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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09 ]

109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댓글:  조회:2854  추천:65  2009-03-01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잘 웃을 줄 아는 사람이란실은 잘 감동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에게 플러스가 되는의미를 찾을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풍부한감동으로 가득찬 마음이기 때문 입니다.하지만 감동하는 마음이란 결코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사실은 누구나 셀 수 없이 많은 감동을거듭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단지 자신이 감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죠.자신이 감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면 감동은 그저 감동으로끝날 뿐 풍부한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그러니까 무언가에 감동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그것이 아무리 작은 감동이더라도감동하고있는 자신을 칭찬해 주세요.칭찬받은 감동이라면 그냥 감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마음에머물러 작으나마 풍부한 열매를 맺습니다.작은 감동의 열매가 맺힐 때마다 당신은 더욱더많은 것에 감동할 수 있게 됩니다. 살아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감동할 것 투성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고 지내십시오.감동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걸 아셨다면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참으로 마음이 행복해 지는 책에서- ♬ Menexedenia / Maria Parandourihttp://blog.daum.net/ab0507/13130880
108    늙은 아버지의 질문 댓글:  조회:2401  추천:49  2009-02-23
늙은 아버지의 질문 82 세의 노인이 52 세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있었다. 그 때 우연히 까마귀 한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정하게 말했다. “까마귀에요. 아버지” 아버지는 그런데 조금 후 다시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시, “까마귀라니까요.”노인은 조금 뒤 또 물었다. 세 번째였다. “저게 뭐냐?” 아들은 짜증이 났다. “글쎄 까마귀라구요.” 아들의 음성엔 아버지가 느낄 만큼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있었다. 그런데 조금 뒤 아버지는 다시 물었다.  네 번째였다. “저게 뭐냐?”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까마귀, 까마귀라구요. 그 말도 이해가 안돼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 하세요?” 조금 뒤였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들고 나왔다. 그 일기장을 펴서 아들에게 주며 읽어보라고 말했다. 아들은 일기장을 읽었다. 거기엔 자기가 세 살짜리 애기였을 때의 이야기였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 같이 물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똑같은 대답을 23 번을 하면서도 즐거웠다. 아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이 있다는 거에 대해 감사했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즐거웠다. -
107    사람의 목숨이란 참으로 지극히 짧아.... 댓글:  조회:2686  추천:45  2009-02-09
160) 아란나경(阿蘭那經) 제 19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여러 비구들이 점심 공양을 마친 뒤에 강당에 모여 앉아, 이러한 일을 의논하였다. "여러분,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기이합니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짧아,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행해야 합니다.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법다운 행에 대해서, 의로운 행에 대해서, 선한 행에 대해서, 묘한 행에 대해서 하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낮에 활동하는 곳에 계시면서, 사람들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이(天耳)로써, 여러 비구들이 점심 뒤에 강당에 모여 앉아 이러한 일을 의논하는 것을 들으셨다. "여러분,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기이합니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짧아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행해야 합니다.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법다운 행에 대해서, 의로운 행에 대해서, 선한 행에 대해서, 묘한 행에 대해서 하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들으신 뒤에, 해질 무렵[?時] 연좌에서 일어나 강당으로 가시어, 비구들 앞에서 자리를 펴고 앉아, 여러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무슨 일을 의논하였느냐? 무엇하러 강당에 모여 앉았느냐?" 그 때 여러 비구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 비구들은 점심 공양을 마친 뒤에 강당에 모여 앉아, 이러한 일을 의논하였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기이합니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짧아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해야 하고 범행을 행해야 합니다.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법다운 행에 대해서, 의로운 행에 대해서, 선한 행에 대해서, 묘한 행에 대해서, 하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 일을 의논하였고, 이 일로 강당에 모여 앉았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아, 너희들이 이런 말을 하였구나. '여러분,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기이합니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짧아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하여야 하고 범행(梵行)을 행하여야 합니다.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법다운 행에 대해서, 의로운 행에 대해서, 선한 행에 대해서, 묘한 행에 대해서 하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나도 또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니라.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기이하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짧아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하여야 하고 범행을 행하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법다운 행에 대해서, 의로운 행에 대해서, 선한 행에 대해서, 묘한 행에 대해서 하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구나.' 무슨 까닭인가? 먼 옛날에는 중생이 있어 수명이 8만 세였다. 비구들아, 사람의 수명이 8만 세였을 때, 이 염부주는 지극히 크고 풍족하고 즐거우며, 재물과 보배가 많았고, 촌 읍들은 닭이 한 번에 날아갈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비구들아, 사람의 수명이 8만 세였던 때, 여자는 나이 5백 세가 되어야 시집갔었다. 비구들아, 사람의 수명이 8만 세였던 때, 병으로는 오직 추위 더위 대소변 욕심 굶주림 늙음이 있을 뿐 더 이상 다른 근심은 없었다. 비구들아, 사람의 수명이 8만 세였던 때에 구뢰바(拘牢婆)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전륜왕이 되어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네 종류의 군사가 있어 천하를 바르게 다스렸고, 자기 자신도 자재로웠으며, 법다운 법왕으로서 7보를 성취하였었다. 그 7보란 윤보(輪寶) 상보(象寶) 마보(馬寶) 주보(珠寶) 여보(女寶) 거사보(居士寶) 주병신보(主兵臣寶)이니, 이것을 7보라 한다. 그에게는 용모가 단정하고, 용맹하며 두려움이 없는 천 명의 아들이 있어 능히 다른 무리들을 항복받았으며, 반드시 이 일체의 땅과 나아가 큰 바다에 이르기까지 다스릴 만하였다. 그들은 칼이나 몽둥이를 쓰지 않고, 법으로써 가르치고 명령하여 안온을 얻게 하였다. 비구들아, 구뢰바왕에게는 범지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아란나(阿蘭那)이고 큰 장자였다. 그는 부모가 천거한 바로서, 생을 받음이 청정하고, 나아가 7대 동안 부모의 종족이 끊어지지 않고, 대대로 악이 없었으며, 널리 듣고 모두 기억해 네 가지 경전을 환히 외우며, 인(因) 연(緣) 정(正) 문(文) 희(戱), 5구설(句說)을 깊이 통달하였다. 비구들아, 범지 아란나에게는 한량없는 백천 마납마(摩納磨)6)가 있었다. 6) 팔리어 manava의 음역어이고 바라문 청년, 혹은 바라문 동자를 뜻한다. 마납(摩納) 혹은 마나바(摩那婆) 마납바(摩納婆 )로 음역하기도 한다. 범지 아란나는 한량없는 백천 마납마들을 위하여, 어떤 일 없는 곳에 머무르면서 경서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 때 범지 아란나는 혼자서 고요한 곳에 머물면서 편안히 앉아 깊은 사유(思惟)에 잠겨 있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기이하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짧아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하여야 하고 범행을 행하여야 한다.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법다운 행에 대해서, 의로운 행에 대해서, 선한 행에 대해서, 묘한 행에 대해서, 하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구나. 나는 차라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자'. 이에 범지 아란나는 몇 나라의 여러 마납마 처소에 가서 말하였다. '여러 마납마들이여, 나는 혼자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편안히 앉아 깊은 사유(思惟)에 잠겨 있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기이하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짧아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하여야 하고 범행을 행하여야 한다.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법다운 행에 대해서, 의로운 행에 대해서, 선한 행에 대해서, 묘한 행에 대해서 하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다. 나는 이제 차라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자. 여러 마납들이여, 나는 이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고자 한다. 너희들은 장차 어떻게 하려는가?' 몇몇 나라의 마납마들이 아뢰었다. '존사(尊師)시여, 저희들이 아는 것은 모두 스승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만일 스승님께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시겠다면, 저희들도 또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겠습니다.' 이에 범지 아라나는 그 뒤에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웠다. 그 몇몇 나라의 여러 마납마들도 또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그 스승 범지 아란나를 따라 도를 배웠다. 여기서 스승 아란나와 스승 아란나의 제자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 때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여러 마납마들이여,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기이하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짧아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해야 하고 범행을 행하여야 한다.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법다운 행에 대해서, 의로운 행에 대해서, 선한 행에 대해서 묘한 행에 대해서, 하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구나.' 그 때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여러 마납마들이여,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기이하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짧아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해야 하고 범행을 행하여야 한다.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법다운 행에 대해서, 의로운 행에 대해서, 선한 행에 대해서, 묘한 행에 대해서 하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구나'.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마치 풀잎 위의 아침 이슬방울이 해가 뜨면 곧 사라져 잠깐 존재할 뿐 오래가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아침 이슬과 같아서 얻기도 매우 어렵지만 지극히 짧아 의미가 없으며, 큰 고통과 재환(災患)만 있는데 그 재환은 너무도 많으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마치 큰비가 올 때 떨어지는 물방울에 거품이 일어나 혹은 생겼다가 혹은 사라지는 것처럼, 이와 같이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물거품과 같아서 매우 얻기도 어렵지만 지극히 짧아 의미가 없다. 큰 고통과 재환만 있는데, 그 재환은 너무도 많으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마치 작대기를 물 속에 던지면 들어갔다가 재빨리 다시 나오는 것처럼, 이와 같이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작대기를 물 속에 던지면 도로 나오는 시간이 너무나 빠른 것과 같아서 매우 얻기도 어렵지만 지극히 짧아 의미가 없다. 큰 고통과 재환만 있는데 그 재환은 너무도 많으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마치 새로 만든 질그릇을 물에 담갔다 곧 꺼내면 바람과 열에 부딪쳐 재빨리 마르는 것과 같이,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새로 만든 질그릇을 물에 적셨을 때 재빨리 마르는 것과 같아서 매우 얻기도 어렵지만 너무도 짧아 아무 의미가 없다. 큰 고통과 재환만 있는데 그 재환은 너무도 많으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마치 조그만 살점을 큰 가마솥 물 속에 넣고, 밑에서 불을 세게 때면 어느새 다 타 버리는 것처럼,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살점과 같아서 매우 얻기도 어렵지만 지극히 짧아 아무 의미가 없다. 큰 고통과 재환만 있는데 그 재환은 너무도 많으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마치 도적을 묶어서 사형장으로 보내 죽이려고 할 때, 떼어 놓는 발길 따라 걸음걸음 죽음으로 나아가고, 걸음걸음 목숨이 줄어드는 것처럼,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도적을 묶어 사형장으로 보내 죽이는 것과 같아서, 매우 얻기도 어렵지만 지극히 짧아 아무 의미가 없다. 큰 고통과 재환만 있는데 그 재환은 너무도 많으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마치 백정이 송아지를 끌고 가서 죽이려 할 때, 떼어놓는 발걸음 따라 걸음걸음 죽음으로 나아가고, 걸음걸음 목숨이 줄어드는 것처럼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소를 끌고 가서 죽이는 것과 같아서 매우 얻기도 어렵지만 지극히 짧아 아무 의미가 없다. 큰 고통과 재환만 있는데 그 재환은 너무도 많으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마치 베를 짤 때에 그 오가는 씨실을 따라 베가 완성되면 곧 마치는 것처럼,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베를 짜서 마치는 것과 같아서 매우 얻기도 어렵지만 지극히 짧아 아무 의미가 없다. 큰 고통과 재환만 있는데 그 재환은 너무도 많으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마치 산골짜기 물이 갑자기 불어나서 모든 것을 휩쓸고 내려갈 때 물이 빠르게 흘러 잠시도 멈추지 않는 것처럼,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빨리 달려 잠시도 머무름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재빨리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얻기도 매우 어려우며, 지극히 짧아 아무 의미가 없다. 큰 고통과 재환만 있는데 그 재환은 너무도 많으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마치 어두운 밤에 지팡이를 땅에 던지면, 혹은 거꾸로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바로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다시 옆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깨끗한 곳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깨끗하지 못한 곳에 떨어지기도 하는 것처럼, 마납마들이여, 중생들은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욕에 묶여 혹은 지옥에 나기도 하고, 혹은 축생에 나기도 하며, 혹은 아귀에 나기도 하고, 혹은 천상에 나기도 하며, 혹은 인간에 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마납마들이여, 사람의 목숨도 어둠 속에서 지팡이를 땅에 던지는 것과 같아서, 얻기도 매우 어렵지만 지극히 짧아 아무 의미가 없다. 큰 고통과 재환만 있는데 그 재환은 너무도 많으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나는 세상에서 탐욕을 끊고 마음에 다툼이 없어, 남의 재물이나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보아도 탐욕을 일으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니, 나는 탐욕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앴다. 이와 같이 성냄과 수면(睡眠)과 들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나는 세상에서 의심을 끊고 미 혹을 막아 모든 착한 법에 대해서 망설임이 없으니, 나는 의혹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앴다. 마납마들이여, 너희들도 또한 세상에서 탐욕을 끊고 마음에 다툼이 없어, 남의 재물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보더라도 탐욕을 일으켜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하리니, 너희들도 탐욕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애도록 하라. 이와 같이 성냄과 수면과 들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너희들은 세상에서 의심을 끊고 미혹을 막아, 모든 착한 법에 대해서 망설임이 없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마납마들이여, 나는 자애로운 마음[慈心]으로 1방을 가득 채워 성취하여 노닐고, 이와 같이 2 3 4방과 4유 상 하 일체를 가득 채운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슬픈 마음[悲心]과 기쁜 마음[喜心]도 마찬가지이며, 평정한 마음[捨心]으로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마납마들이여, 너희들도 또한 자애로운 마음으로 1방을 가득 채워 성취하여 노닐고, 이와 같이 2 3 4방과 4유 상하 일체를 가득 채우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슬픈 마음과 기쁜 마음도 마찬가지이며, 평정한 마음으로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닐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다시 스승 아란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범세법(梵世法)을 연설하였다. 스승 아란나가 범세법을 연설했을 때, 여러 제자들 중에 법을 두루 갖추고 받들어 행하지 않은 자들이 있으면, 그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 사왕천(四王天)에 나거나, 혹은 삼십삼천에 나며, 혹은 험마천에 나거나, 혹은 도슬다천에 나며, 혹은 화락천에 나거나, 혹은 타화락천에 태어났다. 스승 아란나가 범세법을 연설했을 때, 여러 제자들 중에 법을 두루 갖추고 받들어 행하는 자가 있으면, 4범실(梵室)7)을 닦아 탐욕을 버리고,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천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 때 스승 아란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7) 자 비 희 사의 4무량심(無量心)을 말한다. 이 네 가지를 닦으면 대범천(大梵天)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게 된다.'나는 제자들과 함께 뒷세상에 함께 가서 한곳에 태어나지 않으리라. 나는 이제 차라리 증상자(增上慈)를 닦으리라. 증상자를 닦으면 목숨을 마친 뒤에 황욱천(晃昱天)에 태어날 것이다.' 스승 아란나는 그 뒤에 다시 증상자를 닦았다. 증상자를 닦았으므로 목숨을 마친 뒤에 황욱천에 나게 되었다. 스승 아란나와 그 모든 제자들은 도를 배운 것이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증득하였다. 비구들아, 너희들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옛날의 스승 아란나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런 생각을 말라. 왜냐 하면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는 곧 지금의 나이니라. 나는 그 때 스승 아란나라고 이름하였고, 한량없는 백천의 많은 제자가 있었으며,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범세법을 연설하였다. 내가 범세법을 연설했을 때, 모든 제자들 중에 법을 두루 갖추고 받들어 행하지 않은 자들이 있으면, 그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 사왕천에 나기도 했고, 혹은 삼십삼천에 나기도 했으며, 혹은 험마천(摩天)에 나기도 했고, 혹은 도슬다천(兜瑟?天)에 나기도 했으며, 혹은 화락천(化樂天)에 나기도 했고, 혹은 타화락천(他化樂天)에 나기도 했다. 내가 범세법을 연설했을 때, 모든 제자들 중에 법을 두루 갖추고 받들어 행하는 자가 있으면, 4범실(梵室)을 닦아 탐욕을 버리고,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천에 태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 때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제자들과 함께 뒷세상에 함께 가서 한곳에 태어나지 않으리라. 나는 이제 차라리 다시 증상자를 닦으리라. 증상자를 닦으면 목숨을 마친 뒤에는 황욱천에 태어날 수 있으리라.' 그 때 나와 제자들은 도를 배운 것이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얻었느니라. 나는 그 때에 내 자신도 요익하게 하였고 남도 요익하게 하였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였다. 세간을 가엾이 여겼으며,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여 의(義)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였었다. 나는 그 때에는 설법하였으나 구경(究竟)에 이르지는 못하였고, 최후의 희고 깨끗한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최후의 범행에 미치지 못하였고, 최후의 범행을 마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였었다. 나는 그 때에는 생 노 병 사와 울음과 근심과 슬픔을 여의지 못하였고, 또한 능히 일체의 괴로움에서도 벗어나지 못하였었다. 비구들아, 나는 이제 세상에 나와 여래(如來) 무소착(無所著) 등정각(等正覺) 명행성위(明行成爲)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도법어(道法御) 천인사(天人師)로서, 불중우(佛衆祐)라고 불린다. 나는 이제 내 자신도 요익하게 하였고 남도 요익하게 하였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였다. 세간을 가엾게 여기고,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여 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였다. 나는 이제는 설법하여 구경에 이르게 되었고, 최후의 희고 깨끗한 법에 이르렀으며, 최후의 범행을 이루었고, 최후의 범행을 마쳤다. 나는 이제 이미 생 노 병 사와 울음과 근심과 슬픔을 여의었고, 나는 이제 이미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비구들아, 만일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짧아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해야 하고 범행을 행하여야 한다.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하리라. 비구여, 이제 이것은 바른 말이다. 왜냐 하면 이제 만일 장수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오래라 해도 백 년, 혹은 그것을 조금 넘었을 것이다. 만일 장수하는 사람이라면 3백 철을 살 것이니, 봄철 1백, 여름철 1백, 겨울철 1백이다. 이것은 1천 2백 달을 사는 것이니, 봄 4백, 여름 4백, 겨울 4백 달이다. 1천 2백 달을 사는 것은 2천 4백 번의 보름을 사는 것이니, 봄 8백, 여름 8백, 겨울 8백 보름이다. 2천 4백 번의 보름을 사는 것은 3만 6천의 밤낮이니, 봄 1만 2천, 여름 1만 2천, 겨울 1만 2천의 밤낮이다. 3만 6천 밤낮을 사는 것은 7만 2천 끼니를 먹는 것인데, 거기에는 장애와 어머니 젖이 있다. 장애가 있다는 것은 괴로워 먹지 못하고, 성이 나서 먹지 못하며, 병들어 먹지 못하고, 일이 있어 먹지 못하며, 다니느라 먹지 못하고, 왕 앞이라 먹지 못하며, 재일(齋一)이라서 먹지 못하고, 얻지 못해 먹지 못하는 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을 1백 년을 사는 동안의 1백 년의 햇수 철 수 년 수와 철 수 달 수 보름 수 달과 보름 수 낮 수 밤 수 밤과 낮 수 끼니 수 장애 수 끼니와 장애의 수라고 한다. 비구들아, 만일 스승이 제자를 위하여 큰 사랑과 불쌍히 여김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의리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한다면, 나는 이미 그것을 다하였으니, 너희도 또한 마땅히 힘쓰도록 하라. 곧 일 없는 곳이나 산속 숲 나무 밑 빈 곳이나,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 가서, 편안히 앉아 깊이 사색하되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힘쓰고 꾸준히 나아가 후회가 없게 하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요, 이것이 나의 훈계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아란나경의 경문 글자 수는 3,291자이다. 『중아함경 』 제40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7,377자이다.]  
106    가장 행복한 사람 댓글:  조회:2762  추천:51  2009-01-17
가장 행복한 사람-우 조티카 붓다는 제자들에게 계율을  설할 때도 선정(Jhanic)상태에 있었다 붓다는 그 짧은 순간에도 마음을 평화로운 상태에 두었던 것이다.   1)모든 대상들은 마음을 피곤하게 한다.   세속의 대상,세속적 진리에 속한 것들은 모든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그것에서 해방되려면 우리가 하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알아차리는 것이 최선이다.   잠에서 깨자마자 자리에 누워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고 끊어지지   않는 마음챙김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걷는 동안에도 발걸음을 알아차리고 상대와 질문하고 대답 할 때도   결코 마음챙김을 놓아선 안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맑은 얼굴을 가지고 행복과 평화를 느끼게 된다.   2)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자신 안의 가장 높은 정신적인 것을 실현해 내는 사람이다.   공부나 기술로 자신의 생활 뿐 아니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도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이러한 능력은 오직 세속의 일에 관한 것일 뿐   가장 높고 최선의 것이 아니다.   가장 최선의 능력은 담마에 대한 고귀한 이해다.   3)자비(Metta)와 동정(Karuna)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특성이다   마음챙김(Sati)과 집중(Samadhi)도 인간적인 성질이다.   동물적인것을 추구하지 말고 인간적인 성질을 추구해라.   無常(Anicca), 無我(Anatta),苦(Dukkha)을 깨닫고  최상의 지혜를   얻을 것이다. --이것이 담마의 핵심이다.   4)마음의 평화 없이는 진정한 성공은 없다   재산은 오만을 낳고, 오만은 다시 불안정과 불행을 낳는다   성공적인 사람은 위대한 정신적인 이해를 갖고있다.   道(Magga)와 果(Phala)의 지혜를 포함한 통찰력은 최상의 지혜요   정신적인 힘이다.   ***道와 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4가지 깨달음의 각 단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道의 마음은 정신적 오염원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며,     果의 마음은 도가 만들어낸 그 경지의 해탈을 경험하는 역할을 한다.   세속의 철학이나 과학적 지식이 아무리 깊더라도  通察智의 첫 번째   단계인 區別智의 깊이와 고귀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5)지혜가 깊을 수록 마음은 평화롭다.   6)자유로운 사람은 갈망과 슬픔에 휩싸이지 않는다.   화를 내거나 화가 났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가 나의 분노에 의하여   완전히 압도당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가 나를 화나게 만든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내가 화를 내도록 하는    것을 내가 허용한다는 뜻이다. 즉, 나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결국 상대의 손바닥에 고인 물과 같은 신세다    따라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분노나 갈망에 휘말려 든다면 더 이상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자만, 오만,질투도 마찬가지다.    명상가는 마음안에 번뇌가 있는 것이 부자유라는 것을 안다.   7)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8)마음의 평화와 마음의 힘은 같은 것이다.    나 스스로 마음을 보살필 수 없을 때 사소한 것에 의해 온종일 분노를    느낄 것이다. 분노를 관찰해라, 무엇이 중요한가?    결코 마음의 평화만큼 귀중한 것은 없다    마음의 평화가 근본적인 자유다. 자유는 마음의 평화를 내포한다.   9)당신이 알아차리는 순간 사라진다.    강한 마음챙김과 집중으로 통찰명상의 깊은 부분에 이르면    통찰지혜(Vipassana Nana)가 일어나 정신적, 물질적 현상의 본질을    꿰뚫고 들어가 모든 조건지어진 것들은  원인과 결과의 과정을 거친    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을 非我心이라고 한다(모든 것들은 통제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것)    (Dhammanupassana)-법에 대한 마음챙김    (Kayanupassana)-몸에 대한 마음챙김    (Vedananupassana)-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Cittanupassana)-의식에 대한 마음챙김    시간이 허락하는 한 평화 가운데 살아라. 마음의 평화만큼 귀중한 것은 없다    마음의 평화가 길수록 마음의 자유가 길어진다.     최상의 道와 果, 지혜(Nana)도 이 수행을 통하여 성취 할 수 있다.   10)당신이 할 수 있다면 매 순간이 명상의 시간이다.  출처: http://cafe.naver.com/sangdomeditatio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542  
105    해후-- 아침의 명상 댓글:  조회:2603  추천:61  2009-01-04
아침의 명상 ♤ 벽(癖) ♤ 花不可以無蝶, 山不可以無泉, 石不可以無苔, 화불가이무접, 산불가이무천, 석불가이무태, 水不可以無藻, 喬木不可以無藤蘿, 人不可以無癖. 수불가이무조, 교목불가이무등라, 인불가이무벽 꽃에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 샘이 없어서는 안된다. 돌에는 이끼가 있어야 제격이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 수 없다. 교목엔 덩쿨이 없어서는 안되고, 사람은 벽(癖)이 없어서는 안된다. “홀로 걸어가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예를 익히는 것은 왕왕 벽(癖)이 있는 자만이 능히 할 수 있다”고 박제가는 힘주어 말한다. 미치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홀로 걸어가는 정신이란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이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이것저것 따지기만 해서는 전문의 기예 즉 어느 한 분야의 특출한 전문가가 될 수 없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 바로 벽이다. function showSideViewForScrapInfo(curObj, userid, planetUserid, targetNick) { var sideView = new SideView('nameContextMenu', curObj, userid, planetUserid, '\uBA85\uC0C1', targetNick, '15yIn', '', '\u6CD5\u6B78(\uBC95\uC758 \uADC0\uC758\uCC98)', "unknown"); sideView.hideRow("member"); sideView.hideRow("planet"); sideView.showLayer(); } function winPopup() { window.open('http://cafe.daum.net/_service/home?grpid=UqR0', 'DaumPlanet', 'width=936,height=672,resizable=yes,scrollbars=yes'); return; }
104    다시 걷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댓글:  조회:2448  추천:77  2008-12-04
한두 살 때 우리는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이제 다시 걷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천천히, 기쁘게, 편안하게 걷는 것입니다.며칠만 해보면 그렇게 걸을 수 있게 됩니다.그대가 깊은 편안함과 평화 속에 걷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발걸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 마음다함의 씨앗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대개 그것에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행복이란   미래에만 집을 사고 나면, 차를 사고 나면, 혹은 박사 학위를 받고 나면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과 몸을 다해 몸부림치며,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평화와 기쁨, 파란 하늘, 푸른 잎사귀,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를   보려 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합격하고, 집을, 또 차를 샀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행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찾아내어 그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 우선 평화롭게 걷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모든 것이 그대 발걸음에 달려 있습니다.  <틱낫한의 "미소짓는 발걸음" 중에서>
103    이 땅을 걷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댓글:  조회:2401  추천:71  2008-12-04
<틱낫한님의 말씀중에서>行禪은 걸으면서 하는 冥想이다. 천천히 느긋하게 걸으며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띈다. 이렇게 할 때 편안함은 깊어지고 우리의 걸음은 지상에서 가장 안정된 사람의 걸음이 된다.모든 슬픔과 불안이 사라지고 평화와 환희가 우리 가슴에 차오른다.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약간의 시간, 깨어있는 마음, 행복하고 싶다는 소망만 있으면 된다.항상 폐의 리듬에 따르라. 숨을 조절한다거나 걸음을 통제하려고 하지말라. 그냥 숨과 걸음을 깊이 바라보라.걷다가 푸른 하늘, 언덕, 나무, 새같이 마음으로 접하고 싶은 것이 있거든 멈추어라. 멈춘 순간에도 깨어 있는 마음으로 숨쉬는 걸 잊어서는 아니된다. 다음과 같은 시구를 이용해 행선을 이용할 수도 있다. 선불교에서는 시와 수행이 항상 함께 한다.나 도착했네, 고향에 왔네.나 여기 있네, 지금 있네.나 굳건하네, 자유롭네.나 궁극의 진리에 머무르리.부처님은 탄생하셨을 때 일곱걸음을 걸으셨고,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 우리가 행선을 할 때에도 꽃은 필 수 있다. 우리의 발이 땅과 접하는 순간 연꽃, 튤립, 장미 같은 꽃이 발 밑에 피어 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런 방법으로 아름답게 수행한다면 우리가 가는 곳마다 꽃밭이 생기는 것을 우리 친구들은 보게 될 것이다.    '이 땅을 걷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임제선사가 한 말씀이다.물위를 걷거나 공중을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바로 이 땅을 걷는 게 기적이다. 땅은 너무나 아름답다. 우리 역시 아름답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걸어보라.
102    틱낫한의 걷기 명상 댓글:  조회:2905  추천:64  2008-12-04
-  걷기 명상   -걸으면서 명상하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가능하면 아름다운 장소에서 친구와 함께 아니면 홀로 걸어본다. 걷기 명상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걷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걷기 명상의 목적은 현재 순간에 존재하며 걸음걸음을 즐기면서 숨쉬기와 걷기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걱정 근심을 떨쳐버리고 미래나 과거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말고 단지 존재하는그 순간만을 향유하는 것이다.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같은 발걸음으로 걸어보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걷고 있지만 그 걸음은 보통 달리기와 같다. 그렇게 걸으면서 세상에 근심과 슬픔의 발자국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평화와 평정의 발자국을 찍듯 걸어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원한다면 어린아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한 걸음을 평화롭게 내디딜수 있으면 두 걸음 세 걸음... 그렇게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한 걸음을내딛는 것은  전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것이다. 걷기 명상은 훌륭한 수련 방법이다. 밖에서 걷기 명상을 할 때는 보통 때보다 좀 더 느리게 걸으면서 숨쉬기와 발걸음을 조화시킨다. 예를 들면 세 걸음 걸으면서 세 번 들이쉬기 호흡, 또 세 걸음 걸으면서 세 번 내쉬기 호흡을 한다. "들이쉬기, 들이쉬기, 들이쉬기, 내쉬기, 내쉬기, 내쉬기" 라고 말할 수도 있다. "들이쉬기"는 우리가 숨을 들이쉬는것을 확인하게 해 준다. 우리가 무엇이든 그 이름을 부를 때면 마치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그것은 실체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폐활량이 다르므로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세 걸음 대신 두 걸음이나 네 걸음으로 조절할 수도 있다. 들이쉬기와 내쉬기 호흡의 길이가 똑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 걸음에 세 번 들이쉬기 호흡을 네 널음에 네 번 내쉬기 호흡을 할 수도 있다. 당신이 걷는 동안 행복하고 평화롭고 즐겁다면 올바르게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발과 땅이 맞닿는 느낌을 알아차려라. 발이 땅에 입맞춤하듯이 걸어라. 우리는 땅에 많은 해로움을 끼쳤고 지금은 땅을 잘 돌봐야 할 시간이다. 땅의 표면에 평화와 고요를 가져와서 사랑의 교훈을 나누어야 한다. 그런 정신으로 걸어야 한다. 때로 나무나 꽃, 아이들이 노는 모습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멈추어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경우라도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 걷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호흡을 계속 따라가야 한다. 그러면 다시 걷고 싶어질 때 그냥 발걸음만 내딛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채며 걷는 걸음걸음은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 준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연연해하지 않는다면 삶은 현재 순간에만 존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명상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깨어서 알아차린다는 것은 누군가를 미워할 때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또한 몸이 불현함이  느껴질 때 불현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알아차리는 힘이 강해지면 몸과 마음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고통을 일으키는 생각이나 감정을 따라가지 않고 지금 현재에서 고요하게 쉬는 것 그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명상을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에 대한 절망이나 화,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에 마음이 따라가는 것을 멈추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멈추는 방법을 수련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들어설 수 있게 됩니다.         걱정하는 마음을 멈추고 쉴 것인가 아니면 계속 걱정할 것인가 화를 낼 것인가 아니면 행복할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단 멈추는 것을 선택하고 나면 모든 것들이 다 괜찮게 느껴질 것입니다.       마음챙김 호흡의 씨앗을 뿌리고 매일 매일 물을 주다 보면,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순간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분주하기 때문에 처음 명상을 할 때는 고요함과 휴식을 느끼면서 현재의 순간에 머무르기 어려울수 있습니다. 분주하게 떠돌아 다니는 마음을 멈추려고 애쓸수록 마음은 더 크게 저항합니다.   마음챙김 명상은 떠돌아 다니는 마음을 억누르거나 분주한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마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선 멈추지 않고 산만하게 움직이는 생각의 흐름이 강력한 습관으로 자리잡아 왔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습관을 벋어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앉은 자세에서 짧은 시간동안 5번이나 10번 호흡하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지금 여기'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과거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서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수련자는 안정과 자유 속에 산다."     불교에는 '無願(apranihita)'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바라는 것도 없고 목표하는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곧 우리 앞에 어떤 것을 두고 그것을 뒤쫓아 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특정한 목표나 목적지 없이 걷는 것 그 자체를 즐깁니다. 우리의 걸음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우리는 걷는 것 자체를 위해서 걷습니다.     현재의 순간에 온전하게 머물게 되면 당신의 감각들은 힘을 부여받게 되고 그러면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보다 선명히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당신은 보다 더 고요하고 선명하며 통찰력 있고 연민을 지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마음챙김 걷기를 수련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감정과 더 잘 연결되면서 감정을 수용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마음챙김 걷기를 합니다. 당신이 겪는 고통은 당신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은 당신의 일부이지만 그렇다고 당신의 전부도 아닙니다.   고통은 항상 수면 위로 떠오르려고 애씁니다. 당신이 고통의 소리를 듣고 돌봐 주는 방법을 모른다면, 고통에 점령되어 버리거나 고통을 부정하게 될 것입니다. 고통이나 감정을 억제하려고 하면, 당신의 정신에서 정체된 부분이 만들어집니다.   강렬한 감정은 올라온 후 한동안 머물다 사라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강렬한 감정이나 고통이 올라올 때마다 미음챙김 호흡과 걷기를 통해서 마음챙김 에너지로 그것들을 안아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부처님이 가르치신 첫 번째 숭고한 진리는 고통은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자각하는 것은 연민을 낳고 연민은 수행을 할 뜻을 낳습니다.     걷기명상을 하는 목적은 휴식을 얻고 멈춤을 수련하며 치유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101    아난다존자의 깨달음 -- 경행(經行) 댓글:  조회:2585  추천:65  2008-12-03
[제6장] 아난존자와 경행(걷기) 정진 ..................................................................................................................................[거해스님 著] 수행인의 좌선 중 허리를 펴고 눕고 싶을 때에도 역시 우선 심경의 변화부터(눕고 싶다는 생각을 망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자체를 관찰함으로서 생각의 뿌리 없이 움직이는 모습과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깨닫게 해주는 또 다른 형태의 수행의 主題가 되는 것이라 함) 관찰하여 '눕고 싶다, 눕고 싶다, 눕고 싶다.'를 관찰 인식하고 거기에 따라 관계되어 일어나는 모든 몸의 행동, 즉 다리를 펼 때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 다리 근육의 이완과 팽창 현상을 피부로 느끼며, 마음으로 '다리를 폄, 다리를 폄, 다리를 폄' 하며, 팔을 펴서 뒤로 돌릴때도 역시 다리의 동작을 살피듯 한다. 또 손이 방바닥에 닿았을 때는 '손이 닿음, 손이 닿음, 손이 닿음' , 허리를 펴고 누울 때는 '눕는다, 눕는다, 눕는다.' 몸이 완전히 닿아서 누웠을 때는 '누웠음, 누웠음, 누웠음'이라고 하여 몸의 모든 동작이 마음과 함께 끝난 다음에는 마음을 다시 아랫배의 일어남·사라짐에 집중시키되 만약에 누운 자세에서 아랫배의 운동 작용이 분명치 않아 스스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피부로 느낄 수 없을 때에는 자신의 두 손바닥을 아랫배의 배꼽 주위에 조용히 놓으면서 손의 동작을 관찰한 다음 손바닥으로 아랫배의 가벼운 진동 작용을 느끼도록 한다. 이와 같이 해서 맑은 정신으로 분명히 관찰하여 졸음에 떨어지거나 잠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서 1시간 정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처음 시작하는 수행인들에게는 가급적 누워서 정진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으며 다만 취침 전에 와선(臥禪)을 하도록 하는 것은 누우면 쉽게 잠이 들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오랜 시자였던 아난존자는 부처님 생존 당시 오직 수다원과(Soatapanna) - 성문 4과 중의 하나로서 부동지(不動地)에 처음 든 지위 - 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다음 가섭 존자에 의해서 오백(五百) 아라한을 모아 부처님의 경전을 결집토록 하였다. 그러나 아난존자는 경전의 결집 전날 까지 아라한이 아니었기에 결집에 참가할 자격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난이 참석하지 못하면 경전의 외워냄이 불가능하여 경전이 결집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 때 아난은 아라한과(Arahatta phala) - 4과(果) 중의 최상위로서 멸적(滅賊) 혹은 번뇌가 다한 해탈자, 깨달은 자의 지위 - 의 성취를 결심하고 정진 노력 중이었으나 경전 결집 전날 밤에 이르도록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경행 정진인 까야같따사띠(Kayaghattasati:일정한 장소에서 마음을 걷는데 집중시키며 왔다 갔다 하는 것) - Kaya 몸, Ghatta 가고 옴, Sati 집중 -를 계속하는 데 경전 결집 날의 먼동이 터오고, 이때 스스로 느끼기를 '정진에는 행·주·좌·와에 균형을 지켜야 하는데 나는 너무 걷기만 했구나, 이제 처소에 들어가 누워서 허리를 쉬며 정진하겠다.'라고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며 마음 집중시켜 자리에 들었다. 그가 몸의 동작을 예리하게 정확히 관찰하면서 눕기 시작하여 머리가 베게에 채 닿기 전에 자신이 다리가 완전히 침상 바닥에 닿기 전 몸의 균형 잃은 진동의 변화 순간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모든 부담과 무거웠던 집을 일시에 내려버린 듯 가벼운 몸이 되고,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롭게 됐으며 법에 대해 의심이 없어 부처님의 경전을 결집하는 데 참석했던 것이다. 아난존자는 사실상 일반적 수행자세인 행·주·좌·와 사위의(行·住·坐·臥 四威儀)에 속하지 않은 자세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유일(唯一)한 분인 것이다. 누워서 정진을 1시간 정도 행하고, 다시 일어설 때도 누울 때처럼 모든 행동을 관찰, 마음을 집중시키며, 다음으로 걷기 내지 좌선으로 옮기면서 몸의 움직임에 마음이 함께 하였기 때문에 간단이 없고 흐트러짐이 없어서 적정(寂靜)해졌을 때, 삼매가 굳고 깊어지므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은 아주 미세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마음 집중력은 응축되어 그 힘이 마치 수소가 응축 극점에 달하여 조그만 충격에도 가공스러운 폭발력을 내듯이, 모든 번뇌를 처리하는 무서운 힘을 갖게 된다. 동시에 깊은 내관을 이루게 될 때, 큰 깨달음은 일순간에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어느 때, 어느 곳일지 예측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인들이 적은 쉬임과 번뇌의 침입을 가벼이 여기고 마음집중을 간단(間斷)히 하게 한다면 삼매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깨달음은 자꾸만 지연되는 것이며, 이것은 마치 나무와 나무의 마찰로 불을 일으키려는 사람이 자주 쉼으로 해서, 나무와 나무 사이에 충분한 열을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수행인의 마음집중수행에 조그만 간격이라도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인내로써 어려움을 극복하며, 큰 용기로써 하나의 현상도 놓치지 않으며 용맹스럽게 관찰하며, 굳은 결정심으로 정진하며, 깨달음에 대한 확신과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대해 신심을 가지고 수행해 나간다면 모든 정진적 장애가 제거되고 마음집중이 깊어지므로 삼매를 이루게 된다. 공부 즉 수행을 신심있게 바르게 성실하게 지어가면 수행에 진전 있음을 하루가 다르게 본인 자신이 느끼게 된다. 그 예로서 마음의 견고한 집중상태와 졸음의 적음, 망상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실 등 본인 자신이 너무도 선명하게 느끼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다. 수행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잠을 잘 때에도 자신의 아랫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깊은 잠이 들 때까지 계속 관찰하게 되고 또는 잠이 들었다가 깨어날 때에도 잠시의 공간 없이 곧바로 일어남과 사라짐을 역력히 하게 되기도 하며 더러는 잠을 자기 위해 누웠다가 2시간, 3시간 정도를 정진으로 보내게되는 경우도 있으며, 정신이 더욱 맑아지며, 이러한 때에는 육체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이 너무도 선명하여,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오히려 잠을 자고 난 다음보다 더 상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와 같이 극히 작은 행동 하나라도 놓침 없이 하나하나의 현상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관찰하여 그 현상의 실체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하나의 현상도 놓침 없이 관찰해가는 것은 마치 바다 속에 돌을 던져 쌓으려는 노력과 똑같은 것이다. 돌을 물 속에 던져 넣을 때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중단하면 돌을 쌓을 수 없게 되나 계속 쉬임없이 던져 넣었을 때 돌 하나하나가 각기 자리 메움의 역할을 하여 어느 날 수면위로 차오르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폴로네이즈/ 산속 물소리 / 나이팅게일 ..........................................................................생활불교 : http://cafe.daum.net/mercylife
100    여래는 왜서 이 세상에 출현하는가? 댓글:  조회:2508  추천:69  2008-10-29
1240. 삼법경(三法經)8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바사닉왕은 혼자서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온 세상에서 좋아하지 않는 여기 세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늙음․병듦․죽음이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은 온 세상 누구나 다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세상이 좋아하지 않는 이 세 가지 법이 없었더라면 모든 불세존께서는 세상에 나오지 않으셨을 것이요, 또 세상 사람들도 모든 불여래께서 깨달으신 법을 사람들을 위해 널리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좋아하지 않는 세 가지 법인 늙음․병듦․죽음이 있기 때문에, 모든 불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셨고, 또 세상 사람들도 모든 불여래께서 깨달으신 법을 널리 연설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사닉왕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한 쪽에 물러나 앉아서, 자신이 생각한 것을 부처님께 자세히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대왕이여,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여기 세 가지 법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다 좋아하지 않는 여기 세 가지 법이 있나니, 그것은 늙음․병듦․죽음입니다.……(내지)……세상 사람들도 여래가 깨달은 법을 사람들을 위해 널리 연설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대왕께서 타고 다니는 보배 수레도 결국에는 낡아 부서질 것이니 이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변하고 바뀌어 마침내는 늙고 말 것입니다. 오직 여래의 바른 법만은 쇠하거나 늙는 모양 없나니 그 바른 법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안온한 곳으로 가게 되리. 다만 범부들은 쇠하고 늙어져 추하고 더러운 나쁜 모습으로 변하리니 쇠하고 늙음을 밟고 또 밟는 것은 도깨비에 홀린 어리석은 범부의 마음이라네. 사람이 비록 백 살을 살더라도 죽음이 닥칠까 언제나 걱정하고 늙고 병듦을 다투어 좇으면 틈을 엿보다가 곧 해를 끼치리.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바사닉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85) 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4권 5번째 소경과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18권 제26 사의단품(四意斷品) 6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一二四○)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時。波斯匿王獨靜思惟。作是念。此有三法。一切世間所不愛念。何等為三。謂老.病.死。如是三法。一切世間所不愛念。若無此三法世間所不愛者。諸佛世尊不出於世。世間亦不知有諸佛如來所覺知法為人廣說。以有此三法世間所不愛念。謂老.病.死故。諸佛如來出興於世。世間知有諸佛如來所覺知法廣宣說者。波斯匿王作是念已。來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以其所念。廣白世尊 佛告波斯匿王。如是。大王。如是。大王。此有三法。世間所不愛念。謂老.病.死。乃至世間知有如來所覺知法為人廣說。爾時。世尊復說偈言  王所乘寶車  終歸有朽壞 此身亦復然  遷移會歸老 唯如來正法  無有衰老相 稟斯正法者  永到安隱處 但凡鄙衰老  醜弊惡形類 衰老來踐蹈  迷魅愚夫心 若人壽百歲  常慮死隨至 老病競追逐  伺便輒加害  佛說此經已。波斯匿王聞佛所說。歡喜隨喜。作禮而去 //
99    1166. 수족유경(手足喩經) 손이 있어 잡고 발이 있으니 걷는다. 댓글:  조회:2123  추천:97  2008-10-25
1166. 수족유경(手足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이 있기 때문에 잡고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발이 있기 때문에 가고 올 수 있다는 것을 알며, 관절(關節)이 있기 때문에 굽히고 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배가 있기 때문에 배고프고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눈이 있기 때문에 눈이 사물과 접촉함을 인연해 생기는 안에서의 느낌 즉,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이 생긴다. 귀․코․혀․몸․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비구들아, 만일 손이 없으면 취하고 버림을 알지 못할 것이요, 발이 없으면 가고 옴을 알지 못할 것이며, 관절이 없으면 굽히고 폄을 알지 못할 것이요, 배가 없으면 배고프고 목마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만일 눈이 없으면 눈이 사물과 접촉함을 인연해 생기는 안에서의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등이 없을 것이다. 귀․코․혀․몸․뜻도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一一六六) 如是我聞 一時。佛住拘睒彌國瞿師羅園 爾時。世尊告諸比丘。有手故知有取捨。有足故知有往來。有關節故知有屈伸。有腹故知有飢渴。如是。比丘。有眼故眼觸因緣生受。內覺若苦.若樂.不苦不樂。耳.鼻.舌.身.意亦復如是 諸比丘。若無手則不知取捨。若無足則不知往來。若無關節則不知有屈伸。若無腹則不知有飢渴。如是。諸比丘。若無眼則無眼觸因緣生受。內覺若苦.若樂.不苦不樂。耳.鼻.舌.身.意亦復如是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98    995. 아련야경(阿練若經) 아련야비구는.... 댓글:  조회:2551  추천:75  2008-10-01
995. 아련야경(阿練若經)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얼굴이 아주 잘생긴 어떤 천자(天子)가 새벽에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있었는데, 그의 온몸에서 나오는 광명이 기수급고독원을 두루 비추었다. 그 때 그 천자가 게송으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련야(阿練若)의 비구8)는 텅 비고 한가한 곳에 머물면서 고요한 가운데 범행(梵行)을 닦고 하루 한 끼만을 먹고 있는데도 무슨 까닭으로 그 얼굴빛이 그리도 선명합니까?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지나간 일에 대해 근심이 없고 다가올 일에 대해 반겨하지 않으며 현재에는 얻는 그대로 따르고 바른 지혜로 생각을 매어 두며 먹는 것에도 생각을 거두었기에 얼굴빛이 언제나 곱고 밝다네. 다가올 일에 마음이 치달려 생각하고 지나간 일을 돌아보고 근심하고 뉘우치며 어리석음의 불로 제 자신을 태우는 것 마치 우박이 초목을 때림과 같네. 그 천자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오래 전에 바라문을 보았는데 그 바라문은 반열반을 얻어 모든 두려움에서 이미 벗어났고 세상 은애까지 모두 벗어났네. 그 때 그 천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곧 사라지더니 나타나지 않았다. 7) 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1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8) 아련야를 팔리어로는 ara a라고 한다. 번역하여 한림(閑林)․한정처(閑靜處)라고 하는데, 아려야 비구란 대중들과 떨어져 산 속의 굴이나 숲 속의 한가롭고 조용한 곳에서 수행하는 비구를 말한다. (九九五)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時。有一天子。容色絕妙。於後夜時來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身諸光明遍照祇樹給孤獨園 時。彼天子而說偈問佛  阿練若比丘  住於空閑處 寂靜修梵行  於一坐而食 以何因緣故  顏色特鮮明  爾時。世尊說偈答言  於過去無憂  未來不欣樂 現在隨所得  正智繫念持 飯食繫念故  顏色常鮮澤 未來心馳想  過去追憂悔 愚癡火自煎  如雹斷生草  時。彼天子復說偈言  久見婆羅門  逮得般涅槃 一切怖已過  永超世恩愛  時。彼天子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
97    창밖의 감은 익었네 댓글:  조회:3553  추천:113  2008-10-01
  보리수선원 앞마당의 홍시나무  감은 납작한 반면 홍시는 길쭉~   사진은 래일이면 당장 따 먹을수 있는 홍시!  홍시보다 감이 먼저 익었고 달기는 감이 더 단것같았지만 사람들은 홍시를 먹기를 더욱 좋아한다. 특히 홍시는 아침 공복에 먹으면 심장에 좋다고 한다....  사람의 손이 닿일 정도로 아주 낮게 달린 주렁주렁 홍시들...  잘 익은 홍시    감나무는 키가 컸고 감은 대부분이 높은 곳에 달려있었다. 가지끝에 달린 잘 익은 감은 어찌 뜯을 방법이 없었다..... 아니 그러니깐 더욱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선원앞마당에  있는 감나무에서 잘 익은 감을 몇개 따서 조심스레 스님방을 노크했다... 스님께서 감을 보시더니 반갑게 웃으면서 손으로 살짝 눌러 보시고 잘 익었구나 하고는 이내 말씀하셨다. 주인하고 얘기를 하고 뜯었는냐고... 감은 무르익어 땅에 떨어지도록 뜯는 사람이 없어 제가 대신 몇개를 뜯어 아래집아저씨한테도 드렸다고 얘기했다....스님께서 창밖을 내다 보시더니 이후에는 저 앞마당의 할머니하고 얘기를 하고 뜯으라고 부탁하셨다. 그리고는 감을 사양했다. ... 내가 방에 두고 드시라고 하니 출가자는 방에다 음식을 두지 않는다고 상냥히 말씀하신다...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당황해났다. 출가자로서 철저히 계를 지키는 스님께 비긴다면 나는 아직도 너무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지금 내 방에는 먹을것이 있지 않는가... 물론 어느 보살님이 갖다 놓은것이게겠지만....  스님은 하루일식외에 군음식을 절대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미얀마에서 수행을 하시다가 한국에 돌아오셔서 환경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두타행을 하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지금 할수 있는 일은 하루일식밖에 없다면서 그것만은 철저히 지키는 스님이시다.... 
96    업으로 보는 상업의 성공과 실패 댓글:  조회:2719  추천:83  2008-09-27
9 - 상업을 설한 경 79∥ 그때에 사리뿟따 존자께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께 예배한 뒤 적당한 장소에 앉았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실패에 이르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넘어서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사문과 바라문을1) 친견하고서 “존자시여! 필요한 물품을 저에게 말씀하십시오!”라고 청한다. 요청한 물품을 그 사람은 공양 올리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 생에서 임종을 맞은 뒤에 이 인간계에 다시금 태어난다면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실패에 이른다.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사문과 바라문을 친견하고서 “존자시여! 필요한 물품을 저에게 말씀하십시오!”라고 청한다. 요청한 물품을 그 사람은 원하는 것만큼 공양 올리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 생에서 임종을 맞은 뒤에 이 인간계에 다시금 태어난다면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사문과 바라문을 친견하고서 “존자시여! 필요한 물품을 저에게 말씀하십시오!”라고 청한다. 요청한 물품을 그 사람은 원하는 것만큼 공양 올린다. 그 사람은 그 생에서 임종을 맞은 뒤에 이 인간계에 다시금 태어난다면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는다.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사문, 바라문을 친견하고서 “존자시여! 필요한 물품을 저에게 말씀하십시오!”라고 청한다. 요청한 물품을 그 사람은 원하는 만큼 보다 많이 공양 올린다. 그 사람은 그 생에서 임종을 맞은 뒤에 이 인간계에 다시금 태어난다면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넘어선다. 사리뿟따여!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실패에 이르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이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이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이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열심히 노력한 상업은 다른 이들과 상업적으로 동일한 조건이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넘어서는 근본원인과 이유는 이것이다.[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아홉 번째 경
95    상인이 재물을 증장시키는 방법 댓글:  조회:2638  추천:87  2008-09-25
9 - 첫 번째 상인과 연관된 경 19∥ 빅쿠들이여!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상인은1) 얻지 못한 재물을 얻고 또는 얻은 재물을 증장시키기에 적합하지 않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어떤 상인은 오전에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하지 않는다. 낮에도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하지 않는다. 저녁에도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하지 않는다. 빅쿠들이여! 이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상인은 얻지 못한 재물을 얻고 또는 얻은 재물을 증식시키기에 적합하지 않다.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빅쿠는 얻지 못한 선善을 얻고 또는 얻은 선을 증가시키기에 적합하지 않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이 가르침에서 빅쿠는 오전에 사마디의 대상에 훌륭히 머물지 않는다. 낮에도 사마디의 대상에 훌륭히 머물지 않는다. 저녁에도 사마디의 대상에 훌륭히 머물지 않는다. 빅쿠들이여! 세 가지의 이 조건을 갖춘 빅쿠는 얻지 못한 선을 얻고 또 얻은 선을 증가시키기에 적합하지 않다. 빅쿠들이여!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상인은 얻지 못한 재물을 얻고 또 얻은 재물을 증장시키기에 적합하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어떤 상인은 오전에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한다. 낮에도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한다. 저녁에도 사고파는 일을 훌륭히 관리한다. 빅쿠들이여! 이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상인은 얻지 못한 재물을 얻고 혹은 얻은 재물을 증식시키기에 적합하다. 빅쿠들이여! 이와 같이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빅쿠는 얻지 못한 선을 얻고 또 얻은 선을 증가시키기에 적합하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빅쿠는 오전에 사마디의 대상에2) 훌륭히 머문다. 낮에도 사마디의 대상에 훌륭히 머문다. 저녁에도 사마디의 대상에 훌륭히 머문다. 빅쿠들이여! 이 세 가지의 이 조건을 갖춘 빅쿠는 얻지 못한 선을 얻고 또 얻은 선을 증가시키기에 적합하다.[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아홉 번째 경 10 - 두 번째 상인과 연관된 경 20∥ 빅쿠들이여!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상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물이 증장하고 번창하게 된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어떤 상인은 지혜의 눈이 있다. 노력이 있다.3) 의지처를 구족하였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상인은 지혜의 눈이 있는가? 빅쿠들이여! 훌륭한 상인은 ‘이 물품은 이같이 사서 이같이 판다면 기본 투자와 이익은 어느 정도일 것이다’라고 팔아야하는 물건을 잘 안다.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상인은 지혜의 눈이 있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상인은 노력이 있는가? 빅쿠들이여! 훌륭한 상인은 팔아야하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능숙하다.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상인은 노력이 있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의지처를 구족하였는가? 빅쿠들이여! 어떤 부유하고 많은 재물과 소유물을 지닌 장자 혹은 장자의 아들들이 ‘이 상인은 지혜의 눈이 있고 노력하고 있다. 처자식을 부양하며 또한 우리들에게 적절한 때에 이자를 줄만한 능력이 있다’라고 안다. 장자 혹은 장자의 아들들은 그 상인에게 ‘친구 상인이여! 나에게서 이 물품들을 가져가서 처자식을 부양하게나! 나에게도 적절한 때에 이자를 주게나!’라고 팔 물품을 권한다.4)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상인은 의지처를 구족하였다. 빅쿠들이여! 이 세 가지의 이 조건을 갖춘 상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물이 많아지고 번창하게 된다.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세 가지의 법을 구족한 빅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善이 증가하고 번창하게 된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빅쿠들이여! 이 가르침에서 빅쿠는 지혜의 눈이 있다. 노력이 있다. 의지처를 구족하였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빅쿠는 지혜의 눈이 있는가? 빅쿠들이여! 빅쿠는 ‘모든 삼계의 법은 고통이다’라고 여실히 안다. ‘이 갈애는 고통이 일어나는 근원이다’라고 여실히 안다. ‘이 열반은 고통이 소멸한 곳이다’라고 여실히 안다. ‘팔정도의 법은 열반에 이르게 하는 행도이다’라고 여실히 안다.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빅쿠는 지혜의 눈이 있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빅쿠는 노력이 있는가? 빅쿠들이여! 이 가르침에서 빅쿠는 불선을 제거하고 선을 완성시키기 위한 힘과 굳건한 정진력과 선을 행하는 의무를 포기하지 않는다.5) 빅쿠들이여! 그와 같이 빅쿠는 노력이 있다. 빅쿠들이여! 어떤 식으로 빅쿠는 의지처를 구족하였는가? 빅쿠들이여!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많은 견문을 지녔고 경을 능숙하게 암송하며 경논經論 율을 보유한 빅쿠들에게 적당한 때마다 친견하여 “존자시여! 이 경은 무엇입니까? 이 경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한다.6) 숙고하여 검토한다.7) 많은 지식을 가진 존자들은 그 빅쿠에게 열려있지 않은 것도 열어서 보인다.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 자리 역시 선명히 드러내 보인다. 갖가지 의혹을 가진 법에서도 의혹을 제거시킨다. 빅쿠들이여! 이와 같이 빅쿠는 의지처를 구족하였다. 빅쿠들이여! 이 세 가지의 법을 구족한 빅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이 증가하고 번창하게 된다.[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열 번째 경 (두 번째 마차를 만드는 장인과 연관된 경) 첫 번째 바나와라는8) 끝났다. 강종미역 <앙굿따라 니까야> 에서 발취.
94    769. 바라문경(婆羅門經) 대승이란.... 댓글:  조회:2965  추천:77  2008-09-13
769. 바라문경(婆羅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5) Giribbaja라고 하며, 왕사성(王舍城)의 옛 성을 말함. 그 때 존자 아난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려고 하였다. 그 때 흰 마차를 탄 어떤 생문(生聞) 바라문이 있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좌우에서 그를 따랐다. 그는 늘 흰 말․흰 수레․흰 고삐․흰 채찍을 사용하였고, 머리에는 흰 모자를 쓰고 흰 일산을 썼으며, 손에는 흰 총채를 잡고 흰 옷을 입고 흰 영락(瓔珞)을 걸쳤으며, 흰 향(香)을 몸에 바르는 등 모두 흰 빛깔을 선호하였다. 가르침을 듣고 읽고 외우기 위해 사위성을 나와 숲 속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말하기를 '훌륭한 수레구나, 훌륭한 수레구나. 범천의 수레[婆羅門乘]6)라고 할만하구나'라고 하였다. 그 때 존자 아난은 바라문의 권속들과 모든 차림들이 온통 흰 빛깔인 것을 보고는, 성에 들어가 걸식하고 정사로 돌아와, 가사와 발우를 두고 발을 씻은 뒤에,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늘 이른 새벽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러 사위성으로 들어가다가 생문 바라문이 흰 마차를 탔는데, 그 권속들과 모든 차림들이 온통 흰 빛깔이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훌륭한 수레구나, 훌륭한 수레구나. 범천의 수레라 할만하구나'라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우리는 바른 법(法)과 율(律)에서는 그런 것을 세속 사람의 수레라고 합니까, 아니면 범천의 수레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세속 사람의 수레요, 우리의 법과 율이나 범천의 수레는 아니다. 아난아, 우리의 바른 법과 율의 수레는 하늘 수레․범천 수레․큰 수레[大乘]로서 번뇌의 군사를 능히 항복 받는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아난아, 어떤 것을 우리의 바른 법과 율의 수레․하늘 수레․범천 수레․큰 수레로서 번뇌의 군사를 능히 항복 받는다고 하는가? 그것은 이른바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니, 즉 바른 견해와 ……(내지)……바른 선정을 말한다. 아난아, 이것을 '바른 법과 율의 수레․하늘 수레․범천 수레․큰 수레로서 번뇌의 군사를 능히 항복 받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믿음과 계율로 법의 굴레를 삼고 부끄러워함[?愧]으로 긴 고삐를 삼아 바른 생각으로 잘 지켜 가지면 그를 일러 훌륭한 제어자라고 하느니라. 평정과 삼매로 멍에를 삼고 지혜와 정진으로 바퀴를 삼으며 집착 없음과 참음으로 갑옷을 삼으면 안온하고 법답게 행할 수 있다. 바로 곧게 나아가 물러나지 않고 근심 없는 곳으로 아주 가나니 지혜로운 사람은 싸움의 수레 탔더라도 지혜 없는 원수를 무찔러 항복 받네. 6) brahmay na라고 함. Brahma는 통상적으로 범(梵) 즉 범천으로 번역되며, br hma a는 바라문(婆羅門) 즉 바라문 종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brahmay na는 범승(梵乘)으로 번역해야 마땅하다. 고대 인도인들은 범천(梵天)에 올라갈 수 있는 법을 범행(梵行) 또는 범승(梵乘)이라고 하였다. (七六九)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尊者阿難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 時。有生聞婆羅門乘白馬車。眾多年少翼從。白馬.白車.白控.白鞭。頭著白帽.白傘蓋。手執白拂。著白衣服.白瓔珞。白香塗身。翼從皆白。出舍衛城。欲至林中教授讀誦。眾人見之咸言。善乘。善乘。謂婆羅門乘 時。尊者阿難見婆羅門眷屬.眾具一切皆白。見已。入城乞食。還精舍。舉衣鉢。洗足已。往詣佛所。稽首禮足。退坐一面。白佛言。世尊。今日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見生聞婆羅門乘白馬車。眷屬.眾具一切皆白。眾人唱言。善乘。善乘。謂婆羅門乘。云何。世尊。於正法.律。為是世人乘。為是婆羅門乘 佛告阿難。是世人乘。非我法.律婆羅門乘也。阿難。我正法.律乘.天乘.婆羅門乘.大乘。能調伏煩惱軍者。諦聽。善思。當為汝說。阿難。何等為正法.律乘.天乘.婆羅門乘.大乘。能調伏煩惱軍者。謂八正道。正見。乃至正定。阿難。是名正法.律乘.天乘.梵乘.大乘。能調伏煩惱軍者 爾時。世尊即說偈言  信戒為法軛  慚愧為長縻 正念善護持  以為善御者 捨三昧為轅  智慧精進輪 無著忍辱鎧  安隱如法行 直進不退還  永之無憂處 智士乘戰車  摧伏無智怨    //
93    일곱가지 번뇌 댓글:  조회:2916  추천:98  2008-09-03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제 일곱 가지 번뇌를 설명하리니 너희들은 잘 명심하라." "그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일곱 가지 번뇌란 무엇인가. 첫째는 탐욕 번뇌요, 둘째는 성냄 번뇌며, 셋째는 교만 번뇌요, 넷째는 어리석음 번뇌며, 다섯째는 의심 번뇌요, 여섯째는 소견 번뇌며, 일곱째는 욕심 세계와 형상 세계의 탐욕 번뇌니라. 비구들이여, 이 일곱 가지 번뇌가 있어 중생들로 하여금 영구히 어둠 속에서 그 몸을 결박해 세상에 흘러 다니면서 쉴 새가 없게 하며 또 생각의 근본을 알지 못하게 하느니라. 마치 흰 소와 검은 소가 한 굴레에 매어 함께 끌면서 서로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탐욕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 결박되어 서로 떠나지 못한다. 그 밖의 다섯 가지 번뇌도 서로 따라 다닌다. 다섯 가지 번뇌가 일곱 가지 번뇌를 따라 다니는 것도 그와 같느니라. 만일 범부로서 이 일곱 가지 번뇌에 묵이면 생사에 흘러 다니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의 근본도 알지 못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이 일곱 가지 번뇌로 말미암아 곧 지옥, 축생, 아귀의 세 갈래 나쁜 길이 있다. 또 이 일곱 가지 번뇌로 말미암아 악마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이 일곱 가지 번뇌에는 또 일곱 가지 약이 있다. 일곱 가지 약이란 무엇인가. 탐욕 번뇌는 생각 각의(覺意)로 다스리고, 성냄 번뇌는 법 각의로 다스리며, 삿된 소견 번뇌는 정진 각의로 다스리고, 욕심 세계 번뇌는 기쁨 각의로 다스리며, 교만 번뇌는 쉼 각의로 다스리고 의심 번뇌는 선정 각의로 다스리며, 무명 번뇌는 보호 각의로 다스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일곱 가지 번뇌는 일곱 가지 각의로써 다스린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내가 이직 불도를 이루지 못하고, 보살 행을 행할 때에 보리 나무 밑에 앉아 생각하였다. '욕심 세계의 중생들은 무엇에 얽매여 있는가'고. 다시 '이 중생들은 다 일곱 가지 번뇌 때문에 생, 사에 흘러 다니면서 영원히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지금 이 일곱 가지 번뇌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때에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이 일곱 가지 번뇌는 일곱 가지 각의로 다스려야 한다. 나는 일곱 가지 각의를 생각하자'고. 그래서 일곱 가지 각의를 생각하였을 때 곧 번뇌가 없어지고 마음이 해탈하여 위없는 바른 도를 성취하였고, 이레 동안 가부하고 앉아 다시 이 일곱 가지 각의를 깊이 생각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일곱 가지 번뇌를 버리려고 하거든 일곱 가지 각의를 수행하기를 생각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다. (三) 聞如是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我今當說七使。汝等善思念之 諸比丘對曰。如是。世尊。是時。諸比丘從佛受教 世尊告曰。云何為七。 一者貪欲使。二者瞋恚使。三者憍慢使。四者癡使。五者疑使。六者見使。七者欲世間使。 是謂。比丘。有此七使。使眾生之類。永處幽闇。纏結其身。流轉世間。無有休息。亦不能知生死根原。猶如彼二牛。一黑一白。共同一軛。共相牽引。不得相遠。此眾生類。亦復如是。 為此貪欲使.無明使所纏結。不得相離。其餘五使。亦復追從。五使適從。七使亦然。 若凡夫之人。為此七使所縛。流轉生死。不得解脫。不能知苦之元本 比丘當知。由此七使。便有三惡趣。地獄.畜生.餓鬼。由此七使。不能得度弊魔境界。 然此七使之法復有七藥。云何為七。 貪欲使者。念覺意治之。 瞋恚使者。法覺意治之。 邪見使者。精進覺意治之。 欲世間使者。喜覺意治之。 憍慢使者。猗覺意治之。 疑使者。定覺意治之。 無明使者。護覺意治之。 是謂。比丘。此七使用七覺意治之 比丘當知。我本未成佛道為菩薩行。坐道樹下。便生斯念。欲界眾生為何等所繫。 復作是念。此眾生類為七使流轉生死。永不得解。我今亦為此七使所繫。不得解脫。 爾時。復作是念。此七使為用何治之。 復重思惟。此七使者當用七覺意治之。 我當思惟七覺意。思惟七覺意時。有漏心盡。便得解脫。後成無上正真之道。七日之中結跏趺坐。重思惟此七覺意。是故。諸比丘。若欲捨七使者。當念修行七覺意法。如是。諸比丘。當作是學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92    행복경--세상에서 으뜸가는 행복을 말씀해 주십시오.... 댓글:  조회:2385  추천:90  2008-08-23
행복경258"많은 신과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다.으뜸가는 행복을 말씀해 주십시오."259"어리석은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고 어진이와 가깝게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0분수에 알맞은 곳에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고스스로 서원을 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1지식과 기술을 쌓고 그위에 말솜씨가 뛰어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2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3남에게 베풀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적을 사랑하고 보호하는것, 비난을 받지 않게 처신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4악을 싫어해 멀리하고 술을 절제하고 덕행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5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와, 때로는 가르침을 듣는 것,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6인내하고 온화하게 말하고 수행자들을 만나고,때로는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7수행을 하고 깨끗하게 행동하고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열반의 경지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8세상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티가 없이 편안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269이러한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이 닥쳐도 실패하지 않는다.어느 곳에서나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 숫타니파타에서 -
91    1162. 노부부경(老夫婦經) 늙은 따오기 댓글:  조회:2598  추천:94  2008-08-18
1162. 노부부경(老夫婦經)2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존자 아난도 세존의 뒤를 따라갔다. 그 때 두 늙은 남녀가 있었는데, 그 둘은 부부로서 나이가 많아 감각기관은 다 허물어지고 등은 휘어진 갈고리처럼 굽었다. 그들은 마을 뒷골목 쓰레기를 사르는 곳에서 불을 향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 그 늙은 부부를 보니, 나이는 많은데다 미련스럽고 갈고리처럼 등은 굽었으며 불을 향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늙은 따오기가 욕심에 가득 차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두 늙은 부부를 보시고 나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이가 많은데다 미련스럽고 갈고리처럼 등까지 굽었으며, 불을 향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늙은 따오기가 욕심에 가득 차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저 두 부부를 보았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두 늙은 부부는 나이 젊어 건강한 몸이었을 적에 부지런히 재물을 모았더라면 사위성에서 첫째가는 부자 장자가 되었을 것이요,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워 부지런히 닦아 익혔더라면 아라한이라는 최고의 과(果)를 얻었을 것이다. 둘째로 왕성하고 건강한 몸이었을 적에 부지런히 재물을 모아놓았더라면 사위성에서 둘째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요,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웠더라면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하였을 것이다. 셋째 저들이 중년의 몸이었을 적에 부지런히 재물을 모아놓았더라면 사위성에서 셋째 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요,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웠더라면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증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이제 나이 많아 늙고 감각기능도 다 허물어졌으며 모아놓은 재물도 없고 방편도 없으며 감당할 능력도 없어, 재물을 구하려해도 능력이 없게 되었고 또한 사람의 세상을 벗어나는 법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범행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어서 재물을 얻지 못했고 지나간 옛 일을 생각하면서 땅에서 조는 모습 굽은 활 같네. 범행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젊어서 재물을 얻지 못했고 마치 저 늙은 따오기가 빈 못을 지키다 죽는 것 같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一一六二)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世尊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尊者阿難從世尊後 時。有二老男女。是其夫婦。年耆根熟。僂背如鉤。諸里巷頭。燒糞掃處。俱蹲向火 世尊見彼二老夫婦。年耆愚老。僂背如鉤。俱蹲向火。猶如老鵠。欲心相視。見已。告尊者阿難。汝見彼夫婦二人。年耆愚老。僂背如鉤。俱蹲向火。猶如老鵠。欲心相視不 阿難白佛。如是。世尊 佛告阿難。此二老夫婦。於年少時盛壯之身。勤求財物者。亦可得為舍衛城中第一富長者。若復剃除鬚髮。著袈裟衣。正信.非家.出家學道。精勤修習者。亦可得阿羅漢第一上果。 於第二分盛壯之身。勤求財物。亦可得為舍衛城中第二富者。 若復剃除鬚髮。著袈裟衣。正信.非家.出家學道者。亦可得阿那含果證。 若於第三分中年之身。勤求財物。亦可得為舍衛城中第三富者。 若剃鬚髮。著袈裟衣。正信.非家.出家學道者。亦可得為斯陀含果證。 彼於今日。年耆根熟。無有錢財。無有方便。無所堪能。不復堪能。若覓錢財。亦不能得勝過人法 爾時。世尊復說偈言  不行梵行故  不得年少財 思惟古昔事  眠地如曲弓 不修於梵行  不得年少財 猶如老鵠鳥  守死於空池  佛說此經已。尊者阿難陀聞佛所說。歡喜奉行  
  671. 사력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의 소경에서 설한 것과 같으며, 다만 그와 다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룩한 제자로서 이 네 가지 힘을 성취하거든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나는 살아가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가? 만일 몸으로 깨끗하지 못한 행[行不淨行]을 행하고, 입으로 깨끗하지 못한 말[口不淨行]을 하며, 뜻으로 깨끗하지 못한 행[意不淨行] 등을 행하고, 온갖 삿된 탐욕을 일으켜 믿지 않고 게으르며, 정진하지 않고 뜻을 잃으며, 안정하지 않고 나쁜 지혜를 쓰며, 인색하고 이끌어주지 않으면, 그는 마땅히 살아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네 가지 힘이 있나니, 즉 깨달음의 힘[覺力]․정진의 힘[精進力]․죄 없음의 힘[無罪力]․포섭하는 힘[攝力]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힘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살아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쁜 이름에 대한 두려움․대중 속에서의 두려움․죽음에 대한 두려움․나쁜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 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六七一)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如上說。差別者。聖弟子成就此四力者。當作是學。我不畏不活。我何緣畏不活。若身行不淨行.口不淨行.意不淨行。作諸邪貪。不信.懈怠.不精進.失念.不定.惡慧.慳不攝者。彼應畏不活。我有四力。謂覺力.精進力.無罪力.攝力。有此四力成就故。不應畏如不活畏。如是惡名畏.眾中畏.死畏.惡趣畏亦如上說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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