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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기인 정치가 리항복59)대를 이은 명문
2016년 01월 18일 16시 41분  조회:2511  추천:1  작성자: 옛날옛적
      59.대를 이은 명문
   백사 리항복의 후대는 조선조에서 4명의 령의정과 1명의 좌의정과 3명의 대제학 그리고 여러명의 문과급제를 배출했다. 그들의 활약은 조선 중엽이후 특별히 두드러졌다.리항복의 높은 공덕때문인지 후손들가운데서 손꼽을만한 명인들이 많이 나왔다.리항복의 증손자인 세필(世弼)과 세귀(世龟)는 당대의 명인으로 좌찬성과 령의정에 각각 증직되였다.세귀의 아들인 광좌(光佐)는 대제학과 령의정에 올라 사망한 뒤 문충공(文忠公)의 시호를 받았고 세필의 아들 태좌(台佐)는 영조왕때 좌의정에 올라 사망한 후 문정(文定)이란 시호를 받았다.
    리태좌의 아들 종성(宗城) 역시 령의정에 올랐는데 후에 문충공의 시호를 받았다. 768년(영조 44)에 음덕으로 관직에 나와 온릉참봉·덕산현감을 지내고, 1775년 문과정시에 을과로 급제, 예조좌랑·사간원정언·홍문관부수찬·대사간·대사성·리조참의·황해도관찰사·리조참판 등을 력임하였다.
그 뒤 1800년(정조 24) 공조판서에 오른 다음 이어 대사헌·우참찬·형조판서·한성부판윤·좌참찬 등을 지냈다. 1804년(순조 4)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우의정으로 있을 때, 성학(聖學)에 힘쓰고 정치기강을 바로잡을 것 등 제반시책을 건의하여 조정에서 받아들여졌으며, 1808년 나이 75세에 봉조하(奉朝賀)가 되고 오은군(鰲恩君)에 피봉되었다. 저서에는 시문을 모은 『청헌유고』가 있다. 시호는 효정(孝定)이다.
리항복의 6세손인 리경일(李敬一)도 순조왕때 좌의정에 올라 효정(孝定)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구한말 고종때 리유원(李裕元 1814~1888)은 리계초의 아들로서 자는 경춘(景春)이며, 호는 귤산(橘山), 묵농(默農)이다. 영의정을 지냈으며, 1882년에 전권대신으로서 ‘제물포 조약’에 조인하였다. 저서에 《임하필기(林下筆記)》, 《가오고략(嘉梧藁略)》이 있다.) 문충공의 시호를 받았다.
   백사 리항복의 11세손인 리유승(李维承) 6형제는 리항복의 둘째아들 리정남의 후손이다. 리유승의 6형제는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그해 12월 혹한에 40여명의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들어가서 독립운동에 뛰여들었다.그들 6형제가 처분한 가산은 당시돈으로 40만냥이였다. 네째인 우당(友堂) 리회영(李会荣)은 이들 형제들의 독립운동의 앞장에 서있었다.그는 석주 리상룡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조선 광복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전력하였고 1913년에는 북경에 들어가 중화민국 원세개대통령을 만나 조선인들의 보호를 요청하여 승락을 받아내였다.리회영은 1932년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옥중에서 사망했다.
    둘째인 리석영은 고종때 령의정을 지낸 리유원의 양자로 들어가서 유산을 상속받아 만석거부가 되였다.그는 가산을 몽땅 처리하여 망명하는 비용에 일부를 쓰고 나머지는 신흥무관학교 운영에 이바지했다. 그는 상해에서 대한독립운동을 하다가 사망했다.
    광복후 6형제가운데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본국에 돌아온 이는 성재 리시영(1869-1963)뿐이였다.5형제와 그들의 아들 등 대부분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실종되였다.리시영은 1919년 4월에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림시정부를 조직하고 법무총장,재무총장을 력임하였다.귀국한 뒤 대한민국 초대부통령을 지내였다.그러나 리승만대통령의 독재정치에 크게 실망한 그는 부통령직을 자진 사퇴하고 인재양성을 위해 우당장학회를 설립하였다. 조선전쟁이 폭발한 뒤 부산에 피난해있던 그는 1953년 4월에 로환으로 사망하였다.
.  그외에도 많은 인재들이 출현했다.독립운동가이자 광복후 제헌국회의원과 법무장관을 지낸 리인도, 신민당총재였던 리민우,국방장관을 지낸 리희성,,국방부장관을 지낸 리상훈과 국정원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리종찬장군,건설부장관을 지낸 리한림,통일원장관 리용희,법무부장관 리종원, 세계적인 대기업인 삼성그릅의 창시자인 리병철 회장 등등이 있다.
백사 리항복은 그 자신만 조선조의 4대 명재상으로 청백리로 해학가와 문장가,시인으로 명성을 떨쳤을뿐만아니라 그 후손들도 잘 배양하여 민족의 자랑으로 되고있다.백사 리항복의 애국애민의 숭고한 사상과 무궁무진한 지혜는 세월의 강물을 거쳐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있다.그의 후손들은 경주리씨의 한개 파인 백사공파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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