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서당의 밤 폭탄
세상에 하루앞도 볼수 없는게 풍운의 변화요,한치앞도 알수 없는것이 인생이라더니 학문이 연박하고 조정에서 인망이 높은데다가 조정에서 덕망이 높은 권정승과의 사돈까지 맺은 리몽량의 앞에는 구만리 장공이 펼친듯 하였다.장차 정승이 될 희망까지 눈앞에 아롱거리던 리참찬이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 며칠동안 앓더니 불행하게 저세상의 사람으로 되였다.
리참찬가문에서는 실로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것이나 다름없었다.태산같이 믿고 의지하던 가정이 기둥을 잃어버린 리씨집안은 금세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것만 같았다.
하늘같은 아버지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리항복은 인생이 이렇게 허무한가고 탄식을 하였다.리씨집안의 네째아들인 리항복은 장례를 치르고 3년상을 치를 때까지 근신하느라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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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는 화산서원. 오성부원군 이항복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1635년 창건된 서원으로 고종 시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71년 복원됐다. /사진작가 황헌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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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은 워낙 천성이 소탈하고 장난이 심하기로 세상에 둘째가라면 설어할 아이였다.엄부가 생존해계실때는 부친의 불호령이 두려워서 그런대로 공부를 좀 했지만 곁에서 지키는 사람이 없게 되자 날이 갈수록 방탕해졌다.그는 상복을 입은 동안은 자제하느라 애를 쓰면서 집에서 경서를 암송했지만 시는 쓰지 않았다.
선고의 삼년상을 마치자 그의 안중에는 아무도 없어서 점점 더 방탕하게 굴기 시작했다.그는 민간에 떠도는 패관소설을 얻어다 많이 읽었고 음담을 듣고 중국의 모소귀화 괴담을 애독하면서 점차 타락해졌다.
리항복은 서당에 다녔지만 훈장한테서 배울것이 별로 없어서 장난에만 신경을 쓰고 공부는 뒤전으로 밀어버렸다. 그가 다니는 서당의 훈장은 수염이 한자나 되는 늙은 학구였는데 머리속에 든 학문이 너무 적어서 날마다 강의하다가 바닥이 드러나군 하였다.
훈장은 날마다 경서를 조금 강의하고나선 이마에 돋은 땀을 닦았다. 그는 애들더러 자체로 책을 읽으라 분부하고나서 곰방대를 물고앉으면 끄덕끄덕 졸기가 일쑤였다. 훈장을 한번 골려줘야겠다고 생각한 리항복은 어느날 서당으로 갈때 밤을 몇알 지니고 갔다.
이날도 훈장은 경서의 한토막을 대충 강의하고나서 서생들더러 자체로 경서를 읽으면서 내용을 익히라고 하였다.때는 겨울철이라 방안에는 난로를 피워놓았는데 장작불이 활활 타니 집안은 매우 훈훈하였다. 책을 읽던 서생들은 졸음이 와서 끄덕끄덕 졸았다. 리항복이 가만히 훈장의 동정을 살펴보니 훈장도 어느새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방아를 찧고있었다.
리항복은 마침 이때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난로에 몰래 밤 몇알을 묻어두고 동정을 살피였다.
이윽고 “꽝!꽝!”하는 소리가 울리며 익은 밤알이 련이어 터졌다.잠이 혼곤히 들었던 애들은 깜짝 놀라 깨여났다.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잠들었던 훈장도 난데없는 폭음에 놀라 깨였는데 입에 물었던 곰방대가 목안을 쿡 찔렀었다.
서생들은 처음엔 어인 영문인지모르고 고개를 기우뚱거리다가 훈장이 담배대에 목이 찔려 상을 찡그리는것을 보고 그만 까르르 웃어댔다.
성이 상투끝까지 치밀어오른 훈장은 서생들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방금 어느놈이 한짓이냐? 냉큼 나와 반성하지 못할가?”
애들은 저마다 다른 애들을 보며 누구의 소행인지 몰라 눈을 반들거렸다.한동안 연덩이같은 침묵이 흘렀다.리항복은 모르쇠를 하고 애들과 훈장의 동정만 지켜봤다.
“어느놈이 공부하는 시간에 밤을 구웠느냐? 밤을 구운 놈은 당장 여기 나오지 못할가?”훈장은 다시 목소리를 높여 호통쳤다.
“스승님, 제가 화로에 밤을 구웠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눈길은 일제히 말소리가 나는쪽으로 향해졌다.
(누가 하지도 않은 짓을 자백하나?) 리항복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서생을 돌아보니 그 애는 서당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꼬마였다.
“네가 밤을 구웠다고? 그래 너는 왜 공부하는 시간에 밤을 구웠느냐?”훈장은 나이가 다른 서생들보다 훨씬 어리고 평소에 학습에 가장 열중하여 자신이 은근히 귀여워하던 소년이 밤을 구웠다고 탄백을 하자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스승님을 대접하려고 밤을 구웠습니다.”소년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이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훈장은 소년의 말이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내가 언제 너더러 밤을 구워달라고 했더냐?”
“방금 스승님께서 너무 고단해서 조을고계시기에 소생은 스승님께서 밤을 자시고 정신을 추스르시라고 구웠습니다.”
“내가 언제 졸았더냐?” 훈장은 더는 할말이 없어서 애들을 보고 소리내여 책을 읽으라고 말하였다. 물론 그 소년에게 회초리는 들수가 없었다.
서당에서 공부를 끝낸 항복이는 길에 나와 기다리다가 그 소년이 나오자 다가가서 물었다.
“오늘 너는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자백했니?”
“내가 오늘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회초리를 맞을게 아니냐? 나는 네가 화로에 밤을 굽는것을 보았단다.”
“그래? 참 고맙다.앞으로 우리 친구로 사귀자.”항복이는 소년의 손을 굳게 잡았다.자기보다 몇살이나 어리지만 웅심이 있고 학문에 연찬하는 이 어린이가 더없이 미더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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