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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치"아저씨
2015년 06월 12일 17시 21분  조회:2115  추천:1  작성자: 옛날옛적
서정시방 :
소설          ‘천치’  아저씨’          
                   (철령)              박 병대  
시 민종위의 위탁을 받고 시조선족지를 쓰던 정수는 K현의 당안실에가서 해방전쟁과 항미원조시기의 영웅인물의 자료를 수집하던 중 항미원조때 정찰영웅의 명부에서 <<천치웅>>이란 이름을 발견하고 슬그머니 놀랐다. 
  (이 분은  내 고향마을의 천아저씨와 동성이잖은가?   설사 그들이 친척간이 아니더라도 같은 희성이니 서로 아는 사이일지도 몰라.)
     전투영웅의 행방이 궁금한 정수는 천아저씨를 만나보려고  정거리뻐스역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느닷없는 봄눈이 사뿐사뿐 날리며 두볼을 간지럽힌다.
  “어이, 너 정수 아니야? “
    귀에 익은 목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린 정수는 고향마을에서   9년제 학교를 다닌 학교 동창생 영구를 발견하고 반가워 그의 손을 부등켜 쥐였다. 
    “야-  이게 정말 얼마만이야? 그동안 친구들 다  잘지내지?”
    “그래그래, 너도 부고를 받고오는길이겠구나?”
     “아니, 부고라니? 어디 뉘댁에서  초상이 났는데?”
    “난 니가 부고를 받고온줄 알았구나. 저기 현길이 아버지 알지?”
    “그래그래 알구말구, 우리생산대의 로사양원 천아저씨말이지?”
    “글쿠말구, 바로 그 ‘천치’아저씨가 엊저녁에 세상떴단다. 너 문상 안갈래? 동창들도 더러 모일건데...”
    “그래? 아차, 한발 늦었구나. 난 그분을 뵈러 가는길인데 이걸 어쩐담? 생전에 만나뵈지 못하고 , 이젠 그 어른 마지막길이라도 바래줘야겠구나.”
     ‘천치’아저씨에 대한  추억은 30여년전으로 일사천리 내달렸다. 50고개를 바라보는   중등키에 등이 약간 굽은 순박한 농부의 모습이 눈앞에 훤하다. 워낙 입에 자물통을 채웠는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얼굴에 해빛을 담고 고개를 끄덕이는것이 인사전부인 조용한 어른이였다.
   일년삼백륙십일을 생산대 대부에서 자면서 마구간을 청소하고  새벽일찍 일어나서 작두질하여 여물을 끓이고 밤에 말여물을 주는 등 손 쉴새 없는 분이다. 낮에는  파손된 가래장부, 제초기등  연장을 찾아 손질하고 대부마당을 지푸라기 하나없이  쓸어놓지만  년말때  로력공수로 상로동력의 평균을 평해주면 과분하다며 한사코 중상정도면 넉넉하다고 우기신다. 남들은 공수를 단 몇푼이라도 더받으려고 눈에 불을 켜는데 입에 들어온 떡도 뱉으려 하니  ‘제 몫도 찾아먹을줄 모르는 천치’란 별명이 본명을 삼켜버린것도 어느 정도 리해가 간다. 
   천아저씨에 대한 허물은 그뿐만이 아니였다.양자강도 건넜고 압록강도 건넜다는데 한평생 농사나 짓는것도 그렇고 신수가 훤한 총각이 과부장가를 들었다는건 더욱 체면이 깎이는 일이였다.  
    시외뻐스를 타고 약 반시간을 달리니 정든 고향마을이 한눈에 안겨왔다. 국도와 이어진 포장도로라  차체의 흔들림감 느끼지 못했다. 마을도 몰라보게 변하였다. 정수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만해도  금세 쓰러질것같던 올망졸망한 초가집들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고래등같은 기와집들이 키높이를 자랑하고있었다.  아직 해가 서산마루에 이르기도 전이건만 마을은  야밤같은 정적이 깃들어있었다.
     “ 환한 대낮인데 왜 마을이  쥐죽은듯 고요하노?”
     “동네는 커도 사람 사는 집이 겨우 몇채길래? 젊은이들하고 애들이 없고  로약자  여남명밖에 안사는데  우짤수 있나? ”
정수가 영구의 뒤를 따라 현길이네 대문안에 들어서니 60세 안팎의 남자들 대여섯이 관곽에 씌울 종이꽃 장식할 수수대틀을 만들고있었다. 정수는  동창이며 아는 사람들과 인사나누기가 바쁘게 빈소에 들어가  령전에 술을 붓고 절을 올리고나서  상주한테 
“갑자기 어르신 상사를 당해 뭐라 할말이 없구나.” 하고 위로의 말마디를 건늬고는  밖에 나왔다. 초상집치고는 참으로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 조객이 겨우 이 몇뿐이야?”  정수의 물음에 영구가 대답했다.
     “’천치’아저씨댁이니 이만치이라도 모였지 딴집이문  어림도 없당깨, 동네가 텅텅 비였으니 이제 우리 죽을땐   초상치러줄 사람이 있을란지 몰따. 참, 한심하지.”
   정수는 저녁상을 물리고 나자  본마을의 늙은 조객들을 집에 돌려보낸 뒤  동창들과 함께 상주를 동반해 빈소를 지키였다.  영정사진에 있는 고인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미안지심이 자꾸만 가슴을 괴롭혔다.    
   정수가가 9학년을 졸업하고 생산로동에 참가하던 그해에 마침 4인방이 무너지고 나라에서 혼란을 바로잡아 정상을 회복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버드나무가지에  파랗게 움트는 이듬해 봄날이였다. 정수가  쓰기 좋은 가래장부를  골리려고 남먼저 대부에 갔을 때였다.
    “자네 오늘 참 일찍 왔네. 일이 무척 고되잖나? 몸이 고달파도  짬짬이 공불 하게. 조만간  제힘으로 대학갈 날이 올거니깨 남먼저 준빌 해보게나.”
    정수는 ‘천치’아저씨의 천방야담같은 말에 반신반의했으나 그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아저씨가 무척 고마왔다. 그는 “행여나”에 기대를 걸고 짬짬이 교과서를 뒤지며  복습을 다그쳤더니 아니나다를가 바로 그해 겨울에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되였다. 남들이 다 놀 때 공부를 좀 한 덕분에 정수는 자기도 믿기 어려운  성적으로 꿈속에 그리던  대학에 발을 디딜수 있었다. 남이야 뭐라하든 ‘천치’아저씨의 신세를 단단히 진 정수는 그분의 생전에 고맙다는 인사말도 변변히 올리지 못한것이 못내 후회되였다.
    이튿날 발인식을 마치고 빈의관에서 보내온 차에 령구를 싣고 우리 일행은 화장터로 갔다. 빈의관에는  크고작은 고별청이 몇곳 있었으나 조객이 별로 없는 현길네는 유체고별식도 없이 조용히 차례를 기다려 화장을 마치였다. 로(炉)에서 나온 유골을 벽돌장으로 부수어 골회를 만들던 정수는 유골의 가슴뼈부위에서 작은 금속덩이를 발견하였다.
    “그거 탄알 아니야?’ 둘러선 친구들이 놀라자 현길이가 탄식조로 말했다.
     “아버진 몸에  탄알이 박혔어도 평생 내색하지 않아서 나도 몰랐어. .”. 
   그들은 강가에 와서 고별제를 지낸 뒤 골회를 강물에 뿌리고나서 뻐스를 타고 상가로 돌아왔다. 
     빈의관에 갔던 상주가 돌아오자 상가에서는 초우제를 지내였다. 제사상을 간단히 차리고 고인의 영정앞에 상주와 상제들이 술을 붓고 절을 올렸다. 초우제를 끝낼 무렵 팔순이 넘은 현길이의 로모가  엉금엉금 기다싶이 다가와서 고인의 영정앞에 술을 붓고 절을 올리더니 콩알만한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넉두리를 시작하였다.
“여보여보, 당신은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 대우를 받으며 몇해동안 좀 편케 살라카니 복이 지지리도 없어 날 두고 그만 영영  가셨나요? 부댈 나올 때  나라에서 공작분배를 했는데도 당신은 머라카나 “먹물 먹은게 없어서  안된다”며 뿌리치고  땅파먹을락꼬 여길 내려오셨지.., 고운 처녀들이 천지백가린데도 당신은 당신을 구하다 희생된 전우의 안해를 지켜주겠다고 우기면서 나이 많고 못난 내한테 과부장가까지 왔었지,흑흑...  유공자들을 우대정책이 내려왔을때도 당신은 <전우들은 나랄 위해 목숨까지 바쳤는데 내가 그까짓 공 좀 세운걸 각고 무신 우댈 받겠나?> 라고 하면서 한사코 손사랠치셨지... . 누가 봐도 당신은 성씨만 천씬게 아이라 진짜 “천치”였어요. 하기사 당신은 그렇게 사는게 오히려 맘이 제일 편타고 말했지만 흑흑...당신은 글케 아끼고 고히 건사하던 이 가방을 도라가면 나라에  바치라고 유언했는데 도대체 그안에 무슨 보배가 들어있길래 글쿠 감촸는지 한번 봐야겠어요 예?’   
현길이의 로모는 색바랜 군용가방을 열고 그안에 든 물건을 방바닥에 우루루 쏟았다. 황록색 군복이 나오고 군복의 가슴팍에 달린 수많은 훈장과 메달이 번쩍이였다. 복원증서와 전투영웅증서에서 영웅의 이름석자를 발견한 정수는 화들짝 놀라 눈이 화등잔이 되였다. 
“아아, 당신이 내가 그렇게도  만나보고싶었던 정찰영웅이셨군요.우리는 당신의 지척에 있어돘어도 아무것도  모르고지냈어요.”  
    정수는 그분의 생전에 그분의 래력은 커녕 명함조차 몰랐던 자신이 꼬집어뜯고싶도록 미웠다. 전투영웅의 지극히 평범하나 더없이 값진 생의 궤적을 우러르는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마루가 시큰하여  량볼을 타고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마구 훔치였다.
                                         2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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