三碗,好吗?”    老板娘在老板耳边轻声说道。    “不行,如果这样的话,他们也许会尴尬的。”    老板说着,抓了一人半份的面下了锅。    桌上放着一碗阳春面,母子三人边吃边谈着,柜台里的老板和老板娘也能听到他们的声音。    “真好吃……”    “今年又能吃到北海亭的阳春面了。”    “明年还能来吃就好了……”    吃完后,付了150元钱。老板娘看着他们的背影,“谢谢,祝你们过个好年!”    这一天,被这句说过几十遍乃至几百遍的祝福送走了。    随着北海亭面馆的生意兴隆,又迎来了第三年的大年夜。    从九点半开始,老板和老板娘虽然谁都没说什么,但都显得有点心神不定。十点刚过,雇工们下班走了,老板和老板娘立刻把墙上挂着的各种面的价格牌一一翻了过来,赶紧写好“阳春面150元”,其实,从今年夏天起,随着物价的上涨,阳春面的价格已经是200元一碗了。    二号桌上,早在30分钟以前,老板娘就已经摆好了“预约席”的牌子。    到了十点半,店里已经没有客人了,但老板和老板娘还在等候着那母子三人的到来。他们来了。哥哥穿着中学生的制服,弟弟穿着去年哥哥穿的那件略有些大的旧衣服,兄弟二人都长大了,有点认不出来了。母亲还是穿着那件不合时令的有些褪色的短大衣。    “欢迎光临,”老板娘笑着迎上前去。    “……呃……阳春面两碗……可以吗?”母亲怯生生地问。    “行,请,请里边坐!”    老板娘把他们领到二号桌,一边若无其事的将桌上那块预约牌藏了起来,对柜台喊道:    “阳春面两碗!”    “好咧,阳春面两碗——”    老板应声答道,把三碗面的份量放进锅里。    母子三人吃着两碗阳春面,说着,笑着。    “大儿,淳儿,今天,我做母亲的想要向你们道谢。” “道谢?向我们?……为什么?”    “实在是,因为你们的父亲死于交通事故,生前欠下了八个人的钱。我把抚恤金全部还了债,还不够的部分,就每月五万元分期偿还。”    “这些我们都知道呀。”    老板和老板娘在柜台里,一动不动地凝神听着。    “剩下的债,到明年三月还清,可实际上,今天就已经全部还清了。”    “啊,这是真的吗,妈妈?”    “是真的。大儿每天送报支持我,淳儿每天买菜烧饭帮我忙,所以我能够安心工作。因为我努力工作,得到了公司的特别津贴,所以现在能够全部还清债款。”    “好啊!妈妈,哥哥,从现在起,每天烧饭的事还是我包了!” “我也继续送报。弟弟,我们一起努力吧!”    “谢谢,真是谢……谢……”    “我和弟弟也有一件事瞒着妈妈,今天可以说了。这是在十一月的星期天,我到弟弟学校去参加家长会。这时,弟弟已经藏了一封老师给妈妈的信……弟弟写的作文如果被选为北海道的代表,就能参加僵的作文比赛。正因为这样,家长会的那天,老师要弟弟自己朗读这篇作文。老师的信如果给妈妈看了,妈妈一定会向公司请假,去听弟弟朗读作文,于是,弟弟就没有把这封信交给妈妈。这事,我还是从弟弟的朋友那里听来的。所以,家长会那天,是我去了。” “哦,原来是这样……那后来呢?”    “老师出的作文题目是,你‘将来想成为怎样的人’,全体学生都写了,弟弟的题目是《一碗阳春面》,一听这题目,我就知道是写的北海亭面馆的事。弟弟这家伙,怎么把这种难为情的事写出来,当时我这么想着。”    “作文写的是,父亲死于交通事故,留下一大笔债。母亲每天从早到晚拼命工作,我去送早报和晚报……弟弟全写了出来。接着又写,十二月三十一日的晚上,母子三人吃一碗阳春面,非常好吃……三个人只买一碗阳春面,面馆的叔叔阿姨还是很热情地接待我们,谢谢我们,还祝福我们过个好年。听到这声音,弟弟的心中不由地喊着:不能失败,要努力,要好好活着!因此,弟弟长大成人后,想开一家日本第一的面馆,也要对顾客说,努力吧,祝你幸福,谢谢。弟弟大声地朗读着作文……” 此刻,柜台里竖着耳朵,全神贯注听母子三人说话的老板和老板娘不见。在柜台后面,只见他们两人面对面地蹲着,一条毛巾,各执一端,正在擦着夺眶而出的眼泪。    “作文朗读完后,老师说,‘今天淳君的哥哥代替他母亲来参加我们的家长会,现在我们请他来说几句话……’”    “这时哥哥为什么……”弟弟疑惑地望着哥哥。    “因为突然被叫上去说话,一开始,我什么准备也说不出……诸君一直和我弟弟很要好,在此,我谢谢大家。弟弟每天做晚饭,放弃了俱乐部的活动,中途回家,我做哥哥的,感到很难为情。刚才,弟弟的《一碗阳春面》刚开始朗读的时候,我感到很丢脸,但是,当我看到弟弟激动地大声朗读时,我心里更感到羞愧,这时我想,决不能忘记母亲买一碗阳春面的勇气,兄弟们,齐心合力,为保护我们的母亲而努力吧!从今以后,请大家更好地和我弟弟做朋友。我就说这些……” 母子三人,静静地,互相握着手,良久。继而又欢快地笑了起来。和去年相比,像是完全变了模样。    作为年夜饭的阳春面吃完了,付了300元。    “承蒙款待,”母子三人深深地低头道谢,走出了店门。    “谢谢,祝你们过个好年!”    老板和老板娘大声向他们祝福,目送他们远去……    又是一年的大年夜降临了。北海亭面馆里,晚上九点一过,二号桌上又摆上了预约席的牌子,等待着母子三人的到来。可是,这一天始终没有看到他们三人的身影。    一年,又是一年,二号桌始终默默地等待着。可母子三人还是没有出现。    北海亭面馆因为生意越来越兴隆,店内重又进行了装修。桌子、椅子都换了新的,可二号桌却依然如故,老板夫妇不但没感到不协调,反而把二号桌安放在店堂的中央。“为什么把这张旧桌子放在店堂中央?”有的顾客感到奇怪。    于是,老板夫妇就把“一碗阳春面”的故事告诉他们。并说,看到这张桌子,就是对自己的激励。而且,说不定哪天那母子三人还会来,这个时候,还想用这张桌子来迎接他们。    就这样,关于二号桌的故事,使二号桌成了幸福的桌子。顾客们到处传颂着,有人特意从老远的地方赶来,有女学生,也有年轻的情侣,都要到二号桌吃一碗阳春面。二号桌也因此名声大振。    时光流逝,年复一年。这一年的大年夜又来到了。    这时,北海亭面馆已经是这条街商会的主要成员,大年夜这天,亲如家人的朋友、近邻、同行,结束了一天的工作后,都来到北海亭,在北海亭吃了过年面,听着除夕夜的钟声,然后亲朋好友聚集起来,一起到附近神社去烧香磕头,以求神明保佑。这种情形,已经有五六年了。今年的大年夜当然也不例外。九点半一过,以鱼店老板夫妇捧着装满生鱼片的大盘子进来为信号,平时的街坊好友三十多人,也都带着酒菜,陆陆续续地会集到北海亭。店里的气氛一下子热闹起来。    知道二号桌由来的朋友们,嘴里没说什么,可心里都在想着,今年二号桌也许又要空等了吧?那块预约席的牌子,早已悄悄地放在了二号桌上。    狭窄的座席之间,客人们一点一点地移动着身子坐下,有人还招呼着迟到的朋友。吃着面,喝着酒,互相挟着菜。有人到柜台里去帮忙,有人随意打开冰箱拿东西。什么廉价出售的生意啦,海水浴的艳闻趣事啦,什么添了孙子的事啦。十点半时,北海亭里的热闹气氛达到了顶点。就在这时,店门被咯吱咯吱地拉开了。人们都向门口望去,屋子里突然静了下来。    两位西装笔挺、手臂上搭着大衣的青年走了进来。这时,大伙才都松了口气,随着轻轻的叹息声,店里又恢复了刚才的热闹。    “真不凑巧,店里已经坐满了,”老板娘面带歉意的说。    就在拒绝两位青年的时候,一个身穿和服的女人,深深低着头走了进来,站在两位青年的中间。店里的人们,一下子都屏住了呼吸,耳朵也都竖了起来。    “呃……三碗阳春面,可以吗?”穿和服的女人平静地说。    听到这话,老板娘的脸色一下子变了。十几年前留在脑海中的母子三人的印象,和眼前这三人的形象重叠起来了。    老板娘指着三位来客,目光和正在柜台里忙碌的丈夫的目光撞到一处。    “啊,啊,……孩子他爹……”    面对着不知所措的老板娘,青年中的一位开口了。    “我们就是十四年前的大年夜,母子三人共吃一碗阳春面的顾客。那时,就是这一碗阳春面的鼓励,使我们三人同心合力,度过了艰难的岁月。这以后,我们搬到母亲的亲家滋贺县去了。” “我今年通过了医生的国家考试,现在京都的大学医院当实习医生。明年四月,我将到札幌的综合医院工作。还没有开面馆的弟弟,现在京都的银行里工作。我和弟弟商量,计划着生平第一次的奢侈行动。就这样,今天我们母子三人,特意到札幌的北海亭来拜访,想要麻烦你们煮三碗阳春面。”    边听边点头的老板夫妇,泪珠一串串地掉下来。    坐在靠近门口的蔬菜店老板,嘴里含着一口面听着,直到这时,才把面咽了下去,站起身来。    “喂喂!老板娘,你呆站在那里干什么?这十几年的每一个大年夜,你不是都为等待他们的到来做好了准备吗?快,快请他们入座,快!” 被蔬菜店老板用肩头一撞,老板娘才清醒过来。    “欢……欢迎,请,请坐……孩子他爹,二号桌阳春面三碗——”    “好咧——阳春面三碗——”泪流满面的丈夫差点应不出声来。    店里,突然爆发出一阵不约而同的欢呼声和鼓掌声。    店外,刚才还在纷纷扬扬飘着的雪花,此刻也停了。皑皑白雪映着明净的窗子,那写着“北海亭”的布帘子,在正月的清风中,摇着,飘着……   우동 한 그릇 작품소개: 작가 栗良平(구리료헤이)는1954년생으로서 북해도 출신이다. 이 작품은1989년에 일본에서 화제작으로 된 작품이다. 그해2월17일에 있은 일본국회 중의원 예산회의에서 공명당 국회의원이 이 소설을 회의 도중 국회의원들 앞에서 랑독하여 장내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냄으로서 일본에 붐을 일으켰다. 주간지들에 의해 “눈물이 없이는 읽을 수 없으므로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읽으세요”라고 소개되였고 텔레비방송들에서 앞 다투어 이 작품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을 무렵, 작가의 추태스러운 일로 인해 텔레비죤 각국들은 련이어 방송을 중지하였다. 며느리가 미우면 손자까지 밉다더니 작가가 나쁘면 작품도 나쁘다는 식이였다. 이 작품을 읽고1억3천만 일본국민이 눈물을 흘린 것만은 사실이다.   일본 구리 료헤이 작 / 연변대학 김정웅 역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년중 가장 바쁜 날이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도 이 날 만큼은 아침부터 눈코 뜰 사이가 없이 바빴다. 평시에는 밤12시 넘어까지도 북적거리던 길거리가 저녘 무렵에 들어서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그러더니10시가 지나자 손님도 뜸해졌다. 마음씨 좋은 사람이지만 무뚝뚝한 성격의 우동집 주인 아저씨를 대신하여 단골손님들한테 여주인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아내는 힘들었던 하루를 보상해주기라도 하듯이 임시로 고용한 종업원들에게 큰 주머니에 선물로 우동을 들려서 돌려보내고 있다. "요오코 양, 오늘 정말 수고 많이 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네, 아주머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오코 양이 돌아간 뒤 주인 여자는 한껏 기지개를 펴면서, "이제 두 시간도 안되어 새해가 시작되겠구나. 정말 바쁜 한 해였어." 하고 혼잣말을 하며 밖에 세워둔 간판을 거두기 위해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 때였다. 출입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섰다. 여섯살과 열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애들은 새로 산 듯한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낡고 오래 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인 여자는 늘 그런 것처럼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다. 그렇지만 여자는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머뭇 말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세 사람은, 다 늦은 저녁에 우동 한 그릇 때문에 주인 내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주인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환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바로 옆의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주방 안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우동1인분이요!" 갑작스런 주문을 받은 주인아저씨는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놀라서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다가 곧 이렇게 대답했다. "네! 우동1인분!" 그는 아내 모르게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서 삶았다. 그는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킬 수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 여기 우동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가득 담긴 우동을 식탁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며 오순도순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계산대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국물이 따뜻하고 맛있네요." 형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엄마도 잡수세요." 동생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한 가닥 집어서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갔다. 비록 한 그릇의 우동이지만 세 식구는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이윽고 다 먹고 난 뒤150엔(한화 약1,500원)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후, 새해를 맞이했던은 변함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다시12월31일을 맞이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10시가 지나 가게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주인 여자는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무늬의 반코트를 보는 순간, 일년전 섣달 그믐날 문 닫기 직전에 와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갔던 그 손님들이라는 걸 알았다. 여자는 그 날처럼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말했다. "저…… 우동……1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 여자는 작년과 같이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우동1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역시 세 사람을 알아 본 주인아저씨는 밖을 향하여 크게 외쳤다. "네엣! 우동1인분!" 그러고 나서 막 꺼버린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물을 끓이고 있는데 주인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속삭였다. "저 여보, 그냥 공짜로3인분의 우동을 만들어 줍시다." 그 말에 남편이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그렇게 하면 도리어 부담스러워서 다신 우리 집에 오지 못할 거요." 그러면서 남편은 지난해처럼 둥근 우동 하나 반을 넣어 삶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여보, 매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인정도 없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좋은 면이 있었구려." 남편은 들은 척도 않고 입을 다문 채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아 세 사람에게 가져다주었다. 식탁 위에 놓인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싸고 도란도란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주방 안의 두 부부에게 들려왔다. "아…… 맛있어요……" 동생이 우동 가락을 우물거리고 씹으며 말했다. "올해에도 이 가게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동생의 먹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형이 말했다.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순식간에 비워진 우동 그릇과 대견스러운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우동 값을 내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주인 내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큰 소리로 외쳤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말은, 그날 내내 되풀이한 인사였지만 주인 내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크고 따뜻함을 담고 있었다. 다음 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어느 해보다 더욱 장사가 잘 되는 중에 맞이하게 되었다. 의 주인 내외는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밤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시가 지나자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아저씨는, 벽에 붙어 있던 메뉴를 차례차례 뒤집었다. 금년 여름부터 값을 올려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가150엔으로 바뀌고 있었다. 2번 식탁 위에는 이미30분 전부터'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졌다. 이윽고10시 반이 되자,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와 두 아들, 그 세 사람이 들어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두 형제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아이들의 엄마는 여전히 색 바랜 체크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역시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주인 여자에게 어머니는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물었다. "저…… 우동……2인분인데도…… 괜찮겠죠?" "넷!…… 어서 어서 자, 이쪽으로……" 세 사람을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거기 있던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주방을 향해서 소리쳤다. "여기 우동2인분이요!" 그 말을 받아 주방 안에서 이미 국물을 끓이며 기다리고 있던 주인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쳤다. "네! 우동2인분, 금방 나갑니다!". 그는 끓는 국물에 이번에는 우동 세 덩어리를 던져 넣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세 사람은 어느 해보다도 활기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방해될까봐 조용히 주방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인 내외는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서로에게 미소를 지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평소에는 무뚝뚝하던 주인아저씨도 이 순간만큼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세 사람의 대화는 계속되였다. "시로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들에게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형인 시로도가 물었다.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킨 사고로 여덟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일부는 보험금으로 보상해 줄 수 있었지만 보상비가 모자라 그만큼 빚을 얻어 지불하고 매월 그 빚을 나누어 갚아왔단다." "네…… 알고 있어요."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주인 내외는 주방 안에서 꼼짝않고 선 채로 계속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빚은 내년3월이 되어야 다 갚을 수 있는데, 실은 오늘 전부 갚았단다". "네? 정말이에요 엄마?" 두 형제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래, 그 동안 시로도는 아침 저녁으로 신문 배달을 열심히 해 주었고, 쥰이는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 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단다. 그것으로 나머지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제가 계속할 거예요." "저도 신문 배달을 계속할래요! 쥰아, 우리 힘을 내자!" 형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어머니는 아이들의 손을 움켜쥐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걸 보며 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 지금 비로소 얘긴데요, 쥰이하고 제가 엄마한테 숨긴 게 있어요. 그것은요…… 지난11월에, 학교에서 쥰이의 수업을 참관하러 오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리고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작문 대회에, 출품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그 작문을 쥰이 읽기로 했다고요, 하지만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께 보여드리면…무리해서 회사를 쉬고 학교에 가실 것 같아서 쥰이 일부러 엄마한테 말을 하지 않고 있었대요. 그 사실을 쥰의 친구들한테서 듣고…제가 대신 참관일에 학교에 가게 됐어요". 어머니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조금 놀랐지만 금방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작문 시간에, 나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쓰게 했는데 쥰은'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냈대요. 지금 그 작문을 읽어 드리려고 해요. 사실 전 처음에'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는, 여기'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쥰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쥰이의 작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자, 지금부터 읽어드릴게요." 시로도는 그러면서 교복 상의 주머니에 접어서 넣어 두었던 종이 두 장을 꺼내어 펼쳤다. 쥰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시로도의 목소리는 작지만 낭랑하게 우동 가게에 울려 퍼졌다. "우리 아빠는 운전을 하다 교통 사고를 내서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피해자들 모두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선 보험금으로도 부족해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 때부터 우리 가족의 고생은 시작되었다.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고, 형은 날마다 조간과 석간 신문을 배달해서 돈을 벌었다. 아직 어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엄마와 형은 나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나는 저녁이면 시장을 봐서 밥을 해놓는 일을 했다. 내가 해 놓은 밥을 엄마와 형이 맛있게 먹는 걸 볼 때 나는 행복하다. 나도 우리 식구를 위해 작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절약하는 생활을 했다. 엄마의 겨울 코트는 아주 오래 되어 낡고 해어졌지만 해마다 꿰매어 입으셔야 했다. 그러던 중에 재작년12월31일 밤에 우리 가족은 우연히 한 우동 가게를 지나치게 되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우동 국물의 냄새가 그렇게 맛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우리 형제의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는 우리에게 우동을 사 주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이 반갑고 고마웠지만 우리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가게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형과 나는 망설이다가 딱 한 그릇만 시켜서 셋이서 같이 먹자고 엄마한테 말했다. 한 그릇이라도 우리에게 우동을 먹이고 싶었던 엄마와, 우동 국물 냄새에 마음이 끌린 우리 형제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문 닫을 시간에 들어와 우동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는 우리가 귀찮을 텐데도 주인 내외는 친절하고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주인 내외는 양도 많고 따뜻한 우동을 우리에게 주인 내외는 양도 많고 따뜻한 우동을 우리에게 내놓았다. 그러고나서는 문을 나서는 우리에게'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큰소리로 말해 주었다.그 목소리는 마치 우리에게,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그 후 일 년이 지난 작년 섣달 그믐날에도 그 우동 가게를 찾아갔다.여전히 우리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우동은 한 그릇밖에 시킬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 날도 마찬가지로 주인 내외는 친절하고 따뜻하게 우리에게 우동을 대접해 주었다.'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도 여전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힘들어 보이는 손님에게'힘내세요! 행복하세요!' 하는 말 대신 그 마음을 진심으로 담고 있는 고맙습니다!' 하고 말해줄 수 있는 일본 최고의 우동 가게 주인이 되겠다고." 주방안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주인내외의 모습이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형이 동생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사이 두 사람은 그대로 주저앉아 한 장의 수건을 서로 잡아당기며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시로도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쥰이 사람들 앞에서 이 작문 읽기를 마치자 선생님이 저한테, 어머니를 대신해서 인사를 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니?" 어머니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형에게 물었습니다. "갑자기 요청 받은 일이라서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어요…… 그렇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작문에도 씌어 있지만 동생은 매일 저녁 우리 집의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 여러분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도 도중에 돌아와야 하니까 동생은 여러분들한테 몹시 미안해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동생이이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읽기 시작했을 때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는 사이에, 한 그릇의 우동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형제는 앞으로도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 주세요." 시로도의 말이 끝나자 어머니는 두 형제를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다정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인가 나누며 웃다가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 주기도 하고,작년까지와는 아주 달라진 즐거운 그믐밤의 광경이였다. 올해에도, 우동을 맛있게 먹고 나서 우동 값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 라고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내외는 일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큰소리로 인사하며 배웅했다. 다시 일년이 지나 섣달 그믐날이 되자의 주인 내외는 밤9시가 지나고부터이란 팻말을2번 식탁에 올려놓고 세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2번 식탁을 비워 놓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은 장사가 잘 되어, 가게 내부 장식도 멋지게 꾸미고 식탁과 의자도 새로 바꿨지만2번 식탁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단정하고 깨끗하게 놓여져 있는 식탁들 가운데에서 단 하나 낡은 식탁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게 여기에 있지?" "낡은 이 식탁은 이 가게에 어울리지 않아." 이렇게 의아스러워하는 손님들에게 주인 내외는'우동 한 그릇'의 사연을 이야기해 준 뒤 이렇게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식탁을 보면서 그 때 그 사람들에게 받았던 감동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식탁은 간혹 손님들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을 잃어가는 우리 내외에게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 주었을 때, 이 식탁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는'행복의 식탁'으로서, 손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식탁이 비기를 기다렸다가 우동을 먹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이 찾아와 새롭게 결심을 다지고 돌아가기도 하는 등 그 식탁은 상당한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섣달 그믐날이 되자에는, 이웃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이웃사람들이 가게문을 닫고 모두 모여들었다. 그들은5, 6년 전부터에 모여서 섣달그믐의 풍습인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게 하나의 행사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도9시 반이 지나자 생선 가게를 하는 부부가 생선회를 접시에 가득 담아서 들고 오는 것을 시작으로, 주위에서 가게를 하는30여 명이 술이나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었다. 가게 안은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그들 중 몇명의 사람들이2번 식탁을 보며 말했다. "오늘도 어김없이2번 식탁은 비워 두었구먼!". "이 식탁의 주인공들이 정말 궁금하다고". 2번 식탁의 유래를 그들은 들고 알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 내외는은 비워둔 채, 다른 식탁에만 사람들을 앉게 했다. 2번 식탁에도 앉으면 좀 더 여유가 있으련만 비좁게 다른 자리에 모여 앉고, 다른 자리에 모여 앉아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가게 안은 우동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각자 가져온 료리에 손을 뻗치는 사람, 주방 안에 들어가 음식 만드는 걸 돕고 있는 사람, 냉장고를 열어 뭔가를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했다. 이야기의 내용도 다양했다. 바겐세일 이야기, 금년 해수욕장에서 겪은 일, 돈 안내고 달아난 손님 이야기 며칠 전에 손자가 태어났다는 할머니의 이야기 등으로 가게는 왁자지껄했다. 그런데10시30분쯤 되었을 때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로 쏠리며 조용해졌다. 코트를 손에 든 신사복 차림의 청년 두 명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자, 다시 자신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가게 안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미안해서 어쩌죠? 이렇게 가게가 꽉 차서…… 더 손님을 받기가……". 주인 여자는 난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기모노를 입은 부인이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나오며 두 청년 사이에 섰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고 부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우동……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주인 여자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변했다. 그 순간10여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젖히고 오래 전 그 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졌다. 여주인은 주방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남편에게 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가리키면서 말을 더듬었다. "저…… 저…… 여보!……".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허둥대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한 명이 말했다. "우리는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셋이서1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 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이곳을 떠나 외가가 있는 시가껜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금년에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대학병원의 소아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였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은행원이 된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저희 가족의 인생 중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니를 모시고 셋이서 이곳을 다시 찾아와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주인 내외의 눈에서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넘쳐흘렀습니다. 입구에서 가까운 거리의 식탁에 앉아 있던 야채 가게 주인이 처음부터 죽 지켜보고 있다가, 급한 마음에 우동가락을 꿀꺽 하고 삼키며 일어나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외쳤습니다. "여봐요 주인아주머니! 뭐하고 있어요? 10여 년간 이 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10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안내해요 안내를!" 야채 가게 주인의 말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여주인이 그제야 세 사람에게 가게 안의2번 식탁을 가리켰다.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식탁에 우동3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눈물로 얼굴을 적시고 있던 주인아저씨도 정신을 차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네엣! 우동3인분!" 그 광경을 지켜보며 가게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환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가게 밖에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이라고 쓰인 천 간판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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