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문】
우리글 인생을 살아온 류은종교수님
1. 서론
살아가는 인생은 각각이라고 이 세상에 태여나 주어진 삶을 살다보면 이런 인생을 살수도 있고 저런 인생을 살수도 있다. 또, 인생에 따라서 삶의 가치나 한생이 서로 다르게 펼쳐진다. 오늘의 대학교직종사 40돐, 회갑연의 주인공 류은종교수님은 한생을 우리 글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교수님이시다.
우리 글 하면 한글을 선참 떠올릴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것은 아니다. 우리 글은 나라와 살아가는 땅이 다름에 따라 한글로도 불리우고 조선어로도 불리우고 있는데 연변대 출신 류은종교수님은 조선어와 한글 `모두를 사랑하면서 우리 글의 보급과 발전, 세계화에 크나큰 기여를 하여왔다.
우리 글은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조선 세종 25년에 창제되고 세종 28년 1446년에 반포된, 글자마다 뜻을 가진 상형문자 한어와는 달리 적은 글자수로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표현할수 있는 우수한 소리글자이다. 그러나 력대 조선조에 의해 잘 보호되고 유지되여 왔지만 대중속에서 국어문으로 발랄한 발전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선말 또는 한말에 이르러 조선어—한글의 기틀을 세운 주시경선생이 나타나서야 우리 글은 진정 부흥의 중흥을 맞이하게 된다.
이같이 력사속에서 560여년전의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우리 글을 창제했다면 주시경선생은 우리 글이 나라글이 되게 한 국어중흥의 선구자로 손색이 되기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류은종교수님은 21세기를 전후한 력사시기에 이땅의 조선족사회에서 우리 글의 발전과 맥락을 같이 하여오며 그 누구보다도 우리 글 발전에 거대한 기여를 하여온 저명한 우리 글 언어학자이다.
류은종교수님은 1942년 3월 8일에 연변의 안도 시골에서 미래의 언어학자로 이 세상에 광림했지만 째질듯한 가난은 중소학교시절 내내 떠날줄 몰랐다. 그 속에서도 미래 언어학자는 무난히도 자라나 1962년 9월 연변대학 조문학부 대학생으로 모습을 바꾸며 오늘 대학교직 종사 40돐 및 부인 량복선과의 회갑연을 맞기에 이르렀다.
2. 본문
서론에서 우리는 연변대 출신으로서의 류은종교수님은 한생을 오로지 우리 글과의 인연속에서 살아오며 우리 글의 발전과 맥락을 같이하였다는것을 리해할수 있다. 우리 글 인생을 살아온 분으로서 우리 글 조선족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류은종교수님과 어깨를 겨룰수가 없다고 보아진다. 그만치 류은종교수님의 교직종사 40돐은 우리 글 연구와 보급,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세인을 놀래우는 성과로 주렁지며 사회활동에서나 절강 월수대에서나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1) 돌아보는 교직종사 40돐
류은종교수님이 안도 시골의 가난한 아이로부터 일약 대학생으로 변신한 것은 1962년 9월이다. 그로부터 4년후인 1967년 8월, 류은종교수님은 연변대 학창시절을 마치고 우리글 인생속 대학교수 생활을 펼치여간다.
(1) 북경 민족출판사 번역시절
살벌한 강풍이 중화대지를 휩쓸기 시작하던 1966년, 류은종교수님은 행운스럽게도 연변대의 추천으로 북경 민족출판사에 가서 경전, 저서, 자본론, 반듀링론을 비롯한 6권 번역과 모택동저작 번역, 모택동 시사번역에 뛰여든다. 모든것이 뒤죽박죽인 시절에 모택동저작번역실만은 무릉도원, 이 무릉도원에서 류은종교수님은 한다하는 일류 번역가, 언어학자 10여명과 함께 맘껏 장기를 떨치게 된다. 이 기간에 류은종교수님은 모택동저작에 실린 어휘규범화 수요로 언어조사팀에 합류되여 동북3성 조선족거주지구 언어조사에 나서며 사회대학의 첫 공부를 체험할 기회를 가진다.
(2) 연변대 언어연구소 시절
연변대에 돌아온후 류은종교수님은 언어연구소에서 우리 글 본격적인 연구생애를 펼친다. 우리말 규범팀을 거느리고 재차 동북 3성 조선족거주지역을 돌면서 대표적인 방언지역, 조선어문사업기관, 교육기관 등의 우리말 사용실태조사에 나서고 우리 말 맞춤법과 문장부호법을 친히 작성, 《조선말규범집》(공저)집필을 마무리. 한편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된후의 77년급, 78년급 조문학부 언어학교수에 전력한다. 80년대이후 류은종교수님은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상무리사로 활약하면서 어휘규범 원칙의 제정, 우리 글을 지키고 우리 글을 살려내기 위한 사업—어휘규범화 사업을 이끌어간다. 이 기간에 편찬된 책이 《조선말맞춤법사전》이다.
(3) 평양 김일성종합대 박사원 시절
열심히 사는 길에는 피곤과 라태가 없다. 류은종교수님이 살아가는 길이 바로 그러했다. 1987년 8월 ~ 1990년 4월 조선평양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 시절, 류은종교수님은 박사론문 《조선어의미론연구》를 집필, 출판하고도 《조선어동의어》, 《조선말 동의어, 반의어, 동음어》, 《조선어문수첩》(공저), 《조선말규범집 해설》(공저) 등과 여러편의 론문을 펴내는 쾌거를 이룬다.
(4) 연변대 교수시절
그후 류은종교수님은 연변대에 몸을 담고 본과학생들에게는 조선어 어음론, 문법론, 어휘론, 수사학, 문체론, 일반언어학 등 학과목을, 석박사생들에게는 조선어 의미론 연구, 문체론 연구, 언어리론, 화용론 등 학과목을 강의하며 필생의 정력을 제자양성에 몰붓는다.
나무는 그 열매에 의해 알려지고 사람은 일에 의해 평가된다. 류은종교수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교직종사 40년간20여명의 석박사생을 친히 키워내고 수많은 제자들이 동북3성, 북경, 관내에서 우리 글을 빛내여 간다.
2) 우리 글 연구성과 세인을 놀래워
세상사람들의 어떠한 성취나 연구성과들은 끈질긴 노력과 정비례를 이룬다. 남다른 창의력과 혼신의 정열을 몰붓는 피타는 노력이 없이는 어떠한 성취도 이룩할수가 없다. 류은종교수님은 이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한생의 집념과 추구로 세인을 놀래우는 성취를 이루어 냈다. 지난 세기 70년대이후 주요성과만을 보기로 하자.
70년대—
조선말 규범집(공저)
맞춤법이 달라진 단어들
조선어 철자법
80년대—
조선말맞춤법 사전
조선어 동의어
조선말 동의어, 반의어, 동음어
조선어문수첩(공저)
조선말규법집 해설(공저)
90년대—
조선어의미론연구
조선어어휘론
현대조선어어휘론
2000년대
문법(공저)
동의어 동음어 반의어 사전
가사문학대전(공동주필)
한국어열독(상)
한국어열독(하)
체육용어사전(주필)
우리말사전(주필)
중한속담사전(주필)
상기 2000년대 편찬한 사전들은 출판에 교부되였고 현재 월수대 한국어 계렬교재 20여권중 5권이 출판에 교부되여 출판과정에 있고 대형학술지 《동방학술론단》의 주필로 4권이 출판되였고 금년부터 계간으로 출판된다.
인생은 포기하면 끝나지만 노력하면 휘황한 빛을 뿌린다. 우리 글에 대한 류은종교수님의 남다른 사랑은 훌륭한 결실로 맺아졌다. 대학교직 종사 40년간 류은종교수님은 각종 우리 글 저서 20여권(공저, 주필 포함), 연구론문 120여편을 펴내 명실공히 이 땅의 우리 글 사랑의 거두로 떠올랐다.
3) 사회활동에도 값진 발자취 남기며
21세기에 들어선후 류은종교수님은 인생 60대의 문턱을 넘어선다. 나이들면 서로의 인생은 비슷하다지만 우리 글 인생을 살아온 류은종교수님의 인생은 의연히 청춘, 남다른 인생 그대로이다.
2003년에 류은종교수님은 우리 글을 새세기에 맞게 빛내가자면 대학의 연구만으로는 안된다, 대학과 사회가 어울려야 한다면서 사회법인단체 연변동서방문화연구회 회장, 연변로교수협회 문화담당 부회장 책임을 맡고 한국 학술정보[주]와 손잡고 중국 경내의 조선족문화유산정리와 발굴, 계승, 발전, 보존 사업을 힘있게 떠밀었다. 그 구체적 조치가 여러가지 사연으로 소원을 이루지 못한 중국경내의 조선족 로교수, 학자, 작가, 예술가, 문필가들의 저서원고가 해빛을 보게 하는 일이다. 이에 따라 한국 학술정보[주]에서는 류은종교수님께 《동방학술론단》 학술지 주필을 위임하여 중국, 일본의 구독자를 상대로 한 학술지를 꾸려가고 있다.
겨레를 위한, 우리 글 발전을 위한 류은종교수님의 헌신적 노력은 또 하나의 풍만한 결실로 맺어졌다. 지금까지 한국 학술정보[주]를 통해 펴낸 여러 문집, 전집, 작품집 등 책은 무려 280여종에 이른다. 이면에서 연변인민출판사 편집출신인 류은종교수님의 부인 량복선선생의 숨은 노력이 컸는바 량선생님은 학술정보 중국측 편집국장을 몸소 맡고 묵묵히 이 일을 밀고나가고있다.
또, 최근 수년간 자체의 경비로 조선 평양을 여러번 다녀오고 연길에 조선학자들을 초청하며 남북의 저명한 언어학자들과 함께 2008년 북경올림픽 다국어 《체육용어사전》(공동주필) 편찬작업을 끝낸 후 한국 경희대학교 전문가들에게 번역시스템자동처리를 하도록 의뢰하였으며 북경올림픽에 사용되도록 기여하고있다.
4) 남방땅 월수대에 한국어보급기지 마련하고
19세기 전후반기, 20세기 초엽을 살다간 로씨야 위대한 작가 똘쓰또이는 일찍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를 5년에 걸쳐 집필하고는 이런 명언을 남기였다.
지금에 와서야…
내가 남을 위해 사는 지금에 와서야,
아니면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하는 지금에 와서야
나는 인생의 행복을 깨닫는다.
똘스또이 명언의 참뜻은 살다가 살다가 삶의 참다운 행복의미를 깨달았다는 의미로 보아지는데 류은종교수님이 바로 그러한 경지에 오른 분이시다.
교수님은 남북분단 50여년에 한글, 조선어가 흐름을 달리하는 현실이 가슴아파 우리 글을 새 세기에 맞게 발전시켜 가자면 서로 어울려야 우리 글 인생의 행복을 감수할수 있다며 2005년 2월에 절강성 소흥시 월수외국어대 동방언어학원 부원장 초빙에 나섰다. 그로부터 2년간에 교수님은 10여명 우리 글 전문인재를 받아들이고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애들이 600여명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했다. 중국내 중국애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최대의 기지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어 교수님은 절강 월수외국어대에 한국문화연구소를 세우고 월수배재한국어 교육원 원장, 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는 새삶을 일궈냈다. 이 새삶이 한국어 교육과 보급에로 직결되는바 현재 《한국어열독》(상, 하, 주필)이 출판되여 교수에 사용되고 있으며《한국어기초》(시리즈), 《한국어회화》, 《한국어듣기》, 《한국력사》, 《한국문화》, 《영화로 배우는 한국어》 등 교과서 편찬사업이 놀라운 속도로 추진중에 있으며 이번 방학기간 《한국어회화》 초급과 중급(교원용과 학생용) (총4권) 《한국어듣기》가 이미 출판되였다.
또, 한국의 지성인들과 손잡고 한국 대전에 한국 자체로 꾸리는 월수학원, 월수국제류학원이 일어서도록 하여 중한문화교류와 류학생 상호파견의 터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절강 월수대와 한국 배재대학 등 10여개 대학, 연구부문이 서로 자매관계, 동반관계를 맺게 한 이도 류은종교수님이다.
또, 한국문화연구소를 통한 한국 력사문화전문가를 초빙하여 《소흥방언과 한글관계연구》, 《항주고려사와 고려 명승 의천연구》, 《불교지장보살 김교각 연구》, 《고대 당나라 신라방 연구》, 《복건일대 고려김씨 후손연구》 등 고대 중한문화관계사 연구 등을 크게 진척시키고있다.
3. 결론
서론이 있으면 본론이 있고 결론이 있기 마련이다. 상기 서론에서 교대가 주어지면서 본론에서 우리 글 인생을 살아온 연변대 출신 류은종교수님을 -- 돌아보는 교직종사 40돐, 우리 글 연구성과 세인을 놀래워, 사회활동에도 값진 발자취 남기며, 남방땅 월수대에 한국어보급기지 마련하고 -- 등 네개분야로 나누어 교수님 대학교직 종사 40돐을 돌이켜 보았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교수님의 대학교직 종사 40돐은 실로 걸음마다 우리 글 인생으로 얼룩져있음을, 그 역할과 성과, 미치는 영향으로 보아 중국조선족 언어학계에서 돋보이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어렵잖게 보아낼수 있다. 류은종교수님처럼 조선반도(한반도) 남북을 드나들고 중국 대지를 누비며 그 깊이와 너비에서 우리글 연구와 보급에 기여가 큰 분은 조선족가운데서 찾아보기 드물다고 할수 있다.
이에 류은종교수님은 지난해 10월 9일, 서울에서 인생60대에 한국정부로부터 한글발전유공자 크나큰 영예를 받아안았다. 로무현대통령이 친히 발급한 한글발전유공자 문화포장은 우리글 인생을 살아온 류은종교수님에 대한 최대의 긍정, 최고의 영예로서 교수님의 대학교직 종사 40돐을 평가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는 또 오늘 대학교직종사 40돐에 드리는 최대의 선물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필자는 500여년전 세종대왕님은 우리 글을 창제하시고 근대의 주시경선생은 우리 글의 중흥을 이룩하시고 류은종교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 글을 전파하고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는데 기여한 공로자라고 평가하여 본다. 류은종교수님은 이런 평가를 받을만한 분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글 인생을 살아온 류은종교수님》이라고 제목을 달아보았다. 25년전 연변대 재학시절의 제자이고 오늘도 스승님의 슬하에서 커가고 있는 필자로서 류은종교수님과 같은 스승님을 모시고 있음을, 대학교직종사 40돐 및 교수님 부부 회갑연에서 스승님의 우리글 인생을 돌이켜 볼수 있음을 더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생각한다.
스승님 살아가는 우리 글 인생길에 항상 영광, 또 영광만이 깃드소서!!!
절강 월수외국어대학 한국문화연구소 리광인,
2007년 8월30일 연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